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 - 그들이 세계를 돕는 이유
카너 폴리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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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도적 개입>과 더불어 오늘 공부모임 교재 2권 중 다른 하나다. 저자는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인도주의 활동가로서, 국제앰네스티와 유엔난민기구(UNHCR) 등 각종 인권단체와 인도주의 기구에서 근무하면서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콜롬비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우간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지에서 활동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199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분쟁지역에 대한 인도주의적 무력 개입과 정치적 목적을 둘러싼 논란의 배경, 그리고 구호 활동가들이 겪는 아이러니한 현실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문제의 핵심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1948년 유엔이 설립된 이후, 1970년대부터 조심스럽게 이루어지던 인도주의 활동이 정치적 의도와 '천부적 인권'을 이유로 하여 '정치적 인도주의'로 확대되고 있으며, 결국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애초의 선한 취지는 사라지고 인도주의 자체가 사방에서 비난받는 상황에 대해 공론화시키기 위해 이 책을 발간한 것이다. 즉, "국제관계에 있어서 인도주의의 영향력은 분명히 증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학문적인 검증은 거의 뒤따르지 않으며, 여전히 근거 없는 통념과 오해가 난무한다."(p.35)하는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함인 것이다.
 
한국 역시 '정치적 인도주의'와 무관할 수 없다. 1999년 3월 ‘국군부대의 동티모르 다국적군 파병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해, 그 해 10월부터 4년간 한국의 상록수부대는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의 평화 유지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한국도 국제사회의 한 일원으로 인도주의적 개입에 동참해오고 있다(2007년에는 레바논 Blue Line에 대한 평화유지군이 파견되었고, 2010년 2월에는 아프가니스탄의 2차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세계 평화를 위한 강대국의 인도주의 활동은, 우리나라에서 국군을 파견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이미 구호품 전달과 집짓기, 농사짓기의 차원을 넘어섰다.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해 털모자를 짜거나 식빵 모양의 저금통에 동전을 채워 보내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굶어죽는 아이’에 관한 문제와 ‘총칼을 든 반란군’에 관한 문제가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지만, 사실 이 두 이미지는 같은 장소, 같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똑같은 문제이다.
 
자연재해나 내전, 전쟁이나 학살 등의 이유로 위험에 처한 제3세계 나라를 위해 국제적십자사, 국경없는의사회, 국제엠네스티, 유엔난민기구, 기아추방행동, 옥스팜 등의 인도주의 NGO는 일찍부터 유엔이나, 나토, 이유, 또는 서구 강대국보다 한 발 앞서 인도주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1990년 들어 일부 인권단체들이 인도주의 활동에 뛰어들었고 기존의 인도주의 단체와 더불어 서구 강대국과 유엔(UN), 나토(NATO), 이유(EU) 내에서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정치적 압력을 강화하여 보다 ‘직접적이고 명쾌한 해답’을 주고 싶어 했고, 그리하여 일찌감치 구호품보다는 ‘군대’를 파견하는 일에 관심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정치에 중립적이었던 인도주의가 정치적 색깔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인간이 향유해야 한다고 믿는 인권과 내정간섭의 소지가 있는 국제사회의 개입이 교묘히 결합한 것이다.
 
인권단체는 "보편적인 인권 존중의 원리를 강조하는 한편 인권을 개개인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로 정의한다. 인권운동가들은 인권 증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특정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는 개입론자라 할 수 있다." 인도주의 NGO 또한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 행동하되 '전쟁의 규칙'이라고도 일컫는 제네바협약에 우선적으로 그 근거를 둔다. 이들 역시 전쟁이나 자연재해 상황에 직접 개입해 구호활동을 벌인다는 점에서 개입주의자라 할 수 있으니 원활한 현장접근을 위해 전통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들은 사회가 어떻게 통치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거시적 비전을 지니지 않으며, 특정 범주의 사람들을 한시적으로 돕는 일에 스스로를 한정시킨다." (p.16) 그런데 이 두가지 유형의 운동이 그동안 서로 가까워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정치적 인도주의'라 일컫는 관념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1960년대 말 비아프라 분쟁에서 그 조짐이 보인 인도주의의 정치화는 1990년대 보스니아 전쟁과 르완다 집단학살 사건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이어, 코소보 전쟁을 전환점으로 거치며 911 테러 후 미국과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점령으로 절정을 맞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코소보 사태에서는 개입 시기도 놓치고 부적절하게 개입하면서 인종청소를 막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난민을 증가시키고 민간시설만 폭격하였고 르완다 집단학살사건에서는 소극적으로 개입하는 바람에 내전이 장기화되고 민간인의 피해만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는 '인도주의를 빌미로 한 군사적 침공'이 발생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더욱 나쁜 상황은 '정치적 인도주의'로 전개됨에 따라 NGO 조직이 유엔이나 나토의 군대이 협력하는 상황이 늘어나는데 그것은 신변을 안전하게 하는 긍정적인 결과 뿐 아니라 NGO 활동의 순수성이 현지 주민들에게 의심받게 된다.
 
실제 현장에 가장 접근해 있었던 저자가 보기에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인도주의를 빙자하여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정치적 인도주의 단체'들과 서국 정치가들이 거짓 정보와 과대 여론조작을 통하여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무력 개입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NGO 활동가로서 저자는 인도주의 단체의 한계와 현실적인 조건도 인정한다. 보통의 인도주의 단체는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만 운영되기 때문에 비인도적 사태가 발생할 경우 후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어느 정도 위기를 과장하고 사태를 크게 홍보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소말리아, 코소보,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아프카니스탄 등의 인도적 활동 사례를 면밀하게 검토, 분석한 후 자신을 비롯하여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인도주의 활동가들에게 딜레마를 안겨주는 세 가지 이슈를 다룬다. 그것은 구제와 보호의 문제, 정의와 평화의 문제, 그리고 인도주의 기구의 책임성 문제다.
 
