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대통령 - 노무현, 서거와 추모의 기록 1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한걸음더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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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가 집 안의 모든 커튼을 내리게 했는가?
누가 그가 그를 보고싶은 사람도 보지 못하도록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했는가?
누가 책도 못 읽도록 만들었는가?
누가 연구도 못하게 글도 못쓰게 만들었는가?
누가 그의 꿈의 강제로 접게 했는가?
누가 그에게 삶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는가?
누가 그를 자살로 몰고 갔는가?
우리는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 책은 노무현 전대통령이 삶을 포기하도록 전개된 2009년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서거 배경과 7일간의 추모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MB의 집권으로 시작된 대통령기록물 사건...
촛불시위와 MB의 위기...
’봉하마을 할아버지’에 대한 MB의 적개심...
’먼지떨이 수사’와 ’피의사실 공표’의 등장...
집요한 하이에나, 보수언론...
전국 봉하마을의 슬픔...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은 공식출범 이후 첫 번째 추모기록사업으로 ‘내 마음속 대통령-노무현, 서거와 추모의 기록 1’을 펴냈다. 노무현재단 기록위원회 윤승용 위원장(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출판 배경을 “이 책은 노 대통령 서거와 수백만 국민의 추모과정을 사실대로 정리해 역사적 기록으로 보존하고 국민에게 보고하기 위해서 재단이 추진하고 있는 기록화 작업의 첫 번째 결실”이라고 말했다.
 
"만일 사건이 이대로 굴러가면 검찰은 기소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검찰의 판단이 잘못된 것으로 결론이 나왔을 때, 그리고 검찰의 수사과정의 무리와 불법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대한민국 검찰의 신뢰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황이 이러하니 수사팀은 새로운 증거가 나올 때까지 증거를 짜내려고 할 것입니다. 이미 제 주변 사람들은 줄줄이 불려가고 있습니다. 끝내 더 이상의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건이라도 만들어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검찰권의 행사가 아닙니다. 권력의 남용입니다." - 본문 중에서 -
 
"이미 제 주변에는 사람이 오지 않은 지 오래됐습니다. 저도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조심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심을 하지 않아도 아무도 올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미 모든 것을 상실했습니다. 권위도 신뢰도 더 이상 지켜야 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저는 사실대로, 그리고 법리대로만 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검찰의 공명심과 승부욕입니다. 사실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
- 4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쓴, ‘부치지 않은 편지’ 중에서 - 

사람들은 노무현을 어떻게 기억하며, 어떻게 그를 떠나 보낼수 있을까?
노무현편지 내용에는 상실돼 버린 도덕적 권위에 대한 노 전대통령의 깊은좌절감도 엿보인다.  

수 백만명의 국민을 울리고 가슴 아프게 하고 후회하게 만든 그날의 기록...
1년이 지났음에도 그 기록은 다시 읽어도 그 때와 같은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2010년 5월 나는 무엇을 꿈꾸며 사는가...
 

[ 2010년 05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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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순 씨를 빌려 드립니다 - 대한민국 상상력 업그레이드 교과서
박원순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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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훈이가 쫒겨난 뒤, 서울시장 선거가 이제 1개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1개월 동안 한국사회는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8월 24일)과 5세 훈이의 사퇴 -> 곽노현교육감 '2억' 사건 -> 안철수 현상 -> 안철수 박원순에게 양보 -> 한명숙씨 후보 포기...
 

일부 언론에서 기존 정당 후보들에 비해 앞도적인 여론조사 지지율을 보이던 '안철수 현상'이나 '박원순 현상'에 대해 처음에는 '잠시 지나가는 태풍'으로만 여겼지만, 오랜 기간 동안 그 현상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밑바닥에는 '정치혐오'에 대한 국민들, 서울시민들의 반발감도 존재하지만, 그와 동시에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들, 서울시민들의 기대감과 의지도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되새겨 보면 기억할 수 있지만,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의의는 5세훈식, 한나라당식 경제운영을 지속하느냐, 아니면 사회복지와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중심으로 한국정치와 경제를 운영할 것이냐의 시발점이 됩니다.

이번 선거의 결과가 곧바로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의 향방을 제시할 것이며, 한국정치의 개혁과 세력교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의 대부분 중산층과 하류층은 하루하루 생존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 24년 동안의 과정이 말해줍니다. 1987년 항쟁을 통한 '87년 체제' 이후 조금씩 발전하던 한국사회가 기존 정당과 정부관료, 기득권층에 의해 썩어들어가면서 1997년 'IMF 사태'를 맞이하면서 사회적 양극화와 빈부격차,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체제에의 편입, 금융자유화의 부작용, 수출중심과 대기업 편중의 경제구조, 사회안전망의 부실이 누적되어온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무모함과 부동산 거품, 경기부양, 재정적자가 이어지면서 2007년 미국발 경제위기는 지난 5년간 잠복되어 있다가 올해 다시금 폭발하고 있습니다. 해외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세계에서 톱 클라스인 한국 역시 그 파도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지난 9월 7일 email로 보내드린 <복지국가를 위한 시민정치운동과 사회연대운동>에 관한 글을 읽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가 직접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야권단일후보가 될 것인가, 그리고 단일후보가 되어 한나라당의 나경원을 꺽을 것인가는 이제 서울시민의 손에,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어제(24일) 박원순씨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야권단일후보 협상이 결렬될 위기를 맞자,  '정치적 이해관계를 타산하느라 시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안된다며 민주당이 제시한 단일화 경선방식을 조건없이 수용했습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또 다시 정당이기주의에 빠져버려 우리를 실망시켰습니다...)

'경선방식'에 대한 유불리를 떠나 단일후보를 전제하고 서울시민을 믿겠다고 마음 먹은 것입니다.

(역으로 단순하게 여론조사 방식으로 야권단일후보를 세우게 되면 서울시민들이 스스로 서울시장 후보 선출과 정치개혁의 주체로 참여할 수 없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박원순과 안철수, 그리고 다시 박원순...

국민들이 생전 본적없는 대의를 위한 라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대단하다 싶기도 하겠지만 그게 왜 큰 결단이고 양보인지는 쉽게 다가오지 않기도 합니다. 

 

을 위한 방식으로 민주당이 제안했고 박원순 변호사가 수용했다는 경선 방식은 여론조사 30%, TV토론 후 배심원평가 30%, 국민참여경선 40%를 합산해 1위 후보를 선출하는 것입니다.

 

여론조사와 TV토론 후 배심원평가는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을 섭외해 의뢰하기 때문에 비교적 현재 서울시민의 여론 흐름을 반영할 수 있으면 있는 방법입니다.  

문제는 국민참여경선 40%를 반영하는 룰입니다. 박원순 변호사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룰입니다. 

