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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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국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처음 프랑스에서 출판된 후 7개월 만에 200만 부를 돌파하여 프랑스 사회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맞섰던 레지스탕스 투사이자 외교관을 지낸 93세 노인이다. 그가 이 책에서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분노’이다. 저자는 전후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반세기 만에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가 처한 작금의 현실에 ’분노하라!’고 일갈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 등에 저항할 것을 주문한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인권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가 기꺼이 힘을 보태라는 뜨거운 호소다.

[분노하라]의 원서는 표지 포함 34쪽의 소책자다. 이 책의 출발은 나치에 맞섰던 레지스탕스의 성지(聖地) 글리에르 고원이었다. 저자는 2009년 ’레지스탕스의 발언’ 연례 모임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젊은이들에게 ’분노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즉흥 연설을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앵디젠 출판사의 편집인들(실비 크로스만, 장 피에르 바루)은 깊은 감명을 받았고, 곧장 에셀에게 달려갔다. 이 책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이 프랑스 사회에 던진 충격은 대단했다. 2010년 10월 초판 8,000부를 찍어낸 책은, 불과 7개월 만에 200만 부가 팔려나갔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출판사로 저자 인터뷰와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프랑스 언론은 100년 전 <드레퓌스 사건>으로 프랑스의 인권 문제를 제기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에 버금가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흥분했다.

2010년 프랑스의 현실은 한국에 비해 거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법, 언론, 학계, 교육, 복지 등 모든 부분에서 한국의 수준을 뛰어넘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프랑스의 ’민주주의’를 조금 위협하는 상황에서 93세의 노인은 쉬고있던 집에서 박차고 일어나 프랑스 국민들에게 ’분노하라’고 외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상황인가? 저자의 시각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한국의 사회 전반적인 상황은 ’분노’를 넘어 참여와 행동으로 나가도 한 참 나갔어야 할 상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프랑스에 ’레지스탕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87년 6월 항쟁’이 있다. 비록 ’레지스탕스’에 조금 모자란다고 비웃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감히 주장할 수 있다. ’87년 6월 항쟁’이 침몰하는 ’대한민국호’를 살려냈고 한국의 사회 각 분야에 민주주의와 국민의 권리를 되찾기 시작한 계기라고... 
 
---------------------------  * 저자 스테판 에셀은 누구인가 ? -----------------------------------
1917년 독일 출생. 유대계 독일인 작가인 아버지, 화가이자 예술애호가인 어머니는 트뤼포의 영화 [쥘과 짐](Jule et Jim)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7세에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하여 20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1939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 선배 사르트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으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입대한다.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해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하다가 1944년 파리에 밀입국해 연합군의 상륙 작전을 돕던 중 체포된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으나 극적으로 탈출한다. 전쟁이 끝난 후 외교관의 길을 걷는다. 1948년 유엔 세계 인권 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하고,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 등을 역임한다. 퇴직 후에도 인권과 환경 문제 등에 끊임없는 관심을 갖고 사회운동가로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세기와의 춤](1997), [국경 없는 시민 - 장 미셸 엘비그와의 대화](2008), [참여하라 - 질 반데르푸텐과의 대담](2011) 등이 있다. ----------------------------------- 
 
그렇다면 이 책의 무엇이 프랑스인들의 심장을 뛰게 만든 것일까? 프랑스 [르몽드] 지는 서평 1면에 ’전달의 몸짓으로서 더욱더 관심을 끄는 책’이라고 이 책을 소개했다. 레지스탕스의 노투사의 호소가 21세기의 젊은 세대에게로 70년 전 레지스탕스 정신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1943년 프랑스의 주요 레지스탕스 단체들은 반나치 투쟁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프랑스 레지스탕스 평의회’를 결성했다. 이 평의회에서는 1944년 3월 15일 프랑스 해방에 대비하여 새롭게 구성될 정부의 개혁안을 채택했다(본문 40쪽). 에셀은 이 개혁안이야말로 "자유 프랑스가 지켜나갈 원칙과 가치, 곧 프랑스 현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가치"였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이 시기에 구축된 것이 사회보장제, 퇴직연금제도, 공공재의 국영화, 대재벌의 견제, 언론의 독립, 교육권이었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레지스탕스가 얻은 성과가 토대부터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퇴직연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의 기존 성과를 새삼 문제 삼는 사회"가 그의 눈에 비친 오늘날의 프랑스다. 저자는 선대 레지스탕스들이 나치에 저항하여 싸웠던 것처럼 젊은 세대가 "이런 모든 일들에 암묵적인 찬동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분노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레지스탕스의 동기는 ’분노’였다고 규정했다.

에셀은 이 책에서 "분노하라!"고 외치고 있지만 그의 본의는 "참여하라!"다. 그는 자신에게 "분노의 이유들은 어떤 감정에서라기보다는 참여의 의지로부터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는 현대 사회로 오면서 분노의 대상을 찾기가 매우 힘들어졌다는 점은 인정한다. "분노의 이유가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덜 확실해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일 수도 있다. 누가 명령하며, 누가 결정하는가." 자신이 나치와 싸울 때처럼 투쟁 대상이 명확하지 않음은 이해한다는 것. 그렇더라도 그는 "이런 세상에도 참아낼 수 없는 일들"이 있으며, 각자 분노할 대상을 찾고, 그 분노를 밑거름 삼아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집시들을 추방하는 프랑스 정부의 야만, 자본에 종속된 언론, 가자 지구를 포격하는 이스라엘 정부가 그 예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나쁜 태도라고 나무란다.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란 우리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인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에셀이 ’분노’와 ’참여’를 말할 때, 그것은 폭력적 봉기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비폭력이라는 길을 통해 인류가 다음 단계로 건너가야" 하며,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로 든 인물들은 넬슨 만델라와 마틴 루터 킹. 이렇게 보면 그는 평화주의자에 가깝다. 물론 그도 사르트르처럼 우리가 폭력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은 수긍한다.
"자신이 지닌 무기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우월한 무력적 방법에 의해 점령당한 쪽의 입장에서 보면, 민중의 반응이 꼭 비폭력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어떤 타격도 주기 힘든 로켓포를 끝내 이스라엘군에 발사한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몸짓’을 이해 못할 행위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테러리즘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폭력으로는 어떤 희망적인 결과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에셀이 여기서 말하는 비폭력이란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정복하고, 타인들의 폭력성향마저 정복하는 적극적인 행위로서의 비폭력이다."(p 27~34) 폭력적인 희망이란 없다." 이것이 폭력으로 얼룩졌던 20세기의 8할을 살아낸 인물의 결론이다.    
 
한국 사회는 어떨까? 비정규직 비율 세계 최고, 청년실업, 갈수록 커져만 가는 빈부 격차,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급감하는 출산율, 치솟는 생활물가와 대학 등록금....... 이것이 프랑스보다 분노할 게 훨씬 더 많은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이 책의 한국어판 추천사를 쓴 조국 교수는 이 소책자가 한국 사회에도 큰 메시지를 던진다고 말한다. "1970~1980년대 (......) 민주화운동의 기본 동기는 실로 분노였다. (......) 당시 우리는 무엇을 꿈꾸었는가.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대통령,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등 대표자를 직선으로 뽑는 것, 시민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 야당과 자유로운 언론의 존재가 보장되는 것, 국가권력이 시민의 인권을 자의적으로 박탈하거나 제약하지 못하게 하는 것 등이 당시 우리들의 절박한 꿈이었다."(p.72~73)

우리에게도 4·19 민주항쟁, 5·18 광주민중항쟁, 그리고 6·10 민주항쟁처럼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분노의 역사가 있다. 긍정적인 ’분노’란 시대를 건강하게 지켜줄 수 있는 힘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그리고 지금도 우리 사회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도저히 권력자의 오만을 두고만 볼 수 없을 때 시민들은 촛불시위의 형태로 분노를 표출했다. 분노 유전자는 우리 몸속에 흐른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저자의 마지막 문장이다. 청년시절 나치에 분노했고, 그 분노의 힘으로 역사의 한 흐름에 참여하는 운동가가 된 에셀. 그는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이 분노와 변혁의 중심에 설 것을 주문한다.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輕視),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대량 소비’와 ’지나친 경쟁’을 경고하는 저자의 외침이 결국 지구 전체 구석구석을 침투하여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 하다.
 
