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천재들의 생각 아포리즘 - 0에서 1을 만드는 생각의 탄생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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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는 명언집 혹은 금언집이 유행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자금력이 부족했던 출판사에서 여러 유명인들의 작품이나 회고록 혹은 전기 등을 종류별로 출판할 엄두는 나지 않았을 테고, 그들이 했던 몇몇 명언들을 한 데 모아서 책으로 엮어 출간한다면 비용이나 위험도 면에서 훨씬 유리한 측면이 있었을 게다. 더구나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했던 당시에 책을 소비하는 학생이나 가정에서도 원하는 책을 맘껏 사들인다는 건 웬만한 형편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터, 한 권의 책을 읽고 마치 수십 권의 책을 읽은 것인 양 자신의 지식을 뽐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로 여기지 않았을까. 책을 공급하는 측과 수요하는 측의 욕구가 정확히 일치했던 까닭에 명언집이나 금언집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던 것이 급격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매체가 등장했음은 물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주변 환경 탓이었던지 비교적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독서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들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아 마지않던 책은 이제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진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명언집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 듯하다. 역시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인지...


"사실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등 유명한 실리콘밸리 천재들에 관한 책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 종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번역과 각색을 통해 작가에 의해 한 번 정제되었기에 진짜 실리콘밸리 천재들의 생각이 아닌 작가의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순수한 오리지널 창조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훌륭한' 아포리즘이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였고, 그 답을 구현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이 책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p.5 'Prologue' 중에서)


인문학자이자 지식큐레이터로 잘 알려진 김태현 작가는 이미 <백 년의 기억, 베스트셀러 속 명언 800>, <스크린의 기억, 시네마 명언 1000>, <타인의 속마음, 심리학자들의 명언 700>, <지적교양 지적대화, 걸작 문학작품 속 명언 600>, <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 등 이와 같은 명언 집을 다수 출간한 적이 있다. 이 책 역시 그와 같은 연장선상의 한 권일 수도 있겠지만 <실리콘밸리 천재들의 생각 아포리즘>은 책을 읽는 일반 독자들이 AI가 핵심이 될 미래에 대해 사유하고 대비하거나 실리콘밸리 천재들의 통찰과 사고방식을 통해 챗 GPT 열풍을 불러일으킨 샘 알트만과 같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0677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양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구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People at different stages of their lives are doing different things, and they're using Google."  (p.243)


PART 1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거인들의 통찰', PART 2 '실리콘밸리의 미래 설계자들의 통찰', PART 3 '실리콘밸리 혁신가들의 통찰' 등 총 3부로 나뉘어 구성된 이 책은 애플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를 비롯하여, 빌 게이츠, 래리 페이지, 제프 베이조스, 팀 쿡, 에릭 슈미트, 샘 알트만, 수전 워치츠키, 젠슨 황 등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금세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내로라하는 실리콘밸리 천재들의 명언을 담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명언집들이 그러하듯 우리가 작심하고 외우지 않는 한 어느 한 구절도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필사 혹은 깊은 사유와 같은 시간 할애의 과정이 빠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을 통째로 외울 수는 없다 할지라도 맘에 드는 몇몇 구절을 깊이 생각하고 옮겨 적어보는 것쯤이야 많은 수고가 뒤따르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0943 저는 여러분이 두 가지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시적인 본능에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세요.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방향을 빠르게 바꿔야 합니다.

I think it is very important for you to do two things: act on your temporary conviction as if it was a real conviction; and when you realize that you are wrong, correct course very quickly."  (p.329)