 

경선관리 기구는 국민참여경선인단 모집을 위한 하나의 홈페이지를 개통하고 그곳으로 경선인단 참가신청을 접수하게 됩니다. (9월27일 ~ 10월 1일 오전 사이) 콜센터는 신청자에게 전화를 해 본인가입 여부 등을 확인합니다.

추첨을 통해 경선인단에 선출되면 10월 3일 지정된 장소에서 투표에 참여하게 되는 절차입니다.
 

국민참여경선이 박원순 변호사에게 불리한 이유는,
 

첫째, 박원순 변호사 발목 잡는 선거법

선거법 상 박원순 변호사는 국민참여경선인단을 모집하면서 박원순을 표시할 수 없습니다. 사전 선거운동이 되기때문입니다.

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하는 캠프 역시 공식적인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반면 정당은 당명을 걸고 자당 후보를 위한 경선인단 모집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민주당 30만 서울시당원 VS 2천여 팬클럽 회원

시민참여경선인단 모집기간은 대략 만 4일(96시간)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경선인단 등록 홈페이지에 누가 많이 등록하게 될까요. 해보나 마나한 게임입니다. 

 

셋째, 25일(일) 민주당 전당대회 통한 조직가동 연습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진행되었고 박영선씨가 민주당 후보로 당선되었습니다.

전당원투표제라고 해서 당적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은 누구나 투표할 수 있었고 4명의 후보가 치열한 경합하였으니 민주당 조직을 일단 한 번 최대한 가동해본 셈입니다. 연락처도 새로 확보하고 연락망도 갖추겠죠. 

자연스럽게 박원순 변호사와 경선을 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보수세력이 주민투표를 통해 조직준비를 마치게 된 것처럼 말이죠. 
 

이렇다 보니 대다수 정치전문가들이 서울시장 선거 전망을 두고 박원순 "압승 구도에서 혼전 구도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박원순 변호사 스스로 절대 불리한 룰을 받아드림으로서 누가 야권단일후보가 될지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박원순 변호사가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배심원평가에서 비슷하더라도 40%의 국민참여경선에서 3:7 (박원순:민주당후보) 정도의 비율이 나온다면 지게되는 것입니다.
 

국민은 새로운 정치와 큰 변화를 바라고 있으며 그런 기대감으로 문재인, 조국, 안철수, 박원순 같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보냈고...

처음으로 박원순변호사가 그것을 실현하려고 하는데 결국 기성정당의 벽에 막혀 좌절된다면...ㅠㅠ

역시 정치를 바꾸는 것은 안되는구나... 그 한숨과 실망과 회의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그러고도 2012년에 야권통합과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말하며 지지를 호소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럼에도 박원순 변호사가 큰결단을 내리고 양보한 것은 '내 마음을 비우면 국민이 채워진다는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는 말처럼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파국을 막고자 합의하면서 국민의 참여를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박원순을 사랑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정치와 더나은 서울 바라는 모든 시민들이 함께할 것을 아래와 같이 제안드립니다.  

 

< 개천절(10월 3일)에 희망서울을 만들어 봅시다!!! >

 
이번 시민참여경선은 박원순후보에게 불리한 힘든 여정이 될 것같습니다만, 시민참여만이 이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려 4가지나 있습니다. 두 가지는 직접, 두 가지는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첫째, 여러분이 직접 시민참여경선 선거인단에 신청 후 참여하는 것입니다. 첫번째가 가장 중요한 참여입니다.(아래 참조)

        본인 뿐 아니라 가족, 친척, 친지, 친구, 지인들과 상의하여 가급적 함께 선거인단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선거인단은 10월 3일 장충체육관에 출석하여 투표하게 됩니다.

 

둘째, 여론조사를 위해 단일화 주최측에서 내일부터 전화가 올 수 있습니다. 이 때 정확하게 '박원순후보'를 눌러주시면 됩니다.

 

셋째, 시민배심원단을 요청하는 전화가 올 수 있습니다. 가급적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배심원단은 10월 3일 전에 토론회장에 참석합니다.)

 

넷째, '박원순 희망펀드'에 가입&투자하는 것입니다. 사이트(http://www.wonsoon.com/notice/fund)에 들어가면 펀드 조건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어제 26일 오후 8시 현재 2,349명으로부터 무려 14억8,500만원 모여졌습니다. 시장 선거비용 목표는 39억원입니다...)

 

위 네 가지 참여는 모두 이번 주, 이번 달(9월 30일) 밖에 할 수 없습니다.

[ 범시민야권단일화 위한 선거인단 모집 ]

 
<일정>
1. 9월 27일(화)부터 : 전화 (1566-1003)로 신청등록

2. 9월 28일(수)부터 : 인터넷으로 신청등록 -- http://www.win2011.or.kr/

3. 10월 1일(토) 낮 12시 마감

4. 10월 3일(월) 오전7시~오후7시 : 현장 투표 (장충체육관)
# 선거인단 선발은 20대와 30대를 묶고, 40대 이상을 묶어 인구비율로 추출합니다.
# 토요일 오후에 선거인단 선발 결과를 개인에게 전화로 통보하는데 3회의 전화를 안받으면 다른 사람에게 자격이 넘어갑니다.
 


 
[ 박원순 펀드 모집 ]
 

박원순펀드란  현역 정치인이 아닌 후보는 2011년 10월 6일 후보자 등록신청일까지 후원회를 할 수 없습니다.

깨끗한 선거자금으로 선거를 치르고자 고민한 박원순후보는 약정액을 입금하면 연금리 3.58%로 선거비용보전후 원리금을 전액 갚는 방식으로 공개모금을 하기로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급하고 부족하다는 이유로 많은 대통령 후보, 지자체장 후보, 국회의원 후보에게 크고 작은 선거비용을 준 경험이 있지만, 어느 누구도 법정 선거비용을 보전받은 후 돌려주거나 모아진 선거비용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전해들은 바 없습니다.

정당이든, 단체든, 정부든 지지자나 유권자, 국민들의 소중한 돈을 소중하게 사용할 뿐 아니라 어떻게 사용했는지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음모적인 관행이자 부도덕한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서울시장 후보 선거에서 박원순씨는 '박원순 펀드'를 통해 그동안 '안철수 양보' -> '한명숙 양보' -> 야권단일후보 경선방식 양보에 이어 선거자금을 깨끗하게 모집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당하게 돌려주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앞장서서 실천하고 계신 것입니다.

 

* 펀드방법은 약정희망자들이 박원순 후보 홈페이지 펀드 게시판(http://www.wonsoon.com/notice/fund)에서 진행합니다.

 



1. 모집주체 : 박원순 

2. 펀드 모금액 : 39억(서울시장 보궐선거 법정선거비용:38억8천5백만원) 

3. 펀드기간 : 2011년9월 26일 ~2011년9월30일 (39억이 달성하면 조기마감) 

4. 상환액 : 원금+금리(연)3,58%. 

