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P]팔방미인 인생설계사 뜬다
토요일인 지난달 29일 오후 6시. 휴일을 맞아 한산한 서울 중구 모 빌딩에서 20~40대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 100여명이 쏟아져나왔다. 대부분 은행·보험·증권업 관련 직장인들. 대학생들도 일부 눈에 띈다. 권모(43·보험사 컨설턴트)씨는 “하루 종일 고3 수험생처럼 모의고사를 치렀더니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했다.
▲ CFP 자격시험을 준비 중인 신한은행 직원들. 같은 CFP 스터디그룹 소속인 이들은“주말 CFP 학원 강좌가 끝나면 함께 복습을 하고 주중에도 틈틈이 일정을 맞춰 함께 공부하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 |
권씨 일행이 이날 치른 시험은 ‘CFP(Certified Financial Planner·국제공인재무설계사)’ 자격증시험 모의고사. CFP 자격증은 일반인들에겐 아직 낯설지만 최근 은행·보험·증권사 직원들 중에는 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 주말을 반납하고 시험공부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고 있다. 권씨는 “벌써 1년째 주말을 반납하고 시험공부 중”이라며 “11월 시험에서는 꼭 붙어야 할 텐데…”라며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CFP는 어떤 자격증
CFP는 미국 CFP보드가 자산운용 및 관리, 노후설계, 위험관리 등에 대한 종합적인 재무계획 작성과 자문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도입한 전문 자격제도다. 국내에서 주관하는 곳은 한국FP협회(KFPA)로, 2002년 제1회 시험이 치러졌다. 시험과목은 FP(Financial Planning) 개론, 위험관리 및 보험설계, 투자설계, 부동산설계, 은퇴·퇴직설계, 세금설계, 상속설계 등 7과목이다. 상반기와 하반기 2회 실시되며, 오는 11월 12~13일 8회 시험이 치러질 예정이다.
CFP로 활동하고 있는 삼성생명 김동엽 대리는 “최근 금융사 창구에는 개별 상품에 대한 문의보다는 은퇴, 상속 등 자신의 인생계획과 자산구조에 대한 맞춤식 투자상담을 원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며 “이런 변화에 맞춰 생애 전반에 걸친 종합재무컨설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강조되면서 CFP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FP협회 김인호 차장은 “CFP자격증은 금융사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우수 개인고객영업 분야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으려는 금융계 종사자에게 인기가 있다”며 “응시자 수도 지난해 600~700명 수준에서 올해 5월에 치른 시험에서는 1000명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CFP자격증을 따려면
CFP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우선 입문자격시험인 AFPK(Associate Financial Planner Korea) 자격증을 따야 한다. 한국FP협회 유혜숙 대리는 “금융계 종사자라면 3~6개월 정도 주말을 이용해 공부하면 딸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라고 했다.
AFPK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에는 한국FP협회가 지정한 7개 교육기관에서 정해진 교육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오프라인교육은 200시간, 온라인 교육은 6개월 과정을 마쳐야 응시자격이 생긴다.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는 3년, 전문대 졸업자는 4년의 실무경험이 있어야 최종적인 CFP자격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대학생도 시험에 합격한 뒤 금융회사에 취직해 경력을 쌓으면 이후 자격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CFP 자격증을 따고 나면?
CFP자격증은 변호사 자격증처럼 배타적으로 고유한 업무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자격증은 아니다. 한국FP협회 김인호 차장은 “하지만 은행에서 PB근무를 원하거나 보험사에서 경쟁적으로 개설하고 있는 FP센터 근무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일단 CFP 자격증이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은행과 보험사에 이어 최근에는 증권사에서도 직원들의 CFP 자격증 시험 준비를 위해 지정교육기관에 문의를 해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한국PF협회측의 설명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자산이 많은 우수한 고객들은 각 금융기관에 얼마나 역량 있는 컨설턴트가 있는지에 따라 금융기관의 능력을 판단한다”며 “이 때문에 CFP자격 취득자와 같은 종합컨설팅 능력을 갖춘 직원은 더 많이 필요해졌고, 그들의 중요성도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CFP 자격증을 따는 데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한국PF협회 지정교육기관인 에프피에듀 박응래 대표는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수강생들을 기준으로 해서 보면 AFPK는 약 3~6개월, CFP는 1~2년 정도를 공부한 사람의 합격 비율이 제일 높다”며 “주말 이틀은 모두 자격증 공부에 투자하고 평일 저녁에 하루 이틀 정도 공부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CFP 시험을 치러서 바로 합격하는 경우는 응시자의 약 20% 수준. 2002년 이후 지금까지 합격자 수는 1046명이다. 박 대표는 “한 분야에 아주 깊게 들어간다기보다는 넓은 분야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 중심이기 때문에 비경제 전공자라고 해도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충분히 도전할 만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제7회 CFP자격시험에 합격한 신한은행 이종은(여·27) 주임은 “8개월 정도는 주말에는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주중에는 복습을 했다”며 “주말 학원 교육은 하루 8시간씩 이틀간 하기 때문에 일단 공부를 시작하려고 한다면 주말을 모두 공부에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CFP 자격시험 응시에 필요한 과정을 이수하는 데 드는 학원 비용은 200만~250만원 정도. 시험 응시료는 2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