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별명 혹은 애칭


결혼 전, 수컷 멧돼지들의 술시중을 들었던 아내 멧돼지의 예명은 줄리였다. 다른 암컷 멧돼지들에 비해 마르고 여리여리한 체구를 지녔던 아내 멧돼지는 체구와는 걸맞지 않은 걸걸한 목소리와 툭 불거진 광대뼈로 인해 사납고 억세게 보이는 인상이었다. 뒷골목 똘마니 생활을 시작하던 무렵부터 술과 암컷 멧돼지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나였기에 술자리에서 처음 본 아내 멧돼지의 얼굴은 그닥 호감이 가는 인상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혼기도 한참이나 지났고, 술에 절어 엉망이 된 몸으로 젊고 어여쁜 암컷 멧돼지를 차지한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기에 주변의 다른 멧돼지들의 반복되는 권유에 못 이기는 척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별명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어렸을 적 나의 별명은 '꼴통'이었다. 젊은 멧돼지들의 교육을 담당하던 아버지 멧돼지는 밖에서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엄격' 그 자체인 경우가 많았고, 이에 불만이 많았던 나로서는 아버지 멧돼지의 눈을 피해 매번 밖으로 나돌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른들의 뜻에 반하여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서 하다 보니 '꼴통'이라는 말이 내 이름처럼 따라붙었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 때까지 그 별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와 더불어 친구 멧돼지들은 나를 '돌+아이' 혹은 '4차원'이라고 부르기 일쑤였다. 말재주도 없고 운동신경도 좋지 않았던 나는 친구 멧돼지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그 나이대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할 수밖에 없었고, 개중에는 더러 기괴하고 요상한 짓거리도 포함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나의 행동을 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교우관계에 있어서는 왕따나 다름없었던 나의 하루는 몸이 배배 꼬일 정도로 무료했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공부밖에 없었다. 아버지 멧돼지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러나 내가 멧돼지계에서는 가장 좋다는 대학에 진학을 하기까지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래의 다른 멧돼지들이 암컷 멧돼지들과 떼를 지어 이리저리 몰려다닐 때 나는 그저 부러운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이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는 틈만 나면 진흙 목욕을 하거나 썩은 나무를 일삼아 들이받기도 했다. 성체 멧돼지가 된 내가 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뒷골목 똘마니 시험에 9번이나 떨어졌던 것도 따지고 보면 비참했던 나의 청소년기와 무관치 않았다.


뒷골목 똘마니 시험에 합격한 나는 모든 걸 내 손아귀에 쥔 듯 의기양양했다. 그렇다고 뜻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려나갔던 건 아니지만 전임 리더 멧돼지 두 마리를 감옥에 보낸 후로 나는 승승장구했고, 경쟁자였던 장관 멧돼지의 가정마저 박살냄으로써 결국 나는 리더 멧돼지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멧돼지계의 관습이나 정서에 적합했던 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런 비정한 멧돼지로는 남고 싶지 않았지만 한 번 칼을 뽑았으면 완전히 싹을 잘라야 한다는 아내 멧돼지의 조언에 따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나를 비방하는 여러 멧돼지들이 잔인무도한 나를 일컬어 '짜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리더 멧돼지가 되는 과정에서도 나는 '도리도리', '무식이', '무능이', '술통', '개고기', '쩍벌이' 등 여러 별명을 함께 얻었다. 자랑스럽게도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얍삽이'로 불리는 '동운' 멧돼지나 '두꺼비'로 불리는 '상민' 멧돼지 등 내 측근 중에는 그들 각자에 어울리는 별명을 적어도 하나씩은 갖고 있는 듯하다. 별명 숫자를 셀 수도 없이 많이 갖고 있는 나에 비하면 그들은 아직 정치 새내기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남산 기슭의 음습한 곳으로 이사를 한 후 '동운' 멧돼지와 '상민' 멧돼지를 집으로 부르지 않았더니 섭섭하다며 난리를 치는 통에 어제는 그들을 불러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셨더니 아침에 늦잠을 잤다. 야행성인 멧돼지가 늦잠이라니... 얼마 전 젊은 멧돼지들의 참사가 있었지만 내가 측근들을 불러 부어라 마셔라 놀고 싶다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리더 멧돼지인 걸...


