능소화

장마 내내 하늘에서

늙어 가는 세월

億龍門僧 억룡문승

雪消庭畔蒼巖大 설소정반창암대

潮滿樓前落日紅 조만루전락일홍

惆悵高僧難再見 추창고승난재견

凌霄花老海雲中 능소화노해운중

용문의 스님을 추억하며

눈 녹으면 뜰에 커다란 바위 푸르고

만조 때 누각 앞에는 지는 해 붉었지.

슬프구나, 고승은 다시 만나기 어렵고

능소화만 운해 사이에서 늙어 가겠지.

-김창업, '노가재집' 권4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사십 오번째로 등장하는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의 시 "億龍門僧 억룡문승"이다.

능소화는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심어 기르는 덩굴나무다. 한여름에 주황색으로 피는 꽃으로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

凌霄花능소화, 이름 그대로 하늘을 침범하는 꽃이다. 벽이나 나무 등을 타고 올라 꽃을 피우는 모습에서 얻은 이름인듯 싶다.

일반적으로 능소화에 대한 이미지는 중국의 전설과 연관이 있다. 이쁜 궁녀(소화)가 임금의 성은을 입어 후궁이 되었지만 다른 여인들의 질투로 왕이 두 번 다시 소화를 찾지 못했다. 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에 지친 소화는 상사병이 들어 죽었고, 유언에 따라 담장 밑에 묻었는데 이듬해 여름날 그 담장 주변에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사람들은 ‘소화를 능가하는 꽃’이라 해 능소화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꽃이 귀한 여름에 화사하게 피는 능소화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내리는 종이꽃 어사화로 능소화가 쓰여 양반들이 좋아하는 꽃이기도 했다. 흔치 않은 꽃이라 양반집에만 심었다고 해서 "양반꽃"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인용한 김창업의 능소화에 관한 시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의미로 왜 인용했는지 의문이다.

요사이 능소화는 많이 보급이 되어 여기저기에서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담장이나 건물 벽과 어우러져 피는 모습은 장관이어서 많은 이들이 인증사진을 찍는 명소가 되기도 했다. 그중 한곳은 알 수 없는 이에 의해 잘려나가 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내가 사는 집 담장에도 능소화를 심었고 제법 모양을 갖추었다. 여름 내내 집을 들고나는 사람들에게 꽃이 주는 다양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어 좋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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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귀쓴풀

지리산 반야봉 당일치기를 감행하게 했지만 헛탕을 치고 말았다. 다음해를 기다려 가야산을 올랐다. 그후론 매년 가야산을 오른다.

자욱한 안개 속에 펼쳐진 고지대 꽃밭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키는 작고 색은 진하며 무리지어 핀 꽂들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장소를 바꿔 오르길 참 잘했다고 스스로를 연신 다독거린다. 여름 무더위 속에서 높은 산에 오르는 이유다.

작은 키에 가늘고 긴 가지가 많다. 그 가지 끝에 아주 조그마한 꽃이 핀다. 하얀색 바탕에 자주색 반점이 있어 그나마 쉽게 눈에 보인다. 작아서 더 귀하게 보이는 꽃이 한없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네귀쓴풀이란 귀처럼 생긴 꽃잎이 4개로 갈라지며, 쓴맛을 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좌우 대칭으로 갈라진 꽃잎과 하얀색과 자주색 점 그리고 꽃술의 어울림이 참으로 이쁘다.

차로는 갈 수 없는 높은 산에서만 살아 보고 싶은 이들의 속내를 태울만한 식물이다. 여러가지 조건으로 만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한숨을 안겨주는 꽃이기도 하다. 지각知覺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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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슬픔을 탈바꿈하는

아무리 서러워도

불타는 저녁놀에만 미치게 빠져

헤어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이윽고 밤의 적막 속에

그것은 깨끗이 묻어버리고

다음날에는

비록 새 슬픔일지라도

우선은 아름다운

해돋이를 맞이하는 심사로

요컨대 슬픔을 탈바꿈하는

너그러운 지혜가 없이는

강물이 오래 흐르고

산이 한자리 버티고 섰는

그 까닭 근처에는

한치도 못 가리로다.

*박재삼 시인의 시 '슬픔을 탈바꿈하는'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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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본다는 것'

가능한일일까? 사람과 사람이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 그 사람을 통째로 알아버리는 일이 정말 가능하기는 한걸까?

감정을 담지 않고 존재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은 객관적인 법칙에 대입하면 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은 완고하고 수시로 변하기에 대입할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벽을 두르고 상대를 대하는 모든 행위는 그래서 애초에 그 벽을 넘을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출발한 경우와 같다. 이는 불가능한 것이며 공정하지도 않고 또한 벽을 두른자의 일방적 감정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라는 벽을 향해 돌진하는 것은 그것이라도 해야만 할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때론 이 절박함이 기적을 만들어 왔음을 알기에 그 기적에 의지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다.

해를 마주보는 것은 여전히 버거운 일중 하나다. 그렇더라도 마주보지 않으면 일생을. 한번 볼까 말까하는 명장면을 볼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나, 당신을 마주보고자 함은 이렇게 간절함을 보테 기적이라도 불러오고 싶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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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마끝 무더위가 시작되는 어느날 이른 아침 불현듯 피었다가 한나절도 지나기 전에 시들어졌다. 고개 숙인 모습이 이토록 애처러운 것은 피었던 때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까닭이리라.

짧은 순간을 화려하게 살았다. 무너지는 것 역시 한순간이다.

체념일까. 좌절일까. 고뇌하는 모습으로 읽히는 것은 내 안의 무엇이 반영된 결과이니 결국, 나를 돌아볼 일이다.

매 순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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