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존댓말과 상민 멧돼지


도시는 며칠째 미세먼지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1995년에 있었던 도쿄 지하철 차량 내에서 발생한 무차별적인 사린 가스의 살포를 잊지 말라는 경고처럼 보이기도 하고,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의 무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소한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비껴가려는지 쌀쌀하던 날씨가 풀려 미세먼지만 가득합니다. 그나저나 뒷골목 시절부터 늘 반말에 익숙했던 내가 리더 멧돼지가 된 지도 한참이나 지난 오늘 이렇게 존댓말로 일기를 쓸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게다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존댓말로 지극히 사적인 일기장을 메운다는 게 저로서도 믿기지 않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에게 하는 말일지라도 뒷골목 세계에서는 언제나 반말이 일상어처럼 쓰였던지라 다 늦은 나이의 내가 이제 와서 존댓말을 배운다는 게 말이 되지 않을뿐더러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똘마니들에게 누차 설명했는데 이번 존댓말 건에 대해서는 도무지 고집을 꺾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지고 만 것입니다. 나에게 존댓말을 쓰도록 건의한 비서 멧돼지 왈, 반말 짓거리를 찍찍하는 내 모습이 과히 보기 좋지는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내가 꼴값을 떠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여론도 좋지 않고 말입니다. 결국 나는 외국어를 배우듯 존댓말을 배우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거번먼트 인게이지먼트가 레귤레이션인 것처럼 말입니다.


멧돼지들에게 이름이나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내가 리더 멧돼지가 된 후 상민 계급의 멧돼지인 나의 충복에게 '어이, 상민(常民) 왔는가?' 하고 물었던 게 인연이 되어 상민 멧돼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앞에서도 쓴 바 있습니다. 상민 멧돼지로 하여금 정부의 주요 직책을 맡겼던 것은 나에 대한 그의 충성심도 충성심이지만 '두꺼비'라는 그의 별명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사회성이 부족하여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 능력이 전무하고, 말을 가려서 할 줄 모르며, 미래에 처할 자신의 운명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만 아니라 내가 리더에서 물러나는 순간 내가 저질렀던 대부분의 죄를 나 대신 그가 옴팡 뒤집어쓸 수도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는 뒷골목 시절 그가 심판을 보았다는 경력 때문에 후임 심판으로부터 죄를 추궁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조금쯤 알고 있습니다.  내가 리더에서 물러나는 순간, 나의 부름을 받았던 많은 수하들이 감옥에 갈 것이며 사면이나 복권을 기대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내가 리더 멧돼지가 된 후 많은 멧돼지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정부의 잘못이었습니다. 나라고 왜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럼에도 상민 멧돼지를 보직에서 해임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앞으로 저지르게 될 많은 죄들을 그가 대신 뒤집어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나의 방패막이인 셈이지요. 그는 그 일을 성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비록 눈치가 없고, 공감 능력도 부족하지만 나처럼 매사에 두려움과 공포가 큰 멧돼지에게는 상민 멧돼지만큼 배포가 크고 우직한 멧돼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이지요. 내가 리더에서 물러난 후에도 그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듯합니다. 내가 그를 신임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도시는 여전히 미세먼지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당 대표에 출마하는 여러 똘마니들이 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연일 굽실대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마음을 정한 지 오래되었지만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나에게 충성을 다짐하며 나를 알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정치권도 여전히 안갯속입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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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소원이 있다면


2023년 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1주일여가 지나고 있다. 시간이란 게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어서 연초에는 아주 더디게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다가도 1월 한 달이 가고 나면 '벌써?' 하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 물론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에게 1월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 줄도 모른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가 흐르다가, 12월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 벌써 1년이 흘렀네!' 하는 혼잣말과 함께 시간의 노예가 된 듯한 멧돼지들의 탄식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새해. 멧돼지들에게 1년 소망이라는 게 있을 리 없지만 리더 멧돼지가 되고 보니 하고 싶은 일들이 자고 나면 하나씩 늘어나는 통에 멧돼지들의 소망이란 소망은 죄다 나에게 쏠린 듯하다.


