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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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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는 인상주의의 거장들이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사이이다. 그 둘의 관계를 해명한 김광우의 마네와 모네는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의 한 권이다. 저자 김광우는 철학 및 현대 미술, 비평을 전공한 분이다. 저자는 예술가의 창조성은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전제한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 중 하나는 방대한 자료들을 실었다는 데 있다. 그래야 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1832 1883)올랭피아풀밭에서의 오찬으로 유명하고 클로드 모네(1840 1926)는 수련(睡蓮) 연작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모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마네는 인물화를 주로 그렸고 모네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마네는 모더니즘을 연 사람이고 모네는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다. 마네와 모네는 일본 판화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응용했을 뿐 아니라 일본 판화를 그림의 배경으로 장식했다.(46 페이지)

 

모네와 마네는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다.(171 페이지) 마네는 모네를 끝없이 도왔다. 모네는 마네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했다.(192 페이지) 모네는 마네 사후 마네를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도록 적극 나섰다.(267 페이지) 모네는 마네의 작품이 루브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268 페이지) 둘의 관계는 고흐와 고갱의 그것과 달리 바람직한 것이었다.

 

인상주의란 말이 처음 생긴 것은 모네의 인상, 일출이란 그림을 본 루이 루르아에 의해서이다. 물론 루르아는 이 그림을 보고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쉽게 그렸는가라는 경멸조의 말을 했다.(166 페이지) 모네는 빛이 일기(日氣) 변화에 따라 사물에 일으키는 변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영롱한 색조로 나타낼 줄 알았으며 빛이 사물에 닿아 분산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순간적인 현상을 빠른 붓질로 캔버스에 담았다.(15 페이지)

 

모네가 항상 같은 시간에만 그림을 그린 것을 쿠르베가 기이하게 여긴 것은 유명하다. 모네는 대상 하나하나에 대한 사실주의 묘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빛이 시시각각 대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97 페이지) 모네는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그는 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247 페이지)

 

마네의 불로뉴 해변1868년 작품으로 처음으로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마네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묘사하지 않고 색을 적당히 쓱쓱 문지르는 것으로 처리했다. 이런 화법이 오히려 과학적인데 그것은 시선이 닿는 중심지가 아닌 주변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132 페이지)

 

마네는 많은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시인 보들레르이다. 마네는 보들레르의 시신이 안장(安葬)되는 모습을 장례식이란 제목으로 그렸다. 한편 시인 말라르메는 마네의 미학적 대변인으로 평가된다. 말라르메는 마네의 10년 연하이다. 보들레르는 마네의 11년 연상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마네가 그린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을 보고 위대한 두 영혼 사이의 애정을 표현하는 작품이라 극찬했다.(189 페이지) 모네가 그린 템스 강 풍경 시리즈 석 점은 스케치처럼 그린 인상, 일출에 비해 완성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받는다.(153 페이지) 1872년 모네는 작품의 질과 값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157 페이지) 이런 점은 저자의 의도(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하려는..)에 부합한다.

 

에밀 졸라의 나나가 출간되기 전 마네가 나나를 그렸다.(215 페이지) 마네는 평생 일곱 개의 화실을 전전했다.(223 페이지)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우상으로 여겼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는 마네에게 영향을 주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는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분석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52세까지, 모네는 86세까지 살았다. 마네는 말년을 투병 속에서 보냈다. 마네는 현대 감각을 일깨워주고 떠난 화가로 평가받는다. 마네는 현대적 감각으로 그림의 주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며 우발적인 변화라도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보들레르의 권유를 소중하게 받아들인 화가이다.(244 페이지)

 

반면 모네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모네는 모파상과 친하게 지냈다. 같은 주제를 연속적으로 그리는 연작은 오늘날 많은 화가가 그리지만 모네가 건초더미 시리즈를 그릴 때만 해도 과거에 없던 획기적인 방법이었다.(278 페이지) 물론 모네의 가장 유명한 연작은 수련(睡蓮)‘ 연작이다.

 

프랑스 철학자, 과학자,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가 꿈꿀 권리에서 다룬 모네론()은 유명하다. 모네는 지베르니(Giverny)를 유명하게 했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약 75km 떨어진 곳으로 모네가 거주하며 작업한 마을이다. 모네는 종일 수련을 그리고 그렸다.

 

당시 모네는 아들 장을 먼저 떠나 보낸 70대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1차 대전 발발로 작업에 대한 도취는 중단되었다.(305 페이지) 이 장면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마의 산을 내려오는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를 그린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연상하게 한다.

 

모네는 오랑주리의 타원형 전시실에 맞는 패널화를 그리려 했지만 백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져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 오랑주리는 식물원이었다가 미술관이 된 곳이다.(참고로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모네, 하면 가스통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클로드 모네처럼 물가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충분한 저장을 해두고 강가에 피는 꽃들의 짧고 격렬한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네도 거장이었지만 모네를 보며 거장이란 말을 더 떠올리는 것은 작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긴 구십에 가까운 나이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간 삶 때문이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은 전기(傳記) 위주의 평이한 글이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저자의 칸딘스키와 클레’, ‘고흐와 고갱’, ‘뭉크, 쉴레, 클림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등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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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한 시선집 - 망향에 서정을 노래하다
연규석 지음 / 고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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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향토문학 발굴위원회에서 펴낸 허목 한시 전집이다. ‘망향에 서정을 노래하다란 부제를 가졌다. 1부 한시(漢詩), 2부 잡학(雜學), 3부 평설(評說)로 구성되었다. 미수 허목 선생은 1595년에 서울(한양 창선방)에서 태어나 1682년 연천에서 타계한 연천의 인물이다. 이 책을 번역, 출판하는 데 시인, 국문학자(교수), 소설가, 평론가, 수필가, 시조시인 등 전문가들이 감수위원으로 참여했다


남쪽 사비수(泗沘水)를 유람한 시가 먼저 등장한다. 사비(泗沘)는 부여이고, 사비수(泗沘水)는 부여의 강이다. 선생은 바윗돌을 불변하는 것으로 보았다. 천승(千乘)이란 말이 나온다. 전시(戰時)에 천() ()의 병거(兵車)를 동원할 수 있다는 뜻으로 제후(諸侯)를 이르는 말이다. 만승(萬乘)은 천자(天子)를 의미한다. 선생은 넓고 큰 성인 교훈 너무도 좋아하여 평생토록 공자의 글을 읽었다고 말한다.(설독개공자; 說讀皆孔子


억편(抑篇)에서 경계한 것 밤낮으로 되뇌었다고 한다. 억편은 위나라의 무공이 90세에 지어 자계(自戒)란 작품이라 한다. 그래서였는지 87세의 선생은 지금의 나는 구십 된 늙은이란 말을 했다.(금아구십로; 今我九十老). 선생은 인정은 본래가 먼 가지로 변하는 것 세상일 날이 갈수록 복잡해진다 친숙한 교분도 때로는 호월처럼 멀어지니 한결같이 보기가 매우 어렵네란 말을 했다. 호월이란 중국 대륙 북쪽의 호족과 남쪽의 월족을 이르는 말이다


선생은 산 밖의 일이야 알 까닭 없고 갈필에 먹 찍어 과두체를 쓰노라란 말을 했다. 갈필(葛筆)은 칡뿌리를 잘라 끝을 두드리어 붓 대신 쓰는 물건이다. 과두(蝌蚪)는 올챙이를 의미한다. 올챙이 모양의 허목 특유의 과두체(蝌蚪體)인 미수전(眉叟篆)은 후학들에 의해 은나라 솥과 주나라 그릇의 명문과 같은 기이한 옛 글이라는 평을 받았다. 선생은 고요한 가운데서 물리(物理)를 관찰하니 자신이 거하는 방도 하나의 건곤(乾坤)일세란 말을 했다. 건곤이란 하늘과 땅을 이르는 말이다


