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새벽 어둠을 뚫고 산을 올랐다.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산길은, 더군다나 오늘과 같이 아무도 밟지 않은 새벽길은 가슴 두근거리는 설레임을 안겨준다.
우산을 받쳐들고 조용히 걷고 있노라니 온 세상 만물이 잠에 취한 듯 사위가 고즈넉하고 적막하다.  이런 날이면 호들갑스런 청설모도, 부지런한 딱다구리도, 먹이를 찾아 풀숲을 뒤지는 참새도 보이지 않는다.
산의 정상에 다다랐을 무렵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비오는 날, 호흠은 늘 ’여기’ 에 머문다.
일정한 시차를 두고 ’똑똑’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그동심원의 파장 중심에 몸과 마음이 오롯이 합일을 이룬다.
맑은 날이면 날숨을 따라 저만치 앞서가던 마음이 떨어지는 빗방울에 놀라 되돌아오고, 몸과 마음과 시간이 삼위일체가 되어 지금 이 시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음의 창을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길지 않은 시간.

’마음이 생각의 넝쿨을 옮겨 다닐 때의 또 다른 문제점은 결코 현재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던 어느 여류작가의 설명처럼, 맑게 개인 날이면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과거를 들이파거나, 미래를 들쑤시기에 바빠 이 순간에 편히 쉬지 못한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소나무에서 짙은 솔내음이 기분좋게 코끝을 자극한다.
오늘은 서둘러 출근할 일도 없으니 평소보다 멀리 걷기로 한다.

어느새 하얗게 눈 덮인 풍광이 그저 평화롭다.
사는 것이 지금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고, 눈처럼 아름답다면...
나무 등걸에 앉아 눈 내리는 아침산을 넋놓고 바라보았다.
어느덧 허기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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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 주세요.

지난 날을 가만히 뒤돌아 보면 행복했던 기억 보다는 슬프거나 힘들었던 기억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들을 우리는 너무나 하찮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또는 행복의 기준이 현대의 경쟁심리에 밀려 부풀려진 것은 아닌지... 

진정한 부자는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여행기 하면  여행지의 낭만과 괜스레 센티해지는 감상을 떠올리곤 한다.  이런 주관적 감정이 새로이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 실망만 안겨주는 경우를 너무도 자주 접하게 한다.  지리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과 편안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던 한 영국 청년의 자전거 모험기는 여행기의 통념을 일거에 부숴버리는 것은 물론 우리가 중요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자전거를 타고 자신의 두 발로 페달을 밟아 시베리아 마가단에서 영국 런던까지 5만여 킬로미터를 달린 한 영국 청년의 여행기는 극한의 조건에서 견뎌야 했던 치열한 순간들의 기록이다. 

 

 

 

11명의 문인들이 들려 주는 여행 이야기. 

삶에 더해진 또 다른 삶의 현장에서 그들은 무엇을 찾고, 또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자신의 자아'를 찾는다는 거창한 의미는 뒤로 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인 11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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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감기가 오려는지 목이 칼칼하고 식욕이 없다.
몸이 욱신욱신 쑤신다.
무겁게 짓누르는 피로감에 시간이 몇 배는 천천히 흐르는 듯하다.
얼굴이 화끈거려 찬물에 세수를 했다.  그래도 여전히 머리는 무겁고 가슴은 답답하다.
명절 연휴 동안 평소의 규칙적인 리듬이 깨진 탓인지 온 몸의 에너지가 방출된 느낌이다.
마치 태엽이 풀린 장난감처럼 금방이라도 작동을 멈추고 `푸르륵’ 꺼져버릴 것만 같다.

나의 감각이 예민하게 되살아나기만을 기다리며 멍한 시선으로 한동안 창밖을 응시했다.
잔뜩 찌푸린 하늘과 어깨를 웅크린 채 종종걸음을 치는 행인들. 
어디 아프냐며 걱정스레 묻는 동료에게 약간의 감기 기운이 있나보다고 대답하며 별것 아니라는 듯 멋적게 웃었다.  물 묻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간신히 추스리며 자리에 앉았다.
금방이라도 내 몸은 땅을 뚫고 가라앉을 것만 같다.

`조퇴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병원에라도 다녀와야 할까?’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업무시간에 나의 시간만 홀로 유리방에 갇힌 듯 꼼짝을 하지 않는다.
하릴없이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참 오랫만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내 성격상 꾀를 부리거나 엄살을 떠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퇴근 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곱지 않은 시선인 듯한데 그 일로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말까지 듣는다면 그도 견디기 힘든 노릇이었다.

