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일회 一期一會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대학 동기와 후배들을 만난 저녁 자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책을 많이 읽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 뭐하겠나 싶어서... 그것은 저녁 자리에서 벌어진, 아니 내가 뱉어낸 두 가지 말들 때문이다. 하나는 동기와 함께 다른 친구에 대해 험담을 한 것이고 또 하나는 모임의 이야기가 음담패설로 흐를 때 그것을 다시 진지하거나 건강한 이야기로 유도하지 못하고 동참한 것이다. 올해부터는 온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건강한 이야기를 나누고 격려하고 서로 도와주고 희망을 나누고 싶었는데 그 결심이 흐트러져 버렸다. 한 마디의 말, 한 번의 몸짓에서부터 다시금 나를 돌아보고 경계해야 한다고 다짐해 본다.
 

이 책은 생전에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출간한 책이자 최초로 스님이 대중과 학인을 상대로 직접 하신 말씀을 모은 법문집이다. 길상사의 정기법회 법문, 여름안거와 겨울안거 결제 및 헤제 법문, 부처님 오신날 법문과 창건법회 법문 등이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스님의 법문은 대부분 길상사에서 이루어졌지만 때로는 명동성당, 뉴욕 맨하탄, 세종문화회관, 청도 운문사와 원불교 대강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책 속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는 "삶에서 가장 신비한 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생애 단 한 번 뿐인 인연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일기일회一期一會]이고 50년 넘게 수행자로서 살아오신 스님의 마지막 가르침일 것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우리가 살아야 하는가? 나는 진정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법정 스님은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그 자체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스님은 헛된 말과 관성적인 삶이 스모그처럼 퍼져있는 시대에 말과 삶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온 이의 진정성이 담긴 가르침을 맑은 울림처럼 담아냈다. 각 법문의 서두에는 그날의 계절과 시간이 담겨있어 때로 작은 절마당에 고즈넉하니 앉아 스님의 가르침을 듣는 기분에 젖기도 한다. 
 
[2008년 11월 12일 겨울안거 결제일 법문 : 추울 때는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더위가 되라] 스님은 "만약 미국을 비롯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경제 불황 없이 한결같이 고도성장으로만 치닫는다면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물으신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도 이것은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것이다. 서구에 자본주의가 태동한 이래 이제 250년 정도... 그 기간 동안 유럽과 미국, 일본과 한국, 최근의 BRICs 국가들... 대략 20여개국 정도가 그 짧은 기간 동안 마치 굶주린 돼지처럼 지구의 숲과 산, 물과 자원을 고갈시켜 온갖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생태적 재앙이 이어지고 있는데 앞으로 또 수 많은 국가들이 그 대열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피에르 라비,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이반 일리히, 버트런드 러셀, 쓰지 신이치...  그들의 이야기처럼 "성장을 멈춰라"라고 힘차게 외치고 싶다. 내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멈출 것인지, 멈춘 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먼저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열중하는 문제 중 하나다.
 
[2008년 8월 15일 여름안거 해제일 법문 : 중노릇하면서 빚만 많이 졌다] 2007년 겨울 대통령 선거의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면서 스님은 "경제 살리기만 외쳐도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로 뽑아 주는 그런 세태 아닙니까?"라고 한탄하면서 구호만 가지고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고, 그런 헛된 구호만 가지고 경제를 살리고 죽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번 주 중에 MB정부가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를 탈락시키면서 영남지역 정치권과 '가진자'들이 흥분하고 있다. 박근혜는 특유의 방식으로 '주장과 분위기를 짱 본 후'에 대선 공약을 지키라는, 전형적인 '기회주의' 속성을 보여준다. '영남권 신공항' 문제는 기회주의나 대선 공약의 문제가 아니다. 나 역시 다른 모든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떠나서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한국의 정치권은 그동안 대통령이나 지자체장, 그리고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 아무런 경제적, 사회적 실익이 없는 공항을 수도 없이 건설하여 국민의 세금을 낭비했고 운영비를 지금도 낭비하고 있다. 이 판국에 무슨 '영남권 신공항'이란 말인가? 그것을 주장하는 자들은 무지와 탐욕을 가득찬 모리배에 불과하다...
 
[2008년 5월 12일 부처님 오시날 법문 : 하루 낮 하루 밤에 만 번 죽고 만 번 산다] 스님은 2008년 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파동', 그리고 조류독감으로 6천만 마리나 생매장한 닭과 오리에 대해 '업'과 '자비'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국가와 기업과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돈에 눈이 어두워 '초식동물인 소에게 같은 소의 뼈와 내장을 사료로 먹이기 때문에' 소가 미쳐 버린 것이고 다닥다닥 붙은 인조 감옥 양계장 안에서 사료를 먹이는 조류들이 집단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현상을 개탄한다. 그러한 인간들의 동물에 대한 죄는 반드시 '업'이 되어 인간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 이러한 시대에 인간 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자비심을 일으켜야 함을 지적한다. 
 
