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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마네와 모네는 인상주의의 거장들이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사이이다. 그 둘의 관계를 해명한 김광우의 마네와 모네는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의 한 권이다. 저자 김광우는 철학 및 현대 미술, 비평을 전공한 분이다. 저자는 예술가의 창조성은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전제한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 중 하나는 방대한 자료들을 실었다는 데 있다. 그래야 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1832 1883)올랭피아풀밭에서의 오찬으로 유명하고 클로드 모네(1840 1926)는 수련(睡蓮) 연작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모네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마네는 인물화를 주로 그렸고 모네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마네는 모더니즘을 연 사람이고 모네는 최초의 회화 혁명을 체계적으로 일으킨 사람이다. 마네와 모네는 일본 판화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응용했을 뿐 아니라 일본 판화를 그림의 배경으로 장식했다.(46 페이지)

 

모네와 마네는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다.(171 페이지) 마네는 모네를 끝없이 도왔다. 모네는 마네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했다.(192 페이지) 모네는 마네 사후 마네를 위대한 화가로 기억되도록 적극 나섰다.(267 페이지) 모네는 마네의 작품이 루브르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268 페이지) 둘의 관계는 고흐와 고갱의 그것과 달리 바람직한 것이었다.

 

인상주의란 말이 처음 생긴 것은 모네의 인상, 일출이란 그림을 본 루이 루르아에 의해서이다. 물론 루르아는 이 그림을 보고 얼마나 자유로운가, 얼마나 쉽게 그렸는가라는 경멸조의 말을 했다.(166 페이지) 모네는 빛이 일기(日氣) 변화에 따라 사물에 일으키는 변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영롱한 색조로 나타낼 줄 알았으며 빛이 사물에 닿아 분산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순간적인 현상을 빠른 붓질로 캔버스에 담았다.(15 페이지)

 

모네가 항상 같은 시간에만 그림을 그린 것을 쿠르베가 기이하게 여긴 것은 유명하다. 모네는 대상 하나하나에 대한 사실주의 묘사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빛이 시시각각 대상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97 페이지) 모네는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그는 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247 페이지)

 

마네의 불로뉴 해변1868년 작품으로 처음으로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마네는 사람들을 분명하게 묘사하지 않고 색을 적당히 쓱쓱 문지르는 것으로 처리했다. 이런 화법이 오히려 과학적인데 그것은 시선이 닿는 중심지가 아닌 주변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132 페이지)

 

마네는 많은 예술가들과 어울렸다.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시인 보들레르이다. 마네는 보들레르의 시신이 안장(安葬)되는 모습을 장례식이란 제목으로 그렸다. 한편 시인 말라르메는 마네의 미학적 대변인으로 평가된다. 말라르메는 마네의 10년 연하이다. 보들레르는 마네의 11년 연상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마네가 그린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을 보고 위대한 두 영혼 사이의 애정을 표현하는 작품이라 극찬했다.(189 페이지) 모네가 그린 템스 강 풍경 시리즈 석 점은 스케치처럼 그린 인상, 일출에 비해 완성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받는다.(153 페이지) 1872년 모네는 작품의 질과 값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157 페이지) 이런 점은 저자의 의도(예술가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하려는..)에 부합한다.

 

에밀 졸라의 나나가 출간되기 전 마네가 나나를 그렸다.(215 페이지) 마네는 평생 일곱 개의 화실을 전전했다.(223 페이지)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우상으로 여겼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는 마네에게 영향을 주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는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분석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마네는 52세까지, 모네는 86세까지 살았다. 마네는 말년을 투병 속에서 보냈다. 마네는 현대 감각을 일깨워주고 떠난 화가로 평가받는다. 마네는 현대적 감각으로 그림의 주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며 우발적인 변화라도 주의 깊게 살펴보라는 보들레르의 권유를 소중하게 받아들인 화가이다.(244 페이지)

 

반면 모네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다. 모네는 모파상과 친하게 지냈다. 같은 주제를 연속적으로 그리는 연작은 오늘날 많은 화가가 그리지만 모네가 건초더미 시리즈를 그릴 때만 해도 과거에 없던 획기적인 방법이었다.(278 페이지) 물론 모네의 가장 유명한 연작은 수련(睡蓮)‘ 연작이다.

 

프랑스 철학자, 과학자, 시인인 가스통 바슐라르가 꿈꿀 권리에서 다룬 모네론()은 유명하다. 모네는 지베르니(Giverny)를 유명하게 했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약 75km 떨어진 곳으로 모네가 거주하며 작업한 마을이다. 모네는 종일 수련을 그리고 그렸다.

 

당시 모네는 아들 장을 먼저 떠나 보낸 70대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1차 대전 발발로 작업에 대한 도취는 중단되었다.(305 페이지) 이 장면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마의 산을 내려오는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를 그린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연상하게 한다.

 

모네는 오랑주리의 타원형 전시실에 맞는 패널화를 그리려 했지만 백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져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 오랑주리는 식물원이었다가 미술관이 된 곳이다.(참고로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모네, 하면 가스통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클로드 모네처럼 물가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충분한 저장을 해두고 강가에 피는 꽃들의 짧고 격렬한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네도 거장이었지만 모네를 보며 거장이란 말을 더 떠올리는 것은 작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긴 구십에 가까운 나이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간 삶 때문이다. ’마네와 모네의 특징은 전기(傳記) 위주의 평이한 글이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저자의 칸딘스키와 클레’, ‘고흐와 고갱’, ‘뭉크, 쉴레, 클림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등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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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구사
신인현 / 교학연구사 / 1996년 10월
평점 :
절판


일본 가나가와현립박물관(かながわ はくぶつかん; 神奈川縣立博物館)에서 펴내고 조선대 지질학 박사 신인현(申仁鉉)이 번역한 책이다. 새로운 지구사(‘あたらしい; 新しい‘ ちきゅうし; 地球史). 1996년작이다. 화산은 살아 있는 지구의 극히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 지구는 46억년전에 1억년에 걸쳐 형성되었다. 태양계를 구성하는 전 물질의 99% 이상은 태양에 집중되어 있다. 가장 큰 행성인 목성의 질량조차 태양의 1/1,000 정도이다. 그러므로 태양계 형성의 이야기도 태양의 형성을 무시하고 말할 수 없다. 태양은 거의 수소와 헬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소가 헬륨의 3배 정도이기에 거의 수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지 지나치지 않다. 


미행성은 지구 질량의 1/100억 정도로 매우 작다. 하지만 행성을 만드는 기본 블록과 같은 것으로 현대의 생성 형성 이론에서는 아주 중요하지만 실체는 잘 모른다. 처음에는 솜사탕처럼 엉성한 것이었으나 상호 충돌, 합체를 반복하는 동안 점점 단단해져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행성이 충돌해서 성장하여 달 정도의 크기가 되면 그 인력에 의해 주위의 수소와 헬륨이 끌어당겨져 대기를 가지게 된다. 이런 천체를 원시 행성이라 한다. 지구 질량의 열 배 정도에 해당하는 원시 행성이 생기면 주위에 수소와 헬륨가스가 그 강한 인력으로 끌어당겨져 행성 위로 떨어진다. 그 결과 대량의 수소, 헬륨을 포함한 거대한 가스 공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것이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같은 목성형 행성이다. 원시 태양계 성운 내에 있었던 수소와 헬륨은 지금의 태양계 공간에는 없으며 언제 없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태양계 공간에 수소와 헬륨이 충만하지 않은 경우 현재 지구 크기가 될 때까지 약 1억 년이 걸린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에 지구는 규산염과 금속 철이 잘게 섞인 혼합물이었다. 성장함에 따라 대기가 형성되면서 보온 효과 때문에 표면이 녹기 시작하여 마그마의 바다라고 불리는 상태가 되었다. 마그마의 바닷속에서 철만이 중심으로 떨어져 가서 핵을 형성한다. 지구 형성이 끝날 때쯤 대기가 식어서 바다와 얇은 원시 지각이 생긴다. 최후에 마그마의 바다가 중심 쪽부터 굳는다. 이것이 지구 형성 기본 시나리오다. 