리더 멧돼지가 된 후 처음으로 맞는 새해이다 보니 설레는 마음이 절로 드는 게 사실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지고 중요하지도 않은 술약속을 매일 잡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토록 원하던 술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매일 마실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천국이 아닐 수 없다. 마치 꿈만 같아서 똘마니 멧돼지에게 내 엉덩이를 한 번 물어보라고 시킬 때가 더러 있다. 북쪽의 정은 멧돼지가 무인기를 보내던 날도 나는 상민 멧돼지를 불러 밤새 부어라 마셔라 술판을 벌였었다. 내가 이렇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를 놀리고 구박하던 주변의 또래 친구들과 엄하기만 하던 아버지 멧돼지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된 술판은 이제 나를 과시하고 똘마니 멧돼지들을 짓밟는 장으로 변질되었다. 나는 리더 멧돼지가 된 후 술자리에서 단 한 번도 존댓말을 쓴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난하거나 힐책하는 멧돼지를 본 적이 없다. 모두가 다 굽실댈 뿐이다. 그러니 술맛이 절로 날 수밖에.


술을 원하는 만큼 맘껏 마시는 것 말고 또 다른 소망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늙다리 멧돼지들, 재물도 없고 나라의 도움만 바라는 무용지물의 늙다리 멧돼지들을 재임 중에 한 마리라도 더 제거하는 것이다. 그들만큼 눈에 거슬리는 것도 없다. 나는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의료 지원을 대폭 줄이라고 지시했다. 병에 걸린 늙은 멧돼지들이 치료를 포기함으로써 국가의 재정도 튼튼히 하고, 보기 싫은 늙다리 멧돼지들을 한 마리라도 덜 볼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닌가. 게다가 나는 원자력 안전을 느슨하게 하라고 지시함으로써 원전 주변의 늙은 멧돼지들을 일거에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울에서는 발암물질 범벅인 용산공원을 적극 개방함으로써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늙다리 멧돼지들을 그곳에 유인하여 없애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나의 계획이 차근차근 진행된다면 무용지물의 늙다리 멧돼지들을 힘들이지 않고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나는 아버지 멧돼지로부터 멧돼지들이 부자 멧돼지에 이렇게 반응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자신보다 10배 정도의 부자는 경멸하고, 100배 정도의 부자는 가까운 사람으로 삼으려 하고, 1000배 정도의 부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그의 노복이 되겠다고 자청한다고 말이다. 사실 일반적인 멧돼지들의 꿈은 많은 새끼를 낳아 자신의 DNA를 영원히 남기는 것이지만 나나 아내 멧돼지는 새끼를 낳을 수 없는 처지이고 보니 다산의 욕망보다는 부귀의 욕망이 더 크다고 하겠다. 그런 까닭에 아내 멧돼지와 그의 일가는 불법과 탈법을 넘나들며 부를 축적했고 나는 이를 비호하며 음으로 양으로 도와왔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리더 멧돼지가 된 지금, 가난한 멧돼지들보다는 부자 멧돼지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약간의 콩고물을 기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가난한 멧돼지들을 백날 도와봐야 오히려 짐만 될 뿐 나에게 돌아올 이득은 전혀 없으니 그들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게 아내 멧돼지가 내게 가르쳐준 철칙이다. 부자 멧돼지로서 노복이 되겠다고 자청하는 많은 멧돼지들을 거느리는 건 퇴임 후에 있을 나의 소망이다.


부자 멧돼지들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당연하게도 일하는 멧돼지들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국가가 관리하는 사업 중 알짜배기 사업을 그들에게 양도하고, 저항하는 멧돼지들을 일망타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새해에는 그것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나저나 나와 나의 똘마니들에게 대항하는 야생 멧돼지들의 수장을 어서 빨리 감옥에 보내야 할 텐데 그게 잘 안 되고 있으니 나의 스승 천공 멧돼지를 찾아뵙고 도움을 청해야 할까 보다. 새해 운세도 좀 볼 겸...


*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히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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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새해가 밝았다. '검은 토끼의 해'라는 기묘년의 한 해를 사람들은 그저 막연한 희망과 함께 맞는다. 오래된 습관처럼 말이다. 대학교 2학년생이 되는 아들은 새해의 일출을 볼 자신은 없다면서 어제 오후 자신의 사진기를 메고 남한산성으로 향했었다. 일출 대신 2022년의 마지막 날 일몰을 사진에 담겠다는 의도. 나는 일몰도 일출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보신각 타종행사를 보기 위해 자정의 추위와 혼잡을 무릅쓰고 기를 쓰고 종로로 향하는 사람들이나 새해의 일출을 보겠다고 강원도로 향하는 긴 차량행렬의 정체를 묵묵히 인내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때론 존경해 마지않는다.