본문에 통천(通川)이란 지명이 나온다. 북(北) 강원도 통천으로 주상절리인 총석정(叢石亭)이 유명한 곳이다. 통천은 정축년(丁丑年) 1637년 정월 병자호란을 피해 강원도 동해로 피난하면 쓴 시에 나오는 지명이다.(병자호란은 병자년에 일어나 이듬해인 정축년에 끝난 전쟁이다.) 선생은 난리가 있은 이후부터는 일마다 괴로움이 생겨난다 슬프다 오랑캐의 난리 때문에 애처롭게 가시 숲을 숨어 다녔네라고 말한다


선생은 행실을 닦음은 수관에서 비롯된다는 말을 한다.(수행자수관; 修行自漱盥) ()는 양치질 할 수이고 관()은 씻을 관이다. 선생은 묵매(墨梅)를 이야기한다. 묵매는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를 소재로 수묵으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웅연(熊淵)에서 뱃놀이하고 영숙(永叔)에게 보여주다란 글이 있다. 웅연은 연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곳으로 웅연(熊淵) 계람(繫纜)의 그 웅연이다. 범주(泛舟)는 배를 띄우는 것을 말한다. 영숙은 권수(權修)의 자()미수의 종형인 허후(許厚)의 문하에서 배운 사람이다


본문에 폐소(弊梳)라는 말이 나온다. 낡은 얼레빗을 말한다. 선생은 피난 길에 만권 서적 읽었건만 나라에 도움 없고 외딴 지역 몸 피하니 부끄러움 많구려,...주머니 속 한 빗을 오히려 간직했네 아침에 헝클어진 머리 감아 빗고서 창해에 다다르니 두 눈이 밝았어라.’란 말을 한다. 본문에 기려(羈旅)란 말이 나온다. 기려란 객지에 머무는 것, 또는 그런 나그네를 말한다


1627년 정묘호란을 피해 북 강원도 평강으로 피난했던 선생은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영동을 거쳐 의령까지 내려가 의령, 창원 등에서 시간을 보냈다. 선생은 이 시기를 기려(羈旅)10년이라 표현한 바 있다.(; 굴레 기) 본문에 의춘(宜春)이란 말이 나온다. 의령의 옛 이름이다. 선생은 문장은 애초부터 궁할수록 기이했나니 두보 이백 멀리 좇아 광염을 펼치리라란 말을 한다.(문장고래궁역기; 文章古來窮亦奇 원추보백양광염; 遠追甫白揚光焰


선생은 늙은 것이 예만 배우고 세상일 몰라 예 말할 때마다 많은 사람 기롱하네란 말을 했다.(노인학례불학무; 老人學禮不學務 담례매피다인휴; 談禮每被多人 咻..; 떠들 휴) 선생은 일식(日蝕)을 재앙이라 판단한다. 선생은 감악곡(紺岳谷)을 이야기한다. 감악산 골짜기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 늙은 이는 연협(漣峽)에 살고 있다는 말을 한다. 연협은 연천 골짜기를 말한다


선생은 내가 그대와 65년간 인간의 객이 되었더니 베갯머리에 잠깐 봄 꿈을 꾼 것과 어떠하던가란 말을 한다. 정끝별 시인의 늦도록 봄이란 시를 연상하게 한다. “앉았다 일어섰을 뿐인데/ 두근거리며 몸을 섞던 꽃들/ 맘껏 벌어져 사태 지고/ 잠결에 잠시 돌아누웠을 뿐인데소금 베개에 묻어둔 봄 마음을 훔친/ 저 희디흰 꽃들 다 져버리겠네// 가다가 뒤돌아보았을 뿐인데// 흘러가는 꽃잎이라/ 제 그늘 만큼 봄날을 떼어가네// 늦도록 새하얀 저 꽃잎이/ 이리 물에 떠서 


선생은 자신의 가난을 부귀와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다.(부귀불이오기한; 富貴不易吾飢寒) 선생은 은거시(恩居詩)를 남겼다. 숙종으로부터 집을 하사받고 임금의 은혜 안에 거한다는 의미에서 시를 남긴 것이다. 선생은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 큰 병통은 망녕되이 엽등(躐等)하고 조장(助長)하여 빨리하려 함에 있으니 이는 사적인 뜻이 벌써 승()한 것인데 사가 앞서고서 학()을 이룰 수 있는 자는 없다고 말했다. 엽등은 등급을 걸러 뛰어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선생은 근세 학자의 폐단은 실천함은 부족하고 의견부터 내세우며 지나치게 과격하기까지 하여 경박하다고 말했다. 선생은 기()는 이()에서 나오고 이는 기에서 행하여진다고 말했다. 근본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쉬지도 않고 어그러지지도 않아 갔다가 다시 온다고 말했다. 드러난 것은 천지의 조화와 육성(育成)이요 사시(四時)가 차례로 교대하는 것이며 만물의 시작과 끝이요 인사(人事)의 성쇠인지라 심은 것을 북돋고 기울어진 것을 넘어뜨리기까지 흥하고 멸함이 모두 여기에 매여 있다. 이것은 한 번 가고 한 번은 오는 소장(消長)의 일정한 원칙이다.(236 페이지


소장은 쇠하여 사라짐과 성하여 자라남을 이르는 말이다. 선생은 이() 밖에 기()가 없고 기 밖에 이도 없다고 말했다. 선생은 육경(六經)의 글은 성인이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표준을 세우며 개물성무(開物成務)한 천지의 지극한 가르침이라 했다. 육경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예기(禮記), 악기(樂記), 춘추(春秋)를 이르는 말이다. 개물성무는 사람이 아직 알지 못했던 만물의 이치를 깨달아 세상의 일을 이룬다는 의미다


선생은 예송 논쟁(1659년 기해예송, 1674년 갑인예송)에서 남인의 인물로 참여한 인물이다. 참최(斬衰), 재최(齊衰)란 말이 나온다. 참은 마름질하지 않았다는 의미고 재는 꿰맸다는 의미다. 참최는 3년간, 재최는 1년간 상복을 입는 것이다. 효종 승하시 대비인 자의대비가 몇 년간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놓고 남인은 3, 서인은 1년을 주장했고(서인 승), 효종 비 인선왕후 장씨 승하시 남인은 1, 서인은 9개월을 주장했다.(남인 승


효종에 대하여 서인은 효종이 왕이지만 장자가 아니라는 점을 어필했고 남인은 효종이 차자이지만 왕이기에 적통을 이었다는 점을 어필했다. 남인의 3년설에 대립해 서인이 내세운 것은 기년설(朞年說)이다. 정권에서 소외된 남인이 군주의 대통을 강조하는 이론을 내세운 것은 왕권 강화를 통해 왕조 질서를 확립하고 벌열 세력을 억제해 일반 사대부의 기회 균등을 회복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선생은 청사열전(淸士列傳)을 저술했다. 청사는 청렴하고 결백한 선비를 이르는 말이다. 선생은 권람의 집 후조당(後凋堂)을 소개하며 자신을 경계하는 집이라고 플이했다. 후조는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야에서 나온 말이다. 가장 늦게 시든다는 의미이니 자신을 경계한다는 말이 타당하다 보인다. 비파는 늦게까지 푸름을 유지한다는 의미의 비파만취(枇杷晩翠)와 뜻이 통하는 말이겠다