 
’분노(憤怒)’라는 단어를 보면 학생시절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1980년대 당시 우리 세대들은 선배건, 동기건, 후배건 간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분노’할 수 밖에 없는 일은 끝이 없었다. 일제 앞잡이들이 한국현대사를 주물렀던 역사에 대해, 군화발로 시민들을 학살하고 국가권력을 찬탈한 정치군인데 대해, 소련/중국과 대결하기 위해 한국을 자신들의 동북아 군사전진기지 겸 식민지처럼 삼아 광주학살에 동참한 미국에 대해, 노동자와 농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재벌과 ’가진자’들의 배를 부르게 해주는 정부관료에 대해, 아무런 양심과 자책 없이 목숨을 연명하는 지식인들에 대해,...
 
소위 ’486세대’가 1980년대 군사정권과 목숨을 걸고 대학생이라는 기득권을 걸고 싸울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동력은 조국과 민중에 대한 애정과 아픔, 새세상에 대한 희망도 있었지만 가슴 밑바닥에는 모두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분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쌓이고 시민들도 함께 하면서 ’87년 체제’를 수립하는데 도움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분노’와 열정은 어설펐고 제도적이거나 장기적이지 못했다. 우리 세대들은 1987년 항쟁의 열기가 지나고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양김’이 분열하면서 급속하게 사그라졌다.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직선제’와 몇 가지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만 이루어 놓은채 다시 ’자신의 기득권’을 향해 나아갔다.
유럽의 ’68세대’들처럼 80년대 세대들은 그 ’분노’와 적극적으로 실질적 민주주의로, 경제 민주화로, 사회문화 등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정치권을 비난하고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으로 자기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해 버렸다. 우리는 해방 후 40년 동안 한국을 망쳐놓은 온갖 과거사를 바로잡고 부정,부패,불법,불의한 세력을 일소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미래를 기약하면서 조직적으로 그 구조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결과는 그 뒤 10년 동안 정치계, 경제계, 언론계, 관료계, 법조계, 학계 등 각 분야에 진보와 민주주의를 심지 못했고 소중하게 얻은 결과물을 함량미달의 정치인들이, 탐욕스러운 재벌들이, 저널리즘도 모르는 조중동이, 보신주의와 무책임성으로 일관하는 관료들이, 자신들이 잘난줄 만 아는 법조인들이, 본분도 모르는 학자들이 가져가도록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요구에는 아랑곳 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바빴고 재벌과 경제인들은 탐욕을 주체하지 못했고 관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결국 그 10년의 결과는 정치에서는 ’보스정치’와 ’명사정당’의 확대재생산을, 경제에서는 IMF를, 언론에서는 조중동의 ’언론권력화’를, 관계에서는 ’극심한 관료주의’를, 법조계에서는 ’검찰권력’을, 학계에서는 부패하고 무능한 학자와 교수들을 양산했다.  
  
 
그나마 이룩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1997년과 2002년에 극우, 보수, 기득권 세력의 대표가 아닌 김대중 전대통령과 노무현 전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기여했다. 그나마 그것도 아주 어렵게 만들어야 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김종필이라는 보수반동 세력과 노무현 전대통령은 정몽준이라는 재벌, 기득권 세력과 손을 잡아야 했다.
그리고 80년대 세대와 그 전후 세대들, 노동계와 농민계, 빈민계와 여성계는 뿔뿔히 흩어져 각각 개별적인 단체와 정당을 조직하였고 자본과 기득권세력의 공세에 대응하는데 급급하기만 하였다. 기층 민중들과 시민들을 광범위하게 결집하지 못한 정당과 시민단체는 80년대에 만들어낸 소중한 권리를 20년 동안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고 국민들은 계속 양극화와 소득감소, 부동산 버블, 사교육 확대, 물가상승 등 수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한국의 헌법 체계에서 국민들, 민중들의 일상사와 주요 이해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국가의 권력과 의사결정 구조다. 즉, 정치에서 멀어질수록, 무관심할수록 국민들, 민중들은 더욱 고통받을 수 밖에 없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진보개혁세력의 대변자라고 생각한 것은 우리의 착오였고 자기기만이었다. 수 천년의 인류 역사는 "조직되어 상호작용하지 않는 사람은 대변자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두 분이 한국에서 1,2위를 다투는 정치지도자였다고 인정하더라도 그들 역시 부족한 부분이 있고 잘못한 것도 많다. 특히 정치조직, 시민조직과 호흡을 함께하지 않은 것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다시 말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국민들의, 민중들의, 486세대의, 노동자와 농민의 대변자가 되기 위해서는 같은 정치조직 안에 함께 묶여 있어야 했고 강력한 시민조직의 견제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유언이다시피 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는 절반은 맞고 절반을 부족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틀린 부분은 시민은 아무리 많이 조직되어도 스스로 국회에서 법령을 만들거나 바꿀 수 없고 정부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조직과 시민조직을 함께 발전해야 하고 서로 긍정적인 작용을 하며서 필요할 때 견제해야 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 책 속의 문장 :
-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레지스탕스 운동의 백전노장이며 ’자유 프랑스’의 투쟁 동력이었던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그 이상(理想)들을 부디 되살려달라고, 전파하라고.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고. 정치계·경제계·지성계의 책임자들과 사회 구성원 전체는 맡은 바 사명을 나 몰라라 해서도 안 되며, 우리 사회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국제 금융시장의 독재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p.15)
 
[ 2011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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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 - 양장본
앤서니 기든스 지음, 한상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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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의 정치학>과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에 이어 세 번째로 기든스의 저작을 읽었다. 출판 시기와는 정반대로 읽은 셈이다. <제3의 길>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은 이번에 알았다. 그동안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제3의 길’이라는 것을 내세웠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이 이라크 전쟁 등 미국의 대외정책에 늘 동참했다는 사실과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예를 들어 ’부시의 애완견’같은...) 때문에 블레어 총리에 대해서는 호감보다 반감이 많았다.
 
