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수요일

모란꽃 이우는 날

생각은 종일을 봄비와 더부러 하염없이

뒷산 솔밭을 묻고 넘쳐오는 안개

모란꽃 뚝뚝 떨어지는 우리 집 뜨락까지 내려,

설령 당신이 이제

우산을 접으며 방긋 웃고 사립을 들어서기로

내 그리 마음 설레이지 않으리,

이미 허구한 세월을

기다림에 이렇듯 버릇 되어 살므로

그리하여 예사로운 이웃처럼 둘이 앉아

시절 이야기 같은 것

예사로이 웃으며 주고받을 수 있으리

이미 허구한 세월을

내 안에 당신과 곁하여 살므로

모란은 뚝뚝 정녕 두견처럼 울며 떨어지고

생각은 종일을 봄비와 더부러 하염없어

이제 하마 사립을 들어오는 옷자락이 보인다

*5월은 모란와 관련된 시를 모아본다. 유치환 시인의 시 '모란꽃 이우는 날'이다. 삼백예순 날을 기다려 겨우 열흘 남짓 모란은 그렇게 지고 만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길을 나섰다.
멀리 사는 이들이 '내일이야'는 한마디에 주저없이 나선 길이다. 곡성과 옥천, 울진과 서울에서 출발은 달랐지만 정해진 시간에 한곳에 모였다. 초봄 제주에 이어 오랜만이다.

김밥을 사고 물을 챙기고 누군가는 배낭을 메고 다른이는 지팡이를 챙기는 동안 모두는 신발끈을 조였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꽃을 찾으며 걷는 중에는 혹 힘들어하는 이는 없는지 속도를 조절하며 산길을 걷는다. 누구 한사람 무엇인가를 발견하면 서로를 부르며 눗맞춤 할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상으로 삼은 꽃만이 아니다. 풀이든 나무든 익숙하거나 생소한 것도 가리지 않고 나누다 보면 어느순간 같은 장소에 함께 머문다.

서두르거나 재촉하지도 않으면서 각자 독특한 자세와 방법으로 꽃들과 눈맞춤하고 있다.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달라도 마음이 닿는 곳은 하나임을 알기에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렇게 함께 보낸 시간이 쌓여 벗들의 마음 가득 꽃 닮은 미소가 넘친다. 표정만 봐도 그날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정이 있어 함께하지 못한 벗들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전설적인 나무 주목 앞에 섰다. 나무가 건너온 시간을 눈으로만 짐작하기에는 정성이 부족하기에 품에 들어 가만히 안겨 본다. 안기는 내가 안았지만 어디 나무의 시간이 내어준 품의 풍덩 빠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함께 한 꽃친구들의 품에 안긴듯 한없이 포근한 든든하다. 나무를 안거나 안겨본 이들만이 공유하는 느낌이리라.

모두는 서로에게 이런 나무가 되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1세기컴맹 2024-05-2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람한 만남과 우정. 모두 행복한 동행 같습니다
 

탱자나무
뽀쪽한 가시로 중무장 했다. 지겨야할 무엇이 있기에 날카로움을 밖으로 세웠다. 단단한 나무고 깊숙히 열매를 품고 있기에 나름 방비를 갖췄다고 여겨지지만 가시까지 무장한 것으로 봐선 지키고자 애쓰는 것이 꼭 자기자신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풀어헤쳐진 꽃잎의 자유분방함에 하얀색으로 유독 빛난다. 윤기나는 연초록 잎과 눈부시도록 하얀 꽃의 어울림이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한다. 여기에 향기까지 있어 탱자나무가 가지는 그 넉넉함은 넓고 깊다.

탱자나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위리안치圍籬安置다. 귀양 보내 주거지를 제한하는 형벌로서 집 주위에 탱자나무를 빙 둘러 심어 바깥출입을 못하게 한 것을 말한다. 시골 마을엔 울타리용으로 가꾼 흔적은 지금도 더러 남아있다.

열매, 뿌리, 껍질 등은 약재로도 쓰였고 요즘은 열매로 차를 담아 음용한다. 또한 소리꾼의 북을 치는 북채로는 탱자나무로 만든 것을 최고로 친다. '추억'라는 꽃말을 가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팥꽃나무'
곱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자잘한 가지가 많은 크지않은 나무에 곱디고운 꽃들이 무리지어 피었다. 멀리서 보아도 금방 알아볼 수밖에 없는 그 고운색에 과하지 않은 향기까지 은은하게 번진다.