사실 어떤 명언집이나 아포리즘도 우리들 삶에 더없이 유익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 천재들의 열정과 창의력, 추구하는 목표를 향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력 및 지식의 공유, 두려움 없는 도전과 실패에 대한 용인력, 빠른 판단과 실행력 등 실리콘밸리 천재들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나 시사점은 같은 분야가 아닐지라도 더없이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평생의 경험에서 얻은 그들의 가르침을 어떠한 노력도 없이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 책 속의 아포리즘을 마음 깊이 수용하고 인생의 가르침으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했던 말의 의미를 몇 날 며칠 고민하고 관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제부터 쏟아지던 빗줄기는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삶의 의미를 깨닫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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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 당신과 문장 사이를 여행할 때
최갑수 지음 / 보다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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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며칠을 앓았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하면서 다녔는데 마스크를 벗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감기 몸살이 찾아왔다. 볼이 빨갛게 열이 오르고 두통과 약간의 어지럼증을 동반한 채로 병원에 들렀을 때, 나와 비슷한 증상의 환자들이 병원 대기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현실이 조금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순번을 기다려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손에 든 채 병원을 나섰을 때는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난 후였다. 몸이 아파서 며칠 병가를 내야겠다는 사실을 회사에 알린 후 정적이 내려앉은 숙소로 돌아와 굳게 닫힌 문을 열자 밀렸던 피로감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간신히 약만 챙겨 먹은 나는 저녁도 거른 채 침대에 쓰러져 며칠을 앓았던 것이다. 삶이란 그렇게 때로는 변덕스럽고 요란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렇게 한 번씩 제 몸조차 가누기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살아야겠다는 의욕보다는 이렇게 구질구질한 경험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해야만 내 삶이 완결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끼니를 챙겨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졸음을 몰아낸 몸이 허기를 느낄 때마다 배달 음식을 시키거나 냉장고 속 남은 과일을 건져 먹었다. 그렇게 며칠을 앓았던 나는 겨우 추스른 몸으로 출근을 했고, 여진처럼 이어지는 후유증에 쉽게 잠식당하곤 했다. 갈수록 떨어지는 의욕과 몸살 후유증으로 인해 독서는커녕 텔레비전을 보는 것조차 멀리한 채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기면증 환자처럼 말이다. 열흘 이상의 시간 동안 나는 여행작가 최갑수의 에세이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를 겨우 읽었을 뿐이다.


"죽음을 몇 달 앞둔 여든한 살의 테라스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 같은 건 들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돌아가봐야 최선을 다하지 않으리라는 걸, 최선을 다해봐야 그다지 바뀌는 것이 없다는 걸 그때쯤이면 알고 있을 테니까. 다만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고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플 것이다. 즐거움과 사랑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인데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놓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p.85~p.86)


내가 아팠던 순간에도 지구의 시간은 꾸준히 흘러 화려했던 벚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르게 핀 이팝나무 가로수의 몽실몽실한 꽃망울이 도로변을 환하게 빛낸다. 내가 아침마다 오르는 등산로에도 아카시아꽃의 진한 향기가 산 전체를 들썩이게 하고, 손바닥만큼 펼쳐진 상수리나무의 나뭇잎마다 바람에 날린 송홧가루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다. 이만큼의 시간을 살아냈구나, 하는 뿌듯함보다 손을 놓은 채 보냈던 지난 시간들이 허전함으로 다가온다. 손가락 사이로 휑한 바람이 분다.


"세월이 간다. 하루에 하루씩 꼬박꼬박 가고 있다. 후지와라 신야 영감을 읽다 눈에 띄는 한 구절. "이 세상 살아 있는 생물들은 모두 온 힘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한 적이 있었던가. 일에도 사랑에도 여행에도 그런 적이 있었던가. 시월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p.191)


여행작가라는 직업이 무색하게도 한동안 여행을 떠날 수 없었다는 작가는 일상의 곳곳에서 여행을 떠올렸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밑줄을 그었던 여러 문장들 중에서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은 문장들을 뽑아내어 작가의 시선과 글을 더해 사진과 함께 완성한 이 책은 침대 머리맡에 두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읽었던 구절을 곰곰 되새기며 멀리서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소리에도 귀 기울이게 되는, 자주 안 쓰던 마음 관절을 움직이게 하는 그런 책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 인생은 고달프고 지루한 것이에요. 간간히 슬프고 고통스럽구요. 더 간간히 즐겁고 기쁘고 감동스럽습니다(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인생을 우리가 꾸역꾸역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인간이란 쉽게 잊어버리는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요(라고 생각합니다만)."  (p.348)