지구의 반지름이 현재의 반 정도인 화성 정도의 크기가 되면 지표 온도가 높아져 암석이 녹기 시작한다. 이를 마그마의 바다라 한다. 지구 환경의 특징으로서 액체의 물 즉 바다의 존재를 들 수 있다. 바다를 갖는 행성은 지구 외에는 없다. 만약 모든 해수를 증발시켜 수증기로 만든다면 지구의 기압은 270 기압이 된다. 대기압은 1기압이기에 270 기압이라면 물이 해양으로서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다. 지구상의 퇴적암 내의 모든 탄소를 이산화탄소로서 끌어내면 60~80 기압에 상당하는 양이 될 것이라 한다. 


1972년 칼 세이건(Carl Sagan)과 조지 뮬렌(George Mullen)이 제기한 어두운 젊은 태양 역설(faint young sun paradox)이 있다. 1) 초기 지구에서 태양의 에너지 출력은 현재의 70%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라 추정된다. 2) 초기 지구에서 물은 액체 상태로 존재했다는 관찰 결과가 있다. 문제는 1)의 상태라면 2)는 나타나지 않는다(얼 수 밖에 없다). 이를 어두운 젊은 태양 역설이라고 한다. 이를 해결하는 것은 지구 대기에 온실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원시 대기의 주성분인 수증기와 이산화탄소는 아주 강한 온실효과를 갖는다. 미행성 충돌로 지표에서 해방된 열에너지는 원시대기의 온실효과로 인해 우주공간으로 도망가기 어려워 지표면 온도를 상승하게 했다.


1,200도씨가 되면 지표면은 마그마의 바다가 된다. 지표면 온도가 올라가면 수증기가 녹아 그 양이 감소한다. 이에 따라 온실효과가 줄어든다.(지표 온도가 내려간다.) 온도가 내려가면 마그마 내의 수증기가 대기로 방출되어 온실효과가 생겨 지표 온도가 올라간다. 미행성의 충돌 빈도가 감소함에 따라 지표에서 해방되는 에너지도 시간적으로 감소한다. 그 결과 지표 온도가 내려가 결국 원시 수증기 대기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수증기가 응결하여 비가 되어 내린다. 바다가 탄생한 것이다. 탄소는 대기중에서 이산화탄소 형태로 존재한다. 이산화탄소는 빗물에 녹아 탄산이 된다. 탄산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지표의 암석을 녹이는 작용을 한다.(화학적 풍화작용)


질소가 지구의 역사를 통하여 비교적 일정하다면 이산화탄소는 시대와 함께 크게 감소했다. 맨틀 중 물의 총량이 현재의 해양과 같은 정도라고 말하는 연구자도 있다. 대기, 해양의 탄생과 진화는 지구 내부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작용의 결과다. 육지의 탄생과 진화도 역시 맨틀과 지각 사이의 물질이동의 결과다. 육지와 바다의 지형 차이는 우연이 아니다. 아이소스타시(지각평형설)이라는 원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각평형이란 암석의 밀도에 대응하여 육지나 해저의 높이가 변하는 중력 평형의 이상적인 상태를 말한다. 지각의 하부에 존재하는 맨틀은 지각보다 밀도가 높은 감람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에 나무조각을 띄운 것처럼 지각은 맨틀 위에 떠 있다. 수면(水面) 위에 높게 얼굴을 내밀고 떠 있는 나무 조각일수록 수면 아래에 커다란 부분이 잠겨 있다. 


해양지각은 놀라울 정도로 균질하다. 규산염이 50% 정도 차지하는 현무암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해양지각은 마그마가 해수로 분출하여 만들어진 특이한 베개용암과 마그마가 지하에서 천천히 굳어 생긴 반려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모두는 현무암질 마그마에서 생긴 화성암이다. 대륙지각은 아주 다양한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성암인 현무암과 화강암이 많지만 그 외 퇴적암이나 변성암들도 있다. 가장 오래된 대륙지각은 약 40억년전의 것으로 현재까지 대륙은 면면히 만들어지고 있다. 대륙지각은 화학적으로도 불균질하며 복잡하다. 대륙지각은 화강암과 현무암의 중간 조성을 가지고 있다. 


화강암에는 규산염이 70% 정도 들어 있기 때문에 대륙지각의 평균조성은 규산염이 60% 정도 된다. 안산암으로 하얀 암석인 화강암과 검은 암석인 현무암의 중간인 회색을 띠는 암석이다. 대륙지각의 생성과정은 맨틀로부터의 마그마의 이동 작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대륙을 특징 짓는 화강암의 생성방법에는 퇴적 작용이나 변성 작용 등도 큰 역할을 하며 복잡한 물질 순환을 통해 대륙은 진화한다. 하천으로 운반된 토사는 대륙에서 해양지각으로의 물질이동의 사례다. 대기에 의한 물질의 이동도 해당한다. 이렇게 해양에 쌓인 물질은 해양판의 섭입에 의해 다시 맨틀로 돌아간다. 대륙지각에서 맨틀로 직접 물질이 이동하는 딜라미네이션으로 불리는 메커니즘도 있다. 


두 개의 대륙지각이 충돌하면 지각이 아주 두꺼워진다. 이때 지각 하부의 암석은 높은 압력 때문에 광물이 변화하며 주위의 맨틀물질보다 고밀도의 광물조합을 이룬다. 그렇게 되면 지각 심부의 물질은 자신의 무게로 맨틀 속으로 잠긴다.(52 페이지) 마그마가 발생하려면 온도가 오르든지 압력이 낮아지거나 물이 유입되어야 한다. 얼음은 0도씨 이상에서 녹지만 암석은 어떤 온도에서 일시에 녹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어떤 조건이라도 감람암 맨틀의 부분융해에 의해 현무암 조성의 마그마가 만들어지지만 특수한 암석은 예외로서 현무암보다 규산염의 성분이 많은 대륙지각을 특징 짓는 화강암 조성의 마그마는 생성되지 않는다.(54 페이지) 


마그마의 규산염 농도가 화강암처럼 높아지면 저어콘이 생성된다. 규산 농도가 감람암이나 현무암과 같이 낮은 경우는 바델리아이트라는 광물이 생기기도 한다. 안산암이나 화강암은 대륙지각에 많이 존재하고 해양지각에는 많지 않다. 현무암으로 구성되어 있는 해양지각에는 저어콘이 생길 수 없다. 저어콘은 대륙지각에서 생기기 쉬운 광물이다. 마그마(맨틀이 녹아 만들어진)가 지각으로 공급되는 과정에서 맨틀에서 지각으로 공급되는 것은 규산염이 약 50%인 현무암질 마그마다. 화강암질 마그마는 맨틀로부터 직접 형성되지 않는다. 맨틀에서 대륙지각을 만드는 과정에는 한 가지의 완충작용이 필요하다.


화강암질 마그마나 형성되려면 세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1) 현무암질 마그마가 변화하여 화강암질 마그마가 되는 과정, 2) 대륙지각 심부를 구성하고 있는 현무암이 녹아 화강암질 마그마가 생기는 과정, 3) 해양판의 섭입에 수반하여 현무암질의 해양지각이 녹아 마그마가 생기는 과정 등이다. 현무암이 부분융해하면 압력이 높은 심부(深部)에서는 마그마와 공존하는 잔류결정에는 석류석이 존재하고, 압력이 낮은 천부(淺部)에는 사장석 결정이 존재한다. 생물학은 우주 어느 곳에서나 성립되는 학문은 아니다. 이는 화학, 물리학과 다른 면이다. 생물학은 지구에서만 성립하는 특수한 학문이다. 우리는 우주 생명체에 대한 정보가 없다. 


미국 국립공원의 팜플렛에는 Story behind the scenery라는 문구가 있다. 진귀한 또는 장대한 경관에 감탄하는 것 이상으로 그 경관이 왜 그런 형태가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지판(地板)은 해구(海溝)에서 섭입(攝入)하지만 판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700km까지이므로 판이 지배하는 세계는 심도 700km까지다. 더 깊은 곳의 구조는 판구조론이 아니고 플룸 구조론이 지배하고 있다. 플룸 구조론은 지구 표층뿐 아니라 지구 내부의 맨틀, 핵 등 모두를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전 지구 구조론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 판구조론의 영향은 표층에서 고작 700km까지다. 그보다 아래 또는 맨틀 전체 등 지구 대부분은 플룸 구조론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판을 전부 벗겨내 버리면 플룸 구조론의 세계가 된다. 플룸은 원통(圓筒) 모양이다. 맨틀 대류의 상승류는 원통(플룸) 모양이다. 아주 두꺼운 원통으로 방출되는 물질은 지표 근처까지 우산처럼 사방으로 퍼져 다시 맨틀 내부로 섭입해 간다. 새로운 지각은 핫 플룸에서 생겨나 아메바상으로 360도 사방팔방으로 펴져나간다. 플룸 구조론에서는 암권이 고온이기 때문에 강체가 아니므로 변환단층은 생길 수 없다. 판의 중요한 정의는 판이 강성체라는 점이다. 지구 내부를 토모그래피라는 방법을 이용해 조사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생물의 절멸(絶滅)이나 화성(火成) 활동 등 지구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판구조운동 뿐 아니라 플룸구조운동으로 더욱 통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한 셈이다. 


