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으로 산다는 것 - 개정판
전경일 지음 / 다빈치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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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민국 40대, 그들은 누구인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2005년 기준으로 40대들이 처해있는 현실과 그들의 느낌,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태도와 방법을 제시하려 한다.
 
먼저, 저자는 한국의 40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낀세대, 어정쩡한 세대
- 진화와 도태 사이에 있는 세대
- 마지막 주산세대이자 첫 번째 컴맹 세대
-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의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첫 세대
- 조기은퇴 대상자에 속하는 세대
- 안정과 변화에 대한 욕구를 동시에 갖고 있는 모순된 세대
 
저자가 보고 듣고 느끼는 40대는... 시간은 거침없이 흘렀지만,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고... 직장에서, 가정에서 자신 있게 호기도 부려보지만 예전에 없던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하며.... 지금껏 이곳저곳에 씨 뿌리고 열심히 뛴 것 같은데, 지금에 와서 텅 빈 들판에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 신세라는 느낌이 든다... 
 
386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40대. 그들을 가리켜 불행한 세대라고도 한다.
대한민국의 40대는 변화무쌍하고 굴곡진 세월을 살아온 세대다.
20대에는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에서 청춘을 불사르기도 했고, 30대에는 IMF를 맞아 주변사람들이 ‘조기퇴직’이라는 불운을 당하는 것을 직접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또 산업시대에서 정보시대로 넘어오면서 살아남기 위해 숨 가쁘게 적응한 세대이기도 하다.
겪어온 역사적 환경도 남다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직선제 쟁취, 6월 항쟁에 이어 동서 냉전이 붕괴되고 지구 전체로 자본주의가 확장되는 것과 동시에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분단국가의 현실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아오고 있다.
 
하지만, 과연 한국사회에서 40대만이 불행할까?
배운 것, 가진 것 하나 없이 일제시대에 태어나 혼란스러운 해방과 6.25전쟁을 겪고 4.19혁명과 5.16 쿠테타의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한 가족 먹고 살기도 힘들게 연명하면서 자식들을 건사한 우리 부모세대와 전쟁 전후세대가 40대보다 더 불행하지 않을까?
 
아니면, 40대처럼 5.18민주화운동이나 6월 항쟁을 겪지도 못하고 뒤늦게 태어나 한국 자본주의 성장의 혜택도 보지 못하고 IMF 이후에 대학에 입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하여 이전 세대들이 구축해놓은 체제와 기득권에 밀려 오로지 입시지옥, 취업전쟁과 비정규직 신세를 면치못하는 20대~30대가 어찌보면 더 불행한 것이 아닐까?
 
그만큼 굴곡지고 변화무쌍한 삶을 살아오면서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대한민국의 40대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누구나 마흔이란 나이를 맞게 되면 삶에 대한 생각이 많아질 것이다. 우리 부모세대나 선배세대들고 그렇고 우리의 후배들 역시 40대가 되면 생각이 많아질 것이다.
 
어느 세대건 나이가 든 후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궤적을 떠올리며 허탈해지기 마련이다. 첫사랑 열병에 몸살을 앓던 20대와 달리, 이제는 인생의 허허로움에 몸살을 않게 된다. 직장에서, 때론 가정에서 자신 있게 호기도 부려보지만 예전에 없던 불안함과 두려움이 자주 엄습한다. 지금껏 이곳저곳에 씨 뿌리고, 열심히 뛴 것 같은데 지금에 와서 내가 살아온 이유와 살아갈 이유들이 흔들리고 있다. 인생의 이정표 위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갑자기 막막하기만 하다.
 
세대를 떠나 부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자식을 둔 한 가정의 버팀목이 된 그들이 마흔 고개를 넘으면서 때론 울고 싶어도 울 수도 없는 감추어진 속내를 한번쯤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이 책은 386세대를 떠나, 누구나 닥쳐오는 40대의 고민과 방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 저자 역시 탄탄대로를 달려온 순조로운 이력서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40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그렇듯 동시대의 아픔과 고민, 못다 이룬 꿈과 미련에 대해 저자는 현실을 맞대 듯 솔직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대한민국에서 40대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희망 찾기를 진솔하게 이야기하려 한다.

