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의사의 코로나
임야비 지음 / 고유명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로 코로나 4년 차. 어찌 살아왔나 싶다.

전염병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더구나 팬데믹이란 생전 입에 떠올릴 필요 없을 것 같은 단어가 이렇게 익숙한 단어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미세먼지 많은 날에도 잘하지 않았던 마스크를 사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고민할 필요도 없이 구할 수도 없었던 때가 있었다. 후에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해도 인당 구할 수 있는 양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것도 정해진 시간에만 구할 수 있다고 생긴 긴 줄.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마스크를 구해 보겠다고 그 긴 행렬에 끼게 될 것도 상상도 못했다. 이제 당당히 선진국 반열에 들어 섰다는 대한민국에서 이 무슨 구태의연한 공산주의식 배급 방식인가. 검사에서 확진이 나오면 무조건 격리돼야 하고, 이에 불복종하면 끝내 찾아내 격리시킨다. 그뿐인가. 교회도 온전히 다닐 수도 없었다. 교회가 크든 작든 20명을 초과하면 안 되는 규정이 생겼고, 하늘길은 완전히 끊기고. 사회적 거리 두기로 거리는 한산하다. 연일 몇천에서 몇만의 사람이 확진되고 또 몇백 명의 사람이 죽어 나갔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난 그제야 전염병이 무섭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전에 사스나 메르스 때도 마스크 착용이 권고되었지만 난 그때 마스크하고 다니는 사람을 속으로 비웃거나 측은하게 생각했었다. 2차 세계 대전의 포격을 멈추게 했던 것이 평화를 열망했던 사람들의 노력과 외침이 아니라 전염병이라고 하지 않던가. 전염병이 끝나면 나라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 예상은  비껴가지 않고 어려움이 닥쳤다. 아직 채 끝나기도 전에.      


그래도 사람들은 코로나를 꼭 나쁘게만은 생각하지 않았다.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지만 크든 작든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려고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애썼다. 하다못해 일에 치여 살았던 내 조카는 드디어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단다. 그러면서 또 한 번 걸렸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물론 앓고 누워있는 게 뭐 그리 좋겠는가만 그래도 쉴 새도 없이 일하는 것보다 낫단다. 그건 또 어찌 보면 이런 상황에서 묵묵히 애쓰는 의료진들을 생각하면 얍삽하다 못해 비열하단 느낌도 든다. 어쨌거나 그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고 위험한 사람들은 최전선에서 일하는 의료진들과 기저질환자들 아닌가.           


그때처럼 의료진들이 영웅처럼 보였던 때도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뉴스는 인간의 온갖 비리와 불온한 소식들만을 전달하기에 급급했는데 코로나 의료진들에 대한 보도는 얼마나 훈훈하고 덕스러웠던가. 더구나 아무리 더워도 달나라 우주복 같은 방진복들을 벗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역시 의사는 의사구나 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우리가 의사를 보는 시각은 그리 좋은 것만도 아닌 것도 사실 아닌가. 그러면서 과연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를 매일 생각했다. 


또 그런 와중에도 우리나라는 확진자의 관리와 방역을 잘한다고 해서 K- 방역이란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새로운 인사법도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엄지 척 들어 올린 손을 다른 한 손이 받아드는 모양.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백신이 나오자 사람들의 마음이 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비빌 언덕이 생긴 셈이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그전까지는 확진이 되면 불편했는 데 지금은 걸린 자 보다 안 걸린 자를 찾아보기가 더 어려워졌으니 더더욱. (참고로 난 아직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백신 한 번 맞으면 코로나가 곧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다. 3개월이 지나면 약 효과 떨어지니 또 맞아야 한다. 그리도 K- 방역을 자랑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게도 피해가 막심한 미국이나 여타의 주류 국가에 비해 아직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다. 뭔가 모를 이율배반을 느낀다.


코로나는 어떤 식으로든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길을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은 나를 비롯한 일반인들에게 코로나의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낯설면서도 가리어져 있는 부분을 드러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르포 문학이다. 글쓴이가 보고 느꼈던 세계를 가감 없이 쓴 논픽션이다.


저자는 코로나가 있기 바로 전해인 2019년에 의사직을 그만둔다. 그리고 코로나 자원봉사자를 지원을 한다. 그리고 첫 발령지가 외진 어느 정신병원이다. 의사직도 그만뒀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허드렛일이나 거들 요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신병원이라니. 더구나 저자는 '그 의사'라고만 할 뿐 자신의 전공을 밝히지도 않는다. 그런 것으로 봐 정신과와는 거리가 먼 쪽인듯하다. 처음엔 그런 곳에 배정받았다고 투덜거렸겠지만 환자를 위하는 사명이 투철한 어느 수녀님과 간호사와 의사들을 보며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닫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비록 육체는 힘들어도. 하지만 정들자 이별이라고 기간제로 봉사하는 거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진다. 


나는 이 책을 읽어서야 비로소 정신병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병인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 환자들에게 코로나 확진은 또 얼마나 무서운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세상에 마음이 아픈 사람은 왜 그리도 많은지 읽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책은 공교롭게도 저자가 100일 간격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게 되는 과정과 그 병원에서의 코로나 진료 과정을 서로 교차하며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애초에 자원봉사를 했던 것도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잊고자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그것이 어떤 사람이 보기엔 자책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때도 아니고 코로나란 엄중한 시기 아니던가.  


읽으면서 자꾸만 마음이 동화돼 몇 번이고 읽는 것을 멈추고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그게 꼭 30여 년 전과 10년 전에 돌아간 내 아버지와 오빠가 생각나서만도 아니다. 그들은 이제 나에겐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저자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진 후 한 달 동안 가족과 함께 간호하는 그 신산했던 과정이 자꾸만 나의 의식을 건드려 놓는 것이다. 더구나 문체는 건조해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더 신산하고 고독하게 만든다.    


죽음을 모를 땐 그저 삶은 온전히 내 편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은 정해진 이치 따라 살고 죽는 거라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보는 건 그 믿음을 배신하기에 충분하고 때로 혹독하기까지 하다. 할 수만 있으면 삶에서 하루하루 멀어져 가는 그를 붙들고 싶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그것을 100일 만에 또 겪어야 한다는 건 얼마나 전율할 일인가.


저자는 그 첫 번째 봉사 이후에 다시 봉사를 나간다.

