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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 26일, 9월 1, 2일 마포에 갑니다. 일군(一群)의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듣는 모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는 성경 말씀대로 나 스스로 문을 두드렸고 청강생으로 접수한 사람의 포기에 힘입어 극적으로 기회를 얻었지요.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가고 싶은 곳은 또는 갈 곳은 많은 사람이 부리는 억지 같지만 다행인 것은 물론이지요. 일정도 모른 채 문을 두드렸는데 다행히 모임 7일전이었던 것도 극적이지요. 8월 22일부터 8주에 걸쳐 매주 월요일에 만나는 고척동 강의 듣기 모임도 마지막 순서인 서른 번째로 기회를 얻었지요. 운이 좋은 것인지, 아슬아슬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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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 있는 꽃을 잠깐 보았는데 벌써 꽃이 떨어지고 있다.”는 뜻의 ‘재견개화우낙낙(纔見開花又落落)’이란 구절을 송재학 시인의 산문집 ‘풍경의 비밀‘에서 읽는다.(纔: 겨우 재.. 시인은 이 시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는다.) “앉았다 일어섰을 뿐인데/ 두근거리며 몸을 섞던 꽃들/ 맘껏 벌어져 사태 지고/ 잠결에 잠시 돌아누웠을 뿐인데/ 소금 베개에 묻어둔 봄 맘을 훔친/ 희디흰 꽃들 다 져버리겠네...”란 정끝별 시인의 ’늦도록 끝‘의 정조(情調)와 통하는 시이다. 조용미 시인의 “..별이 스러지듯 꽃들도 순식간에 사라지니까요..”란 구절(’하늘의 무늬‘)도 유사한 분위기로 읽힌다. 번득이는 삶의 순간들을 포착하는 시인들의 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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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혜옹주‘를 이야기하는 시간에 나는 그분은 고종과 귀인(貴人) 사이에서 태어난 분이지요?란 말을 했다.(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분.) 나는 후궁이란 말이 싫다. 주궁(主宮) 뒤편에 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어 그렇고, 종1품을 의미하는 의젓한 귀인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귀인은 따로 있다. 귀인(貴人)이라는 같은 단어를 쓰지만 부족하거나 넘치는 기운을 바르게 해 나를 완성시켜주는, 명리학이 말하는 소중한 분을 의미한다. 나는 귀(歸)in이란 말도 쓴다. 귀납법은 induction이란 의미이다.


귀(歸)in과 함께 연(演)de라는 말도 쓴다. 연역법은 deduction이란 의미이다. 한 유명 문학평론가가 환원(reduction)을 연역(deduction)으로 읽은 사례가 있다. 이로 인해 이 분은 바슐라르의 감싸기란 개념을 이야기하며 감싸는 이론과 감싸이는 이론 사이에 단절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전자가 후자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확장이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귀납에 의해 이론을 수립하는데 관찰해야 할 대상은 무한이기에 즉 언제까지 계속 관찰을 할 수는 없기에 귀납을 넘어 연역을 통해 관찰에서 제외된 대상을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구라 기조의 ’새로 읽는 논어‘에 의하면 귀납은 이런저런 시행착오들을 되풀이하며 도/道를 향해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고, 연역은 상명하달하는 방식이다. 공자가 연역적인 방식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조의 결론이다. 공자는 귀납적, 소인은 연역적이란 것도 그렇다. 어떻든 오독 사례가 있기에 이런 편법 조어와 암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덕혜옹주‘를 감상하러 가야겠다. 귀인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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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을 관람하고 왔다.(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국립기관으로는 처음 여는 것이라고 하니 의미가 더 크다 하겠다. 그런 반면 이제야, 라며 푸대접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정확하게 말해 나의 경우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관람을 마쳤다고 해야 옳다. 물론 주최측의 기획의도에 따라 도슨트의 해설이 맞추어졌을 것이고 그 도슨트의 해설에 맞추어 관람자들의 사유의 길이 유도되는 것은 유별난 일은 아니다. 한정된 시간 때문에, 그리고 관람자들의 부족한 지식으로 인해 도슨트의 해설 이후 각자 돌아가 이중섭 화가의 그림과 삶에 대해 퍼즐을 짜맞추는 것에 맞먹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해는 이중섭 탄생 100년이 되는 해이다. 가난, 가족과의 이별, 사기(詐欺)를 당한 뒤 맞은 파탄, 식욕부진과 우울증, 분열증, 간염, 정신병원행 등으로 얼룩진 그의 삶에 유일하게 희망적이고 밝았던 시기는 통영 시절이었다. 이 시절 그가 그린 소는 참 역동적이었다. 반면 통영 이후 대구에서 그린 소는 피를 흘리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그가 맞은 시기에 따라 소도 얼마나 달랐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은지(銀紙)에 그린 이중섭의 그림(은지화)이 남다른(?)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이다.(은박지에 철필 같은 것을 꾹꾹 눌러 그림을 그리고 채색까지 한 그림) 그것은 화가 생존 시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형편이 좋아지면 은지화 기법으로 벽화를 그려보고 싶다던 이중섭의 바람을 이중섭 백년의 신화라는 타이틀에 따라 그의 작품을 알리는 기획자들이 컴퓨터 작업으로 대형 벽화에 그림을 그린 것처럼 배려해 만족시킨 것이다.