평생 뼈 빠지게 일해 처자식 먹여 살리고 집 장만해 이제 한숨 돌릴 때쯤이면 인생은 어느 새 내리막길이더라는 마흔 가장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는 우리 모두가 드러내놓지 않는 인생의 비애를 안겨주는 한 단면이다.
직장에서 사오정 운운하면 지레 내 나이를 손꼽아 겁먹고, 강남불패다, 하면 그곳으로 진입 못한 패자의 느낌에 주눅이 들고, 이 사회가 조기 유학이다, 하면 또 어떻게 해서든지 애들을 유학 보낼 궁리를 하는 사십대에서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또 마흔에 이른 나이라면 누구나 직장에서건, 사회에서건 한번쯤 좌절을 겪어보았을 것이다.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십여 년 이상을 일해 왔어도 어느 날 기업은 난데없이 감원,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른다. 극심한 고용불안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40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나이듦에서 오는 초조함’이다. 누런 황금 들판을 바라보며 추수의 기쁨으로 들뜨기보다는 오히려 다가올 세찬 겨울이 한없이 두렵다. 행여나 주위의 누군가가 갑자기 쓰러지면, 내게도 곧 닥쳐올 일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
모든 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다가오기도 하고,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며 닥쳐오기도 한다. 이렇게 이 시대의 마흔 가장들은 40대 사망률 1위인 나라에서 ‘나는 아니겠지…’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음은 사실이다.

매일 매일 생존의 치열한 전쟁터와 다름없는 직장생활은 또 어떤가. 매출은 만만치 않고, 점점 커가는 아이들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교육비는 지금껏 벌어오는 월급만으로는 벅차기만 하다.

더군다나 회사란 조직은 자신의 이런 고군분투에 대해 전혀 인간적인 따뜻함조차 보이지 않는다. 해가 지기 전까지 소리 없는 전쟁터에서 하루 종일, 1년 365일 전투를 치르고 있지만 너나할 것 없이 이렇게 힘겹게 싸워야만 먹고 사는 세상이 때로는 야속하기도 하다.
꼬리를 물고 이어진 아침 출근 행렬길에서 어떤 날은 아무런 굴레와 책임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도 싶은 유혹도 강하게 느낀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40대는 남달리 겪어온 시대적 환경이 다른 만큼 강하다. 의지와 성취동기도 강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또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처지에 있다 보니 책임감도 무척 강하다. 그래서 전날 늦게까지 남아 일한 피로가 채 가시지 않아도 가장과 아빠라는 사랑스런 이름을 달고 오늘도 씩씩하게 출근길에 나선다.

이 같은 불안과 절망을 희망으로 180도 변화시켜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각 개인이 불안과 절망을 이겨내기 위한 여러가지 방향과 방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 개인적인 노력으로 얼마큼이나, 얼마나 많은 개인들이 불안을 이겨내고 희망을 일으켜세울 수 있을까...
자신의 세대만, 각 개인이나 가족이 불안을 이겨내 이후 그들의 주변에 흩어져 있는 이들과 10년, 20년 후 자식세대들은 또 어떤 사회적 현실을 맞이할까... 
 

역으로, 저자가 열거하는 심정과 느낌들은 인간의 역사 이래로  40~50대들이 겪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아닐까...
그렇게 세대에 세대를 이어 조금씩 조금씩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가끔은 뒤로...) 밀고서 역사위 뒤안길로 퇴장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의 애기하는 40대의 애환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냥 겉으로 존재하는 현실과 당사자들이 느끼는 감정만을 열거할 뿐... 그렇기 때문에 다분히 소박하고 무기력한 희망을 제시할 뿐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런 느낌과 모습들이 당연한 것인지 아닌지, 다른 나라나 다른 시대에는 어떠했는지, 일부의 모습인지 전체의 모습인지, 개인의 노력으로 가능한지 아니면 사회적, 전체적인 방향과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아무런 분석도 방향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 2010년 4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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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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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동의 종말>에 이은 저자의 기념비적 역작이다.

저자는 통신과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자본주의의 새로운 전개양상을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라 정의하고 '접속의 시대'에 대한 구체적인 현상과 증거를 밝힌다. 또한, '접속의 시대'가 도래한 이유와 그 이전 자본주의와의 차이점, 향후 전망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이 이에 대비할 것을 당부한다. 동시에 '접속의 시대'가 가져올 폐해를 경고하면서 그 대안을 함께 제시하고자 한다.