이번에 배정받은 곳 역시 똑같은 정신병원이지만 이곳은 먼저 갔던 곳과는 사뭇 다르다. 훨씬 넓고 시설도 좋지만 원래 있어야 할 의사들은 보이지 않고 간호사들만 있다. 의사들이 자기는 코로나 전담 의사가 아니라며 환자에게서 코로나가 옮을까 봐 피신해 있는 것이다. 오더를 내려야 할 의사가 손을 놓고 있으니 함부로 도와줄 수도 처방도 내릴 수 없고 대략난감한 상황이다. 그때의 저자의 의사로서의 활약상은 가히 내가 봤던 최고의 의학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를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저자는 그곳에서 영웅이 될 생각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분개하고 행동했을 뿐인데 한마디로 어느새 영웅과 깡패(요즘엔 이 말을 나쁜 의미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오해 없긴 바란다.)를 오가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니 어찌 김사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사람은 평안할 땐 자기가 처한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른다. 그저 편안함에 취해 저 밑바닥에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다 뭔가의 파문이 이러나 밑바닥을 휘저어 놓으면 잠자고 있던 의식이 수면으로 올라온다. 코로나 역시 그랬다. 보라. 코로나로 인해 이단의 교주가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던가.  


저자가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그런 병원에 가지도 않았겠거니와 이런 책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번에 백신을 세 번이나 맞았고, 확진자의 격리와 사후관리를 보면서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막연하게나마 느꼈지만, 책은 훨씬 적나라하게 우리나라 의사의 방만한 태도와 의료 윤리를 꼬집는다.


어느 분야든지 세대 차이의 극복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더구나 공중보건의 문제 역시 심각해 보인다.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요즘 젊은 의사들은 버릇이 없으며 자기밖에 모른다고 하고, 젊은 의사들은 나이 든 선배들을 꼰대 취급하며 그들에게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닌자라고 하는 레지던트 기간을 통째로 날려 먹는다. 그리고 어떻게든 개업할 생각만 한다고 통탄한다. 역시 읽는 나도 씁쓸해진다. 그건 다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기성세대에 보고 배울 사람이 없으니 젊은 의사라고 나을 것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세대나 의인은 있기 마련이다.  


난 이 대목을 읽을 때야 비로소 저자가 왜 본명 대신 필명을 쓰며 자신의 전공을 밝히지 않고 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에는 뭐 그러는 거야 자유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선 불친절하다고 하다고 생각했다.) 스웨덴의 칼 오베 크라우스고르라는 작가는 자신의 자서전을 쓰면서 거기 등장하는 사람들의 실명을 거론하므로 지금까지 가깝게 지낸 사람들과 불편해졌고, 어떤 사람에게 고소까지 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도 고소는 몰라도 가급적 있을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불편과 오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생각에서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물론 시설명까지 다 가명으로 하지 않았나 한다. 그래서 논픽션, 르포문학이 어렵다는 것일 것이다. 새삼 르포 문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조지 오웰도 생각이 난다.


저자는 현재 연극에 투신하면서 소설을 쓰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어느 음악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모쪼록 그의 제2의 인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1-19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3-01-20 12:46   좋아요 1 | URL
ㅎㅎㅎ 속옷 벗는...?!
외모의 평준화.ㅋㅋㅋㅋ
하긴 이게 언제 그렇게 익숙해졌는지 모르겠어요.
처음엔 마스크 하는 거 잊어버려서 식겁한 적이 어제 같은데...
세수 안하고 나가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근데 정말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건 안 좋은 것 같아요.
30일부터는 실내 마스크 해제라던데 대중교통도 마져하지
적어도 혼잡한 시간은 제외하고 해제로 가닥을 잡으면 좋을텐데 말이죠.
아무튼 잘 견뎌왔다 싶네요.^^

바람돌이 2023-01-19 2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특히나 공공의료부문에서는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개 의료 종사자들의 희생정신 이런데 기대서는 안되는..... 저자가 본 두번째 병원이 그런 시스템이 무너진 적나라한 예가 아닐까 싶네요. 다행히 그런 곳보다는 안 그런 곳이 더 많긴 하겟지만 이 시스템이라는게 사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또 걷잡을 수 없달까 그래서 우리가 정치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는거 같아요. 이런 책이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stella.K 2023-01-20 13:42   좋아요 3 | URL
맞아요. 그동안 전염병이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가 선재적으로
해 온 일이 있더라구요.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 의료 수준은
선진국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문제점은 반드시 집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고 봐요.
저자는 바로 이점을 문제제기 한거고요.
원래 조그만 구멍 하나가 둑을 무너뜨리잖아요.
정치지도자들 과거 가지고 자꾸 싸우고 그럴 일이 아닌데 말이죠.
이 책 참 좋더군요. 르포라고 하지만 괜찮은 문학작품 읽는 느낌도
들어요. 저자가 부러웠습니다. ㅋ

희선 2023-01-20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로 여러 가지 달라진 게 많은 사람 많겠습니다 좋아진 사람도 있겠지만, 더 힘들어진 사람 많겠네요 그래도 코로나가 처음보다 심하지 않아 다행이지만, 변이가 자꾸 나오다 다시 안 좋아질 수도 있을지... 그런 바이러스도 사람 때문에 생긴 거나 마찬가지죠 사람이 지구를 덜 망쳐야 할 텐데... 의료를 하는 사람은 코로나 초기에는 많이 힘들었겠습니다 어디나 예전보다 못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교사도... 그런 말이 나온다 해도 그 안에는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하는 사람 있으리라고 봅니다


희선

stella.K 2023-01-20 13:51   좋아요 2 | URL
그럼요. 이제 30일부턴 실내 마스크도 해제 한다는데
기대 반, 걱정 반이네요.
함께 잘 견뎠다 싶어요. 의술도 많이 좋아졌고.
중세 시대 때 흑사병은 7, 8년이었더군요. 사람도 더 많이 죽었을 겁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코로나가 우리를 많이 가르쳤어요. 그죠?

yamoo 2023-01-21 1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코로나가 지속되어도 그리 나쁠 거 같진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점도 있고 그랬는데...

코로나 해제한다니 걱정이 반입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 마스크를 쓰고 다닐 것입니다~~ 마스크의 장점은 참으로 많은 듯합니다..ㅎㅎ

스텔라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길요~~

stella.K 2023-01-21 14:34   좋아요 1 | URL
아유, 무슨 그런 말씀을...
하긴 코로나 원년을 생각하면 그렇기도 하네요.
그때 바다와 하늘이 살만했죠. 사람도 많이 안 모이고.
하지만 세계적으로사람들 떼죽음을 당한 거 보면 이거
한 번이나 겪지 두 번 겪을 건 아니다 싶어요.

