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우백
찰머스 존슨 지음, 이원태 옮김 / 삼인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던 2008년 미국의 국내외에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2007년 서브 프라임 붕괴로 시작된 금융위기는 2008년 들어 미국 국민들에게 최악의 경제침체를 가져왔고 8년간 계속된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는 미국을 이라크/아프카니스탄 내전이라는 '수렁'에 빠트리고 동맹국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다국적 기업과 월가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빈부격차를 확대시키고 정부의 적자를 눈덩이처럼 불려놓았으며 미국의 산업과 고용 상태를 최악으로 만들었다.
 
2008년 12월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Jr.)는 취임 이후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을까?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던 '변화와 통합,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유권자들의 희망은 지난 2년 4개월 동안 얼마나 이루어졌는가? 지난 19일 오바마의 '중동정책 연설'이 요약하여 보여주는 것 같다. 19일 오바마가 발표한 중동정책은 과거 민주당 정권이 추진하던 수준에서 그쳤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 팔레스타인 국가 독립과 무장, 아랍 민주화 혁명 등의 문제에 대한 오바마의 연설은 이스라엘과 공화당, 팔레스타인과 중동지역 국가, 정부로부터 모두 비난을 들어야 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샤디 하미드 연구원을 말처럼 "모든 사람에게 호소하려다 결국 모든 이들을 실망시켰다." 의료보험 대상자의 확산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 중동정책 이외의 금융위기 극복, 경제 활성화, 변화와 통합 등 주요 분야에 대한 오바마의 성적은 변변치 않은 것 같다.
 
상당수 미국 국민들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가 왜 이토록 초라한 과정을 보내고 있을까? 이 책은 그 이유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다. 저자는 21세기에 접어든 이후 미국이 국내외에 처한 상황을 '블로우백 blowback(역풍)'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역풍을 잠재우기 위해서 미국이 근본적이고 철저하게 변화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이 과거의 제국들처럼 '무너지지' 않으려면, 안정과 평화 속에 앞으로도 번영을 누리려면 18세기 '건국의 정신'으로 돌아가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변화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책은 [나눔문화]에서 진행하는 [평화나눔아카데미]의 강연 중 지난 3월 31일 두 번째 강연 주제였던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혁명, 위키리크스’의 강사인 안병진 교수(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과)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안병진 교수가 미국 유학시 지도교수가 찰머스 존슨 교수였던 것이다. 이 책은 1999년 처음 출간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미국 내에서는 냉담한 반응 일색이었다고 한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저자가 911 사태를 예견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외적으로 유명해졌다.
 
*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은 누구인가?  -----------------------------------------
미국의 비판적 지성이자 국제 정치학계의 세계적인 석학인 찰머스 존슨은 1931년 피닉스에서 출생하여,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53년 한국전쟁 당시 해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한국과 일본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고, 전후 버클리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동시에 취득하였다. 1962년부터 1988년까지 버클리 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하면서, 아시아 문제와 미국의 외교 정책 연구에 전념해,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과 일본의 경제 개혁, 저항 이론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저술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그가 일본 통산성에 주목해 관료제의 자율성과 경제 개발 과정에서의 역할을 설명한 ‘발전 국가 모델’은 기념비적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버클리 중국학연구소 소장, 샌디에이고 대학 교수, 일본정책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그는 한때 CIA의 정보 평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74년 이래 미국 학술원 회원으로 있다.
이 책 <블로우백>과 <제국의 슬픔>, <네메시스>이라는 3부작을 통해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대하여 통렬한 비판을 가하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2010년 11월 20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향년 79세로 타계했다. --------------------------
 
'역풍(Blowback)'이란 단어는 미국 CIA 관료가 내부 용어로 처음 고안한 말이다. CIA가 수행한 작전이 당초 의도와 달리 자국이나 CIA 자체에게 피해를 가져다 주는 현상을 '역풍'이라 규정했다. 다시 말하면 미국 국민에게는 비밀로 부쳐졌던 정책이 낳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에 따른 '역풍'을 말하는 것일까? 1990년대 초 소련연방의 해체를 시작으로 50여년간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던 냉전은 종식되었다. 냉전 종식 후 지구상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은 냉전을 이유로 진행되었던 정치, 군사, 외교, 경제 정책을 포기하거나 변화시키지 않은 채, 냉전 체제에 뿌리를 둔 외교 정책을 고수하거나 오히려 강화하면서 미 제국의 공고화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상당부분 자국민도 모르는 채 진행되는, 바로 이와 같은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은 이제 범세계적인 저항과 도전, 즉 '역풍'을 맞기 시작했다.(물론, '역풍'의 원인은 냉전 이전에도 뿌리 깊게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약자의 전략'이라는 '비대칭적 위협'과 같이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아무리 소규모 집단이라 할지라도 미국에 충분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911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임), 미국 이외의 국가들의 성장과 결속, 세계 시민의 자각 등을 포함하는 역풍의 국제적인 조건이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표적인 '역풍'으로 지적되고 있는 911 사태의 원인으로 911 사태가 발생하기 11년 전인 1990년 9월 미 의회 연설에서 행한 부시 대통령의 걸프전쟁 선포, 그로부터 12년 전인 1978년 9월 중동 지역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제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의 체결, 1990년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학살과 팔레스타인 지도자 암살 등 이스라엘이 미 공군 기지를 이용하여 점령지에서 행한 야만적 행위들과 이에 대한 미국의 지지와 지원, 클린턴 대통령의 수단 폭격, 그리고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침공 등을 꼽고 있다.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발생한 팬암 103호기 폭발로 인해 259명의 탑승객과 11명의 지상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도 중요한 '역풍'의 사례인데, 저자는 이 사건이 1986년 레이건 행정부의 리비아 공습 때 가다피 대통령의 양녀가 사망한 데 따른 보복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역풍'은 군사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역풍'은 국제 경제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게 체감되고 있다는 것이다. 냉전 이후 미국의 군사적 지배욕망은 이제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경제적 지배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역풍'은 '시장 근본주의적 지구화' 혹은 '세계화'가 초래한 부작용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다. 그는 1997~1998년 한국 등의 동아시아의 경제위기가 동아시아 위성 국가들의 경제를 개방하고 자신의 종속 경제체제로 만들고자 하는 미국의 세계화 프로젝트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본다. 미국의 세계화 전략의 목적은 세계 유일의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자신의 경쟁국들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전략은 동아시아 위성국가들의 경제적 독자성과 능력이 크게 훼손됨으로써 외견상으로 성공한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외견상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세계화 전략은 심각한 '역풍'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시 경제위기로 인해 동아시아 국가의 수많은 민중이 경제적 고통에 시달린 것도 경제적 '역풍'의 결과이지만, 그러한 역풍은 미국인에게도 불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은 지난 50여 동안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이 냉전적 군사 동맹에 기초하여 미국 시장에 대한 특혜적인 수출에 상당한 정도로 의존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군사적 지지의 대가로 이들 동아시아 위성 국가들은 미국과 비교적 유리한 무역협정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이에 따라 미국 또한 동아시아의 수출 지향적 경제에 따른 공급 과잉과 수요 약화로 인해 지속적인 경제 침체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낡은 냉전적 구조를 개혁하기 보다는 '시장 개방'과 '탈규제'라는 화려한 수사학으로 이들 나라에게 세계화를 강제함으로써, 이들의 신뢰를 스스로 배반하고 결국 냉전적 동맹 체제하의 지지자들을 모두 잃고 말았다.
 
