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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평점 :
어둠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
슬픔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사장士章 박상한(1742~1767)이 죽자 연암 박지원이 쓴 애사哀辭가 그것이다. “나는 매양 모르겠네. 소리란 똑같이 입에서 나오는데, 즐거우면 어째서 웃음이 되고, 슬프면 어째서 울음이 되는지. 어쩌면 웃고 우는 이 두 가지는 억지로는 되는 게 아니다. 감정이 극에 달해야만 우러나는 게 아닐지. 나는 모르겠네. 이른바 정이란 어떤 모양이건대 생각만 하면 내 코끝을 시리게 하는지. 그래도 모르겠네. 눈물이란 무슨 물이건대 울기만 하면 눈에서 나오는지. 아아, 남이 가르쳐주어야만 울 수 있다면 나는 으레 부끄럼에 겨워 소리도 못 내겠지. 아하, 이제야 알았다. 이른바 그렁그렁 이 눈물이란 배워서 만들 수 없다는 걸.”라는 대목이 있다.
울기만 하면 눈에서 나오는 물이 눈물인데 그 눈물이 나올 수 있는 근원에 슬픔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하여, 슬픔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눈물은 그 슬픔을 치유하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슬픔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그와 동반되는 울음을 울 수도 없는 현실을 강요하고 있다. 박지원은 눈물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눈물을 배워서라도 슬픔을 치유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신형철의 산문집‘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어가는 내내 떠나지 않은 것이 이 문장이었다. 맥락이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자의 “‘타인의 슬픔’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는 뜻에 공간하는 것으로 본다면 딱히 틀린 것도 아닐 듯싶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제의 제목에 이끌러 선택한 책을 읽어가면서 솔직히 평론가 신형철에 매료된 시간이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가 보이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한 시대정신을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잭의 제목이 이해되는 것은 이로부터다.
문학평론가답게 소설과 시를 중심으로 영화, 노래, 사진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온기가 전해진다.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슬픔을 공부해야하는 요소들에 대한 접근이 폭이 넓고 깊이 또한 깊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김연수의 '우리가 보낸 순간ㆍ시'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이에 대해 저자 신형철은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서 스스로 묻는다. "정말 그럴까? 읽고 쓰는 일만으로 우리는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비슷한 내용에 주목하고 있는 터라 묵직하게 다가오는 내용이다.
“계속 공부해야 한다. 어둠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내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이유와도 상통한다. 한 권의 책으로 한 사람의 저자를 깊이 있게 알 도리는 없다. 그렇더라도 사람과 사회를 향한 저자의 시선의 방향과 온도를 알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참 좋은 저자를 발견한 기쁨이 크다. 이 책을 출발점으로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더 많은 글과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