18세기에 유럽에서 시작된 시민혁명, 르네상스, 근대화, 산업생산은 세계의 주요지역을 봉건주의 시대에서 '사적소유'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대를 가져왔고 자본주의는 '소유의 시대'를 의미한다.
1990년대부터 '정보화시대'라는 말이 대두되었고 이제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정보화'라는 말에 전혀 거부감이나 이상한 느낌을 받지 않을 것이다. 20세기 내내 이루어진 첨단과학의 발전은 세계 방방곡곡을 1일 생활권으로 지리적으로 단축시켜 놓았고 인터넷을 대표되는 기술혁명은 빛의 속도로 세계인들이 정보를 접하고 전달하고 결정하는 시대로 바꾸었다. 

'변화'와 '혁신', '효율'과 '시장'을 내세우며 300년간 공룡처럼 커지기만 하던 자본주의는 '소유'에 근거한 '변화'와 '혁신'에 한계를 느끼고 스스로 '소유의 시대'에서  '접속의 시대'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이미  20세기 말부터 북미와 유럽에서는 자동차, 주책, 전자제품, 공장, 도소매 등 다양한 시장 영역에서 '소유'를 확대하는 것이 불리함을 깨닫고 '접속'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경영을 재편하고 있다.
즉, 20세기 말부터 제기되어온 '신자유주의'는 결국 '접속 자본주의'를 애기하는 것이고 21세기 자본주의의 중심은 '접속'이 '소유' 대신 모든 존재가치와 부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산업시대는 지난 300년간 '소유'가 인류의 최대 관심사였기 때문에 '소유'의 범위를 정의하기 위한 싸움에 수많은 세대의 정치적 정열이 소진되었다. 근대의 정치 형세는 무엇보다도 계급과 계급 사이에 형성된 전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상류층, 자본가층, 권력층, 노동자농민층, 빈민층은 물리적 자본을 가용하고 물자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재산을 분배하는 최선을 방안을 놓고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한마디로 생산수단을 누가 장악하고 인간 노동의 결실을 누가 주도적으로 분배할 것인가를 놓고 정치세력이 좌우로 갈라져 대립해왔다.
접속의 시대에는 좌우가 대립하는 정치가 내재가치와 효용가치가 갈등을 빚는 새로운 사회구도에 흡수될 것이다. 한마디로 문화적 정체성, 문명의 존엄성이 그 자체로 인류의 목적이냐, 아니면 상품 생산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냐라는 갈등이 될 것이다.

글로벌 거대독점기업들에게 이제 중요한 것은 대규모로 생산하여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고객의 관심과 시간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기업의 생존 조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서 관심을 돌려 고객을 감동시키는 서비스, 고객을 감동시키는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상품을 팔지 않고 그냥 준다. 그리고 상품의 유지관리와 체험에서 오히려 장기간의 수익을 확보하려 한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는 한국사회에서도 이미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요즘 누가 핸드폰을 돈을 지불하고 사는가? 복사기,복합기를 임대하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냉장고도 거의 무상으로 제공한다.)

 '접속의 시대'에 몇 십년 내에 글로벌 기업들은 지역, 국가, 지구의 접속권을 독점권을 획득할 것이다. 또 기존의 자본주의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삶을 영위했다면, 이제 자신의 체험과 삶을 팔아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소유'를 기초로 계급과 인간을 나누었다면, 앞으로는 '접속' 여부가 사람들을 가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미디어와 인터넷, 체험과 문화 상품에 길들여진 세대들이 지구상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시기가 도래하면 '문화'와 '문명'은 도태되고 문화상품이 인간을 점령할 것이다.

