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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겨우내 만나지 못했던 말하자면 성경공부 리더님과 한 분의 멤버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어느 식당엘 들어갔다. 식당엔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마침 방안에 자리가 있어 불편은 했지만 신발을 벗고 냉큼 가 앉았다.

 

우린 대충 음식을 주문했고, 잠시 후 음식이 나와 먹고 있는데 우리와 조금 떨어져 있는 상에 앉은 남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기 시작했다. 왜 그런가 했더니 거기엔 남자와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 그리고 채 4살이나 5살이 됐을까 말까한 여자 아이가 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아주머니가 실수로 이 남자에게 할아버지라고 했건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이 남자에겐 용서가 안 됐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할아버지로 보입니까? 아, 똑똑히 좀 보세요."

그제야 아주머니는 실수한 걸 알고 실실 웃어가며 미안하다고 했는데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우리를 포함해 방에 있는 모두를 둘러보며,

"아니 제가 그렇게 늙어보입니까?"

 

그러자 우리 옆 테이블에 어떤 여자 손님이 장단이라도 맞추듯 아니라고 했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그 남자는 젊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할아버지로 불릴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그 여자 아이가 너무 어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젊은 할아버지쯤. 그 여자아이가 귀여워 아는 척 한다는 게 "할아버지와 왔구나. 할아버지와 맛있게 먹었쪄요?" 했었나 보지. 

 

그의 아내는 남편이 그럴수록 얌전히 밥을 먹으며 "알았어. 조용히 해." 한다. 솔직히 이럴 때 남자는 아내가 자신과 함께 동조해 주길 바랐는가 본데 그녀는 오히려 남편으로 인해 주위가 소란스러운 게 더 창피하고 싫었던 것이다. 그러자 남자는 더 열에 받혔고, 결국 입맛도 잃었는지 밥을 두 숟깔쯤 뜨고 말아 버렸다. 여자는 끝까지 침착하게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 우리가 밥을 다 먹고 개산할 때쯤 그들도 계산을 했는데 그곳 주인은 남자가 자기 종업원 때문에 밥을 못 먹었다는 것을 알고 합의하에 밥 한 공기 계산은 제외했던 것 같다.

 

나와 함께 밥을 먹었던 지인이 계산할 때 보니 여자도 남자 만큼이나 젊은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들 부부는 늦게 결혼을 해 딸 하나를 낳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평소 그 아이에게 신경 쓰였던 것은 아닐까. 하긴 그게 아니어도 그런 소릴 들으면 유쾌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딸이 웃겼다. 아빠가 그렇게 화를 낼 때마다 추임새라도 넣듯 "재밌냐? 재밌냐?"하는데 아빠한테 하는 소린지 종업원 아주머니한테 하는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워가지고 써 먹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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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2-27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글에서 웃었어요. 아이가 그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저 같으면 늙어 보이는 게 창피해서라도 또 소심하지 않게 보이기위해서라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척했을 텐데 사람마다 반응하는 게 그렇게 다르네요.

늦둥이가 많은 세상이 되고 또 젊게 보이는 노인이 많은 세상이 되어
저도 아는 척하기 조심스러울 때가 있어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아이와 함께 있는
여자가 나이 든 엄마인지 젊게 보이는 할머니인지 정확히 모르겠거든요.
참 헷갈리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어요. ㅋ

stella.K 2017-02-28 14:0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니까요. 저 같으면 점잖게 몇 마디 하고 말텐데
그러니까 진짜 늙은 것 표내는 것 같잖아요.
전 그 아저씨 와이프 마음이 이해되겠구만
자기 편 안 들어준다고 더 오버하고.
그 종업원 아줌마 사람 볼 줄 모르는 것 같긴해요.ㅋㅋ

yureka01 2017-02-2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재밋냐...////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란 말이 떠오릅니다.ㄷㄷㄷ

stella.K 2017-02-28 14:07   좋아요 1 | URL
그러니깐요. 애들 앞에서 냉수도 못 마신다는 말
그냥 있는 말이 아니어요.
귀엽기도 하고.ㅎㅎ

마태우스 2017-02-2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그거 가지고 그리 화를 내고 그런답니까. 참 속이 좁네요.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없으면 그렇게 남의 평가에 예민하게 구는 듯요. 스텔나케이님은 참 글 잘써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stella.K 2017-02-28 14:14   좋아요 0 | URL
오, 마태우스님! 지난 주 우연히 TV 보다가
마태님 곽정은 씨와 토크쇼에 나온 거 보고 반가웠습니다.
더 화사해지시고 멋 있어 지셨더군요.
그 특유의 유머 감각은 여전하시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마태님께서 칭찬해 주시니 기분 좋습니다.ㅋㅋ

cyrus 2017-02-28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좀 이해가 안 되는 게 공공장소에서 언성을 높이면서 화를 내는 사람들이예요. 그 사람들 대부분은 나이가 많아요. 그 사정을 살펴보면 그렇게 크게 화를 낼만한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조금 이런 성향이 있어서.. ㅎㅎㅎ 제가 아버지가 밖에 나가서 부끄러운 행동을 한 걸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솔직히 걱정되긴 해요.