선생은 허자(許磁)의 증손이며 백호 임제의 외손이다. 선생이 우의정에 대배(大拜; 의정 벼슬을 받음)된 것은 81세 때인 숙종 1년이다. 선생은 같은 해에 정3품 좨주(祭酒)도 역임했다. 선생은 1680년 경신대출척 때 삭탈관직당했다. 선생은 퇴계학파에 속한다. 퇴계학파는 영남학파와 근기학파로 나뉜다. 선생은 근기학파의 성립에 기초 역을 맡은 분이다


번암 채제공은 성호 이익의 묘갈명에서 우리의 학문은 원래 계통이 서 있다. 퇴계는 우리나라의 공자로서 그 도를 한강(寒岡)에게 전해주었고 한강은 그 도를 미수에게 전해주었는데 성호는 미수를 사숙(私淑)한 분으로서 미수를 통하여 퇴계의 학통에 이어졌다는 말을 했다. 선생이 한강을 만난 것은 부친의 임지를 따라 고령, 거창 등 영남 여러 고을을 왕래하면서 23세 때 그의 종형 관설공 허후(許厚)와 함께 성주로 찾아가서다


선생은 한강의 많은 제자 가운데 가장 후배로 한강 학문의 상속인이 되었다. 미강별곡이란 작품이 있다. 선생이 목민관으로서 삼척에서 약 2년간 근무하다가 돌아온 뒤 타계하고 9년이 지난 1691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嵋山面) 동이리(東梨里)에 미강서원(嵋江書院)이 세워졌다. 지난 2006년경 발견된 미강별곡은 1883년 고종 20년에 윤희배라는 사람이 미강서원 일대를 유람하면서 지은 국한문 혼용 가사문학 작품으로 추정된다


윤희배는 고종 20(1888) 선생을 문묘에 배향해 달라고 상소한 인물이다. 미강별곡은 선생을 '신야에 은거하던 이윤이 은나라 탕왕을 도와 하나라 걸왕을 축출하고, 위수에서 낚시하던 강태공이 주나라 무왕을 도와 은나라 폭군 주왕을 징벌한 공을 세웠듯 신야위수(莘野渭水)급의 혁명적 충신이라 노래하는 작품이다


미강별곡에는 미강팔경이 선정되어 있다. 십리창벽(十里蒼壁), 세우어정(細雨漁艇), 일대징담(一帶澄潭), 석양풍범(夕陽風帆), 아미반륜(峨嵋半輪), 구포홍금(鷗浦紅錦), 봉암천인(鳳巖千仞), 학정단하(鶴亭丹霞) 등이다. 선생의 집은 구루암에서 은거당으로 바뀌었다.(393 페이지) 은거당 뒤에 150평 가량의 십청원에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맥문동 등 열가지 사시사철 늘 푸른 나무가 있었다. 백졸장(百拙藏)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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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시간으로부터 - 발아래에 새겨진 수백만 년에 대하여
헬렌 고든 지음, 김정은 옮김 / 까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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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시간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미국 작가 존 맥피다. 그의 말을 가져다 제목에 쓴 헬렌 고든의 깊은 시간으로부터는 지질학자의 시간관을 반영한 제목이다. 지질학자들은 깊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깊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조금 다른 곳을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깊은 시간 속에서는 100만년전, 5000만년전, 5억년전에 일어난 일도 중요하다. 깊은 시간에서는 모든 것이 일시적이다. 뼈는 바위가 되고, 모래는 산이 되고, 대양은 도시가 된다.(22 페이지) 인간의 뇌가 과거를 자연스럽게 압축한다면 깊은 시간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 압축을 해체하는 일을 한다.(35 페이지) 


사물을 시간의 원근법으로 배치하는 지질학은 ‘인간 사고에 가장 독특하고 변혁적 기여를 하는 학문’(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표현)이다. 저자의 전공은 지질학이 아니다. 저자는 지질학 입문서들을 읽었고 퇴적학자, 층서학자, 고생물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발굴지와 노출된 절벽 면을 조사하는 답사에 참여했고 주변과 발 아래의 암석에 쓰여 있는 깊은 시간의 역사를 배웠다고 자신을 설명한다. 지질학적 기록은 필연적으로 복잡하고 불완전하다. 그래서 기록을 해독하려면 인간의 역사에 적용되는 것과 같은 해석학적 추론이 필요하다.(20 페이지) 


지질학자에게 필요한 것은 불완전하거나 사라졌거나 단편적인 자료의 조각들을 맞춰서 한 편의 이야기를 자아내는 능력, 상상력이다. 저자는 지질학자와 시인을 같은 차원으로 분류한다. 지질학자와 시인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들을 찾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저자에 의하면 약 1미터 두께의 런던 점토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려면 타임머신도 필요하지만 선사시대의 바다 밑바닥에 쌓이는 퇴적층을 수만년 동안 지치지 않고 촬영할 수 있는 엄청나게 강력한 저속 촬영 장비도 필요하다.(퇴적암은 암석의 작은 조각이나 생물의 잔해가 주로 물속에서 쌓이거나 바닷물의 증발과 같은 화학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암석이다.) 


영국의 지질학자 제임스 허턴(1726 - 1797)은 이런 말로 유명하다. “따라서 우리의 현재 조사의 결과는 시작의 흔적도, 끝의 전망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The result, therefore, of our present inquiry is, that we find no vestige of a beginning - no prospect of an end.)” 그런데 허턴의 반대자들은 허턴이 태초도 없었고 종말도 없으리라고 주장한 것처럼 그의 말을 왜곡했다. 허턴은 자신이 수집한 암석 표본을 하나님이 손수 쓴 하나님의 책이라고 불렀다. 허턴은 지질학적 변화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는 동일 과정설의 제창자다. 동일 과정설의 요지는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는 말이다. 허턴은 인간의 사고를 얕은 시간의 세계에서 깊은 시간의 세계로 넘어가도록 도왔다. 


허턴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대중화한 것이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다. 동일 과정설과 대비되는 것이 조르주 퀴비에의 격변설이다. 두 사람의 학설은 모두 어느 정도 옳다. 천천히 꾸준하게 일어나는 연속적인 과정 속에 한 지역이나 지구 전체에 재앙을 일으키는 대이변들이 간간이 한 번씩 끼어든다는 말이 가능한 것이다. 제임스 허턴이 알게 된 대로 암석은 지구의 역사책이지만 그 책은 많은 페이지들이 사라지고 훼손되고 뒤집히고 순서가 바뀌어 있다.(80 페이지) 중요한 것은 암석의 순서를 정하고 한 지역을 다른 지역과 연결하는 것이다. 층서학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층서표는 지질학자들의 주기율표 같은 것이다.


판구조론의 시작은 알프레트 베개너이다. 베게너의 학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는 그 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 이후 해저 확장이 발견되면서 베게너의 학설은 마침내 찬밥 신세를 면했다. 해저 확장은 맨틀의 뜨거운 물질이 바다 밑바닥에 놓인 두 개의 판 사이로 올라올 때 일어난다. 그러면 두판은 양쪽으로 벌어지고 판의 가장자리는 냉각된다. 이 발견으로 마침내 베개너의 학설에 부족했던 메커니즘이 생겼다. 이것이 바로 대륙 이동을 일으키는 동력이었다. 많은 판의 경계는 물속에 있고 지표면에서 뚜렷한 흔적을 볼 수 있는 장소는 매우 드물다. 