역자인 한상진 교수는 이 책이 ’학문적인 저술’이라고 규정하면서 독서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제3의 길’이 과거에도 논의된 적이 많기 때문에 개념의 구조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기든스는 과거에 ’제3의 길’을 주창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것으로 애기하고 있다. 다만, 기든스가 다른 점은 고전적 의미의 좌우대립을 극복하고 인류 문명의 새로운 도전으로 ’세계화(Globalization)’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고함으로써 종래의 ’제3의 길’과 다른 세계주의적(Cosmopolitan) 민족, 정치, 담론, 정체성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의 단점은 무엇일까?
둘째는, 이 책을 기든스의 전체 저술과 연관시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든스는 1970년부터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미국의 하버드 대학, 버클리 대학, 스탠퍼드 대학에서 가르친 바 있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주요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했다. 기든스는 ’구조화 이론(Structuration)’으로 명성을 얻었고 ’현대성(Modernity)’를 둘러싼 서구의 논쟁에서 독보적 위치와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30년 간 30 권의 저서를 출판했고 많은 주제를 다루었다. 이 책은 거시적인 문제를 보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즉, 좌우 이념의 대립을 넘어 실사구시의 관점에서 국가와 경제, 시민사회의 관계를 탄력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셋째는, ’제3의 길’을 오늘의 서구사회의 변동에 접목시켜 이해하는 방법이다. 서구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역사적 대타협을 통해 복지국가의 길을 가고 있었으나 1970년대 들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누적되는 국가의 재정 적자, 비대해진 국가 관료제, 시민사회 기능의 약화, 국민의 노동 의욕 감소, 국가 경쟁력 하락 등이 그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경쟁과 효율, 개인의 선택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세력을 얻게 되었다. 서구 복지국가가 위기에 빠진 이유 중에는 금융을 핵으로 하는 경제의 세계화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변화된 현실에 대한 새로운 대응이 바로 이 ’제3의 길’이었다.
넷째는, ’제3의 길’을 한국사회에 적용하여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 네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제3의 길’이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있다면 누가, 어떻게 ’제3의 길’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서구처럼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이 없더라도 ’제3의 길’을 요구하는 역사적 경험은 한국사회에도 필요하다. ’제3의 길’이 한국사회에 특히 필요한 이유는 한국사회에 여전히 고질적인 좌우 이념 대립, 지역 대결 구도, 노사간의 갈등과 반목, 세대나 남녀간의 불신,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는데 ’제3의 길’을 둘러싼 논의가 크게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기든스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살펴보겠다. 이 책은 서문과 결론, 그리고 5개 장의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 기든스는 1970년대 말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복지에 대한 합의’의 파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불신, 그리고 이런 현상들을 불러일으킨 매우 중대한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변화로 인해 사회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실천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사회민주주의가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고 더욱 발전할 수 있음을 믿는다고 선언하면서 그렇게 되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여태껏 해온 것보다 더욱 철저하게 기존 견해를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기든스는 1980년대 들어 보수당과 대처는 자유시장의 기치를 내세워 영국사회 전체의 변화를 강하게 촉진하면서 20년 넘게 영국 정치를 지배했음을 재확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당은 구좌파의 견해만 반복하면서 패배를 자초했다고 평가한다.
 
제1장. [사회주의와 그 이후] 기든스는 소련의 멸망과 해체로 ’사회주의의 사망’했음을 선언한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이론은 늘 자본주의가 쇄신하고 적응하여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과소평가했다."(p.36) (저자 스스로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현대성’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개발하고 수정하면서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와 변화,발전한 ’사회주의 이론’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내 자세한 입장은 여기에 풀어내기는 어려우며, 단지 소련의 멸망을 도식적으로 ’사회주의의 사망’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싶다.)서유럽에서는 사회주의가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념으로 변화하여 잔류하였고 전후 30년 동안 정치이념과 정치세력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채 ’복지국가 시스템’을 중심으로 정체하면서 1980년대 들어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기든스는 비교표를 통해 구식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원리의 비교한다.(기든스는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특징을 잘 비교하고 있음에도 철학적, 이념적 배경과 내용, 그 과정에 대해서는 깊게 분석하고 있지 않다. 어쩌면 유럽 사회 대부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기든스와 비슷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980년 이후 유럽 사회의 경제구조와 인구구성의 변화, 민중들의 태도와 입장의 변화, 정치적 지지 구조가 변하였음을 지적하면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최근(1990년대 후반기)의 토론을 소개한다. 사회민주주의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제2장. [다섯 가지 딜레마] 기든스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에서 크게 부각된 ’다섯 가지 딜레마’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범세계화(globalization)’, ’개인주의(individualism)’, ’좌파와 우파(left and right)’, ’정치적 행위체(political angency)’, ’생태적 쟁점들(ecological problems)’이다.
’범세계화’가 경제적 상호 의존 뿐만 아니라 통신 혁명과 정보기술 확산, 사람들의 생활에서 시간과 공간의 변형에 관한 것이기도 함을 지적한다. 그것은 새로운 초국가적 체제와 세력을 창조하면서 동시에 특히, 선진국에서 일상 생활과 제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기든스는 세계화 확대, 심화를 위해 주체적으로 작동하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에 대해서는 철저히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주의’는 단순한 시장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범세계화의 충격에 수반되는 현상이며, 부분적으로는 ’복지사회’가 창출한 바로 그 풍요의 결과로서 생활 양식이 다양해짐과 더불어 문화적으로 더욱 다원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파 및 사회민주주의 이론가들은 ’개인주의’에 대해 제대로된 해석과 입장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세계화가 ’개인주의’의 주요 원인이라는 저자의 분석은 틀린 것 같다. ’개인주의’는 봉건주의가 해체되고 자본주의 경제양식이 사회를 지배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화’는 ’개인주의’를 더 가속화시키고 ’개인’을 빈부격차로 양극화시키고 있을 뿐이다.)저자는 경제이론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사망함으로써 좌파와 우파를 나누던 중요한 구분선 중 하나가 사라졌고 환경이 변화하면서 좌우파 구도의 범주에 없던 새로운 문제, 즉 지구온난화, 노동, 가족, 원자력, 권력이양, EU들이 나타나면서 ’좌파와 우파’에 대한 새로운 범위 설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그는 좌파 쪽에 선다는 것은 사회적 정의와 해방의 가치, 그리고 평등의 목표를 추진하고 여기에는 정부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정치적 행위체’와 관련하여 저자는 시장이 대체할 수 없는 정부의 목적과 역할을 규정하면서 1980년대 국민들의 탈정치화 과정과 영향력 고갈이 시민사회 세력에서 정치 참여와 행동주의로 나타나고 확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집단들이 정부가 실패하고 있는 영역들을 인수하거나 정당의 지위를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며, 다만 정부는 이러한 집단들로부터 배우고 그들이 제기하는 쟁점에 반응하고 협상하여 문제들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산직 노동자로 구성된 노동당의 지지구조와 노동조합에 지분을 할당한 의사결정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저자의 주장이 노동당에 반영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와 결합도 여의치 않을 것이며, 이러한 상황은 또 다시 노동당의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생태적 쟁점’에 대해 저자는 ’생태적 현대화’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이는 정부와 업계, 온건한 환경주의자, 그리고 과학자들이 환경적으로 보다 옹호할 만한 입장을 좇아 자본주의 정치 경제를 재구조화하는 데에 협력하는 형식의 동반자적 관계를 의미한다.기든스는 ’제3의 길 정치’의 전반적 목표가 ’다섯 가지 딜레마’ 속에서 시민들로 하여금 새로운 길을 개척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범세계화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좌우의 구분을 벗어나는 질문의 범위들이 이전보다 더 넓어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동시에, 사회 정의에 대한 핵심적 사항들을 보존해야 한다. 평등과 개인의 자유는 충돌할 수도 있지만 평등주의적 조치들은 종종 개인에게 열리 자유의 범위를 확대한다. 자유란 ’행위의 자율성’을 의미해야 하며 ’책임 없이 권리 없다(no right without responsibilities)’를 새로운 정치의 모토로서 제시할 수 있다.

