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오해는 풀고 가야지.


하루가 다르게 봄기운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내 멧돼지의 단독 행보도 부쩍 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포항의 죽도 시장을 다녀왔던가 봅니다. 우리 멧돼지들의 먹성이야 세간에 이미 정평이 난 사실이지만 아내 멧돼지와 나도 다른 멧돼지들 못지않게 먹성이 좋은 편입니다. 시장에 나온 여러 음식들 중에 박달 대게가 아내 멧돼지의 눈에 띄었었나 봅니다. 입맛을 다시던 아내 멧돼지는 주변의 많은 멧돼지들의 시선을 의식한 탓에 체면상 맛있겠다는 말은 못 하고 수족관의 대게 한 마리를 덥석 꺼내 물고는 "얘 이름을 지어줘야 할 것 같아요. 큰도리."라고 시장의 멧돼지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다른 멧돼지들에 비해 도리도리를 심하게 하는 내가 생각났다고 합니다. 박달 대게는 그렇게 '큰도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아내 멧돼지는 입에 물었던 '큰도리'를 수족관에 다시 넣어주면서 "이건 팔지 마세요."라고 하자 상인 멧돼지 왈, "예, 잘 보관할게요." 하더랍니다. 그쯤하고 떠났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내 멧돼지나 나나 먹성이 오죽 좋아야지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나 봅니다. 아내 멧돼지는 기어코 큰도리 한 마리를 쪄 달라고 부탁해서 서울로 가져왔습니다. 다른 멧돼지들에게는 리더 멧돼지인 내가 좋아한다는 핑계를 대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도 아내 멧돼지의 동물 사랑 때문이 아니라 간편 도시락 대용이라는 것을 알 만한 멧돼지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나와 아내 멧돼지의 먹성 때문인 셈이지요.


어떻게든 세계 최강의 날리면 멧돼지의 눈에 들기 위해 리더 멧돼지에 취임한 직후부터 애를 써왔던 나는 결국 날리면 멧돼지의 꼬붕인 일본의 기시감 멧돼지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부하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지요. 기시감 멧돼지의 선조인 일본 조폭 멧돼지들에게 끌려가 갖은 고초와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우리나라 멧돼지들에 대한 일본 멧돼지들의 사죄와 배상을 일절 요구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똘마니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와 같은 발표를 하자 일본은 물론 미국의 멧돼지들도 환영 일색이었습니다. 기시감 멧돼지를 비롯한 그의 똘마니들은 이게 웬 떡이냐는 듯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겉으로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물론 강제징용에 끌려갔던 우리나라의 늙은 멧돼지들은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적당히 몇 푼 쥐어주면 못 이기는 척 받고 말겠지요. 설사 안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달리 무슨 대책이 있겠습니까. 천박한 것들! 나를 지지하는 일부 나의 똘마니들 중 한 사람은 "식민 지배받은 나라 중에 지금도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있나"라고 했으며 또 다른 멧돼지는 "나는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는 말로 지지를 표명하고 어떤 목사 멧돼지는 일장기를 흔들며 나를 응원했습니다. 그야말로 나는 기시감 멧돼지에게 넙죽 엎드린 셈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나를 지지하는 똘마니들의 선조들은 일본의 은혜로 이 자리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아, 요즘 참 나에 대한 세간의 오해가 깊어지는 듯해서 말인데 짧게 해명을 하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내가 모든 요직을 예전 나의 뒷골목 똘마니들로 채우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사실 그것은 일부러 그들만 골라 임명한 게 아니었습니다. 나의 전반적인 국정운영이 대부분 탈법이거나 불법인 까닭에 나의 임기가 끝나면 요직에 임명되었던 그들 모두 감옥에 갈 것을 우려한 나머지 요직에 지명된 일반 멧돼지들 대부분은 지명을 고사하거나 숫제 지원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나마 뒷골목 출신의 똘마니들은 그들 후배들이 버티고 있는 한 적어도 감옥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여 내가 지명하는 순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뒷배를 믿고 있는 까닭에 내가 임명한 요직을 수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이런 현실이 영 개운치 않고 답답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 점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나의 불법이나 탈법적인 국정운영을 앞으로 지양하거나 개선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어제는 우리 편 무리의 대표 멧돼지를 선출하는 날이었습니다. 결국 내가 원했던 멧돼지가 당선되었고 그는 나의 1년 선배이기도 하지만 선거 기간 동안 그가 보인 행보는 참으로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내가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당선되기 힘들었을 듯합니다. 앞으로 나는 대표 멧돼지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혼쭐을 내 줄 생각입니다. 물론 그의 돈생은 비리가 워낙 많아서 내 말을 듣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테지만 말입니다. 내가 이렇게 저간의 사정을 구구절절 밝히는 이유는 쌓인 오해는 풀고 가야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날리면 멧돼지가 나를 초청하는 걸 보면 나는 조만간 그의 심복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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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3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8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1. 완연한 봄, 나는 왜 짜증만 느는가?