그런 장소 중 한 곳이 북아메리카판과 태평양판이 만나는 샌엔드레이어스 단층이다. 단층은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암석의 응력과 변형이 축척될 때 만들어진다. 암석은 움직이는 판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아 휘어지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 단층 파열이 일어나면 격렬하게 부서진다. 우리는 이것을 지진이라고 부른다. 샌앤드레이어스 단층에 항상 지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이 특별한 판의 경계 근처에서 살아가면서 감수해야 하는 결과 중 하나이다. 지질학자 해리 필링 레이드(H.F Reid)가 발표한 탄성 반발 이론(Elastic Rebound Theory)이 판 구조 연구의 토대 중 하나가 되었다. 샌엔드레이어스 단층은 주향 이동 단층(strike slip fault)이라고 알려진 단층이다. 


저자는 직접 샌엔드레이어스 단층을 찾아봐 지질학자처럼 경관의 공간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시간도 보내고 노력했다. 저자는 단층선 위로 자라는 푸릇푸릇한 식생은 판의 경계에 나타나는 경관 단절을 더 유순하게 보여주는 징후라고 말한다.(103 페이지) 두 개의 다른 세계, 두 개의 다른 시간이 이곳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두 경관이 서로 다르며 서로 다른 일을 겪었다는 것은 지질학자가 아니라도 알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북아메리카판에 있는 변성암은 진흙과 모래로 바다 밑바닥에 쌓인 후에 서서히 파묻혀서 열과 압력을 받다가 판의 힘에 의해 밀려 올라와 편암과 편마암으로 다시 지상에 나타났을 것이다. 


그 암석들 중에는 오래전에 백악기에 햇빛을 받으며 돌아다니던 공룡의 발 아래에 있던 암석도 있을 것이다. 태평양판의 암석은 더 젊고 잡다하다. 이 퇴적층은 대부분 산사태와 강물을 통해서 운반된 크고 작은 자갈과 모래들로 이루어져 있다. 파묻히지도 않았고 고결되거나 열에 의해 구워지거나 더 오래된 경관은 낡고 예스러운 특성이 생길 시간도 없었다. GPS 덕분에 우리는 판의 경계에서뿐 아니라 판의 내부에서도 암석의 변형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안다. 일부 과학자들은 판의 충돌로 인해 암석들이 부서지면서 방출된 중요한 영양소들이 캄브리아의 대폭발과 같은 생물 진화의 주요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의 오브리 저클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판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맨틀과 지각 사이에서 물질을 재활용할 방법이 없다면 탄소, 질소, 인, 산소처럼 생명에 중요한 원소들이 암석에 갇힌 채로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판구조라는 컨베이어 벨트는 탄소를 많이 포함한 암석을 맨틀 속으로 끌어당겨 녹임으로써 해로운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쌓이는 것을 방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판 구조의 도움으로 우리가 숨을 쉬는 셈이다. 


저자는 여자들은 대체로 지진을 신체 징후로 느끼고 남자들은 자신들의 조사(지진 예고)를 과학이라는 정식 장비로 치장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하며 그들이 만들어 보내는 X 파일은 지진보다는 그 편지를 쓴 사람에 대해서,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던 그들의 간절함에 대해서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늘날 진지한 과학자들에게 지진 예측은 아픈 손가락이라는 것이 저자의 기본 입장이다. 한스 요하임 마즈가 한 말이 생각난다. 바울이 베드로에게 한 말은 베드로보다 바울 자신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말해준다는 말이다. 


저자는 윌리엄 스미스의 지도에 근거해 영국 서부가 동부보다 더 오래된 땅이라고 말한다. 영국 남동부에서 출발해 북서쪽으로 이동해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까지 가면 이스트앵글리아의 가장 새로운 지층에서부터 하일랜드의 아주 오래된 변성암까지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하는 셈이 된다. 스미스의 지도는 산업혁명 기간 동안 영국의 과학과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그의 지도는 공장의 동력이 될 석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점점 커져가는 도시를 지탱할 암석과 점토를 어디에서 캐낼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또한 주석과 납과 구리 광산이 있을 만한 곳, 수로와 철도를 가장 쉽게 놓을 수 있는 자리도 나와 있었다. 그의 지도는 지식뿐만 아니라 돈을 벌 길도 제시해 주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지질학회 회원들을 포함한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에게 아무런 감사 표시도 하지 않고 그의 생각을 도용했다. 그렇게 그의 지도를 도용한 지도들이 만들어지면서 스미스는 지도 제작비용을 회수하지 못했고 결국 영국 고등 법원의 채무자 감옥에 수감되었다. 지질학회는 1831년이 되어서야 그의 업적을 인정하고 잉글랜드 지질학의 위대하고 독창적인 발견자로 승인하는 울러스턴 메달을 그에게 수여했다. 그리고 1832년에는 드디어 연 100파운드의 정부연금 형태로 금전적 보상도 했다. 


백악기는 층서에서 가장 긴 지질 시대로 약 8000만 년간 이어졌다. 백악기가 끝난 후로 지금까지 6500만 년이 흘렀으니 얼마나 긴 시간인 줄 알 수 있다. 오늘날 백악이 발견되는 지역의 물에는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코콜리스(cocolith; 원반 모양의 방해석 골격)라는 유기체 잔해가 가득하다. 백악(白堊)은 투수성(透水性)이 매우 좋아 식수원을 제공하는 거대한 대수층(帶水層)으로 작용한다. 백악 속에는 균열도 있어 그런 곳에서는 물이 백악을 통과하지 않고 균열을 따라 흘러간다. 


복합화산에서는 분출이 일어나는 위치가 화산 꼭대기인지 옆면인지를 화산학자들이 알 수 있다. 반면 칼데라에서는 대단히 다양한 위치에서 분출이 일어날 수 있다.(156 페이지) 화산이란 지표면 아래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교란이 격렬한 방식으로 지표에 표출되는 것이다. 고체인 암석이 녹아서 마그마가 생성되는 과정은 지하 50 ~ 200km 깊이에서 일어난다. 마그마는 주위의 고체 암석보다 가볍기 때문에 위로 올라간다. 캄피 플레그레이의 경우 지하 약 5km 깊이에 있는 거대한 마그마 챔버에서 일부 마그마가 약 3km 지점까지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162 페이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화산학, 더 일반적으로는 지질학에 변화가 일어났다. 거의 순수하게 관찰 위주의 과학이었던 지질학은 그 무렵 수학적 규칙을 찾고 모형을 만드는 더 정량적인 학문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분출은 지구의 지각이 늘어나고 파열될 때 일어난다. 마그마는 지표 쪽으로 이동하고 마그마가 들어갈 공간이 생기려면 지각은 팽창해야 한다. 고무줄을 상상해보자. 고무줄은 어느 정도까지는 잡아당길 수 있지만 어떤 한도를 넘으면 끊어진다. 지각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지각이 끊어지면 분출이 발생할 것이다. 


