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토닥토닥토닥ᆢ. 봄의 심술궂음이 열어젖혀 속절없이 일렁이는 가슴이라도 다독이라고 하늘이 보내준 선물이다. 그런 하늘의 바람과는 상관도 없다는듯 마음 다독일 생각도 여력도 없다. 동동거리는 발을 앞세워 봄비 속으로 길을 나선다. 눈으로 마주치는 무엇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눈맞춤하는 족족 흠뻑 젖는다. 나라고 예외일순 없다.


봄비


심장에 맞지 않아도
사랑에 빠져 버리는
천만 개의 화살


그대,
피하지 못하리


*양광모의 시 '봄비'다. 봄비의 화살을 피할 까닭이 없음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수작을 건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발길따라 비는 흐르고, 고개숙인 백매는 향기를 빗물에 녹여 발길과 마주한다. 동백은 제 흥을 이기지 못하고 툭허니 떨어져버리고, 작약은 올커니 하면서 붉은 속내를 밀어내느라 여념이 없다. 비야 오든지말든지 광대나물의 시선은 이미 들판을 넘었고, 호기심 천국인양 큰개불알풀꽃의 눈망울은 아직 당도하지 못한 그리움을 기다리느리 눈을 부아린다. 헝크러진 마음마냥 풀어지는 작약의 속내는 결국 뜰보리수 새잎의 물방울에 함께 갇혔다.


봄 향기에 흠뻑 젖은 마음에 스며들 틈이 없는지 봄 향기 덜어내는 봄비가 자꾸만 흘러내린다.


매화

동백

작약

광대나물

큰개불알풀

목단

뜰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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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홍매화'
큰 일 마치고 집에 온다는 딸아이 소식에 불쑥 길을 나섰다. 하늘도 흐리고 비소식까지 있어 날씨는 꽃구경 길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구비구비 산길을 넘는동안 눈에 들어온 구례의 산수유는 이미 노란빛을 잃어가고 있다.


산수유는 지나가는 길목에 눈요기꺼리고 목적은 화엄사 홍매화에 있다. 화엄사 홍매화는 '장육전丈六殿이 있던 자리에 조선 숙종 때 각황전覺皇殿을 중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계파桂波선사께서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장육화丈六花라고도 하며, 다른 홍매화보다 꽃이 검붉어 흑매화黑梅花로 불리기도 한다.'


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 오죽헌의 율곡매와 더불어 화엄사 화엄매 등이 탐매객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외 여러 고매古梅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화엄사 화엄매는 아직 일러 만개한 화엄매를 보려면 조급한 마음을 잘 다독여야 될듯 싶다. 300번이 넘는 동안 봄날을 붉게 물들였던 매화가 피는 속도보다 그 붉은매화를 보고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급했나 보다. 고매에 핀 꽃보다 나무 곁을 서성이는 사람 숫자가 더 많다.


매화향기 음매할 틈도, 흑매라 부를만큼 검붉은 매화빛을 볼 짬도, 꽃그늘에 스며들어 하늘 한번 올려다볼 여유도 없이 크고 작은 카메라의 액정만 쳐다보기 바쁘다. 향기도 빛깔도 아니라면 여기에 무엇하러 왔을까?


모처럼 동행한 딸아이 마음에 붉은 매화향기 스며들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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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컴맹 2017-03-30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년전 갔더랬습니다. 일러 보진 못하고 연륜에 그리움 더한 큰 망울만 보고 그보다 그걸 기다리는 초로의 카메라를 봤었죠. 그런 명사로 남은 홍매
봄마다 찾아오네요

무진無盡 2017-03-30 14:23   좋아요 0 | URL
많은 이들이 화엄매의 붉은빛을 담아 가더라구요. 모두의 마음에 그렇게 불이 켜지길 바래봅니다.
 