'접속의 시대'에는 체험과 놀이와 문화가 상품의 중심을 차지할 것이다. 심지어 타인의 시간, 타인의 배려와 애정, 타인의 공감과 관심을 돈으로 사는 경우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심지어 인간관계도 상품화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점점 상품화되고 공리와 영리의 경계선은 점점 허물어질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21세기 자본주의가 바야흐로 ';소유의 시대';에서 '접속의 시대'로 전화되고 있으며, 이 대세를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와 함께 두 가지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첫째는, '접속'의 불평등이다. 최근 몇 십년 동안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은 '부익부빈익빈'을 가중시켜 왔고 이 상황을 개선시키지 않은채 '접속의 시대'가 도래하면 더욱 심각한 상황이 재연될 것이라는 점과 공익적,인권적인 관점에서 '접속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를 제기한다.... '부익부빈익빈'은 신자유주의가 더욱 심화시켜 왔으며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인류의 심각한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두번째, '접속의 시대'에 인류 문화와 문명의 고유가치, 생물 다양성과 함께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노력을 게을리할 경우, 문화자본주의와 인류는 스스로 자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수 밖에 없음을 경고한다.

 저자가 이 책을 발간한 것이 2001년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저자의 뛰어난 분석력과 통찰력이 돋보였다. '접속의 시대'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전망은 우리에게 세계경제의 거시적인 안목을 키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우리도 또한 적어도 지구상의 흐름을 방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동시에 비판적인 관점에서 '접속의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한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 2010년 5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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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심다 - 박원순이 당신께 드리는 희망과 나눔
박원순 외 지음 / 알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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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변호사, 그리고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의 사무처장... 이 정도가 내가 기억하는 박원순씨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인권변호사로서는 조정래 변호사를 더 기억하고 있었고 '참여연대'는 2000년 총선에서 낙선운동을 이끌었다는 기억과 재벌 독점의 고리를 끊으려고 노력하는 시민단체 정도로 기억하는 수준...
결국 그동안 나는 박원순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지난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진행되어 오세훈 전시장이 시장직을 사퇴하고 곧이어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면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안철수 원장이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하고 더불어 한명숙, 박영선, 박원순씨등이 야권의 후보로 거론되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변호사가 '후보단일화'에 합의하면서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안철수 원장에 대해서는 여러 신문기사나 인터넷 글,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문득 안철수 원장과 비교하여 박원순 변호사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지지율을 얻고 있는 사람이 5% 지지율에 그친 사람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할까? 박원순 변호사의 어떤 점이 안철수 원장의 양보를 이끌어 냈을까? 박원순씨의 삶과 철학, 인생역정과 고민, 아이디어와 비전이 궁금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박원순 변호사에 관한 책을 두 권 구입하여 지난 추석 연휴에 읽었다. 이 책 [희망을 심다]와 [아름다운 세상의 조건]...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동고동락을 함께해 보거나 여행을 함께 떠나는 등의 방법이 있지만, 내 입장에서 가능한 것도 아니고 시간도 부족하니 책을 통해서 어느정도 박원순 변호사를 알고 싶었다.
(맨 처음에는 내가 박원순 변호사의 책을 읽어보고 지인들에게 책에 대한 소감과 책을 통해 알게된 박원순 변호사를 소개하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책만 읽고 서평을 이제야 쓰게 된 것...)
 
아래는 이 책의 목차...
 
1장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깡촌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박원순
2장 석 달 동안 양말 한 번 안 벗었어요 - 서울대생이 된 촌놈 박원순의 공부법
3장 검사 그만두고 공부하고 싶었어요 - 6개월 만에 사표 쓴 청년 검사 박원순
4장 구석구석에서 할 일이 쏟아지는 원순씨 - 인권변호사, 시대의 영웅들을 변론하다
5장 앞으로 나아간 2보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 밖에서 본 한국, 밖에서 한 궁리
6장 맥주 구걸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대한민국 안 걸리는 데가 없는 '박변 주소록'과 참여연대
7장 나눔과 봉사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 아름다운재단의 아름다운 사람들
8장 한국 사회의 업그레이드를 꿈꾸며 - 희망을 나누는 희망제작소
9장 세상은 버린 만큼 얻는다 - 시민운동은 블루오션이다
10장 일하다 과로사하는 게 꿈입니다 - 즐겁게, 신나게 일하는 사회
 