저자는 결론으로, "인도주의 기구들이 전반적으로 정치적 행동에서 생기는 문제점들을 해소할 일관된 방안을 아직 마련하지 못한 상태"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개입이라는 이슈에 대하여 훨씬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접근방법을 고안하는 일이 인도주의가 풀어내야 할 난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도적 개입이 "그 대상이 되는 사회에 일정한 해악을 끼치게 마련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군사적 개입은 더 심한 불안정성을 초래하고 점령자와 피점령자에게 큰 비용을 치르게 하기 때문에 최대한 자제해야 함"을 역설한다.
 
더욱이 세계는 "서구 자유주의가 수출용으로 포장한 '인권' 개념만이 유일한 인권 개념은 아니라는 점부터 인정하고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오늘날 "부와 권력의 불균형으로 세상에 발생하는 불의를 성토하는 논의의 내부에 인간의 존엄성, 개인의 자유, 자결권 존중 등의 개념을 어떤 식으로 자리매김할 지에 관해서도 폭넓은 대화가 필요하다."며, "극심한 빈곤을 퇴치하려면 경제성장도 필요하지만 빈곤과 불평등이 분쟁과 인도적 위기를 일으키는 최대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인권단체와 인도주의 기구는 경제정의를 주장해야 할 중대한 임무를 갖는다"는 의미심장한 결론도 내리고 있다.
 
전세계의 인도주의 활동가들은 '인도주의'가 해답만이 아니라 '문제의 일부'라는 점을 알고 있다. 
 
<인도적 개입>과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주의 단체와 유엔의 개입이 정치경제군사적인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언제나 미국 극우보수파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입김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라크 침공이나 아프카니스탄 침공, 그리고 리비아 무력개입은 당연히 후자의 목적으로 일으킨 전쟁이고 향후 무력 개입의 당사자와 개입을 받은 국가의 국민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조금 아쉬운 것은 저자가 책의 제목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 것 같다. 책 속의 마지막 장의 제목도 <수출용 인권은 어떻게 전쟁으로 치닫는가]인데 이 또한 저자의 결론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찾지 못하는 것인지, 저자의 문제의식일 뿐인지, 내가 독서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인지 헷갈린다...ㅋ
 
나도 앞으로 좀 더 국제적인 인도주의 활동과 단체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다. 
가능하면 어느 정도 시간을 할애하여  활동도 하고...^^ 
  
* 책 속의 문장
- 인도주의는 이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유엔과 엔지오는 이른바 ‘복합적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특정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같은 로고가 그려진 자동차를 타고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가 지원사업을 펼친다. … 오늘날 대다수의 영·미 구호기구는 자신들의 운영프로그램에 지원된 기금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상당 규모의 미디어 담당부서를 갖추고 있다. 구호기구에 고용된 언론 담당관과 로비스트들은 특정 위기를 강조해 세인의 관심과 양심을 자극하고 “돕기 위해 뭔가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정치적 인도주의’는 대다수 구호기구의 운영체계 내에 이렇게 제도화되어 갔다.(p. 29)

- 인도주의 활동가들은 구호 제공에 관하여 ‘갖다 주기만 하면 끝’이라는 식의 태도를 늘 경계하면서도 종합적인 평가와 프로그램들의 광범위한 영향에 관한 평가의 중요성을 현명하게 지적했다. 존 포세트 같은 인물은 바로 이런 측면이야말로 “서비스 제공은 효율적이어도 인권문제는 어떻게 다뤄야 좋을지 모르는” 사기업체에 비해 인도주의 비정부기구가 경쟁력을 갖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원조는 단순히 부족함을 충족하는 행위가 아닌 수혜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과정의 일부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관념을 많은 인도주의 활동가들이 수용했다.(p. 55)

- '인도적 개입’이라는 용어는-구호활동에서부터 군사력 사용에 이르기까지-다양한 행위를 포함한다. 한 국가, 여러 국가, 혹은 기타 단체가 긴박한 위험에 처하거나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들을 구호하려는 목적으로 ‘인도적 개입’을 통해 타국의 내정에 간섭한다. 인도적 개입이라는 용어 사용을 타국의 영토 및 주권을 침범하는 정치적·군사적 활동에 한정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인도주의 활동가들은 이 용어를 중립적인 구호활동 말고는 다른 일에 사용하기를 꺼린다. 그 두 가지가 분명히 구분되는 것 같아도 현장 활동을 하다보면 차이점이 흐려지곤 한다.(p. 67)

- 국제사회는 코소보 문제를 인권문제라 믿고 있었지만 이는 사실 주권과 영토에 관한 분쟁이었다. 나토의 개입은 전쟁범죄와 인종청소를 방지하기는커녕 오히려 극적으로 증가시켰다. 유엔은 인권과 법치를 보장하는 다민족사회의 건설을 위해 효과적인 임시행정기구를 설치하겠노라고 약속했지만 오늘날 코소보는 부정부패가 창궐하고 국제원조에만 의지하는 단일민족사회가 되고 말았다.(p. 119)

- 2008년 3월 인도주의 기구들이 공동 발표한 보고서는 아프가니스탄에 약속된 원조금 200억 달러 가운데 100억 달러가 미지급되었고 도착한 금액 가운데 40퍼센트는 컨설팅 비용으로 소비되거나 영리기업의 호주머니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그보다 몇 개월 전에는 옥스팜 보고서가 지방재건팀 구호활동의 비효율성과 낭비를 지적했다. 원조국들은 필요나 효과를 예상해 원조금을 배분하기보다는 서구 병사들이 살해되지 않도록 지역 주민의 협조를 매수할 수 있는 곳에 원조금을 퍼주었다. 반군진압 전략과 인도주의 활동을 너무 긴밀히 연결시킴으로써 초래된 부작용이었다.(p. 151)

