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기술 1 로버트 그린의 권력술 시리즈 3
로버트 그린 지음, 강미경 옮김 / 이마고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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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점점 더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무엇 하나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정립한 후, 그 많은 정보를 선별하고 분류하고 종합한 후 선택하거나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 이유가 먹고 살기 위해서든, 게으르거나 귀찮기 때문이든...

결과적으로 수 백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아돌프 히틀러.. 그가 중앙집권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쿠테타가 아닌 1932년과 1934년 독일(바이마르공화국) 선거였다.  당시 유럽과 독일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독일 국민들은 나치당과 히틀러에게 권력을 몰아주었다. 

2007년 12월. 동아시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이명박씨가 압도적인 표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투표하였고 다음 해 4월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2010년 들어 이명박씨를 지지했던 유권자 중 적지않은 사람들이 이명박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렸으며 일방주의와 밀어붙이기, 생태계 파괴와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왜 독일 국민들과 한국 국민들은 히틀러와 이명박을 지지했을까? 과연 그들은 히틀러와 이명박, 나치당과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어떻게 되리라고 예측하지 못한 것일까?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엄청난 전쟁배상금에 휘청이고 세계적인 경제대공황으로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던 독일... 민주주의도 자유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하고 언론과 미디어마저 변변치 못했던 1930년대 독일 국민들이 나치당과 히틀러의 선전과 선동에 넘어간 것은 그렇다 치고 21세기 한국의 유권자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하고 판단을 내릴까? 당장 눈 앞에 닥친 문제들과 밥벌이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여 이성보다 감정이, 논리보다 심리가 앞선다고 하면, 과연 그들에게 선택과 판단을 유도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 이유 중 나라를 ’유혹’이라고 주장하며, 사람을 ’유혹’하는 ’기술’에 대해 장황한 사례와 기술을 제시한다.

21세기 초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유혹에 대하여>에서 현대사회를 읽는 키워드로 ’유혹’을 제시한다. 그만큼 유혹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남녀관계 등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심리적인 기술이다.

유혹의 기술은 원래 힘없는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수단으로 물리적인 힘이 우세하던 시절, 여성들은 남성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권력을 얻어내기 위해 유혹의 기술을 활용했다. 중국 오나라의 왕 부차가 한순간에 무너졌던 ’서시’, 위대한 정복자 나폴레옹을 요리한 ’조제핀 보나파르트’, 루이 15세의 영원한 여인 ’퐁파두르 부인’, 클레오파트라, 카사노바, 마릴린 먼로, 프로이트, 앤디워홀, 바이런, 오스카와일드, 찰리채플린, 에바 페론, 말콤 엑스, 등...

이 책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심리적 기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유혹의 기술’을 다루고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지 않으며 모든 인간관계는 심리 게임’이라는 시대와 도덕을 초월한 가치전환적 사고의 토대 위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혹자들의 성공전략과 사상가들의 유혹의 개념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이 책에서 의미하는 유혹은 크게 성적인 유혹, 경영/처세적인 유혹, 정치적인 유혹의 세 가지이다. 

하지만, 처음 서문을 읽으면서 가졌던 기대와 호기심은 1부를 읽으면서 사라지고 만다. 이 책에서 경영/처세적인 유혹과 정치적인 유혹의 사례와 분석은 포장지 정도에 불과하다. 저자가 대부분 다루고 있는 유혹은 ’성적인 유혹’에 할애된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Temptation’이 아니라 ’Seduction’이 아닌가 싶다...^^

[ 목차 ]
 
1부 유혹자의 9가지 유형
1장 냉담한 나르시시스트형 코케트
2장 열정적인 신념가형 카리스마
3장 신비로운 우상형 스타
4장 요부형 세이렌
5장 바람둥이형 레이크
6장 헌신적인 연인형 아이디얼 러버
7장 창조적 스타일리스트형 댄디
8장 천진난만형 내추럴
9장 능란한 외교가형 차머
10장 반(反)유혹자
유혹의 대상-18가지 유형

2부 유혹의 24가지 전략과 전술
1단계 관심과 욕망을 자극하라
2단계 괘락과 혼란을 창출하라
3단계 유혹의 효과를 극대화하라
4단계 유혹의 결실을 거두어들이라

부록1 상대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법
부록2 대중을 사로잡는 법
 

[ 2010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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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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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도 여러 곳에서 들었다. 특히, 작년 연말 공부모임 송년회에서 한 참석자가 '기억에 남는 책, 추천하고 싶은 책'으로 이 책을 소개했을 때 올해에 한 번 읽어보리라 마음 먹었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및 독일 동맹국 지역 내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진 약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대인 학살에 대해 '히틀러의 광기'나 '종족 우월주의의 폐해' 정도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유대인 학살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연구,분석한 결과물도 그다지 없다.
 
1940년대에 유럽인들이 나치즘과 파시즘으로 고통받고 유대인들이 대대적으로 핍박바다고 학살당할 때 동아시아에서도 일본에 의한 학살과 만행이 동시에 저질러지고 있었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 그보다 앞선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한 1945년까지 일본군의 침탈과 착취, 억압과 학살은 계속되었다.
1945년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과 한반도의 독립은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대한제국의 상해 임시정부는 연합국에게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따라서 임시정부는 한반도 남단을 점령한 미군정에게 탄압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속국화하면서 사전,사후에 미국, 영국과 이를 합의했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후에도 한반도는 외세로부터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남쪽의 대한민국은 36년간 일제의 만행과 학살에 동조하고 부역하고 독립군과 민중을 학살,탄압한  친일분자들을 처단하지 못한채 오히려 친일반역자들을 정부조직에 끌여들였다. 그 과정에서 친일과 반역은 유야무야되었고 친일반역자들은 대를 이어 지금까지 한국의 모든 권력과 기득권을 장악했다. 일제의 만행에 대해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어찌보면 우리나라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36년에 걸친 점령과 만행에 대해 조사와 연구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운운하는 것이 한가로운 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독일제국의 유대인 학살을 고발하고자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그녀는 천륜과 인륜을 저버리는 유대인 학살에 어떻게 정상적인 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이나 유럽만의 문제만도,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문제만도 아니다. 일제시대에 비슷한 유형의 일본군과 조선사람도 많았을 것이고 해방 후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아래에서도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난 뒤 유대인 학살 소식이 전세계에 알려졌을 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자도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믿지 못했지만 결국 그 소식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잡혀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저자는 예정되었던 대학의 강의를 취소하고, 미국의 교양잡지 『뉴요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참관하게 된다. 이로써 이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탄생한 것이다.
 