토모그래피를 이용하여 플룸의 분포와 심도를 상세히 살펴보자. 플룸은 400km 깊이에서 발생하는 것과 2,900km 깊이에서 발생하는 것의 두 종류가 있다. 두께 4,000km 정도의 원통이 한 가운데에서 두께 1,000km 정도로 조여지고 표층 근처에서 다시 넓어진다. 상부 맨틀에 도달하면 플룸은 여러 개로 갈라진다. 갈라지는 형태는 상당히 자유로우며 갈라진 플룸의 두께는 400km정도나 된다. 이들이 더욱 상승하여 판의 하부에 도달하면 그 중 몇 개가 갈라진 판의 틈을 타고 판의 내부로 상승하여 지구의 표면에 도달한다. 1차 플룸(깊이 2,900~700km), 2차 플룸(깊이 700~100km), 3차 플룸(깊이 100~0km)임을 알 수 있다. 


플룸의 형태는 여럿이다. 심부 맨틀의 플룸과 해령(海嶺)은 무관하다. 대서양과 같이 가장자리에 해구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반드시 플룸 위에 중앙해령이 있다. 인도양은 북쪽 가장자리에 태평양과 같이 해구가 있고 남쪽 가장자리에는 대서양처럼 해구가 없다. 이 경우 심부 맨틀의 플룸과 중앙해령 사이에는 직접적 관계가 없고 해령은 맨틀 심부에 대해 북쪽으로 움직인다. 일본 열도에는 약 6억년 전에 생긴 암석인 오피올라이트가 있다. 오피올라이트는 해양지각의 단편(斷片)이 육상으로 올라온 것이다. 약 4억년을 주기로 해양의 일생이 끝난다. 이를 윌슨 사이클이라 한다. 


1억년전에는 심해까지도 수십도의 고온이었다. 판의 생산속도가 아주 빨랐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중앙해령에서 탄산가스가 대량으로 생산되어 기온이 올라가 빙하가 생길 수 없었다. 판의 생산속도가 느려지면 기온이 내려가 거대한 빙하가 발달한다. 이는 대략적으로 초대륙이 생기는 무렵과 일치한다. 초대륙이 갈라지기 시작할 때 즉 맨틀 상부에 고여 있던 판의 잔해가 대량으로 맨틀 하부로 낙하하면 그 낙하운동에 대한 상승운동 즉 수퍼플룸이 상승해온다. 그리고 해령의 활동이 활발해져 대량의 탄산가스가 맨틀로부터 대기로 방출되어 지구 표면은 따뜻해진다. 기온이 상승하면 빙하가 녹아서 생긴 찬물이 심해로 유입된다. 그 물은 밀도가 크기 때문에 안정 밀도성층이 되어 심해에서 냉수 덩어리가 되어 정체 상태로 고인다. 이것이 심해의 산소 부족 현상을 초래한다. 


대빙하가 녹았던 시기 가령 고생대가 끝날 무렵에 심해저에는 산소가 거의 없어진 이상사태가 발생하여 바다 서식 생명이 대량 절멸했다. 지구 역사의 어느 시기에서 처음으로 판이 태어나는 운동 즉 플룸구조운동에서 판구조운동으로 변환된 사건이 일어났다. 그 변환기는 지구에 처음으로 원시해양이 생겼을 때일 것이다. 구조운동의 형태가 플룸인가 판인가는 맨틀의 점성 차이에 의존한다. 점성은 온도에 의해 변화한다. 원시대기는 불과 탄산가스를 주성분으로 했다. 온실효과를 가진 탄산가스가 대량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초기 지구는 모포로 둘러싸인 것과 같은 상태였다. 이로 인해 지구의 열은 우주로 도망갈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일단 바다가 생기면 바다 속으로 대량의 탄산가스가 녹아들어 온실효과를 초래한 대기중의 탄산가스 농도가 급격히 감소한다. 그러면 지구 내부의 열이 우주공간으로 도망갈 수 있게 된다. 해수의 양이 점점 증가하고 대기중 탄산가스 양이 적어지는 과정은 폭주적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즉 순간적으로 지구 표면 온도가 내려갔을 것이다. 이러면 지구 표층에 지각이 생긴다. 해령에서 새 판이 생겨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린랜드의 이스아 지역을 보자. 이곳에 세계 최초의 해양이 존재했음을 증거하는 것이 있다. 베개용암이다. 역암 아래에 갈색을 띤 하얀 석영이 풍부한 사암과 검은색의 이암이 교호(交互)로 퇴적된 지층이 있다. 터비다이트(turbidite)라는 것으로 해구에서 퇴적되는 지층이다. 


그 아래에 처어트가 있고 그 아래에 깨끗한 베개용암이 있다. 베개용암이 바로 바다가 있었음을 증거한다. 38억년전이다. 그 아래에는 반려암이 있고 더 아래에는 감람암이 있다. 이들은 38억년전의 해양 맨틀의 파편이다. 중앙해령에서 생겨난 판은 1억년 정도 후에 일본열도의 하부로 섭입하여 일생을 끝낸다. 그 1억년 동안은 육지와 완전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육지의 점토나 모래가 쌓이지 않고 주로 생물의 유해가 퇴적하여 처어트(chert)라는 암석이 생긴다. 아이슬란드는 열점의 화산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바로 중앙해령상에 있다. 여기에서는 마그마의 생산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해양지각의 두께가 20km를 넘는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아이슬란드의 화산암은 태고대에 중앙해령에서 산출되는 화산암의 화학조성과 아주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스아 지역의 처어트는 아주 검은 색이다. 서부 호주의 35억년전의 처트는 적색, 흑색의 비율이 현재의 비율과 아주 흡사하다. 이 사실은 산소농도는 38~35억년전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산소는 6억년전에 급격히 증가했다는 지금까지의 상식과 다르다. 인도 대륙은 곤드와나 대륙에서 1억년 전에 갈라져 북상하여 4,500만년전에 아시아 대륙에 붙었다. 이 때문에 1억~4500만년전에 걸쳐 인도 대륙과 아시아 대륙 사이에 있었던 테티스해(海)의 해양판은 아시아 대륙 아래로 잠입했다. 2억년전에 있었던 테티스해라는 커다란 바다는 대륙 이동과 더불어 점차 줄어들어 현재는 지중해가 되었다. 


생물의 진화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것은 좋은 지구 측정 방법이다. 화석은 과거의 생물이 토사(土砂)에 매몰되어 석화(石化)한 것이다. 방사성원소라 불리는 모든 원소가 방사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일부의 동위원소만이 방사능을 가지고 있어 방사성동위원소라 불린다. 방사성동위원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정 비율로 별개의 안정된 동위원소로 변한다. 이를 방사성 붕괴라 한다. 원래 있었던 방사성동위원소의 양이 붕괴에 의해 반으로 줄어드는 시간을 반감기라 한다. 반감기는 지구상의 어떤 조건에서도 변하지 않고 일정하다. 방사성동위원소마다 고유한 반감기를 갖는다. 


지층 속에 화석이 있다는 사실을 기록한 사람은 기원전 4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러나 화석을 지층 속에 남겨진 기록으로 최초로 의식한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그는 젊어서 토목기사로서 관개용수 공사에 종사하며 용수구의 단면에 조개 화석이 있음을 알았다. 그는 아주 옛날 그 아래는 바다의 지면이었으며 당시 바다에 살던 조개가 지층 속에 파묻혀 이윽고 육지화하여 조개화석이 되었다는 과학적인 화석관을 기록했다.