stella.K 2017-02-28 16: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남자들 그런 경향이 있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 와이프는 얼마나 쪽팔리겠니?
계속 조용히 하라는데도 말도 안 듣고.
근데 난 그 아저씨도 솔직히 이해는 간다.
나도 그런 일 당한 적 있었거든.
중학생 녀석이 나하네 할머니라고 그러는데 얼마나 열 받던지.
그런다고 그렇게 열 받아하는 건 좀 심하긴 해.ㅋ

cyrus 2017-02-28 16:37   좋아요 1 | URL
화를 먼저 낸 사람이 진 겁니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강한 부정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화를 낼 수 있거든요.. ㅎㅎㅎ
 

그때 나는 화가 좀 나 있었다. 작년 말, 내가 고객으로 있는 통신사에서 새 상품을 소개 받았는데 들을 땐 혹해서 가입을 하겠노라고 했는데 그러려면 기존에 가입한 상품을 해지하고 다시 등록 해야 한단다. 그러면서 내 주민등록 뒤의 6자리를 가려서 사진으로 찍어 전송해 달라는데 원래 기계치에다 사진 찍는 건 영 젬병이라 자꾸 다시 찍어 보내 달란다. 사진 못 찍는 사람은 새로운 상품에 가입도 못하는 건가? 화도 나고 그동안 사진 찍는 것에 신경을 너무 쓴 나머지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아무리 서비스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그들의 상술에 놀아 날 필요가 있을까 결국 나는 새 상품의 등록을 취소하고 기존의 상품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나중에 문제 생길까 봐 기존 상품 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냐고 재차 확인까지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런 일이 있는지 한 달이 좀 지났을까? 어제 문자 한 통을 받았는데 주민등록증 등록번호 뒷자리를 가리고 사진을 찍어 보내 달란다. 결국 나는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지만 일단 찍어 보내달라니 몇 번을 찍어 그중 제일 괜찮다 싶은 두 장을 골라 보내주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어제는 퇴근 후라 연락이 없었고, 오늘 다시 찍어 보내 달라는 문자가 왔다. 역시 곱게 넘어갈 일이 아니구나 싶어 일단 다시 찍어 보내주면서 이것 이상으로 잘 찍을 것 같지 않으니 양해 바란다며, 사진 못 찍는 사람을 위해 다른 방법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다. 그러자 얼마 있지 않아 그러면 팩스로 보내 달란다. 순간 난 참았던 화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집에 팩스가 있을 리 없고, 보내려면 이 추운 날 문방구를 가야 한다. 그런데 그 문자 뒤에 달려 온 문자가 더 걸작이다. 번거로우실 것 같아 처음부터 말씀 안 드렸다고. 참고로 그 전화기 목소리 주인공은 한 달 전 가입과 취소 과정에서 익히 들었던 목소리다. 그러니까 내가 사진 문제로 옥신각신 했던 사람이란 것이다. 아무튼 난 문자로 이러지 말고 전화하라고 했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전화가 왔고 그 다음부턴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단지 그 전화에서 내가 알아 낸 것은 여기는 대리점이고 본사로 전화해 기존 상품을 다시 사용하겠다고 하란다. 그런 방법이 있으면 진작 가르쳐 줄 일이지 일을 뭐 이런 식으로 하나 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식식거리며 알겠다고 하곤 본사로 전화를 했다.

 

언제나 그렇듯 그런 곳의 전화 받는 안내양들은 상냥하지만 사무적이라 정감이 없다. 또한 언제나 그렇듯 젊은 여성이 내 전화를 받았고, 신원확인을 위해 생년월일을 물어 본다. 나는 생각 없이 생년과 월일을 가르쳐 줬는데 그게 또 하필 오늘 110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 없이 가르쳐 준 건 이게 나의 진짜 생일이 아니기 때문이다해마다 챙기는 생일은 따로 있고 이건 내가 혹시 100일도 못 넘기고 죽지 않을까 싶어 부모님이 출생신고를 미룬 호적상 생일이었던 것.

 

어쨌든 그걸 가르쳐 주자 일은 의외로 금방 처리가 됐다. 처리하는데 드는 시간은 5분이 채 안 걸렸던 것 같다. 그러면 되는 걸 어쩌자고 그 대리점 여직원은 그렇게 일처리를 하려했는지. 자기도 기분 나쁘고 나도 기분 나쁘고.

 

겨우 감정을 가라앉히고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그 안내양이 나를 붙든다.

고객님, 아직 전화 끊지 말아주십시오. 오늘이 마침 생신이신데 제가 생일 축하 노래 불러드리겠습니다.”

순간 난 툭하고 웃음이 터져 나올 뻔 한 것을 겨우 참고,

아유, 됐습니다.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안됩니다. 제가 짧게 불러 드리겠으니 잠시만 들어주십시오.”