임시변통으로 사무실 근처의 약국에 들렀다.
알약과 함께 쌍화탕 한 병을 들이켰다.
빈속에 삼킨 약이 위벽을 훑고 지날 때마다 헛구역질이 났다.
`퇴근 시간까지는 좋아져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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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 쪽 식구들과 2박 3일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약속이 있어 장인어른은 참석하지 못하셨지만, 장모님을 비롯해 손윗동서 두 분과 그 가족들, 아랫 동서와 가족들, 그리고 나와 아내 및 아들녀석이 모처럼 다 모였다.
설 명절 당일이라서 그런지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온천으로는 유명하지만 다른 볼거리가 없는 수안보.  숙박 시설과 음식점의 휘황한 불빛이 없다면 시골의 조용한 마을일 듯한 그곳에 도착한 것은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H콘도에 여장을 풀고 서둘러 저녁을 해 먹었다.
딸만 넷인 아내의 형제들은 모두 딸만 낳았고, 내 아들녀석이 유일한 사내이니 아랫동서의 딸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이제 네 살이 된 아랫동서의 딸이 밤이 늦도록 재롱을 떨었다.
큰동서의 식구들은 다음 날 합류하겠노라 했다.
아랫동서가 설거지를 자청하였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날 아침 설거지는 내가 하겠노라 약속했다.
객실 두 개를 잡은 탓에 남자들과 여자들이 나뉘어 잠을 잤다.
아들녀석은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좀체 자려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약속대로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근처의 눈썰매장으로 향했다.  전날과는 달리 눈썰매장은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로 왁자했다.
점심을 숙소 가까운 음식점에서 해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동서의 식구들이 도착했다.
올해 숙명여대와 한동대학 두 곳에 합격한 큰동서의 큰딸에게 다들 축하 인사를 건넸다.
시험 부담을 털어낸 외조카의 환한 웃음이 싱그러웠다.

오후에 다시 찾은 눈썰매장에서 아들녀석은 도통 떠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저녁이 되자 봄 날씨 같던 기온이 제법 쌀쌀해졌다.
`조금만 더'를 연발하던 아들녀석을 간신히 달래어 숙소로 돌아왔다.
객실 하나를 더 추가하여 큰동서의 식구들이 그곳을 사용했다.
올해 네 살의 아랫동서 딸과 이제 스무 살이 된 큰동서의 딸까지 아이들은 늘어난 식구들과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제와 장모님 그리고 큰동서는 온천 사우나를 다녀왔다.
저녁을 먹자마자 아이들과 같이 눈썰매를 타느라 피곤해진 어른들은 서둘러 잠자리를 폈다.

토스트와 우유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체크아웃을 하자 벌써 정오가 넘었다.
귀경차량으로 곳곳이 정체라는 소식에 동서들 모두는 운전할 걱정이 얼굴에 가득했다.
아니나 다를까 고속도로에 오르자 차들은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집에 도착하자 나른한 피곤이 몰려왔다.
아들녀석도 피곤했는지 정신없이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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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스물 여덟. 

그 아까운 청춘에 생을 마감한  이석주 사진작가. 

인생에 나중은 없다고 말하던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홋카이도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죽어서 눈처럼 가벼워지기를 소망했던 것일까?  아니면 산 자의 가슴에 눈처럼 흰 카드라도 한 장 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떠났고 남겨진 사진 위에 쌓이는 그리움을 적는 강성은 시인의 독백이 애닯다. 

 

"3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신, 무얼 하고 싶은가요?" 

각기 다른 성향의 열 명의 저자들이 들려주는 옴니버스 에세이.  인생에 '만일'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진지해 질 수 있을까?  정답 없는 질문에 열 명의 각기 다른 작가들이 자신만의 인생을 펼쳐 보인다.  단 3일뿐의 삶!  그 3일처럼 전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방송작가로 활동 중인 저자가 느끼는 일상은 어떤 것일까? 

음악 프로그램을 맡고 있으니 듣고 싶은 음악은 맘껏 들을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일순, 그래서 더 아쉬운 것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  이십대의 후반과 서른 사이에 놓인 작은 시내를 건너는 그녀의 감성, 그리고 살아있음.  그녀의 글은 입체의 공간에서 톡톡 튀는 물방울처럼 싱그럽다. 

 

 

 

판화가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는 그 짧은 글 속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짧아서 더 쉽게 잊혀질 수 있다지만 삶의 여백처럼 그 빈 공간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글과 말로 채워진 어지러움이지 빈 여백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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