*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히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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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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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팠던 사람들은 인생을 미래완료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p.15)'는 문장에 힘을 얻었던 나는 그 문장으로 인해 정세랑의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를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소아 뇌전증을 앓았다는 작가. 그래서 여행을 즐기지 않았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여행을 피하며 살아왔다는 작가가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게 된 사연부터 말하기 시작하는 이 에세이는 400쪽에 가까운 분량도 분량이지만 무려 9년에 걸쳐 한 권의 여행 에세이를 완성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조금쯤 겁을 집어먹게 만들었다. 그러나 2012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해 독일의 아헨, 일본 오사카, 타이완 타이베이, 영국 런던까지 5곳을 여행하며 작가가 바라본 지구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책의 제목처럼 꽤나 흥미로웠던 게 사실이다.


"멀리, 뉴욕에서 반갑게 만난 우리는 같이 가고 싶은 곳은 같이 가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따로 다녔다. 신나게 메트로폴리탄과 자연사 박물관을 함께 갔고, S가 양키스 스타디움을 가는 날엔 내가 첼시의 갤러리를 가는 식이었다. 느슨한 동행이 있어 한층 즐거웠다. 우정은 차갑고 기분 좋은 아이스 와인의 느낌으로 지속되고 있다."  (p.66)


우리가 아는 여행기라 함은 사실 지명이나 유래, 유명 음식점이나 관광지, 유물이나 박물관 등을 저자의 안내에 따라 이끌리고, 좀 따분하다 싶은 역사적 지식이나 설명을 하염없이 읽게 되고,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나 사진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짓기도 하며, 여행객의 나른한 감상을 애틋한 감정을 섞어 읽게 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책은 마치 여행기를 빙자한 정세랑 본인의 자기소개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자기소개서라고 하기에는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게 길었지만 말이다.


"여자들의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세계 곳곳의 여자들의 삶에 대해. 여자 이름으로 된 소설들을 많이 쓴 것은 그래서인 것 같다. 하루는 처음으로 부르카를 입은 여자를 보기도 했다. 여자는 혼자 걷고 있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평범한 랄프 로렌 셔츠와 나이키 운동화 차림이었다. 색색의 평상복 사이에서 혼자 눈만 남기고 검은 천으로 휘감은 모습은 둔중하게 다가왔다. 어디까지가 당사자의 선택이고 어디서부터가 집단적 압력의 결과일지, 존중에서 비롯된 문화상대주의가 폭력에 대한 방관으로 변질되기 시작하는 지점을 어떻게 짚어낼지 항상 어렵게 느껴진다."  (p. 227)


긴 시차를 두고 쓰인 글이어서일까 작가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다. 과거와 미래, 동서 문명, 인간과 환경을 아우르며 이 시대에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인 의미와 생각들을 경쾌한 문체로 담고 있다. 여행을 기피하는 이런저런 이유들을 늘어놓던 작가가 결국 여행이 주는 장점과 이에 대한 본인의 애정을 동시에 드러냄으로써 책의 첫머리에서 쏟아냈던 여행 기피의 이유들이 괜히 머쓱해지게 만들기도 하지만 글에서 보이는 작가의 밝고 순수한 색채가 결국 독자의 마음을 사르르 녹게 만들고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결국 해가 질 무렵, E씨와 역 앞에서 헤어지게 되었고 아쉬운 마음에 주소를 주고받았다. E씨와의 여섯 시간은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서 얻은 빛을 오랫동안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보답을 바라지 않는 친절을 곱씹을수록 나도 E씨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p.284)


다정함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이 책은 정세랑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사실 같은 자리에서 자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쏟아낸다는 건 꽤나 쑥스러운 일이지만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타국에서 마치 독백을 하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광경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여행하며 마주했던 '이야기보다 더 이야기 같았던 순간들'을 빌미로 자신의 안쪽에 축적된 것들을 속 시원하게 풀어낸다.