저자는 제2장에서 제8장까지 냉전 체제에서 시작하여 20세기 말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미국의 제국주의적 동아시아 정책과 그에 따른 역풍 및 역풍의 징후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1953년부터 2년간 미 해군으로 일본에서 복무하였고 1955년부터 대학원에서 중국에 대해 연구했다. 1972년 일본을 다시 방문했고 그 이후 일본의 경제 성장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하여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저자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정책과정과 그 여파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자세하게 다룰 수 있었다.
 
[ 동아시아에서의 역풍과 역풍의 징후 ]
1. 미군 범죄 등에 대한 오키나와 주민의 반발로 촉발된 오키나와 미군 기지 철폐 운동은 동아시아 지역이 가장 대표적인 역풍으로 본다.
2.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필리핀의 마르코스, 한국의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 등 아시아의 독재정권에 대한 정치군사적 지원으로 야기된 해당 국민들의 살해와 탄압, 그리고 그에 따른 반미주의의 확산도 이 지역의 중요한 역풍 사례로 지적한다. 특히 저자는 1980년 한국에서의 광주 학살과 이에 대한 미국의 개입 사실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무지를 개탄한다.
3. 핵, 미사일 문제를 둘러싸고 북한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위협하기 위해 고안한 미국의 이른바 '불량국가론'이 실제로는 제국주의적 강박 관념과 이윤 논리가 결합된 'NMD'에 대한 집착이 빚어낸 억지 논리인 동시에 궁극적으로 미국의 핵 확산 금지 정책이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핵, 미사일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압박에 대한 북한의 반발과 저항은 어쩌면 불가피하며 이해할 만한 것이라고 본다.
4. 중국의 엄청난 잠재력은 미국의 보수 세력으로 하여금 봉쇄 정책을 선호하도록 자극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가난하며 세계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데 많은 장애가 존재한다. 저자에 의하면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이 미,중간의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중국의 영토정책이 과거으 제국주의에 지배당했던 역사적 경험 때문에 민족주의에 의존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영토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지나친 내정 간섭과 견제는 사실상 중국의 역사와 정책에 대한 무지와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5. 냉전 체제하에서 일본의 경제적 성공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추종한 결과로 간주되었지만, 실상은 미국의 냉전 전략에 따른 특혜적 지원에 의해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며, 미국이 일본에 그런 경제적 특혜를 베푼 결과, 오히려 미 국민의 고통과 미국 제조업의 공동화에 따른 미국 경제의 약화라는 역풍을 맞았다고 주장한다.
6. 미국의 제국적 과잉 팽창이 미국 산업의 위축뿐 아니라 군국주의의 성장과 핵 확산을 초래함으로써 민주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에 의존하기보다는 '외교력과 솔선수범'으로 세계를 이끄는 리더쉽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결론은, 전 세계적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역풍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이 스스로 탈피하지 못한 냉전 구조를 개혁하고 제국적 과잉 팽창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오키나와와 한국에서의 미군 철수, 북한에 대한 외교적 포용 정책,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조정, 여타 지역에 대한 군사 개입 자제, 군사력보다 '외교력과 솔선수범'으로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리더쉽의 발휘 등이다.
 

내가 미국의 정치외교나 행정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언론을 통해 간간히 들어온 바로는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후 2년 넘게 추진해 온 정책은 저자의 전략과 대책에서 많이 벗어났다. 그렇다면 오바마 집권 기간 동안 미국의 정책이 근본적인 측면에서 변화되지 않을 것이고 미 제국에 대한 세계적인 '역풍'은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미국민은 당분간 안정과 평화, 경제와 복지를 되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저자의 동아시아 각국에 대한 사회, 역사, 문화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지식은 탄복할 만 하다. 특히 자신이 전공했던 중국과 일본에 대한 식견은 한국 내 전문가들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내 자국의 웬만한 학자들이 따라오기 쉽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보인다. 미국인 학자로서 미국 행정부의 자료를 쉽게 열람하고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군국주의 팽창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는 한국의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전문가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미국이 지난 50~60년간 한국과 북한에 대해 취한 정책을 저자의 정보와 사례에 기초하여 분석하면 저자의 주장에 십분 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군국주의적 팽창 정책'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동아시아 국가들 뿐 아니라 중국이나 유럽,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어느 나라에도 해당되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큰 것 같다. 언론에 나오는 단편적인 정보들, 정치인들이나 정부 관료들이 내뱉는 말들, 부실한 전문가들의 평론이 아니라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펼치는 주장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만이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사건에 대해 통찰력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으며, 향후 어떻게 전략을 세우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행가능하고 성과적인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의 문장 :
- 소련은 세 가지 이유, 즉 국내 경제적 모순, 제국의 과잉 확대, 개혁 능력의 결핍 때문에 붕괴했다.(p.19)
- 혁명의 만행이 1976년 마오쩌둥의 죽음으로 끝나기 전까지 이른바 문화 혁명은 1930년대 후반 구 소련에서 자행되었던 스탈린의 숙청과 닮아갔고, 공산주의를 약속했던 중국 이상주의의 마지막 한 조각마저 파괴하고 말았다.(p.28)
- 1996년에서 1997년 사이 극소수의 페루 혁명가들이 페루 주재 전 외교관을 인질로 삼아 벌인 리마의 일본 대사관 인질 사건도 사실상 페루 대통령 알레르토 후지모리의 반게릴라 정책과 일본 다국적 기업의 페루 영업을 일본 정부가 지원한 결과로 빚어진 역풍이었다.(p.45)
- 1955년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미국 기업들에 위협적인 토지 개혁을 단행한 과테말라 대통령을 전복시키기 위해 쿠테타를 계획했고, CIA는 그것을 조직하고 자금을 지원했다. 이에 대한 역풍은 1980년대 마르크시스트 게릴라의 반란과 CIA 및 국방성 지원 하의 마야 농민에 대한 대학살로 이어졌다.(p.48)
 
-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독재 정권을 세운 첫 번째 국가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주로 과거 친일파였던 인물들로 구성되었다. 한국 민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북한 점령을 의식한 나머지 견고한 반공 체제가 필요하다는 미국의 요구가 우선되었던 것이다.
- 1960년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민의 열망이 이승만 정권을 전복시킨 후, 미국 정부는 1961년에서 1963년까지 한국을 통치한 세 명의 육군 장성 중 선두 주자였던 박정희에게 지지를 보냈다. 또 미국은 1979년 전두환 장군의 구테타를 용인하고, 1980년 수천 명의 한국 시민을 살해한 그의 명령을 은밀히 지지하기도 했다.(p.62)
 
- 약 2만 개에서 3만 개의 M14 대인 지뢰가 아직도 한국 최남단의 부산항 인근 영도 충리산에 매설되어 있다. 1956년 미군은 그곳에 기지를 둔 미사일 부대를 보호하기 위해 지뢰를 매설했는데, 그것들은 미사일 기지가 옮겨졌을 때도 결코 제거되지 않았으며, 1960년대 이후 많은 민간인의 부상과 사망을 초래했다고 비판받아 왔다.(p.116)
- 1993년에서 1997년까지 세계 5대 주요 무기 구매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대만, 터키, 이집트, 한국이다.(p.138)
 