인천 송도의 국제캠퍼스 기숙사에서 1년을 보낸 아들은 며칠 전 신촌의 원룸에 자리를 잡았다. 보증금 천만 원에 월 60~70만 원에 달하는 임대료. 거기에 식비며 용돈, 등록금 등을 더하면 대학생 한 명에게 드는 비용 치고는 꽤나 큰 부담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더구나 물가며 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마당이니 '월급 빼고는 다 오른다'는 탄식이 올해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치솟는 금리뿐만 아니라 신용 경색으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돈이 씨가 마른 것이다. 회사채를 발행하면 언제든 원하는 만큼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 지난 정부 때와는 달리 지금은 아무리 우량한 기업도 회사채를 발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회사채가 팔리지 않았을 때의 뒷감당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로 인해 2023년에는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고 IMF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 위기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전망이 비등하다.


그와 같은 위기가 온다고 할지라도 현 정부는 자신들의 책임은 전혀 없다고 발뺌할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의 행태로 보아서는 전 정부의 책임이라거나 노조의 책임으로 돌릴 개연성이 높지만, 과연 그런 변명이 위기 상황에서도 통할지 두고 볼 일이다. 윤석열 정부 8개월. 그 짧은 시기에 많은 국민들이 정말 희한한 이유로 세상을 등졌다. 길거리에서 깔려 죽기도 하고, 차를 몰고 가다 불에 타서 죽기도 하고, 산업 현장에서 기계에 빨려 들어가거나 깔려 죽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미안해하지 않는다. 모든 게 죽은 이들의 잘못일 뿐 자신들은 그저 술이나 퍼마시고 전쟁만 말하면 그만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정부를 믿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오히려 해외에 있는 동포들이나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외국의 국민들이 더 걱정을 한다. 정권이 바뀔 때까지 부디 안녕하시란다. 그게 내가 들었던 새해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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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3-01-01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미친놈 하나 뽑아서 .. 짜증나고 무기력해졌는데 요 며칠 저는 다시 각오를 다졌어요. 다시 진보유튭 부지런히 듣고 있고 열심히 윤 욕하고 다녀요. 저의 남편도 금융권인데 아예 채권 발행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십프로대인데 감당이 안 되서 기존 것만 관리한다고 하는데.. 남편말로는 지금 imf와 다를바 없다고 하는데요. 단지 돈을 끌어오지 않을 뿐이지 기업들 힘들다고. 저는 한편으로는 국힘 뽑은 것들 쌤통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집값 떨어지는 것만 잘하고 있긴 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꼼쥐 2023-01-02 17:41   좋아요 2 | URL
정말 그렇습니다. 문제는 본격적인 고통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큰 고통이 닥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부디 나라 경제가 와해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6. 두려움에 대하여


우리 멧돼지들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다. 멧돼지들은 대개 머리도 나쁘고 겁이 없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짐승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른 짐승에 비해 영민한 편이며 무척이나 겁이 많아 때로는 '저게 미쳤나?' 싶을 정도로 무모한 데가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들을 오해하여 사람들은 멧돼지 하면 먼저 머리가 나쁜 동물, 또는 앞뒤 가리지 않는 무식한 동물을 떠올리곤 하였던 것이다.


어제도 나는 얼마나 겁이 났던지 똘마니들이 마련해준 안가에서 딱히 할 일도 없이 하루를 소일하느라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난데없이 북한의 정은 멧돼지가 무인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게 어디 예사로 넘길 일인가. 여차하면 리더 멧돼지인 나의 목숨이 날아갈 판 아니던가. 가뜩이나 예민한 시국에 무인기라니... 나는 하루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오금이 저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사정을 모르는 일반 멧돼지들은 국가 안전 보장 회의도 열지 않고 도대체 뭘 했느냐?고 비난하지만 생각해 보라. 여차하면 목숨이 날아갈 판인데 회의가 뭔 필요며, 목숨이 두 개도 아닌데 남들이야 죽든 말든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 할 일 아니던가. 게다가 정은 멧돼지의 일차 목표는 누가 뭐래도 리더 멧돼지인 내가 아닌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는 리더가 된 직후부터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퇴임 후에 있을 나의 안위가 걱정이 돼서다. 나를 이어 리더가 될 멧돼지가 리더에서 물러난 나를 감옥에 보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자다가도 문득문득 잠이 깨는 것이다. 리더에서 물러나기 전에 나를 감옥에 보낼 만한 멧돼지란 멧돼지는 모조리 손을 써 놓을 작정이지만 그렇더라도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멧돼지가 리더라도 되는 날이면 나는 꼼짝없이 감옥에 갈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정말 가능성은 없지만 뒷골목의 내 똘마니였던 은정 멧돼지가 리더로 뿝힌다면 나는 그야말로 죽은 목숨이 되는 것이다. 멧돼지 속담에 '설마가 멧돼지 잡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불안과 공포는 나뿐만 아니라 아내 멧돼지도 함께 느끼고 있다. 퇴임 후 우리는 나란히 감옥으로 직행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나는 지금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내 편이 될 만한 멧돼지들이란 멧돼지들은 모두 풀어줄 작정이다. 나는 오늘도 전임 리더 멧돼지를 비롯한 온갖 비리에 연루된 멧돼지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내가 퇴임 후 어려움에 처한다면 그들 역시 나를 위해 함께 싸워주리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 역시 내후년에 있을 총선거에서 나와 반대편에 있는 멧돼지들이 대거 당선되어 나를 탄핵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가 예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하는 셈이다. 요즘 내가 교회를 자주 찾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사람들이 믿는 신 중에서 가장 세다는 하느님에게 제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아내 멧돼지를 내 대신 감옥에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뒷골목 대장이었던 내가 가오가 있지 그런 최후를 맞는다면 쪽팔린 일 아닌가.