그 아가씨 고집이 센 건지 아니면 오전 시간이라 여유를 부려 보는 건지 기어코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나는 하도 낯간지러 전화기를 귀에서 떼고 들었는데 노래를 듣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조금 전의 불쾌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모르는 사이 함박웃음을 짓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데 나는 좀 짓궂겠지만 그녀도 감정 노동자인 만큼 이런 것도 교육 받고 하는 건가 싶어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아니라며 자신이 부르고 싶어 부른 거란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아,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리구요,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지금까지 000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곤 우린 전화를 끊었다. 하긴 그녀가 내가 그렇게 물어 봤다고 해서 순순히 진실을 말해 줄 것 같지는 않다. 난 그저 그녀의 행동이 다소 놀랍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했으며,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 아까 대리점 여직원에 언성을 높인 게 일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나 자신이었다. 조금 아까까지만 해도 인상을 쓰며 불쾌감에 사로잡혀 있던 내가 어떻게 이렇게 그런 것에 헤헤거리며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건지 과연 감정의 천국과 지옥은 한 장의 종이 뒤에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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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2017-01-10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S카드사 전화해서
막 짜증부렸는데. 근데 차분히 생각해보니 어찌나 미안하던지
얼굴을 마주한게 아닌덕에
거친말이 좀 나갔습니다.
그분도 저와같은 월급받는 입장일텐데.
이 글 다 읽고나니 더 미안해지네요.
반성합니다.

stella.K 2017-01-11 13:4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가급적 화를 안 낼려고 했는데
그 여직원은 아직 일하는데 요령이나 지혜가 부족한 것
같더군요. 본사에 전화하라고만 했어도 화낼 일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ㅠ

hnine 2017-01-10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진 찍어 보내고 fax 보내고, 이런 일들에 거의 노이로제 수준입니다 ㅋㅋ
그런데, 100일도 못넘기고 죽지 않을까 해서 출생신고를 미뤄했다는 말씀, 진실입니까 허걱...저희 시대도 그런 시대였나요 ㅠㅠ
그 여자 상담원, 결국은 전화 받는 사람을 뭉클하게 하네요. 저 같아도 그렇게 노래까지 불러주는데 마음 풀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마지막 문장이, 캬~

stella.K 2017-01-11 13:41   좋아요 0 | URL
ㅎㅎ 뭐 옛날만 같겠습니까만 그런 일이 우리 어렸을 때
아주 없으란 법은 없죠. 그냥 살 좀 붙여봤슴다.ㅋㅋ

서니데이 2017-01-10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객센터에 전화했을때, 상담을 잘 해주시고, 친절하면 좋긴 해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상담하시는 분들에게 너무 친절할 것을 강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생일축하 노래를 규정에 없는데도 불러주셨다면, 그분의 좋은 마음이겠지요.
그래도 들으실 때 조금은 놀라셨을것 같아요.
stella.K님, 날씨가 계속 추워집니다.
그럴수록 더 따뜻하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stella.K 2017-01-11 13:44   좋아요 1 | URL
저도 날씨에 민감한 편인데
서니데이님도 그러신 것 같아 왠지 동질감이 느껴집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춥죠.
그래도 견딜만한 추윕니다.
이번 추위 지나가면 사실상 겨울 취위는 다 지나갔다고 그러구요.
쫌만 참기로 해요.^^

2017-01-10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1-11 13:4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패밀리 레스토랑 직원들 생각나더군요.
기타치면서 노래불러주잖아요.
기쁘나 슬프나 노래 불러줘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 마음이 느껴지는데 안 불러주면 어때서...

꼬마요정 2017-01-10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엄마가 학교 일찍 보내려고 한 달을 앞당겨서 출생신고를 했답니다. 벌금까지 내면서요. 덕분에 초등학교 1,2학년 때 많이 맞고 다녔죠 ㅎㅎ
전화 하고 받는 직원들, 권한도 없고 있는 말 없는 말 다 듣고 하는 거 알지만, 막상 내 일이 처리가 잘 안되어서 다툴 일 있으면 다투게 되지요. 가능하면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요. 그래도 노래도 들으시고 좋으셨겠어요 ㅎㅎ

stella.K 2017-01-11 13:49   좋아요 0 | URL
ㅎㅎ 벌금까지요? 어머니 교육열 대단하셨네요.
나이 보다 학교 조금 일찍 들어간 친구 부럽긴 하더라구요.
같이 맘먹기도 하고 재수해도 소해 보는 일 없구.ㅋ

네. 기분은 좋았는데 한편 짠했어요.^^

비연 2017-01-11 0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직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싶을 때가 있어요.
감정 노동자들. 무조건 친절해야 하고 무조건 고객에 응대 잘 해야 한다는 강박 하에 있는 분들에게 가끔 미안할 때가 있어요, 저도. 벌컥 화를 내고는 뒤돌아 후회하는...
그나저나 여자 상담원분, 굉장히 멋지네요. 면구스러울 수 잇는 일인데도.. 그렇게 굳이.
잠깐 사이에 마음이 많이 풀리셨을 것 같아요.