- 위성국을 수립하고 유지하는 정치,군사적 중요성에 관한 한, 소련과 미국은 비슷한 이유로 비슷한 정책을 추구했다. 그들은 진정한 민주 정권을 수립하려는 어떠한 대중적 노력도 거부하면서 소련군과 미군이 수립하고 냉전 내내 지원했던 일당 독재 체제(일본은 자민당, 한국은 자유당-공화당)를 통해 종속국을 통제했다.(p.148)
- 과거와 달리, 1987~1989년 미국은 한국 군부가 무력을 사용하도록 촉구하지 않았다. 한 가지 이유는, 미국 관리들이 여전히 이란 혁명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한국전쟁에 대한 견해가 어떻든 전쟁 당시부터 현재까지 남한은 미국의 종송국이라는 지위에 있었다.(p.154)
- 우리가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북한이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오만하고 구제 불능한 국가, 즉 미국보다 덜 불량국가라는 사실이다. 북한은 코너에 몰리면서도 자신의 약한 입지를 잘 활용, 강한 근육질을 갖고 있지만 머리에 든 지식은 형편없는 경쟁자, 즉 미국에게 상당한 외교적, 경제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교과서적 방법의 유용한 사례를 전 세계에 제공했기 대문이다.(p.175)  

- 1997년 7월 타이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는 두 가지 원인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첫째는 동아시아에서의 미국 위성 국가 체제에 이미 구축되어 있던 모순들이 더욱 강화됨에 따라 그 체제 자체가 갑자기 균열하기 시작하고 또 와해가 우려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냉전 시기엔 미국의 어떠한 실수도 소련 탓으로 돌렸지만 이 냉전 시기가 주던 부담감에서 벗어난 미국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 미국식 자본주의르 채택하라고 강요하는 캠페인에 착수했다는 점이다.(p.263)
 
[ 2011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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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영국사 - 아서 왕에서 엘리자베스 2세까지 이야기 역사 9
김현수 지음 / 청아출판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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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떤 의도와 성격을 가지고 영국에서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는가?
 
저자는 대학 강단에서 ’영국사’란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고 했다.
저자가 학생들에게 ’영국사’를 이야기할 때 강조하는 바가 "민주주의의 시작이 영국이기에 민주주의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영국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있다"는 것...
현재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자신들의 국가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경제방식이나 종교, 언어, 문화를 떠나서 인류에게 ’최고의 가치’로 자리잡은 셈이다.
일반적으로 학계나, 정치계, 언론계 등 대부분의 주류 세력에서 "최초로 민주주의를 도입한 나라가 영국"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저자는 ’어떤 의도와 성격을 가지고 처음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인류가 향후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저자는 유물과 기록이 남아있는 선사시대부터 영국의 역사를 설명해 나간다.
특히 저자는 이 책에서 영국의 왕들을 중심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서술하면서 영국사를 펼쳐나간다.
영국 선주민의 흔적인 스톤헨지, 최초의 기록상 영국으로 들어온 켈트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비롯한 로마의 집정관 및 황제들의 브리튼 원정과 속주화, 초기 기독교의 전래, 로마군의 철수와 게르만의 침입과 정착, 데인족의 출현과 잉글랜드 왕국 수립, 브리튼을 정복한 노르망디공 정복자 윌리엄, 플랜태저넷 왕조, 랭커스터가, 요크가, 튜더 왕조, 엘리자베스 1세, 올리버 크롬웰과 청교도 혁명, 스튜어트 왕조, 하노버 왕조, 빅토리아 여왕, 윈저 왕조, 마지막 여왕인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까지...  

- 정복자 윌리엄 :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이 브리튼을 정복한 후 브리튼은 섬나라 문화의 틀을 벗어나 ’유럽대륙을 품은 섬나라’로 미래의 영국 역사의 첫 장을 열게 된다.
- 헨리 1세 : 잉글랜드와 노르망디를 통합하고 왕국의 행정체계를 제대로 잡아나갔고 순회법정제도를 통해 국가사회의 틀을 정착시켰다.
- 헨리 2세 : 잉글랜드 최초의 왕조인 플랜태저넷 왕조를 세웠다.
- 사자심 리처드 1세 : 아버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왕관을 썼으나 무모한 십자군 전쟁 도중 귀환하다가 오스트리아에 볼모로 붙잡히기도 했다. 
- 존 왕 : 아버지를 배신하고 왕위에 올랐으나 프랑스 필립 2세와 전쟁으로 상당한 영토를 잃었고 계속되는 실정 끝에 귀족들의 요구에 순응하여 ’마그나카르타(대헌장)’을 승인했다.
- 에드워드 1세 : ’모범의회’를 소집했고 봉건적 계급질서 내에서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법령을 제정했다. 이 과정에서 잉글랜드의 관습법을 명확히 규정하여 ’잉글랜드의 유스티니아누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 에드워드 3세 : 어머니가 아버지를 탄핵하여 왕위에 오른 그는 프랑스 왕실의 적통이 끊긴 것을 빌미로 삼아 외척 혈통인 자신이 프랑스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백년전쟁’을 일으켰다.
- 헨리 6세 : 강보에 쌓인 왕은 샤를 7세와 전쟁을 끝으로 ’백년전쟁’이 끝나고 그 결과 칼레를 제외한 프랑스 영토는 모두 빼앗겼다. 이후 귀족들간의 ’장미전쟁’이 일어나면서 포로로 잡힌 후 살해당한다.
- 요크 왕조 에드워드 4세 : ’장미전쟁’의 승리로 왕위에 올랐고 그의 아들 에드워드 5세는 정치적 제물이 되었다.
- 리처드 3세 :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그는 ’장미전쟁’의 대미를 장식하며 헨리 튜더와 전투 중 사망한다.
- 튜더 왕조를 연 헨리 7세는 여러 반란과 내분을 진압하면서 왕국을 안정화시켰다.
- 영국형 종교개혁을 실시한 헨리 8세 : 그는 원래 독실한 카톨릭교도였으나, 왕비가 후세를 낳지 못하자 합법적으로 왕비와 이혼하기 위하여 영국국교회(성공회)를 만들어내고 수도회의 재산을 몰수했다.
- 영국국교회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에 이르러서였다.
- 엘리자베스 1세는 종교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고 당대의 최강국인 스페인을 물리치면서 대영 제국의 기초를 닦아 놓았다.
- 엘리자베스 1세 사후 ’왕권신수설’을 신봉한 제임스 6세부터 찰스 1세, 클롬웰의 청교도 혁명, 왕정복고를 통한 찰스 2세와 제임스 2세를 거치면서 윌리엄 3세 때 ’권리장전’으로 시민권과 타협하는 새로운 정치체제가 열린다.
- 조지 1세로 시작한 하노버 왕조는 부의 축적이 정치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정책을 폈으며, 그 결실은 빅토리아 여왕 통치기에 대영 제국의 번영을 가져왔다.
-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면서 대영 제국의 위상은 점차 스러지게 되었다. 

현재 영국 왕실의 존재는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로 설명할 수 있다.
 
서기 1042년 잉글랜드 지역의 ’참회와 에드워드’로 탄생한 왕정은 오늘날 엘리자베스 2세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이 채 되지 않고 명목상 왕이 아닌 통치자로서의 왕정은 ’명예혁명’이 일어난 1688년까지 약640년 정도가 된다.
그 사이 영국의 왕정은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 스코틀랜드, 스페인, 독일의 왕족까지 이어지는 아주 복잡한 핏줄이 얽혀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왕족과 귀족이 얽히고 설켜 서로 협잡하고 배신하고 죽고 죽이는 ’피의 왕위 계승’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저자의 영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니 영국의 입헌군주제, 영국식 민주주의, 영국식 의회제도는 영국민중들이 피흘려 이룩한 결실이 아니라 왕과 귀족, 자산가들의 대립과 타협의 산물이라는 측면이 더 강하다고 판단된다.
영국이 1688년 이래 지금까지 ’영국식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엘리자베스 1세부터 시작하여 빅토리아 여왕 이후까지 지속된 ’최초의 산업혁명’과 ’해가 지지 않는 제국주의’를 통한 경제수준으로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영국식 민주주의’의 진정성은 영국의 경제수준이 현재보다 더 떨어진 이후에 검증될 것이라 전망해 본다.
 