'제주도를 사랑하면 제주도에 너무 자주 가서는 안 되듯이' 하와이를 사랑하게 된 작가는 '하와이로 은퇴하겠다는 농담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유'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면서 가는 곳마다 '자유'를 언급하는 어느 정치인처럼 어쩌면 우리는 "내가 내 돈 쓴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라는 뻔뻔한 태도로 우리가 사는 지구 곳곳을 여행하며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이곳을 제 것인 양 훼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세랑 작가처럼 마음 따뜻하고 무척이나 지구를 사랑하는 여행객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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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젖는다는 건 움푹 팬 시간의 분지를 하염없이 걷는 일이다. 그곳에선 가까운 과거와 먼 과거가 뒤섞이고, 내 것도 아닌, 누구의 것었는지도 모르는, 때로는 출처도 주인도 알 수 없는 낯선 경험들이 오가기도 한다. 눈물과 땀의 시내가 졸졸 소리를 내어 흐르고, 왁자한 웃음과 작게 속삭이는 사랑의 밀어들이 꽃처럼 피어나는 곳. 삶이란 끝없이 고도를 높여 시간의 정점을 향해 꾸역꾸역 나아가는 것. 그렇게 조금씩 나를 잃고 종국에는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 그리고 시간의 분지를 정처없이 떠도는 것.


오늘처럼 흐리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엔 상념의 나락으로 끝없이 추락하게 된다.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가 쓴 <완벽한 날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밤중에 잠이 깨어 빗소리를 들었다. 당분간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기에 침대에 누워 온 마음으로 빗소리에 귀 기울였다. 왜냐하면 - 우리에게 비가 내리는 건 중요한 일이 아닐까? 우리의 창조성으로 이루어진 극장 전체에서, 그 다섯 대륙을 통틀어서, 이 야생 세계의 장치만큼 경이로운 게 있을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 밀과 백합이 자라거나 자라지 못하는 건 비에 달려 있다. 그 해에 비가 넉넉히 내리면 가을에 나무들은 고운 단풍 빛깔로 우리를 눈멀게 한다. 비의 양에 따라 연못도 신선해지거나 물이 말라 늪지로, 심지어 사막으로 변하거나 한다. 나는 마음 깊이, 그러면서도 즐겁게 귀 기울였다. 비는 찾아오는 장소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p.132)


누군가 자신이 듣고 있는 빗소리를 마음에 아로새긴 하나의 문장으로, 혹은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로 내게 들려주면 좋겠다. 자동차 전조등의 점멸하는 불빛이 빗속에서 수채화처럼 번진다. 어두운 하늘, 어두운 땅, 그리고 어두운 마음... 오늘의 비는 자신의 자리를 미처 내주지 못한 태만한 가을의 조급함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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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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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쓴 소설 제목은 유난히 사람의 이름이 많다는 것을.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비롯하여 <에이미와 이저벨>, <올리브 키터리지>, <버지스 형제>, <다시 올리브>, 최근에 출간된 <오, 윌리엄>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많지 않은(?) 소설 작품 중에서 이름이 안 들어간 작품을 찾는 게 오히려 빠를 듯하다. 여기에는 소설가로서 작가의 집요함과 꾸준한 인내심이 이와 같은 멋진 작품들을 완성하는 데 한몫을 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한 인물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분석이야말로 소설가가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떤 인물이 갖고 있는 개별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인류 전체가 지닌 보편적인 특성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물리학자가 각각의 현상을 통해 우주 전체를 통괄하는 보편적 원리를 발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한 작품이라도 읽어 본 독자라면 작가가 창조한 한 인물에 대한 세밀하고도 친절한 기술이 인간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걸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인물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같은 분량으로 끈기 있게 기술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와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인물의 부정적인 측면을 그렇게 깊이, 객관적으로 바라보지도 않으며 설사 그것을 발견하고 관찰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묘사나 서술을 서둘러 그만두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보고 관찰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데는 많은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계속 나아갈 뿐이다. 사람들은 계속 나아간다. 수천 년 동안 그래왔다. 누군가 친절을 보이면 그것을 받아들여 깊숙이 스며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은 어둠의 골짜기는 혼자 간직하고 나아가며, 시간이 흐르면 그것도 언젠가 견딜 만해진다는 것을 안다. 도티, 베브, 이저벨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미는 어렸다. 무엇을 참을 수 있는지 혹은 참을 수 없는지 아직 몰랐고, 이 자리에 있는 세 엄마에게 아이처럼 말없이 매달려 있었다."  (p.508)