[2008년 4월 20일 봄 정기법회 법문 : 생명 자체가 하나의 기적] MB정부가 은밀히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것은 이 땅의 무수한 생명체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끔직한 재앙이며, 이 국토가 오랜 역사 속에서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영혼이고 살이고 뼈이기에 어떤 정책과 권력으로도 이 땅을 망신창이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세상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기 때문에 무모한 자연파괴는 반드시 인간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것도 아무런 죄가 없는 후손들에게...
 
[2006년 10월 15일 가을 정기법회 법문 :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다음에 먹는다] 당시 크게 사회문제화 되었던 '한미FTA'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나 언론의 선전과는 달리 철저하게 미국 기업과 투자자를 위한 협정이며, 미국만을 위한 보호주의라고.. 한국의 무역 개방정도가 70%가 넘어서고 있는 판국에 개방정도가 20% 밖에 되지 않는 미국을 위해 나머지 분야를 모두 개방하고 나면 수출 산업과 기업 일부는 성장할 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산업부분이 취약해지고 실업과 빈부격차가 확대될 것을 예상한다. 특히, 농업이 죽게 되면 곡식 뿐 아니라 생태적인 관리가 불가능해짐을 역설하시면서 "경제가 튼튼하려면 기초산업인 농업이 뿌리내려야 한다"는 경제관을 제시한다.
 
[2004년 4월 18일 봄 정기법회 법문 :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면 신도 우리를 용서한다]에서 스님은 [법구경]의 법문을 예시하면서 용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온 세상의 사람들 중에서 허물없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시면서 "함부로 남을 꾸짖거나 흉을 봐서는 안된다. 허물을 감싸 주고 덮어 주는 용서는 사람을 승화시킨다. 용서는 마음 속에 사랑과 이해의 통로를 열어 준다"고 강조한다. 선의의 충고와 꾸짖는 것은 다르다는 것...  
 
* 책 속의 문장
-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일기일회, 한 번의 기회, 한 번의 만남입니다. 이 고마움을 세상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p.54)
 
- 살 만큼 살다가 세상과 작별하게 될 때 무엇이 남는가? 홀로 있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평소에 지은 업을 가지고 간다. 좋은 업이든 나쁜 업이든 평소에 지은 업만 그림자처럼 따라간다. 하루하루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말과 행위를 하는가가 곧 다음의 나를 형성한다.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스스로가 다음 생의 자신을 만들고 있다.(p.173~174)

-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든 한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매 순간 마음을 맑히는 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한숨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마음을 맑히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 한순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한순간이 바로 생과 사의 갈림길입니다. (p.317)
 
[ 2011년 4월 1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로 라이프 - 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삶
쓰지 신이치 지음, 김향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걷기, 빈둥거리기, 반세계화, 슬로 푸드, 잡일, 안심, 슬로 보디, 스몰, 새로운 빈곤, 인디언 타임, 언플러그, 기다림, 슬로 러브, 지금 여기, 있는 것 찾기, 슬로 머니, 머물기, 비폭력, 슬로 비지니스, 친환경주택, 컬처 크리에이티브, 놀기, 에코 투어리즘, 슬로 카페, 씨앗, 슬로 워터, 생명 지역, 딥 에콜로지, 쉬기, 흙, 에코 이코노미, 빠빠라기, 원주민 달력, 슬로 폴리틱스, 신체 시간, 페어 트레이드, 뺄셈의 발상, 촛불......  이 많은 단어들이 의미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저자는 돈, 효율, 경쟁, 경제성장 같은 것을 우선시하는 사회에서 살면서 사람들이 당연한 즐거움, 아름다움, 편안함 등으로부터 멀어졌다고 말한다. 돈, 효율, 경쟁, 경제성장은 결국 ’패스트 라이프’를 의미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삶에서 즐거움, 아름다움, 편안함을 되찾기 위해서는 그 반대인 ’슬로 라이프’로 바꾸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지구상에는 ’패스트 라이프’에 저항하는 다양한 개념과 주체들이 존재한다. ’단순한 삶’, ’LOHAS(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문화창조자들’, ’작은것이 아름답다’, ’슬로푸드’, ’반세계화’, ’지속 가능한 개발’...  저자는 그러한 개념과 주체를 담아내면서 자신의 경험과 활동을 토대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슬로 라이프’다. ’슬로 라이프’를 규정하는 여러 키워드가 바로 위에서 열거한 단어들인 셈이다.
 