내 기억에 봄은 언제나 바람과 함께 오고 더위와 함께 흩어지곤 했습니다. 오늘처럼 하늘이 맑고 창밖으로는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스쳐가는 날이면 '아, 벌써 봄이 왔구나!' 내심 놀라며 감탄하게 됩니다. 어쩌다 바람이 없는 날이면 탁한 미세먼지가 며칠씩 이어지고, 그러다 오늘처럼 바람이 불어 공기질이 반짝 좋아지는 날이 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바람과 미세먼지의 끝없는 반복을 몇 차례 겪고 나면 미처 대비하지 못한 더위가 화염방사기의 불꽃처럼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황량하기만 하던 숲이 연녹색 생명의 색깔로 물들기 시작하는, 꿈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이제 어느 오래된 시인의 시집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것은 마치 공룡이 출몰하던 중생대 백악기의 기록처럼 사람들 기억의 지층 속에서 단단한 화석으로 굳어가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대한민국의 리더 멧돼지가 된 지도 벌써 만 1년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11월에서 1월 사이에 짝짓기를 하는 멧돼지의 생태상, 시기적으로 보면 우리 멧돼지에게 겨울은 가장 원기가 왕성한 계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어느 때보다 기운이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이를 보다 못한 아내 멧돼지는 내가 취임한 후 9개월간의 주요 성과 10가지를 정리한 20초짜리 영상을 2월 한 달간 전국 146개 옥외 전광판에 송출하도록 지시를 내렸겠습니까. 순전히 나의 축 처진 어깨에 힘을 불어넣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말입니다. 부동산 규제 지역 해제나 사상 최대 수출액 달성으로 세계 수출 순위 6위를 달성했다는 등의 내용은 사실 성과라기보다 감춰야 할 오점에 불과하지만 아내 멧돼지는 이를 포장하여 사기에 가까운 말로 뭉뚱그렸던 것입니다. 사실 부동산 침체와 사상 최대의 무역 적자를 성과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게 다 나의 지지율 감소로 인한 급격한 원기 하락이 원인이었습니다. 그 외의 성과도 나의 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전임 리더 멧돼지의 성과라고 하는 게 옳겠습니다.


상대편 무리의 대장을 내 뒷골목 똘마니들을 시켜 잡아들이라고 했던 게 아무래도 조금 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말의 거리에는 온통 나에 대한 욕설과 조롱으로 넘쳐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걸 보면 나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멧돼지보다 그르다고 생각하는 멧돼지들이 훨씬 많은 게 아닐까 싶은 것입니다. 게다가 결혼 전에 있었던 아내 멧돼지의 주가 조작 증거들이 속속 드러남으로써 나는 요즘 밤잠을 설칠 지경입니다. 차라리 아내 멧돼지를 감옥에 보내고 새장가를 드는 게 어떨까 하는 못된 생각도 하고 말입니다.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준 아내 멧돼지의 노력이나 희생은 내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아내 멧돼지와 장모 멧돼지 역시 나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열을 올렸던 것 또한 사실인 까닭에 나는 그들에게 조금의 미안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많은 일반 멧돼지들이 사정도 모르는 채 욕을 할 게 너무도 뻔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자식도 없는 내가 다른 젊은 암컷 멧돼지와 살아보고픈 마음을 굳이 숨겨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어차피 한 번뿐인 돈생인데 말입니다.