제3장. [국가와 시민사회]에서 기든스는 새로운 민주국가는 ’적이 없는 국가’이어야 함을 정의하고 새로운 국가의 역할은 권력의 지방이양, 이중 민주화, 공공 영역의 쇄신과 투명성, 행정적 효율성, 직접민주주의의 메커니즘, 위험성 관리자로서의 정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활기넘치는 시민사회 육성은 ’제3의 길 정치’의 기본적인 일부분이며, 시민사회의 쇄신을 위해 정부와 시민사회의 동반자 관계 구축, 지방 주도를 통한 공동체 쇄신, 제3부문의 관여, 지방 공공 영역의 보호, 공동체에 기반한 범죄 예방, 민주적 가족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가족 관점에서의 민주화는 평등, 상호존중, 자율성, 소통을 통한 의사 결정,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민주적 가족’을 위해 정서적 성적 평등, 관계에 있어서 상호 권리와 책임, 공동 양육, 평생 양육 계약, 아이들에 대한 타협적 권위,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책무, 사회적으로 통합된 가족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제4장. [사회투자 국가]에서 저자는 ’제3의 길 정치’에서 경제분야는 ’신혼합경제(new mixed economy)를 옹호함을 말한다. ’신혼합경제’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사이의 상승 효과를 추구하며, 공익을 염두에 두고 시장의 역동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제3의 길 정치’에서 평등은 ’포용’을, 불평등은 ’배제’를 의미하며, 포용적인 사회를 위해 포용으로서의 평등, 제한적인 능력지배, 공정 영역의 부흥, 노동사회를 넘어서, 적극적인 복지, 사회투자 국가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제5장. [범세계화 시대로]에서 저자는 범세계화 시대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민족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함을 선언한다. 그는 민족주의의 분열적인 속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속성을 제어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민족에 대한 세계주의적 해석임을 주장한다.
그는 범세계화 과정들은 권력을 국가로부터 탈정치화된 범세계적 영역으로 이전시켰으나, 다른 사회적 환경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것의 보편적 중요성으로 보아 훨씬 더 이런 새로운 영역은 권리와 의무를 도입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유럽연합(EU)은 대중적인 지지를 잃어 가고 있는 동시에 유럽 시민들의 삶에서 점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EU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유럽의회의 보다 큰 권력을 보다 효과적인 초국가적 정당 조직과 연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세계적 규모에서 시장근본주의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는 세계경제에서 특히, 금융시장을 규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통화의 과도한 회전과 남발을 진정시키고 통제하는 것, 단기적 통화 투기와 투자를 분리하는 것, 그리고 세계경제 관리에 참여하는 초국가적 조직을 재편할 뿐만 아니라 그 조직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로부터 새롭게 많은 것을 배웠다. ’제3의 길’에 대한 문제의식과 아이디어, 그리고 정책들, 마찬가지로 현대성, 개인주의, 정치적 행위체, 이중 민주화, 민주주의의 민주화, 직접민주주의, 민주적 가족, 행위의 자율성, 신혼합경제 등은 새로운 개념이자 사고 구조를 확대시켜 주었다. 국가의 역사, 정당의 역사, 이념의 역사 등 상당히 중요한 측면에서 영국과 한국이 다르기 때문에 기든스의 생각과 의견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아이디어와 정책에서 많은 부분을 비교하고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기든스가 이야기하는 ’제3의 길’이 어떤 배경에서 제기된 개념인지, 정치적 태도와 입장은 무엇인지, 주요 정책이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제3의 길’이 앞으로 어떤 변화와 발전, 실적을 보여줄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사회민주주의의 철학과 이론이 무엇인지, ’제3의 길’이 사회민주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제3의 길’의 철학과 이론이 무엇인지 알아내기는 어렵다. 기든스는 학문적으로 ’제3의 길’을 풀어내려고 했지만, 결국 현실 정치에서 필요한 정책을 제시했을 뿐이다.
<기후변화의 정치학>과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을 읽고서도 느꼈지만, 앤서니 기든스같은 저명한 학자이자 정치가가 정당에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는 영국이 부럽다. 특히, 그의 철학이나 이념적 배경이 무엇이던간에 자유와 평등주의, 민주주의, 취약계층에 대한 애정, 시민사회 육성, 국가 개입,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영국 민중들에게는 행운이다.  
 
역자인 한상진 교수의 말대로 이 책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앞에서 시장경제의 논리와 시민적 연대 및 정의의 원리를 결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같다. 한교수는 <제3의 길>을 두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보적 지식인의 최소한의 양식과 개방적 사고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처음 발간된 이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많은 나라들에서 ’제3의 길’을 표방하는 중도 좌파 정부가 집권한 상태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2011년 6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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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 - 영국노동당이 다시 이기는 길 이렇게 해 주세요
앤서니 기든스 지음, 김연각 옮김 / 인간사랑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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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은 영국과 한국의 국민들과 진보세력에게 서로 다른 의미로 중요한 해였다. 영국 국민은 사회민주주의의 기치를 내건 집권 노동당의 집권 2기 동안의 실적을 평가하는 총선을 치루어야 했고 한국 국민들은 10년 동안 집권해온 민주개혁을 표방한 민주당의 실적을 평가하는 대선을 치러야 했다.선거 결과는 두 나라에서 전혀 반대로 나타났다.
총선 결과 영국의 집권 노동당은 3기 연속으로 다수당이 되었고 대선 결과 한국의 집권 민주당은 한나라당(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몰론, 단순히 노동당과 민주당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영국과 한국이 국가와 민족의 형성에서부터 역사, 현재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고 정당을 비교해도 영국의 노동당과 한국의 민주당은 역사와 주체, 성격과 구조, 이념과 정책에서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 노동당은 1906년에 창당되었고 지금까지 보수당과 함께 영국 양당구조를 형성해 왔다. 노동당은 창당에서 2007년까지 당원이 급격하게 줄었음에도 40만명(1997년)~20만명(2007년)으로 구성되어 있고 노동조합 등 주요 계급, 계층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어 명실상부하게 영국 국민으로 구성된 정당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민주당은 2003년에 창당한 집권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2008년 새롭게 창당하였다. 한국의 정당은 1946년 처음 창당된 이래 2011년까지 수십 개의 정당이 창당, 분당, 합당, 해산을 거치면서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물론, 그런 과정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정당은 ’진성당원’은 어느정도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당원이나 조직운영 체계는 존재하지 않고 중앙당 조직체계와 국회의원, 지방의원, 자치단체장, 정치지망자로 이루어진 일종의 ’명사정당’이라 할 수 있다. 명확한 이념이나 정책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도 가지고 있지 않다. 현대적인 정당에 필요한 이념, 정책, 조직, 당원, 운영방식을 보이고 있는 정당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정도인데 그들은 아직 대중적으로 큰 지지를 얻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당과 민주당, 보수당과 한나라당을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관심 있게 읽고 주변에 추천한 책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고 다른 이유는 내일 이 책의 저자인 앤서니 기든스의 저작인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교재로 하여 세미나를 진행하는데 있어 기든스의 과거 저작들을 살펴봄으로써 기든스의 생각과 의견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이다.
 
이 책은 제목에 딸린 부제 - ’영국 노동당이 다시 이기는 길’ - 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노동당의 상원의원이자 정책 브레인이 기든스가 2007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또다시 승리하고 집권하기 위하여, 그 해에 토니 블레어(Anthony Charles Lynton Blair)에 이어 영국 의회의 수상으로 선출된 고든 브라운(James Gordon Brown)에게 ’선거 승리 전략’을 조언하는 내용이다. 기든스는 노동당 집권 10년의 공과 과를 평가하고 향후 노동당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노동당은 2010년 5월 총선에서 패배하고 브라운이 사임하고 에드 밀리밴드를 새로운 당수로 선출)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역자는 민주노동당원으로 활동 중인 김연각인데, 그는 영국과 한국의 현실과 조건이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번영’과 ’사회정의’가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 역시 기본적으로 보편성을 띨 수밖에 없기에 한국과 민주노동당에게 이 책이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미 20세기 말에 <제3의 길>이란 저서를 통하여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기든스는 대체로 노동당의 10년 집권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중도좌파로서 노동당의 이념적 지향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검토하고 보완하고 새로 제시하고 있다.
 