화석에 대한 사람들의 지식이 깊어져 지층과의 관계가 점차 밝혀지면 화석을 이용하여 지층을 구분하고 화석이라는 시간의 척도를 갖는 시계를 사용하여 지구의 역사를 해명하고자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층을 기초로 하여 지구의 역사가 꾸며질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실증한 사람은 영국의 측량기사 윌리엄 스미스였다. 지구는 고체 부분만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해양이나 대기와 함께 진화해 왔다. 현재의 지구과학에서는 화성, 금성 등과 같은 다른 태양계 행성들과 비교가 이루어지고 지구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태양계 전체 또는 은하계, 우주까지도 포함한 시각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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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곁에 머물기 - 지구 끝에서 찾은 내일
신진화 지음 / 글항아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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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학(glaciology)은 1960년대에 시작된 젊은 학문이다. 빙하 곁에 머물기의 저자 신진화 박사는 빙하(glacier) 코어로 과거 기후를 연구하는 빙하학자다. 저자는 빙하는 기후 유언장(遺言狀) 같다고 말한다. 빙하는 눈이 내리는 당시의 기후와 환경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빙하학(glaciology)에서 눈(snow)은 떨어진 이후 변하지 않은 물질을 말한다. 펀(firn)은 눈과 얼음의 중간 단계(눈도 얼음도 아닌 단계)의 물질을 이르는 말이다. 사하라 사막의 먼지, 화산 폭발로 분출한 화산재가 지구 대기를 떠돌다 빙하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빙하로 46억년의 지구 역사를 모두 해명할 수는 없다.


저자에 의하면 남극에서 시추한 빙하 코어로 80만년 동안의 기후와 환경을 연속적으로 복원했고 그린란드 빙하 코어로 12만년 동안의 기후와 환경을 복원했다. 저자는 지구의 비밀을 세상에서 처음으로 쥐게 되는 빙하학자로 평생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46억년이라는 긴 기간을 살아낸 우리 지구는 셀 수 없이 많은 전환점을 겪으며 오늘날의 지구가 되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인류 활동의 영향이 없더라도 자연적으로 농도가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이산화탄소 실측 자료는 이미 인류 활동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이산화탄소가 자연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과거 기후 자료를 활용하면 자연적으로 이산화탄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로 과학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했지만 시간을 되돌려 갈 수는 없다. 다만 46억년 동안 지구가 남긴 화석, 해양 퇴적물, 빙하, 퇴적암 같은 흔적을 활용하면 46억년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다.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과거 기후나 환경 데이터를 프록시(proxy)라 한다. 눈은 대기 중을 떠도는 에어로졸과 함께 땅에 쌓여 단단해지기를 거듭하면 빙하가 된다. 빙하 최상단 눈송이들 사이로 대기가 자유롭게 대류하지만 시간이 지나 더 많은 눈이 쌓이면 눈송이 간격이 좁아지고 대기가 확산의 원리에 따라 이동한다. 


빙하는 과거 대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냉동 타임캡슐이다. 빙하를 이용해 측정한 이산화탄소 데이터는 과거 대기를 직접 측정한 데이터이므로 프록시가 아니다. 극 지역 빙하를 활용하면 연속적으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과거 기후에 대한 해석에는 명료한 단 하나의 원인보다 다양한 가설이 난무한다. 한국에는 빙하가 없다. 따라서 빙하 코어도 없다. 빙상(땅 위를 넓게 덮고 있는 얼음 덩어리)이 대륙이나 높은 산에 형성되면 중력에 의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얼음이 강처럼 흘러내린다. 이를 빙하라고 한다. 빙하는 얼음의 강이라는 뜻이다. 


남극에서는 빙상이 바다 위까지 흘러내려 얼어 있다. 이를 빙붕(氷棚)이라 한다. 강처럼 흐른다고 하지만 그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빙상에서 떨어져 나와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빙하 조각을 빙산(iceberg)이라 한다. 이렇게 움직이고 깨지면서 빙하의 두께는 무한정 늘지 않고 특정 기후 조건 하에 일정하게 유지된다. 눈이 녹지 않고 쌓일 수 있는 최소의 높이를 설선(雪線; snow line)이라 한다. 남극 대륙과 그린란드는 설선의 높이가 0미터로 눈이 육지에서 쌓이면 거대한 대륙빙하를 형성한다. 그래서 남극과 그린란드를 옆에서 보면 프라이팬 뚜껑으로 덮어둔 것처럼 육지 전체가 오목하게 빙하로 덮여 있다.


우리나라에는 빙하가 없지만 오히려 날씨가 뜨거운 적도에는 빙하가 있다. 고도가 높은 산이 있기 때문이다. 고도가 100미터 높아질 때마다 0.6도씨 정도 기온이 낮아진다. 온대 지역은 해발 고도 1000~5000미터에서 눈이 쌓인다. 노출된 빙하는 푸른빛이 돈다고 해서 청빙(靑氷; blue ice)이라 한다. 과학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최남단은 남극 대륙의 장보고 과학기지다. 극 지방은 위도 66.5도 이상 지역이다. 자전축이 기울어진 채 공전하면 극 지역은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 현상이, 겨울에는 극야(極夜) 현상이 나타난다. 해가 지지 않거나 뜨지 않는 곳이 연중 하루라도 있다면 그것은 극지다. 


구체적으로는 북극은 7월 평균 기온이 섭씨 10도 이하인 지역을 말한다. 실질적인 남극은 남극 수렴대 이남을 말한다. 남극 수렴대는 연중 평균 온도가 영하 4.0~영하 1.8도인 남극의 차가운 해수와 연중 평균온도가 4~10도의 북극의 따뜻한 물이 만나는 경계를 말한다. 남극은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하다. 남극에는 비나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사하라 사막보다 건조하다. 남극은 사막이다. 눈바람이 휘몰아치는 남극을 하얀 사막이라 한다. 남극의 빙상이 다 녹는다면 해수면이 60미터나 상승한다. 이 빙상이 빛을 거의 다 반사하기에 남극은 세상에서 가장 춥다. 


극지에서 빙하를 얻으려면 세상에서 가장 극한 환경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도가 높고 세상에서 가장 춥고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그린란드와 남극에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간을 되돌려 확인할 수 없는 과거 기후와 환경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빙하를 얻기 위해서 빙하학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극지역으로 들어간다. 대기중으로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면 사라지는 데 수백~수천년이 걸린다.(61 페이지) 미국의 지질학자 마샤 비요르네루드는 물 한 방울이 대기에 머무는 기간인 9일은 이해 가능하지만 이산화탄소가 사라지는 데 걸리는 기간인 수백년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다고 말한다. 


24 시간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자연적으로 등락(騰落)한다. 식물의 광합성 때문이다. 광합성이 활발한 낮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가장 낮고, 광합성이 줄고 호흡이 늘어나는 저녁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가장 높아진다. 계절별로도 차이가 난다. 여름에는 광합성이 활발해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아지고, 겨울에는 광합성이 줄어(이산화탄소 소비가 줄어)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북반구는 남반구와 계절이 반대여서 이산화탄소 농도 패턴도 반대다. 지구상에서 이산화탄소가 존재할 수 있는 곳은 대기권, 해양권, 육상생물권, 암석권이다. 이를 이산화탄소 저장소라 한다. 가장 큰 이산화탄소 저장소는 암석권이다. 반응 속도가 매우 느려 기후 연구에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해양권을 든다. 이산화탄소가 다양한 저장소를 오가는 현상을 탄소 순환이라 한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대기와 해양, 육상생물권 사이의 반응 결과다. 1000년 이상의 규모로 보면 탄소를 가장 많이 저장하는 곳은 심해다. 그르노블 연구소의 클로드 로리우스 박사 이야기가 흥미롭다. 시추한 빙하에서 떼어낸 얼음 조각을 위스키에 넣자 샴페인을 따른 것 같이 얼음 조각에서 방울이 톡톡 터져 나왔다. 이를 보고 그는 과거의 기체가 빙하 속에 담겨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극 지역 빙하에는 불순물이 가득 박힌 것처럼 작은 공기 방울이 보인다. 이 방울들을 다 터뜨려 포집한 공기를 빼내고 농도를 측정하면 과거 이산화탄소 농도를 복원할 수 있다. 