이 책은 왕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영국사를 재미있게 보여주어 아주 유익했다.
다만, 각각의 이야기의 배경과 정치경제적, 그리로 사회문화적인 의의와 연관성을 분석해주지 않아 ’중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를 읽는 느낌이었다.
이 책이면 세계사 시험에 좋은 성적은 올릴 것 같은...ㅋ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개인적으로 영국에 가야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과거에 업무차, 또는 여행차 외국에 갔을 때마다 매번 미리 준비하지 못한 채 현지에 도착하여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돌아오기만 했다.
이번에는 나름대로 현지에 대해 미리 알고 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책을 몇 권 준비해서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왕 가는 김에, 내가 살아 생전에 언제 다시 그 나라를 갈 수 있을까 생각하니 의욕도 조금 생긴 것 같다.
미리 공부하는 것도 단순히 여행이나 관광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특징과 이슈들을 알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늘 관심이 가는 분야, 즉 주택정책이나 복지정책, 문화 등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가고자 한다.
 
이 책은 그런 목적으로 읽은 첫 번째 책이다.
특별히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책을 누구에게 소개받지 못해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구입한 책이다. 

[ 2011년 12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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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
이계안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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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위 그림은 스위스 바젤 시립미술관에 있는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이란 작품이다. 로댕은 아래와 같은 실제 사건의 교훈을 기리기 위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1347 도버해협 양쪽의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의 . 1 가까이 영국의 공격을 막던 프랑스의 북부도시 칼레는 원병을 기대할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백기를 들지 않을 없었다. 칼레시의 항복 사절은 도시 전체가 불타고 모든 칼레의 시민이 도살되는 운명을 면하기 위해 영국 에드워드 3(Edward II)에게 자비를 구하였다.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영국왕 에드워드 3(Edward II) 항복의 조건을 놓았다

"좋다. 칼레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동안의 어리석은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도시에서 가장 명망이 높던 대표적인 시민 대표를 골라 목에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로 영국군 진영으로 가서 도시의 열쇠를 건넨 목을 처형받아야 한다."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 6명이 그들을 대신해 죽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용감하게 6명이 선뜻 나섰다. 모두 도시의 핵심 인물이며 절정의 삶을 누리던 부유한 귀족이었다. 칼레에서 가장 부자였던위스타슈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 가장 먼저 자원했다" 칼레의 시민들이여...나오라...용기를 가지고..."

그러자 시장이 나섰다. 상인이 나섰다. 그의 아들도 나섰다. 드디어 일곱 명이 되었다. 사람은 빠져도 되었다. 제비를 뽑자는 말도 있었지만 그렇게 없었습니다. ’위스타슈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 "내일 아침 장터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 제의했고 이에 모두 동의했다. 그들의 고통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이튿날 이른 아침 여섯 명이 모였다. 그러나위스타슈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궁금했다. 모두 나와도 그는 나올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죽음을 자원한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칼레의 생존과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에드워드 3(Edward II) 당시 임신 중인 왕비의 간청을 듣고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려주었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95 칼레시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피에르에 조각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조각가 로댕에게 의뢰했다. 작품이 바로칼레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이다

비장한 슬픔으로 얼룩진 이 조각상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Nonlesse Oblige)’의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노블레스(Nonlesse)란 ’고귀한 사람들’ 또는 ’귀족’이라는 뜻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혈통, 문벌, 공적 등에 의하여 일반 민중과는 다른 특별한 정치적, 제도적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이나 집단’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제도적 지위가 높고 제도적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이면 ’노블레스’라 지칭할 수 있다. ’오블리주’는 ’의무’를 뜻한다. ’제도적 지위’라 할 때의 제도에는 공공기관 뿐 아니라 학교, 언론, 기업, 종교 등도 포함한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Nonlesse Oblige)’는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대 로마의 원로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이튼 칼리지의 학생들, 미국의 카네기멜론 대학과 존스 홉킨스 대학 등이 유명하다. 한국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조선 정조시대 제주도 식량 기근을 위해 전 재산으로 쌀을 분배한 거상 김만덕, 군수산업으로 번 막대한 재산을 독립운동에 사용한 최재형, ’백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하라’는 신념으로 사회복지를 실현한 경주 최부잣집 등이 존재했다. 한국 전쟁 이후 한국에서는 더 이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볼 수가 없으며, 오히려 ’노블레스’들이 병역기피, 이중국적, 부동산투기, 불법상속, 정경유착 등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저지르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UN에서 발표한 2009년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1.22로 내전에 휘말려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제외하면 세계 1위의 저출산국이다. 왜 한국인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까?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단순히 개인적 문제 때문일까?
 