stella.K 2017-01-11 15:1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얼마나 면구스럽겠어요?
아무리 전화고 젊은 사람이더라도 말이죠.
그 안내양 헬조선이란 이 나라에서 하는 일이
잘 풀려야할 텐데 빌어주고 싶더군요.^^

2017-01-11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1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1-11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생일 축하합니다..

stella.K 2017-01-11 13:56   좋아요 0 | URL
말로만요?
아.. 아닙니다. 곰발님 보면 자꾸 장난치고 싶어져서요. 쿨럭~ㅋㅋ

페크pek0501 2017-01-15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정의 천국과 지옥은 한 장의 종이 뒤에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저도 이런 느낌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은 참 진부하게 들리지만
사실이 그런 것 같아요...

stella.K 2017-01-15 12:46   좋아요 0 | URL
그날은 진짜 웃겼어요.
아직 화가 난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겠다니 어찌나 우습던지.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싶더라니까요.ㅋㅋ

북프리쿠키 2017-01-16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말로만ㅋ
아 그나저나 전 노래불러주는 사람없던데
생일날 제가 직접 전화드려야겠어요 kt🎶

stella.K 2017-01-16 14:52   좋아요 1 | URL
그 통신사 고객 서비스가 바뀐 것 같습니다.
생일 날 전화하면 노래 불러주기 뭐 그런 걸로...
그런데 아무리 전화상이지만 얼마나 민망할까요?
하긴 뭐 하도 불러서 익숙할 수도 있겠죠.
전화하는 그날이 마침 생일 날이 되기도 쉽진 않을텐데...

그런데 쿠키님 일부러 통신사에 전화해서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말하는 거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ㅋ

북프리쿠키 2017-01-18 14:43   좋아요 0 | URL
미친척하고 함 해볼까요? 서비스 아직 하고 있는가..ㅋㅋㅋ

stella.K 2017-01-18 16:21   좋아요 1 | URL
생일이 언제신지 생일날 해 보시고 후기부탁 드려요. ㅋㅋㅋㅋ
 

베트남에서 일하는 친구가 휴가를 맞아 귀국을 했다. 우린 강남역 근처에서 1년 만에 다시 만나 소박한 점심을 먹고 와플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에서 후식으로 딸기 와플과 커피를 먹었으니 밥 보다 후식을 더 거하게 먹은 셈이랄까?

 

그 친구는 이렇게 한 번씩 나오면 현지의 물건들을 가져와 만나는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곤 하는가 본데 이번에 나도 한 아름 선물을 받았다. 그런데 비해 나는 그 친구를 위해 뭐하나 제대로 해 준 것이 없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친구가 한국에 있지 않은데다 그곳에선 웬만한 생필품은 한국 보다 쌀 테니 돌아갈 때 다 짐이 될 것 같아 함부로 뭘 못해 주겠는 것이다. 그나마 부끄럽지 않은 건 지난여름에 나온 나의 불후의 명저(<네 멋대로 읽어라>.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겐 실패한 걸작 같다.)를 내밀었을 때라고나 할까?

 

아무튼 우린 그렇게 선물을 교환하고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웬 등과 어깨에 짐을 진 어느 키 작은 할머니가 가래떡을 팔겠다고 각 테이블을 돌고 있었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거의 애원조다. 할머니는 누구에게라도 얼른 팔고 싶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는데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떡을 사지 않았다. 드디어 할머니는 우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도 왔는데 우리 역시 사지 못했다. 사실 비스하게 늙어버린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그 할머니의 바람을 거절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더구나 할머니는 내 친구 보단 나를 바라보며 사달라고 했는데 결국 나도 바람을 이루어드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 있기도 하거니와 방금 친구로부터 선물을 건네받아 가방(그리 큰 것도 아니지만) 가득 챙겨 넣은지라 이 할머니한테 떡을 사면 집에 가는 길이 다소 번잡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좀 미안한 마음에 조그만 소리로,

저희 집에도 있어서요....”

그러자 할머니는 물러설 생각이 없는지,

가래떡을 누가 없어서 사나? 다 쟁여두고 먹는 거지. 그러지 말고 좀 사 줘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살게요.”

그러자 할머니는 서운했는지,

다음에 사긴 언제 산다고 그래.”