- 걷기 : 슬로 라이프의 첫 걸음은 산책을 되찾는 일이다.
- 방랑 : 진정한 풍요를 위해 물질과 돈에 의지하지 말자.
- 게으름 : 생각해 보자. 누구를 위한 근면인지...
- 슬로디자인 : 입고 먹고 사는 일 모두를 다시 디자인하기..
- 슬로 푸드 :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먹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
- 잡일 : 잡스러움을 허용하지 않는 삶은 공허하다.
- 슬로 러브 : 사랑이란 본디 시간을 포함하는 일이다.
- 슬로 머니 : 왜곡된 경제를 바로잡기 우해서는 ’또 하나의 돈’이 필요하다.
- 슬로 워터 : 우리는 지구의 물을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 슬로 타운 : 속도를 늦추면 눈앞의 풍경이 달라 보인다.
- 있는 것 찾기 : 없는 것을 애달파하는 대신 있는 것을 찾자.
- 딥 에콜로지 :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생물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
- 머물기 :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함께 사는 일은 점점 더 멀어진다.
- 인디언 타임 : 중요한 건 시계가 아니라 상황과 형편에 따른 배려다.
- 슬로 폴리틱스 : 속전속결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 놀기 : 헛되기 때문에 비로소 충실해지는 것...
- 언플러그 : 시스템에서 플러그를 뽑고 공동체에 플러그하기..
- 자전거 :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누가 이겼을까?
- 잡곡 : 맛도 좋고 영양도 좋고 환경에도 좋은...
- 슬로 비지니스 : 바쁘지 않아도, 빠르지 않아도 잘 팔린다.
- 에코 투어리즘 : 여행지의 시간을 나의 시간으로 파괴하지 않기...
- 페어 트레이드 : ’남과 북’이, 시골과 도시가, 자연과 인간이 공정한 무역...
- 슬로 카페 : 차 마시고 수다 떨며 세상에 느리게 딴지 걸기...
- 슬로 섹스 : 그 넓고도 깊은 몸의 쾌락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 빈둥거리기 :경쟁 바깥에 있는 참된 자신의 ’거처’를 발견해 내자.
- 쉬기 :  목적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 촛불 : 가끔식은 어둠을 아름답게 되찾아 보자.
- 나무늘보 : 우리가 나무늘보에게서 배워야 한다.
 
수 십개의 키워드와 그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많은 계기와 기회가 주변에 널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키워드는 다른 키워드와 연관될 수 밖에 없고 하나의 키워드로부터 출발하여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척할 수 있다는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어떤 키워드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독자들이 느껴보고 시도해볼 수 있는 많은 방식과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정리한 셈이다.
 
’패스트 라이프’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자주, 그리고 습관적으로 일상 언어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잘 생각해보자. 한국인이 제일 많이 쓰는 표현이 바로 "빨리빨리"이지 않은가? 이 "빨리빨리"는 한국인과 자주 접하는 모든 국내,해외외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빨리빨리"가 결국 한국에게, 그리고 한국인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 일부 경제성장이라는 숫자와 부를 가져다 주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외형적인 숫자와 부를 얻는 대신에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잃었다. 그 소중한 것들은 바로 아름다움, 연대의식, 동질감, 우정, 사랑, 아름다움, 여유, 행복, 건강... 그런 면에서 우리 한국인들이야말로 ’슬로 라이프’에 대해 일본인들보다, 아니 어느 외국인들보다 더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일본에 대해 몇 가지 새롭고 신선한 점을 알게 되었다. 저자도 그렇지만, 일본에는 한국보다 생태운동과 환경운동, 반세계화운동, 지역자립운동과 같은 비주류 운동이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것과 학계와 전문가, 활동가와 연구자, 문학가와 예술가, 심지어 정치가들까지 폭 넓은 인력과 조직이 가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가 오래되고 뛰어난 전문가가 많은 만큼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많았다. 저자만 보더라도 1990년에 에콰도르의 나무늘보를 보호하기 위한 [나무늘보 친구들]이라는 국제적인 NGO를 결성하여 활동해오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일본의 지식인 일부와 전문가들의 선구적인 모습에 감탄하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만명의 인명피해와 250조원이 넘는 재산피해를 가져온 쓰나미에 대한 일본 정부와 기업의 부실한 태도 및 대처방식과 더불어 일본 국민들과 시민단체들이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대한 지원과 협조가 부족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끼끼도 한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의 경우에도 뉴올리온즈 허리케인 피해 당시 수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신속하게 피해현장에 도착하여 조직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워나 피해지역의 복구에 도움을 주는 것에 비하여 일본 국민의 무기력한 모습은 생태환경 활동가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것 같다.
 