- 나토의 코소보 개입이 인도주의적이라는 설명은 민간인의 고통을 멈추는 것이 개입의 기본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공습으로는 민간인을 직접 보호하는 일이 불가능하며 오직 지상군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실제로 인권감시인이 철수하자마자 민간인의 안전이 취약해졌고 이로 인해 집단살해가 급속하게 늘어났다. 나토 전략가들은 사태가 그렇게 발전할 가능성을 미리부터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작전에 관한 주요 결정은 인도주의가 아니라 정치적 고려를 기반으로 내려졌다.(p. 192)
 
[ 2011년 4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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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적 개입 - 정의로운 무력행사는 가능한가
모가미 도시키 지음, 조진구 옮김 / 소화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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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내일 공부모임 교재 중 하나다. 지난 번 공부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최근 리비아 민주혁명 과정에서 서구 국가들이 유엔의 결의 없이 임의로 리비아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하면서 서구 국가들이 명분으로 내세우는 '인도주의'에 대해 공부하기로 한 것이다.
 
국제법의 권위자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냉전 후 무고한 시민들이 대량으로 죽어 가는 내전이나 민족분쟁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제기했다고 지적하며, 어떤 한 국가에서 죄없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비인도적 상황이나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무력행사 이외에 다른 수단이 없을 경우 국제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문제 삼아 여러 사례와 함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룬다.  저자는 1999년 NATO군에 의한 유고 폭격 이후 각광을 받게 된 '인도적 개입'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국제법의 시점에서 다각도로 분석하였다.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폭격 자체는 인도적 개입의 모델 케이스로 간주하기 어렵다. 코소보 자치주에서 반인도적 행위가 벌어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취한 수단(폭격), 절차(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무시), 얻은 결과(박해의 순환) 등 어느 것을 보아도 의문이 남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러 증언과 자료를 통해 폭격 전후에  코소보에서 세르비아 군대 및 민병대에 의한 알바니아계 민간인 학살, 학대 뿐 아니라 코소보 민병대에 의한 세르비아계 민간인 학살, 학대로 동시에 존재했다는 것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인도적 개입'의 공통적인 정의는,
첫째. 극도의 인권침해 또는 인도에 대한 죄라고 부를 수 있는 심각한 박해가 있을 것.
둘째. 해당국 정부가 그러한 박해를 자행하고 있거나 주민간의 박해를 멈추게 할 의사와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을 것.
셋째. 개입하는 것은 통상 다른 국가 또는 복수의 국가일 것. 복수의 국가에는 나토와 같은 군사동맹도 포함 된다'
넷째. ‘개입’은 통상 군사력을 사용한 ‘무력개입’일 것(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무력을 사용할 경우가 첨예한 문제가 된다)  (p.22) 
'인도적 개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합법적이라고 해도 어떠한 종류나 형태의 인도적 개입이 합법적인가"와 "합법적일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인도적 개입'이 유엔 차원에서 타당성을 결여하는 것은 주로 법적인 이유에서다. 즉 '인도적 개입'이라고 하면 무력행사를 수반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유엔헌장 상 무력행사를 수반하는 유엔활동은 ‘강제행동’(유엔헌장 제7장 특히 제39조와 제42조)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것은 ‘개입’과는 다른 합법성이 분명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의 경우, 유엔군은 존재하지 않지만 평화유지활동을 위한 '평화유지군'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설치되었다. 평화유지활동의 경우 병력의 전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국가의 동의에 입각하고 있어 상대의 의사에 반할 경우에도 행해지는 강제행동이나 개입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또한 무력행사에도 많은 제약이 있으며 대상국에 명령할 권한도 없다. 평화유지군이 아닌 군사활동은 원칙적, 대체적으로 유엔의 동의를 받기 어렵고 국제법에 저촉되기 마련이다.
 
유엔 헌장 제2조4항에는 국제 관계에서 무력행사 또는 무력에 의한 위협의 금지 & 다른 나라의 '영토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을 존중해야 함을 명시적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파괴력 자체가 세계에 교훈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인도적 개입'과 관련해서는 2차 세계대전 직전에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면서 내세운 명분이 '인도적 개입'이었고 그 외에도 다수의 국가간 침공행위가 '인도적 개입'이라는 이유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인도적 개입'을 명분으로 한 또 다른 침탈행위로 1983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을 예로 들고 있다.
 
'인도적 개입'의 정당성을 따지기 어려운 여러가지 사례로는 1971년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에 대한 인도의 무력개입, 1978년 캄보디아에 대한 베트남의 개입, 1979년 우간다에 대한 탄자니아의 개입 등을 들 수 있다.
 
그동안 유엔은 소말리아, 르완다, 그리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기아와 살육이 발생하였을 때 대응을 요청받고 평화유지활동을 했다. 하지만 미묘한 형태로 행해진 활동이기 때문에 제약도 많았다. 세 경우 모두 문제점을 남긴 사례이기는 하지만 조금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유엔에 의한 ‘구호 활동의 과잉과 과소’라고 요약할 수 있다. 
저자는 소말리아의 경우, 유엔이 과잉개입하여 내전을 확대한 후 마무리하지 못하고 평화유지군이 철수할 수 밖에 없었고 르완다의 경우, 유엔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내전 및 민병대에 의한 학살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유엔은 유고연방의 인종청소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고 스레브레니차에서는 평화유지군이 파견되었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인종청소의 학살을 막아내지 못했다.
 
서구 국가들이 자주 내세우는 개념 중에 '정전(正戰)'이 있다. '정전'이란 말 그대로 정당한 전쟁이며 적극적으로 싸워야 할 전쟁이다. 무력을 기본으로 하여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싸워야 할 정당한 전쟁을 설정하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엄격한 조건을 붙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특정 국가의 판단에 의해 행해져서는 안 되며 국제사회, 즉 유엔의 총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공격하는 상대방이 아무리 ‘악’해도 통상의 전쟁과는 달리 상대방을 정복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공격하는 대상이나 수단은 매우 제한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권을 침해당하고 구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자신이 그러한 방법으로 구호를 받고 싶어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아프카니스탄 침공,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리비아 개입은 모두 불법적이고 부당한 것이다. 이미 유엔과 학자들은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 침공은 인도적 목적이 아니라 특정한 국가들의 정치경제군사적 목적이 중요했음을 인정한다.