 
---------- * 한나 아렌트는 누구인가? ------------
1906년 하노버에서 출생하여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냈다. 1924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에게 수학하였으나 192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옮겨 야스퍼스에게 수학하였으며 1928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나치체제의 등장으로 1933년 이후 프랑스와 미국에서 18년간 무국적자로 생활하였다. [전체주의의 기원]을 출간한 1951년 학계로부터 주목을 받았으며 이때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이후 정치철학자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저서들을 출간함으로써 ‘진정한’ 정치, 정치의 고유성을 밝히는 데 헌신하였다. 만년에는 ‘정신의 삶’을 연구하는 데 전념하였다. 1975년 12월 ‘정신의 삶’ 3부작 중 마지막 저서를 구상하던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주요 저작으로는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혁명론], [과거와 미래 사이],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폭력에 대한 성찰], [공화국의 위기], [정신의 삶 : 사유/의지], [칸트 정치철학 강의], [정치의 약속]등이 있다. ---------------
 
이 책은 서문과 에필로그, 그리고 1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자들께 드리는 말 / 제1장 정의의 집 / 제2장 피고 / 제3장 유대인 문제 전문가 / 제4장 첫 번째 해결책: 추방 / 제5장 두 번째 해결책: 수용 / 제6장 최종 해결책: 학살 / 제7장 반제회의, 혹은 본디오 빌라도 / 제8장 법을 준수하는 시민의 의무 / 제9장 제국으로부터의 이송: 독일, 오스트리아 및 보호국 / 제10장 서유럽으로부터의 이송: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 제11장 발칸 지역으로부터의 이송: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루마니아 / 제12장 중부 유럽으로부터의 이송: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 제13장 동부의 학살센터들 / 제14장 증거와 증언 / 제15장 판결, 항소, 처형 / 에필로그 / 후기 
 
 

1906년 독일 졸링겐에서 태어난 아이히만은 1932년 비밀 나치당에 입당했고, 같은 해 하인리히 히믈러가 조직한 나치 친위대(SS) 정예부대에 들어갔다. 히믈러가 국가안전국(RSHA)을 창설했을 때 베를린에 있는 유대인 담당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1942년 1월 베를린 근교에서 나치 고위관리들이 모여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대량학살)'에 필요한 계획과 병참업무 준비에 관한 회의를 열었는데, 아이히만은 이 문제의 책임을 맡음으로써 사실상 대량학살을 뜻하는 이 마지막 해결책의 집행자가 되었다. 그는 유대인을 식별하고 집결시켜 그들을 집단수용소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히틀러를 처음부터 끝까지 존경했고 히틀러와 제3제국의 법, 그리고 정부와 군의 명령에 충실했다.
그는 독일 내에서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이탈리아,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루마니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을 색출하여 주거지에서 추방하고 국적을 박탈시키고 수용소에 격리시킨 후 학살센터로 보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행했다.

전쟁 뒤 아이히만은 미군에 붙잡혔으나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중동지역을 전전하다가 1960년 5월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에서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이송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의 특별법정에서 재판을 열었는데, 1961년 4월 11일부터 시작된 이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저자는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살인자이자 반인륜 범죄를 일으킨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그것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에게는 어떠한 '특별한'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정상적이고 평범했던 것이다. 그는 '도착적이거나 가학적이지' 않았다. 따라서 아이히만은 "잘못을 행하려는 의도가 범죄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모든 현대 법체계에서 통용되는 가정"을 무시했다. 아이히만에 대해 진행한 이스라엘 경찰의 심문기록은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저자의 보고를 지지한다.
유대 민족에 대해 자행된 그의 범죄의 엄청난 규모에도 불구하고 아이히만은 어떠한 후회도, 어떠한 가책의 감정도 표현하지 않았다.
 
저자는 아이히만을 '사유할 능력이 없는 존재'로 규정했다. 그는 '타인의 과점에서 생각할 능력'도 없었다. '사유'도 '의지'도 '판단'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초현실주의적이거나 몽상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아이히만의 타자의 관점에서 생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해 보고를 하면서 나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언급을 하였는데, 이는 어떠한 이론이나 사상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아주 사실적인 어떤 것,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악행의 현상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었다.
이 악행은 악행자의 어떤 특정한 약점이나 병리학적 측면, 또는 이데올로기적 확신으로는 그 근원을 따질 수 없는 것으로,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징은 아마도 특별한 정도의 천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한때 자기가 의무로 여겼던 것이 이제는 범죄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는 이러한 새로운 판단의 규칙을 마치 단지 또 다른 하나의 언어규칙에 불과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그는 다소 제한된 양의 관용구에다 몇 가지 새로운 것들을 추가했던 것이고, 따라서 그가 그 관용구 가운데 어떤 것도 적용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는 전혀 어찌할 수 없었다."(p.37)

 
저자는 이 책을 발간한 후 유대인 공동체에 소동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자신의 가까운 친구들을 포함한 유대인 인사들로부터 엄청나게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그녀 자신도 유대인이었다.)
논쟁의 가장 초점이 되었던 것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었다. 그녀의 보고서에는 아이히만이 저지른 흉악한 악행이 고의이거나 사전에 고안된 것, 즉 범죄의 의도를 미리 갖고 있거나 고려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은 아이히만을 '인류역사상 가장 극악한 악마'로 규정하고 싶은데 저자의 보고서가 전혀 다른 관점과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저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은 것이다.
 
 
사실 아이히만이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법률적 문제, 유대민족 지도자들의 나치스에 대한 협조, 이스라엘과 유대민족과 저자간의 갈등, 이스라엘 정부의 불법성과 부도덕, 검찰과 법원의 무능과 무책임 문제 등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강렬하게 반응하고 공감한 부분은 저자의 결론인 '악의 평범성'이었다. 그것은 사고와 말을 허용하지 않는 일상적인 '무사유'를 말한다. 다시 말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무사유'와 '악의 평범성'이야말로 아이히만이 유대인의 대량학살을 '성실'하고 '충실'하게 감행하게 한 가장 근본적인 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무사유'와 '악의 평범성'은 아이히만의 문제일까? 전쟁시기만의 문제일까?
경쟁과 생존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만들어내는 현대사회에서 기술, 특히 미디어 기술이 우리를 점점 더 일차원적으로, 심지어 전체저의적으로 만들고 있다. 미디어가 메시지가 되어감에 따라 미디어는 우리를 더욱 더 평범하게, 획일적으로, 그리고 생각 없이 만든다.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 역시 '무사유'에 빠지게 되고 '무사유'는 우리를 '악의 평범성'으로 인도할 것이다.
사유와 판단보다 '잡담'과 '농담'이 우리의 일상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TV와 인터넷, 스포츠와 정보와 미디어, 드라마와 연예프로그램이 아이들과 청소년, 대학생과 주부와 직장인들의 주된 대화 소재가 되어 있다. 무상급식과 비정규직 문제는 몰라도 되지만 '무한도전'과 '남자의 자격'을 모르면 대화가 안된다. 한나라당이 8월 국회에서 KBS 수신료 인상을 단독으로 추진하는 문제는 남자들의 술자리에서 절대 꺼내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대신 프로야구 롯데의 성적과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경기결과, 박태환과 김연아의 위대함, 소녀시대의 섹시함과  '하의실종' 패션이 안주거리로 삼아야 즐거운 술자리가 된다. 이것들은 결코 '사유'가 아니다.
 
아이히만의 '무사유'와 우리 시대의 '무사유'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 세대들의 '무사유'가 어떤 '악'을 낳을 것인가? 아니 어떤 '악'을 낳고 있는가? 앞으로 또 어떤 '악'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동참할 것인가?
(이미 한국인 대다수의 '무사유'와 '무행동'은 이미 부자감세와 4대강 죽이기,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축소, 빈부격차와 사회적 양극화, 재벌집중과 중소기업 피폐,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양산으로 나타났다.)
 