이탈리아 시민보호부에서는 캄피 플레그레이의 분출에 대해서 네 가지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다. 소형, 중형, 대형, 초대형으로 분리될 수 있는 폭발성 분출, 여러 개의 화구에서 일어나는 동시다발적 분출, 수증기가 일으키는 수성 분출, 지속적으로 용암이 흐르는 분류성 분출 등이다. 화산재는 보기에는 밀가루 같지만 기본적으로 암석이기 때문에 잘 털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기계나 전기 장치 속으로도 들어가는데 화산재가 많을 때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숨도 쉴 수 없다.(170 페이지) 화산쇄설류가 용암류보다 훨씬 위험하다. 용암은 일반적으로 느리게 움직인다. 물론 예외는 있다. 따라서 우리는 뛰어서 도망갈 수 있고 심지어 걸어서도 용암을 피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용암류가 마을과 항구를 피해서 흐르도록 유도할 수 있었다. 반면 화산쇄설류를 특정 방향으로 흐르도록 유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화산쇄설류는 섭씨 200 - 700도의 뜨거운 기체와 암석 입자(테프라; tephra)가 시속 96km에 달하는 속도로 움직이는 매우 위험한 흐름이다. 이보다 암석이 조금 더 적고 기체가 조금 더 많으면 화쇄난류(pyroclastic surge)라고 부른다.(170, 171 페이지)


저자의 표현은 유려한 문학적 표현으로 빛난다. 가령 다음의 문장들을 보라. "떨어진 화산재는 단단히 다져져서 바위가 되었고, 용암류는 굳어서 노두가 되었으며, 오래된 화산은 나무로 뒤덮인 언덕이 되었다. 그 후에 사람들은 기름진 화산 토양에 이끌려 이 칼데라에 정착했고 그 후손들은 화산재로 만들어진 암석을 가져다가 언덕 비탈길에 집을 짓고 아파트를 건설했다."(176 페이지) 


저자의 설명으로 듣는 화석 이야기도 새롭다. 화석이 될 확률이 극히 낮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동물은 몸이 부드러워 화석이 될 가능성이 낮고, 어떤 동물은 단순히 수 자체가 적고, 육상의 고지대에서는 침식이 잘 일어나기 때문에 동식물의 흔적이 잘 남지 않는다. 심해저에 기록된 것은 섭입에 의해 지워진다.(194 페이지) 하나의 생물이 화석이 되고 그 화석이 인간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통계적으로 있음직하지 않은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야 한다. 몸이 온전한 상태로 죽어야 하고 유난히 강한 폭풍처럼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서 충분히 두꺼운 퇴적층에 그 온전한 몸이 빨리 덮여야 하고 그 퇴적층이 암석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퇴적암에 지하 깊은 곳의 열과 압력이 가해져서 심한 변형이 일어나서도 안 된다. 그 후 지표로 올라와서 그 생물이 죽고 수백만년쯤 흐른 뒤에 다시 빛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공간적으로는 화석 채집가들이 자주 출몰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어야 하고 시간적으로는 깊은 시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좁디좁은 구간 사이에 벌어져야 한다.(193, 194 페이지) 그뿐 아니라 화석 보존 처리도 아주 어렵다. 화석은 깊은 시간 속에 살았던 과거의 생물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증거, 과거의 정경을 가장 잘 떠오르게 하는 증거다. 저자는 암모나이트의 조직화된 형태와 정밀한 선들은 엔트로피의 산물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임을 너무나 명백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데본기는 지구 역사에서 이 세상이 처음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와 비슷한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 시기다.(203 페이지) 이 시기에 식물이, 그리고 동물이 물에서 뭍으로 대규모 이동을 한 시기다. 깊은 시간에 익숙한 사람만이 3,000만년에 걸친 변화(어떤 식물이 데본기가 시작될 무렵 키가 몇 센티미터였다가 3,000만년 후에 10미터가 넘게 된 변화)를 폭발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고생물학자들은 현생 조류가 단순히 공룡의 친척이나 자손이 아니라 수각류의 하위 분류군에 속하는 실제 공룡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는 사실(245 페이지)도 흥미롭다. 


저자는 인류세와 관련해 우리가 단순히 일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 주위에 새로운 지구를 만든다고 말한다.(288 페이지) 저자는 얀 잘라시에비치(‘지질학’의 저자)의 말을 인용한다. ‘건물도 암석 순환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암석으로 만들어졌고 암석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뚜렷한 기록을 남길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지하철이 지나는 터널은 살아 있는 유기체에 의한 지층의 교란 즉 생물 교란의 일례다.(289 페이지) 얀 잘라시에비치는 하나의 생물종이 5km가 넘는 깊이까지 대규모로 광범위하게 암석을 들쑤신 것은 46억년 지구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중대한 지질학적 혁신이라고 말했다. 


인간에 의해 일어나는 생물 교란은 잘라시에비치와 그의 동료들이 기술권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 화강암 이야기도 유익하다. 장식용으로 쓰기 위해 광을 내면 갖가지 색을 내는 화강암은 마른 땅이 존재하는 이유가 되는 암석이다. 약 40억년전 화강암은 부력에 의해 선캄브리아기의 바다에서 떠올랐고 해양지각과는 다른 대륙지각을 형성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육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저자는 오랜 시간이 지나 새로운 빙하기가 도래함에 따라 수 km나 되는 얼음이 기반암에 압력을 가할 경우 지하 핵폐기물 보관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연구하는 과학자들에 대해 언급한다.(325 페이지) 


'깊은 시간으로부터'는 암석과 화석, 지층을 찾아 나선 헬렌 그린의 답사 후기다. 저자는 자신이 운전하고 있던 전원지대는 지질학적으로 빼어난 장소를 보호하고 알리기 위해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하일랜드 북서부 지질 공원에 속하는 곳으로 차창 밖으로 깊은 시간 속에서 뚜렷하게 구별되는 3개의 순간이 보였다는 말을 한다. 현생누대(顯生累代)의 첫 기인 캄브리아기, 원생누대, 시생누대라는 3개의 이전 세계가 남긴 3개의 경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현생누대란 생명이 보이는 시기를 의미하고 캄브리아기는 대단히 많은 복잡한 생명체가 화석 기록에 나타난 시기를 의미한다. 저자는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려면 시간을 들여 그것을 구별할 특징을 골라야 한다고 말한다. 사물의 이름을 알면 그 공간 속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긴다. 많이 알수록 배경 속에서 흐릿하고 엇비슷하게 보이던 많은 것들이 더 선명하게 존재를 드러낸다.(330페이지) 저자가 다룬 다양한 분야의 지질 이야기 중 판구조론이 가장 유용했다. 알지 못하던 것을 많이 배웠다. 무엇보다 주제(깊은 시간)를 의미있게 펼치는 저자의 실력에 감탄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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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지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세계를 바꾼 지도’는 지질학을 전공하고 지질학자로 활동한 저널리스트 작가 사이먼 윈체스터가 쓴 윌리엄 스미스(1769 - 1839) 전기다. 1815년 세계 최초의 지질도를 만든 스미스는 지질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태어난 시대를 산 인물이다. 그가 타계한 지 20년이 지나서 다윈의 진화론이 나왔다. 다윈을 언급하는 것은 다윈이 지질학에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울러스턴 메달의 주인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울러스턴 메달의 첫 수상자였다. 그 상의 수상자는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정도의 영예를 누린다.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는 또한 영국 경제가 아주 빠른 속도로 변화해 가던 산업혁명의 시대이기도 했다. 책은 에필로그와 연관되는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두 부분(프롤로그, 에필로그)은 커튼에 가려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지질도에 의해 연결된다. 지질도는 당연히 스미스가 만든 것이다. 책의 중요 키워드는 실용성 및 상상(想像)의 힘이다. 현장 감각이 탁월했던 기술자 스미스는 홀로 계획하고 착수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영국 국토의 지하 세계를 상상력에 의거해 지도에 그린 인물이다.


그랬던 그도 처음에는 지질학회의 논외의 인물이었다. 시골 출신의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이었고 배수(排水)와 측량(測量), 제방(堤防) 건설 같은 지질학의 실용적 기술로 먹고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스미스는 지나친 낭비벽 때문에 떠안은 부채를 갚지 못해 사설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한 인물이기도 했다. 스미스가 지질학회(1807년 결성)에 받아들여진 것은 현대 지질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자 데본기라는 명칭을 제안한 애덤 세지윅이 회장에 오르고나서였다. 세지윅은 4반세기 동안 학회가 스미스에게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은 인물이다.