저자는 그 근원적 원인을 한국이라면 누구나 통과해야 할 4가지의 ’개미지옥’에서 찾는다. 10대에는 사교육, 20대에는 청년실업, 30대와 40대에는 내집 마련, 50대와 60대는 노후 불안이라는 개미지옥이 순서대로 한국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개미지옥만으로도 벅찰 텐데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그날까지 4개의 개미지옥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율은 이렇듯 한국인의 인생이 그만큼 고달프고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4개의 개미지옥을 중심으로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사회 분열과 초양극화의 양상에 대해 파헤친 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방위적 측면에서 개미지옥을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1부. [90까지 살면 어떡하지?] 4가지 개미지옥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거친 후 각각의 지옥에 대한 몇 가지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1. 사교육 
 - 요지 : 저자는 사교육의 원인을 IMF 이후 고용불안정(일자리 부족), 성장 잠재력 약화, 교육정책(과외 및 학원교습 허용 등)으로 분석한 후, 사교육의 진짜 주범을 학부모들(대부분 486세대)의 자식에 대한 과도한 안정희구 성향과 성장율 부족으로 일자리 창출 여력 약화, 그리고 위험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을 뒷받침해 주는 사회복지 시스템의 부족으로 꼽고 있으며, 사교육을 해결할 교육정책으로는 평준화 틀의 유지, 중고등학생의 과목 선택권 보장, 교원평가제도 도입, 프랑스식 대학 공립 시스템 도입, 국가 관리형 대학 졸업시험제도 도입 등을 제시한다.
- 평가 : 사교육 원인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일자리 부족과 성장 잠재력 약화는 사교육 광풍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없으며, 과외와 학원교습 허용을 문제삼는 것은 사교육 시장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시대착오적인 인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학부모들이 안정희구 성향을 발동하여 사교육 광풍에 뛰어든 것을 두고 그들을 주범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하다. 그들은 스스로 참가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일 뿐이다. 낮은 성장율을 사교육의 주범으로 지목하게 되면 유럽이나 일본의 낮은 성장율과 사교육 시장 규모를 설명할 수 없다. 사교육 광품의 핵심 원인은 무한 경쟁과 학벌체제, 불공정한 경쟁과 사회복지 체계, 공교육의 붕괴 등이지 않을까... 저자가 제시한 해결방안은 자신이 분석한 원인과 연관되지 않을 뿐더러 원인분석이 부실함에 따라 해결방안 역시 검토해볼 여지는 있지만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주요 방안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2. 청년실업 
- 요지 : 저자는 원인을 청년들의 안정추구형 태도, 부실한 창업지원 정책 등을 지적하면서 해결방안으로 청년들의 마인드 전환과 강력한 벤처 지원 정책을 제시한다.
- 평가 : 청년실업과 대학의 ’취업학원화’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1차적 원인이라 생각한다. 벤처 지원 정책은 일자리 정책이기도 하지만, 더 연관성이 큰 분야는 산업정책일 것이다.
3. 내집 마련 
- 요지 : 저자는 주거불안의 원인을 부동산 인플레이션, 세입자 보호의 부족, 부자 위주의 뉴타운 개발정책 등을 거론하고 있으며, 해결방안으로는 저소득층에 대한 영구임대주택 확대, 재개발과 재건축의 용적율 인센티브 제공과 임대주택 확보, 전세가 수준의 환매조건부 주택 공급 등을 제시한다.
- 평가 : 거시적인 정책방향은 타당해 보이나 현실적인 단기 및 중기정책으로서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고, 재원조달과 관련한 정부 재정 및 공기업 재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며, 부동산 버블과 조세정책에 대해서도 검토하여 서로 연관되는 부분을 고려한 종합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4. 불안한 노년
- 요지 :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재정과 혜택이 부실한 현실과 노인 복지를 가정 단위로 부담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현재와 같이 사교육비, 주거비 등을 감안하면 30~40년 후 노년이 불안해질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2부. [초양극화의 길목에서] 부와 가난이 대물림 되면서 미래의 희망이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깝게 보여준다.
1. 대한민국의 워킹 푸어 : IMF 이후 한국의 사회경제에서 ’괜찮은 일자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으며, 대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면서도 경제력을 독과점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따라 국민경제에서 갈수록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소득세 강화, 저소득 직종 취업자에 대한 전업 교육 프로그램 강화, 임대주택 확대, 무상보육시설 확대, 차상위 계층을 위한 장기저리 재산형성 자금 지원을 제시한다.
2. 무너져버린 벤처의 꿈 : 저자는 대기업들이 모든 산업분야를 잠식하는 가운데 중소기업 발전의 토양이 전무함을 지적한 후 위기를 가중시키는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개편하여 벤처기업을 육성해야 함을 주장한다.
3. 거꾸로 가는 부자 정책 : 소득세와 법인세 감세, 상속세 인하 등 친재벌, 친부자 정책의 현황을 지적한다.
4. 로또, 마지막 희망 티켓 :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로또’라는 희망마저 20억원(당첨금 한도)으로 제한되는 현실은 실업율과 이혼율, 범죄율과 자살율을 끌어올리고 있음을 지적한다.
 
3부.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 21세기 들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탈바꿈해야 하는 한국은 사람들의 의식이 선진국 수준으로 바뀌지 않고서는 더 이상 경제가 앞으로 나갈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가진 자의 의무’와 ’서로 나누는 노와 사’, ’신뢰와 포용의 사회 문화’와 ’국가의 일 : GLP(Great Living Place)를 만들자’를 제안한다.
  
저자의 요지는 결국 단순히 국가의 부(富)가 늘어나거나 GDP와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사실 만으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며, 아무리 부자 국가라 하더라도 그 국민 중 소수만이 풍족함을 누리고 대다수 국민은 가난에 허덕인다면 그 나라는 여전히 후진국임을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한국전쟁 직후의 절대적 빈곤 상태에서 기적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지만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양극화는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저소득층 비율이 1990년 7.6퍼센트에서 2007년 14.4퍼센트로 거의 두 배나 늘어난 수치는 이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무한경쟁과 불공정 경쟁, 학벌주의, 대기업 위주의 경제 정책, 가진 자들의 더 갖고 싶은 욕망은 한국 사회를 초양극화로 치닫게 하고 있으며 ‘부의 대물림 현상’은 이제 익숙한 말이 되고 있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제 단순히 국가의 부를 늘리거나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 이전에 급속한 경제성장이 초래한 부작용, 즉 초양극화와 사회 분열을 치유해야 하며, 그 한 방법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칼레 시민의 정신’을 강조한다. 서민보다는 부자가,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이,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이 먼저 나서서 모범을 보이고 자신이 더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주는 정신과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사회의 대부분 중산층과 서민들의 고충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4대 지옥', '4가지의 개미지옥'이라는 개념을 통해 한국 사회의 초양극화와 구조적 문제를 정확하고 적합하게 드러내고 있다. 비록 불공평한 소득 분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데 부족함이 있지만, 따듯한 마음과 변화를 바라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는 한국의 역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사회 통합과 공동체 정신에 필요한 개념을 강력하게 주문하는 자신감도 보여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가진 자들만이 지녀할 자세는 아닐 것이다. 중산층이라 하더라도 자신보다 자산이나 소득이 적은 사람이 주변에 수 없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 정신은 모두가 발휘할 수 있는 것이며, 지금도 많은 이들이 시민단체 등을 통해 그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문제는 시민단체를 통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뿐 아니라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직장과 조직에서, 국가정책으로 드러나는 정치행위에서 구체적으로 발휘해야 할 정신인 것이다. 
 
* 책 속의 문장 :  
- 우리 사회 전체가 괜찮은 일자리를 향해서 만 달려갈 때 생기는 악순환, 개미지옥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진정한 창업가가 배출되지 못하는 왜곡된 구조다. 대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창업가를 양성하지 못하면 일자리가 늘어날 여지가 없다. 그러면 취업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개미지옥은 더 악화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깨뜨려야 한다. (p.63)

- 그 동네에 살던 사람이 다들 부자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빈민촌이 사라졌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그 뉴타운의 입주자들은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다. 원래의 입주자들은 모두 어디론가 떠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안을 채우고 있다. 예컨대 길음 2지구의 경우 개발이 완료된 시점의 원주민 재정착률이 10.3퍼센트에 불과하다. 원래 살던 사람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면 도대체 뉴타운을 개발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또 그 뉴타운이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을까? (p.63)

- 40~50대는 수명 연장의 꿈을 왜 불안감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그들 모두가 노후 대비가 안 돼서일까?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다. 나름대로 국민연금이나, 사적연금도 조금씩 가입해 두었다. 퇴직금도 얼마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만에 하나 불행한 사태가 생긴다고 해도 정부가 지켜준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에서 90세까지 사는 것은 노년의 행복이 아니다. 60세까지 열심히 배우고 일한 사람이면 나머지 30년 인생은 즐기면서 마무리할 권리가 있는데 우리 모두는 노년에 대한 불안감으로 떨고 있다. ‘90세까지 살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 말이다. (p.96)

-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에 맞물려 돌아갈수록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 인도와 경쟁하는 저임금 노동집약적 산업에서는 저임금 일자리밖에는 만들어내지 못한다. 또한 그들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업에서도 저임금 일자리만 양산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성장하고, 또 그만큼 일자리의 수는 늘어나는데, 괜찮은 일자리는 줄어만 가고 저임금에 허덕이는 ‘워킹 푸어’들만 양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워킹 푸어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윤택한 생활을 향유하도록 하려면 선심성 공약 만으로는 안 된다. 시장이나 둘러보는 서민 행보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비록 쥐꼬리 만한 월급에 의지해서 어렵게 살아가더라도, 작은 부에 대한 희망의 끈은 놓치지 않고 내일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 (p.119)

- 우리나라에는 부자는 있으나 제대로 된 상류층 또는 지도층이 없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상류층이나 지도층이 되는 건 아니다. 잘살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 사항이지만, 잘산다는 것이 가진 것이 많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 마음을 나누고 배려하며 더불어 사는 것이 진정으로 잘사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소수만이 부자가 되는 것은 잘 사는 길이 아니다. 탈법적이고 불법적인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부를 축적하고 또 그것의 대물림이 일반화된 것도 좋은 사회는 아니다. (p.184) 
 
[ 2011년 5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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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책을 읽다보니 주변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과거에는 나 역시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1년에 10권이 채 되지 않는 정도의 책만 읽었는데, 대부분 밥벌이에 필요한 책이나 베스트셀러, 또는 주변 지인들이 추천하거나 선물하는 책만 읽고 말았다. 책을 본격적으로 가까이하게 된 처음 계기가 무슨 거창한 '진리'를 탐구하려 하거나 '공부'를 통해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우주를 이해하고자 한 것도 아니었다.
 