[ 2011년 8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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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공화국, 대한민국
김희수 외 지음 / 삼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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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에 대해 한판 코미디가 연출되었다. 웃기지도 않는 검찰의 행태를 보면서 평소 궁금증이 증폭되었고 그들의 그런 못된 짓거리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직접 알고 있는 판사는 없다. 하지만 현직 검사는 몇 명 있다. 고등학교 동창생 한 명, 대학교 동기생 한 명, 타대학 후배 한 명 정도다. 
고등학교 동창생은 3학년 내내 같은 반이 아니었기에 친하지는 않았지만 대학 다닐 때 고교동창회 자리에서, 졸업 후 재경 동창회 송년회에서 몇 번 자리를 같이 했다. 하지만 몇 년 전 송년회에서 그 검사 동창생 주변에서 그 친구에게 친한척 하면서 아양떠는 친구들과 친구들의 그런 모습을 즐기는 그 검사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대학 동기생은 80년대에 학생운동까지 함께 열심히 했던 다른 과 친구였다. 그 친구는 검사 초임시절 내가 다니는 직장과 지검 사무실에 가까워서 한 두번 식사를 같이했고 2000년에는 전국일주 하면서 친구들을 만나러 다닐 때 지방에 있던 그 친구와 저녁을 먹고 술도 한 잔 같이한 후에 그 친구 집에서 자기도 했다. 그 뒤에도 개인적으로 한 두번 만났고 그 친구가 서울에 올라온 작년 봄에 동기생들 모임에서 함께 즐겁게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영문인지 그 뒤로 그 친구는 동기생 모임에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후배 검사는 1992년 대통령 선거 때 시민단체 중심으로 구성한 공정선거감시단에서 함께 활동했던 후배였다. 감시단 활동이 끝나고 몇 년 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검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감시단 활동을 하던 다른 후배와 함게 2003년에 한 번 강남에서, 2007년에 인천에서 술을 먹기도 했다. 그 후배도 그 뒤로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
이렇게 직접 아는 검사들과는 좋은 추억도 많고 찜찜한 기억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검사들은 개인적인 자리에서 ’검사동일체’로 인해 폭탄주를 자주 마셔야 하고 과도한 업무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부정한 짓이나 부패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동기생 검사는 개인적으로 만날 때 가급적 자신이 술 값이나 식사비를 지출하려 했고 동기생 검사나 후배 검사 모두 개인적으로 부당한 청탁이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친구들이 검찰에 들어가서 어떻게 업무를 하고 정치적, 조직적 부당행위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내가 알 수는 없다.
 

그 이외에 내가 직접 알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검사들과 자리를 몇 번 했다. 대부분 사업하는 자들이 미래에 자신이 형사적인 문제에 얽혀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보험’을 드는 마음으로 검사들에게 술접대를 하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 참석해보면 그 검사가 나이가 어리든, 많든 접대하는 자들은 그저 검사들에게 잘 보이고 기분에 맞추려고 노력했고 접대를 받는 검사들은 그런 자리가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분위기를 즐겼다. 적지않은 경우 부담없이 ’2차’까지 자연스럽게 즐긴다. 그리고 그렇게 접대를 정기적으로 받으면 나중에 사업하는 자들이 필요할 때 그들의 편리를 봐주겠지만... 그런 검사들이 소위 ’섹검’이고 ’스폰서 검사’다.
 
이외에 검사와 맞딱드린 것은 모두 6~7 차례 되는데 대부분 회사 경영을 하면서 상대방과 충돌하게 되는 경우였다.
경찰이던 검찰이던 내가 상대한 모든 경찰관, 검사들의 특징은 ’권위적’이었고 증거가 아닌 ’진술 위주’로 조서를 작성했고 결정적으로 자신들은 하는 일이 거의 없고 대부분 고소고발인이나 피의자가 제출하는 자료에 근거하여 조사를 진행했다. 그들의 주된 조사 입장은 "죄가 없으면 당신이 그것을 입증해라"였다. 피의자를 범죄행위를 조사하고 입증해야 하는 것이 경찰과 검사의 1차적인 의무이자 역할인 것은 모든 형법과 재판의 원칙이자 제도일텐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최소한의 역할도 수행하려 하지 않았다.
재판까지 이어지면 더 가관이다. 우리나라 검찰 구조는 조사하는 검사와 재판정에 참여하는 검사가 분리된다. 소위 ’공판검사’라는 자가 법정에 들어와 조사한 검사가 전달한 서류만 가지고 재판에 임한다. 그들의 발언과 태도를 보면 사건에 대한 성실한 태도는 없고 그냥 일반 회사의 업무를 처리하듯이 관련 법규에 맞추어 질문하고 자료 제시하고 구형하는 모습으로 일관한다. 조사한 검사의 자료가 앞뒤가 맞는지, 추가조사할 내용은 없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다.
이런 한심한 검사를 상대하니 변호사도, 판사도 자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차피 상대적인 관계이니...
 
작년(2010년), 우리 사회에는 ‘떡검’, ‘섹검’,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등 신조어가 생겼다. 이는 MBC PD수첩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문제 검사를 일컫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지만, 오늘날 검찰의 이미지를 통칭하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이러한 말들이 나돌기 전부터도 여러 사건에서 검찰의 파행적인 모습을 본 국민들은 이미 검찰이 공정하게 검찰 업무를 수행하리라는 믿음을 접은 지 오래일 것이다. 검찰은 어느덧 국회에 이어 국민이 가장 불신하는 국가기관으로 자리를 잡았고, 일각에서는 검찰을 ‘떡검’을 넘어 ‘떡껌’으로까지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은 본디 사법 정의를 추구하며 공정한 법 집행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책무를 지닌 기관이다. 검찰은 별정직 공무원이면서도 스스로 준사법기관으로 인식되길 원하고 또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외압이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다른 공무원에 비해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한 검찰에 왜 ‘떡’, ‘섹’, ‘스폰서’ 등 민망한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붙어 통용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검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 인터넷에서 경제대통령이라 불리던 미네르바 박대성 사건, KBS 정연주 사장 사건,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등 국민의 실생활과 정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여러 사건의 배후에 검찰의 검은 칼날이 번뜩거리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과연 이명박 정부 때만 유독 파행적인 수사와 기소를 하고 비도덕적 행태를 저지른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까닭은 무엇일까? 검찰이 도대체 어떤 조직인지, 검찰의 권한은 무엇이고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자나 실무자, 언론 등은 나서서 국민의 궁금증과 의혹을 풀어주지 않고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은이들은 이러한 이상한 현상을 깨고자 평소 검찰 개혁 문제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연구와 사회적 실천을 진행해왔다. 대학 강단에서, 때론 인권연대나 참여연대 같은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통해, 또 사법제도 개혁 추진위원회나 검·경 수사권 조정 자문위원회 같은 위원회 활동을 통해, 그리고 언론을 통한 다양한 사회적 발언을 통해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그리고 검찰의 실체를 알 권리가 있는 일반 시민들에게 그들의 모습을 알리고 함께 개혁 방안을 모색하고자 1년 반에 걸쳐 이 책을 집필했다.  
 