5. 상환일 : 2011년 12월 25일 이전에 상환

(선거비용보전은 “선거일:2011년 10월26일”후 60일이내 환급) 

6. 이자소득세 원천징수,양도불가 

7. 차용증서 이메일로 발급

* 펀드 최소금액은 10만원 이상입니다.  상한액은 없습니다^^

한국정치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기존 정당의 혁신과 물갈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주시기 바랍니다. 

참여하고 실천하는 국민들의 노력이 한국정치의 수준과 국가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것이라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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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갇힌 사람들 - 불안과 강박을 치유하는 몸의 심리학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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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한국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모습들이 있다.
10대인 딸이 밥 먹기를 거부하기 시작한 어느 486 세대 엄마의 고민...
몸매를 고민하는 딸에게 "걱정마. 나중에 다 고쳐줄께"라고 큰소리치는 부모...
여직원의 옷차림과 몸매에 대해 툭 던지는 한 마디...
성형수술 비용도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
비만은 '게으름'이고 '자기관리 부족'이라는 편견...
다이어트와 휘트니스를 하지 않고 있으면 뭔가 꼭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다는 불안한 느낌...
케이블방송을 점령하고 어느새 지상파 방송에까지 등장한 '다이어트' 프로그램...

한국 10대 소녀들 중 쌍커플 수술을 한 비율이 50%를 넘는다는 이야기...
 
정말이지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가 몸, 외모, 아름다움, 몸매, 섹슈얼리티로 변해가고 있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그런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이 가장 크게 고통받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은 무엇일까?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공부모임에서 세미나 교재로 책 두 권을 선택했다. 하나는 이 책 수잔 오바크의 [몸에 갇힌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데보라 L. 로드의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
어제(20일) 저녁 공부모임에서 두 권을 읽고 오랜만에 10명 미만이 참석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참석자가 줄어드니 각자의 생각을 발언할 기회도 늘어나고 논의의 수준도 깊어졌다.
 
이 책은 몸의 불안을 야기하는 현대사회의 근본적 문제들을 파헤치면서, 우리가 자신의 '몸'과 올바른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을 제안한다. 저자 수지 오바크는 고(故) 다이애너 왕세자비를 상담했던 정신분석가로, 영국에서는 “프로이트 이래 가장 유명한 정신분석가”라고 평가받는다. 이 책은 그동안 몸의 문제를 천착해온 저자의 연구주제들을 총집결한 것으로, 저자가 상담했던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몸의 심리학’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나간다.(저서로 [비만은 페미니즘의 주제다](Fat is a Feminist Issue), [단식투쟁](Hunger Strike), [섹스라는 불가능성](The Impossibility of Sex), [먹는 것에 관하여](On Eating) 등이 있다.)

여기서 '몸의 심리학'이란, 신체적 고통의 원인을 심리적 문제에서 찾았던 전통적인 정신분석 이론과는 달리, 몸의 문제를 몸의 언어로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체적 증상은 단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그 자체의 욕구와 고통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신호다. 예컨대 요즘 사람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뚱뚱한 몸은 태만과 자기무시의 결과가 아니라, 몸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쏟아붓는 대중문화에 대한 거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마음이 몸을 장악한다는 기존 정신분석 이론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 시대 몸들을 재고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이 납득 가능하고 과학적인 근거나 실험으로 뒷받침되지 않아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내가 그동안 쉽게 생각하기 쉬웠던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을 뒤집는 주장은 조금 신선했다. 일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 중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을 여러번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10대 소녀나 대학생들의 다이어트나 식사패턴에 대해 가끔 들은 것과 내가 직접 직장에서 경험한 직장여성들의 식사습관이나 태도를 돌이켜 보면 한국에서도 적지않은 섭식장애자가 존재할 것으로 생각한다.(아직 한국인의 섭식장애에 대한 통계자료는 찾지 못했다.)
저자는 영국의 사례를 통해 섭식장애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사회에서도 유명인들의 다이어트 비법이나 성형 소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따라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하루에도 수 백, 수 천번씩 마주치는 방송 프로그램, 뮤직 비디오, 광고 이미지 속 8등신 몸매는 소녀와 여성들에게 이 시대의 가장 이상적인 '몸매'가 존재하고 추구해야 하며, 당신도 노력하면 멋진 S라인과 식스팩을 가질 수 있다고 속삭인다. 최신 유행을 따르는 사람이든 아니든, 오늘날은 누구나 자기 몸을 완벽하게 가꿔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제 몸은 태어나면서 엄마에게서 자연스럽게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게 되버린 것이다. 저자는 우리 시대의 몸들은 개인이 열심히 노력한(혹은 실패한) 결과를 보여주는 작품이 되어버렸음을 지적한다. 때문에 현대인들은 대중문화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강요하는 ‘단 하나의 몸(날씬하면서도 풍만한 서구적 이상)’을 갖기 위해 저마다 고군분투중이다.
이같은 과도한 집착은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식이장애, 비만, 신체이형장애, 성형중독 등 심각한 부작용들을 낳고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예외적 사례에 지나지 않았던 식이장애는 오늘날 대부분의 10대들이 경험하는 일상이 되었고, 이제 막 세계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나라들에서는 다이어트와 성형 열풍이 함께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시대는 신체 불안정화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우리의 몸은 비정상적인 열망과 혼란에 둘러싸여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경험하는 ‘몸의 불안’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전염병’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쩌다 우리의 몸은 심각한 무질서와 괴로움의 장소가 되어버린 걸까? 어떻게 하면 다시 예전처럼 몸과 더불어, 몸 안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
 
해결하는 관점에서 집고 넘어가야 하는 한 가지는 바로 몸의 문제들을 다룰 때 '신체발달 이론'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몸을 둘러싼 '외모 지상주의'의 분위기가 가족을 통해 흡수, 전달된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최초로 신체적 감각을 습득하는 공간이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몸은 부모와의 접촉을 통해 올바로 형성되거나 잘못 형성된다. 식탁 위에서 아이들이 듣는 엄마, 아빠의 한 마디, 옷차림이나 몸매를 보고 던지는 오빠와 언니의 한 마디, 할머니 할아버지의 충고들을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 아이들의 몸과 의식은 그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례 - 아기가 우유를 토하는 것을 보고 과도하게 걱정한 엄마의 영향으로 반사적인 구토습관과 대장염에 시달리게 된 헤르타, 자기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던 어머니로 인해 정상적인 섹스를 하지 못하게 된 루비 등 - 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부모가 자기 몸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면, 그 불안은 고스란히 아이에게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예컨대 엄마가 늘 다이어트하는 것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몸에 대한 인식이 어려서부터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현대인들의 신체경험에 부모의 괴로운 몸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아지는 현상에 우려를 표하며, 예비부모와 초보부모에게 올바른 몸 인식을 심어주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엄마들, 친구들, 지역과 학교에서도 이에 대한 다방면의 노력,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마음을, 그리고 몸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왜곡된 미의식'을 조장하는 각종 산업(다이어트, 패션, 식품, 제약 등)들이다. 이들 산업은 포토샵으로 보정한 이미지를 유포함으로써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몸’에 대한 관념을 전달한다. 그런 이미지들의 공격에 수시로 노출된 사람들은 그에 부합하지 않는 주변사람들과 자신의 몸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현대인을 착취하는 데 혈안이 된 산업들은 끊임없이 최신 유행을 만들어내며 우리를 현혹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흐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결함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아니라, 부족한 노력과 얄팍한 지갑뿐이다. '지갑'은 계급의 문제를 가져오게 되고 사회적 양극화를 악화시키게 된다.