만약 비인도적 상황에서 ‘주권보다 인권’을 주장할 경우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인권(생명에 대한 권리·평화에 대한 권리·식량에 대한 권리·가족생활의 권리 등)을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해당국의 주권을 일축하며 죄 없는 시민들을 말려들게 할 가능성을 내재하면서 징벌적인 무력 공격을 하는 것 자체는 아닌 것이다. 저자는 극도의 비인도적 상황에서 주권은 제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해당 국가가 보호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타국 또는 국제기구 혹은 다양한 인간집단이 보호하고 구호하려고 할 때 그것을 방해할 권리를 해당 국가는 갖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만 그러하다. 인도주의 단체가 임의로 피해 민간인을 구제,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예외로 인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특정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적지않은 인도주의 단체의 '인도적 개입' 역시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에게 그 동기에 있어 의혹을 받고 있다.)
 
저자의 결론은 국제사회가 '인도적 개입'을 이유로 하여 타국에 무력으로 개입하는 것에 대해 필요성, 수단, 절차, 결과를 모두 감안하여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력에 의한 개입 이전에 유엔과 국제사회는 실제 비인도적 상황에 처한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NGO 등 민간단체의 역할을 적극 장려, 활용해야 하고 유엔은 평화유지군 등 인도적 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저자는 궁극적으로는 '예방적 개입'을 주장한다. 이는 "해당국의 인권침를 비난하고 인권조약의 비준과 실행을 촉구하며 인권을 침해하는 책임자를 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사후적으로는 무력개입보다 평화유지군 파견을 통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 책을 읽고나니 미국이나 일본, 한국 주류언론의 시각이 아닌 유엔과 국제법 전문가의 시각에서 '인도적 개입'에 대한 관점과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의 시각을 벗어났다고 해야 할까...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번 리비아 내전에 서구 국가들이 무력으로 개입하는 행위를 자신있게 반대할 수 있다는 것.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무력으로 개입하는 것은 인도적인 정당성도 없고 국제법적인 절차와 명분도 없을 뿐이다. 십중팔구 리비아 내의 종족 간 내전을 확대시킬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죄없는 민간인들의 피해만 엄청나게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아프카니스탄에 이어 리비아에 대한 무력개입은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에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 또는 상황이 오면 또 다시 그들은 타국에 무력으로 개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2011년 4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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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내일을 묻다 - 중국 최고 지성들과의 격정토론
문정인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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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3월 24일부터 시작된 [평화나눔 아카데미] 10회 강연 중 첫 번째 강연의 강사인 문정인 교수가 저서다. 첫 번째 강연의 제목은 "G2 시대. 새로운 패권인가, 힘의 균형인가?"... 문교수는 언론에서 접한 것과는 달리 인상도 수더분하고 강연 내용도 알찼다. 이 책을 읽어보니 최근에 본인이 발간했기 때문에 강연하기에 특별하게 준비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강연 중에 중국측 인사들에 대한 폭 넓은 교류와 중국 전반에 대한 깊은 안목을 느낄 수 있었다. 문교수의 90분 강연 만으로는 부족하여 강연이 끝난 후 이 책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문교수의 지적처럼 한국인들에게 중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일본과는 지리적으로 바다가 가로막고 있는 데다가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20세기 전반의 강제점령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중국의 경우 마찬가지로 지리적으로 북한과 바다에 막혀 있다. 중국이 채택한 이념이 사회주의이기는 하지만, 시장경제와 국제무역을 도입한 이후 1992년 한국과 수교를 체결하였고 한국은 2010년 기준 전체 수출액에서 중국이 25%, 수입액에서 17%를 차지하여 가장 크다. 상호간의 관광객 숫자와 유학생 숫자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고 한국 대중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중국 시청자들에게 친근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문화만큼 정치와 외교는 밀접하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MB정부 들어서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가 꾸준히 추진해오던 '균형외교'와 '자주외교'가 밀려나고 미국과 일본에 대한 '동맹외교'에 치우쳐 온 관계로 한-중 정치외교 관계는 냉랭한 것이 현실이다.
 
문교수는 2004년 '동북공정 사태' 이후 일반 국민들 사이에 한-중 관계가 악하되어 한국에서는 '반중 감정'이, 중국에서는 '반한감정'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MB정부 집권 이후 미-일에 치우친 외교, 북한 핵 문제, 천안함 사태 등으로 호전될 가능성이 점점 멀어져만 가는 상황에서 그동안 중국의 모습을 서구와 일본 학자들의 시각에서만 바라보던 한계에서 벗어나 직접 접근하고자 했다. 그 밖에 저자는 미국, 유럽,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마저 중국의 부상(=굴기崛起)을 우려하기 때문에 중국을 보다 객관적이고 균형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글로벌 금융위기가 조금 안정국면에 접어든 이후 중국으로부터 나와 세계적으로 회자되는 말이 있다.
“1949년에는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고 1979년에는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으나, 1989년에는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었고 2009년에는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

