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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이 열리고 있다. 조재모 교수의 '궁궐, 조선을 말하다‘ 기억이 나 얼른 펼쳐보니 덕수궁은 세워지기 전이어서 김정호 선생의 ’수선전도(首善全圖)‘에는 나와 있지 않다.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지만 그림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덕수궁을 말하는 것은 덕수궁에 이르는 돌담길, 정동길 등을 산책하려는 두서 없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중섭은 누구나 아는 화가이지만 제대로 아는 바도 없지 않는가 싶다.


물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는 이름에 말을 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화가의 삶과 화풍을 분리해서 볼 수 없음에도 그의 신산(辛酸), 고초(苦楚)의 삶과 그림을 나누어 보고 싶다. 나는 그림 이상으로 화가가 생전에 살았던 곳에 더 관심이 간다. 통영, 제주 등... 모두 바다와 관련한 이 곳들은 결국 내가 아직 가지 못해 로망처럼 여기는 곳들이다. “한 겹 아래 저 세상으로/ 또 피난”(김혜순 시인의 시 ‘진행’의 일부)을 가는 마음으로 가고 싶은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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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손은 기대하고 있지 않은 질서가 나오면 무질서하다고 말하고 그 유감스러운 마음을 객관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폐해(弊害)이지만 들뢰즈가 말하는  무아론(’나‘에 집착하는 존재론을 깨는 것“)과 함께ㅡ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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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여러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승의 의지가 배우는 사람의 의지와 관계 맺고, 배우는 사람의 지능이 책의 지능과 관계 맺는 것이 진정한 지적 해방의 출발점이라는 랑시에르가 말한 스승, 레비나스의 우파니샤드적 스승, 들뢰즈가 말한 사유의 강제성(사유하도록 이끌리는 것), 그리고 그것을 완성시키는 '나와 함께 하자'고 말하는 유일한 교사인 스승..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하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으로부터는 무엇도 배울 수 없으며 우리에게 유일한 교사는 ’나와 함께 하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지요. ’피아노 레슨‘이란 소설을 생각하게 됩니다. 리스트의 계보를 잇는 러시아 피아니스트인 엘리오노라 시반에게서 음악과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호주 출신의 피아니스트 애나 골즈워디가 쓴 이 책에서 애나는 혼수(昏睡) 상태의 시반 선생님이 평소 연주하곤 했던 쇼팽의 녹턴 op 27 - 2를 연주하며 자신의 연주가 기도라고 생각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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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못 만나는 건 고아나 다름없지요. 스승이 완성한 데서 출발점을 삼을 수 있으니 스승이야말로 행운 중 행운입니다.”란 말씀으로 스승의 가치를 설명해주신 페친 K님. (레비나스의 제자를 자칭한 우치다 타츠루에 따르면) 레비나스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에는 책을 매개로 한 만남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직접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스승 곁에 앉는다는 의미를 가진 우파니샤드적 만남을 연상하게 하는 레비나스적 스승 - 제자 관계가 생각하게 하는 것은 스승 - 제자 관계에서는 고아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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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8-1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우샤니파드 ㅡ 시집 생각이 덜컥 나는군요!^^

벤투의스케치북 2016-08-14 11:5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김혜순 님의 시집인가요?

[그장소] 2016-08-14 11:52   좋아요 0 | URL
음, 아마도!^^

벤투의스케치북 2016-08-14 11:56   좋아요 1 | URL
네... 그 분이 쓴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좋은 시론, 문장론이지요... 이번 기회에 그 분의 다른 시집들을 읽어야겠습니다. 정독이요...

[그장소] 2016-08-14 11:58   좋아요 0 | URL
아..늘 정독이시잖아요!^^

벤투의스케치북 2016-08-14 12:01   좋아요 1 | URL
네... 그렇긴한데 워낙 집중해서 읽어야 할 시를 쓰시기에 그렇습니다..

[그장소] 2016-08-1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 그렇지만 잘 해내실 거라 믿어요!^^

벤투의스케치북 2016-08-14 13:18   좋아요 1 | URL
네.. 격려, 용기 주시는 말씀... 감사합니다...
 

 

한강 작가의 ‘흰’을 읽었다. 형용사인 한 음절의 단어를 제목으로 설정한 것이 새롭게 느껴졌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김인희 님의 페북 글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흰’은 엔트로피의 최소점을 의미한다.(정확하게 말하면 김인희 님이 엔트로피의 최소점을 염두에 두고 ‘흰’이란 말을 사용한 것이라 해야 옳다.) 김인희 님에 따르면 ‘흰’이란 말은 기형도 시인의 ‘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온 개’란 시의 마지막 행의 마지막 시어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날, 나의 플래시 속으로 갑자기, 흰”이 그것이다. 엔트로피의 최소점이란 말을 접하고 나는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떠올린다. 이바르 에클랑의 동명의 책이 나온데 힘입어서이다.


가능한 최선의 세계는 라이프니츠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가능한 최선의 세계‘는 가능한 최선의 세계란 개념을 수학으로 풀어낸 책이다.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에서 들뢰즈는 라이프니츠의 낙관론을 이상한 것으로 본다. 그래도 신과 대화하는 학문인 수학으로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풀어낸 책이니 기대를... 그래야 하리라. “...글을 쓴다는 것/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기대 없이,/ 하도록 돼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란 서동욱 시인의 ’스피노자‘란 시의 핵심부를 실천하듯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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