------------- * 저자들은 누구인가? ------------
<김희수> 제29회 사법시험 합격해 서울, 수원, 군산 검찰청에서 검사로 재직했었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일했고 전북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지금은 법무법인 창조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 [병사들을 위한 군 인권법](공저) 등이 있다.
<서보학> 독일에서 형사법 학위를 받고 현재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사법을 강의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대법원 사법개혁위원회와 대통령 사법제도개혁위원회에서 전문위원 및 기획연구팀장으로 일했다. 현재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형법총론』『형법각론』(이상 공저) 등이 있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인권 운동가이다.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활동을 거듭하고 있다. 신학을 잠깐, 불문학을 아주 조금 공부했지만, 그건 학교 다닐 때 이야기일 뿐이고, 요즘은 형사사법 절차에 관심을 갖고 있다. 수사부터 재판, 형 집행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공부하고,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태훈>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사법을 강의하고 연구하는 형법학자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초창기부터 실행위원으로 일하다가 2009년 초부터 소장을 맡고 있으며,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활동한다. 지은 책으로 『판례 중심 형법총·각론』, 『사례 중심 형법총론』, 『떼법은 없다』(공저) 등이 있다. ---------------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검찰의 길을 묻다_검찰의 역사]에서는 이승만 정권부터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검찰의 역사를 밝혔다. 특히 반공이라는 명목으로 국민에 대한 인권 침해가 스스럼없이 자행되던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때로는 독재의 주구로, 때로는 인간 파괴를 조장하는 법률 기능공으로 고문 사건, 조작 사건을 은폐하고 엄호하면서 권력에 기생한 검찰의 모습을 주요 사건 중심으로 파헤쳤다. 검찰은 옳은 방향으로 검찰권을 행사하려는 몇몇 소신 있는 검사의 싹을 자르면서, 정의의 수호자라는 소임을 외면한 채 정권의 입맛대로 움직이고 그 대가로 서서히 권력의 저변을 확대해온 것이다. 본연의 책무를 넘어 국민 여론의 심판관으로 행세하며 임기도 없는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기까지, 검찰에는 이런 60여 년의 역사가 있었다.
 
제2부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다]에서는 한국의 검찰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독점 영장청구권, 독점 기소권, 기소재량권, 형 집행권 등 법률에 정해진 권한만도 막강한 데다 범죄 예방, 정보 수집 등 법률로 정해지지 않은 활동까지 벌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수사권을 검찰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데다 기소독점권, 기소재량권도 함께 가지고 있다. 즉, 법원의 판단에 앞서 검찰이 재량으로 죄가 되는지 아닌지를 결정해 영장청구에서부터 기소까지 모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다. 전 세계적으로도 같은 모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이 검찰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검찰이 정치권과 결탁해 표적 수사,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 등을 하거나 스스로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구조적인 여건이 조성된 셈이다.
 
제3부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_우리 시대가 바라는 검찰]에서는 이미 궤도를 이탈한 검찰 권력을 통제할 방안을 이야기한다. 법무부의 탈검찰화,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대검 중수부 폐지, 검찰권 분권화, 검찰에 대한 시민 감시와 사법적 통제, 감찰권 강화 등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검찰 권력이 더는 폭주하지 않도록 제어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검찰 스스로 혁신하지 않는다면 검찰 조직 전체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타율적 개혁을 강제 당하게 될 것이라고...
 
 
이 책을 보면 지끔까지 한국사회에서 검찰은 수사와 기소라는 권한을 아무런 제한 없이 쓸 수 있고 필요에 따라 마음껏 써왔다.
죄가 없는 게 뻔해도 수사를 진행하고 기소를 감행해서 당사자를 괴롭힌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가령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게 구체적인 범죄 혐의를 찾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검찰은 이미 사문화된 조문을 끄집어내어 그를 기소했다. 검찰의 기소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고 그를 기소한 법률적 근거인 전기통신기본법의 처벌조항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위헌법률이 되었으니 검찰의 패배가 분명하다. 하지만 정권의 의중을 좇은 충성의 대가로 검찰 조직은 기득권을 보장받고 사건 담당자들은 승진하여 더 많은 권한을 갖게 되었다. 나아가 검찰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면서 정의하는 권력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글쓰기도 검찰권 행사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일종의 공포감을 심어준 것이다. 법원에서 무죄가 나든 말든 수사와 기소권이 발동되면 피고는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받고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검찰이 의도하는 대로 분위기가 형성된다. 

국세청에 대한 1심 소송에서 승소한 후 법원의 조정 권고를 수용해 항소심을 취하한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 때만 해도 그렇다. 검찰은 법리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배임죄’를 이유로 정연주를 기소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법원의 권고에 따른 것이 죄가 될 수 있나’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지만 상부의 지시대로 기소를 감행했고, 정연주는 당연히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의도대로 정연주는 KBS 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정연주 전 사장과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정연주가 통합방송법을 근거로 KBS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해임권까지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사퇴 압력에 굴하지 않자 정연주에 대한 먼지털이식 내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별다른 비리 혐의가 드러나지 않으니 검찰은 대통령이 정연주를 해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무리하게 배임죄를 적용하여 기소한 것이다. 전형적인 표적 수사다.
한편 이명박 정부 최고의 파트너답게 대통령 사돈 기업 봐주기(효성그룹 사건), 대통령 친구 봐주기(천신일 사건), 공권력의 민간인 불법 사찰, 경제권력 봐주기 등 노골적인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를 해 국민의 빈축을 샀다. 검찰이 이러한 파행적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의 권력이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을 가장하여 민주주의 체제에서 교묘하게 빠져나가 있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민주주의에 적이 되고 있다.


한편, 법무부를 장악하고 한나라당 등 정치권과 국회를 장악하다시피 한 것도 검찰 세력들이다. 한쪽은 현직 검사, 다른 한쪽은 전직 검사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 몸담고 있는 곳이 검찰인가 국회인가의 차이만 있을 뿐, 한 식구나 다름없이 똘똘 뭉쳐 있다. 스스로 만들어낸 그런 환경을 바탕으로 검찰 세력의 권력욕이 우리 공동체의 안정성과 법의 지배를 파괴하는 형국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에 폐쇄적인 엘리트주의, (형식적으로 폐지되었으나 실제로는 살아 있는) 검사동일체 원칙이 버무려져 검찰은 한국 사회 전반에서 보이지 않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18대 국회의원 중에서 법조인 출신은 모두 59명이고 이 중 검사 출신이 22명으로 가장 많다. 판사 출신은 17명, 검사, 판사 경력 없는 변호사 출신은 19명, 법무사 출신이 1명이다. 

더 심각한 것은 검사 출신 정치인들의 위상과 역할이다. 이 책이 발간된 시점을 기준으로 국회의장(박희태), 한나라당 전·현직 대표(강재섭, 안상수)와 전·현직 사무총장(권영세, 원희룡), 최고위원(홍준표), 선거관리위원장(김기춘), 중앙위원회 의장(최병국) 등 한나라당에 포진한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면면은 화려하기만 하다.

성추행 사건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최연희(무소속)나, ’대구의 밤문화’ 운운하며 물의를 일으키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로 유죄를 선고받은 주성영도 검사 출신이다. 검사 출신들은 집권 여당에서 가장 확실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고 검찰 문제에 있어 가장 유능한 로비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 검찰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검찰을 이용해 집권과 정권 유지를 하려는 권력층과 그에 호응해 충성을 맹세하고 반대급부를 얻어내려는 검찰이 쥐락펴락하는 형국이 계속될 것이다. 이는 일부 정의로운 검사들에 의해 개선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극단적인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몇몇 검사를 처벌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검찰 바로 세우기가 시급한 까닭이 여기 있다.