빙하는 남극과 그린란드에서 얻을 수 있지만 정확한 이산화탄소 농도 복원을 위해서는 남극 빙하만 사용한다. 그린란드 빙하에는 먼지가 많아 그 안에 있던 탄산칼슘 빙하의 산(酸)이 반응해 인공적으로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10만년 단위로 움직이는 것은 태양 복사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 기후는 지구의 세차운동, 지구 자전축 기울기 변화, 이심률의 변화 같은 천문학적인 요인에 의해 주기적으로 변동했다. 이산화탄소는 수온이 낮으면 바다에 잘 녹는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 세계 해양은 표층을 흐르는 표층수와 해양 깊은 곳을 흐르는 심층수가 컨베이어 벨트처럼 연결되어 돌아다닌다.(86 페이지) 


이 해양 순환은 밀도의 영향을 받는다. 밀도는 온도와 염분의 영향을 받는다. 온도가 낮고 염분이 높으면 밀도가 높고, 온도가 높고 염분이 낮으면 밀도가 낮다. 밀도가 높은 물은 바다 깊숙이 천천히 순환하고, 밀도가 낮은 물은 표층에서 순환한다. 지구가 따뜻했다가 갑자기 빙하기가 찾아온 적이 있다. 겨울에도 상대적으로 따뜻한 시기와 추운 시기가 있듯 빙하기에도 상대적으로 따뜻한 시기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해류 컨베이어 벨트가 중요하다. 적도의 따뜻한 물을 북쪽으로, 북극의 찬물을 남쪽으로 보내는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류(AMOC; 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를 말한다. 이 벨트가 멈추는 것을 AMOC 붕괴라 한다. 


그린란드와 남극은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한쪽 온도가 하강하면 반대쪽 온도는 상승한다. 이를 양극성 시소 반응(bipolar seasaw) 반응이라 한다. 지구가 티핑 포인트를 넘어 지금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면 기후 패턴도 달라지고 결국 우리는 지구에 대해 다시 공부해야 한다. 그린란드의 빙하기 도래는 갑작스럽다고 표현했지만 수백년에 걸쳐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빙하 시대를 살고 있다. 46억 년 역사를 통해 보면 지구는 다섯 번째 빙하 시대를 보내고 있다. 지구 입장에서 지구 온도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지구가 뜨거워진다는 말은 정확한 말이 아니다. 


수백 수천년 이상 눈이 연속적으로 쌓여 형성된 얼음은 빙하 자체의 압력, 지구 중력, 지형 등의 영향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그린란드 빙하는 일반적으로 내륙에서 해안을 따라 흐르다 가장자리에서 녹고 깨져 없어진다. 그래서 빙하가 무한히 자라지는 않고 기후 조건만 일정하다면 일정한 수준으로 두께를 유지한다.


지구에 존재하는 물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지구 내에서 물이 순환하는 과정을 물순환이라 한다. 태양으로 데워진 바닷물의 일부가 수증기로 증발한다. 수증기가 계속 상승하여 고도가 높은 곳에 이르면 낮은 온도로 인해 구름으로 응축된다. 구름은 지구를 떠돌다 비나 눈의 형태로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구름 중 일부는 극 지역이나 고산 지역까지 넘어가 눈의 형태로 땅으로 떨어져 그곳에서 수천 년 동안 퇴적되어 빙하를 형성한다. 이렇듯 전 지구적으로 물은 순환한다. 저위도에서 증발한 수증기는 극 지역까지 이동한다. 


이동하는 동안 수증기는 구름이 되었다가 비나 눈으로 내린다. 무거운 원소가 가벼운 원소보다 더 쉽게 강수로 내리고 가벼운 원소는 극 지역까지 간 뒤 눈으로 내려 빙하를 만든다. 빙하에 남아 있는 무거운 원소의 비율은 수증기가 거쳐온 지점들의 온도를 반영한다. 빙하의 수소와 산소 동위원소비를 분석하면 당시 눈이 내린 지역의 온도 변화를 추정할 수 있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낮았던 시기에 내린 눈에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수소와 산소 동위원소의 양이 적고, 평균 기온이 높았던 시기에 내린 눈이나 비에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수소와 산소 동위원소의 양이 많다. 


단스고르-외슈거 순환이란 빙하기에도 단기간의 온난화 경향이 있음을 뜻한다. 긴 시간 스케일에서 안정적으로 보이는 간빙기도 자세히 1000년 단위로 관찰하면 기후 변동을 관찰할 수 있다. 9~13세기에 해당하는 중세 온난기, 14~18세기 사이의 400년에 걸쳐 북반구 평균 기온이 섭씨 0.6도 정도 하강한 소빙기가 대표적이다. 지구는 현재 비정상적으로 긴 간빙기를 겪고 있다. 우리는 11,700년전에 시작된 홀로세 간빙기(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이동한 시기)를 살고 있다. 간빙기는 1만년 정도 지속되다가 끝나기에 이제는 빙하기가 시작되어야 하지만 간빙기가 계속되고 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에 빙하기가 시작되었어야 하는데 홀로세 후기에 인류 활동으로 인한 온실 기체 농도 상승과 지구의 낮은 궤도 이심률 때문에 빙하기가 시작되지 않는 듯 하다. 온도가 상승하면 물이 더 강하게 증발한다. 그러면 가뭄이 발생하고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산불 빈도가 증가한다. 증발한 수증기가 어느 지역에서는 강수로 내리니 특정 지역에 홍수가 발생한다. 지구는 지금보다 3도 이상 온도가 올라도 버텨낼 수 있다. 문제는 인류다. 


저자는 대학원 공부에 대해 이야기한다. 논문을 쓰기 위해 다른 논문을 읽고 조각난 지식을 모아 퍼즐을 맞추듯 지식을 늘려가기에 자신이 작성한 논문의 내용은 깊이 알지만 연구 주제가 속한 상위 분야인 고기후나 빙하학의 내용을 전부 알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연구를 할수록 모르는 지식이 너무 많으니 자신의 연구와 관련된 내용을 선택적으로 소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과학에 절대적인 사실은 거의 없다. 무한한 가설이 난무할 뿐”(195 페이지)이라 말한다. 


저자는 "뚜렷한 목적 없이 논문 편 수만 채우려고 참여한 연구는 잔인하리만큼 힘들었다. 연구라는 게 매 순간 실패와 고뇌를 마주하는 작업인데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주제를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199 페이지)고 말한다. ‘행복하지 않습니다‘란 챕터를 보자. 이 챕터에 이런 말이 있다. ”R&D 예산 삭감은 내게 일종의 사형선고 같았다. 내 인생 전체가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나는 왜 이토록 삶에 열정적이었을까. 원하는 일을 해보겠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주도적으로 살아온 내가 무척 미웠다.“(249 페이지) 


저자는 "논문을 마무리해야 함에도 완벽한 연구 결과를 세상에 보이고 싶다는 욕심에 한없이 붙들고 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시간은 유한하고 세상엔 중요한 연구가 많으니 어느 순간이 되면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걸 박사과정을 마치며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읽은 당신이 책을 덮고 대부분은 잊더라도 빙하학이 빙하로 미래 기후 예측을 하기 위해 과거 기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구과학에서는 수학의 1+1은 2처럼 100퍼센트 사실 또는 거짓은 좀처럼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과학적 사실 대부분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다양한 가설일 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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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첫 문장 - 역사로 익히는 과학 문해력 수업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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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영문학, 종교사 등을 공부한 인문학자인 미국 작가 수잔 와이즈 바우어(Susan Wise Bauer)가 쓴 ‘역사로 익히는 과학 문해력 수업’이란 부제의 책이다. 책은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책 36권’이란 이름으로 과학 명저들을 소개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위대한 과학 저술의 발달사를 따라가며 과학이 수행되는 양상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일으켰던 저술을 짚어보는 책으로 과학에 관심 있는 비전공자를 염두에 둔 작품으로 설명한다.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세부 내용에 빠져 과학 자체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책들(의 범람)이다. 


저자는 자신이 제시한 저술을 다 읽을 필요는 없고 시작하고 싶은 책을 고르라고 말한다. 책은 세상의 시초(를 열다), 과학적 방법론(이 탄생하다), 지구(를 읽다), 생명을 설명하다, 우주로 향하다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리스 사상가들이 언급한 퓌시스(phusis)는 자연으로 번역되지만 질서 잡힌 우주, 자연의 영역 전체를 의미한다. 그리스인들은 경계 없이 자연스럽게 섞인 지적 환경에서 살았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는 큰 그림으로 과학 이론을 쓰려고 한 첫 의식적 시도였고 모든 것에 대한 이론을 만들려고 한 첫 시도였다. 