세부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머리말]에서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학자의 길에서 학자와 정치를 병행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저서 <제3의 길>이 199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클린턴과 블레어 총리의 대화를 계기로 하여 써졌음을 밝힌다.
 
[개설]에서 저자는 오랜 기간 야당으로 머물다가 20세기 후반에 ’제3의 길’을 내세우면서 승리했던 노동당의 10년 집권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그는 21세기에 필요한 새로운 정책 전망, 정책내용이 풍부한 전망으로서 ’제3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노동당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제3의 길’은 좌파의 기치, 사회민주주의의 이념을 진정으로 수호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동당이 집권하는 동안 영국은 효과적인 거시경제정책에 힘입어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누렸고 완전고용에 가까운 결과를 거두었다. 지속적인 성장을 기초로 공공서비스 분야와 빈곤퇴치 조치(1997년 이후 200만명이 빈곤에서 탈출)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노동당이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고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한다. 국가의 역할과 공공서비스의 성격에 대해 더 명확한 정의를 제시해야 하고 더 명시적으로 평등주의를 지향해야 하며, 탈중앙화와 권한이양 문제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핵무기 확산과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국민들의 생활양식을 바꾸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복지국가의 개념을 ’적극적 복지’를 제시하면서 복지를 경제적 역동성과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고 더 다원주의적으로 이끌어야 함을 주장한다.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이라크 철수를 모색하고 EU의 역할을 강화하여 기후변화, 에너지 안보, 이민, 국제범죄, 마약, 밀입국 등의 문제를 다루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노동당이 4기 집권에 성공하려면 대다수 유권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이상을 내걸고 그것에 도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들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말하는 이상이란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정의를 조화시키면서 양자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저자는 소위 “미래와의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16개 항을 제시하고 있다.
 
1장. [지난 10년 : 노동당의 성공과 실패] ’제1의 길’인 구좌파의 정치철학과 ’제2의 길’인 신자유주의는 극적으로 변해가는 현실세계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영국 노동당이 1990년대 초 이래 미국의 신민주당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인정한다. 1990년대에 미국의 신민주당의 정책방향인 선택, 경쟁, 시장식 인센티브, 기회, 책임, 공동체, 시민권 협약, 자유무역, 민주주의 확산 지원 등의 상당수 아이디어가 영국 노동당에게 전수되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20세기 말에 수정된 노동당의 강령(’8대 테마’)는 경제를 우선하라, 정치의 가운데 마당을 장악하라, 권리와 함께 의무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시민권 협약을 만들라, 사회정의를 추구함에 있어 부자보다 빈자에게 집중하라, 무엇보다도 교육과 의료보험 같은 공공서비스 분야에 투자하라, 어떤 이슈에서도 우파에게 양보하지 마라, 이민은 대개 받아들이되 사회에 이익이 되지만 그래도 이민은 규제되어야 한다,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하라"이다.
저자는 노동당 정부가 대체로 성공적인 정부였다고 평가하면서 남아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사례로 이데올로기 정립의 실패, 사회정의에 대한 충실성 부족, 헌법개정과 권한이양 문제, 기업 자본주의에 대한 영향력 제고 실패, 환경 의제 도입 거부, EU 결합 실패, 이라크 전쟁 등 외교 난맥상 등을 들고 있다.
 
2장. [경쟁자들 : 브라운대 캐머런] 저자는 고든 브라운 신임 총리와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David William Donald Cameron), 자유민주당의 멘지스 켐블을 비교하면서 브라운의 장단점을 지적한다. 보수당과 자유당이 당내 화합과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새로운 철학과 정책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노동당과 차별화시키지 못한다고 분석하면서 브라운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3장. [변화하는 세계 :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저자는 ’세계화는 세계사회의 상호의존성 증대’라고 정의하면서 거스를 수 없는 추세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세계화에 대한 지나친 찬양과 저주 모두를 비판하면서 위협과 기회를 모두 가져오고 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세계화가 지역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사항들을 지적한다. 그 사례로 산업간 기업간 경쟁, 일자리 축소, 임금 경쟁, 기후변화, 국제테러, 이민, 빈곤, 정신병 등을 말한다.
저자는 급변하는 세계속에서 노동당이 구노동당이 아닌 신노동당으로 계속 남아야 하고 다음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7가지 원칙을 열거한다. 7가지는 1. 계속해서 경제에 강조점을 둘 것, 2. 가운데 마당을 포기하지 말 것, 3. 교육에 높은 우선 순위를 둘 것, 4. 빈곤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고 확장할 것, 5. 범죄나 반사회적 행위에 맞서 싸울 것, 6. 경제적 이민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것, 7. 국제 테러의 위협에 소홀하지 말 것을 말한다.
 
4장. [공공 서비스 : 사람을 맨 앞에 두기] 저자는 노동당이 그동안 국가의 개념을 ’가능케 해주는 국가 Enabling state’이었으며 앞으로는 이에 더하여 ’확신을 주는 국가 Ensuring state’를 추가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노동당의 가장 중요하게 추진하는 정책이자 핵심 강력인 ’공공 서비스’가 총선에서 가장 큰 변수임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공공 서비스’에 대해 새롭게 정의를 내리고 공공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유럽 다른 국가보다 뒤처지게 되었음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검토한다.
저자는 공공 서비스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관-민 제휴관계’가 더 확장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추가 세금징수 없이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수단을 제안한다.
그리고 공공 서비스 수혜자들의 참여가 중요함을 지적하면서 특히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선택’을 도입할 것과 ’수익자 부담’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국민건강보험의 경우 의사결정 과정을 분권화시키고 다양하고 유연한 제도를 도입해야 함을 역설한다.
 
5장. [우리는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에서 저자는 시장 또는 자본주의적 기업이 경제적 효율성의 열쇠이고 번영의 열쇠라는 점에서, 시장이 본래부터 자유로운 소비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시장의 기업들은 법을 만들지 않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시장에서의 경쟁이 가격을 끌어내리는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실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시장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자본주의 자체를 움직이는 동기와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시장친화적’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시장친화적인 가운데 사회적 보호와 일자리 창출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데 이것을 위해 ’유연안전성 flexicurity’와 가능한 최저임금이 핵심임을 제시한다. 기업의 경우 책임성을 강화해야 하고 추가적인 세금보다 세금의 조정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저자는 아동빈곤 해소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으며 결론으로 영국의 뿌리 깊은 불평등을 조장하는 구조적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16개 정책 분야를 제시한다. 여기에는 아동빈곤 감축, 전통적 재분배 장치 유지,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 고용보험과 임금보험의 가능성, 노인 일자리 창출, 고착화된 빈곤 해결, 자산형성 제도, 빈곤의 전기적 특성 고려, 임시노동시장 검토,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 여성 노인 배려, 생활방식의 변화, 빈곤층 학보모의 학교 선택권 강화, 사립학교 변화 유도, 대학 입학 제도 보완, 부자의 사회적 의무 강화이다.
 
6장. [생활양식 바꾸기 : 새로운 의제] 저자는 적극적 복지를 추진하기 위해 4개 분야 - 장애, 고령, 건강, 기후변화 - 에 대한 개입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적극적인 복지란 ’사전예방적’인 것이고 ’사회문제의 근원을 찾아 그것과 씨름하는 자세’를 뜻한다. 4대 분야는 정부의 적극적인 복지정책만이 아니라 생활양식의 변화를 함께 이루어내야 상당부분 개선시킬 수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영구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소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그것은 이산화탄소 가격제의 도입, 기술발전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의 도입, 각 가정의 소비 패턴 변화 유도, 취약성에 대해 시급한 국가적 평가 실시를 말한다.
 