 
이 책은 한국 검찰의 역사, 수사권과 기소권 독립이 좌절되는 과정, 검찰권 남용의 사례, 구조적인 문제점과 대책 등 모든 면에서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시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이나 형법 등의 자세한 조항이나 이론, 판례, 헌법과의 관계 등 독자들에게 어려운 내용은 모두 제거했기 때문에 독자들은 관심분야에 집중하여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필요한 중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저자들이 제시한 검찰 개혁 방안이 조속히 제도화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이 정치검사가 검찰에서 사라지고 다시는 정치검사가 나타는 토양을 제거할 수 있다.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후손들을 위해 일부 정치검사들이 검찰조직을 망가뜨리고 정부와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실망과 분노를 증폭시키는 상황을 계속 방관할 수는 없다. 그것은 성실하게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법과 제도와 양심에 근거하여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대다수 검사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조직폭력배같은 구조와 문화에서 올바른 검찰과 검사의 위상과 역할을 찾을 수는 없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지자체장과 시도 교육감 직접 선거처럼 지방 검찰청장이나 지방 경찰청장을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즉, 중앙 검찰청이나 경찰청은 두고 수사와 기소에 있어서 중앙과 지방의 검찰,경찰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법원의 경우에도 지방법원장은 직선으로 선출하게 될 것이다. 권력이나 자본이나 언론이 아닌, 국민들과 유권자의 엄정한 시선으로 통제되고 잘하면 재선되고 잘못하면 ?겨나는 제도가 우리나라 현실에 더 맞을 수도 있어 보인다. 
 
* 책 속의 문장
- 시민이 긴급조치를 위반하면 검찰은 어김없이 징역 15년 형을 구형했고 법원은 ’그대로 들었다 놓아버리는 식’으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했다. 이를 두고 한승헌 변호사는 ’정찰제 판결’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검찰은 긴급조치가 요구하는 가장 높은 형량을 구형하고 법원은 검찰의 주문과 똑같은 형량을 선고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반복되었다. (p.66)

- 후일 김근태 사건 담당 검사는 ’다리를 절룩거려 고문이 있었을 것으로 직감했으나 수사해달라는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아 수사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검찰 고위간부들의 고문 은폐 대책회의가 보도되기도 했다. … 1987년 6월 항쟁으로 세상이 조금 바뀌고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자 여론의 압력에 밀려 재정신청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김근태 사건에서도 검찰은 고문의 방조자이자 적극적인 조력자였을 따름이다. (p.81)

- 검찰은 ’권인숙이 조사받은 방은 안이 들여다보이는 곳이고 다른 경찰관들이 옆방에서 날씨가 무더워 모두 문을 열어 넣고 왔다갔다하는데 성고문이 있었다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며 성고문에 대해’혐의 없음’이라 결정했다. 겨우 폭언과 폭행에 의한 가혹행위 부분만 인정된다고 했다. 그나마 문귀동이 직무에 집착해서 벌인 우발적인 범행이고 경찰관으로서 그동안 성실하게 봉사했다는 이유를 들어 기소유예 결정을 했다. (p.89)

- 특정 정치 세력이나 정치인을 죽이거나 살리는 일, 특정 기업을 죽이거나 살리는 일,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2008년 촛불집회에서처럼 시민을 폭행한 경찰관은 단 한 명도 처벌하지 않으면서도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2000명 가깝게 처벌하는 일 등을 통해 검찰은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권력 집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대형 비리 사건에 대한 특수수사를 전담하면서 정치?경제?사회 영역의 주요 인사나 기업 또는 단체가 관련된 주요 (범죄) 정보도 검찰이 독점하고 있다. 검찰의 막강한 권력을 빗대 ’검찰 공화국’, ’검찰 파쇼’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이다. 정치권력이 집요하게 검찰을 장악하려는 것도 이런 까닭 때문이다. (p.147)

- 검찰이란 조직 자체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데, 그 막강한 권한이 모두 검찰총장 1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검찰총장은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지만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검찰청법 제34조) 따라서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권을 갖는 대통령 입장에서는 검찰총장 한 명만 장악하면 검찰 조직 전체를 안정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된다. … 검찰의 목소리가 외부에 전달될 때 그것은 다양한 의견의 형태가 아니라 단일한 하나의 의견으로만 전달된다. 목소리는 오로지 하나뿐이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검찰총장이거나 검찰총장의 사전 결재를 받은 그의 부하일 뿐이다. (p.165)

- 검사들은 초임 시절부터 선배들에게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다. 엘리트주의는 패거리 문화로 연결된다.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하기에 굳이 검찰 외부의 시선 따위엔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영역에는 가혹하면서 스스로에겐 관대한 것도 특유의 패거리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2010년 ’그랜저 검사’ 사건에서 서울중앙지검이 해당 부장 검사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 2001년부터 2010년 8월까지 징계를 받은 검사는 모두 31명뿐이었다. 이 중 해임은 1명, 면직은 3명뿐이었고 근신, 견책 등 가벼운 징계를 받은 사람이 14명으로 절반이 넘었다. 2001년, 2002년, 2005년에는 징계를 받은 검사가 1명도 없었고, 2006년 2008년에는 1명뿐이었다. 근신, 견책 다 합해봐야 1년에 겨우 3명 남짓한 검사가 징계를 받았을 뿐이다. (p.176)

- 대검 중수부는 검찰의 최정예 반부패 수사 부서라고도 하지만 정작 대검 중수부가 기소한 사건의 1심 무죄율은 검찰의 전체 형사사건 평균 무죄율보다 훨씬 높다. … 일반 형사사건의 무죄율보다 대검 중수부의 무죄율이 30배 이상 높게 나타나는 것은 대검 중수부가 다루는 적지 않은 사건들이 정치적 고려에 의해 수사를 진행하고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p.256)
 
[ 2011년 7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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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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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책장에 꽂아놓고 여러번 읽을만 하다.
 
지난 달 MB정부의 인사청문회에서 여러 명이 탈락하고 여러 명이 도덕적으로 상처를 받았다.
국무총리 후보 김태호씨와 문화부장관 후보 신재민씨...
그들은 불법행위를 저질렀는가? 아니면 부도덕한 행위를 한 것인가?
특임장관 후보와 이재오씨와 경찰청장 후보 조현오씨는 과연 ’정당’한가?
21세기 한국사회는 ’정의’나 ’도덕’에 대해서 너무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오피니언 리더들의 경우 더 심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도덕 기준’을 가지고 있을까??
  
"당신은 전차 기관사이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철로를 질주한다고 가정해보자.
저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 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 있다. 전차를 멈추려 했지만 불가능하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속도로 다섯 명의 인부를 들이받으면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을 알기에(이 생각이 옳다고 가정하자.) 필사적인 심정이 된다.
이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지만, 한 명이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 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돌려! 죄 없는 사람 하나가 죽겠지만, 다섯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목숨을 구하는 행위는 정당해 보인다.
이제 다른 전차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 있는 구경꾼이다.(이번에는 비상 철로가 없다.)
저 아래 철로로 전차가 들어오고, 철로 끝에 인부 다섯 명이 있다. 이번에도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전차가 인부 다섯 명을 들이받기 직전이다.
피할 수 없는 재앙 앞에 무력감을 느끼다가 문득 당신 옆에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어서 전차가 들어오는 철로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면 남자는 죽겠지만 인부 다섯 명은 목숨을 건질 것이다.
(당신이 직접 철로로 몸을 던질 생각도 했지만, 전차를 멈추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다.)
그렇다면 덩치 큰 남자를 철로로 미는 행위가 옳은 일인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연히 옳지 않지. 그 남자를 철로로 미는 건 아주 몹쓸 짓이야."
누군가를 다리 아래로 밀어 죽게 하는 행위는 비록 죄 없는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해도 끔찍한 짓 같다.
그러나 여기서 애매한 도덕적 문제가 생긴다.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사람을 구하는 첫 번째 예에서는 옳은 것 같았던 원칙이 왜 두 번째 예에서는 잘못된 원칙으로 보일까? "
(책의 본문 중에서 / pp.36~40)
 
이 책은 저자가 하버드대학에서 20년간 수강생들에게 ’정의’와 ’도덕’에 대하여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엮은 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는 사회에서 정의에 대해 묻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이 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다 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서구와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런 ’정의’를 묻고 논의하기 시작했고
대립하는 여러가지 주장을 검토하면서 ’재화 분배’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찾았다.
그것은 행복과 자유와 미덕이었다.
저자는 세 가지 개념에 대한 사례와 이론을 검토하면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도덕적 진실과 도덕적 사고, 도덕적 판단을 위해 정치철학을 탐구하자고 제안한다.
 