그리고 저자에게 조금 아쉬운 것은 이 책 속에 "왜 슬로 라이프가 되어야 하는가?", "왜 소박하고 단순하고 느린 삶이 필요한가?"에 대한 체계적인, 정형화된 정리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키워드와 그 키워드에 대한 설명과 필요성이 열거되어 있기는 하지만, 포괄적으로 사람이 왜 ’슬로 라이프’로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부족하다. 본래 인간의 존재가 ’슬로 라이프’인데 과학기술이나 인간의 욕망이 인간에게 잘못된 길을 유도한 것인지, ’슬로 라이프’야 말로 자연적이고 인간다운 삶이기 때문에 원래대로 복귀해야 하는 것인지, ’슬로 라이프’를 통해서만이 인류와 지구의 영속적인 생존과 순환을 보장하는 것인지... 아무래도 독자들이 다양한 키워드와 저자의 활동을 종합하여 스스로 ’슬로 라이프’의 배경과 이유, 목적을 찾아내는 것이 저자의 취지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 책은, 법정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하는 책들>에 소개된 책 50권 중 작년 7월부터 읽기 시작한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에서 <행복의 정복>까지 아홉 권에 이어 이번에 열 번째로 읽은 것이다.
 
* 책 속의 문장
- 현대사회는 공포로 가득차 있다. 국가 권력은 그 공포를 능숙하게 다루어서 국민을 컨트롤하고 있다. 그리고 미디어는 그러한 공포를 선동하고 한층 더 부풀려진 그 공포 위에 날로 번성한다. (p.77) 
- 지구 온난화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가스 배출 속도가 그것을 동화, 흡수하는 지구의 느긋한 속도보다 빨라럿 생긴 이상 현상이다. 즉, 인간은 경제 시간에 끌려다니다가 결국 탄소 순환이라는 생태계 기반에 구멍을 내어 버린 것이다.(p.103) 
- 우리가 정치에 대해 느끼는 무력감 중 하나는 우리가 너무 바쁘다는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러미스의 지적처럼 "짬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이루어지지 못한다." (p.166)
 

* 책 속의 책 & 영화 :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윌리엄 맥도너 <요람에서 요람으로>, 조지 리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나오미 클라인 <No Logo>, 조제 보베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카를로 페트리니 <슬로 푸드>, 이반 일리히 <학교 없는 사회>,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성장을 멈춰라>, 파울로 프레이리 <희망의 교육학>, 데이비드 스즈키 <즐거운 생태학 교실>, 다니엘 퀸 <고릴라 이스라엘>, 더글러스 스미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들은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마이클 무어 <볼링 포 콜롬바인>, 폴 호켄 <비지니스 생태학>, 버나드 리테어 <돈, 그 영혼의 진실>, 반다나 시바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누가 세계를 약탈하는가>, <물 전쟁>, <위대한 전환>, 월드워치연구소 <지구환경보고서 2004>, 모토하시 세이이치 <알렉세이와 샘>, 가와구치 요시카즈 <신비한 밭에 서서>, 투이아비 <빠빠라기>, 모토카와 다쓰오 <시간으로 보는 생물 이야기>, 마하마트 간디 <간디 자서전>, 노암 촘스키 <패권인가 생존인가>, 미하일 엔데 <모모>, 요한 호이징아 <호모 루덴스>, 로제 카이유와 <놀이와 인간>, 레스터 브라운 <에코 이코노미>, <플랜 B - 파산하는 지구를 구하는 생태경제학>, 존 로빈스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웬델 베리 <희망의 뿌리>
 
[ 2011년 3월 26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두껍질 속의 우주 까치글방 187
스티븐 호킹 지음, 김동광 옮김 / 까치 / 200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20세기 말까지 인류 과학의 발전을 기술하고 인류가 몸담고 있는 우주 전체의 모습이 "표면이 울퉁불퉁한 호두껍질 속에 10차원 이상의 브레인이 담겨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설명한다. 호킹박사의 이론은 현재 ’초끈이론’의 부분을 구성하는 M-브레인을 말하는 것이다.