백신을 안 맞으셨다면 마스크 계속 하시는 게 좋을 것 같긴해요.
사람들이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거리에서도 마스크를 거의 다 하더군요.

고맙습니다. 야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 많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좋은 작품 많이 만드시고요.^^
 

0. 대체로 흐림

지난 주일 날 비오고 추울거라고 했는데 생각만큼 그렇게 춥지는 않다. 

또 모르지. 목요일 날 눈 예보가 있는데 그거 오고나면 추울지.


1. 책 보다 눈물이 핑~

책을 보고 눈물을 흘릴 확률은 나에게 거의 0%다. 

뭐 그만큼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읽는 책은 거의 한정되어 있어서 눈물을 흘릴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벌써 몇번을 눈물 흘리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코로나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3년여를 겪어왔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읽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물론 전혀 모르지는 않지. 근데 그 모든 것들은 뉴스 안의 이야기고, 뉴스 밖의 이야기를 알고 싶은 것이다. 

코로나 풍경(그것도 정신병원에서의) 과 자신의 부모님이 100일 간격을 두고 돌아가신 과정을 교차해서 보여주는데 몇번을 눈물이나 읽을 수가 없다. 시바~ 이런 책인 줄 알았으면 안 읽는건데. 뭔가 속았다는 느낌도 들고. 근데 글은 또 왤케 잘 쓰는 거야? 뭔가 모를 짜증도 났다. 인문학자 김경집 교수가 발문을 쓰지 않았다면 선택도 안했다.    

이 책은 르포 문학이다. 저자의 이름이 낮설다. 전에 한 번 소설을 쓰기도 했다는데 이렇게 잘 쓰는 작가라면 그 소설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름도 필명이고 전에 의사를 했었다는데 전공 과가 뭔지 밝히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 의사'라고만 쓴단다. 밝히고 안 밝히고야 저자 자유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독자를 위해 밝히는 게 좋지 않을까. 뭐 사람의 치부에 해당하는 뭐 그런 거라 밝히지 못하는 건가. 어쨌든 그 점은 좀 아쉬움으로 남는다. 


2. 이건 편법이다.

아직도 협찬 받은 책. 즉 리뷰를 써 주기로 하고 받은 책을 공짜 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내 돈이 안 들어가면 무조건 공짜 책이라는 건가? 정확히 말하면 리뷰를 쓰기로 계약하고 받은 책이니 계약 책이지.

그런데 좀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즉 앞의 책은 사실 모처에서 그렇게 계약을 이행하기로 약속하고 가져 온 책이다. 그런데 그곳이 얼마 전부터 이상한 일을 벌이고 있다. 

그곳에서의 계약 조건은 그런 것이다. 당사 카페와 개인 블로그 외 인터넷 서점 두 곳에 서평을 올려야 하는 것. 나는 한동안 읽어야 할 책을 천장 높이로 쌓아 놓고도 그곳에서 최신간을 볼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이용을 했었다. 그런데 바로 저 네 곳에 서평을 올려야 하는 조건이 지겨워 또 한동안 이용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그러니까 작년 말부터 다시 이용을 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 어디든 인터넷 서점 두 곳만 올리면 되는 일 아닌가? 그런데 얼마 전부터 어느 특정 서점을 지정해 그곳은 필수로 올려야 한다. 더구나 그곳은 어느 서점이라면 알만한 곳인데 최근 리뷰를 없앤 곳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곳이라고 해서 리뷰를 못 올릴 건 아니지만 필수로 한다는 건 결국 강제성을 부여한다는 것이고, 애초에 인터넷 두 곳이 아닌 세 곳으로 늘어 난 셈이 됐다. 더 우스운 건 왜 그곳을 필수로 지정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도 않았다는 것. 한마디로 공짜 책 주는데 그렇게 하기 싫으면 말아라 이 뜻인 건지. 더 문제는 이것에 대해 회원들은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한다는 것.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내가 생각을 이상하게 하는 걸까? 어쨌든 난 이제 그곳을 다시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원래 한 가지 이상의 일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앞으로 해야할 일들이 있어 한시적으로 이용했을 뿐인데, 아무리 그렇긴 해도 좀 마음은 편치않다. 그곳만큼 운영을 잘하는데도 드문데.   


3. 나이 들었다는 증거다.      

엊그제 영화 <콜리야>를 다시 봤다. 

거의 20년만 아닌가 싶다. 

다시 봐도 좋은 영화다. 콜리야를 연기한 꼬마는 지금은 애아버지가 되어있겠지? 아, 근데 이 꼬마 연기를 너무 사랑스럽게 잘한다. 숀 코널리처럼 생긴 저 털보 아저씨도 좋고. 

이 영화는 돈이 생긴다는 그럴 듯한 말에 속아 소련의 어느 애 딸린 여자와 위장결혼을 하고, 그 여자는 애를 이 털보 남자한테 맡기고 서독으로 망명하면서 벌어지는 둘의 동거를 그린 영화다. 

영화가 좋은 건, 영화속 주인공은 늙지 않아 몇십 년 후에 봐도 그대로라는 것. 필름이 약간 구닥다리라는 것 외엔 흠이없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니까 남자의 나이가 55세던가 했다는 것. 처음 봤을 땐 안중에도 없었던 걸 이제야 눈에 들어 오다니. 그게 어떤 의미냐고? 한마디로 나이들었다는 얘기다. 즉 저 콜리야 같은 애가 좋아 죽을 것만 같은 나이. 공교롭게도 주인공 남자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내 주위에도 어느덧 60을 바라보는 50대 청춘들이 많아졌는데 하나 같이 애가 넘 예뻐서 물고빨고 난리도 아니다. 3, 40대까지는 돈벌고 본인들의 애들을 키우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50줄 타기 시작하니까 애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애를 그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다고 말한다. 그런 걸 보면 이제 애는 50에 낳아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4. 나도 한마디 하자면...