발정기가 지나서인지 아니면 환절기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지 똘마니 멧돼지들에 대한 짜증이 늘었습니다. 자살 예방을 위한 대책이라며 내놓은 게 번개탄 생산 금지를 거론하지 않나, 매년 남아도는 쌀 생산량을 세금으로 수매하는 기존 제도의 불합리성을 제거하기 위해 저생산의 품종을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둥 한심하기 짝이 없는 대책만 나열하고 있는 것도 나의 짜증을 유발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지만 일본의 기시감 멧돼지 역시 얄밉게 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뭐 하나 내 뜻대로 풀려나가는 게 없는 듯합니다. 게다가 북한의 여정 멧돼지가 깐죽대는 것도 참아내기 힘듭니다.


완연한 봄인 듯합니다. 창밖으론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치달리고 괜스레 부아가 치밀어 짜증만 한가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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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2-20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만간 <대한뉘우스>의 부활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꼼쥐 2023-02-24 16:03   좋아요 0 | URL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언론들의 작태를 보면 말이죠.

라로 2023-02-2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1년도 안 되었군요! ㅠㅠ

꼼쥐 2023-02-24 16:05   좋아요 0 | URL
시간이 너무 천천히 가는 것 같아요. ㅠㅠ
총선에서 본때를 보여줘야 할 텐데 말이죠.

singri 2023-02-21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미가요도 틀어주고 조만간 이완용 나올지도요

꼼쥐 2023-02-24 16:06   좋아요 0 | URL
일왕 생일에 외교부 2차관이 참석한 자리에서 기미가요도 틀고 다케시마의 날에 맞춰 일본 자위대와 함께 독도에서 훈련도 하고...

2023-02-21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4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 무능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원도 많지 않고, 국토의 면적도 좁은 대한민국의 경제 여건 상 국제 무역을 통한 수익의 창출은 필수적입니다. 달리 먹고살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서 남쪽보다는 북쪽에 더 많은 자원이 매장된 것은 사실이지만 통일이 되지 않는 한 그마저도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북쪽을 통하지 않고서는 대륙과의 연결이 요원한지라 우리가 사는 남쪽은 마치 하나의 섬과 다를 바 없다 하겠습니다. 바다를 통한 교역은 물류비용도 비용이지만 많은 위험이 뒤따르기도 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가 아랍 에미리트에 파견된 싸움 멧돼지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혹은 그들 앞에서 가오 좀 잡아보려는 차원에서 했던 중대한 실언으로 인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우리의 배들에 나포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게 술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 술을 많이 먹은 다음 날이면 유난히 말이 많아지고 실수도 잦아지는 걸 보면 이제 내 몸도 예전과 같지 않은 모양입니다. 알코올 중독을 넘어 알코올성 치매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나의 실수로 기인한 일들이지만 똘마니 멧돼지들이 어떻게든 수습을 하겠지요.


다른 건 별로 부럽지 않은데 전임 리더 멧돼지의 능력 중 부러운 게 딱 하나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던 능력입니다. 나는 리더 멧돼지로 취임한 이래 단 한 달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하였는데 그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어떻게 그와 같이 탁월한 능력을 선보일 수 있었을까요. 그 능력만 제외하면 내가 그보다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뒷골목 멧돼지들을 동원하여 나의 지시에 저항하는 멧돼지들을 잡아들이거나 겁을 주는 능력, 소문내기 멧돼지들로 하여금 나를 찬양하는 기사만 쓰도록 하는 능력, 나와 뜻이 같은 멧돼지들을 집으로 불러 밤마다 술을 마시는 능력 등 내가 자신할 수 있는 능력은 차고도 넘치니까 말입니다. 결혼 전에는 여러 암컷 멧돼지들과 어울리는 능력도 탁월했으나 지금은 젊은 멧돼지들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아무튼 무역수지 적자가 매달 이어지고 누적액도 점차 커지다 보니 환율이 폭등하고 수입 물가가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문제는 나와 내 주변의 부자 멧돼지들은 사는 데 별 어려움이 없지만 수입 물가가 오르고 날씨마저 강한 한파가 이어지다 보니 난방비 폭등이라는 둥 교통비며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이 웬 말이냐는 둥 사사건건 반기를 드는 일반 멧돼지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수출이 안 되는 걸 어쩌란 말인지요. 없는 능력을 전임 리더 멧돼지로부터 꿔올 수도 없고 말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뒷골목 멧돼지들을 동원하여 다 잡아들이라고 명령을 내리고 싶지만 그것만은 안 된다는 똘마니 멧돼지들의 만류와 다른 나라의 소문내기 멧돼지들이 나에 대한 비판 기사가 연일 계속되는 바람에 꾹 참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편 멧돼지들의 대표를 뽑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가 지명한 멧돼지의 인기가 높아지지 않아 걱정입니다. 여러 멧돼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단상에 올라 다른 멧돼지를 치받는 퍼포먼스 한 방이면 당선이 될 텐데 그게 뭐 어렵다고 절절매는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리더인 내가 대표 멧돼지로 출마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생각할수록 속에서 열불이 납니다. 등신 같은 놈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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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3-01-29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수는 어찌 보낼지ㅋㅋ

