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첫사랑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담아 퍼부어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트린다

*고재종의 시 '첫사랑'이다. 한겨울 나무는 겨울눈을 준비하며 속으로는 제 몸을 온기로 달구고 있다. 봄날의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트리기 위해서. 사람들의 애쓰며 사는 오늘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곧 꽃 필 때가 가까이 온 것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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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을 아시는가 이것은 나락도 다 거두어 갈무리하고 고추도 말려서 장에 내고 참깨도 털고 겨우 한가해지기 시작하던 늦가을 어느날 농사꾼 아우가 무심코 한 말이다 어디 버릴 것이 있겠는가 열매 살려내는 햇볕, 그걸 버린다는 말씀이 당키나 한가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은 끊임없이 무언갈 자꾸 살려내고 싶다는 말이다 모든게 다 쓸모가 있다 버릴 것이 없다 아 그러나 나는 버린다는 말씀을 비워낸다는 말씀을 겁도 없이 지껄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아니다 욕심도 쓸모가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마음으로 보면 쓸모가 있다 세상엔 지금 햇볕이 지천으로 놀고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뜻을 아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다 사람아 사람아 젖어있는 사람들아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라 햇볕에 내어 말려 쓰거라 끊임없이 살려내거라 놀고 있는 햇볕이 스스로 제가 아깝다 아깝다 한다

*정진규의 시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다. 북쪽을 등지고 볕바리기를 한다. 차가운 겨울날 볕좋은 오후에 잠깐의 여유를 누리는 방법 중 하나다. 품은 온기를 안고 일어서며 다시 읽는다.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은 끊임없이 무언갈 자꾸 살려내고 싶다는 말이다" 나는 무엇을 살려내고 싶은 것일까.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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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 반가운 달이 반긴다. 더하거나 빼거나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달이다. 품을 키워가는 달이 딱 생각하는 그 만큼 부풀어 올랐다. 

초엿새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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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넘어짐에 대하여

나는 넘어질 때마다 꼭 물 위에 넘어진다
나는 일어설 때마다 꼭 물을 짚고 일어선다
더 이상 검은 물속 깊이 빠지지 않기 위하여
잔잔한 물결
때로는 거친 삼각파도를 짚고 일어선다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할 때만 꼭 넘어진다
오히려 넘어지고 있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넘어져도 좋다고 생각하면 넘어지지 않고
천천히 제비꽃이 핀 강둑을 걸어간다

어떤 때는 물을 짚고 일어서다가
그만 물속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예 물속으로 힘차게 걸어간다
수련이 손을 뻗으면 수련의 손을 잡고
물고기들이 앞장서면 푸른 물고기의 길을 따라간다

아직도 넘어질 일과
일어설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일으켜세우기 위해 나를 넘어뜨리고
넘어뜨리기 위해 다시 일으켜세운다 할지라도

*정호승의 '넘어짐에 대하여'다. 사람과 세상 그보다는 먼저 스스로를 바라보는 중심에 무엇을 두어야할까.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태도의 문제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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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사랑 농사

가을엔 다른 거 말고
가슴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다
마음이나 한 마지기 장만하자
온종일 물꼬 앞에 앉아 물을 대 듯
맑은 햇빛 저 끝 고랑까지 채우고
평생에 한 번 심었다 거둔다는
사랑이나 푸짐하게 심어 가꾸자
참새들이 입방아를 찧고 가면 좀 어떠냐
그 바람에 우리들 사랑은 톡톡 여물어
껍질도 벗고 흰쌀 같은 알을 거둘 텐데
허수아비 세워 놓고 보내 버린 세월이
눈밑에 몰래몰래 잔주름으로 첩첩이 쌓여
이제 거울 속에 앉아 흉한 세월을 고치 듯
늦갈이 하는 농부처럼 가슴밭을 일구어
마음의 이랑마다 사랑이나 심어 가꾸자
포근한 땅속 같은 마음 한 자리 골라
따로 심는 계절도 없이 묻어만 놓으면
봄 가을 여름은 말할 나위 없고
눈 뿌리는 한겨울에도 잘만 자라느니
가을엔 다른 거 말고
가슴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다
마음이나 한 마지기 장만하자

*임찬일의 시집 '못다 한 말 있네'에 있는 '사랑 농사'다. 
가슴에 불을 지르듯 확 뿜어내는 '전라도 단풍'이라는 시를 쓴 시인이다. 붉게 물든 단풍도 다 떨어진 때 마음깃을 여미듯 넉넉한 마음 한 마지기 장만하자.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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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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