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숲에 들었다. 우수에 볕 좋은 날이었지만 숲에 들어설 때는 이미 늦은 오후라 그늘이 점령하고 있다. 볕이 없으면 눈맞춤하기에 부족한 점이 있어도 개의치 않고 숲에 든다.

긴 겨울잠에서 갖 깨어난 녀석들이 하나 둘 보인다. 솜털 보송보송하고 잠에 취한듯 고개를 떨구고 있다. 얼굴 마주보진 못하지만 이제 나날이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기에 그 숲에 마음 한쪽 떼어놓고 왔다.


노루귀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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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雨水다.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과 동면하던 개구리가 놀라서 깬다는 경칩 사이에 절기라 봄 내음이 솔솔 풍기지만 동반하는 바람끝엔 차가움이 남아 있다. 하지만, '우수 뒤에 얼음같이' 이제 봄기운 스며들 날이 코 앞이다.


회문산 정상 큰지붕(837m) 위에 섰다. 어디가 어딘지 구분하지 못하는 발아래 연봉들이 줄지어 있다. 맑은 하늘과 눈부신 햇살에 빛나는 상고대는 겨울산이 만들어 놓은 보석이다. 알싸한 바람과 마주하는 겨울산의 매력이 좋다. 얼음장 밑으로 물흐르는 소리 맑다.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겨울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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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갔다. 뽀송뽀송한 솜털을 세우고 세상구경 나올 그 녀석을 보기 위함이다.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길마가지 나무는 여전히 피고지기를 반복하며 반긴다. 어제밤 흩날리던 눈이 그대로 쌓여있고 그 흔한 동물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에 당도하여 앉아 가만히 눈이 겨울숲에 익숙하도록 기다리며 반가운 녀석이 보일까 두리번거리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는듯 하나도 볼 수가 없다. 노루귀하고 숨바꼭질하는 것이 이번이 여섯번째다.


잔설이 남아 겨울 숲의 운치를 더한다. 요즘 보여주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임을 여실히 체험하는 때라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숲을 나오는 길 그래도 허전함은 숨길 수 없다. 보여줄 때까지 다시 오면 되지 뭐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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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달 밤 불이 타오른다. 달집태우기다. 남원 창극 보러가는 길에 만났다. 논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하늘 가운데 떠오른 달을 맞이한다.

정월대보름날 밤 달이 떠오를 때 생솔가지 등을 쌓아올린 무더기에 불을 질러 태우며 노는 세시풍속이다.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새해, 질병도 근심도 없는 밝은 새해를 맞는다는 사람들의 꿈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달집태우기이다.

대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사악을 살라버리는 정화의 상징이다. 불타오르는 달집 주변을 돌며 두손 모아 합장하며 구름 사이를 건너온 달과 눈맞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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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
거친 숨 몰아쉬며 바위끝에 주저 앉은다. 고요ᆞ정적, 막혔던 가슴이 터지며 시원함이 심장으로 깊숙히 파고든다. 그러나 시원함을 음미하는 것은 언제나 가슴보다 눈이 먼저다. 아스라히 먼 산은 구름다리를 놓고 건너오라는 듯 미소 짓는다. 마음 같아선 몇걸음이면 닿겠다. 날개를 잃어버린 이들이 여기서 비로소 다시 꿈을 꾼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대문에 붙이지 못한 춘방春榜을 가슴에 담는다.

만덕산 할미봉에 올라 남서쪽을 바라보며 동에서 백아산, 모후산, 무등산, 병풍산, 용구산, 삼인산, 추월산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반겨 손짓한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바람이 붙잡아둔 구름 사이로 땅의 봄맞이와 눈맞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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