플라톤은 철학은 이데아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과학은 이데아의 타락한 그림자로 보았다. 플라톤에게 변화는 진보가 아닌 타락이었다. 그에 의하면 자연세계는 의도된 것보다 언제나 모자라다. 그리고 변화가 있을 때마다 이데아로부터 멀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를 다룬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변화는 운동의 원리였고 영광스러운 완성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이 우리를 진리로 이끌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변화는 진화와 유사하다. 단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변화는 목적론적이라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은 변화의 과정을 이끄는 외부의 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배태된 잠재력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의 사다리(계층적 체계)는 중세의 존재의 대연쇄 개념으로 발전했다. 여기에서 가장 아래에는 무생물인 암석이, 가장 위에는 신(神)이 존재한다. 암석을 공부하며, 신을 공부(한다기보다 신에 적응하고자)하는 나는 그런 점에서 독특한 것인가? 의미 있는 일탈인지 모르지만 나는 암석보다 암석을 포함한 지판(地板)을 들어올리는(가령 수천만년전 테티스라는 바다가 있었으나 그 아래의 판이 들어올려져 에베레스트가 만들어진 것과 같은) 자연의 메커니즘(판구조 이론)에 더 관심을 갖는다. 


수잔 와이즈 바우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 플라톤이 시궁창에 내던진 ‘변화’를 구해내 자연의 중심 원리로 승격시킴으로써 과학 연구를 가차 없이 진전시키는 동력이 되게 했다고 말한다.(31 페이지) 오랜만에 양적 증감, 질적 변화, 위치 이동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운동을 본 아리스토텔레스와, 위치 이동에만 특권적 위치를 부여한 데카르트 이야기가 포함된 책(이정우 교수 지음 2000년 출간 거름 출판사 버전 ’접힘과 펼쳐짐‘ 37 페이지)을 읽어야겠다. 이 책에 이런 내용(질의응답)이 있다. 데카르트는 기계론을 펼치면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이중적이라(어떤 의미에서 비겁하다)고 말하자 저자가 “신의 존재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기계론을 택하면 신의 개념은 필연적으로 요청된다.”고 말한 대목이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와 플라톤주의자가 모두 과학 저술에 수학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으나 그 이유는 정반대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 자체를 알고 싶어 했지 그것의 측정치를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산술과 기하를 ’모방본에 만족하는 데서 이데아를 이해하게 하는 데 유용‘하다고 인정했지만 추상을 다룰 때만 수가 유용하다고 보았다. 플라톤에게 기하학은 이데아의 형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어야 했다. 에우클레이데스와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1세 사이의 대화에서 나온 이런 말은 어떤가.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기하학 공부에는 지름길도, 신성한 계시나 희생 의례도 필요하지 않으며 어떤 특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정신의 평정은 결코 감각적 쾌락이 아니었다. 저자는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움직이고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어야만 별들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며 우리가 두 눈으로 볼 때에만 그것의 진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음을 지적하며 하지만 인간의 맨 눈으로는 두 눈을 다 뜨고 본다고 해도 태양 중심 체계를 증명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68 페이지) 코페르니쿠스 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으로 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면 허공을 가르는 지구의 움직임을 그 표면에 사는 우리가 왜 느낄 수 없는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방식은 연역 추론에 크게 의존한다. 일반적인 전제에서 출발해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가령 모든 무거운 물질은 우주의 중심을 향해 떨어진다(대전제), 지구는 무거운 물질로 되어 있다.(소전제), 지구는 떨어지지 않는다(소전제), 지구는 이미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결론) 식이다.(73 페이지) 베이컨은 연역법이 증거들을 왜곡하는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마음대로 질문을 먼저 설정하고는 경험을 자기 편한 대로 구부려 자신의 결론에 찬성표를 던지게 만듦으로써 줄줄이 묶인 죄수를 끌고 가듯 경험을 끌고 간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가 원자론으로 미신과의 끈을 끊었듯 베이컨은 실험 방법론으로 아리스토텔레스와의 끈을 끊으려 했다.(77 페이지) 도구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도구를 물화(物化)된 이론이라 본 학자가 있지만 본문에는 세포라는 말을 처음 쓴 훅(로버트 훅)이 한 ’도구는 더 이상 감각의 확장이 아닌 지식의 열매이자 완벽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이 나온다. 


조르주 루이 르클레르(뷔퐁; 1707-1788) 백작과 나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떤 일을 계기로 광범위한 관심이 좁혀졌다는 것이다.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뷔퐁은 수학, 물리학, 화학, 현미경학, 식물학 등 광범위한 관심사를 공부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며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고, 조사하고,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책을 냈던 인물이다. 이런 종류의 광범위한 관심사와 생계를 위해 돈을 벌 필요가 없는 부유함의 결합은 당시 지구과학 연구자의 필수 요건이었다. 


그런 그가 새로운 전환의 길에 들어선 것은 30대에 프랑스 왕실의 눈에 띄어 평생 왕실 정원의 큐레이터 직(職)을 수행하면서부터다. 이 일을 계기로 뷔퐁의 광범위한 관심사는 지구와 지구 생물, 체계 등으로 좁혀졌다. 수동태로 뷔퐁을 수식한 것은 왕실 정원의 큐레이터 직을 맡은 것은 그의 자의이지만 일에 충실하다 보니 몸의 범위와 지적 관심사가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결과 불가피하게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여지가 높기 때문이다. 2025년 현재 6년째 지질해설사 일을 하는 나는 지구과학에 주된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역사와 철학에도 어느 정도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많은 분야의 책을 읽던 비효율이 많이 극복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임스 허턴(1726-1797)은 우리 주변의 지구는 과거에 발생한 격변적 사건, 이례적인 신성의 개입 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금도 지속되는 밀물과 썰물, 물살의 치고 빠짐, 퇴적과 침식작용을 통해 형성되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인물(뷔퐁 백작, 제임스 허턴)로 인해 지질학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허턴이 말한 과정은 매우 느리게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허턴은 뷔풍이 암시만 했던 것을 명시적으로 표현했다. 지질학적 시간인 심원한 시간은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과 너무 달라서 몇 년을 최소 단위로 삼더라도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조르주 퀴비에(1769-1832)는 지구가 여섯 번의 격변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파리 지층의 구성물은 불연속적으로 갑자기 변화한 것이며 허튼의 동일과정설과 달리 점진적으로 변화한 것이 아니었다. 퀴비에는 동일한 방법론을 따랐지만 허턴과 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다. 허턴은 대대적인 변화 없이 한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경로로 지구의 역사를 해석했고, 퀴비에는 여러 차례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단절되며 진행되는 경로로 지구의 역사를 해석했다. 격변설을 제안한 퀴비에의 제자였다가 동일과정설로 돌아선 찰스 라이엘은 과거에 있었던 한 차례의 사건이 현재 지구 형태의 원인이라면 지질학자가 이성적으로 현재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과거에 있던 모든 원인은 현재에도 여전히 작용하며 관찰 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그에 의하면 그 원인들은 결코 오늘날과 다른 강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이엘이 말한 원리는 세 가지다. 1) 활동성; 과거의 작용했던 모든 힘은 현재에도 작용하며 관찰 가능하다. 2) 반격변설; 이 힘들은 과거에도 강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힘의 정도는 변하지 않는다. 3) 평형 상태 시스템으로서의 지구; 지구의 역사는 방향성이나 진보성을 갖지 않는다. 모든 시대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1960년대 미국의 지질학자 월터 앨버레즈 역시 동일과정설이 여전히 지구과학 분야의 정설이며 과학계는 지구의 과거에 정말로 극단적인 사건이나 격변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다고 언급했다. 라이엘의 원리에 동일과정설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영국의 자연 철학자이자 성직자인 윌리엄 휴얼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 동일과정설을 엄격하게 따르면 지질학이 대답하지 못한 가장 큰 질문 하나가 영영 미제로 남겨진다는 점이었다. 바로 기원에 대한 질문이다. 


저자는 '지구는 매우 복잡한 연구 대상이다. 물리법칙이나 화학 원리와 달리 지구는 장소이고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동일과정설은 아무런 발전이 없는 정적인 평형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서 홈스는 '동일과정설이 큰 진보를 이루긴 했지만 그것을 너무 교조적으로 적응할 경우에는 우리를 옆길로 오도할 수 있다고, 동일과정설은 여전히 지질학의 기본 전제이지만 지구의 역사를 시작과 방향과 끝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는 쪽으로 완화되었다'고 썼다. 