원순C가 말하는 어린시절, 학생시절, 대학시절, 검사,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 시절을 들어보면 가장 먼저 부모의 역할이 새삼스럽게 중요함을 느끼게 된다.
부모님의 성실한 삶의 태도와 부지런함, 이웃에 대한 사랑과 정직한 모습이야말로 원순C의 성격과 태도,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 원순C가 독서실, 입주과외, 전셋집, 고시공부, 유학생활에서 보여준 모습은 어린 시절 부모님 곁에서 보고 느끼고 자란 가정환경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모습들은 결코 가장하거나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하여 꾸준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고난의 내재화'라 말한다.
"하지만 내가 힘들었다고 말하는 이 모든 것은 어린 시절 그 농부의 일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p.5)"
 
군사쿠테타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온 세상이 감옥이었던 시대, 차라리 고난의 길에 서 있는 수인들이 편을 드는 것이 마음 편했던 원순C였다. 검사 생활을 1년 만에 때려치우고 변호사로 개업한 원순C는 곧바로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조영래 변호사를 통해 인권변호사의 길에 뛰어든 원순C는 1985년 미문화원점거사건, 1986년 부천서성고문사건과 보도지침사건, 건대사태, 1987년 박종철고문치사사건과 구로구청부정선거사건, 풀빛출판사사건, 민족미학연구소사건, 서울대우조교성희롱사건 등 중요한 시국사건을 맡아 변호했다.
원순C는 스스로 당시에 조영래 변호사를 통해 "사회적 통찰력을 가지고 법률을 통해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과 "그것을 혼자의 힘으로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세력을 연대시키면서 풀어가는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양김씨의 분열은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 역시 이에 좌절했고 1989년부터 시작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으 몰락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거대한 시대의 흐름이 급박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원순C는 조영래 변호사의 조언으로 1991년 영국으로 떠나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강의도 하고 유럽의회, 함부르크의회에서 세미나를 하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분법을 극복해내고 유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1년 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 도서관, 법대 도서관, 워싱턴의회 도서관, 미국국립문서보관서 등에서 자료를 복사하고 자료를 구하여 공부했다.
 
원순C는 귀국 후 사람들과 함께 참여연대를 설립했다. 이전 방식의 저항운동이 아닌 새로운 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현 사회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해야 될지 고민하고 있던 사람들이 합류했다.
참여연대는 1994년 국민생활최저선운동, 1995년 사법개혁운동, 1997년 작은권리찾기운동, 1998년 소액주주운동, 1999년 예산감시정보공개운동, 2000년 부적절한국회의원후보자에대한공천반대및낙선운동, 2001년 이동통신요금인하운동, 2002년 대선정치자금감시운동 등의 활동을 펼치며 강력한 정치적 힘을 가진 시민단체로서 한국사회의 많은 변화를 이루어냈다. "역할과 한계를 아는 운동이 필요하다.(p.266)"
 
2002년 참여연대 내외부의 많은 이들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원순C는 참여연대를 '폭력적'으로 정리한 후 미국 헤리티지재단에 갔다. 거기서 그는 "모금은 예술이고, 과학이다"라는 말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재단의 사례와 제도를 연구한 후 한국에 돌아와 '세상의 좋은 변화를 위해서 꿈꾸고 일하는 사람들을 좀 편하게 해주자'는 취지에서 아름다운재단을, 재활용과 사회적 기업의 모델인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했다.
아름다운재단은 한국사회에 "1% 나눔운동"을 통해 기부와 나눔 문화를 확산시켰고 공공의 장점과 기업의 장점을 결합시킬 수 있는 모델인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켰다.
아름다운가게는 7년 만에 전국 100여개 매장, 상근간사 300명, 자원봉사자 5,000명을 기록했다.
 
원순C는 2006년에 아름다운재단을 떠나 희망제작소를 설립했다.
그는 희망제작소를 '21세기 실학운동'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소프트웨어나 콘텐츠에 취악한 구조이며, 총론은 강한데 각론은 없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희망제작소는 '씽크탱크(think tank)'를 지향하면서 동시에 작지만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데 주력하는 '두탱크(do tank)'를 지향한다. 또한 '지역사회가 붕괴되면 중심도 흔들린다'는 이론을 가지고 붕괴되어 가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실증주의자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나 큰 거대담론 과잉의 시대이고, 이념을 흑백으로 무모하게 분류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각론과 디테일한 부분을 고민해야 하며, 같은 부분에서는 합의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조율해나가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가 안보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까? 국가보안법을 존치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인권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까? 둘 다 해야 되잖아요"라고 말한다.
 