저자는 이 거대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개인이 사회 곳곳에서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비극이라고 말한다. 개인적 경험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소하게 생각하지만, 오늘날 우리 몸들이 겪는 고통은 가히 '공중보건의 숨겨진 응급상황'이라 할 만하다. 사회적, 문화적 압박에 시달리는 몸들은 더이상 자연스러운 기능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예전에는 즐거운 일이었던 식사가 이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접촉하고 섹스하는 일조차 ‘연기(演技)’가 되어버렸다. 완벽한 몸이라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동안 우리는 몸으로부터 얻었던 즐거움들을 모두 빼앗겨버린 것이다.
게다가 대중매체가 주입한 관념은 사람들의 미의식을 편협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어디를 가나 ‘쌍꺼풀, 오똑한 코, 풍만한 가슴, 탄탄한 엉덩이’와 같은 서구적 몸이 각광받는다. “신체혐오는 서양의 은밀한 수출품”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서구적 몸에 매혹된 전세계의 젊은이들은 자기 몸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때문에 지구상에서 2주에 하나씩 언어가 사라지는 것처럼, 각 사회의 문화와 전통을 반영하는 몸들의 풍부한 다양성 또한 위태로운 실정이다.
내가 그동안 아무런 생각없이 가족들, 친구들, 직장동료들에게 툭툭 내뱉었던 말들이 새삼 머리 귀속에서 들리는 것 같다. 나 스스로가 그러한 대중매체의 관념에 알게 모르게 세뇌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몸들의 위기를 해소할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먼저 우리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산업들의 관행을 폭로하고,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몸들이 패션문화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오늘날 ‘스타일산업’이 퍼뜨리는 소비주의의 지령이 엄마와 아기에게 침투하기 전에, 엄마 스스로 신체적 평화를 찾고 아기에게 그것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몸을 바라보는 우리의 비뚤어진 시각을 바로잡는 일이다. 우리는 ‘단 하나의 몸’만을 강요하는 스타일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을 ‘당연하고 즐거운 것’으로 여겨야 한다. "우리 몸은 우리가 제작해야 할 상품이 아니라, 평화롭게 깃들여 살아가야 할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것, 그것을 아름답지 못하게 만든 것은 대중문화의 조작된 이미지라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획일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신만의 진정한 개성과 가치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이 책의 문제의식은 다이어트와 성형 중독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에 중요한 울림을 던져줄 것이다. 우리 몸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는 이 책이야말로 어릴 때부터 몸짱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어제 공부모임에서 이 책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도 나왔다. 한 참가자는 저자가 인용한 데이터의 신뢰도가 부족(그 의견을 내신 분은 현직 의사..)하고 저자가 심각하게 문제제기했던 것에 비하여 그 결론은 '개인적인 노력'으로 그쳤다는 것이었다.
'데이터의 신뢰도'에 대한 동의 여부는 아직 내 수준에서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의 결론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많이 부족하다는 지적에는 나도 공감했다.
 
[ 2011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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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 한상권 교수의 치열했던 5년의 기록
한상권 지음 / 너머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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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문제가 사회적,정치적 이슈로 한참 달구어지던 지난 6월 11일 '한국사립대학총창협의회' 박철 회장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대학이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사립대학은 등록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매년 등록금이 올라가는 이유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사립대학 등록금이 2000년 449만원에서 2011년 754만원으로 68% 인상됐음을 인정했다.(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5624130&ctg=1200)
 
그는 기자가 그렇게 등록금을 인상했음에도 대학들은 항상 돈이 없다고 아우성인데 그 이유가 '외국 대학에 비해 방만한 운영을 했기 때문 아닌지'라고 질문하자, “우리 대학들은 대부분 세계 100위권에도 못 들어간다."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그 이유를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경쟁하려면 연구 업적이 필요한데 국제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많이 써야 한다. 경쟁력을 높이려면 당연히 연구비가 많이 든다. 대학의 교육환경을 높이려면 건물과 시설도 늘려야 한다. 그래서 대학 적립금은 건축 적립금이 대부분이다. 학생들을 해외에 보내는데도 돈이 필요하다. 돈 쓸 곳은 많은데 국가 지원이 없는 사립대로선 등록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라고 딴 소리를 한다. 2000년부터 10년 동안 그렇게 등록금을 인상하였음에도 그런 변명을 내세우는 것이 과연 대학 총장이 할 소리일까? 건물과 시설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대학의 연구능력이 올라간다는 것인가? 세계 100위 이내의 대학이 운영하는 건물, 시설과 한국 사립대학의 건물, 시설을 비교하는 수치가 나오면 그 때는 뭐라고 변명할지... 등록금이 폭발적으로 인상되기 시작한 2000년부터 대학 내 정규직 교수를 줄이고 비정규직 교수, 강사 비율을 늘리면서 어떻게 대학의 연구역량이 늘어난단 말인가?
 
그러면서 '반값등록금'에 대한 대학의 계획에 대해 기자가 질문하자 그는 “반값 등록금을 당장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등록금 부담을 완화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10~20% 경감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교육법에 사립대학은 등록금의 10%를 장학금으로 주게 돼 있다. 대학에 따라 15%를 주는 대학도 있다. 그 돈을 정부가 재정으로 부담하면 내년부터라도 등록금을 10% 내릴 수 있다."라면서 정부측에 그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그는 "사립재단이 학교를 만들었으니 기본적으론 정부가 아니라 재단이 돈을 대야 한다. 그런데 재단은 1년에 고작 1억~2억원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고 사립대학교 재정의 진실을 고백하면서도 재단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사학재단은 '사립학교법'에 의해 교육발전과 인재양성을 위해 설립한 것이다. 그리고 사학재단의 주인은 개인을 인정하지 않고 이사회에 의해 운영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수도 없이 언론과 인터넷에 폭로되었듯이 사학재단의 설립자 등 일부 개인과 가족들이 재단과 대학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상당수 사학재단은 부동산 투기와 건물 증축, 등록금 횡령을 일삼고 있고 재단 설립자와 가족끼리 여러 재단 이사회를 돌아가면서 겸직하면서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정치권에도 지속적으로 자금을 뿌리고 국회의원을 배출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면서...
 