투비컨뉴드가 난리인가 보다. 나도 뇌가 쪼그라든 건지 솔직히 뭐하나 새로운 게 나타나면 그것에 대한 궁금함 보단 뭐 또 이런 게 생겼어 하며 미간부터 찌푸리게 된다. 몇년 전 브런치도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이런 플랫폼 생겼다고 잘할 것 같지는 않은데 돈 준다니까 혹하긴 하더라. 누가 내 통장에 돈을 꽂아 줄 리는 없을 것 같고,무슨 투비 세컨하우스 기준 충족하면 최대 10만원 전원 준다는데 이거 하나는 끌리긴 하더라. 정말 10만원 주는 거 맞아?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북프리쿠키 2023-01-17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젠 정말로 원하는 것만 하기에도 짧은 인생인 것 같아요.~ 저도 그게 잘 안되지만.

제가 책 읽으면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책이
<인생수업>이었는데,
텔라님이 읽으신 내용과 비슷한 스토리네요.

stella.K 2023-01-17 18:12   좋아요 0 | URL
아, 인생수업이 그런 내용인가요?
책 보고 우는 거 싫은데 또 관심이 가네요.
우야면 조케습니꺼? ㅠ

2023-01-17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17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17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18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23-01-18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가 리뷰를 없앴어요? 저는 책 받고 리뷰 쓰는 거 몇번 했다가 이제는 안 해요. ㅎㅎ 막상 받고 별로인 책을 별로라고 하기는 뭐하더라고요. 출판사는 나름 정성을 들인 책이고 어느 정도의 판매량을 기대할 텐데…. 솔직하게 쓰자니 미안하고 해서 이제는 안하는데.. 책이 검색이 안 되네요!!

stella.K 2023-01-18 10:00   좋아요 0 | URL
교보라던데요? 전 거기 계정은 있지만 거의 안 가는데 잘 안되서 뭐 간단리뷰만 쓰게되어 있나봐요. 근데 그 모처라는 곳이 교보와 무슨 관계를 맺었는지 거기에 필수로 올리라는 거예요. 근데 아무도 이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더라는거죠. 리뷰어도 권리가 일정부분 있는건데. 그냥 꽁짜책 못 받을까봐 그러는건지.
하긴 그런 거 안하는 게 낫긴해요. 시간 뺐기고. 근데 장점이 아주 없진 않죠. ㅎ 장단점이 다 있어요. 그죠?^^

기억의집 2023-01-18 10:14   좋아요 0 | URL
교보 진짜 안 들어가는 앱중 하나예요. 몇년에 한번 정도!!! 흥미가 가는 책이면 괜찮은데.. 왜 찔러보기 식으로 신청했다가 당첨됐는데 책이 진짜 별로인 경우가 있어서… 난감하더라고요 !! ㅎㅎㄹ

stella.K 2023-01-18 10:29   좋아요 0 | URL
그건 그래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써야지. 쓸 땐 솔직하게 써요. 미안하지만 긴 안목으로 봤을 때 다 유익할거란 생각에.ㅋ
교보는 온라인 장사 접고 오프만 신경 쓴다는 말도 있더군요. 뭔가 이미지 개선을 해 볼 요량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러면 독자적으로 해야지 기존에 잘 하고 있는 서평사이트와 손잡고 뭐하는건지 모르겠어요. 근데 그 문제제기를 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바로 저.. 🤣
또 내가 이런 건 그냥 안 넘어 가 잖아요. ㅋㅋㅋ 까짓 거 마지막인데 뭘 못하겠어요? ㅎㅎ 근데 이렇다 할 대답은 없더이다.

기억의집 2023-01-18 10:31   좋아요 1 | URL
근데 서평사이트가 있군요. 전 그냥 책 사이트는 알라딘과 북플 이외에는 아예 관심이 없어서 여기 세계도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요즘은 유튭이나 인스타 릴스 보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할애해서 미치겠어요. 그냥 시간이 훌쩍 가요. ㅠㅠ. 그리고 잘 하셨어요. 뭔가 아니다 싶으면 말 해 봐야죠. 우리가 비록 계란이라도요

yamoo 2023-01-2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 협찬받고 리뷰써주는 거....안한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없네요...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사서 읽는게 장땡인 거 같아요. 그것도 매우 싸게!!

4. 투비컨뉴드가 뭔가요?? 이거 서재 글에서 보긴 봤는데, 뭔지 도통 몰겠다는..--;;

stella.K 2023-01-21 14: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근데 저 같은 사람은 그나마 그것도 안하니까
리뷰도 안 쓰고 책도 너무 늦게 읽더라구요.
거긴 무조건 정해진 기한 내 리뷰를 올려야 하거든요.ㅋ
저도 중고샵에서 책을 사다 보니 최신간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요즘 책값이 올라도 넘 많이 올랐잖아요.
옛날에 2만원 안으로 살 수 있는 도톰한 책 요즘엔 살 수도 없어요.
그러니 협찬에 기웃거려 보는 거죠.ㅋ

투비 잘 모르시는구나.
뭐 브런치 같은 거죠. 자신의 글을 연재로 길게 쓸 수 있는 거.
여긴 아무래도 단발로 쓰게 되잖아요.
와, 그런데 정말 놀랐어요. 알라딘 사람들 처음이라 그런지 여기 보다 거기
많이 가 있더군요. 론칭 이벤트 때문일 수도 있고,
10만자 쓰면 10만원 준다잖아요.
근데 꼭 그럴 것 같지도 않은 게 알라딘은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는 편이잖아요.
뭐든지 의욕적이고. 그래서 잘 할 것 같기도 해요.
하긴 예전에 투비 같은 거 하나 있었잖아요. 연재글 쓸 수 있는 거.
뭐 있었는데, 이름이 생각 안 나는군요. 암튼 뭐 그런 거죠.
저도 좀 귀찮아 별 관심 없었는데 이벤트 한다니까 솔깃하긴 하더군요. ㅋ
 
여자는 존재 자체로 낙인이었어
오현세 지음 / 달콤한책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가 활동 이력이 나름 화려하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영화사에서도 일을 하고 700여 편의 광고와 객원기자, 칼럼니스트, 그룹사운드의 리드 기타, 탁구 선수 등으로도 일을 하고 바둑 문학상도 받았단다. 현재는 합창단 지휘를 하고 있다.  그러다 뒤늦게 갑골문에 심취해 10년간 자료를 모으고, 그에 대한 첫 번째 결과로 이 책을 냈다고 한다. 솔직히 이거 하나만 파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자료를 모았을지 대단하다 싶다.  