하고는 팩 토라져 다음 테이블로가 가는 것이다. 물론 그 할머니도 그것이 거절의 뜻이라는 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거절만 당해 온 지라 나는 혹시 살까 싶었는데 나 의 완곡한 거절이 오히려 부아가 나셨는가 보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로부터 그런 핀잔을 들었다고 기분이 상했던 건 아닌데 어쩌면 그 할머니가 지고 있는 짐 보따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고 또 엄마 때문인지도 모른다. 엄마 역시 늘 장을 봐 올 때면 어깨에 손에 한 짐을 지고 돌아오곤 한다. 무겁게 이것저것 사지 말라고 아무리 말려도 살아 온 스타일은 좀처럼 바꾸질 못하는 것 같았다. 요즘도 벌써부터 손주들 설에 오면 먹이겠다고 시간 날 때마다 명절 먹을거리를 하나 둘씩 사 나르고 있다. 어쩌면 그 할머니도 그랬는지도 모른다. 가래떡을 팔아 엄마처럼 명절 음식을 장만하거나 설에 세배 오는 손주들에게 세뱃돈 주겠다고 저리 기를 쓰는 건 아닌지. 그때 문득 학교 때 외웠던 시조가 생각났다.

 

이 보오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러워라커든 짐을 조차지실까

 

 

그땐 너무 어려 별 감흥 없이 워웠을 뿐이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수시로 생각나는 시조가 됐다. 그리고 그런 시조는 외울 줄 알면서 정작 그 할머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할머니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사려고 하는 이가 없었다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저 각박해진 세상 때문이라고 단정 짓듯 말해도 되는 걸까? 과연 거기 앉아 있었던 사람들이 그 할머니와 비슷한 또래의 어머니나 친()할머니가 없어서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각박해도 연말연시에 얼마의 불우이웃 돕기 성금 정도는 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거기 앉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생각을 안 하고 있었던 건 내가 아니어도 누구든 사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내지는, 아무도 사지 않으니 나도 못 사겠다는 집단 심리가 작용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할머니도 그다지 장사하는 데는 소질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정말 그렇게 가래떡을 팔기를 간절히 바랐다면 냄새는 고사하고 가래떡의 하얀 속살이라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저 헝겊 가방만을 들고 떡을 사라고만 하니 정말 그 가방에 떡이 들어있는지 팥이 들어있는지 알 길이 없고 구매 의욕이 전혀 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구체적인 가격이나 하다못해 싸게 해 주겠는 말조차도 하지 않았으니 누구라도 괜히 얼마냐고 물어봤다 덤터기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 할머니는 공략 장소를 잘못 선택한 것 같았다. 그 카페는 1층에 나름 깨끗하고 럭셔리한 인테리어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곳에서 번잡스럽게 그 기다란 가래떡을 펼쳐 팔고 사기엔 적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도 할머니는 떡의 하얀 속살을 펼쳐 보이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카페 관계자와 모종의 약속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냄새가 나거나 국물 또는 부스러기가 있는 물건은 팔 수 없다는 규정 같은 것 말이다. 결국 할머니는 그곳에선 떡을 파는데 성공하지 못했는데 나는 한동안 할머니가 진 짐이 못내 마음이 쓰였다. 할머니는 그날 다른 곳에서라도 떡을 파는데 성공하셨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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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05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페 주인장이 인심이 좋은 건지 가래떡 파는 할머니를 쫓아내지 않았네요. 쫓아내고 싶어도 손님들 시선 때문에 그냥 지켜만 봤을 수도 있겠어요.

stella.K 2017-01-06 13:24   좋아요 0 | URL
그럴수도 있지. 우리나라가 워낙 남의 눈치를 보고 사는 민족이니.ㅋ

서니데이 2017-01-05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 저도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얼마냐는 말을 꺼내기도 잘 되지 않고, 나중에 계속 마음이 쓰이는 것도 그렇고요.

stella.K 2017-01-06 13:25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누구라도 한 사람만 샀으면
연달아 몇 명은 샀을 것도 같은데 통 그러질 안으니...

2017-01-06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1-06 13:32   좋아요 1 | URL
남의 일 같지는 않아 보이기는 한데
무조건 비관하거나 동정하는 것도 피해야하지 않나 싶기도 해요.
아직 운신도 못하는 정도는 아니니까요.
그걸 또 나름 다행으로 여기분 분도 많이 계시잖아요.
정말 슬픈 건 문밖 출입도 못하는 거라잖아요.
젊은 사람이든 어르신이든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지 말입니다.

moonnight 2017-01-06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 샀을 것 같아요. 예전에 그렇게 테이블에 다가와서 애원하는 할머니에게 못 이겨서 산 적 있었는데 제대로 바가지였거든요ㅠㅠ; 구체적인 가격을 미리 얘기하지 않는게 그분들의 영업기술일 수도ㅠㅠ;;;
고운 stella.K님의 마음을 계속 쓰이게 만든 가래떡할머니는 다른 곳에서 파셨을 거에요. 토닥토닥.

stella.K 2017-01-06 13:36   좋아요 0 | URL
그런 적이 있으셨군요. 그러니까요.
뭔가 실패한 떡을 혹시 늙은이 불쌍히 여겨 사주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라면
누가 사겠습니까? 중요한 건 물건을 팔아야지 사람의 처지를 팔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저희 어머니도 연로하셔서 좀 측은한 마음에 써 봤어요.^^

 

             

                                      오늘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축복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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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1-01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흐르면 다시 채워지는 거 같아요..쭉 흐르네요...ㅎㅎㅎ 새해에도 책으로 이야기 많이 나누기로 하죠..2017년도 화이팅!~~~

stella.K 2017-01-01 16:28   좋아요 1 | URL
넵. 유레카님도 홧팅!!!