어제 가볍게 비가 지나간 오늘의 하늘은 무척이나 투명하다. 연속되는 지구의 시간은 이렇듯 변화무쌍하고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우리는 변화의 순간들을 매번 놓치곤 한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지탱하기 위해서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보다 웬만한 변화쯤이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내는 게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둔갑력은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재능을 한껏 키우고 활짝 꽃 피우게 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했던 어느 작가의 말처럼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민함보다는 둔감함일지도 모르지만 신록이 짙어지는 이맘때쯤에는 하나하나의 변화가 새롭기만 하다. 무기력하던 나의 몸이 겨울을 지나 봄처럼 가볍게 깨어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에도 어쩌면 그런 순간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봄처럼 가볍게 깨어나는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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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들 순간들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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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조개로 끓여낸 맑고 담백한 조개탕의 국물을 가만히 음미하는 것처럼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란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마치 일상처럼 한 스푼 떠먹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특별하지 않은 주말의 어느 한가한 시간에 배수아의 산문집 <작별들 순간들>을 읽는 것과 같아서 호들갑스럽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그러면서도 결코 흔하게 느껴지지 않는 일상의 시간 속으로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평범함이 오히려 귀한 가치로 대접받는 현대인의 고양된 삶에서 '독서'란 어쩌면 구시대의 유물처럼 곰팡내 나는 습관처럼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과도하게 고양된 일상의 에너지를 몇 단계 낮출 수 있는 방법 또한 '독서'나 '산책'과 같은 구시대적 유물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보면 현대인의 삶은 뭔가 어긋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오래전 어느 날 당신으로부터 온 편지...... 그 순간 문득 작별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특정 시기에만 국한된 개별 사건이 아니라, 삶의 시간 내내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비밀의 의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일생은 그것을 위해 바쳐진 제물이었다. 우리가 평화롭게 정원의 흙 위로 몸을 기울인 동안, 당신의 몸 위로 빛과 그늘이 어지럽게 얼룩지는 그 순간에도. 작별은 바로 지금, 우리의 내부-숲안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궁극의 사건이었다. 배추흰나비의 애벌레가 몸을 구부리면서 당신의 목덜미 위를 느리게 기어간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그것을 집어올린다. 평화와 고요. 오직 빛과 호흡만이 있는 순간. 지금 당신이 불타고 있다는 증거인가? 글쓰기는 작별이 저절로 발화되는 현장이다. 그 아래 아직 당신의 발자국이 움푹 팬 채로 남아 있는 죽은 딱총나무가 내 눈앞에서 불타기 시작한다."  (p.82~p.83)


지난 15년간 독일과 서울을 오가며 글을 써오고 있는 작가는 자신이 정원이라고 부르는 베를린 인근 시골의 오두막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책에서 작가는 독일 시골 정원에서의 생활을 묘사한다. 작가의 일상일 수도 있는 산책, 여행, 책과 작가들, 글쓰기, 정원 등을 소재로 한 이 책은 한 줄 한 줄을 모두 곱씹어 음미할 만큼 아름다운 문장으로 꾸며졌지만 이야기의 분명한 주제나 결론으로 독자를 이끌지는 않는다. 다만 감각적인 묘사와 눈에 보이는 듯한 상황 설정으로 인해 작가의 일상을 곁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에 빠져드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것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단지 시야에서 잠시 보이지 않았을 뿐. 아아, 따뜻한 바닷가에서 『파도』를 읽는 여름은 두 번 다시 가능한 것인가. 만약 그런 여름이 다시 온다면, 우리는 마침내 평화가 왔다고 착각할 것이다. 단 한 번도 있지 않았던 평화, 단 한 번도 끝나지 않았던 전쟁,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던 기다림,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암울함은 사실은 지속되는 한 권의 책과 같다고 말했다. 신은 책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p.187)