꼼쥐 2023-01-30 17:3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아무래도 철수 땜시 밤잠을 설칠 듯한데...

라로 2023-01-29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등신같은 놈들!!! 아 넘 웃겨요!ㅎㅎㅎ

꼼쥐 2023-01-30 17:34   좋아요 0 | URL
주인공에 빙의되어 글을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본심이 나온 듯...
 

9. 권력의 서열과 아내 멧돼지의 질투


진흙 목욕을 즐기는 우리 멧돼지들에게 있어 날씨는 꽤나 민감한 문제입니다. 웬만하면 참고 견디는 게 일상인 우리들입니다만 춥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씨는 멧돼지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조건이지요. 그런 날에는 가뜩이나 먹이를 구하기도 어려운데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는 몇 배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따뜻했던 날씨 덕분에 2023년 새해를 기분 좋게 시작했습니다만 어제부터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지역마다 편차가 심해서 어떤 곳은 침수가 되기도 했고, 어떤 곳은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날씨는 여전히 푸근합니다. 비가 그치고 다음 주에는 다시 또 추워진다고 합니다만 나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아내 멧돼지와 함께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는 집에서건 밖에서건 아내 멧돼지가 무섭습니다. 이처럼 아내 멧돼지를 극도로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은 무척이나 오래된 일입니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나의 성격과는 다르게 아내 멧돼지는 앞뒤 가리지 않는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런 차이에서부터 나는 아내 멧돼지의 말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이긴 하지만 아내 멧돼지를 두려워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성격 차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뒷골목 시절 내가 저질렀던 온갖 비리를 아내 멧돼지가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인간 세계의 속담이 멧돼지 세계에서 통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내가 털끝만 한 흠이라도 잡혀 갈라서는 날에는 나의 비리가 만천하에 밝혀지는 걸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보다 두려운 것입니다. 이런 약점을 아내 멧돼지라고 모를 리 없습니다.


다른 멧돼지들은 모르는 사실입니다만 리더 멧돼지로서의 나의 권력은 한낱 허울뿐인 권력일 뿐 모든 권력은 아내 멧돼지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멧돼지의 속성 상 다산과 개체수 조절에 별 관심이 없는 관계로 나는 한때 나와 공부도 같이 했고, 뒷골목 생활도 했던 암컷 멧돼지 한 마리를 다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임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나는 아내 멧돼지로부터 온갖 욕설과 비난을 들어야만 했고, 어떻게 하면 그 암컷 멧돼지를 자를 수 있을까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마침 사직서를 제출한다기에 나는 단칼에 해임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그 암컷 멧돼지에게 특별한 애정이나 관심이 없다는 걸 아내 멧돼지에게 간접적으로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그 암컷 멧돼지는 머리도 좋고, 얼굴도 예뻐서 젊은 시절 많은 수컷 멧돼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아내 멧돼지인지라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나는 사실 세계 최강이라는 날리면 멧돼지를 두려워하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날리면 멧돼지보다는 일본의 기시감 멧돼지에게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정책이라면 뭐든 강력하게 지지하고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와 같은 의사는 아내 멧돼지와 나의 선대 멧돼지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나의 선대 멧돼지뿐만 아니라 나의 똘마니 멧돼지들의 조상들 역시 과거 일본 멧돼지들이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식민지 시절 당시 많은 보살핌과 지원을 받았으므로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게 멧돼지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많은 멧돼지들이 죽고 강제 노동에 끌려갔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일본의 기시감 멧돼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의 생각에 반하는 야당의 멧돼지들이나 일반 멧돼지들의 저항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력하게 막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알던 암컷 멧돼지를 부위원장직에 임명했던 나의 실수를 만회하고 아내 멧돼지로부터 신뢰와 애정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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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1-15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이 5년 동안 연재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꼼쥐 2023-01-15 14:2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전제는 대한민국의 존립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지 않는 것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8. 존댓말과 상민 멧돼지