북프리쿠키 2017-01-02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7년은 나의 리즈시절때를 회상하며
자신감있게 매력어필하며 살아봅시다^^;
우리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ㅎㅎ

stella.K 2017-01-02 13:16   좋아요 1 | URL
ㅎㅎ 리즈 시절! 지금도 우린 충분히 매력적이어요.
살아 있는 건 다 매력적이죠.
정말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ㅋㅋ

후애(厚愛) 2017-01-02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17-01-02 13:16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후애님도요.^^

cyrus 2017-01-02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건강건강건강, 건강하세요. 이제 저도 건강에 신경써야겠어요. ㅎㅎㅎ

stella.K 2017-01-02 14:17   좋아요 1 | URL
ㅎㅎ 건강 건강하니까 너무 그런가?
그래도 이건 너무 중요해.
올핸 너도 통풍에서 해방이 되야할 텐데 말야.
건강해라.^^

transient-guest 2017-01-03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2017년에는 원래 계획한 책들 말고도 어떤 새로운 녀석들을 만나게 될런지 궁금하고, 약간은 걱정도 하고 (budget문제로..ㅎㅎ), 설레기도 합니다.ㅎ

stella.K 2017-01-03 13:00   좋아요 0 | URL
아유, 감사합니다. 이렇게 친히 건너오셔서 새해 인사도 해 주시고.
덕분에 올해는 운수가 대통할 것 같습니다.ㅋ
정말 책은 50%만 계획대로 읽고 나머지는 생각지도 않게 읽게 되는
책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계획대로 만나지마는 않듯이.ㅎ
올해도 좋은 책 많이 소개시켜주세요.^^
 

한달 전, 둘째 조카 지0이가 오랜만에 우리 집에 다녀갔다. 뭐 딴 일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고 언니네가 강릉에 살고 있고, 서울 서 친구들이랑 자취를 하고 있으니 일 년에 한두 차례 언니를 시켜 철 지난 옷들과 당장 입어야 할 옷들을 교체해 가는 모양이었다. 그에 대한 맞교환 장소를 이번엔 녀석의 외가인 우리 집으로 정한 것그럴수밖에 없었던 건, 언니는 얼마 전 집에서 쓰던 믹서기가 고장났고 마침 우리 집엔 안 쓰는 믹서기가 있어서 그것도 얻어 갈겸 하루 날 잡아 온 것이다. 그외 다른 볼 일도 있고.  

 

형부와 우리집이 절연되지만 않았어도 녀석과 내가 이렇게 오래도록 만나지 못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언니와 같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집은 형부를 무던히 품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혈연으로 맺어진 내 집 식구도 때론 품어지지 않는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남의 집 사람을 품기란 정말 쉽지 않다는 걸 형부를 보며 새삼 깨달았다. 형부와 절연이 되니 언니도 멀어지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조카 녀석들만큼은 그렇게 되길 원치 않았다. 솔직히 미운 거야 언니 내외지 아이들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애들이 부모 따라가지 누굴 따라가겠는가. 하지만 녀석들이 외가를 나몰라라 하니 섭섭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차치하고라도 외할머니와 두 외삼촌들이 녀석들에게 어떻게 했는데 이러고 나오나 옛말이 하나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싶었다. 하늘로 둔 머리 검은 짐승 거두지 말라는.

그래도 그렇게 되고 한동안 지0이한테만큼은 몇 번 문자를 보내긴 했었다. 성격대로라면 할머니와 외삼촌들이 너희들에게 어떻게 했는데 본데없이 구냐고 야단을 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고, 나름 점잖게 외할머니에게 전화 좀 하라고만 했다. 물론 녀석들이 그렇게 나오겠다면 외가고 뭐고 다 끊어야 하는 것 같기는한데 엄마를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다. 그때는 오빠가 생각지도 않게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때였고, 그런 와중에 맏딸 내외와 절연을 해야했으니 노인네가 참 복도 지지리도 없다 싶었다. 그러니 이럴 때 조카 녀석들이라도 가끔씩 전화라도 하면 엄마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질 텐데 그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문자를 보냈는데도 녀석은 답신은커녕 아예 내 문자를 씹는 것이었다. 나도 참 오지랖이다 싶었다. 물론 오기로 녀석에게 문자를 보낸 것도 사실이다. 과연 녀석이 얼마만에 연락을 할 건지 두고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건 또 무슨 스토킹인가 싶어 그만두었다. 대신 어떻게 애들을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았을까 언니와 형부한테 더 강한 혐오와 증오심을 불태웠다. 