7장. [다문화주의 : 포기하기 없기!] 저자는 여러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이민이 영국에게 위협이자 기회임을 설명하고 영국에 필요한 기술 이민 등은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저임금 일자리를 중심으로 하는 낮은 이민은 계속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노동당은 ’다문화주의’를 방어해야 함을 역설한다. 다만, ’다문화주의’가 사회 속에 다양한 문화가 따로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유지되는 제도와 정치, 문화라는 틀 속에서 각 문화가 조화롭게 교류함을 뜻한다.
 
8장. [섬나라 의식 떨쳐버리기]에서 저자는 영국인에게 내재하고 있는 ’섬나라 의식’을 떨쳐내기 위해 ’상징’과 ’의례’를 중시하고 영국과 노동당이 EU와의 협력과 EU의 강화에 기여해야 함을 주장한다.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이라크로부터 가까운 장래에 영국군을 철수해야 하고 국제테러에 대처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외교에 있어서는 협상, 협력, 국제법 존중이 무력 사용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짐을 인정하여 ’공격적 다자주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9장. [진보적 합의를 형성하는 방법]에서 저자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등을 통해 문자매체나 전자매체 등 새로운 매체가 일상적 민주화의 진행과정과 동일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사람들이 ’소극적 신뢰’에서 ’적극적 신뢰’로 변화됨을 말한다. 이는 ’심의민주주의’가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동당이 논의 중인 헌법개정안에 심의민주주의를 더 많이 도입해야 하고 심의적 과정을 개정안의 기초 가운데 하나로 삼아야 함을 주장한다. 그 방향은 ’탈중앙화’와 ’주변부 집단의 참여’이다.
 
10장. [미래와의 계약]에서 저자는 노동당의 목표가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하여 번영하는 사회, 공정하고 개방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위해 정부와 시민 사이에 ’미래와의 계약’을 합의하는 것이 중요함을 주장한다. ’미래와의 계약서’의 조항은,
1. 경제적 성공이 다른 많은 것들의 기초이므로 가장 중요하다. 안정적 성장과 지속적인 저물가, 최저임금의 꾸준한 상승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유연안정성, 생산성 향상과 빈곤층의 생존기회 향상, 유인을 위한 규제
2. 삶의 많은 영역에서 국가의 개입. 국가는 시장 부문과 시민사회, 그리고 개인과 협력관계 유지, 시민들의 선택권과 목소리
3. 정부 자체와 교육 의료 분야에서 권한이양. 심의민주주의 실험
4. 기후변화를 통제하고 적응하는 것을 시민의 권리와 의무의 필수항목으로
5. 환경세와 세금 인센티브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세제도 개편
6. 평등주의 정당의 강화. 경제적 역동성과 일자리 창출과 빈곤 완화가 정책의 우선순위로.
7. ’어린이 먼저!’ 아동빈곤 축소
8. 직장과 가정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
9. 교육과 의료분야는 정책의 상위 순위 유지
10. 사해동포주의적 국가로서 영국의 통합성 유지
11. 이민은 엄격히 규제
12. 정체성과 사회의 가치관을 지키는 것은 다문화주의의 전제조건
13. "범죄에 강경하게, 범죄의 원인에 강경하게"
14. 국제 테러리즘에 대한 적절한 조치
15. EU와의 협력. 역할 강화 
  
(단순한 비교는 여전히 어렵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왜 영국 노동당이 2007년 총선에서 승리했는지, 한국의 민주당이 2007년 대선에서 패배했는지 그 이유를 분석하는데 중요한 요인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 국한하여 본다면 정당의 이념과 정책, 역사와 교훈,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분석과 대안제시 등에 있어서 노동당과 민주당은 비교하기조차 어렵다.(한나라당도 마찬가지..) 한국의 정당 내부 지도자나 유력인사, 정책 브레인 중에서 기든스만큼 소속 정당에 대해, 국가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정책내용과 평가에 대해, 경제와 사회문화에 대해, 외교에 대해 전체적, 기본적으로 알고 있고 평가할 수 있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물론, 그 이유는 영국 노동당의 역사와 한국의 정당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더 깊이 내려가면 영국의 정치사, 근현대사와 한국의 정치사, 근현대사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5~60년만에 국민 1인당 GDP를 2만 달러로 올려놓은 한국민의 저력이 정치와 사회문화에서 발휘할 수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고 사회정의와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외부적인 조건이나 상황을 핑계댈 수는 없는 것이다.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 책 속에 들어있는 노동당의 정책 브레인이자 유럽의 저명한 학자로서 기든스의 평가와 전략은 종합적이고 명쾌하다. 그리고 영국과 노동당이 처해있는 현실과 조건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리 노동당의 이념과 정책이 수정주의이고 ’짬뽕’이라고 해도 한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책 속에 나열되어 있는 영국 국민들의 생활과 조건은 부럽기 그지 없었다.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수준이 영국의 1980~ 1990년대 수준까지만 되어도 국민들이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제3의 길’의 이념이나 좌파의 가치, 사회민주주의의 가치를 언급하고 제시하지만 내가 부족하고 어리석은지는 몰라도 저자의 이념이나 가치가 명쾌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마 <제3의 길>을 읽어보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직전에 읽은 기든스가 왜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후속작으로 펴냈는지 알 것도 같다. 책 속에 나타난 바와 같이 영국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모두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EU가 주도하고 있는 국제적인 협의와 협상이 계속 구체적인 결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을 답답해하고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저자는 EU의 역할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음에도 국제적으로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 문제를 처리하는데 있어 EU말고 다른 대안이 없음을 인정한다.
 
기든스의 ’제3의 길’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이 책은 <제3의 길>이 아니고 ’노동당 집권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자의 글 속에 부분적으로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제법 있었다. 저자의 이야기대로 영국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 급하게 써서 발간한 책이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나 자세한 주장이 들어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지적할 것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먼저, ’세계화’에 대한 정의와 태도에 관한 것이다. 저자의 주장대로 세계화는 과학기술에 힘입은 바 크고 각 개인과 지역, 국가의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밀어닥쳐 오는 것’임을 나 역시 원칙적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세계화가 ’상호의존적’이고 양방향의 과정인 것도 맞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처럼 세계화가 ’힘의 불균형 체제’가 아니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p.98)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이 사회정의와 경제적 평등주의를 추구하고 일정한 성과를 달성한 것은 역사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위험성 때문이다. ’통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18세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말 그대로 ’도탄’에 빠트리고 고통과 죽음, 불행과 빈곤의 나락으로 빠트렸다. 세계화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이 기초로 작용하기 때문에 통제받지 않을 경우 국가 시스템이 건강하지 못한 많은 빈곤국가와 개발도상국가를 동일한 처지로 내몰 것이다. 영국과 유럽의 경우에도 자칫 잘못하면 중산층 이하 계층이 심각한 타격을 받아 그동안 이루어낸 ’평등수준’을 위협할 것이다.
 
