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지난 목요일 날 퇴원했다.
수술도 잘 됐고, 안정적으로 회복하고 있다고 하는데 역시 환자는 환자인지라 편치않아 하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무겁고,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가 퇴원하니 매일 눈만 뜨면 오늘은 엄마에게 무엇을 해 드려야 하나? 아침은 어떻게 하고, 점심은 어떻게 해야하나, 점심 지나고나면 저녁은...? 그러다 하루가 마감이 되면 또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잠시 안도도 해 보지만 아직은 눈에 띄게 좋아지는 모습을 기대할 수 없으니 안심할 수가 없다.
알고 보면 나의 이 마음도 우물에서 숭늉찾기 같은 것이 아닐까?
엄마가 병원에 계실 땐 내가 육체적으로 할 일은 없지만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엄마의 끼니를 챙겨야 하는 지금은 한시름 놓긴 하지만 육체도 마음도 편하지 않다.
엄마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은 쓰레기 배출도 거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던 것 같다. 그 큰 냉장고도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었다. 하지만 엄마가 퇴원하는 그날로부터 쓰레기 배출은 예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고, 그렇다고 엄마가 이것저것 잘 드시는 것도 아니면서 냉장고는 김치 냉장고까지 합해서 각종 식재료로 그득그득 하다. 엄마가 조금 먹다 남긴 음식은 내 차지고, 나도 먹다 먹다 질리면 결국 쓰레기통 행이 될 것이다.
아프면 돈이 많던가, 친구나 친척이 많던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많으면 좋은데 그래도 돈이 많은 것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긴 가족이고 친척도 없이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가 그렇게 많다고 한다. 그런 것 생각하면 고독이 사람을 더 절망으로 몰고 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아주 불행한 노인도 아닌데 엄마는 평소 당신이 인복도 없다고 한탄을 하시곤 했었다. 사람은 아파 봐야 그 사람이 평소 잘 살아 왔는지 못 살아 왔는지를 아는 것 같다. 그래도 엄마는 아들 덕에 병원도 무사히 입원했다 퇴원도 하고, 찾아 와 주는 친척과 친지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아픈 엄마에게 행복을 강요하는 것도 무리는 있어 보인다.
엄마의 거짓말 중 하나는, 난 이제 인생 다 살았다는 것이다. 금요일 날 아주 잠깐 컨디션이 좋아졌는데 그것을 두고 엄마는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러고 보면 생에 대한 의지은 죽음 보다 강하고 칼날 같은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나이가 들어선지 몰라도 원대한 꿈을 갖으라는 둥, 향상심을 갖으라는 둥 그런 말이 마음에 그리 와 닿지 않는다. 어렸을 때 한창 꿈으로 가득찬 세월을 살았을 땐 꿈 없이 나이들어가는 어른들을 측은하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나이가 되고보니 그들에게 꿈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와 안위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존중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그가 늙고, 병들고, 누군가에게 비난의 대상이 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쉽게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은 옳은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런 점에서 모아 놓은 돈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나는 악착 같이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도 이기도 하지만, 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로인해 걱정하거나 슬퍼하는 걸 견딜 수가 없다. 이것도 알고 보면 생에 대한 칼날 같은 의지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