그러던 중 작년엔 느닷없이 엄마가 대장암에 걸려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래도 요즘엔 의술이 좋아서 좀 늦게 발견해서 그렇지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 수술 직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동생을 시켜서 언니한테만큼은 이 사실을 알리라고 했다. 물론 처음엔 연락하지 말라고 단속을 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딸에게 알려지는 것까지는 좋지만 사위에게까지 알려지는 게 싫었던 것이다. 장모도 부몬데 사위가 알면 뭐가 어때서 그러는가 싶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위를 홀대해서 장모가 벌받는 거라고 생각할 것 아니냐는 거다. 그런 식으로 엄마는 원망인지 자책인지도 모를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엄마가 막상 수술을 받고 나오자 생각이 바뀐 것이다. 당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엄밀히 말하면 사위가 미운 거지 딸이 무슨 죄인가, 사위 때문에 딸조차 못 봐서야 쓰겠는가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땐 또 뭐 때문인지 동생도 크게 반대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찬성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엄마가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고비를 넘겼는데 이제와 새삼 무슨 연락인가 싶었다. 하긴 저렇게 고비를 넘겼어도 노인네 밤새 안녕이라고 엄마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무조건 반대하기도 뭐했다. 나야 언니와 한 배에서 나왔지만 엄마야 언니를 직접 낳지 않았는가. 
 

결국 엄마는 수술 직후 언니와 지0이를 병실에서 극적으로 만났다. 그때 나는 집을 지키고 있느라 감격적인 상봉(?)에 동참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그렇게 지0이와 엄마를 만나게 해 주려고 문자질을 해도 안 되더니 때 되면 이렇게도 만나는 걸  그동안 나는 무슨 뻘짓을 했던 걸까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 후 오래지 않아 나도 언니를 곧 만나긴 했지만,  지0이를 만나기까지는 그 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녀석은 뭐 하느라고 바쁜 건지 그때 병원을 다녀간 이후 외가엔 도무지 코빼기도 비치 않았다. 솔직히 언니와 난 자매지간이어도 어렸을 때부터 그리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만났다고 반가울 리는 없었고, 녀석에 대해선 막상 만나면 반가울 수도 있을텐데 그 때 내가 했던 뻘짓 때문인지 녀석은 선뜻 외가엘 못 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언니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동안 녀석은 나름 바쁘게 살았던 모양이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던 관계로 그동안 미처 다 이수하지 못한 과목의 학점을 따느라 비번 때면 그 먼 강릉을 오르내려야 했고, 그런 와중에 갑상선 항진증에도 걸려 그야말로 피똥을 싸고 살았나 보다. 그러니 외가에 언제 오겠느냐는 거다.    

 

그런데 지난봄, 엄마의 생일을 맞아 녀석이 축하전화를 했다. 물론 내가 받은 건 아니지만 곁에서 들으니, 우리들이 돈을 모아 할머니께 부쳐 드렸으니 찾아 쓰시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말에 엄마는 입이 귀에 걸린 것이 안 봐도 보였다. 그런데 녀석의 그 말이 왠지 나에겐 들어보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우리도 이렇게 할머니 생각하고 있다구요.'라고.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전화를 끊을 때쯤 뜬금없이 이모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엄마는 위로 반, 이해시키는 것 반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순간 마음이 묘했다. 그동안 그 뻘짓으로 인해 내가 녀석에게 얼마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까 싶었던 것이다. 단순히 짐작으로 아는 것과 이렇게 정확히 말로 들으니 가슴이 서늘해지는 게 어른 노릇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통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은 후 가끔씩 녀석을 생각나면 불쾌해지곤 했다. 자식도 품 안에 자식이란 말이 있듯이, 이모 조카 지간도 다 어렸을 때나 그런 거지 크면 별것도 아니다 싶었다. 어떻게 제 따위가 나를 두고 감히 외할머니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생각할수록 괘씸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괘씸하면 지는 거다. 지금쯤 녀석은 외할머니 생신 날 이모인 나를 두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내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지도 않은 날 녀석은 불쑥 우리 집엘 쳐들어 온 것이다.

 

4년만에 만났지만 녀석은 여전히 예뻤다. 어느덧 20대 말에 접어들었는데도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큼하고 싱그러웠다. 그래도 녀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 나이 때 내가 더 이상 젊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부디 녀석의 젊음이 오래가기를 빌어주고 싶었다. 녀석은 조카 셋 중 제 엄마도 아버지도 닮지 않은 유일한 아이이기도 했다. 닮았다면 제 친할머니를 닮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 사돈어른을 두 번 정도 뵌적이 있는데, 여성스럽고 고운 인상이 젊었을 때 미인이란 소리 꽤 듣고 살았을 것 같았다. 물론 난 형부도 언니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둘 중 아무도 닮지 않은 녀석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나머지 두 녀석도 싫지는 않았지만 이 아이만큼 마음이 가지는 않았다. 맏이는 남자아이라 멀쑥했고, 막내는 늦둥이로 태어나 제 부모는 어떨지 몰라도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조카라 그런지 특별히 정이 갔던 것은 아니다. 성격도 제 부모를 닮아 어딘지 뚝뚝하기도 하고. 그런데 비해 녀석은 상냥하고 싹싹했다. 