“누군가 이 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읽기에 대한 글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에필로그에서 밝히고 있는 작가는 "나에게 독서란 한 권의 책과 나란히 일어나는 동시성의 또 다른 사건"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작가가 읽는 책과 나란히 일어나는 작가의 또 다른 사건에 대한 기록, 이를테면 작가가 읽는 책에 덧붙여진 동시성의 일상을 아름답게 풀어낸 글이라고 하겠다. '나'와 '베를린 서가의 주인' 두 인물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있는 독특한 산문 형식은 어쩌면 '배수아'라는 이름에 걸맞은, 그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그만의 발상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오직 이 정원을 따라서 쓰인 글이다. 어느 날 내가 우연히 도착하게 된, 투야나무 울타리 뒤편의 보이지 않는 정원.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정원의 시간과 동시에 일어난다. 정원의 삶과 나란히 간다. 이 글 속의 그 무엇도 정원보다 앞서거나 나중에 말해지지 않았다. 그것은 파라다이스라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말했다. 파라다이스의 어원은 고대 이란어로 '울타리로 둘러쳐진 땅'을 의미하므로."  (p.251 '에필로그' 중에서)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뱀과 물>, <에세이스트의 책상> 등 배수아 작가의 몇몇 작품들을 읽어오면서 나는 시나브로 그녀만의 작품 세계에 젖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책들에 덧붙여진 동시성의 나의 일상은 남아 있지 않다. 머릿속 기억이나 일기를 비롯한 어떤 기록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망각이란 경험의 부재와 같은 것인가. 아쉽거나 서글프다는 생각이 새로운 각오나 다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까닭에 나의 삶은 이렇듯 변하지 않고 흐른다. 나는 나의 삶을 제대로 감각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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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행자 - 돈·시간·운명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7단계 인생 공략집
자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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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자기계발서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좋은 책을 일삼아 골라내는 것도 힘든 노릇이다.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잡히는 대로 읽자니 그것 또한 마뜩잖은 일이고 말이다. 물론 범람하는 책의 물결과 더불어 추천도서를 선별하여 준다는 사이트나 사람들도 비례하여 늘어나고 있으니 잘만 이용하면 시간도 아끼고 돈도 아낄 수 있겠거니 생각하겠지만 바쁜 현대인들이 그들 사이트를 일일이 검색하여 자신의 취향과 적성에 맞는 사이트를 찾아내는 것도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터, 그러다 보니 좋은 자기계발서를 만나는 게 그야말로 복불복 게임에서 자신의 운을 점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유튜브 채널 <라이프해커 자청>의 운영자이자 사업가로 널리 알려진 자청의 저서 <역행자>를 읽었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행자> 역시 수많은 자기계발서 중 한 권인 원 오브 뎀(one of them)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별 기대도 없이 집어 들었던 책은 어느 순간 삐딱하던 나의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들었다. 허투루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역행자>는 이제 수많은 자기계발서 중 특별하지 않은 한 권, 말하자면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저자의 논리와 설득력으로 인해 수많은 독자들 중 한 명이었던 내가 특별한 독자로 남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인간은 돈 버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 자의식이 가로막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의 성공 사례에 나온 사람들은 이미 역행자가 되기에 충분히 준비된 상태였다. '나는 돈이 없다. 그리고 돈이 필요하다'라고 인정함으로써 이미 자의식 해체가 끝나 있었다. 그래서 자신보다 대단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서 돈을 내고 배우려고 했다. 돈을 버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믿고, 미래 가치에 투자했다. 또한 그들은 의식하지 않았지만 7단계 모델을 따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p.258)


위의 인용문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저자는 '자의식 해체'를 특히 강조한다. 세상과 나를 구분하는 경계,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경계는 바로 자의식(혹은 에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계를 허문다는 건 일견 두려운 일일 수도 있다. 자신의 고정적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된 자기만의 안전하고 익숙했던 세상에서 벗어나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자 모험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자의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쌓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드라마틱하게 바꾸는 일이 변화의 2단계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왜 연애에 실패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많이 안 해봤기 때문이다. 별로 경험도 없으면서 마음속에는 판타지와 자기만의 룰로 가득 차 있다. 연애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관심과 자원을 주고받는 일인데, '나'라는 존재가 너무 소중한 이들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받아주는 데 서투르다. 옷자락을 적시지 않고 물놀이를 할 수 없듯이, 자아에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으면서 연애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상처 입지 않는 것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p.72)


그러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과제로 남는다. 우리에게는 조심성 강한 유전자가 과거로부터 꾸준히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유전자는 변화가 많지 않았던 원시 시대에는 유리하게 작동했겠지만 지금처럼 빠른 변화가 요구되는 시대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자유 박탈'이라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므로 변화를 기피하는 유전자 오작동을 의식적으로 이겨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3단계이며 4단계에서는 권투 선수가 운동을 통해 신체를 최적화하는 것처럼 뇌를 최적화하여 '자동 수익'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경제적 자유와 돈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진정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행복이다. 만약 내가 행복에 대한 책을 썼다면 사람들이 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돈이라는 주제를 미끼로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진정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경제적 자유를 이룬 덕분이다. 누구도 돈 자체를 위해 살지는 않는다. 돈은 행복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중요하다."  (p.287)