도시는 며칠째 미세먼지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1995년에 있었던 도쿄 지하철 차량 내에서 발생한 무차별적인 사린 가스의 살포를 잊지 말라는 경고처럼 보이기도 하고,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의 무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소한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비껴가려는지 쌀쌀하던 날씨가 풀려 미세먼지만 가득합니다. 그나저나 뒷골목 시절부터 늘 반말에 익숙했던 내가 리더 멧돼지가 된 지도 한참이나 지난 오늘 이렇게 존댓말로 일기를 쓸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게다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존댓말로 지극히 사적인 일기장을 메운다는 게 저로서도 믿기지 않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에게 하는 말일지라도 뒷골목 세계에서는 언제나 반말이 일상어처럼 쓰였던지라 다 늦은 나이의 내가 이제 와서 존댓말을 배운다는 게 말이 되지 않을뿐더러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똘마니들에게 누차 설명했는데 이번 존댓말 건에 대해서는 도무지 고집을 꺾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지고 만 것입니다. 나에게 존댓말을 쓰도록 건의한 비서 멧돼지 왈, 반말 짓거리를 찍찍하는 내 모습이 과히 보기 좋지는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내가 꼴값을 떠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여론도 좋지 않고 말입니다. 결국 나는 외국어를 배우듯 존댓말을 배우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거번먼트 인게이지먼트가 레귤레이션인 것처럼 말입니다.


멧돼지들에게 이름이나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내가 리더 멧돼지가 된 후 상민 계급의 멧돼지인 나의 충복에게 '어이, 상민(常民) 왔는가?' 하고 물었던 게 인연이 되어 상민 멧돼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앞에서도 쓴 바 있습니다. 상민 멧돼지로 하여금 정부의 주요 직책을 맡겼던 것은 나에 대한 그의 충성심도 충성심이지만 '두꺼비'라는 그의 별명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사회성이 부족하여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 능력이 전무하고, 말을 가려서 할 줄 모르며, 미래에 처할 자신의 운명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만 아니라 내가 리더에서 물러나는 순간 내가 저질렀던 대부분의 죄를 나 대신 그가 옴팡 뒤집어쓸 수도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는 뒷골목 시절 그가 심판을 보았다는 경력 때문에 후임 심판으로부터 죄를 추궁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조금쯤 알고 있습니다.  내가 리더에서 물러나는 순간, 나의 부름을 받았던 많은 수하들이 감옥에 갈 것이며 사면이나 복권을 기대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내가 리더 멧돼지가 된 후 많은 멧돼지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정부의 잘못이었습니다. 나라고 왜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럼에도 상민 멧돼지를 보직에서 해임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앞으로 저지르게 될 많은 죄들을 그가 대신 뒤집어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나의 방패막이인 셈이지요. 그는 그 일을 성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비록 눈치가 없고, 공감 능력도 부족하지만 나처럼 매사에 두려움과 공포가 큰 멧돼지에게는 상민 멧돼지만큼 배포가 크고 우직한 멧돼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이지요. 내가 리더에서 물러난 후에도 그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듯합니다. 내가 그를 신임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도시는 여전히 미세먼지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당 대표에 출마하는 여러 똘마니들이 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연일 굽실대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마음을 정한 지 오래되었지만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나에게 충성을 다짐하며 나를 알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정치권도 여전히 안갯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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