 
이 책은 사학재단들이 재단과 대학 설립의 목적과 이유를 상실한 채 개인들의 사리사욕을 추구하기 위해 재단과 대학을 악용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교수와 직원, 학생들을 억압하고 착취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 - 덕성학원과 덕성여자대학 - 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덕성여대를 졸업한 후배들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덕성여대 재단의 부당함과 재단과 대학의 민주화를 위해 10년 이상 싸워온 교수,학생,졸업생들의 이야기를 몇 번 전해들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저자는 그 지난한 싸움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한상권 교수의 이야기다. 저자가 덕성여대에서 해직된 1997년부터 박원국 덕성여대 이사장의 연임이 좌절된 2001년까지 5년 동안 일어난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기간에 덕성여대에는 교육부 특별감사 두 차례,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 네 차례, 관선이사가 세 차례 파견되었다. 또한 직무대행을 포함해 이사장이 일곱 명, 총장이 다섯 명 교체되었다. 덕성학원 이사장 임기가 5년인 점을 감안할 때, 직무대행을 제외하고 이사장이 다섯 번 교체된 5년의 기간은 평화로운 시기의 25년에 해당한다.
그만큼 덕성 민주화 운동은 치열했다. 65일간의 전교생 수업거부, 260일간의 총장실 점거를 포함하여 2,555명의 전국 지식인 서명 및 기자회견, 재단 항의방문, 성금모금, 가두시위 등 질풍과 노도처럼 일어났던 이 싸움은 1999년 한상권 교수의 복직과 2001년 박원국 이사장의 퇴진이라는 유례없는 결과를 낳았다. 한상권 교수의 부당한 재임용탈락으로 촉발된 이 사건은 불합리한 교수재임용 제도에 대한 불복종 운동이었고, 대학이라는 공공재를 사유화하여 전횡을 일삼았던 사학재단에 대한 거부운동이었다. 이 한가운데 이 책의 저자인 한상권 교수가 있었다.

부당한 재임용탈락을 철회하기 위해 싸우던 한상권 교수는 ‘학교가 조용해질 때까지 일 년 동안 해외에 나가 있을 것’을 전제로 한 복직제의를 거절했다.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복직되느냐가 학원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을 위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내외의 학생, 지식인, 여러 단체들의 연대를 통해 한상권 교수의 복직투쟁은 교수들의 교수권과 학생들의 수업권, 직원들의 노동권을 요구하는 전면적인 권리투쟁으로 승화되었다. 이 책은 힘없는 개인들이 연대와 단결을 위해 노력했던 모든 몸짓들을 꼼꼼히 기록하여 개인의 복직 및 교수 재임용제의 개선, 구재단의 퇴진, 인사행정과 학사행정의 민주화 등에서 끈질기게 불의에 저항한 모든 사람들의 승리임을 증명하고 있다.

전례가 없는 일을 해냈을 때 ‘역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된다. 그렇게 기록된 한 시대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역사학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록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록을 분석하고 종합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이 해낸 경우는 무척 드물다. 이 책은 개인인 한상권 교수가 부당한 압력과 불의에 대항하며 만든 ‘역사’를, 기록자인 한상권 교수가 정리한 다섯 권의 ‘투쟁백서’를 자료로 하여, 역사학자인 한상권 교수가 분석하고 종합한 우리 시대 역사의 한 단편이다.
한상권 교수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는 치열하고,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자로서는 부지런하며, 그 기록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역사학자로서는 철저하였다. 자신이 한가운데 있었던 덕성민주화 투쟁을 다루면서도, “역사가는 사실을 원래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기록에 근거하고 정확히 서술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주관적 인식인 ‘서술된 역사’가 객관적 존재인 ‘본래의 역사’와 완전히 부합할 수는 없다.”라는 실증주의 역사학자 랑케의 말을 통해 학자적인 냉정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덕성 민주화운동을 빼앗긴 권리를 되찾으려는 ‘권리투쟁’과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기억투쟁’, 두 가지 로 설명한다. 그가 해직된 후 ‘동토의 왕국’이라 불리던 덕성에서 기본권을 되찾으려는 ‘권리투쟁’이 일어났다. 사회의 공기(公器)인 대학을 사유물로 여긴 이사장의 그릇된 교육관 때문에 일어난 저항이었다. 재단 이사장에게 초법적인 권한을 부여한 사립학교법이 그의 일탈된 행동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어느 사립대학보다도 낮은 급여와 열악한 근무조건, 끊임없이 발생하는 부당한 해직, 비싼 등록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낙후된 교육시설, 무분별한 학부제 시행 등 암울한 교육환경에 맞서 교수, 직원 그리고 학생은 빼앗긴 교육권· 학습권· 노동권을 되찾기 위해 일어섰다.
박원국 이사장은 자신을 ‘교주(校主)’, 즉 학교의 주인이라고 일컬었다. 학교가 자신의 사유재산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립학교의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앙양할 목적”으로 제정된 사립학교법에는 설립자의 소유 관념이 없다. 교육은 공공재(公共財)이기 때문이다. 덕성민주화운동은 대학을 사유물로 볼 것인가, 공공재로 볼 것인가라는 가치관 사이의 갈등이기도 했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도전은 그 지배질서에 내재하고 있는 가치 체계나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억투쟁’은 중요하다. 덕성학원은 모자 세습에서 형제 세습으로, 형제 세습에서 다시 부자 세습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족벌 세습재단이었다. 게다가 덕성학원 설립자라고 일컬어지는 송금선은 친일파, 즉 반민족행위자였다. 덕성학원은 단순한 족벌 재단이 아니라 친일 족벌 재단이었던 것이다. 덕성인은 기억을 둘러싼 투쟁 끝에 덕성학원 설립자가 친일파 송금선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차미리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결과 덕성여대는 친일 족벌 사학의 오명을 벗고 정통 민족 사학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차미리사 가치’와 ‘송금선 가치’ 사이의 대립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간의 반세기가 넘는 긴 싸움의 연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덕성민주화운동은 우리 사회가 친일파에 의해 오염된 역사를 청산할 능력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그는 복직을 법에 호소하지 않았다. 사립학교법이 “교원을 기간을 정하여 임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을 뿐, 재임용의 의무나 절차, 요건 등을 법령으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임용의 기준과 절차에 관한 근거가 실정법상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은 교원의 지위가 법률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임용 관련 법규가 없으니, 재임용탈락 시비를 둘러싼 재판이 성립될 리 없었다. 재임용탈락자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 재임용 여부는 사법부의 심사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되었다(법원이 적법 여부를 심리하고 물리치는 ‘기각’과는 달리, 각하는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부당한 재임용탈락처분을 철회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저항을 통해 ‘대법원 판례’를 넘어서는 새로운 판례, 즉 ‘덕성여대 판례’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학내 구성원과 사회 민주세력이 연대해 부당한 재임용탈락처분을 뒤집은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덕성민주화운동이 해직교수들 사이에서 복직투쟁의 전범(典範)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필자가 복직된 뒤, 제주산업정보대, 세종대, 서울대, 동의대 등 여러 대학에서 부당하게 해직되었던 교수들이 복직되었다.