신화화되었다는 이유로 이중섭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가 대구 시절 지신의 그림을 정상적인 화풍으로 여기지 않는 정신적 폭력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다. 신화화의 장막을 걷어내고 보아도 이중섭은 충분히 뛰어난 역량을 앞서서 보여준 화가라 해야 한다. 이중섭은 민족을 상징하는 소를 거침 없이 그렸는데 그것은 민족적 요소와 독창성의 결합이라 할 만하다.


여러 작품들 가운데 특별히 내 눈길을 끈 작품은 ‘돌아오지 않는 강‘이란 작품이다. 오른쪽에 창틀에 몸을 기대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남자가 그려져 있고, 왼쪽에는 등을 돌린 채 무언가를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더 근사(近似)하게 말하면 오른쪽의 남자와 왼쪽의 여자 사이에 벽이라도 놓여져 있는 듯 하다. 여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 이중섭의 삶을 고려하면 그림의 여인은 어머니일 수도 있고 아내일 수도 있다.


이 그림을 보고 기형도(1960 - 1989) 시인의 ’엄마 걱정‘이란 시를 떠올렸다. “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유년의 윗목”


통하는 부분이 많은 그림과 시이다. 이중섭의 삶과 그림을 연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삶과 그림을 나누어 보고 싶다던 내 생각은 잘못이라 해야 한다.) 문학적 관점에서의 이중섭 강의(권영민 교수), 심리학 관점에서의 이중섭 강의(우종민)를 들을 기회를 놓쳤고 이제 남은 것은 미술사 관점에서의 이중섭 강의(김현숙)이다. 일찍 알았다면, 그리고 현실적으로 서로 다른 강의를 듣기 위해 세 번이나 그림을 보러 가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기에 만일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어떤 것을 골랐을까?


심리학 강의를 골랐겠지만 관건은 그를 이해하는 데에 있지 그를 분석하고 재단(裁斷)하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 번 읽은 저자이기에(믿을 수 있기에: ‘미술 전시장 가는 길‘, ’예술가로 산다는 것‘) 박영택 교수의 ’그림으로 삶을 완성한 화가 이중섭‘을 읽어야겠다. 대구 시절 절친했던 시인 구상(1919 - 2004)의 도움으로 전시회를 열었으나 비참한 결과를 맞보고 “예술을 한답시고 공밥을 얻어먹고” 무슨 대단한 예술가가 된 것처럼 세상을 속였다고 자책하며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적인 질환에 시달렸지만 줄곧 희망을 생각했던 화가 이중섭... 비참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은 사실보다 추사 김정희의 영향을 받아 소 그림의 터치를 추사체처럼 처리한 역동성과 연계성을 생각하도록 하자. 그래야 덜 우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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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 증자(曾子)가 한 이문회우 이우보인(以文會友 以友輔仁: 글 또는 문화로써 벗을 모으고 벗과 더불어 사랑의 공동체를 키워나간다)이라는 말. 이는 군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군자란 말이 걸릴 수 있지만 군자는 대의(大義)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일본의 오구라 기조는 군자는 특정 형태 또는 용도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해석되어온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을 군자는 중요한 일이든 하찮은 일이든 구별 없이 모든 일에서 인(仁)이라는 ‘사이의 생명’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최근에는 ‘군자를 버린 논어’라는 책도 나와 관심을 끈다. 공자는 스스로를 성인(聖人)이나 인자(仁者)가 되기 위해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어떻든 이문회우 이우보인이란 말은 참 아름답다. 비현실적이라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 군자의 의미를 유연하게 해석한다면 바르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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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8-17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증자는 많이 만나게 되지 않는데 ㅡ 정말 다양하게도 읽으십니다~^^ 잘 듣고 가요!^^

벤투의스케치북 2016-08-17 00:34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도움이 되셨다면 좋겠습니다. 다양하기보다 두서 없이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장소] 2016-08-17 06:18   좋아요 0 | URL
두서없음 이 다양함일지 ..모르겠네요 .^^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6-08-17 07:19   좋아요 1 | URL
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장소] 2016-08-17 07:26   좋아요 0 | URL
저도 저도~ 감 ,사드릴....게요!!^^ㅋㅋㅋ

벤투의스케치북 2016-08-17 07:30   좋아요 0 | URL
네? ㅎㅎ...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그장소] 2016-08-17 08:11   좋아요 0 | URL
벤투의 스케치북님도요!^^

벤투의스케치북 2016-08-17 08:34   좋아요 1 | URL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