그야말로 중국의 부상,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로 더욱 확고해진 중국의 위상을 웅변해준다. 이 책은 이러한 중국굴기(中國崛起)의 시대를 어떻게 건너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모색으로서, 저자가 베이징대학의 초빙교수로 머무는 동안 중국 외교안보의 흐름을 주도해왔고 또 앞으로 이끌어갈 중국 국제정치학계의 주요 인사들과 나눈 진솔한 대담을 싣고 있다. 당대 중국 최고 지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대국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구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중국의 시각에서 중국을 봄(以中國 觀中國)”으로써 중국에 대한 편견을 뒤집고 새로운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준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에서는 [대국의 길]이라는 주제를 놓고 현재 중국의 최고의 논객들, 곧 '화평굴기론 和平屈起論'을 제창한 정비젠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상무부교장, 중국 내 현실주의의 대표주자로 평가받는 옌쉐퉁 칭화대학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천하세계론’으로 새롭게 뜨고 있는 자오팅양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그리고 점차 대세가 되고 있는 ‘책임대국론’의 왕이저우 베이징대학 교수와 대담한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이들과의 대담은 내외부적으로 중국굴기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에서 중국공산당이 표방해온 '도광양회(韜光養晦, 실력이 있으되 드러내지 않는다 - 등소평이 제시한 외교 원칙)'로부터 탈피해 춘추전국시대 백가쟁명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듯한 중국 지식인 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중국의 주요 학자들은 향후 10~20년 이상 평화적으로 중국이 계속 경제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성장해 나가고 그 사이에 중국 내부의 문제들, 즉 빈부격차, 지속가능한 발전, 도농격차, 사회안전망 등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듯 하다. 이는 "성장이냐 분배냐"와 같은 단순논리로 정부의 정책을 가르는 한국 내 정부, 정치권, 여론 주도층과 학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 면에서 1970년 이후 중국이 급격하게 성장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물론 외형적인 경제의 크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게는 우리가 배워야할 부분이 많다.
 
“경쟁력 상승에 기초한 화평굴기를 대국굴기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화평굴기를 위협적 행보로 받아들인다면 필경 거기에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본다.”는 정비젠의 말이나 “굴기라는 측면에는 동의하지만 화평이라는 용어는 동의하기 어렵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민족 또는 국족(國族) 부흥이다. 평화라고 하는 대목에 지나치게 방점을 둘 필요는 없다.”는 옌쉐퉁의 말은 일견 상반되어 보이나 중국의 겉과 속을 고루 살피기 위해서 모두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일 것이다. 그리고 '화평굴기론'을 제창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중국 공산당 관료를 거친 인물이라는 점에서 주의해야 할 모습이다.
 
제2부는 중국의 대외 전략을 다루고 있다. 왕지쓰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원장과는 대미 정책을, 양보장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일본연구소 소장과는 대일 정책을, 장샤오밍 베이징대학 교수와는 대 주변국 정책을, 그리고 장윈링 중국사회과학원 국제학부 주임과는 동아시아 지역주의 정책을 논하고 있다. 또 중국의 국가안보 전략과 관련해서는 베이징대학의 3인방인 주펑, 왕융, 자다오중 교수로부터 각각 군사, 경제, 자원안보론을 듣고 있다.
 
제2부의 대담을 통해 찾을 수 있는 핵심은 중국이 외교안보의 초점을 미국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가장 큰 위협도 미국이고, 가장 중요한 협력 대상도 미국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에 따라 미국 없는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환영하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며 오히려 현상 유지를 선호하고 있다. 현상유지에는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의 커다란 정치적 격변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일각의 의혹이 어느 정도 중국 내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제3부에서는 한반도 문제를 다룬다. 북ㆍ중 관계에 대해선 중국 내에서 가장 강경파로 알려진 장롄구이 중앙당교 교수와 온건파인 김경일 베이징대학 교수 간 ‘강온 대담’을 통해 규명하고자 하였고, 한ㆍ중 관계에 대해서는 치바오량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교수와, 또 북한 핵 문제에 관한 중국의 입장에 대해서는 리빈 칭화대학 교수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제3부의 대담을 통해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하면서도 대북 제재에는 소극적이며 북한의 체제 붕괴를 부정적으로 보는 중국, 또 한국이 아무리 미국과의 양자 동맹을 강조해도 주요한 전략적 사안에는 중ㆍ미 간 협의와 합의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중국 등 한반도를 바라보는 중국의 기본시각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는 한ㆍ중 관계를 더 이상 대등한 관계로 보지 않는, “중국은 대국, 한국은 소국”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중국 관료와 학자들의 인식은 미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지나친 대미, 대일 종속주의 뿐 아니라 대중 편중론 역시 경계해야 함을 의미한다. 어느 나라 국가든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모든 외교관계와 의사결정의 중심이라는 것을 재삼 확인하는 대목이다.
 
중국의 대외 전략 및 한반도 전략과 관련해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북한에 대해 정책적 레버리지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책적 지렛대는 무엇인가? 바로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 중국, 미국, 일본, 한국 중 북한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만약 중국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과의 관계를 악화시킨다면 중국의 우세가 어디에 있겠는가? 전혀 없다. … 한국은 북한이 자신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더욱 많은 대북 원조를 제공해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동포애 때문이 아니라 한국 자신의 이익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한국 자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왕지쓰의 말은 중국의 속내를 솔직히 내비치고 있다. 한국의 올바른 대북 정책과 외교 정책에 대해 중국 학자들에게 조언, 충고받았을 때 문교수가 어떤 느낌이었을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 & 공감할 수 있다.
 
이 밖에 '동북공정'에 대해 중국 학자들은 조심스럽게 중국 측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럼에도 '동북공정'은 순전히 국경지역의 역사, 지리 등에 대한 연구 차원에서 성 차원의 일개 연구소가 진행한 것이지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강하게 설명한다. 그럼에도 한국의 일부 언론과 학자들이 '동북공정'을 정치적인 이슈로 확대하여 여론화시켜 '반중감정'을 조성하는 것은 역으로 중국 내에 '반한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미풍에 그치고 말 '동북공정'을 논의를 중국 전역에 확대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제4부는 거대 중국의 미래 구상과 안팎의 도전을 다루고 있다. 국제 안보질서 구상에 대해서는 친야칭 외교학원 상무부원장, 국제 경제질서 구상에 대해서는 장위옌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 및 정치연구소 소장, 안팎의 도전에 대해서는 진찬룽 중국 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그리고 21세기 한ㆍ중 관계의 미래 전망과 관련해서는 자칭궈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과의 대담을 싣고 있다.
 