덕성민주화운동이 한국 사회에 던진, ‘대학의 자유정신’, ‘법치주의’, ‘교육의 공익성’, ‘친일잔재 청산’, ‘국가권력의 공공성’, ‘공동선의 추구’ 등에 관한 문제제기와 의미는 원칙과 상식이 실종된 지금의 우리사회에서 더없이 소중하다. 역사적 기억은 대중이 공유할 때 현실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그는 지난날 덕성에서 있었던 정의를 향한 몸부림이 ‘사회적 기억’이 되어 미래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펴냈다고 말한다.

그는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라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교수로서의 교육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 1997년부터 지금까지 노력해온 저자의 의지와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덕성여대의 사례가 다른 대학의 교수, 학생들에게 모범적인 사례도 되었을 것이고 배울 점도 많았을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개인적으로 치부하지 않고 대학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다른 교수들, 직원들, 학생들, 졸업생들, 그리고 사회민주화 세력들과 연대하여 학원문제를 풀어낸 것 역시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사학재단의 끝없는 탐욕과 무능, 반교육적 행태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교과부 등 행정부와 국회, 법원의 무능과 편파성을 여지 없이 들추어냈다. 특히, 공정하고 공평해야 할 행정부와 국회, 검찰/법원의 행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권력의 주인인 국민들이 위임해준 권력을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얼마나 형편없이 휘두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전면적인 개혁과 쇄신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처째는 저자가 이 책을 펴낸 것이 2010년 12월 이었으나 책 속의 덕성여대 민주화 투쟁은 2001년까지만 담겨있는 점이다. 이미 2007년 7월 사립학교법은 '개악'되었다. 2008년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그 개악된 사립학교법을 '개악'의 취지에 맞게 철저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덕성여대를 포함한 전국의 사립대학은 몸살을 앓고 있다. 어째서 2001년 이후 10년간의 덕성여대 상황을 담아내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는 덕성여대 민주화 투쟁은 저자 말대로 대학 내 모든 주체들과 사회민주화 세력들의 공통적인 노력이었음에도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은 책 속에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다. 마치 한상권 교수가 중심이 되어 모든 싸움을 주도한 것처럼 보이도록 그려져 있다. 비록 그 것이 사실이다 하더라도 다른 교수들, 직원들, 학생들, 졸업생들, 사회민주화 세력들의 노력도 동등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들의 참여와 노력이 없었다면 그나마의 '작은 성과'도 이루기 어려웠을 테니까...
셋째는 덕성학원의 구조적 문제와 덕성여대 민주화 투쟁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결하는 관점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 사립대학이 처해있는 문제는 사립대학 자체의 문제는 절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부터 뿌린 씨앗이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하여 현재까지 지속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관점, 특히 사회전체적인 시각과 제도적인 관점에서 사립대학의 문제를 관찰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싸움의 결과는 제도와 문화를 정비하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것이다. 교육에 대해, 대학에 대해, 사립학교법에 대해, 구조와 문화에 대해 분석하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덕성여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아쉽다.
(외부에서 접한 한상권교수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의견은 서평에 쓰지 않았다. 사실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2010년 8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상지대의 운영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구재단 측에서 추천한 정이사 4인을 승인했다. 같은 달 교과부가 사분위의 의결 내용을 최종 승인하면서 17년 만에 구재단이 상지대에 복귀했다. 조선대, 세종대에 이어 세 번째 구재단 복귀 결정이었다.
사분위는 덕성여대에도 2010년 10월로 임시이사를 파견했으나 이사회는 그동안 덕성여대 '학원분규'를 조정해내지 못했고 지난 8월 11일 사분위는 덕성학원에 임기 1년의 임시이사 7명을 또 다시 선임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덕성여대 총장과 덕성여대 정상화추진위원회는 이에 반대하여 교과부에 재심을 청구했다. 덕성 민주화투쟁은 아직 완료되지 않은 것이다.
 
올해까지 14년 동안 덕성여대의 학원민주화 투쟁이 지속되었음에도 왜 덕성여대는 정상화되지 않았을까?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분석해야 정확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 결국 커다란 범주에서 한국사회에서 대학의 기능과 역할, 사립대학의 존재 이유와 운영, 재단과 대학의 역할분담, 학원 주체들간의 존중과 역할, 사립학교법을 비롯한 제도와 관행, 교과부의 역할, 정치권과 언론의 역할 등을 총체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고 전국민적인 관심과 이해가 필수적이다. 알고 해결방안을 토론하면서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학입학율이 80%나 되니 대부분의 국민들이 대학에 이해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정치와 정책이 중요하다. 현재 재직 중인 국회의원 상당수는 2007년 사립학교법 개악에 동참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으니 '개악'에 동의하는 정당과 국회의원은 여전히 강력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2012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에 동의하는 국회의원을 다수 배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도 대학 개혁과 혁신에 대한 명확한 식견과 비전을 가진 인물을 선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과부도 개혁,쇄신해야 한다.
 
[ 2011년 9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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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 자폐인의 내면 세계에 관한 모든 것
템플 그랜딘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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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100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면 1911년 조선에서 대다수와 조선사람과 나(21세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중에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일까... 유대인 중에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현재의 중국에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2011년 현재 '가카'를 조롱하는 사람이 정상일까 아니면 비정상일까... 정상고 비정상의 기준이 뭘까...

1988년배리 레벤슨 감독의 영화 [레인맨](더스틴 호프만 주연)을 볼 때는 자폐증보다 형제간의 우애에 대해 더 생각했었다. 그 뒤 Cable TV에서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2년작, 러셀 크로우 주연) 보면서 처음 정상인과 비정상인, 정신이상의 기준과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20대 초반에 '제2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천재였던 수학자 '존 내쉬'의 생애를 다룬 영화였다.