나도 변하는 걸까? 이런 불온한 제목의 책은 예전 같으면 안 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지는 모르겠는데 끌렸다. 아마도 표지 디자인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비녀를 꽂은 여인의 뒷모습이라니. 더구나 저 비녀는 남근의 상징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눈에 봐도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된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우리는 여자가 하나의 재산이나 노예로 취급받던 고대 시대로부터 너무 많이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그게 어떤 의미인 건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나마 우린 지난 세월 페미니즘 운동으로 이만큼이라도 주권을 누리고 사는 거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착잡함과 만감이 교차한다. 우린 당장 가장 가까운 일제강점기를 더듬어 봐도 남자도 견디기 어려운 망국의 한을 여자가 어떻게 견뎠을지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그보다 더 오랜 조선의 병자호란은 어땠을까? 오랑캐에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으면서 50만의 여성이 세자와 함께 끌려가야만 했다. 그나마 어떻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 와도 그녀들의 고향에선 환영받을 수  없었다. 오랑캐의 땅에서 어떻게 굴러 먹었을지 모르니 안 오느니만 못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환향녀'였고, 말 그대로 고향으로 환향한 여자가 오늘날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뿐인가. 그런 전쟁이 아니어도 왕이 왕비를 맞이한다고 하면 일단 금혼령이 내려진다. 당시론 여자가 그리 건강한 것은 아니고 아기를 낳다 죽는 일이 흔했으니 그만큼 금혼령도 자주 내렸을 것이다. 왕은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왕비 후보들의 나이는 상대적으로 젊어진다. 가장 많은 나이 차이를 보였던 건 영조였다. 왕비를 다시 간택할 때의 나이가 60대 초반이고, 새로운 왕비의 나이는 10대에 불과했다. 지금 같으면 할아버지가 손녀뻘의 여자를 맞이한 거지만 그땐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권력이 좋다지만 그런 늙은 왕에게 시집보내기를 즐거워하는 아비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딸이 있는 사대부들은 금혼령이 내려지기 직전 서둘러 시집을 보내거나 몰래 혼사를 치르다 발각이 되면 치도곤을 면치 못했다.  그러고 보면 우린 순화되다 못해 말도 안 되는 사극을 보면서 역사 공부의 재미를 붙였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모든 불온한 것들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알 수가 없다. 그보다 더 오래전 고대 시대엔 남자들이 밤새 여자를 가지고 놀다가 다음 날 삶아 먹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니 여자는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없고 그저 남자의 애완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세월이 흐르면서 공창이 생기고 매춘이 사화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 되자 숨이 트이기도 했다.  내가 공창이란 단어를 처음 들은 건 중학교 때었다. 당시 여자로서 드물게 경찰계에 높은 직위에 있었던 한 여성 경관님이 공창을 주장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남자도 아니고 여자가 저런 소리를 하나 어린 마음에 분개했다. 사창이든 공창이든 매춘이란 직업은 없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것이 여성을 옹호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주장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창녀가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고 공창이 돼야 그녀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이처럼 사회의 발전에 따라 여자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지만, 고대 시대를 연구한다고 해서 여자들이 왜 이토록이나 천대받아야 하는지를 알 수는 없다. 단지 그것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갑골문만이 증명해 줄 뿐이다. 갑골문이 뭔가? 한자 이전의 문자고 뼈에 아로새긴 문자다. 바로 그 갑골문에 여자를 상징하는 온갖 문자들은 한마디로 불온하기 짝이 없다. 어느 것 하나 계집 女 자를 좋은 뜻에서 쓴 글자가 하나도 없다. 또한 그 이미지는 철저하게 남성의 시각에 고정되어 있다. 모르긴 해도 이 책은 극히 일부를 소개했을 뿐 더 알아보면 사전 한 권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반응도 여러 가지일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읽다가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어떻게 여자가 이렇게까지 비하되고 착취 당할 수 있냐며. 솔직히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기 시작한 건 100년 남짓 아닌가. 그전까지는 물건 아니면 집에서 키우는 암컷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인간이 사회 문화적 존재로 발전했다고 하지만 동물적 본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고개를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남녀가 데이트를 하다가도 죽일 수 있고 죽음을 당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착잡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왜 여자끼리 연합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선사시대로부터 암컷으로 길들여진 존재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오랜 세월 여자들은 딸이 태어난 것을 기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것은 성 정체성을 말하기 이전의 얘기니까.   


저자는 머리말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혐오하며 싸우더라.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서로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싸우는 것이 아니겠냐며. 분명 이 책은 서로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싸움 역시 모르긴 해도 꽤 오래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느 때까지라고 못 밖을 수는 없지만, 여자가 착취되어 온 세월만큼 또 그것이 착취인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남자의 역사만큼 치열하고 길지 않을까. 그러다 어느 때가 되면 합의점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때가 조금이라도 앞당겨지길 바랄 뿐이다.


책이 의외로 흥미롭고 재미(?) 있다. 저자는 갑골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동파문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동파문이란 중국의 소수민족인 나시족이 7세기 경부터 만들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순수 그림문자다. 이는 현대의 이모티콘과 놀랄만치 흡사하다. 여기에서만 머물렀다면 읽다가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중간중간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하고 있어 흥미롭게 읽힌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일독을 권한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3-01-12 1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최근 <금혼령>이란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는걸로 아는데
당시에는 금혼령일때 왕이 저렇듯 젊은 경우가 많지 않았겠네요.
60대와 10대라니 ㅠ.ㅠ

stella.K 2023-01-12 18:10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금혼령 함 봐야겠어요.
그런 걸 보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민주 자본주의에 길들여져서
도저히 조선시대를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나 싶어요.
그 시대 사람들은 그게 전혀 이상할 게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요즘 드라마 볼게 넘 많아요. 언제 다 보죠?ㅋㅋ

책읽는나무 2023-01-12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자를 삶아먹었다니??ㅜㅜ
정말 여자의 삶이란...
영조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맞아요~그랬어요ㅜㅜ

stella.K 2023-01-12 18:13   좋아요 1 | URL
그러니깐요. 저도 그 부분 읽고 놀랐어요.
그때 여자도 뭔가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을 텐데
자기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를 어떻게 삶아 먹었다는 건지
아찔해지더군요.
암튼 이책 은근 재밌어요. 기회되면 함 보셔요.^^

니르바나 2023-01-12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마이리뷰에 꼭 당선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 저것 섞어 놓은 리뷰보다 이렇게 쓰신 심플한 리뷰가 저는 더 좋아요.
스텔라님, 올해도 좋은 리뷰 계속 부탁드립니다.^^

stella.K 2023-01-12 20:34   좋아요 1 | URL
ㅎㅎ 될거 같은 리뷰는 쓰고나서의 느낌이 다르긴한데 이게 또 항상 맞는 것은 아니라서요. ㅋ
그래도 니르바나님 이렇게 응원해 주시니 좋은 결과 있지 않을까요? 고맙습니다. ^^

희선 2023-01-13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여자를 삶아 먹은 일도 있었다니, 무섭네요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은 거였나 봅니다 지금도 그런 게 아주 사라지지 않았을지도... 오래 이어져 왔으니... 앞으로도 바뀌어가겠지요 조금씩이겠지만...