 
호킹박사는 처음 아인슈타인 박사의 ’상대성이론’이 전개되어온 역사를 되집어 본 후, 시간의 형태와 방향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 양자역학의 성과, 다중 우주역사론, 빅뱅과 인플레이션 우주론, 블랙홀과 미래예측, 벌레구멍과 타임머신, 브레인 우주론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흥미롭게 처음 접한 것은 우리가 현재까지 알고 있는 우주의 역사가 단 하나가 아니라는 이론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진실이라면, 우주의 역사와 전개과정 역시 ’확률’로서만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우주는 가능한 모든 역사를 가지며, 각각의 역사는 저마다 고유한 확률을 가진다.’ 리차드 파인만 교수가 이에 대해 공식화했다는 것인데, 우울하게도 나는 파인만 교수의 저서를 몇 권 읽었음에도 그 부분을 파악하지 못했다. 


 
<시간의 역사 A History of Time>에서도 그랬지만, 호킹박사는 자신의 책이 지루하고 난해한 물리학과 우주론으로 인하여 독자들에게 외면당하지 않도록 책 속에 많은 그림과 도식, 그리고 재미있는 설명과 사례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미래상을 이야기할 때, 호킹박사는 세계적으로 널리 방영된 바 있는 [스타트렉 Startreck]을 미래의 모습으로 예시한다. 이 책 제6장 ’우리의 미래’ 편에서 인류의 뛰어난 과학의 발달에 따라 생물학적 생명체와 전자적 생명체는 점차 빠른 속도로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제시한 후, 결론으로 ’스타트렉’과 같은 모습은 불가능함을 주장한다. 물론 호킹박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인류의 지적인 발달과 인공지능의 발달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인정하지만, 대신 인류와 비슷하거나 인류보다 진보한 종족이 존재할 가능성을 부정하고 인류가 독자적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스타트렉]이 그리는 미래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날 것이라고 애기하는 것이다.
 
호킹박사는 이 책에서 제네바의 LHC(Large Hardron Collider 대형하드론입자충돌기)가 완성되면 M-브레인 이론이 실험으로 입증될 것이라고 예측하였으나 2011년 현재까지 M-브레인 이론을 입증할만한 관측 or 실험결과는 발표되지 않았다. 호킹박사처럼 천재라 인정받는 과학자들의 대통일이론에 대한 ’희망사항’도 여전히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인류의 지식과 지능은 장엄하고 무궁무진한 자연과 우주의 진리를 터득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어쩌면 인류는 100년 또는 1000년 후 어느 순간에 ’인류의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호킹박사가 과학자들과 지식인들로부터, 그리고 일반인들로부터 천재로서, 뛰어난 과학자이자 저술가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책 속에서 호킹박사의 인간적인 부족함, 과학자로서의 인류에 대한 책임감 부족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은 그가 향후 1000년 동안 과학자들이 인간의 DNA를 완전히 재설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하면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 조작의 금지’에 대해 제3자적 관점과 태도로 대하는 부분 때문이다. 그는 "전 세계가 전체주의 체제가 되지 않는 한, 지구 어디에선가는 누군가가 향상된 인간을 설계하게 될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실험과 조작의 비윤리성과 잠재적인 엄청난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과학자들이 그러한 시도와 실험에 대해 어떤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호킹박사 자신의 입장이 없다는 것에 나는 매우 실망했다. 
 
[ 2011년 3월 27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동산 시장 흐름 읽는 법
김광수경제연구소 부동산경제팀 지음 / 더팩트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거품은 이미 커버렸고 경제 시스템을 너무 왜곡시켜서 문제야."
"그건 그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려야지..."
"야! 그래도 우리집은 안돼!  지난 4년 동안 얼마나 올랐는데...ㅎ"
"형은 그 집을 가지고 무덤 속으로 가져갈거야? 애들이 결혼할 때가 되면 어떻게 할건데? 지금 집값으로 애들이 전세라도 들어갈 수 있겠어? 그동안 대출이자와 세금, 관리비는 어쩔거고?"
"그래도.................."
한 달 전쯤에 선배와 나눈 이야기다. 

자본주의가 신봉해왔고 사회주의도 부정하지 않았던 시장경제는 18세기에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의해 근대경제학의 핵심 개념으로 처음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려 250여년 간 개인, 집단, 국가가 자본의 욕망을 위해 질주해왔다. 세계 전체 221~224개 국 중에서 국제적인 시장경제에 편입되지 않은 나라는 북한을 비롯하여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라는 포장으로 온 지구 표면을 덮어버린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이론적으로 수립해 온 시장경제는 ’완전경쟁’과 ’정보의 투명성’을 전제로 모든 사람들과 경제 전체로 최고의 선, 즉 ’경제적 정의’를 실현시켜주는 가장 이상적이고 유일한 시스템으로 신봉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라 함은 시장에 맡겨두면 시장경제 원리에 의해 최선의 결과가 도출된다는 것이다. 모든 제도가 다 그렇듯이 시장경제 역시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완전경쟁’과 ’정보의 투명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마라톤 출발점은 다르며, 정보 격차 역시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시장경제는 적절한 규칙과 질서를 제도화 시켜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되며,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된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야말로 시장경제의 단점이 가장 두드러지며, ’사람’의 문제가 심각한 경우라고 주장한다. 특히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관료든 사람을 잘 뽑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사람’의 문제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최악의 상태까지 도달했으며 거품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진단한다.
 