여기서는 G2 체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 외에도 지역, 계층, 세대 간 양극화나 민주화의 내적 압력, 민족주의 분출 등 내외부적으로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심각한 문제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중국의 향후 국제사회에 대한 태도는 다음 두 가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중국 내부 문제의 개선이며, 다른 하나는 외부 세계가 중국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중국은 비교적 온화한 모습을 보일 것이고, 아니라면 매우 분노하는 중국이 될 것이다.”라는 진창룽의 말은 그야말로 의미심장하다.
 
책을 모두 읽은 후 느낀 소감은 중국에게 배워야 할 것이 상당히 많다는 것과 당분간 중국이 대외관계에서 현재의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중국의 정책을 고려하여 이명박정부 뿐 아니라 진보개혁세력 역시 그에 합당한 대중 외교정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중국 학계가 바라보고 고민하는 중국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어느정도 알 수 있었다. 비록 그들이 중국인 전체 생각이나 입장을 대변할 수 없다 하더라도 중국 주요 대학과 연구소의 지성인들이니 만큼 중국 공산당과 정부, 학계의 입장과 논의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는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대담이 중국 대학 및 연구소 등 학계 인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중견간부나 정부 관료와 일부 대담을 진행했다면 현재 중국의 정책을 주도하는 인사들의 생각과 계획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관료와 학계의 시각차가 있을지 여부도 포함하여...
 
중국의 향후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그러면서도 두려움을 감출 수 없는 것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한국이, 그리고 한반도가 향후 10~20년 안에 올바른 지도자를 선출하고 적절한 국민통합, 남북통합을 이루고 조화로운 사회,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이룩하지 못할 경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그리고 일제시대의 경험을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어 보인다.
 
* 책 속의 문장
- 미국은 중국을 라이벌로 인식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를 하나의 도전국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유권자들이 어떻게 현재와 같은 대규모 국방비 지출을 용인할 수 있겠는가. ... 따라서 중국위협론은 미국의 대중 인식에 기인한다기 보다는 미국의 국내정치 그리고 국제적 위상의 유지와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p.56)
 
- 미국은 군사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지만 문화와 이데올로기 면에서 세계 모델을 창조한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또한 IMF, IBRD, WTO 등 국제기구도 미국 주도 하에 탄생했다. 따라서 중국은 여전히 미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다. 결국 미래를 슬기롭게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국 내 정치, 사회의 변화, 즉 대내적 진보와 발전과 함께 국제적으로 미국과의 복잡한 협력 관계를 잘 풀어나가는데 있다고 생각한다.(p.102)
 
- 미국은 중국의 완전 붕괴를 원치 않지만, 중국이 걱정거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기뻐할 것이다. 이는 당연한 것 아닌가. ...  인권 문제 등 중국 내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 중 80~90 퍼센트는 중국이 자초한 것들이고, 한 10~20 퍼센트의 문제는 미국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간섭이 중국 내부에 혼란을 가져오고 중ㆍ미 관계를 크게 저해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p.127)
 
-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중국에도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미국이 북한을 침공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수 있고 중국도 전쟁에 다시 휘말릴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가 중국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에서 중국은 여전히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할 수 있다.(p.192)
 
* 대담 참여자
정비젠鄭必堅 중국 전략 및 관리연구회 회장(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상무부교장)
옌쉐퉁閻學通 칭화대학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자오팅양趙汀陽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연구원
왕이저우王逸舟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왕지쓰王緝思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원장
양보장楊伯江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일본연구소 소장
장샤오밍張小明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교수
장윈링張蘊嶺 중국사회과학원 국제학부 주임
주펑朱鋒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교수
왕융王勇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교수
자다오중査道炯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교수
장롄구이張璉?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
김경일金景一 베이징대학 한반도연구센터 부주임
치바오량戚保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한반도연구실 주임
리빈李彬 칭화대학 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
위메이화于美華 개혁개방포럼 연구원
친야칭秦亞靑 외교학원 상무부원장
장위옌張宇燕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 및 정치연구소 소장
진찬룽金燦榮 중국 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김병호金炳? 중앙민족대학 마르크스-레닌주의학원 원장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 2011년 4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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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 Pamphlet 1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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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1일 일본 북동부 해안지역 밀어닥친 쓰나미로 해당지역 뿐 아니라 일본 전역이 심하게 고통받고 있다. 지나온 역사와 현실의 정치경제 상황은 일본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나이지만, 자연재해로 고통받고 있는 일본의 일반 민중들에게는 진심으로 위로를 전하고 싶다.  벌써 10일이 지났음에도 일본 정부와 국민들은 제대로 된 복구는 커녕 원자력발전소 문제로 현장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다. 예로부터 지진이 잦았기에 어느 나라보다 대비가 철저했던 일본이 이 정도라면 다른 나라는 어땠을까...
 

쓰나미와 관련하여 ’아체’ 또는 ’반다아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지...? 
2004년 12월 26일 오전 8시에 발생한 동남아 쓰나미 재해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 아체주로서 인도네시아 전체적으로 250,000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되었는데, 그중 85%가량이 되는 200,000명의 희생자가 아체지역에서 생겼다. 수마트라 섬의 제일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이 책에서는 40만명이 죽은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고의적으로 아체지역에 쓰나미 발령 정보를 알렸으며 그로 인해 인명의 피해가 더욱 컸다고 한다. 주민들의 말.. "우리는 울고 싶어도 울 자유가 없습니다. 쓰나미로 초토화된 아체를 보며 인도네시아 정부가 팔짱끼고 웃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부패한 정부 관리들이 구호금마저 착복하고 있습니다. 계엄군은 구호품을 나른다며 구호자금으로 새 트럭이나 사고 있습니다. 우린 구호품 하나 지원받지 못했습니다."
이 책의 곳곳에 실려있는 아체지역의 피해 현장사진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들의 이야기는 책 표지를 덮을 때까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불거지도록 만들었다.  