방사성 원소의 붕괴는 라이엘의 엄격한 동일과정설에 흐르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재도입했다. 지구의 시간에 시작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이제 불가능해 보였다. 독일의 천문학자 알프레드 베게너는 지구가 사실은 완전한 고체가 아니라고 보았다. 유체인 핵이 가운데에 있고 그 곁을 밀도가 다른 여러 개의 층이 감싸고 있다고 보았다. 해리 헤스는 맨틀이 해령의 꼭대기로 올라왔다가 다시 수평으로 서로 멀어지는 운동을 함에 따라 대륙이 그 흐름을 타고 이동한다고 썼다. 


할렌 브레츠는 깊게 패인 현무암 굴과 기둥들로 이루어진 컬럼비아 고원에 대해 이렇게 썼다. 느리고 점진적인 침식 과정으로는 그 지형을 설명할 수 없다. 지질학에서 오랫동안 설명 요인에서 배제되었던 격변설이 다시 등장했다. 이탈리아 암석층에서 뜬금없이 이리듐 원소가 다량 발견되었다. 월터 알바레즈 부자는 이리듐이 지구보다 혜성과 소행성에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부자는 이리듐이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한 데서 온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앨버레즈는 충돌로 생긴 분화구를 찾는 데 집중했다. 1991년 10년간의 수색이 끝났다. 구덩이는 유카탄 해안에 수천 년 동안 쌓인 더께 밑에 숨어 있었다. 폭이 무려 200킬로미터가 되었다. 


과학은 재미있는 이야기에 약하다. 라이엘이 말한 길고 점진적인 역사는 딱히 마음을 사로잡울 만큼 흥미롭지는 않다. 라마르크는 혈액이 없는 동물은 척추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현대 용어인 무척추동물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화석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부록에서 라마르크는 화석이 지구의 표면이 여러 시절에 겪은 혁명적 변화 그리고 그에 따라 지구상의 생물들 또한 겪었을 변화를 알려주는 지표라고 언급했다. 뷔퐁 이래로 지구가 변화를 겪는다는 것은 이제 그리 놀라운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생물이 변화를 겪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라마르크는 생물의 역사를 지구의 역사와 결합했다. 지구가 달라지면서 지구에 사는 생물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구의 변화와 지구에 사는 생물의 변화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이 둘은 별도의 학문 분야다. 지질학과 달리 생물학은 시작과 끝의 문제를 제쳐두는 사치를 누릴 수 없었다. 움직임은 변화다. 태어나는 것도 변화다. 죽는 것도 변화다. 생물학자는 단순히 이를 묘사만 해서는 안 되고 변화의 존재와 목적을 설명해야 했다. 에르스트 헤켈은 라마르크에 대해 '생물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파생했다는 진화 이론을 주류 과학 이론이자 생물학 전체의 철학적 기반으로 정립한 영예가 영원히 그에게 있기를'이라고 썼다. 


종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던 동안 다윈은 다른 자연학자들의 책도 읽었다. 다른 이들의 논의해서 일부는 빌려오고 일부는 거부했다. 찰스 라이엘은 다윈이 비글호 항해를 준비하던 때에 지질학 원리를 펴냈다. 다윈은 그 책을 항해에 가지고 가서 꼼꼼히 읽었다. 다윈은 인류가 스스로에 대해 가져온 가장 소중한 개념인 인류의 고유성이라는 개념과 생물학이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저자는 줄리안 헉슬리는 다윈 구출 유전자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206 페이지) 


그의 할아버지 토마스 헉슬리는 '종의 기원' 원고를 처음 읽은 사람 축에 속한다. 그는 그것을 읽고 다윈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이자 친구가 되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십여 년 뒤에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종의 기원은 '프린 키피아'가 천문학에 미친 영향만큼이나 혁명적인 영향을 생물학에 미칠 책이라고 언급했다. 평생에 걸쳐 비판자들에 맞서 다윈주의 이론을 강력하게 옹호한 토마스 헉슬리는 스스로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까지 지었다. 줄리안 헉슬리는 토마스 헉슬리의 손자였다. 1942년에 나온 헉슬리의 '진화; 현대적 종합'은 두 가지 면에서 다른 책들과 달랐다. 우선 헉슬리는 의도적으로 과학자 뿐 아니라 관심 있는 비전문가까지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최초로 종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H.G 웰스에게 받은 글쓰기 훈련이 큰 도움이 되었다. 문체의 명료성과 구체성, 어려운 전문 용어 없이 전문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능력 덕분에 이 책은 즉시 성공을 거두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나일스 엘드리지와 함께 동일과정설과 격변설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 단속 평형설을 제안해 진화생물학계에서 유명한 학자다. 단속평형설은 생물 종이 본질적으로는 오랜 기간 동일하게 유지되지만 중간중간 상대적으로 빠른 굵직한 변화의 시기를 거친다는 이론이다.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에 대한 반론인 '인간에 대한 오해'는 윌슨의 책처럼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다. 


윌슨처럼 굴드도 글 솜씨가 좋았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인 '자연사'에 정기적으로 기고했고 여러 전문 저술을 집필했으며 두 권의 매우 인기 있는 대중과학서를 쓰기도 했다. '인간에 대한 오해'에서 굴드가 펼친 논리는 생물학적 결정론의 한 가지 특정 사례에 대한 집중적이고 강력한 반박이었다. 21세기에도 적어도 미국에서 우리는 진화 과학자들과 창조론자들의 싸움을 접한다. 하지만 생물학적 결정론자들과 결정론을 거부하는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의 싸움은 범위가 훨씬 넓고 더 복잡하다. 


1997년 굴드는 그가 다윈주의적 근본주의라고 부른 것을 통렬히 비난했다. 다윈주의적 근본주의란 생명의 모든 것을 자연선택을 통해 설명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굴드는 인간을 단지 성공적인 재생산을 위해 분투하는 유전자들로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다윈주의적인 개념으로 다윈의 독창적 이론이 가진 급진적 의도를 우스꽝스럽게 뒤튼 것이며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굴드와 지지자들은 그 외에 다른 요인들도 작용한다고 믿었다. 신성한 개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중층적인 요인들, 너무나 복잡해서 단순히 유전자의 생존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요인들이 작용한다고 본 것이다. 


그들은 인간 지능의 생물학적 진화도 분명히 그런 요인 중 하나일 테지만 그 외에도 다른 요인들이 여전히 작용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유기체의 디자인이나 다양성과 관련해 막대한 복잡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암으로 사망하기 얼마 전인 2002년 굴드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유기체의 어떤 특징들은 자연선택의 알고리즘에 의해 진화하고, 어떤 특징들은 자연선택이 아닌 종 중립성에 기반해서, 하지만 자연선택만큼이나 알고리즘적인 작용으로 진화하며 어떤 특징들은 역사의 우연이 일으키는 변덕에 의해 진화하고, 어떤 특징들은 다른 과정들의 부산물로서 진화한다. 왜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세계가 좁게 설정된 하나의 원인에 항복해야 하는가? 더 중요하고 일반적인 것들 그리고 더 특수한 것들을 모두 생각해보자.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과학적 이해에 종속되고 모든 것은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뉴턴은 태양계에서 작용하는 온갖 중력의 힘들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무한히 갈 수 없기에 가끔 한 번씩 신이 개입해서 천체들을 섬세한 균형 상태로 되돌리는 초기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이렇게 복잡하기 짝이 없는 체계라면 적어도 최초에 출발시킬 때라도 신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폴레옹 황제가 라플라스에게 ’천체 역학‘이란 저술에 신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자 라플라스가 여기에는 신을 가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은 무신론을 말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이라는 말도 흥미롭고 유익하다. 라플라스의 해명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신다고 하지 않고 비가 온다고 말하는 것은 무신론을 말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과 차원이 같다. 라플라스는 시작 시점에도 신의 개입은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우스는 무한한 우주가 삼차원 존재인 인간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에 따라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우스는 지구 자기장을 관측한 결과와 수학적 도구를 결합해 지구 자기장이 지구 심부에서 기원한다는 사실을 밝힌 인물(지구에 관한 작은 책 참고)이기도 해 놀라움을 안긴다. 에우클레이데스 기하학을 뒤흔드는 가우스의 과제는 제자인 리만에게 넘겨졌다. 리만이 제시한 개념이 4차원이다. 양자 이론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슈뢰딩거가 (우리가) 파동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물리학은 현실과, 전기 역학의 법칙과,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경험과의 접점을 찾을 수 없게 된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양자란 불연속적인 에너지를 말한다. 보어는 자신의 견해를 양보하지 않았다. 보어에게 양자 도약과 일상의 경험을 규율하는 물리학은 별개였다. 양자 도약은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덜 실재인 것은 아니었다.(266 페이지) 보어의 조교가 하이젠베르크였다. 하이젠베르크는 분자보다 큰 물체에 대해서는 불확정성이 극히 작다는 점을 잊지 않고 덧붙였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성성 자체가 실재한다고 보았고 슈뢰딩거, 플랑크, 아인슈타인은 측정 방법이 없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이 우리의 감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실재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보았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수많은 행성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면 허블은 우리 은하가 우주의 수많은 은하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무한해 보이는 것은 시공간의 곡률이 일으킨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이 견해를 바꾼 것은 마운트 윌슨 관측소에서 직접 관찰을 하고나서였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모든 물질이 한 점으로 응축되어 있었던 제로 지점이 있어야 한다. 물리학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현상에 특이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설명의 부재였다. 