이 책이 아리스토 텔레스, 칸트, 제레미 반담(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자유지상주의),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어려운 고대와 근현대 정치철학을 다루고 있음에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읽었다.
그것은 저자가 아래와 같은 상당히 많은 사례와 샘플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의 구체적인 고민을 이끌어내면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논쟁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 철로에 서 있는 인부들을 어떻게 구출해야 하는가?
- 2004년 플로리다를 덮친 허리케인의 악몽 속에서 물품과 서비스 가격을 10배 이상 올려 폴리를 취한 업자들을 처벌해야 하는가?
- 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수 있을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는가?
- 2008년 미국 금융계가 구제금융을 받은 후에 임원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한 것은 부당한 행위인가?
- 2005년 아프카니스탄에 비밀정찰업무로 파견된 미국 특수부대원들이 정찰 중에 염소치기 민간인(아파카니스탄인과 어린이)을 발견하였을 때 이들을 사살해야 했을까? [당시 미군들은 그 민간인들을 살려주었고 몇 시간 후 탈레반들에게 포위되어 세명이 죽고 구출하러온 헬리콥터도 파괴되어 추가로 16명이 죽었다.)
- 1884년 영국 선원 4명이 배가 난파되어 구명보트에서 구조를 기다리다가 19일째 되는날 가장 어리고 병약한 젊은이를 살해하여 5일간 식용으로 먹은 후 구조되었다. 이들을 처벌해야 하는가?
- 한 때 한국 젊은이들이 푹 빠진 미국 드라마 ’24시’에서 주인공 잭 바우어는 테러리스트라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고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은 정당한가?
- 대가를 받는 임신은 권리나 합리적 계약인가, 부도덕한가?
- 마이클 조던이 마직으로 NBA 무대를 뛸 때, 그는 한 시즌에 3,100만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이 때 정부가 조던의 연봉에서 상당한 세금을 부과하여 가난한 이들의 복지에 사용하는 것은 조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 2001년 독일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자가 인터넷에 ’죽어서 먹힐 의향이 있는 사람을 찾는’ 광고를 올려 찾아온 컴퓨터기술자를 죽여 시체를 토막낸 뒤 요리해 먹었다.
이 때 그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까?
- 군대에 대한 봉급제, 징집제, 자원제, 용병제는 도덕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이러한 정의와 부정의,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하여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사상의 역사가 아닌 도덕적, 철학적 사고를 여행한다.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가 책 속에 등장하지만 정치사상사에서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정의’와 ’도덕’에 대한 주요 이론과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아리스토 텔레스 : "정의는 목적론에 근거한다. 권리를 정의하려면 문제가 되는 사회적 행위의 ’텔로스(목적,목표,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바이올린은 세상에서 가장 바이올린을 잘 켜는 자가 차지해야 한다.
2. 제레미 반담 : 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쾌락이 고통을 넘어서도록 하여 전반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 사람들의 옮은 행위는 ’공리’를 극대화하는 모든 행위.
3. 존 스튜어트 밀 :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면서 개인을 보호하려 들거나 다수가 믿는 최선을 삶을 개인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4.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 "경제평등을 성취하려는 시도는 하나같이 강압적이고 자유사회를 파괴하기 마련".
  "국가가 할 일이라고 널리 인식된 행위 가운데 상당수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법행위".
5. 로버트 노직 : 분배정의를 구현하려면 돈을 벌 때 사용한 자원이 애초에 합법적인 소유물이었는지, 시장에서 자유로운 교환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이 건네준 선물로 벌었는지가 중요하다. 부당하게 얻은 것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하지 않는 한 자유시장에서 분배는 그 결과가 평등하든 불평등하든 정당하다.
6. 이마누엘 칸트 :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선하려면 "도덕법에 순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덕법 그 자체에 기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동기는 의무인데, 칸트가 말하는 의무 동기란 올바른 이유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6. 존 롤스 : "자연의 분배방식은 공정하지도, 불공정하지도 않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특정한 사회적 위치에 놓이는 것 역시 부당하지 않다. 그것은 타고나는 요소일 뿐이다. 공정이나 불공정은 제도가 그러한 요소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우리가 그러하 요소를 다룰 때, 서로의 운명을 공유하고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이거나 사회적인 환경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면 그 행위가 반드시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존 롤스의 이론을 결론으로 삼고 그에게서 21세기 미국의 ’정의’와 ’도덕’을 찾는 듯 하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의를 좋은 삶에 대한 논의에서 분리하려는 시도는  두 가지 이유로 잘못이다.
본질적인 도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결정할 수 없고,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려운 정치철학의 개념과 이론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편하게 풀어나간다.
하버드에서 그를 유명하게 만든 실제 정의 수업의 방식은 이 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도발적으로 질문하고, 반박하고, 재검토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은
다원화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각계 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저자가 제시한 수 많은 사례는 한국사회,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않게 벌어지는 여러가지 사건과 상황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 역시 ’정의’나 ’도덕’에 대해 자주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으니까... 
그나마 머리 속에서 웅얼대고 혼란스러웠던 ’정의’와 ’도덕’에 대한 저자의 논리와 의견을 접하고서
내 나름대로 여러가지 해석 및 판단기준을 세울 수 있음이 이 책을 읽은 소득이고...
 
이 책을 읽으면서 부러웠던 점은,
중요한 철학적, 도덕적 쟁점과 개념을 공개적으로 오픈하고
다양한 사람과 계층, 집단이 상대방의 의견과 주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공공연하게 펼치는 점과
그것을 이성적,논리적으로 헤쳐나가려 하는 노력한다는 점...
아마 그런 토대가 19세기와 20세기에 서구와 미국이 지구의 정치경제와 문화사상을 주도하게 된 근본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서구식, 미국식 ’정의’와 ’도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비록 내가 한국, 중국 등 동양의 고전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고
결과적으로 동양이 서양 문물에 경도되어 왔던 20세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이 책 속에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고 부족한지 지적할 수는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고 무언가 안타깝고 아쉬웠다.
 
물론, 나의 ’부덕’과 ’무지’의 소치이지만...ㅎㅎ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 들어가는 말

[1] 옳은 일 하기
1. 행복, 자유, 미덕
2. 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3. 구제금융을 둘러싼 분노
4.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
5. 철로를 이탈한 전차
6.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7. 도덕적 딜레마

[2] 최대 행복 원칙
1. 공리주의
2.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3. 반박 1: 개인의 권리
4. 반박 2: 가치를 나타내는 단일통화
5. 대가를 받고 치르는 고통
6. 존 스튜어트 밀

[3]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1. 자유지상주의
2. 최소국가
3. 자유시장 철학
4. 마이클 조던의 돈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4] 대리인 고용하기
1. 시장과 도덕
2. 징집과 고용, 무엇이 옳은가?
3. 자원군 옹호
4. 대가를 받는 임신
5. 대리 출산 계약과 정의
6. 외주 임신

[5] 중요한 것은 동기다
1. 이마누엘 칸트
2. 칸트의 권리 옹호
3. 행복 극대화의 문제점
4. 자유란 무엇인가?
5. 사람과 사물
6. 도덕이란 무엇인가? 동기를 찾아라
7. 도덕의 최고 원칙은 무엇인가?
8. 정언명령 대 가언명령
9. 도덕과 자유
10. 칸트에 대한 의문
11. 섹스, 거짓말, 그리고 정치

[6] 평등 옹호
1. 존 롤스
2. 계약의 도덕적 한계
3. 합의만으로는 부족할 때: 야구 카드와 물이 새는 변기
4.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을 때: 흄의 집과 유리닦이
5. 이익인가, 합의인가? 샘의 자동차 수리
6. 완벽한 계약 상상하기
7. 정의의 원칙 두 가지
8. 도덕적 임의성 배제 논리
9. 평등주의 악몽
10. 도덕적 자격 거부하기
11. 삶은 불공평한가?