약 9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사업을 크게 벌였는데 5년 정도 진행하거나 손실과 부채가 감당할 수 없게 늘어나 포기하게 되는 과정에서 그동안 가까웠던 비지니스 파트너들과 크게 분쟁이 벌어졌다. 술도 마시지 못하고 유흥과 오락에도 큰 취미가 없었던 내가 좌절하거나 미치지 않으면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것도 미친듯이... 그랬기 때문에 처음 고른 책도 인문학이나 경제경영 분야가 아니라 자연과학이나 소설이었다.
 
1년 정도 자연과학과 소설을 중심으로 책을 읽다보니 스스로 차분해질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책 읽는 습관도 만들어져서 분야를 조금씩 넓혀갔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서평이나 독후감, 널리 인정받는 책, 존경할 만한 분들이 추천하는 책 등 자연과학과 소설 뿐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경제경영 등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독서가 생활로 자리잡으면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사회나 국가 인류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등 드디어 '진리'에 대한 '공부'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고 작년 3월 법정스님이 돌아가신 후 스님의 유고집 중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다가 스님의 정신과 세계관이 알고 싶어졌다. 그 이후 여름부터 법정스님 유고집을 차례로 읽기 시작했고 스님의 <내가 사랑하는 책들>에 들어있는 책을 순서대로 읽기 시작하면서 내 나름대로 독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부족하지만) 나름 열심히 책을 읽어온 가운데 내가 깨달은 점은 아직도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과 평생에 걸쳐 '책 읽기'를 죽을 때까지 계속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 책은 지난 달 공부모임 진행 중 한 여성 참석자로부터 소개받았다. 지난 주 공부모임 세미나 교재가 장회익 교수의 <공부의 즐거움>과 장회익, 최창덕 교수의 <이분법을 넘어서>였는데 이 책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별도로 읽게 된 것이다. 
 
지난 1980년 대에 한국사회에는 '전쟁같은 노동'이라는 시구와 노래가사가 있었다. 성장과 개발만을 전국가와 국민의 구호로 삼아 숫자와 규모와 덩치만 키우던 개발독재 대한민국은 1960~1980년 대에 노동자를 '노예'처럼 다루고 착취해왔던 것이다. 21세기 들어 '전쟁같은 노동일'이 한국에서 100% 사라졌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20세기 말부터 왜 우리 어린 학생들은 '전쟁같은 공부'를 하고 있는가? 성적과 시험공부에 스트레스 받은 중,고등학생들이 꾸준히 자살하는 가운데 이제는 카이스트 대학생 마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생로병사에 대한 통찰력을 일깨워주지도 않고 독서를 장려하지도 않는다. 우리 학생들은 존재의 근원이나 행복의 조건, 개인과 사회와 민족과 국가와 세계의 연관관계, 자연과 우주의 진리, 올바른 삶이나 도덕적인 삶에 대한 고민에 대해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 하나? 그리고 왜 '공부'는 '학교' 다닐 때에만 하는 것이고 '졸업'하면 공부에 담을 쌓는가?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하면 그 순간부터 이 세상에 대해 모두 알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필요하지 않은 것인가? 도대체 우리는 왜 살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그런 질문과 문제의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1부. [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에서 현대 국가체제의 옹호자들과 학교가 '공부'에 대해 퍼트린 거짓말을 폭로한다. 학교가 사회에 제도로써 설립된지 200년 남짓할 뿐이다.(한국의 경우 겨우 60년 정도) 그 이후 학교는 '공부'를 독점하였고 학교가 내세우는 세 가지, 즉 '공부는 때가 있다', '독서는 공부와 별개다', '창의성만 있으면 된다'가 거짓말임을 밝혀낸다.
 
2부. [고전에서 배우는 '미-래' 공부법]에서 파괴되고 짓밟혀진 '공부'를 제대로 일으키기 위하여 저자는 '새로운 지도'를 그리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앎의 꼬뮌'과 '암송과 구술',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이다. 암송과 구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공부에 어떤 변화와 힘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고전에 대한 독서가 학생들과 사람들의 삶을 풍족하게 할 것임을 알려준다.
 
3부.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라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에서 공부를 위한 스승과 친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돈과 출세 등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은 공부가 아니며, 일상의 모든 순간을 앎의 자원으로 삼는, 삶을 위한 공부가 참다운 공부라고 말한다.
 
저자는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공부에 대한 편견을 깨고 공부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정립해줌으로써 공부란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공부하는 것, 암송과 구술을 통해 소리로써 타인들과 공명하고 스승과 친구를 만나 함께 공부하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앎의 즐거움', '배움의 열정'에서 시작된 공부의 의미를 찾고, 무엇을 배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면서 배우는,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 것을 나누어 주며 함께 성장하는 공부의 목적을 알게 해줄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체험과 현재 운영 중인 사례를 바탕으로 이전과는 다른 공부의 의미, 실험적인 공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고전학교’를 비롯하여 ‘토요서당’, ‘일요서당’ 등의 청소년 프로그램 등 고전을 응용한 공부, 그와 함께 공부하는 사우(師友)들의 일상생활 공부를 풀어내 공부가 우리 삶에 기여하는 구체적인 현장 또한 보여준다. 
 
 
'공부'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접근법은 참신하고 의미가 있어 보인다. 저자를 통해 다시 한 번 제도교육의 문제점과 한계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향과 방법론 또한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직접 얼마나 접근하여 실천할 수 있는지는 나중에 검증되겠지만...
 
저자는 현재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학과 교실의 붕괴', 사교육의 기승, 교육당국의 무능, 학보무들의 본능, '공부'에 대한 왜곡된 사회문화의식과 현상 등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인간의 삶과 행복을 찾고 이루기 위해 학습과 공부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가능한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고 직접 실천하는 모습도 아름다워 보인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의무교육 제도에 의해 학교에 다닐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조건에서 저자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힘을 합하여 올바른 '공부'를 위해 제도권 밖에서 '꼬뮌'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라는 주장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도 들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위험한' 면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위험성은 '공부 만능주의'에 가까운 공부에 대한, 독서에 대한 과도한 강조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아는 만큼 행복하다'라고 말하지만 행복에는 '많이 아는 것'만이 지름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동양이나 서양의 고전 속에는 반드시 '지행일치'에 대한 내용이 있을 것이다. 공부의 내공이 높고 '썰을 잘 푸는' 사람이 꼭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강조하기 위해서 쓴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인생역전'이라는 단어는 심했다. 저자가 의도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은 일반 독자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그런 면에서는 책의 제목 - 공부의 달인 - 도 다분히 상업적으로 보인다.)
 