스티븐 와인버그는 은유에 강했다. 그는 만일 거인이 있어 태양을 앞뒤로 흔든다면 지구의 우리는 8분 뒤에야 그 효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최초의 3분‘을 읽도록 하자. 라플라스의 악마에서 악마란 사악한 영혼이 아니라 가설적 존재라는 의미다. 


이론적으로 라플라스의 악마는 미래뿐 아니라 과거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앙리 푸앵카레가 반론을 폈다. 수학에서 말하는 카오스는 예측불가능성을 말한다. 조건부적이고 실용적 의미에서의 그것이다. 우리가 복잡계에서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예측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영향을 미치는 구성 요소들을 우리가 아직 충분히 깊이 알지 못해서다. 뉴턴적임을 알 수 있다. 카오스 이론의 바닥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약속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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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7219 - DMZ에서 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웠다
이상철 지음 / 시공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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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GOP 중대장을 거쳐 2019년 연천, 철원의 제 5사단장으로 부임해 DMZ 유해 발굴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뒤 중장으로 전역해 현재 한양대 특임 교수로 재직 중인 이상철 저자의 책이다. 제목인 38.17.21.9는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의 북위(北緯)를 지칭한다. 그런데 동경(東經; 127.06.34.2)까지 명기해야 정확할 것이다. 동경은 큰 글씨로 표시된 북위 아래에 작은 글씨로 기록되어 있다.


화살머리고지는 백마고지 서쪽 3km 지점의 고지로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다. 한국전쟁 당시 화살머리고지는 프랑스 군대가 용감히 사수한 진지였다. DMZ 유해발굴이 성사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에 따른 결과다. DMZ는 말이 비무장지대이지 불발탄, 지뢰, 전쟁 후 수거해 가지 못한 물품들로 가득한 위험지대이자 중무장지대다.


DMZ 안에서 이루어진 작업이기에 투입 병력은 방탄복과 방탄 헬맷을 착용해야 하고 방탄판도 착용해야 한다. 거기에 개인 화기(火器)와 장비 등을 휴대해야 하니 20kg이 넘는 무게를 이고 지고 올라가야 한다. 남방한계선 철책을 지키는 초소를 GOP(general outpost)라 한다. 비무장 원칙을 어기고 남북은 DMZ 안에 감시초소인 GP(guard post)를 운영한다. GP에 들어가려면 남방한계선 철책에 있는 통문을 열고 DMZ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 번 배치되면 2~3개월을 기다려야 나올 수 있다. 군 병력이지만 GP 밖으로 한 걸음도 다닐 수 없다. DMZ 유해발굴이라 하니 굉장히 한가로운 작전으로 비칠 수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인 DMZ 내에서의 극한 난이도의 작업이다. 휴전선(군사분계선)에 철책이 없고 1292개(유엔이 주관하는 696개+ 북한이 주관하는 596개)의 표지 기둥이 있다. 그러나 DMZ 내에는 추진철책이 있다.


앞으로 진출해 GP를 짓고 그 GP를 지키기 위해 철책을 설치한 것이다. GP에 들어가는 인력을 우리는 민정경찰, 북한은 민경대라 부른다. 군사작전이 아니라 치안유지 작업을 수행한다는 일종의 편법인 셈이다. 1973년 육군 3사단의 3.7 완전작전이 유명하다. 표지 기둥 보수작업을 하던 우리 군사를 북한군이 총격 도발하자 박정인 사단장이 북한 GP에 포격을 명령해 북한군 GP를 초토화 시켰다. 당시 북한군 GP 병력 29명 전원이 사망했다.


화살머리고지에서 북쪽으로 13km 지점에 북한의 780고지인 고암산이 있다. 일명 김일성 고지다. 한국전쟁 당시 그 산에 김일성이 올라 전투를 진두지휘했다는 설이 있다. 처음에 남과 북이 합동으로 유해를 발굴했지만 곧 중단되었다. 군사분계선에서 국군과 만난 북한군 여단장이 악수를 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해 총살된 뒤로다.


작업은 이렇게 진행한다. 지뢰 제거반이 들어가야 하고 공병대가 투입돼야 한다. 유해 발굴단이 투입되는 것은 물론이다. 기초적인 발굴 작업을 진행하는 장병들이 있어야 하고 유해 흔적을 발견하면 전문 발굴팀이 들어가 세부 작업을 진행한다. 언제 어디서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작업 과정 시작부터 끝까지 발굴팀을 보호하는 경계 병력이 있어야 한다. 의료 지원 병력, 통신 지원 병력, 식사와 간식을 보급하는 병력까지 있어야 한다. 작은 부대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대규모 작전'이다.


발굴팀은 크게 둘로 나뉜다. 기초 발굴 팀과 정밀 발굴 팀이다. 오렌지색 헬멧을 쓴 기초 발굴팀은 호미와 야전삽을 들고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의 토양을 초벌로 걷어내는 작업을 수행한다. 유해가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유해가 발견되면 검정 조끼를 입은 정밀 발굴팀이 투입된다. 이번에는 붓으로 조금이라도 긁힐세라 굉장히 신중하게 발굴 작업을 이어간다.


유해 하나를 완전히 발굴하는데 몇 주 혹은 몇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발굴한 모든 유해는 오동나무로 만든 작은 관에 넣는다. 충격에 부서지는 것을 방지하고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유해 조각을 일일이 한지로 감싸 차곡차곡 관 안에 넣는다. 조각을 채우면 관 뚜껑을 덮고 그 위에 명정(銘旌)까지 만들어 얹는다. 붉은 천에 흰 글씨로 만든 명정에는 6 25 전사자의 관이라는 글을 적는다.


유해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관을 흰 천으로 두르고 국군으로 추정되거나 확신하는 경우에는 관 위에 태극기를 씌운다. 약식 차례를 치른다. 아군이 분명한 경우에는 사단장이 직접 제례를 주관한다. 간단히 제례 음식을 준비해 관 앞에서 경례와 묵념을 하고 술을 따르는 의식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망자에 대한 예를 갖추려 최대한 노력한다. 제례를 마치면 복장을 단정히 갖춘 병사가 관을 목에 걸고 차량으로 이동한다.


봉송 차량이 지나는 길목에 장병들이 일렬로 도열해 경례하는 것으로 고인이 떠나는 길을 배웅한다. 육십여 년 만에 고지를 떠난 원혼들이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군종 장교들이 나와서 각각의 종교의식에 따라 망자의 영혼을 위로해준다. 그렇게 땅 속을 벗어난 유해는 국방부 감식소로 보내진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기나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야 한다.


영영 이름을 알지 못하는 유해가 거의 대부분이다. 매년 11월 말이 되면 유해 발굴 작전을 마감한다. 땅이 얼어 유해 발굴 작업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1945년 유엔이 창설된 이래 유엔군을 편성한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전쟁이다. 한국전쟁은 남쪽 끝까지 밀렸다가 북쪽 끝까지 밀고 올라갔으나 38선 인근에서 고착된 전쟁이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란 작품이 생각난다.


’DMZ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웠다‘란 부제처럼 저자의 시선은 따뜻하고 반듯하다. 저자는 유해가 발견된 자리에 작은 비석을 세웠다고 말한다. 이름이 적히지 않은 묘비였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죽은 자에게 지켜야 할 예의를 끝까지 지키려 노력했다. DMZ 유해 발굴 작전은 망자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예의, 군인에 대한 예의, 선대에 대한 예의를 절로 배우는 작전이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인간으로, 전후로, 핏줄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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