부동산 거품의 붕괴는 단지 부동산에 투기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거품이 해소되고 그 후유증이 완치될 때까지 한국 경제 전체와 자식세대의 장래를 망칠 것으로 내다본다. 그 기간은 최소 10년 이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경제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 그 자체 뿐 만 아니라 그 뒤에 엄청난 빚과 권력형 부정부패, 자원왜곡, 계층 간 갈등, 건설업계와 언론의 선동과 조작 등의 사기극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동산은 한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총체적 모순의 집합체인 것이다. 이런 희대의 사기극에 지난 10년 동안 한국 경제 전체와 대다수의 국민들이 놀아난 것이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주택 구입이나 부동산 거래와 관련하여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고 선동과 조작 정보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동산 관련 지표 및 자료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설명한다.
 
부동산 주요 지표로는 왜곡된 집값 통계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가격지수’와 집값의 향배를 결정하는 지표인 ’거래량’, 건설업계에게 퍼주는데 악용되는 ’주택보급율’의 허와 실, 실질적으로 부동산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자가소유율’과 투기와 실수요를 구별해주는 대표 지표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 등이 있다.
 
필요한 부동산 지표는 온나라부동산포털, 국토해양통계누리, 국토해양부 아파트 실거래가, 국민은행, 한국은행 경제시스템, 한국주택금융공사, 통계청, 대한 건설협회, 금융결제원 주택청약서비스, 대법원 경매정보 등에서 찾을 수 있으며, 책 속에는 찾아낸 정보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연구소측은 부동산 시장과 관련된 경제원리와 정책에 대해서도 정리해 놓았다. 주택시장의 수요와 공급, 기준금리와 주택담보대출 금리, 부동산 버블의 일등공신인 신용과 가계부채, 인플레이션 및 디플레이션과 집값의 상관관계, 부동사 세금과 거래비용, 경기회복과 주택가격, 주택 수요층을 파악하기 위한 인구와 가구, 공공임대주택과 전세주택 정책, 건설업의 부양과 구조조정,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 집중 등...
 
마지막으로 연구소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2009년부터 시작된 전국의 아파트 거래량 감소는 2010년 들어 더 심해졌다. 거래량 침체가 현재와 같이 이어질 경우(이어질 수 밖에 없고...) MB 정부와 보수언론이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매매가 하락은 계속될 것이다. 정부는 부동산 대출과 PF 부실의 뇌관이 터질까 두려워 은행 금리를 붙잡았지만 물가 인상 속도와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올해 들어 벌써 두 차례나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고 DTI 규제도 원상태로 복귀되어 매매가 하락과 버블 붕괴는 시간 문제가 되었다. 주택 보급율 역시 단순 보급율은 2009년 말 현재 100% 수준에 이르렀고 실제로 주택을 구매할 능력이 있는 구매자를 기준으로 할 때 주택공급은 엄청난 초과된 상태다. 이 또한 주택 매매가를 더욱 하락시킬 것이고 현재 주춤한 전세가 역시 하락하는 것이 대세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최근 10여년 동안 단독 가구와 소규모 주택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에 소규모 주택에 대한 전세와 임대수요는 꾸준히 이어져 전세가 하락의 버팀목이 되지겠지만 전세가는 몰라도 오피스텔이나 다가구 주택의 임대료는 지난 몇 년동안 크게 변동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나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486세대이고 따라서 내 주변의 지인들 대부분은 486세대들이다. 486세대들은 7할~8할 이상이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실업율도 낮고 거의가 자가용을 굴린다. 2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사람도 종종 발견할 수 있으며, 상당수가 가구당 월 소득이 ’가구원수 X 일인당 GDP’에 근접한다. 그 정도면 여유있는 중산층에 속한다. 다소 진보적 관점에서 정치와 국제분쟁, 재벌들의 행태를 비판하지만 어울려서 술 한잔 먹으면서 호기를 부릴 뿐이다. 가정과 직장이 안정된 상태에서 미래에 대한 큰 걱정이 없으면 보통 사람들은 보수화된다. 그래서 조국 교수는 <진보집권플랜>에서 486세대를 ’정치진보, 생활보수’로 칭한 것 같다.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주택이 한 채 밖에 없다면, 장차 자식들이 결혼할 때 세대간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주택가격이 엄청나게 올라버렸고 대신 취업율이나 임금상승률은 호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비해 비정규직만 더 늘어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주택가격 등락에 대해 물어보면 그들은 (매달 대출이자와 제세공과금에 시달리면서도) 집값이 내려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MB 집권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도와준 486세대들은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 후보가 "주택값을 2002년 이전 수준으로 낮추겠다"라고 공약을 발표하면 무더기로 반대후보를 지지하거나 기권할 지 모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울하다...
 