예로 부터 실천이 따르지 않는 배움과 학식은 자신을 망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도 망칠 가능성이 높고 한 나라와 민족도 망칠 수 있다. 한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일제시대와 해방 후, 군사독재 시대와 지금까지 고전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과연 올바른 삶, 행복한 삶을 살았던가 싶다. 오히려 공부를 많이하고 실천이 부족한 사람들은 일제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부정한 권력에 몸을 담아 민중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는데 앞장섰을 뿐이다. 즉, '아는 것이 힘'이 될 수 있지만, 그 힘이 선하고 올바르게, 참되고 모두에게 베풀어지려면 인간성과 세계관, 끝없는 자기 성찰과 실천이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공부나 앎보다 그런 것들이 앞서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공부와 독서와 '많이 아는 것'에 대해 장점만 강조할 뿐 단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 책 속의 문장 : 
- 10대와 60~70대가 함께, 지속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단연코 공부 밖에는 길이 없다. ... 노인은 원숙한 시야를 바탕으로, 청년은 젊음의 역동적 기운으로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면 된다. 그리고 일단 공부가 시작되면, 세대 차이는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버린다. 그러고 보면, 공부야말로 노화를 방지하고 노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 아닐까? (p.47)
 
- 스승, 도반, 청정한 도량으로 이루어진 앎의 '꼬뮌'. 꼬뮌이란 기성의 권력과 습속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집합체 혹은 네트워크를 말한다.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바로 그 꼬뮌에 접속한다는 뜻이다. 그럼 왜 그토록 스승을 찾아 헤매었던가? 스승을 만나야만, 그 '꼬뮌'에 접속해야만, 지리멸렬하던 공부가 단번에 도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p.81)
 
- 암송은 형식 자체가 집합적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지식의 사적 소유라는 주술에 걸려들지 않는다. 한두 사람이 튀는 것보다 다 함께 리듬을 타야만 즐거운 공부가 가능한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암속의 배치 속에선 뛰어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이 서로를 소외시킬 필요가 없다. (p.92)
 
- 그렇기 때문에 구술 능력은 리더쉽으로 연결된다. 사실 리더쉽의 많은 부분은 상황을 '언어화하는' 능력이다. 어떤 상황에서 그걸 하나의 주제로 엮을 수 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 때 그는 그 그룹의 지도자가 된다. 한번 주변을 살펴보라. 어떤 그룹이든 헤게모니를 장학하고 있는 이는 '썰을 푸는' 인간이다. (p.102)
 
-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고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자 매트릭스이기 때문이다. <주역>처럼 실제로 우주의 비의가 담겨 있는 것도 있고, [불경]이나 <성경>처럼 인간의 존재론적 물음을 탐구하는 것도 있고, <돈키호테>나 <열하일기>처럼 삶의 지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도 있다. 한 인간이 평생 겸험할 수 있는 시공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전이 있기에 그 협소한 시공간을 넘어 아득한 역사의 궤적을 조망할 수 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비전을 탐구할 수도 있다. (p.117)
 
- 고전이 말하는 공부법은 "인생의 순간들을 학습하고 지식, 기술, 경험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서로 도와주는 순간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망 형성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과제"(이반 일리히 <학교없는 사회>)라는 '탈학교'의 전망과 아주 행복하게 조우한다. (p.146)
 
- 돌이켜보면, 저 1970~80년대의 노동자들은 온갖 탄압과 고난 속에서도 책을 읽고 사유를 했다. (중략)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객관적 상황은 말할 나위 없이 좋아졌지만, 노동자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세계를 사유하지도, 변혁을 꿈꾸지도 않는다. 실존적 고뇌에 대해서는 잊은지 오래다. 그럼, 우리시대의 노동자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다만 노동조합의 일원이 되었을 뿐이다. 가족의 품에서 임금과 노동조건, 휴가를 얻기 위해 싸우는 평범한 중산층이 되었다. (p.200)
 
[ 2011년 5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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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미숙, 몸과 우주의 유쾌한 시공간 '동의보감'을 만나다
    from 그린비출판사 2011-10-20 17:11 
    리라이팅 클래식 15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출간!!! 병처럼 낯설고 병처럼 친숙한 존재가 있을까. 병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수많은 병들을 앓았다. 봄가을로 찾아오는 심한 몸살, 알레르기 비염, 복숭아 알러지로 인한 토사곽란, 임파선 결핵 등등. 하지만 한번도 병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다. 다만 얼른 떠나보내기에만 급급해했을 뿐. 마치 어느 먼 곳에서 실수로 들이닥친 불...
 
 
 
생태논의의 최전선
레베카 클로센 외 지음, 김철규 외 옮김 / 필맥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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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 기후변화, 식량부족, 삼림파괴, 동식물 멸종, 핵발전소 위기, 공진화 위기, 생태학적 패러다임, 지속가능한 사회, ...
이들은 20세기 중반부터 각종 언론과 논문, 정치가와 환경운동가들에게서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단어들이다. 인류가 자신들만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지구 생태계에 끼친 각종 폐해와 죽음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다행히 이미 지구 전지역에서 뜻 있고 양심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생태계 위기를 극복하고자 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으며,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유럽 등 선진국부터 개발도상국에 이르기까지 환경운동가들과 전문가들, 시민운동가들이 각종 생태계 위기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지구의 생태계 위기를 가져온 것이 특정 세력과 집단만의 문제일까? 탐욕에 굼주린 자본가들과 일부 정치, 언론, 사회, 종교, 문화의 상층 인사들만이 이 위기의 책임을 져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크기의 차이가 있고 전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지난 300년 정도의 인류사회의 전개과정이 지금의 지구 위기를 급속하게 가져왔다고 볼 때 어느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인류사회의 작동방식이 상호간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지금 가설을 세워본다면 아마 자본주의적 생존양식이, 즉 자본주의적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 도덕 등이 지구 위기의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달(4월) 21일 [평화나눔아카데미]의 다섯 번째 강연에서 강사로 나온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교수는 "기후변화시대, 그러나 재앙은 평등하지 않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하였다. 강연을 듣고 나서 생태학과 생태문제에 대한 관련 책을 찾던 중, 저자가 번역자로 참여한 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생태사회주의를 기본적인 관점으로 해서 환경문제 또는 생태문제에 내포된 정치경제적 맥락과 그 의미를 짚어본 것으로 세계의 3대 진보저널로 꼽히는 [먼슬리 리뷰 Monthly Review]의 환경문제 특집호에 실린 글들을 번역해 엮은 것으로, 책에 실린 글들의 기본적인 관점은 '생태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생태사회주의'는 환경문제의 발생과 확산, 심화를 인간이 자연과 자본주의적 관계를 맺은 결과로 설명한다. 총11장으로 구성된 이 글들은 환경문제를 유발하는 근원은 '끊임없는 경제성장 추구'에 있으므로 이것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한 환경문제의 해결을 어렵다고 단언한다. 자본주의와 환경위기의 연관성 및 체제이행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동시에 다양한 환경문제 가운데 특히 기후변화, 에너지, 농업, 물과 관련된 쟁점을 중심으로 환경문제의 본질과 환경문제에 대한 기존의 대처방안들을 비판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구의 생태문제에 대한 논의가 어느 지점까지 와있고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1~3장(1장 [생태, 그 결정적인 순간], 2장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과 생태], 3장 [균열과 전환: 환경위기의 뿌리 찾기])은 환경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왜 자본주의 체제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해준다. 이 책의 이 부분은 특히 최근 진보적 생태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간사회와 자연환경 사이의 물질대사(metabolism)'라는 개념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우리에게 어떤 전망을 열어주는지를 알게 해준다. 이 물질대사는 스티븐 슈나이더가 <실험실 지구>에서 제시한 '(지구생태계의)공진화' 개념과 유사하다.
 