 

사실 아체는 우리가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아는 것보다 더 역사적인 지역이다. 위키백과 사전에서 아체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이슬람이 퍼진 지역이며 17세기에 이미 믈라카 해엽 일대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네덜란드와 일본, 인도네시아 등의 지배를 차례로 받으며 긴 독립을 향한 저항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되고 있다.

 
실제로 아체는 포루투칼, 네덜란드에 이어 일본의 식민지 지배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 제도의 어떤 지방보다 장렬히 싸웠고 인도네시아 제도가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이후 1953년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하기도 했으나 군사독재자인 수하르토에 의해 다시 강제 점령되었다. 아체는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그 역사와 특성을 인정받아 1945년 이후에 계속 특별주로 존재해왔다. 최근까지도 산과 밀림 속에는 아체의 독립투쟁을 진행하는 무장 게릴라 자유아체운동(GAM)이 정부군과 투쟁을 진행했다. 아체지역의 무시무시한 정치상황은 시인이 석유기업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간 록스마웨라는 곳에서 무장경비에게 총구로 목숨을 위협당하는 사례에서 보여진다. 다행히도 인도네시아 정부군과 반군인 자유아체운동(GAM)이 쓰나미가 발생한 후 8개월여만인 2005년 8월15일 1만5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혈분쟁을 종식시키는 헬싱키 평화협정에 합의했다.
 
이 책은 박노해시인이 쓰나미가 할퀴고 난 4개월, 그리고 6개월 후에 아체주를 직접 방문하여 그 처참한 현장을 사진에 담고 절망에 몸부림치는 아체지역 곳곳을 다니면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하고 그 지난한 몸부림과 아픔의 이야기를 담아온 것이다. 서방 언론이나 한국의 인터넷에서 수박 겉핧기 식으로 인도네시아 정부의 이야기를 베겨쓴 것과 달리 시인은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것이다. 그 이야기는 언론 보도와는 달리 절망과 비통함 그 자체였으며, 아체지역이 쓰나미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인도네시아 대부분 지역에서 차별로 고통받고 있으며 박정희보다 더한 군사정권의 폭력 아래 무수한 인명과 재산이 무참하게 피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체주가 그렇게 처참하게 고통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체지역이 천연자원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인구 400만. 석유와 천연가스, 금과 석탄, 참치와 은빛 물고기... 아체주는 인도네시아 영토의 30분의 1도 되지 않지만 인도네시아 석유의 20%, 천연가스의 30%를 생산하고 수출의 11%를 담당하고 있다. 이것이 그동안 세계의 제국들이 너나없이 이곳을 차지하려고 했던 이유이고 인도네시아 군사정권이 아체지역 사람들의 씨를 말려서라도 내놓지 않으려고 한 이유이며, 미국이 군사정권의 폭력을 눈감아 주는 이유다. 아체지역의 석유는 처음부터 미국의 석유기업 엑손 모빌이 시추,유통하고 있다.(엑손모빌은 아체주에서 정부군의 원주민 탄압을 도와오다가 2006년 아체주민들에 의해 제소되었다.)
 
시인이 찾아가 아체지역은 말 그대로 ’초토화’된 모습이었다. 마을마다, 거리마다 온전한 가옥이나 농경지를 찾아볼 수 없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물은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였다. 그나마도 천정이나 벽 곳곳이 무너진 채로...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아체 주민들은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었고 물과 식량이 부족하여 고통받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마련한 난민피난소는 열악하기 짝이 없고 뜻 있는 아체인들은 정부의 아체에 대한 음모와 탐욕을 경계하여 피난소에 들어가지 않고 지옥같은 현장에서 하루하루 희망의 싹을 만들어 간다. 시인은 자신이 함께하고 있는 모임인 [나눔문화]에서 모금한 적지만 소중한 지원금을 전달하고 현지에서 부모형제를 잃은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나눔문화] 차원에서 학교 건축과 운영비를 매년 지원하고 있다.

 
주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쓰나미가 닥친 직후 일부 국제 구호단체들이 아체지역을 방문해 활동하기도 했지만 한 두달이 지난 후 모두 떠나갔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그들의 고통을 직접 확인하고 위로해주고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주기위해 찾아간 시인은 그들에게 사람에 대한, 인류에 대한 애정과 신뢰의 싹을 틔워냈다.(코리아에 대한 좋은 인상도 주었겠지만 한국 정부가 제3세계에 취하는 외교정책들을 보면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진심으로 아체지역 주민들에게 평화와 희망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2005년 평화협상 이후 소식은 아직 찾지 못했다. [나눔문화]의 작은 도움을 계기로 한국 뿐 아니라 아체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세계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나도 다음 번 모임에 가서 나눔학교 지원용 통장을 받아와야겠다...^^

- 박노해시인의 시 [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어요 ]
하늘이여 저에게 화를 내고 계신가요.
여기가 세상의 심판대인가요.
인도네시아의 검은 머리라 할 수 있는,
아체를 이렇게 날려 버렸어요.
아무 경고도 없이.
아무 자비도 없이.

제가 당신은 아프게 했나요.
그래서 온 지구를 흔들었나요.
왜 하필 아체였나요.
아체는 이미 울고 있는데.
밤마다 사라져 간 별들이 발 밑에서 우는데,
총살당한 부모 품에서 살아나온,
저 아이가 또 무얼 잘못했나요.
밀림의 스무 살 이농발女戰士이 무얼 잘못했나요.
쓰나미로 몰려든 외국인이 떠나면,
여긴 다시 계엄의 공포인데,
저는 언제까지 울어야 하나요.

푸른바다 물결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부드러운데,
사람들은 이젠 잊어비린 채 웃고 마시고 분주한데,
하늘이여 눈물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나요.
착하고 가난한 사람의 희생이 필요했나요.
이미 당신께 속해 있는 자의 희생이 더 필요했나요.