연한 자주색으로 피는 꽃은 꽃받침이 통처럼 생기고 겉에 잔털이 있으며 끝이 4개로 갈라져서 꽃받침은 타원형 또는 달걀꼴의 꽃잎처럼 된다.

팥꽃나무란 이름은 꽃이 피어날 때의 빛깔이 팥알 색깔과 비슷하다 하여 ‘팥 빛을 가진 꽃나무’란 뜻으로 붙여진 것으로 본다. 팥죽이나 팥빙수를 만들기 위해 팥을 삶을 때 우러난 물색이 이와 닮은듯도 하다.

해안가의 산기슭이나 숲 가장자리의 척박한 곳에서 자라며 더위에 약하고 추위에 강하다고 한다. 꽃과 향이 좋은만큼 정원수로 가꾸어도 좋겠다.

곱디고운 꽃색깔과 함께 은은한 향기에서 비롯된 것일까. '꿈속의(달콤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24-05-25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달에 천리포 수목원 갔다가 팥꽃나무를 봤습니다. 향기를 맡아볼 생각은 못했는데 향기도 좋은가보군요.
 

농염한 아름다움, 모란꽃

雪後寒梅雨後蘭 설후한매우후란

看時容易畵時難 간시용이화시난

早知不入時人眼 조지불입시인안

寧把臙指寫牡丹 녕파연지사목단

눈 온 뒤 찬 매화와 비 온 뒤 난초는

볼 때는 하찮아도 그릴 때는 어렵다네.

세상 눈에 안 찰 줄을 내 미리 알았던들

차라리 연지로 모란을 그릴 것을.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의 시다. "한강 가의 제천정濟川亭 벽 위에 써 붙였던 것이다. 시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세속을 풍자한 뜻이 깊어 오늘날까지 널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매화와 난초는 너무 고아하므로 힘들여 그려 봤자 알아보는 이가 드물다. 하지만 모란은 그 자태가 농염濃艶하여 그리기만 하면 어린 아이부터 미천한 병졸까지 모두 좋아 한다. 이것이 김종직이 자탄한 까닭이다."

모란에 대한 시로 고려사람 이규보를 따를자가 없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로맨틱한 것은 '절화행折花行이란 작품이다.

牧丹含露眞珠顆 목단함로진주과

美人折得牕前過 미인절득창전과

含笑問檀郞 함소문단랑

花强妾貌强 화강첩모강

檀郞故相戱 단랑고상희

强道花妓好 강도화기호

美人妬花勝 미인투화승

踏破花枝道 답파화지도

花若勝於妄 화약승어망

今宵花與宿 금소화여숙

진주알 맺힌 듯이 이슬 먹은 모란 송이

미인이 꺾어들고 창 앞을 지나다가

웃음 담뿍 머금고 님에게 묻는 말이,

“꽃이 예뻐요, 아님 제가 예뻐요?”

서방님은 일부러 장난 치느라

꽃가지 더 예쁘다고 짐짓 말을 하누나.

아가씨는 꽃에 진 것 질투를 내어

꽃가지 짓뭉개며 한다는 말이

“이 꽃이 이 몸보다 진정 낫거든

오늘 밤은 꽃하고 주무시구려.“

*부귀롭고 화려한 꽃의 대명사 모란은 화왕花王이라 한다. 옛사람들이 아껴 뜰에 들여 애지중지하며 가꾸었으며 시로 노래한 작품들이 많다. 모두 모란의 농염한 꽃의 자태와 농욱한 그 향기에 주목한 까닭이리라.

내 뜰에도 가장 많은 개체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 모란이다. 흰색이 주를 이루고 붉은색의 모란도 있다. 붉은색의 농염함 보다 흰색의 단아함 속 깊은 아름다움에 반하여 들여와 가꾸고 있다.

"천향天香과 국색國色을 아울러 갖춘 아름답고 농염한 모란"은 겨우 닷새를 보자고 삼백예순 날을 기다리는 마음까지 훔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