나는 사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통하여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라는 훌륭한 작가를 남들보다 아주 늦게 알게 되었고, 이번에 읽은 <에이미와 이저벨>이 그녀의 여러 작품 중 내가 읽은 두 번째 작품이지만,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은 삶의 고비에서 겪는 개개인의 순간순간을 친밀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가감 없이 기록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소설을 번역했던 정연희 번역가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소설을 번역하면서 나는 인간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방법 하나는 그런 순간들의 이면을, 그 순간들을 '건너가는' 사람들의 숨은 마음을 친밀하고 세심히 바라보는 일일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라봄은 이해를 낳고, 이해는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리고 성장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사랑하게 만든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그런 바라봄을 안내하는 데 탁월하다."  (p.543 '옮긴이의 말' 중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설계하고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방식도, 서로에게 원하거나 기대하는 바도, 상대방을 위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랑과 증오가 공존하는 엄마와 딸 사이의 섬세하게 다루면서, 유난히 더웠던 셜리폴스의 여름 한 계절을 다루는 <에이미와 이저벨>. 수줍고 소심한 성격의 에이미 굿로는 올해 열여섯 살의 소녀이다. 점심시간에 몰래 담배를 같이 피우는 스테이시를 제외하면 친한 친구도 없다.  교사가 되길 원하는 엄마 에이절의 생각과는 다르게 에이미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시(詩)이다. 지난겨울, 수학교사인 데이블 선생이 사고를 당한 후 학교에는 토머스 로버트슨 선생이 임시교사로 왔다. 시를 좋아하는 로버트슨 선생을 은근히 좋아하게 된 에이미는 방과 후 학교에 남아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그저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 로버트슨이 자신의 차로 에이미를 집에 바래다주면서 에이미에게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다. 여름방학이 되면서 에이미는 이저벨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자궁절제 수술을 받은 도티 브라운의 일을 대신하는 것인데 직장 상사인 에이버리 클라크의 제안으로 성사된 것이었다. 어느 날, 에이버리는 차 안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와 소녀를 보게 되는데... 에이버리는 자기가 목격한 것을 이저벨에게 전하고, 이저벨은 이에 충격을 받고 분노한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듯 이날을 기억할 것이다. 이저벨의 은밀하고 깊숙한 기억 속에는 이날이 그녀가 에이미를 '가진' 마지막 날처럼 느껴질 테니까. 그녀의 기억 속에 나뭇잎들은 항상 금빛이고, 고속도로에는 아침 햇살로 샤워하고 가을 날씨로 빳빳해진 금빛 나뭇잎들이 늘어서 있을 것이다."  (p.53)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그해 셜리폴스의 무더웠던 여름은 마치 에이미와 이저벨의 끝나지 않을 듯한 갈등처럼 길기만 했다. 세상을 등지고 셜리폴스로 숨어들었던 이저벨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스스로 또래 친구들과 담을 쌓고 지내는 에이미. 세상에 오직 두 사람뿐인 줄 알았던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면서 외부와의 관계를 넓혀간다. 작가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에이미와 이저벨의 성장 과정을 애정 어린 눈으로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이저벨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오래전 타운에 옮겨와 22번 도로에서 가까운 크레인 씨의 낡은 주택을 빌린 뒤 많지 않은 살림살이를 풀고 젖먹이 딸아이(옅은 금발의 곱슬머리에 진지한 표정을 한 아기)와 함께 정착했을 때, 그녀는 회중교회 신자들 사이에 그리고 그녀가 일하게 된 공장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자들 사이에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젊은 이저벨 굿로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남편도 부모도 모두 죽었고, 벌이가 더 나을까 해서 강을 따라 셜리폴스까지 내려왔다고 말할 뿐이었다."  (P.23)


유난히 길고 가물었던 올해 가을도 이제 그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다음 주면 다사다난했던 2022년도 딱 한 달을 남겨두게 된다. 먼 훗날 언젠가 2022년을 되돌아보면 가장 먼저 우리는 '10.29 참사'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푸르렀던 젊음이 어느 날 뚝 멈춰 서야만 했던 그날의 참사. 대중을 향해, 무능했던 정부를 향해 오열했던 유가족들. 삶은 그토록 쉽게 멈춰질 수 있음을 기억하며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하루하루를 지켜보려 한다. 대학생인 아들은 내년이면 군복을 입고 나타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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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말, 말, 말...