원순C가 인권변호사,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활동을 하는 과정은 활동가들 뿐 아니라 개인이 시대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를 어떻게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주도하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권변호사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후 시대가 변했음을 깨닫고 자신이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분야로 참여연대를 설립하여 새로운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참여연대에서 10여년 정도 성공적으로 활동한 후,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후배들을 위해 과감하게 참여연대를 박차고 나간 후 '나눔과 기부'를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했다. 또한, 아이디어와 창업, 참여와 사회적 기업 등을 사회활동으로 승격시키면서 희망제작소를 설립하게 되었다.
 
시민운동가나 직장인, 전문가라는 분야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한 자리, 한 위치, 한 역할에서 10년 이상 꾸준하게 성과를 내고 스스로를 혁신하기가 무척 어렵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통이 어렵고 사고방식과 일처리 방식이 고루해지게 된다. 개인과 조직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개인들의 활력과 창의력은 억눌리며, 조직은 후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 조직은 10년이 지나면 해외 유학을 보내주고 대학교수는 안식년 제도를 도입하고 기업은 새로운 역할이나 업종으로 재배치시켜준다. 물론, 시대의 흐름이나 환경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유학, 안식년, 재배치의 기회를 얻어도 그것을 자기 혁신과 새로운 가치 창출로 연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기회마저 생각하지 못하거나 얻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원순C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꿈을 꾸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라고 미국 사람인데, 일본 홋카이도에서 교육운동을 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보이스, 비 앰비셔스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했죠. 앰비션 ambition이라는 것이 꼭 좋은 의미로만 해석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람은 그런 앰비션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꿈이잖아요. 좀 황당해도 좋으니까 젊은 시절에는 그런 꿈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시기에 그 말 한마디가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우리 시대에 제가 그 역할을 충분히 못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더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그런 천박한 꿈이 아니라 정말 세상을 향해서 자기 일생을 한 번 바쳐보겠다는 꿈을 꿔봤으면 좋겠어요. 인생을 살다보면 마모되고 성숙되면서 결국 현실화되거든요. 청년 시절에는 무모한 꿈도 꿔봐야 합니다. 그게 그들의 특권이고 장기고,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시기잖아요. 세상을 살다보면 안 그래도 소시민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젊은 시절 그런 꿈이라도 꿔봐야 하지 않겠어요?(p.381)"
 
 
이 책을 읽고나서 원순C에 대해 기본적으로 신뢰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그래서 야권단일후보 경선 때부터 서울시장 선거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고  지난 10월 26일 원순C는 개표 결과 큰 표 차이로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시장 업무를 개시한 이래 지금까지 자신의 지지자들과 서울시민 대다수를 위해 좋은 정책을 실시하고 있고 일방주의가 아닌 소통으로, 토건행정이 아닌 복지행정으로, 돈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서울시정을 바꾸어나가고 있다.
자신이 평생에 걸쳐 고민하고 준비해왔던 '희망'을 '시민이 시장이다'라는 구호 아래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한 가지씩 정책을 실현시켜 새로운 정치와 행정의 모범을 실현시켜 나가길 기대해 본다.
 
[ 2011년 1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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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속도를 10km 늦출 때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
조셉 베일리 지음, 강현주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왜 그는 내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왜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단절된 듯한 기분일까?’ 
‘그는 나에게 전혀 시간을 주지 않아!’ 
‘더 이상 내게 꼭 맞는 짝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하지만 단지 일상적인 것들 때문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일 뿐이야.’