처음 지질학회는 이론에 치우쳤고 스미스가 암석의 역사를 밝히는 데 유용한 단서로 여겼던 화석도 아름다움의 관점으로 보는데 그쳤다. 스미스는 화석 수집의 세계에서 누구보다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었다.(149 페이지) 아이러니한 점은 성직자들이 화석을 꾸준히 연구하는 사람들 중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화석을 연구하다 보면 가장 굳건한 종교적 믿음의 대상인 창조론과 홍수론을 공격하게 되기 때문이다.(155 페이지) 성스러운 신의 섭리로 창조된 우주에서는 멸종이란 개념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불가능한 것이었다.(65 페이지) 어떻든 스미스의 발견은 동물의 멸종 및 진화에 관한 논의로 이어졌다.


스미스는 결점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수많은 오류를 범했지만 주의 깊은 관찰과 대범한 사고로 새로운 이론을 이끌어내었다. 지하 세계의 공간 기하학적 특성을 인지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지녔던 그는 지면 위에서 그가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지면 아래의 세계를 유추해냈다.(127 페이지) 그는 암석들에 대한 추론을 통해 논리적이며 놀랄 만큼 아름다운 결론을 이끌어낸 인물이었다.(129 페이지)


그는 두 층의 경계에서 나타나는 부정합(不整合)에 대해서도 인지했다. 즉 위층에는 동물 화석만이 존재하고 아래층에는 식물 화석만이 존재하는 등의 현격한 격차를 보고 그것이 중요한 지질학적 경계인 부정합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는 지하 세계의 역사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암석의 경사라는 사실도 알았다.(227 페이지)


스미스는 노년에 이르러서야 울러스턴 메달 수상, 지질학회 가입 등의 복을 누렸다. 여기에 더해 정부로부터는 남은 생애 동안 연금을 받게 되는 가시의 성과도 얻어냈다. 아이러니한 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영국 지질학의 아버지인 그가 영국 본토의 대학이 아닌 아일랜드의 대학(트리니티칼리지)으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지질학은 근본적으로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설명한다.(359 페이지) 스미스는 너무나 많은 시골 사람들이 탄광 찾기에서 실패를 맛보는 것을 보며 지표면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호기심과 관찰력이 뛰어났던 스미스는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바다 생물이 하나의 특이한 형상으로 암석의 일부가 된 것일까? 어떻게 한 고체가 다른 종류의 고체에 그토록 단단히 들어가 박힐 수 있는가? 바닷가에나 있을 법한 것이 옥스퍼드셔 지방의 깊은 암석층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관찰력이 뛰어났던 스미스는 각각의 석탄층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사실은 물론 어느 탄광에서든 같은 패턴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느 탄광에서든, 어느 채석장에서든 변함없이 특정 석탄층 간의 상대적 위치가 언제나 동일하다는 점이 관건이었다. 가령 던지드리포트는 언제나 페링크 위에 존재하고, 러지는 언제나 템플 클라우드 위에 있는 식이었다.(106 페이지)


스미스를 통해 우리는 화석의 아름다움보다 자연이 화석을 생성하고 특정 화석을 특정 지층에 배치하는 데 보여준 놀라운 질서와 규칙성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165 페이지) 화석은 지층의 순서를 밝힐 때 핵심적인 요소였다. 즉 화석을 이용해서 지하 지층의 계열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지층의 순서가 예측 가능하다면 지도 위에 표시되는 것 역시 가능하다는 의미다.(109 페이지)


점토 - 실트 -  사암  - 석회암, 그리고 또다시 점토 - 실트 - 사암 - 석회암의 순서로 쌓이는 층에 대해 알아보자. 그것은 바다 가장자리의 밀물과 썰물에 의해 불가피하게 생기는 순서였다.(235 페이지) 보이지 않는 지하 세계의 복잡성을 나타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던 스미스는 엄격한 교회법과 교리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새로운 과학이 날개를 퍼덕이게 했다. 스미스는 미천한 신분 때문에 귀족들을 미워했지만 그의 이론이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상류층과 대귀족의 후원 덕이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스미스는 정신병을 앓는 아내의 남편이었고 부모를 잃은 조카 존 필립스의 양육자이기도 했다. 스미스는 일생을 따라다닌 실망감이라는 감정에 눌려 살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질학회 가입 수락 연설에서 스미스가 한 말은 아주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 말은 아이작 뉴턴 경이 울라이트 지층 위에서 태어났는데 만일 그가 땅 위의 사과 대신 그 아래의 땅에 관심을 가졌다면 지질학이 지금 얼마나 달라졌을까란 말이다.


혹자는 스미스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우리의 고산자 김정호와 비교하며 김정호는 지표를 보았을 뿐이지만 스미스는 지하 세계를 상상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스미스가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 결과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영국의 산업적, 상업적 관심이 땅 아래로 향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서 고단하고 힘들었던 스미스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감기가 폐로 침입한 탓이었다. 책은 그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표현했다.


지질 해설을 하는 사람으로서 스미스로부터 배운 바가 있다면 언제나 땅을 파고, 물을 빼고, 물레방아를 건설하고, 물을 끌어올리는 작업에 대해 기술자들과 서신을 교환하고 탄광 깊은 깊은 곳까지 몸소 내려간 그의 부지런함,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여행을 하고, 샘플을 모으고 ,기록하고, 지하 세계에 관한 정보를 머리 속에 집어넣고 밀어넣은 그의 노력이라 하고 싶다.


감탄스러운 점은 스미스가 스승도 없고 참고할 책도 없는 가운데 길을 개척했다는 점이다. 스미스가 아브라함 베르너의 수성론(모든 암석은 바닷 속 물질의 침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이론)을 신봉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의 관련 지질 정보도 유용하게 읽히는 책이 세계를 바꾼 지도다. 축융토(縮絨土; Fuller’s earth), 라놀린(lanolin), 윤회층(輪回層; 235 페이지) 같은 생소한 단어를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처음으로 쥐라기의 암모나이트 화석을 발견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저자는 15년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탐사하고 위대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세부적인 사항을 수집할 무렵 남부 도싯 지방에서 요크셔까지, 해안에서 해안으로 스미스가 다녔던 길을 다시 걸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것은 저자가 단순히 잉글랜드 중부 지방의 지형이나 쥐라기의 암석학 또는 고지리학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윌리엄 스미스라는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기를 희망한 결과 나타난 노정(路程)이었다.(224 페이지)


일본의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가 다윈 진화론의 산실인 에콰도르령 갈라파고스 제도(諸島)를 탐험하고 쓴 생명해류라는 책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언급했듯 다윈과 윌리엄 스미스가 지질로 연결되었다면 후쿠오카 신이치와 다윈은 생태로 연결된 것이 흥미롭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지질과 생태의 연결점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흥미와 숙제를 동시에 주는 사이먼 윈체스터의 ‘세계를 바꾼 지도’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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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 - 노아 홍수가 그랜드캐니언을 설명할 수 있을까?
캐럴 힐 외 지음, 노동래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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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리조나주에는 세계적 지질공원이 하나 있다. 미국의 국립공원들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한 국립공원인 이 지질공원의 이름은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이다. 신비로운 대협곡으로 유명한 이 지질공원에 대해 정확한 학문적 분석을 하는 것은 지구 시스템을 바로 이해하는 한 방편이 될 것이다. 그것은 축복인 한편 과제다. 나는 이 과제 해결에서 더 나아가 내가 사는 곳의 지질에 대해 시사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사는 곳의 지질이란 한탄강 세계 지질공원을 말한다.


