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람꽃 2
일찍 피어 가슴에 꽃마음을 불러오는 꽃이다. 화려한 꽃술과 꽃잎 이를 받쳐주는 꽃받침잎이 서로 어울려 화사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추운데 꽃이 어딧어? 라는 지청구를 듣는 것 치고는 이렇게 이쁜 꽃을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때론 분에 넘치는 순간을 마주한다.


꽃 피어 사람을 부르는데 마침 귀한 눈까지 내려 꽃을 보고자 하는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먼길을 나섰지만 거리와는 상관없다는듯 산에 쌓인 눈의 양에 주목하면서 도착한 곳엔 기다리던 모습 그대로 눈 속에 꽃이 피어있다.


변산바람꽃, 
눈 속에서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기꺼이 반겨준다. 올해는 복 받은 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책을 좋아하고 또한 술을 좋아한다. 다만 땅이 궁벽하고 해가 흉년이어서 빌리고 사려해도 취할 곳이 없다. 한창 무르익은 봄볕이 사람을 훈훈하게 하니, 다만 빈 바라지 앞에서 저절로 취하게 되는 듯하다. 마침 내가 술 한 단지를 받은 것과 같이 시여취詩餘醉 일부를 빌릴 수 있게 되었다. 이상하다! 먹墨은 누룩이 아니고, 책에는 술그릇이 담겨 있지 않은데 글이 어찌 나를 취하게 할 수 있겠는가? 장차 단지를 덮게 되고 말 것이 아닌가! 그런데 글을 읽고 또 다시 읽어, 읽기를 3일 동안 오래했더니, 꽃이 눈에서 생겨나고 향기가 입에서 풍겨 나와, 위장 속에 있는 비릿한 피를 맑게하고 마음 속의 쌓인 때를 씻어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즐겁게 하고 몸을 편안하게 하여, 자신도 모르게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들어가게 한다.

아! 이처럼 취하는 즐거움은 마땅히 문장에 깃들어야 할 것이다. 무릇 사람이 취하는 것은 취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는 것이요. 굳이 술을 마신 다음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붉고 푸른 것이 휘황찬란하면 눈이 꽃과 버들에 취할 것이요, 분과 먹대로 흥겹게 노닐면 마음이 혹 요염한 여자에게 취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이 달게 취하여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것이 어찌 술 일석과 오두보다 못하겠는가? 읽어서 그 묘처를 능히 터득하는 것은 그 맛의 깊음을 사랑하는 것이요. 읊조리고 영탄하며 차마 그만 두지 못하는 것은, 취하여 머리를 적시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때떄로 혹 운자를 따서 그 곡조에 따르는 것은 취함이 극에 달해 게워내는 것이고, 깨끗하게 잘 베껴서 상자에 담아두는 것은 장차 도연명의 수수밭을 삼으려는 것과 같다. 나는 모르겠노라. 이것이 글인가? 술인가? 지금 세상에 또한 누가 능히 알겠는가? 

*이옥(李鈺, 1760~1812)의 글 묵취향서墨醉香序이다. 명나라 반유룡이 편찬했다는 사선집詞選集을 읽고 난 후에 붙인 서문이라고 한다. 이옥의 독서론과 문장론에 대해 채운의 책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다'의 '취하고 토하라'는 쳅터에 담긴 글이다.

몇 번이고 읽기를 반복하고 있다. 글 맛에 이끌려 머물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취한다는 것이 담고 있는 의미를 곱씹어 보기 위함이다. 책을 손에서 놓지는 않지만 딱히 나아지는 것도 없고 술은 취하지 못하고, 겨우 꽃에 취해 몇해를 건너왔다. 그것도 경험이라고 '취하고 토한다'는 말의 의미를 짐작케는 하니 귀한 경험으로 여긴다.

그동안 책에 취하였고 요사이 꽃을 핑개로 사람에 취하고 있으니 다음에 오는 것은 무엇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무 위에 글을 옮기고도 한참을 기다려 칼을 들었다. 머릿 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완성되어야만 비로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

폴 고갱의 말이다. 의미는 짐작하지만 그 해석은 또한 내 마음인지라 오독誤讀 하기 마련이다.

대상에 집중하기 위해 온갖 방해요소를 제거하는 방법 중 하나로 눈을 감는 것이다. 숲에 들어 숲과 하나되기 위해, 음악의 리듬에 집중하기 위해, 관현악의 한 악기의 소리만을 따라가기 위해, 그리움에 온전히 젖어들기 위해?. 눈을 감는 이유야 갖가지겠지만 그 안에는 몰두에 있다.

칼과 망치가 만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_읽는_하루

비가 와도 젖은 자는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 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오규원의 시 '비가 와도 젖은 자는'이다. 궂은 날이라지만 그 비로 인해 다음을 희망으로 만난다. 무엇에든 온전히 젖은 이는 더이상 젖지 않고 다음으로 건너갈 수 있다.
오규원(1941~2007) 시인을 2월 한달 네편의 시로 만났다. 처음 만나 오랫동안 기억될 시인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변산바람꽃1'
복수초로 시작된 새 봄의 꽃앓이가 첫번째 절정에 이르른 때에 만나는 꽃이다. 봄볕이 그러하듯 화사하기 그지없이 피는 꽃이기에 가히 봄바람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꽃을 보고자하는 이들을 먼 길 나서게하는 꽃이다.


하얀 꽃받침이 떠받치고 있는 꽃자루 안에는 가운데 암술과 연녹색을 띤 노란색 꽃이 있다. 이 오묘한 조화가 꽃의 존재 자체를 더 돋보이게 한다.


바람꽃은 바람이 잘 부는 곳에 자라는 들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변산바람꽃은 변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은 이름으로 변산 이외에도 불갑산, 무등산, 함평, 여수, 순천, 남해안 바닷가와 한라산에도 자라고 있다.


바람꽃과 분류체계가 다르면서도 바람꽃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종류로는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만주바람꽃, 매화바람꽃 등이 있지만 종류가 다르다. 모두 꽃쟁이들의 마음에 꽃바람들게 하는 꽃들이다.


긴겨울 꽃을 기다리게했던 탓일까 '덧없는 사랑',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