그해 구설수를 조심하라는 천공(千空) 스승의 말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얼떨결에 리더 멧돼지로 당선된 나는 한동안 그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고, 하루하루가, 어쩌면 매 시간이 온통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온종일 술만 마셔도 취하지 않을 듯했고, 서너 끼를 굶어도 배가 고프거나 허기가 지지 않을 듯했다. 세상이 온통 무지개 빛으로 반짝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들뜬 기분으로 해외 나들이를 갔던 나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멧돼지라는 '날리면'(혹은 바이든) 멧돼지와 만나 인사를 나눈 직후 곁에 있던 똘마니 멧돼지에게 "국회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 하고 농담 삼아 했던 말이 화근이었다. 선천적으로 목소리가 큰 내가 딴에는 소리를 줄여서 한다고 했는데 주변에 있던 다른 멧돼지들의 귀에 선명하게 전달되었을 뿐 아니라 그 말이 온 나라에 토시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고스란히 퍼지고 말았다. 창피도 그런 창피가 없었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진상조사 카드를 꺼내 어깃장을 놓았으나 나의 말을 믿어주는 멧돼지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라는 말을 썼다가 아내 멧돼지로부터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쭐이 났다. 흉내도 낼 줄 모르는 내가 괜히 겉멋만 들어서 '날리면' 멧돼지의 말을 따라 했다는 것이 아내 멧돼지가 나를 혼낸 이유였다. 리더 멧돼지로서 가오가 서려면 세계 최강이라는 '날리면' 멧돼지를 모델로 삼아 그대로 따라 하는 게 다른 멧돼지들로부터 존경과 우러름을 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했던 게 오판이었다. 나는 아내 멧돼지 앞에서 인간들처럼 두 발로 선 채,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한 시간 동안 부동자세(부동시는 아니고)로 서 있어야만 했었다. 그 바람에 나는 여왕 멧돼지의 상가에 늦게 도착하였고, 남들은 다 하는 조문도 결국 거르고야 말았다.


이런 나를 두고 북쪽의 여정 멧돼지는 '천치 바보'라며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들어 보니 맞는 말이긴 한데 기분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나는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학작품을 즐겨 읽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는 부친 멧돼지의 지시에 따라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 등을 읽었을 뿐 다른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한동안 술과 유흥에 빠져 살았다. 그렇게 십수 년을 허비하는 동안 부친 멧돼지로부터 몇 차례의 엄한 꾸지람이 있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법전을 읽게 되었다. 부친 멧돼지의 도움 덕분에 나는 뒷골목 세계에 입문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교과서와 법전만 읽었던 놈이 정치라는 생판 모르는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것 자체가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정치는 타인에 대한 공감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공감에 대해 전혀 배운 바가 없는 나로서는 정치판의 모든 게 맘에 들지 않았다. 선거 과정에서 나와 경쟁했던 놈과 그 패거리들이라도 실컷 두들겨주어야만 직성이 풀릴 듯했다. 리더로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간언도 있었지만 나는 다 무시해버렸다.


평생을 뒷골목 세계에서 보냈던 나로서는 그곳의 언어와 말버릇을 털어내는 게 무척이나 힘들고 어렵기만 하다. 지금은 그곳의 언어도 많이 순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과거에는 주로 욕설과 음담패설이 대화의 80~90%를 차지했었다. 그와 같은 모습은 거칠 것이 없는 그곳 세계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는데 누가 제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일종의 힘의 과시가 그들로 하여금 지나친 욕설과 음담패설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게 살아왔던 내가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하는 존댓말은 여간 낯간지러운 게 아니다. 지금도 나는 그 시절이 가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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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6 16: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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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8 16: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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