희선

stella.K 2023-01-14 11:45   좋아요 1 | URL
지금도 있죠. 정말 미개한 거죠. 히잡 안 쓴다고 죽이는 나라도 있지 않습니까? ㅠ

페크pek0501 2023-01-14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이 서로 연대하면 좋을 텐데 여자의 적은 여자, 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역사 속의 여성들을 보면 지금 우리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높아졌나를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등에서는 아직도 여성보단 남성 직원을 선호하고 있고 여성은 여자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죠.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음, 이에요.

stella.K 2023-01-14 13:18   좋아요 1 | URL
그럼요. 그래도 안 잡혀 먹는 문화시대에 사는 게 얼마나 다행입니까? ㅠㅠ

yamoo 2023-01-16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골문과 여성차별의 연결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책에 나오나요?? 근대이전에 여성이 사람이 아니었다는 건 일반적인 상식이 되지 오래였고, 그리스 시대나 중세시대를 다룬 책들만 봐도 여성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소상히 나와있죠. 특히 여성사를 보면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나와있습니다.

저자의 이력이 매우 독특해서 도대체 갑골문에는 왜 빠져들었고, 여성 차별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 궁금했는데, 요는 책을 읽어야하는 거였군요~ㅎㅎ 저는 저자의 이력에 매우 관심이 갑니다..ㅎㅎ

stella.K 2023-01-16 18:30   좋아요 0 | URL
역시 야무님은 지식욕이 강하십니다. 사실 저자의 이력이 다양해서 쓰면 얼마나 잘 써 놨으려나 좀 의문스럽기도 했어요. 식당도 서너 가지 음식만 잘 하는 곳이 좋지 메뉴 많은 곳 일단 의심스럽잖아요. 나만 그런가? ㅋ 암튼 근데 읽을 수록 빠져들더군요. 특히 갑골문이라니 말이어요. 어떤 면에선 저자의 생각 보단 지식 나열이란 느낌도 들긴하지만 전 아주 흥미롭게 읽었어요. 야무님도 이분야가 첨이라면 흥미있게 읽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
 

0. 흐리고 미세먼지 많은 날

아직도 한 겨울인데 또 다시 추울 날이 있을까 싶게 날씨가 춥지않다. 

그러다 보니 미세먼지가 극성이다. 다음 주 중반에나 풀린다는데 걱정이다.


1. 잊고 있었던 음악하나.

Ole Edvard Antonsen - Passion이란 곡이다.

오늘 나의 유일한 애청 음악 프로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에 나왔는데 오래 전 들은 기억이 난다. 그동안 까맣게 있고 있었다.  

Ole Edvard Antonsen란 사람 노르웨이 트럼펫 연주가고 지난 1989년도에 데뷔했고, 1962년 생이다. 그 밖에 알려진게 별로없다. 음악 전반에 흐르는 중저음의 남성의 시를 읊는 듯한 목소리가 정말 매력적이다. 미치고 팔짝 뛸만큼 좋다! ㅋㅋ

그 시절 나는 퀸이나 마이클 잭슨 뭐 이런 당대 유명한 팝 가수들의 음악을 듣느라 너무 쉽게 이이의 음악을 잊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주말 저녁 알라디너를 위해 링크 해 놓고 물러간다. 즐감하시길...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23-01-07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왜 유튭 동영상이 이렇게 올려지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올려지는지 누구 아는 사람 있으면 가르쳐 주시라. ㅠ

Falstaff 2023-01-08 07:56   좋아요 1 | URL
동영상 공유 - 퍼가기 클릭하시면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_S8O2Um3cYo˝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 allowfullscreen></iframe>

이라고 뜹니다.
width와 height 사이즈 확인하시고요, 위의 것을 싹 복사해서 붙여보셔요.
저도 잘 몰라 누가 일려준대로 하고 있습니다. 더 잘 아시는 분 계시면 좋겠습니다만 아직도 답글이 없어서 아는 대로.....

stella.K 2023-01-08 19:53   좋아요 1 | URL
오, 이제 알겠네요. 제가 원래 기계친데 몇번 해 보니까 알겠어요.
아직도 답글이 없어서 아는 대로.....라고 쓰신 걸 보니 많이 망설이셨나 봅니다.
그냥 바로 말씀해주시지 안쿠. >.<;; ㅋㅋ
사실 저도 전부터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다
어제 댓글에 이렇게 썼습니다. 문트님 도움으로 문제해결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3-01-07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럼펫 소리도 좋지만 목소리 정말 끝내줍니다. 무슨 말 하는지 못 알아들어 좀 아쉽네요.
저는 롯데시네마에 주로 영화보러 가는데 영화 시작 전에 돌비사운드 광고하는 남자 성우 목소리가 넘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ㅎㅎ

stella.K 2023-01-08 20:03   좋아요 1 | URL
좋죠? 저도 어제 유튭에서 이 음악 찾아 몇번을 들었는지 몰라요.
젊었을 땐 시각이 예민해 인물을 주로 많이 보게되는데
나이들면 청각이 더 예민해지는 것 같더라구요.
저런 목소리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다 믿을 것 같아요.
더구나 귓속말로 소근대듯 말하면 깜빡 넘어가죠. ㅎㅎㅎ
영화관 가 본지가 하도 오래되서 남자 성우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언제고 영화관 가면 확인해 보겠습니다.^^