저자들은 인류가 중대한 생태적 문턱을 넘어서고 있어 머지 않아 여러가지 '티핑 포인트'에 이를 것이로 예상되며, 이로 인해 환경주의자들 사이에 절박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생태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혁명적인 해결책이 요구되지만 기존의 사회체계에서는 결코 혁명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생태문제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에서 핵심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본다.
 
4~9장은 쟁점이 되고 있는 몇 가지 주요 환경문제를 하나하나 점검한 글들이다. 여기서 다뤄지는 환경문제는 기후변화(4장 [기후변화, 성장의 한계, 사회주의]), 석유정점(5장 ‘[유정점과 에너지 제국주의]), 대안의 에너지원으로 선전되는 액화천연가스(LNG)와 바이오연료가 갖고 있는 문제점(6장 [액화천연가스와 화석자본주의]와 7장 [바이오연료의 정치경제학과 생태학]), 생태위기와 농업의 관계(8장 ‘[계사적 시각에서 본 생태위기와 농업문제]), 수산업 등 자본주의적 경제방식에 따른 바다의 오염과 퇴화(9장 [바다의 위기: 자본주의와 해양생태계의 악화]) 등이다. 여기서는 특히 대기 중 온실가스 축적과 기후변화에 관한 각종의 시나리오에 대한 평가와 석유정점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미국의 LNG 산업이 갖고 있는 생태제국주의적 성격에 대한 서술과 바이오연료를 둘러싼 신화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있다. 또한, 이른바 ‘농업혁명’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에 대한 분석과 해양생태계 훼손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10장 [인도의 수자원 위기: 근대적 대형 댐의 정치학]은 인도에서 전개돼온 대형 댐 건설사업의 문제점을 들여다 보았, 11장 [푸른 협약: 대안적인 물의 미래]는 물에 대한 권리를 인권의 차원에서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보장하는 국제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글이다. 이 두 글은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대운하사업 또는 4대강 정비사업 등과 관련해 우리에게 많은 사례와 시사점을 제공한다. 
 
결국 이 책의 종합적인 결론은 환경문제 등 제반 생태문제를 유발하는 근원은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요소이자 자본주의의 본질적 존재원리인 '끊임없는 경제성장 추구'"에 있으므로 이 것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한 문제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생태문제에 대한 자본주의적 해법이란 대개 "기술적 처치나 개인적 행위의 변화를 통해 지구생태계에 대한 경제의 영향을 완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할 따름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또 다른 생태 문제"를 낳을 뿐이라는 것... 저자들은 결국 생태사회주의를 위한 노력과 투쟁을 통해 생태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임을 주장한다.
 
저자들이 현재 전지구적으로 수 많은 이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싸우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무의미하다거나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저자들은 현재 진행되는 무수한 환경,생태운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뫼비우스의 띠처럼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지금의 노력과 결실들이 모아지지 않으면 어떤 미래도 만들어 갈 수 없을 테니까...
 
이 책의 문제의식은 법정스님이 남긴 글과 이반 일리히의 <성장을 멈춰라>, 쓰지 신이치의 <슬로 라이프>와 아메리카 인디언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 후손들과 미래 세대들을 위하여 열린 가슴과 머리로 계속 고민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 책 속의 문장 :
- 오늘날의 환경주의는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엄청난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경제시스템을 문제 삼지 않고, 주로 지구의 생태에 대한 경제의 영향을 줄이는 데 필요한 조처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가 ‘환경문제’라고 부르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정치경제의 문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기존의 경제적 시도들은 그 가운데 가장 대담한 것조차도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요구되는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 (p.21~22)

- 자본주의가 자연을 자원 조달처와 쓰레기 배출처로 과도하게 이용하는 것이 결국은 자원 조달처로서의 자연과 쓰레기 배출처로서의 자연 둘 다를 훼손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으며, 그 부정적인 결과는 처음에는 단지 지역 차원에서 나타나지만 나중에는 기후 자체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세계와 지구 전체의 토대를 해치게 된다. (p.27)

- 지배적인 경제적 세력들은 사회를 크게 변혁하지 않고도 자본, 기술, 시장을 이용해 모든 위협을 다 막아낼 수 있다고 우리에게 장담하면서 기회포착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지구적 기후변화를 완화시키기 위한 수많은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농작물연료와 핵에너지도 포함되고, 탄소를 포획해 땅속에 격리시키는 새로운 석탄화력발전소도 포함된다. (p.52)

- 자본주의 체제가 손상되지 않고 유지되는 한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은 개인적인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그리고 중상층 환경주의자들의 희망과는 반대로 작동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진짜로 양심적인 환경주의자라면 생태적 지속가능성에 헌신하든가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체제에 헌신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 조만간 올 것이다. (p.83)

- 지난 10년 동안 종종 치열하게 벌어진 석유정점 논쟁은 이제 두 가지 기본입장으로 좁혀졌다. 하나는 ‘이른 정점론자들(early peakers)’(석유정점 주창자들이라고 하면 보통은 이들을 가리킨다)의 입장이다. 이 입장에 선 분석가들은 석유정점이 아마도 2010~12년에 올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어쩌면 2005~06년에 이미 석유정점이 왔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는 ‘늦은 정점론자들(late peakers)’의 입장이다. 이 입장에 선 분석가들은 2020년이나 2030년에 가서야 세계가 석유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p.103)

- 부시 행정부가 2006년에 옥수수를 이용한 에탄올 생산을 장려하는 등 대체연료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도 바로 휘발유의 가격과 국가 에너지안보에 대한 불안,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 석유정점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2007년의 통계를 보면 미국에서 생산된 옥수수 가운데 20%가 자동차 연료로 사용될 에탄올을 생산하는 데 쓰였다. 이런 움직임이 부분적인 이유로 작용한 결과로 세계적으로 곡물가격이 급등했다. (p.110)

- 미국의 새로운 에너지 제국주의는 이미 전쟁확대로 귀결되고 있다. 워싱턴이 기존의 자본주의 경제를 보호하고 미국의 패권이 쇠퇴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전쟁은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시먼스는 이렇게 경고했다. “만약 에너지에 대한 우리의 내재적 수요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잠재적 격차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가장 추잡하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다. 나는 문자 그대로의 전쟁을 말하는 것이다.” (p.117)

-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만족할 만한 식량이 공급되기 전에는 농지를 연료생산을 위한 작물재배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현재 67억 명인 세계인구가 이번 세기 중반까지는 90억 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모든 농지가 다 식량생산을 위해 이용돼야 하며, 단위면적당 생산되는 식량의 양이 증가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p.164)

- 2000년의 통계를 보면 8,000만 톤의 물고기를 잡기 위해 130억 갤런의 연료가 사용됐고, 그 과정에서 약 1억 3,4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됐다. 이는 세계의 어업이 식품으로 공급한 단백질 에너지보다 12.5배나 많은 연료 에너지를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3쪽)  
 
[ 2011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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