저자는 위의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 이 책과 딱 맞는 독자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진정한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이자 오랫동안 커플 치료를 위한 상담을 해왔던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펴낸 책으로, 연인관계나 부부관계에서 자주 일어나곤 하는 여러 가지 실제 사례를 예로 들어 우리의 연애사 속에서 겉으로 쉬이 드러나지 않는 심리적인 갈등과 그 원인을 조망한다.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부터 새롭게 사랑하게 되는 과정까지 사랑에 관한 새로운 시각, 열린 시각을 갖기 위한 방법을 열 가지의 이야기 속에 담아 체계적으로 구성했다. 총 17가지의 실제 사례 모음 속에서 우리가 흔히 겪는 갈등을 소개하고, 그들이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 나갔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처음 이 책을 들었을 때... 이미 세상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린 '불혹'의 나이에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것이 낯 간지럽기는 하지만, 저자 말대로 '사랑'이라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해당하는 현상이고 언제 태동할 지 모르기에 나를 위해, 내 주변을 위해 저자의 관점을 들어보기로 했다.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와는 달리, 처음 연애감정이 불타오를 때에는 상대로 인해 인생이 통째로 흔들릴 정도로 사랑을 불태우던 연인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저자는 매 순간 상대방의 새로운 매력을 보고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되었던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흘러가는 ‘시간’에서 언제까지나 처음처럼 사랑하는 비법을 소개한다. 저자의 명쾌한 통찰력은 우리가 왜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지,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려주고 그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부터 새롭게 사랑하게 되는 과정까지 사랑에 관한 새로운 시각, 열린 시각을 갖기 위한 방법을 열 가지의 이야기 속에 담아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총 17가지의 실제 사례 모음 속에서 우리가 흔히 겪는 갈등을 소개하고 그들이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 나갔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진짜 사랑을 방해하는 감정들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원래 사랑하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저자는 상대방을 사랑하기 보다는 미워하고 갈등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사회적 조건에 길들여 있는 습득된 자아가 사랑과 행복의 조건을 상대방과 나의 본질적인 관계에서 찾지 못하고 명성, 권력, 성공 등 외부의 조건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기적인 자아는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방해하는 제1의 요소이다. 그에 반면 우리 ‘본래의 자아’는 시간에 촉박하기보다는 여유로운 자아이다. 우리 본연의 모습은 진정한 사랑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둔 순수한 자아이다.


저자는 사랑의 전제조건은 용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용서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대부분이 ‘용서’라는 단어를 ‘비난하고 있는 대상이나 당신이 알고 있는 잘못들을 눈감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용서 안에는 우월감이 숨어있다. 저자는 자신도 그러한 거짓 용서를 진정한 ‘용서’라고 착각했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제 진정한 용서가 어떤 의미인지 재조명한다. 상대방의 행동은 그 순간 자신이 아는 전부를 동원하여 대처한 것일 뿐이며 그를 비난하고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상태에서는 아무런 판단 없이 상대방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 등의 깊은 통찰을 통해 진정한 용서에 관한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가 현재에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영감으로 가득한 또 다른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외적인 현실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단지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에 머무르는 것은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비법 가운데 하나이다.

 
용서란 아무런 판단 없이 다른 사람의 순수성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229p)

진정한 용서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자각의 변화이자, 과거나 관계에 대한 이해의 변화이다. (231p)

진정한 용서는 처음부터 용서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용서하는 사람이 그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자신들의 왜곡된 자아의 믿음체계에 따라 정당한 행동을 했으며, 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고 믿어주는 것을 뜻한다. 믿음체계는 신뢰하기 힘든 것이다. (231p)

용서로부터 가장 큰 혜택을 얻는 사람은 바로 용서하는 사람이다. (240p)

협상방식은 우리 본래의 자아의 손상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잠시 생각해보자. 당신의 진실한 느낌이 당신의 안내체계이다. 만일 당신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 때로 당신의 진실한 느낌을 무시하고 협상해야 한다고 배웠다면, 당신은 더 많은 시간을 갈등 속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289p)

 

[ 2010년 5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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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작가는 10월 말, 영국의 어느 흐린 일요일...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부두에 선 채, 항구로 들어오는 거대한 화물선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다섯 남자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일'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로 결심했다. "현대 일터의 지성과 특수성, 아름아움과 두려움을 노래해보고 싶었다"고...
 