바람돌이 2023-01-08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성돋는 음악과 목소리 스텔라님덕분에 잘 들었습니다. 휴일 오전을 여는 음악으로 좋았어요. ^^

stella.K 2023-01-08 20:08   좋아요 1 | URL
이 음악 어제 어느 애청자가 틀어 달라는 신청곡이었는데
그 신청자가 고맙더라구요.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어쩌면 불우한 불후의 명곡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대 기라성 같은 가수들에 가려 빛도 제대로 못
받았을 것 같아요.
제가 웬만해서 유튭 올리고 이러는 사람이 아닌데 이 좋은 곡 들어 보라고
올린 건데 역시 바람님 좋은 곡을 알아 보시네요.^^

cyrus 2023-01-08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알라딘 서재에 왔는데, 사진 업로드하기가 까다로운 건 여전하네요. 마이크로소프트 익스플로러가 종료된 지 언젠데 사진 크기를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조절하지 못하는 게 말이 됩니까? 몇 년 전에 알라딘 측에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잊어버렸나 봐요. ㅎㅎㅎ

stella.K 2023-01-08 20:12   좋아요 0 | URL
오,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새해 복 많아 받아.
근데 사진 업로드가 어려운가? 난 그냥 북풀에서 올리곤 하는데
사진 크기를 마우스로 드래그 해서 조절하는 기능이 있었나?
하긴 사진이 너무 크긴 해. 그런 기능 있으면 넘 편할텐데...ㅠ

서니데이 2023-01-10 2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팝 음악은 잘 모르는 편이라서 그런지, 저는 잘 모르는 음악 같네요.
예전엔 라디오 많이 들었는데, 요즘엔 라디오 들은지 오래되었어요.
사람마다 어느 시기 많이 들었던 음악이 있는 것 같긴 해요.
요즘 나오는 최신 트렌드의 음악도 좋지만, 가끔씩 이전에 들었던 음악 다시 들어보고 싶은 때가 있는 걸 보면요.
잘읽었습니다. stella.K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23-01-11 11:47   좋아요 1 | URL
아, 저도 라디오 잘 안 듭습니다. 특히 팝송은 어떤 음악이 있는지 모르겠더군요. 그나마 예전에 많이들어서 가끔 아는 음악 나오면 반갑더라구요. 이 음악은 정말 특히 더. 음악은 추억이죠. 방울방울~🤗
 
시가 흐르는 경복궁
박순 지음 / 한언출판사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조선의 임금과 함께 개국 공신들의 이름이 대거 등장한다. 이 책은 경복궁을 창건하고 그 안에 있는 각 전각과 루에 담긴 뜻과 의미를 되새기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엔 정도전이나 하륜, 서거정, 이이나 이황 같은 내로라하는 문필가들이 지은 시와 그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경복궁에 시가 있었다니. 미처 알지 못했다. 경복궁은 알다시피 <시경>의 '군자만년 개이경복 (君子萬年 介爾景福)'의 그 경복에서 따온 말로 정도전이 지은 이름이다. 백성과 함께 크나큰 복을 누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안에 '근정전'은 어떠한가. 부지런할 근(勤)에 다스릴 정(政)으로 이것 역시 정도전이 지었으며, 부지런히 정사에 힘쓰라는 의미에서 지었다고 한다. 경복궁의 상징이고, 임금과 신하의 모든 사무가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정도전이 이 근정전을 두고 이런 글을 썼다.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게으르면 망하는 것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정사와 같은 큰일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다만 인군이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만 알고 부지런해야 하는 까닭을 일지 못한다면 끝내 그 부지런함은 번잡하고 까다롭게만 될 뿐이므로 볼만한 것이 못될 것입니다.

선유들이 말하기를, "아침에는 정사를 행하고, 낮에는 어진이에게 묻고, 저녁에는 명령할 일들을 가다듬고, 밤에는 편안히 쉰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인군의 부지런함입니다. ......(하략)

그만큼 정도전은 얼마나 임금이 부지런히 정사를 살피기를 바랐는지 알 것도 같다.

사정전도 있었다. 규모는 근정전만 하지는 않았지만 이곳 역시 실제의 정사를 관장하는 집무공간이었다. 한마디로 '정사를 생각하는 곳'이었다. 정도전은 이를 두고,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고 했다.


경회루 누각은 하륜이 지었다. 하륜은 정도전과 함께 고려 말 이색에게서 성리학을 배운 기라성 같은 수재 중 한 사람으로 나이는 정도전보다 5살이 어리다. 경회루는 태종 때 지어진 것으로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경사스러운 모임 즉 연회를 뜻하며 외국 사신을 맞이하고, 임금과 신하가 연회를 벌이는 공간이었다. 하륜의 <경회루기>를 보면, 태종이 정도전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했을 때 아버지 태조에게 지은 불효를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마음에서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것도 태조가 승하한지 4년 뒤에야 완공되었다고 한다.


경회루는 박자청이란 사람이 설계했는데 특별히 저자는 그를 꼭 기억해 주길 바랐다. 그는 당대 천재 건축가였다. 사실 박자청의 본래 신분은 노비였다. 하지만 그는 건축, 토목 공사에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고, 훗날 정 2품 판한성부사(오늘 날 사울시장에 해당)까지 역임했다. 이쯤 되면 누군가 떠오르지 않나? 맞다. 장영실이다. 처음 신분도 같은 노비였지만 그는 훗날 탁월한 과학자가 된다. 물론 장영실은 세종 시대 사람이고, 그는 그 이전의 사람이다. 저자는 박자청이 장영실 못지않은 사람인데 후대의 사람들이 기억을 못 해 주는 것 같아 아쉬워한다. 앞으로 장영실하면 박자청도 함께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을 모셨던 고급관료였던 서거정은 경회루를 두고 이런 시를 지었다. 그것을 한글로 풀어보면,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시니

만물이 기뻐한다네

이예 즐거워서 음복하고자

질서 정연히 화려한 주연 베푸니

훈풍은 전각에 서늘하게 불어오고

밝은 태양은 중천에 높이 떴도다

천재일우로 밝은 임금과 어진 신하 만나서

지극히 즐거움에 감히 편치 못하여

인의로써 처신한다네

그 밖에도 황홍헌, 이이 등도 경회루를 두고 글을 남기기도 했으니 경회루는 경복궁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었나 보다.


사정전은 왕과 신하가 한가로이 만나 서로 대화를 나누던 일종의 거실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술자리도 벌이기도 했다고 하니 경회루보다 작았던 모양이다. 말이 좋아 군신 간의 한담이지 세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면 그 앞에서 물 한 모금 제대로 삼켰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세조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인재만큼은 잘 등용하길 바랐나 보다.