두번째, 헤지펀드에 대한 과소평가. 저자는 헤지펀드가 자본시장의 구조적 위험요인이 아니라 그 반대의 효과를 갖는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p.173) 하지만 저자가 잘못 판단했다는 것은 계속 드러나고 있다. 한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IMF 이후 지속적으로 헤지펀드에 의한 부동산과 기업의 주식 헐값 & 불법 인수가 문제로 나타나고 있고 ’수익성’ 이외에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에 국민경제나 개별기업, 시장참여자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세번째, 저자는 국제적인 테러가 종교적 근본주의만이 테러 위협의 유일한 원천이 아니라고 하지만 종교적 신념과 지정학적 목적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p.292) 이런 인식은 다분히 서구 중심적, 서구 편향적이고 특히 영미식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21세기 국제적인 테러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국가가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지구 전역에 끼쳐온 영향에 대한 ’역풍 blowback’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찰머스 존슨의 <블로우 백>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 영국 노동당의 역사에 대한 김수행 교수의 자료를 하나 첨부
 
[ 2011년 6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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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데이비드 뱃스톤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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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 전 스무 살 베트남 신부가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27세 연상의 남편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맞선 한 번만으로 결혼했다.
지방의 윤락업소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연이어 자살했다. 업소에서 이들은 ’돈 버는 기계’처럼 착취당했고 사채와 연대보증으로 엄청난 빚을 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들의 노예 계약에 대한 기사가 끊이지 않는다.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오랜 세월 노예 생활을 해온 사회적 약자들을 보도한다.
노예제는 과연 과거의 문제일까?
(추석 전에 극장가에서 흥행한 영화 <아저씨>는 그냥 시나리오일 뿐일까??)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여러 노예노동의 실태를 읽다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동남아시아의 태국/캄보디아/베트남..., 남아시아의 인도/네팔/방글라데시..., 아프리카, 남미, 유럽, 동아시아...
캄보디아 난민 출신 스레이 네앙은 어린 시절 노예로 팔려가 갖은 고생 끝에 하갈 쉼터의 도움으로 이제 재봉사가 되었다.
카스트 하층 계급인 마야의 가족과 친척들은 얼마 안 되는 빚 때문에 벽돌 가마에서 강제 노동하다가 국제정의선교회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우간다의 찰스와 마가렛은 신의 저항군에 납치당해 소년병이 되었다가 구출되었다.
몰도바의 나디아는 이탈리아에 취업시켜준다는 꾐에 넘어가 인신매매되었다가 간신히 자유로워졌다.
 
한국은 안전지대인가?
미국의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에 의해 2001년 7월 발표된 <인신매매 보고서>에 한국은 러시아, 이스라엘, 루마니아를 포함한 3등급(미국법의 최소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국가)로 분류되었다.
이 책속에서 한국은 인신매매와 노예노동의 공급자, 경유자, 최종소비자로 분류되고 있다.
2달 전인가 영화관에서 개봉한 <아저씨>라는 영화(이정범감독, 원빈 주연)도 내용 중에 소녀가 인신매매되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도 안전지대는 당연히 아니라는 것을 반증(심증?)하는 것이겠지...
 
과거 이 땅 한반도에서도 불과 몇 십년 전에는 ’노예’와 다름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 한국의 어두운 어디에선가에는 법과 시민들에게 보호받지 못하는 한국사람과 외국인들이 노예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노예노동에 시달리고 삶의 희망을 빼았긴 사람들을 돕는 ’천사’이자 ’전사’같은 이들이 소개된다.
’끄루 남’은 인신매매된 동남아시아 아이들을 구출하는 태국 화가다.
’애니 디젤버그’는 태국의 성노예 여성들이 제2의 삶을 살도록 돕는 ’야간등 디자인’의 대표다.
’피에르 타미’는 캄보디아 성매매 여성과 아이들을 지원하는 하갈 쉼터의 설립자다.
’게리 하우겐’은 전 세계의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국제정의선교회의 설립자다.
’플로렌스 라코르’는 월드비전의 18세 미만 소년병 재활 센터의 상담자다.
’이단 라굼 루모로’는 월드비전의 18세 이상 소년병 재활 센터의 책임자다.
’체사레 로 데세르토 신부’는 인신매매된 동유럽 여성들을 구하는 ’레지나 파키스’의 성직자다.
’루시 보르하’는 페루의 거리 아이들을 돌보는 단체 ’헤네라시온’의 대표다.
’루이스 에통웨’는 일곱 번이나 노예를 구한 카메론 출신의 미국인이다.
’캐서린 천’과 ’데릭 엘러먼’은 현대판 지하철도 ’폴라리스 프로젝트’의 공동 대표다.
’아나 로드리게스’는 ’플로리다 인신매매 반대 연합’의 대표다.
이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현대판 노예상인에 맞서 영웅적 활약을 펼치고 있다.

아동 노동자, 성노예, 강제노역자, 인신매매 피해자 등 우리 주변엔 가난과 억압의 짓눌려 사는 이들이 많다.
인간의 자유를 느끼지 못한 채 상업적 도구로 쓰이는 이들의 서글픈 이야기를 담는다.
현대 자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가난은 사회적 불평등과 자유를 침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가난한 나라에서부터 이끌려 국경 너머로 노예로 팔려나간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글로 표현하여 이들의 아픔을 전한다.
납치 당하거나 채무 관계로 강제 노역을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구원의 손길이다.
핍박 받고 구원 받지 못한 이들의 구구절절 이야기를 통해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이 사회를 비판해 보면서 이제 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동유럽, 아프리카, 남미에서 어린이와 여성들에 대한 인신매매, 노예노동, 성착취를 성행하는 이유는 그들 나라의 극도의 가난, 무력갈등, 급격한 산업화와 폭발적인 인구증가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거기에다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남성들의 ’성상품화’ 의식과 도덕성의 빈곤, 저렴한 착취노동에 대한 욕구 등이 끊임없는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수요와 공급 부분 모두 근절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선진국에서는 무척이나 음성적으로 노예노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노예노동’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각하기가 쉽지 않다.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의 경우 문화의식과 부정부패가 수요와 공급 양측을 모두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 역시 1980년대 엘살바도르에서 친구 몇 명과 성공적인 인권 운동을 펼쳤다.
그는 보통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개인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노예제를 끝내려면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며 따라서 우리의 도움이 절실하다.
먼저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기소하려면 법률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해방된 노예들을 고용하려면 기업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노예제에 대해 조사하고 정책을 바꾸려면 학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피해자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건강 관리사와 정신 건강 전문가가 필요하고 보호 시설을 지으려면 건축가가 필요하다. 사람들을 착취해서 만든 상품을 사지 않는 현명한 소비 활동을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 아니라 노예제 폐지 운동에 실제로 도움을 보태는 것이다.
 
2007년 현재 세계 전역에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노동자는 3,000~5,000만명에 달한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점점 더 그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
그들은 가내노동, 가사노동, 섹스바, 성매매업소 등에서 착취당한다.
한국인들은 중국, 일본, 대만인들과 함께 동남아시아 어린이 성노동의 주요 고객이다... 이름하여 ’섹스관광객’...
 
신문기사나 영화 한 편으로 스쳐가듯 보여지는 모습과 달리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노예노동과 성착취가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고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영화 포스터]










 