봄꽃나들이
볕 좋은 봄날,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낯선 곳을 찾아가는 생소함을 어쩌지 못하면서도 선듯 길을 나선 것은 꽃 때문이다. 안내판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특별히 물어볼 사람도 없을 땐 그저 발품을 파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숲 속 복수초는 온 계곡을 노랗게 물들이고 씨를 맺는 개체까지 있다. 복수초의 계곡이라 칭해도 무방하리만큼 지천으로 피었다. 노오란 등불을 밝힌 하나하나에 눈맞춤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모든 들꽃이 언제 어느 곳에서 만나더라도 반가운 선두에 노루귀가 있다. 흰색, 분홍색에 청색까지 한자리에 피어 햇살을 받고 있다.


오늘 낯선 길을 작정하고 나선 것은 바람꽃들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피는 변산바람꽃에 이어 너도바람꽃, 만주바람꽃에 꿩의바람꽃, 남방바람꽃 등 바람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양한 종류를 다 볼 수는 없을지라도 하나씩 만나면서 눈맞춤해가고 있다. 변산바람꽃은 이미 봤으니 다음으로 너도바람꽃을 보고 싶었다.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찾느라 한동안 숲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그만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눈에 들어온다. 제자리에 서서 주변을 여러개체가 눈에 띈다. 너도바람꽃, 만주바람꽃에 꿩의바람꽃까지 한자리에서 세 종류의 꽃을 한꺼번에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활짝 열어젖힌 꽃봉우리 가운에 노오란 꽃술이 둥근원을 만들어 독특함을 보여주는 너도바람꽃과 많은 꽃잎을 일사분란하게 펼치면서도 대칭을 이루는 꿩의바람꽃을 처음으로 만났다. 지난해 추위 속에서 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밉상이었던 만주바람꽃이 노오란 꽃술을 가득 품고 빙그레 웃고 있다.


제법 긴 시간을 숲에서 보냈다. 여느 꽃나들이와는 달리 북적대는 사람도 만나지 않고 편안하고 행복한 꽃과의 눈맞춤을 했다.


복수초

복수초

노루귀

노루귀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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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0일


시간이 겹으로 쌓이는 동안 수 백년을 한 자리에 살았다. 곁을 내 주었던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버거웠지만 여전히 대를 이어오는 그들이 있어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음을 안다.

정월 대보름 어떤이가 두손 모아 합장하고 간절한 소망을 담은 꼬까신을 올려 놓았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한해를 살아가는 동안 이 순간만큼 떨리는 가슴일 때가 없다. 그 꼬까신 위에 살포시 상서로운 봄 눈이 내렸다. 하늘의 마음이 꼬까신을 놓아둔 이의 마음에 응답하는 일이라 믿는다.

3월 10일 출근길 그 나무 앞에 멈추어 꼬까신에 오랫동안 눈맞춤 하며 간절함을 담았다.

1980. 5.18, 1987. 6.10, 2017. 3. 10 
내 눈으로 지켜본 역사의 그날이다. 살아 생전 오늘과 같은 날이 또 올까 싶을 정도로 의미가 크고 깊고 넓다. 고비마다 내딛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닿아 만들어낸 일이기에 오늘을 기억한다.

이제 다른 출발이기에 지금까지 왔듯 그렇게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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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설春雪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雨水節(우수절) 들어
바로 초하로 아츰,

새삼스레 눈이 덮힌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어름 글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롬 절로
향긔롭어라.

웅숭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끔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 순 돋고
옴짓 아니긔던
고기입이 오믈거리는,

꽃 피기전 철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정지용의 시 '춘설'이다. 

조금 서둘러 나와 까치소리에 눈내리는 아침을 맞는다. 소복하게 나리는 눈이 솜이불과도 같이 포근하다. 어찌 반갑지 않으리오. 이 귀한 풍경 보이려고 지난밤 반달은 그리 밝았나 보다. "꽃 피기전 철아닌 눈에/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며 노래한 시인의 심사를 알듯도 하다. 

하늘이 준 귀한 선물 '춘설春雪', 마음껏 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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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3-07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눈이 참 멋있게 쌓였네요^^: 마지막 겨울을 불태운 듯 합니다..

무진無盡 2017-03-08 22:02   좋아요 1 | URL
차분하게 인사하듯 눈이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