[7] 소수집단우대정책 논쟁
1. 시험 격차 바로잡기
2. 과거의 잘못 보상하기
3. 다양성 증대
4. 인종별 우대정책은 권리를 침해하는가?
5. 인종분리정책과 반유대적 할당제
6. 백인 우대 정책?
7. 정의는 도덕적 자격에서 분리될 수 있는가?
8. 대학이 경매로 입학생을 뽑아도 될까?

[8]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1. 아리스토텔레스
2. 정의, 텔로스, 영광
3. 목적론적 사고: 테니스 코트와 [곰돌이 푸]
4. 대학의 텔로스는 무엇인가?
5. 정치의 목적은 무엇인가?
6.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7. 행동으로 터득하기
8. 정치와 좋은 삶

[9]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1. 충직 딜레마
2. 사죄와 손해배상
3. 조상의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하는가?
4. 도덕적 개인주의
5. 정부는 도덕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6. 정의와 자유
7. 공동체의 요구
8. 이야기하는 존재
9. 합의를 넘어서는 의무
10. 연대와 소속
11. 애국심이 미덕인가?
12. 연대는 우리 사람만 챙기는 편애인가?
13. 충직이 보편적 도덕 원칙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14. 정의와 좋은 삶

[10] 정의와 공동선
1. 중립을 지키려는 열망
2. 낙태와 줄기세포 논란
3. 동성혼
4. 정의와 좋은 삶
5. 공동선의 정치 

[ 2010년 9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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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고 - 잊혀진 제국 발해를 찾아서, 오래된 책방 11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1
유득공 지음, 정진헌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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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훑어보던 중 책 뒤쪽에 몇 가지 유형의 ’고전’이 소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고전으로 소개되어 있는 책들 중, 문득 [발해고]가 눈에 띄었다. [열하일기]나 [죄와 벌]과 같은 책들은 많은 곳에서 ’고전’ 또는 ’인문고전’으로 소개되어 있는 [발해고]는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책만 사놓고 아직 읽어보지는 못함...ㅋ)
 
어떤 인터넷 서점에서는 이 책을 ’우리 사학사에서 최초로 발해사를 체계화시킨 조선시대 실학자 유득공의 저작이 완역’한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실제 [발해고]는 1784년(정조 8)에 지은 것으로 한국 최초의 발해사이다.
 
[발해고]는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 책 수십 종을 참고하여 발해((渤海, 존속 기간: 698년 - 926년))의 역사를 기록하며, 발해를 우리 역사에 최초로 포함시킨 책이다. 저자인 유득공은 이 책에서 고려가 발해사를 우리역사에 포함시켜 남북국사를 쓰지 않았던 점을 통렬히 비판했다. 발해고의 서문에 “고려가 발해사를 짓지 않아 고려가 끝내 약소국이 된 것 ... 참말로 한탄스럽다”고 썼다. 그러면서 고려 또는 고려 이후의 한반도 국가들이 발해의 영토를 되찾으려해도 근거가 없어져버렸다고 통탄한다. 
고구려의 후예 국가인 발해가 멸망하면서 만주 대륙은 우리의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영토가 되고 말았다. 유득공은 이러한 상황을 개탄하며 민족사의 무대를 한반도로 가두고, 중국의 시선으로 역사를 보던 당시의 풍토를 비판한 것이다.

당시 실학자들에게는 이처럼 기존의 시야를 넘어 역사를 널리 확장해서 보자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는데, 박제가도 이 책의 서문에서 “압록강 밖으로 한걸음도 내딛지 못했”던 역사를 한탄하며 이 저술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동북공정으로 중국이 우리의 북방사를 자기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고 고대사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상항에서 유득공의 [발해고]는 후손들인 우리가 한 번 쯤 읽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렇다고 만주 땅이 우리 땅으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공공연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역사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제대로 밝히고 증명하고 정리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유득공의 저술이 의미 있는 것은 이 저술이 감정적 언사나 주장으로 치장된 것이 아니라 당시 실학 시대의 영향으로 옛 문헌에 대한 고증과 나름의 과학적인 지명 추적 등으로 확실한 증거를 통해 이 저술을 완성한 점에 있다.  
 
----------------- 저자 유득공(柳得恭)은 누구인가? --------------------
자는 혜보(惠甫), 호는 영재(泠齋)·고운(古芸)이며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서족 출신으로, 20대 시절부터 박지원을 중심으로 한 동인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북학파’ 또는 ‘이용후생학파’로 불린다. 정조의 지우를 입어 규장각 검서(檢書)로 발탁된 뒤, 제천·포천·양근 군수 및 풍천부사를 역임하는 등 내외직을 오가며 국고·문헌 정리사업에 이바지하였다.
시에도 뛰어나 이덕무·박제가·이서구와 함께 조선후기 ‘사가시인(四家詩人)’의 한 사람으로 불렸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 [발해고(渤海考)]를 편찬하였으며, 우리나라 옛 도읍지를 돌아보고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를 지었다.
연행을 세 차례 다녀왔는데, 1790년 열하를 다녀온 뒤에 [열하기행시주(熱河紀行詩註)]를 지었다. 이 작품에는 연행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예리한 시선과 섬세한 필치로 형상화한 유득공의 빼어난 시들이 실려 있을 뿐 아니라, 화이론(華夷論)과 같은 중국중심주의에 매몰되지 않은 주체적 역사의식이 담겨 있어 여타의 연행록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받고 있다.
이외에도 [영재집(泠齋集)], [사군지(四郡志)],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경도잡지(京都雜誌)], [연대재유록(燕臺再游錄)], [병세집(竝世集)], [발합경(??經)], [삼한시기(三韓詩紀)] 등의 저술이 있다. -------------------------
 
이 책은 저자의 유득공과 발해고에 대한 총평, 박제가의 서문, 유득공의 서문, 인용한 문헌, 그리고 [발해고]의 본문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해고]의 본문은 발해의 역대 임금, 발해의 신하들, 발해의 지리, 발해의 관직, 발해의 의장, 발해의 특산물, 발해의 언어, 발해의 외교 문서, 발행의 후예로 나누어져 있다. 
<군고>는 역대 왕의 약전과 사적이다. 대조영의 아버지 진국공(震國公)부터 시작하는데, 그는 속말말갈인(粟末靺鞨人)으로 고구려에 귀순한 사람이라고 했다. <신고>는 열전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약 83인의 인물이 수록되었다. 비록 짧은 기록들이기는 하나 사실만 간략하게 적었을 뿐 주자학적인 가치평가나 사론은 없다. 지리는 5경15부62주를 <신당서>와 <청일통지 淸一統志>에 소개된 내용으로 각각 전재했다. 지명마다 저자의 고증은 붙이지 않고 끝에 5경의 위치와, 발해와 신라의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간단한 비평과 고증을 했다. <의장고>는 공복제도, <물산>은 토산물이며, <국어>는 발해의 칭호로, 왕을 가독부(可毒夫)·성왕(聖王)·기하(基下), 명(命)을 교(敎), 왕의 부친을 노왕(老王)이라 했다고 한다. <국서>는 무왕·문왕이 일본에 보낸 것이다. <속국>은 정안국(定安國)에 관한 것으로 마한의 종(種)이라고 보았다.
 