[ 2010년 10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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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이다 -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진짜 내 인생'을 사는 15인의 인생 전환
김희경 지음 / 푸른숲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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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넘어서고 나서는 가끔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라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나 스스로 어떻게 사는 것이 나를 만족시키고 나의 활력을 이끌어내고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아직도 인생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나이일 수도 있지만,
더 늦기 전에 ’행복’이란 것이 과정에 있는지, 직업에 있는지, 인생관에 있는지, 목표에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은 직업을 선택한 후 열심히 사회활동을 하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 직업을 바꾸거나 ‘하고 싶은 일’을, ‘진짜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전환시킨 평범한(?) 15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역시 17년 넘게 근무하던 언론사에서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고 싶던 시기였고 그 15인을 만나면서 사표를 내고 ‘진짜 내 인생’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17년 8개월 동안 일간지 기자로 살아온 저자는 어느 날 그동안 해왔던 일이 ‘더 이상 내 몸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시기를 맞았다.
그런 생각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아직 새 인생에 대한 확신도 용기도 없을 무렵, 그는 자신보다 앞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인생 전환’을 감행한 인물들을 찾아 나섰다.
남들 눈에는 지금 그대로 살아도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멀쩡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줄어든 수입, 가족의 만류, 달라진 평판, 불안한 미래를 감수하고 기어코 새 삶을 시작한 이유가 궁금했고, 그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갈등과 해결 방법, 전환 이후 느끼는 삶의 만족도에 대해 듣고 싶었다.
간호사에서 소설가로, 광고 회사 임원에서 요리사로, 음반 가게 사장에서 심리 상담가로 인생 전환을 이룬 열다섯 명을 차례로 만나며 그는 자기 안의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
그의 갖가지 질문에 대한 그들의 서로 다른 듯하지만 결국 하나였던 대답은 바로 이 책이다.
숱한 걱정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감행한 건 그렇게 내 눈앞에서 끌려가듯 흘러가고 있는 게 ‘내 인생’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그들처럼 오래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15명의 ‘내 인생 찾기’ 성공담은 현재 자신의 직장과 직업, 흔들리는 지위와 역할, 다시 살아나는 꿈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비슷한 세대들에게 새로운 ‘단초’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300쪽도 안되는 책 속에 15명의 고민을 담았기에 한 명, 한 명의 고민과 결심, 준비와 노력이 세세하게 담겨있지 않기에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사람들은 조금 더 진지한 성찰과 연구, 대화와 준비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이 름

전직업

시 기

새직업

계 기

김 호

PR컨설팅사 사장

39세

1인 기업가

행복한 삶, 하고싶은 일

박윤자

음반가게 사장

34세

심리상담사

재미있는 일, 소명

최혜정

광고인

46세

NGO 활동가

진짜 내 모습으로 살기

이영이

신문사 기자

43세

의사

가고 싶은 길

오시환

광고인

48세

요리사, 음식점 사장

혼자 할 수 있는 직업,
몸 자체 전문가

최준영

디자이너, 교수

38세

보트제작자

10년 전부터 준비한 꿈

김형근

기자

40세

문화콘텐츠영문출판사 대표

권위적인 조직과
내 삶의 주체

양광모

의사

34세

벤처기업 대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

이인식

대기업 상무

46세

과학 칼럼니스트

글쓰기의 꿈

민진희

미국 공인회계사

32세

요가지도자, 학원 원장

내면을 돌아보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

차백성

대기업 상무

49세

자전거 여행가

필생의 꿈에 뛰어들기

김용규

벤처기업 CEO

39세

숲 생태 전문가

내 꿈이 어디갔지?

최해숙

디자이너

35세

소물리에

꿈과 판타지를 구별하기

정유정

간호사

36세

소설가

꿈을 향해 좌절 견디기

엄홍길

전문 산악인

48세

사회사업가

실패를 다루는 방식

  
인생 찾기에 성공한 14명의 적지 않은 경우가 공통적으로 ‘꿈’을 애기한다.
어려서부터 맘 속에 품고 있던 ‘꿈’이든, 새롭게 찾아낸 ‘꿈’이든…
그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대부분 ‘일벌레’였다는 것…
, 밑바닥 직종이 아니라 대부분 화이트 칼라 계층이라는 것…
‘일벌레’였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일에 파고들었던 것이고 따라서 5년, 10년 단위의 주기로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또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30대 중반 이후부터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다가온다.
아마도 우리시대의 화이트 칼라 계층이 미국식 자본주의 윤리와 방식으로 배우고 익힌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에는 우리의 DNA가, 인간의 DNA가 여러 번 경종을 울리는 것 같다.
 
이들은 그나마 사회조직의 중류층 이상이고 화이트 칼라계층이기에 자신의 ‘존재’와 ‘꿈’,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대화하고 진로를 변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보다 못한 계층들, 즉 노동자, 농민, 소상공인, 주부, 실업자, 빈민들에게는 최저생계비와 아이들의 학원비, 주거비 걱정에 자신들의 ‘꿈’이나 ‘인생’에 대해 걱정할 수 조차 없다.
아니, 아예 그런 생각은 그들에게 사치일 뿐...
 
또한, 이 책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이 책에 소개된 ‘내 인생찾기’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조직에서 인정받았고 고지 하나는 넘어섰다는 점이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그 동안 그들이 해낸 성과만큼, 과정만큼 자신의 간절한 ‘꿈’과 새로운 ‘도전’ 역시 가능성이 높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소개하지 않은, 통계를 낼 생각도 해보지 못한 ‘인생 전환’에 실패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퇴직금만 가지고 무모하게 새로운 사업이나 장사를 시작했다가 실패한 사람,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했다가 퇴직 시기에 그나마 ‘시드머니’도 없는 사람, 섣불리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다가 실패한 사람, 등등…그 사람들이 다시 용기를 내어 맨 바닥에서 한 계단씩 올라가는 사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삼십대의 10년은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않은 시간이었다면, 사십대의 10년은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하프타임은 내 꿈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인생 전환을 꿈꾸는 사람에겐 하프타임 갖기를 꼭 권하고 싶어요.
하프타임의 목적은 한가해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직장 생활에 몰두해 있을 때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게 두렵고, 혼자 있는 걸 잘 견디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자기 자신과 대면한 상태에서 과거를 돌아보거나 미래를 그려보지 않고서 실행하는 변화는 무의미하거나 미완성이기 십상이지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 pp.15~20)

“내가 그만큼 일에 몰두하고 있고, 내 일을 장악하고 있구나 스스로 확인하게 된 거죠. ‘내 과제’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일을 잘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지금은 내가 전체를 다 움직이면서 내 일을 만들고 내 공간을 설계해요. 거기에서 오는 쾌감은 정말 대단해요. 이게 방향 전환을 통해 거둔 가장 큰 성과예요. 한 점에 딱 박혀 있던 나사가 빠져서 녹슬지 않고 살아서 돌아다니는 거니까요.” 〔…〕
만약 최해숙 씨가 달라졌다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스스로도 말했듯 이전에 몰랐던 가능성을 끌어내 쓰는 느낌 덕분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나’와의 조우를 기다리던 찰스 핸디도 오랫동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했던” 거짓된 삶을 반성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체성의 탐험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지 말고 스스로에 대해 정직하고 개방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 pp.220~221)


이 책의 저자는 대학동기다.
교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내가 저자와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촌티를 벗고 관악캠퍼스에 드나들던 1985년부터 우리는 늘 우리사회와 우리사회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놓여있지 않고 있다는 생각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지냈다는 것은 공통점이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상대와, 그리고 우리 자신과의 싸움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각자 캠퍼스를 떠나 사회에 몸 담았고 20년 만에 우연하게도 만났다.
동기들이 저자의 신간 출판을 기념하여 조촐하게 모여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기에... 
 
나를 둘러싼 사람들 중 책을 출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90년대에 선배가, 그리고 과 동기가 전공과 관련한 책을 출간한 경우가 있었고 어떤 후배도 자신의 전공관련 에세이 책을 출간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어느 책도 읽지 않았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하는 방식은 말 그대로 ‘임의적’이라서 아는 사람이 책을 출간했다고 바로 사서 읽지는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9월 언젠가 친구놈이 저자의 출간소식과 함께 동기들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열어주자고 제안하고 여러 동기들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는 와중에 나 역시 ‘시간이 되면 참석하마…’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나 참석하지 못하면 그 대신에 ‘책을 사서 읽고 서평이나 써주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서둘러 책을 구입하고 읽었다.
물론, 서평을 쓰기 전에 출판기념회 날짜는 돌아왔고 특별히 바쁘지 않은데다가 올 가을부터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늘려보겠다는 다짐을 한 터라 참석하여 축하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요즘은 출판마저도 마케팅 시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책의 제목을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예를 들어 ‘터닝 포인트’같은…^^ 

[ 2010년 10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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