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내린다. 의식을 치루듯 언 손 호호 불며 눈을 뭉친다. 두 손으로 한번에 만들 수 있는 크기다. 더이상 욕심을 내지 않아야 한다.

"하늘만 보아도 
배고프지 않은
당신의 눈사람으로
눈을 맞으며 가겠습니다"

이해인 시인의 시 '첫 눈' 의 일부다. 함박눈 내리는 하늘을 보다가 이내 다소곳이 쌓인 땅 위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눈을 맞으러 가는 마음자리다.

형상을 만들었으나 이내 사라질 것임을 안다. 눈이 물로 건너갈 사이에 잠시 스스로와 눈맞춤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뭉쳐지는대로 만들고 손에 잡히는 나무 가지를 주어 표정을 끌어낸다. 군더더기 필요없는 가장 간소하게 드러내기다.

만들고나면 언제나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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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대한 예의다. 잘 뭉쳐지지 않은 눈을 만지는 손이 유난히 시리다. 감각이 둔해질 무렵에서야 겨우 만든 꼬마 눈사람에 광대나물 잎으로 모자를 씌웠다. 올 겨울을 함께할 마음 속 내 그리움이다.


눈이 왔으니 의식을 치룬다. 

비로소 첫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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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성산(甕城山 574m)에 올랐다. 손에 잡힐듯 무등산을 건너다 보이고 동복댐이 발 아래다. 백아산, 모후산, 만연산, 무등산, 병풍산, 회문산 등이 눈 앞에 펼쳐진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곳곳에 시야가 트여 답답하지는 않다.


옹성산은 항아리를 엎어놓은 듯한 바위가 여러 개 있어 옹성산이라 하였다. 그 품 속에 입암산성, 금성산성과 함께 전남의 3대 산성으로 불리는 철옹산성(전라남도 기념물 제195호)이 있다.


가을 하늘은 푸르고 나뭇잎들은 붉어진다. 보고 싶은 것 보았으니 만족한 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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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월時越로 이해한다.
시월十月의 첫날이다. 十月로 쓰고도 시월時越로 이해하고자 한다. 여름과 겨울, 뜨겁고 차가움 사이의 시간이다. 그로인해 더 민감해지는 마음의 깃 때문에 시간을 초월해버리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시월十月에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나와 다른 나 같은 관계와 사이, 틈에 주목한다. 그 안에서 무엇을 만나 어떤 향기를 담을지는 구월九月을 살아오며 이미 정해졌으리라.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기를 소망하기에 딱히 무엇이 달라지길 바라는 것은 없다. 그날이 그날이지만 한순간도 같은 때가 없는 시간, 하여 시월時越이 필요한 이유다.

더없이 맑고, 한없이 깊고, 무엇보다 가벼운 시월의 시간과 마주한다. 

十月로 쓰고도 시월時越로 이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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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베어낸 잔디 함줌한큼 가벼워졌다. 어쩌면 이 한줌정도 무게를 덜어내고자 새벽길을 나서서 6시간 동안 그곳에 머무른 것은 아닌가 싶다.


개운하다. 자란 잔디를 벗어버린 묘역도 단정해진 모역을 바라보는 어미의 눈도 그 어미를 등 너머에서 엿보는 지식의 마음자리도 다르지 않다. 한줌 덜어낸 마음의 무게보다 백배는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이제 다시 내 자리로 간다.


겨우 할 일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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