'일'이라는 광대한 주제를 위해 저자는 창고(물류시설)와 초고층 빌딩, 비스킷 공장과 취업 박람회장 등으로 부지런히 발을 옮기고 일상의 고된 노동이라는 거울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소외감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무엇이 일을 이토록 즐겁게, 혹은 즐겁지 않게 하는가?", "우리 삶에서 일을 떼어내면 어떤 모습이 남을까?"... 이 질문들은 '일'이 곧 한 사람의 인격이 되고, 한 인격의 정체성이 되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일상적인 생각이나 상황에 대해 저자가 문명과 사회에 관해 깊고 은근한 통찰에 이르는 것은 저자의 타고난 강점인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하여 '일'이 가져다줄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관점을 제공할 뿐, 저자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답을 내놓지 못한다. 저자가 전문적인 철학자나 인문학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인류가 자급자족하던 시대에도 '일' 또는 '노동'은 존재했다. 단어상으로 '일'은 직업이라는 느낌을 주고 '노동'은 '노동자'라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인간에 의한 의간의 지배, 인간에 의한 착취, 잉여 생산물이 없던 시대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일'을 했고 그 결과물을 취했을 것이다. 소규모 가족단위나 집단에서 '일'은 남자는 사냥, 여자는 가사와 농사로 분화되기는 했지만, 그 집단에서는 스스로 먹고 입고 자고 놀기위한 모든 것을 '일'을 통해 생산했다. 21세기인 지금도 아프리카와 아마존 밀림 등에서는 여전히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집단이 존재한다. 그들에게는 노동으로 인한 '소외감'도, '행복에 대한 고민'도 없을까?
 
더불어 인간의 자연을 이겨내고 다른 동물들을 이겨내기 위해 점점 대규모 집단을 이루며 살게된다. 그렇지만, 인간이 대군락을 이루거나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통치하면서부터, 잉여 생산물이 가능해지면서부터 '일'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노예'로 다루고 자신의 '일'을 대신하도록 강제하면서 '의식주'에 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 부류가 나타났고 수 천년, 수 만년 동안 이어져 왔다. 영웅담과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아프리카 부족장과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영화 '300'의 주인공), 알렉산더 대왕과 네로 황제, 찰스 2세와 진시왕, 엘리자베스왕과 광개토대왕 등도 '일'과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지배자'이자 '착취자'에 불과할 수 있다.
 
'일'에 대한 인류의 정신세계는 어떠했을까?
지배자들은 '일'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유희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기원전 4세기 경,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족과 보수를 받는 자리는 구조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했으며, 이런 '일'에 대한 태도는 그 후 2,000년 동안 계속되었다. 기독교가 서구를 장악한 이후, 종교인들은 '일의 괴로움'이 아담과 이브의 죄를 씻는 데 어울리는 확고한 수단이라는 교리를 세웠다. 르네상스 이후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노동'의 고귀함을 찬양하는 철학이 대두된다.
 
20세기 들어서면부터 대량생산과 (국제)무역이 증가했고 이제 '일'하는 사람마저 자신이 '일'했던 결과물을 소유하지 못하고 '화폐'를 '일'의 대가를 받은 후,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화폐'와 바꾸게 된다. 이제 '일'에 대한 정의는 대폭 넓어져 무언가 물리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것도, 물리적이지 않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말하고 행위하는 것도 '일'에 포함된다.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이 없는, 모든 것들이 융합되는 21세기...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인가...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구해본다...
Q. 나는 왜 일을 하는가? -> A. "일 = 삶"이기 때문에... 그 '일'이 노가다든, 책상물림이든, 기계조작이든, 조직활동이든...
Q. 일은 즐거운가? -> A. 때론 즐겁고 때론 괴롭고 때론 아프고 때론 힘들다...
Q. 삶에서 일을 떼어내면 어떤 모습이 남을까? -> A. 다른 일을 찾아야지... 죽지 않는 이상...
 
그나마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사람들에게 주입하고 있는 '성공'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위로가 된다.
"현실적으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에 오를 가능성은 400년 전에 프랑스에서 귀족이 될 가능성보다 아주 약간 더 클 뿐이다. 오히려 귀족시대에는 그 가능성에 관해 솔직했고, 그런 면에서 더 친절했다. 옛날 사회는 작은 기회를 가지고 미래를 한 번 걸어보라는 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을 무작정 강조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평범한 삶은 실패한 삶과 똑같다는 식의 잔인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를 위로하고 만다. 어떻게 해야 '일'과 '행복'이 함께할 수 있는지 말하지 못한다.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 21세기 자본주의는 변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전제가 잘못되었다.
사람은 '경쟁'에서가 아니라 '협력' 속에서 사람다워질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010년 5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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