지난 10~20년 동안 경제에 대해 잘못 생각해왔고 말과는 달리 ’혼자만의 미래’를 꿈꾼 것이야말로 잘못한 것이리라...
 
[ 2011년 3월 30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의 일반 가정에서 ’쇠고기’라 함은 매우 특별한 식품일 것이다. 지난 40년 넘게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쇠고기는 ’명절 음식’이었다. 우리집에서는 설과 추석 때가 되어야 가끔 쇠고기를, 그것도 갈비찜으로 먹는 연례 행사였다. 그것은 우리 집과 친척들에게도 공통적인 음식문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고로, 우리 집과 친척은 현재 자기 집 한 채 정도 있고 부모들은 모두 일선에서 은퇴하고 자식들의 용돈으로 생활하는 정도이다. 지난 40년 동안 대부분의 친척들은 빠르면 1980년대에 늦으면 1990년대에 자기 집을 마련한 세대였다.(그렇다고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늘 풍성하게 먹은 것도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서도 쇠고기는 지금도 그다지 ’좋다’던가, ’맛있다’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쇠고기(등심, 갈비, 육회 등)는 특별한 행사나 접대, 중요한 모임에서 서로 대접하는 경우에 식당에서 올라오는 음식이다. 내 기억에 회사의 법인카드로 결제하거나, 업무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개인적인 필요나 기호로 인해 쇠고기를 먹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실제 먹어본 적도 거의 없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일반 중산층이나 서민들은 나와 비슷한 처지이고 생각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가정하고 산다.
 
그래서 2008년 PD수첩에서 광우병을 중요하게 다루고 언론에서 광우병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때도 쇠고기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 역시 수 차례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는 촛불시위에 참석하였지만, 그것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분노보다 국민적,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태도와 대응이 컸다.(물론, 이명박 정부와 그 똘만이들의 작태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변함이 없지만...)
 
이 책 <육식의 종말>이 처음 내 머리 속에 들어온 것은 광우병 사태가 벌어진 2008년이었다. 당시 광우병과 소고기에 대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저자의 책을 처음 알게 되었지만 구하거나 읽지는 않았다. 그 뒤로 시간이 흐른 뒤, 2009년 노무현 전대통령이 돌아가실 즈음 그 분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유러피안 드림>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육식의 종말>과 같은 저자라는 책 소개를 보면서 두 번째로 각인된 것이다. 저자의 책을 여러 권 준비했다가 벼르고 별러 작년(2010년) 초부터 <노동의 종말>과 <소유의 종말>, <유러피안 드림>과 <엔트로피>, 그리고 공부모임 교재로 <공감의 시대>를 읽었다. 책 내용 마다 이 책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간략하게 필요한 내용이 들어있어서 읽지 않고 넘어가도 되지 않겠냐라고 생각했다.(이 책의 최초 발간년도는 1992년이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의 저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육식의 종말>은 법정스님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서도 다루어졌고 남미에 대한 이야기에도,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국의 식량난과 관련한 책과 글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저자의 책 속에서 자주 거론되는 사례를 보면서 결국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육식을 중심으로 한 현대인의 식생활에 비판을 가한다. 급속도로 증가하는 육식 문화, 특히 쇠고기에 집중되는 음식 문화와 이로 인해 파괴되는 환경과 생태계의 위기에 대해 논한다. 저자는 생태계를 보호하고 생존권을 위한 식량의 공급, 지구를 공유하는 다른 생명체들의 안녕을 위해서 현대사회가 육식 문화를 넘어야만 지구의 미래에 희망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책은 서양 문명과 소에 대한 관계를 다루면서 시작한다. 내가 보기에도 육식이 흔치 않았던 동양과 달리 서양(특히 유럽과 미국)에서는 기원 전부터 신화와 벽화에서 소가 등장하는 문화였다. 대지가 척박했던 것도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책은 이어서 소와 소고기 산업으로 유럽과 미국의 경제가 변화하는 모습, 목축산업을 위해 미국 내 버팔로를 몰살시키고 인디언을 학살하는 과정, 쇠고기의 본격적인 산업화를 이야기한다.(여기까지가 1~3부) 4부에서는 유럽, 미국 뿐 아니라 제3세계와 빈국에서 대규모 경작지가 쇠고기를 위한 곡물재배지로 탈바꿈하면서 ’배부른 소 떼와 굶주린 사람들’로 양분된 세계의 모습을, 5부에서는 지구의 환경을 위협하는 쇠고기 산업, 6부에서는 ’차가운 악(cold evil)’이 되어버린 쇠고기 문화를 다룬다. 물론, 책 속에는 육류를 많이 섭취하는 서양과 그들을 모방한 몇몇 나라의 식생활과 건강이 심각하게 취약해진 상황도 묘사한다.
 