‘노아 홍수가 그랜드 캐니언을 설명할 수 있을까?‘란 부제를 가진  ’그랜드 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는 열 명의 지질학자와 한 명의 생물학자가 함께 쓴 기념비적 저서다. 저자들 중 한 명인 웨인 래니는 자신들은 텔레비전, 전자 오븐, 휴대전화기를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과 동일한 수많은 과학적 방법과 기술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래니에 의하면 그들은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받아들이는 현대의 지질학자들이다. 물론 래니가 말했듯 지구의 지질학적 이야기를 탐구하고 발견하는 것은 종교적 신념에 대한 도전이 아니다.


이 책에는 두 개의 틈(chasm)이란 단어가 나온다. 하나는 자연이 만든 틈이고, 다른 하나는 설명 모델 사이의 틈이다. 전자는 이 책이 다루는 콜로라도강과 그 지류들이 콜로라도 고원의 남서쪽 가장자리까지 깊게 깎아 만든 1.6km 깊이의 틈이고, 후자는 홍수 지질학과 전통적 지질학의 설명 모델 사이의 틈이다. 핵심적 진술은 지표면의 거대한 균열이 콜로라도강으로 덮인 것이 아니라 거대 협곡 자체가 콜로라도강에 의해 만들어졌다(17 페이지)는 말이다. 두 개의 틈(chasm)을 이야기했거니와 두 개의 다른 설명 체계 역시 필요하다. 하나는 하천학(fluvialism)이고, 다른 하나는 홍수 지질학(diluvialism)이다. 전자는 하천의 활동이 어떻게 지구 표면을 형성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후자는 성경 그대로 4,500여 년 전에 일어난 1년 미만의 노아 홍수가 그랜드 캐니언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학문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전통적 지질학의 견해와 젊은 지구론자의 견해 모두 그랜드 캐니언의 지층과 깊은 협곡 틈들이 자연적 과정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과학적 조사의 대상이라는 데에 동의한다는 사실이다. 젊은 지구론자들의 논리적 귀결인 홍수지질학은 노아의 홍수가 인간만을 덮친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덮쳐 지구의 암석, 화석, 지형에 보존된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홍수지질학 vs 전통지질학의 구도는 격변론 vs 동일과정론의 구도이기도 하다. 격변론은 지구가 젊다고 반드시 믿은 것은 아니지만 지구의 역사가 한 번 이상의 격렬한 사건들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노아 홍수는 그 중 가장 최근의 사건이었으리라는 견해를 유지했다. 동일과정론은 자연법칙과 힘에는 일관성이 있어 현재 자연에서 일어나는 과정과 환경을 관찰함으로써 고대 암석을 형성한 자연의 과정과 환경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랜 관찰 결과 지구의 역사는 하나의 격변적 사건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이는 노아 홍수를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를 부인하는 것도 아니다. 


동일과정론은, 홍수 후의 큰 호수들이 격변적으로 비워짐으로써 그랜드 캐니언과 콜로라도 강이 급속하게 형성되었다는 격변론을 부정하며 그 협곡이 침식되는 데 수백만년이 소요되었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그랜드 캐니언의 모든 퇴적암 아래에는 여러 화성암이 관입된 변성암 기반(基盤)이 있다.(46 페이지) 홍수 지질학자들은 그랜드 캐니언에서 발견되는 넓은 변성암 지대의 기원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다.(47 페이지) 그랜드 캐니언은 신생대 동안 콜로라도 고원이 융기되어 이 지역에서 바다가 물러갔을 때 그때까지 쌓인 지층들 안으로 깎여 들어가 형성되었다. 


콜로라도강에 의한 이 지역의 침식 중 대부분은 약 6백만년전부터 현재에 걸쳐 일어났다.(62 페이지) 느슨한 퇴적물이 암석이 되려면 압축(compaction) 및 교결(cimentation) 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방해석(方解石) 모래 같은 일부 유형의 퇴적물은 깊이 묻히지 않고서도 몇 년 안에 암석으로 굳을 수 있는 반면 대부분의 퇴적물이 압축 및 교결되려면 오랫동안 깊이 묻혀여 한다.(68 페이지) 탄산칼슘 입자로 구성된 암석을 석회암이라 하고 탄산칼슘의 가장 안정적인 동질이상(同質異像)을 방해석이라 한다. 방해석은 뜨거운 물보다 찬 물에서 더 잘 녹는 소수의 광물 중 하나다. 


그랜드 캐니언의 측면 벽에서는 다수의 석회암 지층이 나타난다. 석회암이 해양 환경에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호수, 특히 건조한 환경에서도 석회암은 발견된다.(72 페이지) 실험실에서건 현장 관측을 통해서건 홍수 물로부터 석회암이 형성된 사례는 보고된 적이 없다. 석회암이 형성되는 데는 퇴적 작용이 일어나는 오랜 시간 즉 홍수기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랜드 캐니언은 여러 차례 해수면이 전진했다 물러가고 간헐적으로 암석이 침식되어 소실된 증거를 포함하고 있다. 현대의 석회암 퇴적물은 조개껍데기들이 형성된 장소에서 가까운 곳에 퇴적된 탄산칼슘 껍데기들이 쌓인 결과이지 먼 곳에서 침식된 석회암이나 조개껍데기 및 석회 진흙 무더기가 옮겨온 결과가 아니다.(76 페이지) 캐런 힐, 스티븐 모시어는 그랜드 캐니언의 퇴적 구조물이 왜 오늘날 현대의 환경에서 형성되는 것과 똑같이 생겼는지 묻는다. 발톱 자국 같은 정교한 형태가 격렬한 홍수 속에서 보존될 수 있었는지 묻는다. 


홍수 지질학자들은 동일과정론을 유물론 또는 진화론과 동의어로 취급해 악마화 하면서도 자신들이 젊은 지구론을 지지하는 증거를 발견하고자 할 때에는 사실상 동일과정론의 원칙을 적용한다. 가령 유명한 홍수 지질학자들 중 일부는 1980년 세인트헬렌스 화산 폭발이 그랜드 캐니언의 급격한 형성에 단서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그랜드 캐니언의 암석은 화산재와는 완전히 다른 물질로 이루어졌다. 이 협곡의 수직 절벽의 거대한 규모는 이 절벽이 콜로라도 강에 의해 깎이기 전에 이미 암석으로 굳어졌음을 입증한다.(87 페이지) 


홍수 지질학자들은 물리적 과정과 화학적 과정을 묘사하는 자연법칙이 창조주간, 에덴동산에서의 타락 이전 또는 노아 홍수의 다양한 시점마다 달랐다고 가정한다. 이는 동일과정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가정이다. 그랜드 캐니언에 노출된 대부분의 지층은 퇴적암이다. 대개 퇴적암은 방사성 측정법에 의해 직접 연대를 측정할 수 없다.(104 페이지) 방사성 측정법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광물이 생성된 연대이지 그것들이 굳어 암석이 된 연대가 아니다. 그랜드 캐니언 같은 곳의 퇴적암의 경우 기본적으로 해당 지역의 화석 기록과 전 세계의 화석 기록 사이의 비교에 기초해 연대 추정을 한다.(117 페이지) 


이 협곡에서 가장 젊은 암석 중 일부는 테두리를 넘어 강 아래로 흘러내려 용암댐들을 형성한 용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용암댐은 고작 수백만년 내에 형성되었다.(112 페이지) 방사성 연대 측정법은 신뢰할 수 있는 물리법칙(가장 중요하게는 방사성 붕괴의 예측 가능성)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는 이 예측 가능성을 이용해서 원자로를 건설하고 의료장치를 개선하며 수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행성 탐사선에 동력을 공급하기도 한다. 방사성 연대 측정법은 베수비오산 폭발과 같은 고대의 역사적 사건의 연대를 정확히 측정한다고 입증되었다.(114 페이지) 


앞에서 틈(chasm)이란 말을 했지만 부정합은 시간의 틈을 대표한다. 부정합은 침식을 함축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117 페이지) 부정합이란 연속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오랜 단절을 겪은 후 퇴적된 지질 구조를 말한다. 더 낮은 지층에 깎임이 생겨 만들어진 수로에 위쪽 지층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물질이나 독특한 퇴적물이 채워져 있다면 부정합의 증거다.(121 페이지) 홍수지질학자들은 지각의 틈들이 창세기의 큰 깊음의 샘들이라고 믿는다.(131 페이지) 


홍수 지질학자들은 격변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즉 몇 일만에 산이 밀어 올려진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긴다. 마찰 저항이 열을 발생시키는 것처럼 구부리는 것도 열을 발생시킨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암석이 급속히 구부러지면 모든 것이 부서지고 녹을 것이다.(134 페이지) 그랜드 캐니언의 지층들은 위아래로 관통해 이어지는 파쇄대(crack)로 가득 차 있다. 파쇄대는 단순히 갈라진 균열을 의미한다. 일단 파쇄대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진흙 건열처럼 이후의 비로 다시 메워지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거나 응력(stress)이 증가함에 따라 더 커질 수 있다. 