사람들이 자신이 소속된 사회에서 '평균' 또는 '중간'이 되고 싶은 것은 사회심리학 학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도전과 더불어 '안정'적인 느낌을 갖고 싶은 것은 모두의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평균'에서 벗어나고 '중간' 아래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평균에 속한' '중간' 사람들의 태도다. 평균에서 벗어나거나 중간보다 못한 사람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사실 한국사회 뿐 아니라 대부분의 외국사회에서도 사회적,문화적으로 차별하고 배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 차별과 배척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현상이고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심리적,문화적 잔재이기도 하고 '동등한 인권'의 과점에서는 '폭력'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차별의 대상에 따라 유형도 천차만별이다.
가장 근대적이면서도 불법적인 차별은 수십억 횡령을 해도 구속하지 않지만 2억에 대한 의혹만 있어도 구속하는 검찰과 법원의 차별, 재벌과 대기업의 민원은 일사천리로 해결하면서 중소기업의 민원은 '세월아 네월아' 질질 끄는 관료들의 차별,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니면 말고'식으로 기사를 써대지만 사주와 친하거나 재벌/대기업의 부당행위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조중동' 등 정치적,법적인 차별도 있다. 
사회 저변에는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면 자신의 아이들의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고 불만을 터트리는 '중산층 아줌마'의 차별도 있고 자신들의 일거리를 빼앗는다고 외국인 근로자를 바라보면서 눈에 쌍심지를 차별도 있고 명절 때만 되면 뒷짐지고 도망다니는 이 땅의 '남편'들의 차별도 있다.
 
이 책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자폐증'이라는 신체적 장애는 그동안 사회에서 신체적 장애라기 보다 '정신병'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
즉, 이 책은 사람들이 누구나 적어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신체적 결함' 중 하나인 '자폐증'을 다루고 있다. 그것도 어려서부터 자폐증을 앓았던 사람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자폐증과 이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빈센트 반 고흐 등은 어린 시절에 발달 장애를 보였다고 한다. 자폐증은 의학적으로 ‘성장 초기에 시작되는 이상’으로 정의되어 있어, 전문가들은 자폐 성향이 있다는 판정을 받으려면 더딘 언어 발달이나 이상한 행동 등의 문제가 어릴 때에 나타나야 한다고 말한다. 
어릴 때 아인슈타인은 이런 성향을 많이 보였다. 그는 세 살이 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했다. 전세계에 유명인사로 등장한 이후 한 자폐아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자기가 말을 너무 더디게 배워 부모님께 걱정을 끼쳤었다고 썼다. 아인슈타인이 일곱 살까지도 속으로 단어를 반복해서 말해야 했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고 되어 있다. 
아주 어린 나이에 천재성이 발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인슈타인은 어릴 때 아무런 천재성도 보이지 않았다. 그를 바보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철자법 실력도 엉망이었고, 외국어도 형편없었다. 자폐 성향이 있는 아이들이 대개 그러하듯 아인슈타인도 조각 그림 퍼즐을 아주 잘했고 몇 시간씩이고 카드로 집을 지으며 놀았다. 목적한 것에 대해서는 외곬이었고, 사생활에 관련된 것 등 흥미 없는 것은 거의 기억을 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폐증은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다른 장애와 구분되는 '뇌 이상'이 나타나는 '신경계 장애'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소뇌와 변연계(limbic system)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이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과학적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많은 연구자들이 자폐증, 우울증, 불안증, 실독증, 주의력 결핍 장애 등을 포함한 여러 장애를 일으킬 위험성이 높은유전자 뭉치가 존재한다는 가설에 주목한다고 한다.(p.59)
자폐증이 유전되는 경향이 강하기는 하지만 자폐증 유전자라는 것의 존재는 밝혀지지 않았다. 자폐인은 자폐아를 낳은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높다. 또 자폐아의 형제자매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학습 장애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뇌의 발달이 유전만으로 결정되지는 않기 때문에 확정적인 결론은 없는 상태다. 최근의 연구 사례들은 유아기의 신체 내적, 외적 영향이 뇌와 신경계를 구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고 있다.
 
저자 역시 두 살 때 평생을 보호시설에서 살 것이라고 진단받은 자폐아였다. 하지만 저자는 자폐증을 하나의 병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극복했다. 그녀는 뒤에 애리조나 대학에서 동물학 석사와 일리노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가축 시설의 3분의 1을 설계했다. 2005년 현재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동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과 전 세계를 순회하며 자폐증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자폐’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떠올릴 것이다. 말은 못 하고, 온몸을 흔들어대며, 소리를 지르고, 대화를 나누는 게 불가능하고, 사람들과의 접촉으로부터 단절된 아이를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자폐아’라고 하지 ‘자폐인’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마치 이런 아이들은 영영 자라지 않거나, 이 세상, 이 사회에서 비밀스럽게 사라져 버리기라도 하는 듯이.
아니면 자폐인 ‘사방(savant)’을 떠올린다. 기묘한 버릇에다 반복적 행동을 보이고, 정상적인 삶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으나 영화 <레인 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처럼 계산, 기억력, 그림 그리기 등에 있어 불가사의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폐에 대한 인식은 아주 협소하고 지엽적인 현상에 대한 묘사일 뿐, 자폐인의 여러 가지 사례를 보여주지도 못하는 것이고, 자폐인의 내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도 아니다.

자폐인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고 인식하고 반응한다.
모든 자폐인이 그러하지는 않지만, 저자 템플 그랜딘은 그림으로 사고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언어에 기초해 사고하지만 그녀는 모든 언어를 시각적인 연상으로 대체해서 사고하며, 특정 단어에 대한 회화적 연상이 연속적인 화면으로 이어져서 사고하는 것이다.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언어는 나한테는 외국어와도 같다. 말을 듣거나 글을 읽으면 나는 사운드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총천연색 영화로 번역을 해서 머릿속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돌리듯 돌린다. 언어에 기반해서 사고하는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힘들어하지만, 누군가 나한테 이야기를 하면 그 말도 그 즉시 그림으로 번역된다."(p.17)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시각적이고 구체적인 영상에서 일반적 개념으로 사고가 이동한다.