<소유의 종말>과 <노동의 종말>에서도 느꼈지만, 저자는 매우 독창적인 사유체계를 지닌 사람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보여지는 ’소유’나 ’노동에서, 그리고 이번에는 ’육식’에서 저자는 그 단어들이 함축하는 정의와 개념을 끌어내고 그것을 사회적, 역사적, 경제적인 관점에서 풀어내는 재능이 탁월하다. 또한 그 과정에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폭 넓은 연구와 학식,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들어 있다.
 
한국 사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저자의 저작들은 상당히 앞선 연구들이다. 서구사회나 동양의 경우 일본 정도에서 저자의 연구 주제가 일반화되는 과정이 진행 중일 뿐이고 한국의 경우에는 <소유의 종말>과 <노동의 종말>, 그리고 이 책 <육식의 종말>의 경우에도 거리감을 느낀다. 그리고 한국 뿐 아니라 동양사회의 경우 일찍부터 농경사회가 자리잡았고 신화나 음식문화에서도 육식보다 채식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육식의 종말>을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2008년 촛불시위 당시의 상황에서도 깨달았듯이 서구, 특히 미국의 쇠고기 산업이 예속적인 친미정권을 등에 엎고 무차별적이고 강제적으로 이 땅을 침범하기 때문이다. 우선, 최근 구제역 파동에서도 보여지듯이 한국의 낙농산업이 취약하기 때문이고 먹거리는 산업과 무역으로만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책 속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의 쇠고기 산업의 정육체계가 부실할 뿐더러 산업으로서의 육우는 정상적인 동물의 생육과 성장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소의 체중을 늘리기 위해 자행되는 부당하고도 비도덕적인 업체들의 행위는 우리가 미국산 소고기를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셋째, 쇠고기 산업은 단지 낙농 산업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옥수수와 콩 등 세계적인 곡물과 사료의 수급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식량과 곡물 등의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가정경제에까지 좌지우지될 수 있다. 넷째, 저자의 표현대로 현재의 세계 식량위기는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소위 ’선진국’이 과도하게 식량을 섭취하고 낭비하기 때문이고 더 중요하게는 사람이 먹을 식량을 소와 돼지 등 산업용 동물들이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을 통해 ’채식 위주’의 음식문화에 대한 계기가 마련될 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막상 다 읽고나니 내 기대와는 조금 다르게 전개된 느낌이다. 그렇더라도 [육식의 종말]에 이바지해야 하겠다는 의지가 생겨날 정도는 된다.
 
* 책 속의 문장
- 지방많은 소고기를 원하는 영국인들, 평원의 황소를 구입할 돈줄이 필요한 서부목축업자들, 잉여 옥수수를 먹어치울 비육우를 원하는 중서부 옥수수 재배 농부들, 새로운 식민지 투기적 시장을 이용하려는 영국 재정가들의 관심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미국의 ’축산단지’가 창출되었다.(p.118)
 
- 오늘날 소와 다른 가축들은 일반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멀찍이 떨어져 있다. 사람들은 지역 슈퍼마켓에서 미리 포장된 형태의 쇠고기 부위를 구입한다. 목축업자들은 전국의 고기 생산용 소들을 많은 공업단지들처럼 사람들의 시야에서 차단된 고립된 장소에 격리시켰다. 현재 비육장은 고도로 자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관리인’과 짐승들 간에 직접적인 접촉은 아주 뜸한 편이다. 심지어 일상적인 사료 공급도 컴퓨터로 관리되곤 한다. 제임스 서펠은 이 정도의 거리감에서 동물들은 단순히 더 많은 생산량을 위해 추상화된 존재인 생산의 숫자나 단위가 될 뿐이다라고 말한다.(p.336) 
 
[ 2011년 2월 26일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달 2021-10-1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