언니 모녀는 바통터치라도 하듯 하나는 들어오고 하나는 나가는 형상으로, 언니는 일찌감치 안녕을 고했고 
녀석도 바쁜 건 마찬가지긴 했지만 밥 한 끼 정도는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오랜만에 저녁을 같이 했다. 그날은 또 엄마가 때이른 김장을 해 김치 속 쌈을 따로 떼어 놓고 수육 대신 돼지고기를 구워 같이 곁들여 먹었다. 녀석은 젓갈이 적당히 들어간 외할머니나 제 엄마가 한 김치를 좋아했다. 하지만 같이 지내는 친구들은 젓갈 들어간 김치를 안 좋아해 오랜만에 할머니의 김치 속 쌈을 빠져들듯이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러던 중 나는 지난여름 책을 낸 사실을 녀석에게 불쑥 꺼내고 말았다. 이건 아직 언니한테도 알리지 못한 거였다. 그걸 녀석한테만큼은 털어놓는 것을 보면 내가 아직도 녀석을 좋아하긴 좋아하는가 보다.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 마음은 또 어쩌고.  사실 지난번 추석 때 왔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언니한테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뭐 때문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야. 이건 엄마도 아직 몰라." 
그러자 녀석은 시쳇말로 대박사건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좋아했다.
 "책 제목이 뭐예요?"
 "네 멋대로 읽어라."
 "오, 제목 좋은데요? 절대로 안 잊어버리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그런 말 많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녀석을 깔깔대며,
 "에이, 그 말 제가 제일 먼저 했었어야 하는 건데... 이모 책 서점에서도 팔겠죠?"
녀석이 그렇게 묻는 것을 보면 저자 증정본에 저자는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으로 자신의 책을 살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긴 나도 몰랐다. 책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얼마 되지도 않은 원고료를 내 책을 사는데 다 탕진해 버려야 하는 건 아닌가 했었으니까.  

 "꼭 한 번 사 볼게요."
녀석은 예의가 바른 건지 아니면 내가 어려운 건지 웬만하면 이모인 나에게 책 동냥을 할 만도 한데 그러질 않았다. 그게 또 왠지 섭섭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과연 말대로 녀석은 자기 돈을 내고 내 책을 사 볼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나와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 축하는 해도 아직까지 사 보겠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오히려 나와 친분있는 블로거들이 사서 보겠다고 해서 좀 놀랐다. 나도 그렇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작가에게 공짜로 책 선물 받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녀석이 그러는 걸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꼭 읽겠다고 하면 한 권 줄 수도 있어."
 그러자 녀석은 눈을 더욱 빛내며 그제야 한 권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표정을 지었다.
 "늦더라도 꼭 읽을게요. 제가 원래 책을 빨리 읽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나는 속으로 그건 나를 닮았구나 했다. 나는 결국 온전히 내 책으로만 담겨 있는 책 박스에서 한 권을 꺼내 첫 장에, '사랑하는 조카 지0에게. 이모가.' 그리고 그날의 날짜를 적어 한 권 줬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이란 닭살 돋는 멘트를 쉽게 날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녀석한테만큼은 하고 싶었고, 속으로 이로써 이모와 조카 지간의 지난날의 어색함은 퉁치자 했다. 나는 책을 녀석의 손에 넘겨 주면서,
 "SNS에 꼭 올려라. 친구들한테도 이모가 책을 냈다고 선전도 하고."
녀석은 방금 내 책의 홍보 요원이 된 것도 모르고 그러겠다며 좋아라 하며 친구를 만나야한다며 총총히 사라졌다.

       

나는 언니와 그다지 친하진 않지만 언니가 한 가지 잘한 일이 있다면 조카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정말 그것 하나만큼은 잘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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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7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7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6-12-17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솔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조카처럼 저도 작가님과 이렇게 sns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stella.K 2016-12-17 18:03   좋아요 1 | URL
아유, 쑥스럽습니다.
전 쿠키님처럼 겸손하시고 친절하신 분을
이웃으로 둬서 그저 감읍할 다름입니다.
고맙습니다.^^

blanca 2016-12-17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근 차근 정경을 그리며 읽게 돼요. 그 어떤 미화된 표현보다 스텔라님의 조카에 대한 마음이 진솔하게 다가왔어요.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제 조카 이름도 지~이라서 더 와닿아요.^^

stella.K 2016-12-18 17:49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쓰고 보니 제가 그 조카를 참 좋아하고 있었더라구요.
어른도 똑같은 마음이란 걸 그 조카가 훗날에라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어른도 사랑에 반응이 없으면 아무리 나이 어린 조카에게라도
삐질 수 있다는 걸.ㅋㅋㅋㅋ
짧지 않은 글 읽어 줘서 고마워요.
브랑카님 조카님도 지자가 들어간다니 저도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