오 하늘이여.
오래된 제 눈물은 흘러도 좋아요.
그러나 피지도 못한 아체의 아이들은 받아주세요.
울 힘마저 없는 사람들은 받아주세요.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어요.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어요.
 
[ 3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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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튼 싱클레어 지음, 채광석 옮김 / 페이퍼로드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생활고에 세상 등진 여성 간신히 목숨 구해(청주)',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출청소년 편의점 상습 강,절도(서울)', '고문 후유증에 생활고로 518 유공자 자살 잇달아(광주)', '생활고에 2층 난간에 목 매달아 자살(개봉동)', '생활고 비관 70대 할머니 자살(대구)', '생활고 비관 자신의 집에 방화한 40대(거제)', '보육원 퇴소 10대들 생활고 압박 강도(광주)'... 
 
3월 22일 다음 포털 사이트에서 '생활고'란 단어를 입력한 후 첫 번째 페이지에 나온 기사들이다. 청소년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전반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에 따른 사건사고와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지난 2월 20일 통계청의 우리나라 상대빈곤율(가처분소득 기준) 발표에서 지난 2007년 14.8%, 2008년 15.0%, 2009년 15.2%로 높아지고 있는 수치가 사회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상대빈곤율이란 소득이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수준별로 나란히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위치한 가구가 벌어들인 소득)의 50%를 밑도는 가구의 비율을 뜻한다.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 미만인 가구의 비율을 나타내는 절대빈곤율도 2007년 10.2%, 2008년 10.4%, 2009년 11.1% 등으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지원하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몇 년째 제자리 걸음을 계속하고 있다.(한겨레 기사 2011-2-20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464290.html)
 
지구상에서 가장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는 어디일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 미국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미국은 한국보다 더 잘 살까? 미국이 제3세계에 자신들의 자랑이라고 떠들어대는 자유, 평등, 기회는 얼마나 잘 보장되어 있을까? 20세기에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 제3세계 국가들에게 미국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로서 자랑하고 전파한 자본주의, 자유시장의 모습을 이 책 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한국은 이런 미국을 철저하게 따르는 중이다.
 
이 책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온 리투아니아 이민자들이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 장악한 시카고에서 열악한 노동환경과 근로조건, 거주상황 등으로 인해 처절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곳은 '정글'이었다.
 
1900년대 초 '황제의 숲'으로 알려진 리투아니아의 브렐로비치라는 산악지방에서 아무런 걱정없이 평화롭게 살던 20대 초반의 유르기스는 말 시장에서 처음 본, 아름다움 미소를 지닌 오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오나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된 유르게스는 미국이 리투아니아와 달리 자유, 평등, 기회의 땅이라는 소문을 듣고 부푼 꿈을 안고 모든 재산을 처분한 다음 오나, 그리고 오나의 가족들(모두 12명)을 데리고 미국 시카고에 도착한다. 시카고까지 오게된 동안 재산 대부분을 지출하였고 시카고에 자신들이 편하게 거주할 마땅한 집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시카고에서 처음 본 거대한 쇠고기 공장과 가축 수용장을 둘러보면서 유르기스는 "끔찍해라. 내가 돼지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네."라고 속삭인다. 
 
유르기스와 일행들이 꾼 꿈이 헛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며칠도 걸리지 않았고 그들은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위하여 직장을 구해야 했으나 당시 시카고는 유르기스 일행과 같은 이민자들과 실업자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취업은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한 유르기스와 어른 몇 명은 지옥같은 공장에서 장시간 일해야만 했다. 추위, 악취, 먼지, 피, 기름, 땀이 범벅된 공장 안에서는 쉴 틈도 없이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유르기스는 오나와 결혼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들은 한 때 무한경쟁 속에서도 자신들의 보금자리도 장만하고 돈도 모으는 등 희망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본가들과 그 하수인들이 쳐놓은 이중, 삼중의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처음 강철같은 체력으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유르기스는 오래지 않아 집도 빼앗기고 체력과 정신이 고갈되고 소중한 가족들을 하나씩 쓰러져갔다. 유르기스가 시카고의 구조적인 현실을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을 빼앗긴 후였다. 고통과 절망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방황하고 추위와 허기에 시달리다가 유르기스는 사회주의자들을 만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이 책은 출간된 이후 미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당시 대통령이던 루스벨트의 조사와 후속조치를 통해 식품안전에 관한 법률,제도와 식품의약품안전청(FDA)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책을 발간했던 더 중요한 이유, 즉 열악한 환경과 처우를 당하고 있는 노동자와 빈민에 대한 관심이 식품안전에 대한 관심으로 변해버린 결과로 인해 허탈감에 빠져야 했다.
 
<정글> 속의 이야기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된 아득한 과거의 이야기로 끝난 것일까? 책의 말미에 소설가 방현석이 '작품해설'에 쓴 것처럼 "시간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이 책이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과 존 로빈슨의 <음식혁명>에 다시 거론된 것은 아직도 자본가와 쇠고기 산업이라는 악마가 지구상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자본, 자본가들의 추악함과 역겨움은 여전하다. 그리고 미국의 추악한 쇠고기 산업은 지난 2008년 한국에서도 '광우병 파동'을 일으켰고 다행이도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도 육식의 공포와 쇠고기 산업의 폐해를 알게되었다.
 
<정글>은 광우병 공포와 쇠고기 산업의 추악함 뿐 아니라 21세기 한국에도 여전히 열악한 취업기회와 근로조건, 물가상승과 불안한 보금자리, 자본주의적 욕망과 무한경쟁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IMF 사태 이후 부익부빈익빈이 더욱 심화되면서 빈곤층이 늘어남과 동시에사회적으로 희망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있다.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 가는지, 몰아 가는지 <정글>을 통해 냉정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현실을 정확하게 알고 난 다음에야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2011년 3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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