다수의 지층에 걸쳐 펼쳐져 있는 긴 파쇄대는 이 균열이 형성되기 전에 모든 지층이 이미 암석으로 굳어져 있었음을 증거하는 명확한 표시다.(138 페이지) 홍수 지질학 모델이 옳다면 그랜드 캐니언에는 한 종류의 단층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랜드 캐니언에는 역단층과 정단층이 모두 존재한다. 이는 서로 다른 기간에 압축력(한곳으로 밀어붙임)과 장력(잡아당겨 뜯어냄)이 작용했음을 암시한다. 암석이 가소성 변형을 일으키려면 고온, 느린 이동속도, 구속압력이 결합되어야 한다. 암석이 떨어져 나갈 때는 넓은 펼쳐짐이, 한곳으로 밀릴 때는 물결 모양의 접힘이, 불규칙하게 융기하거나 침강할 때는 넓은 구부러짐이 발생한다.(143, 144 페이지)


암석층에서 구부러짐이 발생하면 각 층에 치유되지 않는(다시 메워지지 않는) 많은 균열이 만들어진다.(145 페이지) 퇴적물이 잡히면 부드러운 물질이 쉽게 바스러져 틈을 채워서 치유되지 않는 파쇄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146 페이지) 화석을 가지고서도 홍수지질학자들의 모순을 제시할 수 있다. 즉 여러 범주의 유기체들은 함께 발견되지 않는다. 이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화석은 노아의 홍수 때 파묻힌 동물들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의미다.(151 페이지) 저자는 거대한 물의 벽이 모든 대륙에서 밀려들었다면 왜 해양생물과 육지생물이 뒤섞여 있지 않는가?란 질문을 한다.(151 페이지) 


가장 낮은(오래된) 지층에서 가장 높은(젊은) 지층으로 갈수록 복잡성과 다양성이 증가한다. 거대한 쓰나미가 모든 대륙에 충돌했다는 홍수 지질학자들의 말을 따르면 모든 육상생물의 형태가 해양 퇴적물과 섞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그룹의 유기체가 다른 그룹을 대체하는 전 지구적 차원의 동물적 대체(代替)는 이 모든 현상이 최근에 일어난 단 한 번의 격변적인 홍수의 결과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극도로 당혹스러운 사태일 것이다. 


저자는 '홍수 지질학자들의 주장처럼 노아 홍수가 전 세계적이었다면 왜 공룡의 유해가 그랜드 캐니언의 지층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더구나 발자국은 격렬한 홍수의 어느 단계에서도 보존되지 않을 텐데 왜 더 높은 그랜드 스테어케이스 암석의 여러 지층에서는 공룡 발자국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까?'라고 묻는다.(161 페이지) 


화석은 특정 순서로 발견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 있는 패턴을 보여준다.(164 페이지) 이런 패턴은 생물 공동체가 살았던 유형의 환경, 생태계의 역동성, 한 그룹이 다른 그룹으로 대체되는 변화를 반영하는 특징적 화석으로 구성된다. 동물상 연속의 원칙이 있듯 식물상 연속의 원칙도 있다. 식물 화석의 복잡성이나 다양성은 젊은 지층으로 갈수록 점진적으로 증가한다. 홍수 지질학자들은 다양한 분류 체계를 통해 눈에 보이는 화석 식물의 분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지만 화석 기록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화석(포자와 꽃가루)의 분포를 설명하려는 노력은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오늘날의 지질학자들은 그랜드 캐니언의 형성에 작은 물과 오랜 시간이 아니라 많은 물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콜로라도강이 언제 어떻게 거대한 카이밥 융기 지대(또는 아치)를 깎고 길을 냈는지, 그리고 이 고지대가 깎이기 전 물은 어디로 흐르고 있었는지가 논쟁의 중심에 있다.(197 페이지) 


저자는 실제의 과학 연구는 미로를 헤쳐 나가 정확한 길을 이해하는 일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출발점과 끝나는 지점을 볼 수 있는 종이 위에 그려진 미로가 아니라 여러 길을 실험해보아야 출구를 찾을 수 있는 실제 미로 안에 들어와 있는 경우다. 저자는 젊은 지구론자들이 과학계에 존재하는 의견 불일치를 과학적 근거의 빈약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 이런 의견을 제시한다. 즉 의견 불일치는 특정 세부 사항에 관해 논의가 진행중인 어떤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의미이지만 불일치를 해결하고 나면 궁극적으로 더 많은 이해에 도달하고 확실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201 페이지) 


우리가 보고 있는 암석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대미문의 메커니즘이나 신비한 힘이 필요하지 않다.(215 페이지) 그랜드 캐니언의 많은 지층, 구조물, 단층은 확실히 강력한 힘들이 작용했음을 나타내지만 모두 지구의 정상적인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느린 과정도 있고 빠른 과정도 있지만 모두 정상적인 과정이다. 중요한 점은 각각의 지층이나 특성에 대한 설명들이 해수면 상승과 하강, 서서히 움직이는 지각판들이 지각을 들어올리고 내리는 더 큰 이야기 안에 잘 들어맞는다는 사실이다.(229 페이지) 


저자는 홍수 지질학자들의 설명은 지속적으로 관찰된 적도 전혀 없고 상호 배타적인 메커니즘에 의존한다고 설명한다. 가령 방대한 화석 기록은 전 세계적인 홍수가 모든 대륙을 휩쓸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지만 그 홍수가 어쩐 일인지 그랜드 캐니언의 어떤 지층에도 생쥐, 갈매기, 고래, 개구리, 튤립 또는 가재 화석을 단 하나도 남기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홍수 지질학자들의 신조와는 달리 홍수 지질학이 다른 세계관들과 구분되는 지점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구절들에 대한 집착이 아니다. 오히려 홍수지질학의 뚜렷한 특징은 성경 안이나 밖의 모순되는 증거를 고려하지 않으면서 사실로 받아들여진 성경 안의 특정 구절들에 대한 특정 해석 방식을 고수한다는 점이다.(233, 234 페이지) 


저자들은 홍수 지질학은 비과학적일뿐 아니라 비성경적이라 말한다. 로마서 1장은 창조주의 신성이 그분의 물리적 피조물인 자연에 드러난다고 선언한다.(234 페이지) 자연이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신뢰받을 수 없다면 이 진술은 홍수 지질학자들의 하나님 이해에 무엇을 말해줄까? 저자들은 홍수 지질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부합하는 자료나 데이터만을 취한다고 말한다. 인상적인 말은 과학은 자료가 이끄는 곳으로 가도록 허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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