유득공은 발해가 망한 후, 이 지역에는 여진과 거란이 들어왔는데, 고려 정부가 급히 발해유민을 통해 발해사를 편찬해 이 지역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1명의 장군만 보냈으면 쉽게 토문(土門) 이북과 압록 이서지역을 장악했을 것이라 했다. 발해의 국가체제는 <군고 君考, <신고 臣考>, <지리고 地理考>, <직관고 職官考>, <의장고 儀章考>, <물산고 物産考>, <국어고 國語考>, <국서고 國書考>, <속국고 屬國考>의 9고(九考)로 구성했다. 이는 정사(正史)의 세가(世家)·전(傳)·지(志)의 형식을 딴 것이다.


[발해고]의 분량은 많지 않고 <의장고> 이하는 더욱 간략한데, 이는 자료부족 때문이다. 저자는 10만의 발해유민이 고려에 귀순했음에도 고려가 발해의 자료를 보존하지 않아 결국 문헌이 산일되었음을 한탄하고 있다. 자료는 책머리의 인용서목에 따르면 [삼국사기, [고려사] 등 우리나라 책과 [당서 唐書], [오대사 五代史], [요사 遼史], [송사 宋史], [일본일사 日本逸史], [속일본기], [대명일통지 大明一統志], [성경통지 盛京通志], [문헌통고], [통전 通典], [만성통보 萬姓統譜] 등 22종의 책을 참조했다. 기사에는 일일이 주나 출전을 밝히지 않았으나 고(考)마다 끝에 ’안’(按)이라고 하여 큰 문제에 대한 자료비판과 고증을 달았다. 

 
[유득공은 서문]에서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 저술을 “사史라고 자처하지 못하고 고考라고 한 것은 사서로서 체계를 못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스스로 이 저술이 가진 사서로서의 부족함을 토로한 것인데, 그 부족함이란 유득공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즉 사서가 남겨져야 했던 시점이 한참 지난 후대에 씌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그리하여 유득공은 고려에 저술되어야 마땅한 것이 조선 후기에 와서야 씌어진 것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유득공은 한탄만 하지 않는다. 발해가 언급된 무수한 사서들을 국적을 가리지 않고 참조하면서 발해사를 다시 쓰려 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발해와 관련된 사실史實들은 그의 검증 작업을 통해 체계화되었다.
이러한 작업은 서자 출신임에도 능력을 인정하고 등용한 정조의 배려에 의해 가능했다. 정조는 유득공에게 평생 방대한 문헌들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검서관 직함을 맡겼는데, 이것이야말로 [발해고] 저술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유득공은 수차례 중국을 다녀오며 옛 문헌에서 확실한 증거를 찾아 이론을 만들어 나가는 고증학이라는 선진 문물을 접한 후 그 선진적 방법을 사용하여 [발해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유득공의 한반도에 대한 역사관은 단군 조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792년(정조 16년) [사군지 四群志]에서 단군 조선, 기자 조선, 위만 조선의 ’3조선 시대’를 거쳐 한사군(낙랑군, 임둔군, 현도군, 진번군)의 4군 시대, 2군 시대(현도군과 낙랑군), 그리고 3군 시대(현도군, 낙랑군, 대방군)를 지나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립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3국 시대는 다시 ’남북국 시대’(발해와 통일신라)로, 그 뒤에는 고려로 이어지면서 발행 영토의 대부분을 여진에게 넘겨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조선은 고려의 뒤를 이었으므로 그 뒤로는 여전히 우리의 옛 판도를 모두 보유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유득공은 우리나라의 통일은 신라에서도 고려에서도 조선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았다. 신라와 발해가 양립했던 남북국 시대 이후 발해의 영토는 대부분 여진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통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역사의식은 중국 중심의 시각에서 자유로운, 한국사의 무대를 북방 만주 대륙으로 확대하여 바라보았던 조선 후기의 역사가인 안정복이나 김정호 등 학자들의 인식 체계에 바탕이 됐으며,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며 우리 역사 인식에 근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과거의 ‘통일신라 시대’라는 용어 대신 ‘남북국(南北國)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1990년부터 국사 교과서에 ’통일신라와 발해’라는 소단원을 ’남북국시대’로 변경하시 시작하였고 함). 남북국 시대는 유득공이 최초로 만들어낸 개념으로, 발해를 우리 역사 속으로 편입시킨 개념이다.
대한제국 시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남북국시대’는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침탈한 후 한반도의 역사를 왜곡하면서 ’통일신라 시대’로 바꾸어 놓게 되었다. 이러한 일제의 사관은 1945년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1980년대까지 교과서에 사용된 것이다. 그 이유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지만..) 한국 역사학계에 일제에 의해 교육을 받거나 일본식 사관에 젖어든 채 한반도 역사에 대해 전면적인 재조사 및 재연구를 진행하지 않은 역사학자들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이승만은 일제 앞잡이들로 구성된 정부관료로 구성되어 있었고 박정희 역시 일본군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결곡 그들이 정치권과 학계에서 사라질 때까지 발해는 한반도의 역사로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했다. 이 또한 한국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이며, 일제 잔재로서 청산해야할 대상이다.
이 용어가 교과서에도 사용된 것은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발해사를 한반도의 역사로 인정했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유득공의 역사 인식이 타당성을 갖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발해고]는 한반도의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시키고 한국인의 뿌리를 찾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정치와 역사관에 대해서도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그것은 현재의 정치에서 선택, 결정, 실행하는 것들이 500년, 1천년 뒤의 역사와 후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려의 태조 왕건이 발해로부터 유입된 왕족과 신하, 유민들을 통해 ’발해사’를 정리하고 이후 고려가 융성할 때 거란족이나 여진족, 이후 만주에 흩어진 각종 만주족들을 정벌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했으면 조선시대 이후의 한반도의 역사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한국현대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21세기는 분명 지금과 다른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지난 역사 뿐 아니라 21세기 현대에도 마찬가지의 교훈이 적용될 수 있다. 현재 이명박 정권과 정당, 사법부와 학자들,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100년 뒤, 1천년 뒤 우리의 후손들이 그 결과를 감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료독재, 언론독재, 재벌독재, 기득권독재로 유지되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한-미 FTA와 한-EU FTA가 어떤 사회경제적 폐해를 가져올 것인가? 남북 화합이 아닌 남북 대결 구조가 또다시 전쟁을 불러올 것인가? 정치권과 언론계, 사법부와 지식인사회, 시민단체와 국민 개개인은 이런 질문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안들을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모든 문제는 다양한 계층과 세력들간의 협의와 타협에 기초하여 판단되어야 한다.
 
정조시대 유득공과 실학자들이 제시한 ’실사구시’와 ’이용후생’, ’경세치용’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자유롭고 폭 넓은 이념적, 학문적 논의와 실험을 폭력으로 짓밟은 조선국의 말로와 조선 민중의 파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 2011년 7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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