좌불안석하며 현인을 구하였고 이미 적임자를 얻었는데

더구나 때맞춰 내리는 비가 온 나라를 두루 적셨네

용 같고 범 같은 영재에게 술잔을 듬뿍 내리니

기쁘고 흡족한 연회에서 빙빙 돌진 말게나

이런 시를 지은 것을 보면 천하의 세조도 영재를 등용하는 일에 깨나 고민이 많았나 보다. 이 시는 당대 불세출의 영재 김수온을 등용하고 지은 시로 그래서였을까, 김수온은 세종부터 세조는 물론이고 성종까지 주요 요직을 거쳤다고 한다.


사정전에 이황은 이런 글을 썼다.

삼가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뒤 수많은 복들 찾아들고 백신들 옹위하여 전각은 강릉(산마루와 구릉)처럼 오래가고 국세는 반석처럼 안정되며, 전하의 성스러움과 공경함이 날로 드높아져 새롭고 또 새로워져 그치지 않으며, 덕 있는 정치는 바람으로 휩쓸리듯 널리 퍼져 황폐하지 말며, 사방의 기운 화평하여 육진의 질병 쓸어내고, 백성의 풍속 순박하며 해마다 풍년 되어 굶주림이 없어지며, 천자께 드린 문안 은총을 받으며 상제의 보살핌이 길이 자손에 전하소서

라고 썼다. 알다시피 상량문은 기원의 글을 쓴다. 그 바람과 기원이 어디 사정전에게만 있겠는가. 경복궁 전체가 태평성세를 기원하며 지었을 것이다. 주요 전각이 불에 타기도 했다. 태조 3년 만에 임금의 침실이라던 강녕전과 사정전, 흠경각이 모두 불에 탔다. 그뿐인가, 임진왜란 때도 타 고종 때야 비로소 복원하기도 했다. 왜 그처럼 오랜 시차를 두고 복원이 이루어졌는지 모르겠다. 지난 2008년이었던가? 어처구니 없게도 한 취객에 의해 숭례문이 불에 탔을 때도 안타까움이 컸는데 경복궁을 거쳐 간 임금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은 조선이란 나라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에도 말없이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복궁 한 번 안 가 본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두어 번 갔고 그곳을 지나다닌 적도 있는데, 너무 지식 없이 무심하게 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역사하면 사람의한 역사를 되짚어 보곤 했는데 경복궁 같은 사적을 통해 역사를 볼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나름 읽어 볼 만한 책이긴 한데 좋게 말하면 친절하고, 나쁘게 말하면 설명이 좀 장황하다는 느낌도 든다. 난 그저 시만 온전히 음미하는 그런 책인 줄 알았는데.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3-01-05 17: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경복궁에 몇 번 가 보았고 문화재 해설사님의 설명도 들었는데,
다시 자세하게 경복궁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네요.
조선 왕조의 상징이지만 거기에 또 많은 아픔과 굴곡이 있는 것 같습니다^^

stella.K 2023-01-05 18:09   좋아요 3 | URL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안 가 본 것도 아닌데 내가 정말 경복궁에 대해 몰랐구나 했어요.
그나마 사극에서 근정전이니 강녕전이니 주워들은 건 있어
낮설진 않았다는 정도.ㅋ
책이 공들였다는 느낌과 약간 산만하다는 느낌도 들고 대충 그러네요.
전 그냥 시만 집중해서 감상하길 바랐는데.^^

바람돌이 2023-01-05 1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온갖 권위와 형식미를 다 갖다붙인 공간이 경복궁인데 시와는 딱히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에요. 조선시대에 왕의 정궁에 비유하는 시가 자유로울수는 절대 없었을거고, 진짜 유교경전을 풀어내는 시가 주류가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어요. 책이 지루햇다면 저는 시와 경복궁이라는 소재 자체가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드네요. ^^

stella.K 2023-01-05 20:07   좋아요 2 | URL
아, 그러고보니 그러네요. 전 그저 단순히 저자가 좀 설명이 장황하다 뭐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또 알고보면 경복궁의 역사가 좋은건 아니잖아요. 말없이 왕조를 지켜 온 걸 생각하면 짠하기도 하고.
아, 전 왜 아이들마냥 모든지 의인화하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

희선 2023-01-06 0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복궁과 시 몰랐네요 이 이름이 시경에 있는 말이었다니... 다른 책에서 뭔가 이야기 본 적 있을 텐데, 하나도 생각이 안 납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에서... 서울편 두편이 더 나왔더군요 서울엔 갈 곳이 많은가 봅니다 제가 사는 곳도 잘 모르네요 2023년 1월에 나온 책이군요


희선

stella.K 2023-01-06 09:30   좋아요 1 | URL
아, 경복궁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나오겠네요. 어떻게 나왔을지 모르겠지만 이게 좀 더 자세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진도 많이 들어있고. 기왕이면 컬러면 좋을 것 같은데 흑백이라 저는 그점도 좀 아쉽더군요. ㅠ

페크pek0501 2023-01-10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학교시절 역사 시간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학생 때 역사 선생님이 가장 똑똑해 보였어요. 저 많은 걸 어떻게 외워서 우리에게 설명해 주는지 놀라웠거든요.
경복궁은 고궁 중 가장 많이 가 본 것 같아요. 최근엔 못 갔는데 몇 년 전과 또 다를 것 같네요.

stella.K 2023-01-10 18:14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저도 국사 선생님 생각나요. 그 선생님은 정말 역사를 열정적으로 가르치셨어요. 거의 대학교 강의 수준이었지요. 애들 가르치기엔 정말 아깝단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모르긴 해도 나중에 대학교수가 되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별로 친한 선생님은 아니었는데 존경스럽긴 하더군요.

yamoo 2023-01-16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복궁의 경복은 시경에 나온 시구였죠. 경복궁을 지으면서 정도전이 계획한 궁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꽤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선의 궁궐을 다룬 책에서 다수 다루어졌었어요..이 책은 몰루는 책인데, 대체로 궁궐에 관계된 책들은 내용이 비슷한 거 같아요. 하지만 책마다 특색이 있어서 이 책은 어떤 점이 다른지 궁금하긴 합니다..^^

stella.K 2023-01-16 18:35   좋아요 0 | URL
경복궁에 대해 읽으셨다면 굳이 안 읽으셔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ㅋ
그러게요. 정도전은 정말 시대가 낳은 천재는 아닐까 합니다. 이거 읽으니까 김탁환의 정도전을 다룬 혁명인가? 그게 읽고 싶어졌어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