이를테면 개라는 개념은 지금까지 그녀가 본 모든 개와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금까지 본 개 전부를 사진 목록으로 만들어 머리 속에 보관하는 것과 같다. 이 목록은 비디오 도서관에 사례를 추가하면서 계속 늘어난다. 그레이트데인 종(種)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고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이 기르던 그레이트데인 종의 개 댄스크의 모습이다. 그리고 댄스크 다음에 선생님이 기른 헬가가 떠오른다. 그 다음은 애리조나에 사는 그녀의 이모네 개고, 마지막으로 그 종 개가 나온 핏웰 시트커버 광고를 떠올리는 것이다. 이런 기억은 대개 시간 순서에 따라 떠오르고, 항상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려진다. 따라서 그녀에게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그레이트데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폐인 모두가 시각적 사고를 하는 것은 아니고, 누구나 다 이런 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시각화 기술에 있어서 제로에 가까운 사람부터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그림을 보는 사람, 반쯤 구체적인 그림을 보는 사람, 그녀처럼 아주 구체적인 그림을 보는 사람까지 연속체를 이룬다. 하얀색과 검정색을 무차별로 섞어 놓았을 때 그 중간에 존재하는 회색은 수 백, 수 천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인식 체계의 다름으로 인해 자폐인은 그림으로 떠올릴 수 없는 것을 배우기가 제일 힘들다. 자폐아는 단어 중에서 명사를 가장 쉽게 익히는데, 이미지와 일 대 일로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처럼 높은 수준의 언어능력을 가진 자폐아는 음성으로 읽는 법을 익히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능력이 더 떨어지는 아이들은 더 구체적인 연상을 통해 익히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주변 사물에 이름표를 달아 놓는 식으로 단어를 익히는 것이다. 장애 정도가 심한 자폐아는 손으로 만져 보고 느낄 수 있는 입체적인 글자로 단어를 써 줄 때 더 쉽게 배우기도 한다. 자폐아의 경우 시각, 촉각, 청각, 맛, 냄새 등 감각에 대한 민감한 정도가 다르므로 각각의 경우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언어에 대한 연상을 도와 바깥 세계를 인식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들이 공동체 속에서 같은 인간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배려해야 한다.


저자는 자폐 아동을 가르치는 교사들도 '연상적 사고 패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자폐아는 단어를 부적절하게 사용할 때가 많다. 이런 부적절한 단어는 말하고자 하는 바와 논리적 · 연상적 연관이 있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자폐아는 밖에 나가고 싶을 때 "개."라고 말한다. 그 아이에게는 '개'라는 단어가 밖에 나가는 것과 연관이 되는 것이다.
결국, 저자의 경우나 다른 자폐인도 커다란 범주에서는 '인류'의 공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눈이 나빠 안경을 쓰고 생활하거나 목발을 집고 생활하는 것과 같은 물리적인 신체 장애인이 살아가는 방식이 일반인과 조금 다를 뿐인 것처럼 그들은 뇌와 신경계에 이상이 있을 뿐이다.

 
자폐인의 인식세계가 그러하기에 자폐인이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징이 필요하다.

저자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인간관계’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문과 창문’이라는 시각적 상징을 만들어 내기 전에는 말이다. 그런 상징들을 만들어 내고 난 다음에야 그녀는 관계에서 서로 주고받는 법을 익히는 것 등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폐인이 사용하는 이런 상징을 보고 보통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지만 자폐인은 이런 상징을 통해서만 현실을 실제적으로 느끼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프렌치토스트를 먹으면서 행복했었다면 ‘프렌치토스트’는 행복을 의미할 수 있다. 이 아이는 프렌치토스트를 떠올리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시각적 이미지나 단어는 경험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나 자폐증이 심한 경우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만으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자폐증이 심한 테드 하트라는 아이는 일반화 능력이 거의 없고 행동에 융통성이 전혀 없다. 그의 아버지 찰스 이야기에 따르면 하루는 건조기가 고장 나자 테드가 젖은 빨래를 그냥 옷장에 넣었다고 한다. 익히 알고 있는 빨래 순서에 따라 그냥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테드한테는 상식이라는 게 없다. 이런 경직된 행동이나 일반화 능력 결여는 시각적 기억을 바꾸거나 수정할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따라서 저자는 '천재성도 비정상성'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천재적인 과학자들이 자폐증이나 조울증을 앓았고, 그러한 증상이 가지는 사방으로 인해 과학적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러한 연구에 기초해 볼 때, 만약 자폐증이나 조울증 등의 이상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발견한다고 하여 이를 제거한다면 이 세상에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줄 모르는 따분하고 틀에 박힌 사람들만 가득할 것이라는 템플 그랜딘의 주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자폐증, 조울증,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는 유전자 뭉치는 적은 분량으로 존재할 때는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심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유전적 성향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과 과학적 발견을 가져온 재능과 천재성을 가져다주기도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저자는 이러한 점에서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뚜렷한 경계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자폐증, 심한 조울증, 정신분열증 같은 장애가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주면서도 우리 유전자 안에 계속 남아 있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회계사의 사고 방식과 예술가의 사고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지만, 세상에서 공존해 살아가고 있고, 그 사이에는 경계의 선이 있기 보다는 사고방식의 경향에 따른 연속체가 있다는 것이다. 자폐인의 범주에서 저기능 자폐인과 고기능 자폐인이 연속체의 양쪽 끝에서 연결되어 있듯이 인간의 영역에서 자폐인과 비자폐인은 경계를 가지기보다는 연속체의 한 선상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정신 세계와 인식 방법을 이해하고 서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정하기가 어렵다. 100년 전에는 비정상인이라 치부되는 현상이나 모습이 현대에 와서 정상이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 주관적인 판단 기준이나 '다수'라는 기준으로 정상/비정상을 나누게 되면 인류나 사회라는 공동체가 공존할 수 없다. 가장 극단에 위치한 사람에게는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비정상일 것이고 가운데에 위치한 사람은 양 쪽이 비정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인정이고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자폐증과 여러가지 뇌와 신경계 이상에 의한 장애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인식체계와 사고방식이 나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어떻게 대처해야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초보적인 것들도 배웠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고 상대방 처지에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일반론도 여기서 다시 깨닫게 되었다.
내 주변에는 자페인이나 자폐아는 없다. 오래 전에 조울증을 앓던 조카는 하나 있다. 사실, 조카가 조울증을 앓던 때에는 내가 자폐증이나 우울증, 학습장애 등에 대해 아무런 정보나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 누나에게 전혀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물론,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하여 내가 자폐증이나 각종 장애에 대해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그런 장애나 증상에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얻은 셈일 뿐이다.
 
그리고 신체적인 장애를 둘러싼 '정상과 비정상'은 인간의 다른 활동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의 공통된 생각이나 의견이 모든 것을, 특히 다른 사람들을 얽매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다수'의 횡포를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심지어 51%나 67%를 '다수'라 하여 소수의 의견과 처지를 무시하고 다수의 의견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다수가 99%라 하더라도 나머지 1%의 생각과 처지를 존중해야 사회라는 공동체는 건강해지고 활력이 있게 된다. 
중세 기독교에서 '지동설'은 1%도 안되는 의견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1%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큰 교훈이다. '많다'는 것과 '옳다'는 것은 다른 개념이다.
 
P.S) 이 책은 몇 개월 전 공부모임에서 [고야, 영혼의 거울]을 교재로 하여 세미나하던 중 참석자 한 분으로부터 소개받았다. 이 책을 접하게 해준 그 분에게 감사드린다.
 
[ 2011년 9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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