*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히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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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7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30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5. 사는 게 뭔지...


가뜩이나 살얼음판의 아슬아슬한 정치판인데 날씨마저 꽁꽁 얼어붙었다. 리더 멧돼지가 되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시시각각 전해지는 국내외 뉴스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나처럼 게으르고 천하태평인 멧돼지도 리더라는 자리는 특별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어떤 일처리를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좋은 소식이 전해지는 바람에 지지율이 크게 오르기도 하고 반대로 크게 떨어지기도 하니 뉴스의 힘이 무섭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나에 대해 나쁜 소식을 전하는 언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를 죽여 놓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한 언론사는 리더 전용 수레에 타지 못하도록 지시를 내렸고, 또 다른 언론사는 회사를 통째로 나에게 우호적인 재벌 멧돼지들에게 팔아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모든 언론사는 나를 찬양하는 뉴스만 매일 내보낼 테니 그렇게 되는 날 비로소 술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잠도 편히 잘 수 있을 게 아닌가.


한 해를 보내는 기념으로 전임 리더 멧돼지를 풀어주기로 했다. 사실 그는 리더로 재임하던 시절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만만한 자들 여럿으로부터 삥을 뜯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혔던 것인데, 마음 같아서는 한 10년쯤 더 가둬두고 싶지만 나를 보좌하는 똘마니 멧돼지들 중 상당수가 전임 리더 멧돼지의 심복이었던 까닭에 그들의 눈치를 전혀 안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도 물론 아내 멧돼지와 장모 멧돼지가 나를 대신하여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으니 전임 리더 멧돼지를 딱히 비난할 입장은 못되지만 그를 풀어줌으로써 나라 전체의 일반 멧돼지들로부터 비난이란 비난은 내가 다 받아야 할 처지이니 그게 좀 번거롭다는 것이다. 전임 리더 멧돼지 역시 나의 선처에 감읍하는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똘마니 멧돼지들과의 회의에서 세계 최강이라는 '날리면' 멧돼지의 말을 몇 마디 섞어 썼다가 괜한 시비에 휘말렸다. 나는 사실 '날리면'이 쓰는 말을 뜻도 모르면서 그저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했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 큰 뉴스거리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거번먼트 인게이지먼트가 바로 레귤레이션이다. 마켓에 대해서 정부는 어떻게 레귤레이션 할 거냐, 마켓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그 마켓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GDP(국내총생산)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아주 효율적인 시장이 될 수 있도록 공정한 경쟁 체제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가 시장에 대해서 관여하고 개입해야 하는 기본적인 방향이다. (…) 금융기관의 거버넌스가 아주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일이다. (…) 2023년에는 그야말로 다시 대한민국, 도약하는 그런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더 아주 어그레시브하게 뛰어봅시다." 나는 아직도 거번먼트 인게이지먼트, 거버넌스, 어그레시브 등 내가 했던 말들의 의미를 여전히 모르고 있다.


최근에 아내 멧돼지는 밖으로만 나돌고 있다. 물론 나와 아내 멧돼지는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고, 필요에 의한 공생관계이긴 하지만 섭섭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아내 멧돼지는 나의 권력이 필요하고, 나는 아내 멧돼지의 재력이 필요할 뿐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남들처럼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부러운 것이다. 더구나 내일은 인간들이 반기는 성탄절 아니가. 동장군의 기세만큼이나 가슴에는 찬바람이 휘몰아친다. '아, 사는 게 뭔지...'


*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히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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