저자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역행자의 지식을 따르라고 말한다. 자신의 운명이나 본성에 맞서 역행자로서의 삶을 살라는 뜻이다. 돈을 버는 근본 원리인 "상대를 편하게 해 주기" 혹은 "상대를 행복하게 해 주기"를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패배를 통해 성장을 지속하라고 권유한다. 실패를 해야만 '레벨업' 버튼을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둑에도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원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경제적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성공의 비법이 존재한다. 그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원리와 비법만 안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승리의 경험과 자신감이 나를 더 높은 단계로 밀어 올리며 그와 같은 과정은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이 책을 더욱 집중해서 읽었던 까닭은 저자가 강조하는 바가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과 융합하기 위해서는 자의식 해체가 필수이며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가 성공의 밑거름이라는 생각. 우리는 어쩌면 자의식 과잉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까닭에 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한 발 양보하거나 융화하지도 못하고, 세상을 온통 적대시하며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산을 오르고, 틈틈이 책을 읽고, 메모를 하거나 글을 썼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운 것은 자의식을 해체하는 일이다. 아무리 제 멋에 산다지만 자의식을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오늘도 나는 자의식의 프레임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겨우 3월이 가고 있는데 들에는 벌써 이른 봄꽃이 피었다 지고 산천엔 온통 신록이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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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끌리는 사람들, 호감의 법칙 50 - 그 사람은 왜 또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걸까?
신용준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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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어 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말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정작 말을 하고 있는 당사자는 이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이 말을 처음 시작하는 시기와 맞물려 자신은 이미 남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꼰대' 대열에 동참했다는 것이며, 인정하기 싫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기피 대상 1순위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며,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여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인격체로 재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너 자신을 알라.'로 통칭되는 무지에 대한 자각이 무감해졌음을 의미하며, 지금까지의 경험 이외의 다른 어떤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도 이런 뜻이리라. 다른 이의 충고나 조언은 무시한 채 오직 자신의 고집 대로 행동한다는 것.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 마치 어렸을 때 경험했던 답답하기만 한 학교 담임선생 같은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표현한다.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면 꼰대 취급받는다."  (p.274)


비즈니스 강의 분야에서 수강생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명강사이자 기업교육 전문회사 에듀콤 교육연구소 대표이사인 신용준 강사의 저서 〈괜히 끌리는 사람들, 호감의 법칙 50〉에는 상대에게 호감을 얻는 방법부터 관계를 발전시키는 법, 좋은 인상을 남기는 대화법 등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말하자면 불편한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와 사례를 들어 집필한 심리학 자기계발서인 셈이다. 사실 인간관계에도 어느 정도의 연습이 필요하지만 학업을 마친 후 취업과 동시에 맞닥뜨리게 되는 다양한 인간관계에 의해 지치고 불편한 감정이 지속되다 보면 나의 단점을 개선하여 호감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증가하게 된다. 즉 자신의 단점보다는 타인의 단점만 부각된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인식으로 인해 틀어진 인간관계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상대방에 의해 촉발되었을 뿐 나와는 무관하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는 세상에 불평한다. 성공한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이다. 여기에도 호감의 법칙이 존재한다. 호감이 가기 때문에 같이 일하고 싶어지고, 일을 맡겨도 마음이 편하다. 실력이 월등히 차이 나면 물론 기회는 실력 좋은 사람에게 간다. 하지만 실력은 일반적으로 긴 시간 동안 반복하여 익히면 누구나 일정한 수준에 올라갈 수 있다. 실력이 엇비슷한 상황이면 역시나 호감 가는 사람에게 일을 주고 싶다는 뜻이다. 결국은 실력이 비슷해지면 호감 가는 사람이 더 잘나간다."  (p.17)


삶은 90퍼센트 이상이 인간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무인도에서 홀로 살지 않는 한 인간관계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좋은 삶이란 좋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인간관계로 상황이 유리해질 수도 불리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국 삶에 있어서 호감이라는 전략무기를 갖출 수만 있다면 다양한 상황 속에서 좀 더 좋은 혜택을 얻을 수도 있고 좀 더 깊은 만족감을 경험할 수도 있음을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생(一生)을 살고 있다. 딱 한 번뿐인 인생이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말하지만 한평생 살며 무언가 이루어 놓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 인생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꼭 대단하고 시대를 흔드는 것이 아니어도 된다. 적어도 남들 앞에 열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법이다."  (p.224)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그동안에 쌓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 인생에 필요한 지식을 모두 습득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내가 겪어 봐서 아는데..."와 같은 말투는 자신의 경험에 준거해서 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인 양 일반화하는, 소위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오류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배움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에게 남는 것은 오직 아집과 불평뿐이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무수히 많고, 내가 아는 것이라곤 티끌처럼 아주 작고 미미하다는 생각이 선행되어야만 저자의 충고 또한 유효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자신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방법부터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얻는 방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 방법, 자신의 인간관계를 개선하는 방법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매력을 발휘하는 방법까지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호감도 증진 방법에 대해 한 수 배워보겠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독자의 바른 자세일지도 모른다. 인간관계에도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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