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라 하면 통상 장시간 노동을 말한다. 이는 시간의 길이차원에서 말하는 과로다. 그런데 길이 차원의 장시간 노동뿐만아니라 시간의 배치 차원의 야간노동도 과로에 해당한다. 또한실적 압박이나 직장 내 괴롭힘 workplace harassment 도 과로 요인에 들어간다. 이렇게 업무 시간대를 비롯해, 업무 특성, 성과 평가, 동료관계, 조직문화, 역할과 책임 같은 질적 요인을 포함한다. - P23
과로죽음은 한 개인의 비극적인 죽음이지만 사회 조직의 구조적 모순을 담지한다는 의미에서 집합적인 비극이다. - P24
과로죽음으로 추정됨에도 ‘과로‘가 사장되어버리는 경우가 사실은 더 많다. 다시 과로와 죽음을 거리로 표현해보면, 그 거리는 꽤 먼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죽음과 업무와의 연관성이 없다는 담론, 프레임, 이데올로기, 언어가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 P24
《자살에대하여》의 저자 사이먼 크리즐리는 자살이 우울증이나 무력감으로 인해 일어난 것으로 본다면 자유로운 행위의 여지는 닫혀버린다고 지적한다 - P25
억압적이고 규율적인 맥락에서 발생하는 정신질환과작금의 경쟁적 환경에서 발생하는 정신질환은 구분된다. 발전국가 시기에도 과로죽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질식할것 같은 경쟁 시스템이 유발하는 정신적 고통, 공황, 우울증, 불안, 고독, 공격성이 흘러넘치는 시대의 과로죽음과는 그 결이 다르다. - P26
이와 관련한 실태조사나 법제도적 개념이 부재한 상황에서 증가 추이라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진단일 수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되는 맥락, 노동과정이 헬조선화되는 맥락,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모래시계의 밑바닥이 깨진 것(깨진 모래시계형 계층구조) 처럼불평등과 불안이 한층 심화되는 맥락에서 치솟는 불안정성이 과로죽음과 연결되고 그 추이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따져본다 - P27
과로죽음이 반복되는 비극에도 불구하고 법제도는커녕 실태조사도 빈약한 게 우리네 현실이다. 과로죽음의 원인 규명도 유가족이 홀로 까다로운 절차와 지난한 과정을 감당해야하는 몫으로 남는 상황 또한 어처구니없는 지점이다. 과로죽음을 유발하는 착취와 폭력성은 탈정치화될depoliticized 여지가 매우높다. 그런 가운데 과로죽음은 반복된다. 사회적 부정의가 체계적으로 생산되는 배경이다. 이 모든 것이 과로죽음을 주목해야하는 이유다. - P27
벼락 맞는 일은 매우 예외적이고 우연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연coincidence에 가까운 일이라 하더라도 벼락이 특정한 장소와 조건에서 반복 발생한다면 (구체적인 상황), 그 특정 장소에서의 노출 위험으로 발생한 사고는 더 이상 우연으로 취급해서는안 된다. 그 구체적인 상황에 노출되지 않았더라면, 벼락 맞을 우연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벼락 맞는 일이 우연적 사건이라 하더라도 특정 장소에서 반복되어 일어난다면 그것은필연inevitability일 가능성이 크다. - P29
(과로를) 읽지 못하게 하는이란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과로는 탈정치화되어 있다. 저인지는 탈정치화의 산물이다. 이런 상태는 착취와 폭력이 아주 손쉽게 작동되는 상태와 같다. 과로+성과체제가 재생산될 여지가 높아진다. ⭐⭐⭐ - P30
경쟁적인 성과 장치는 생존의 절박성만을 높이고 타자의 고통에 대해 침묵과 무관심을 조장하는방식으로 우리의 권리를 침해한다. 자살 감정 suicidal emotions 이 양산되는 맥락이다. ⭐⭐ - P31
‘어디에서는 마음 아픈 사람이 아니라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터와 과로 + 성과체제에 문제제기의 시선이 향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어떻게‘는 마음 치유나 정신 상담, 심리 치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괴롭힘 방지나 실적 쥐어짜기 을 . 기 장치를 근절하는 데 시선을 돌려야 함을 말한다. ⭐⭐⭐ - P31
일찍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육체적·정신적 고갈, 수명 단축, 아동 사망, 돌연사 등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문제를 ‘사회적 살인‘이라 규정하며, 노동자의 불건강, 노동자의 불구화는 착취적 관계에서 빚어지는 산물임을 분명히 했다. - P33
생산성, 혁신, 소비자 편의, 비용 절감, 위기 돌파. 경쟁력의 언어로 무장한 신기술은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을근사한 이름으로 채색하면서 노동을 탈시간화·탈공간화된 형태로 빠르게 바꿔나가고 있다. - P35
초기업자본주의 시기 샤를 푸리에가 공장을 <완화된 감옥>‘이라 불렀던 것에 비춰보면, 디지털 모바일 기술은 <투명한 감옥>의 외연을 비가시적인 형태로 일상에까지 확장한다. - P36
동시에 우리가 직면하는 또 다른 현실은 노동(과정) 이 탈공간화·탈시간화되면서 과로죽음을 규명하는 일이 더곤란해졌다는 점이다.
퇴근 후 SNS 업무 지시를 노동시간으로산정하는 문제, 배달앱 노동을 포함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문제, 재택근무 시 보안 유지나 생산성 측정이란이름 아래 스태프캅, 타임닥터, 티메트릭, 데스크타임, 인터가드, 클레버 컨트롤, 테라마인드 같은 보스웨어 bossware 프로그램(보스를 위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란 뜻)을 통해 마우스 움직임이나키보드 타이핑, 심지어는 SNS 활동 추적이나 화면 캡처 (스크린샷)까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데이터 감시 data surveillance의 문제 모두 새롭게 부상하는 쟁점이다. - P36
일터 은어는 노동의 상태를 경험적으로 살필 수 있는 렌즈다. 은어隱語는 어떤 특수한 환경이나 집단에서 오랜 시간 공통된생활을 경험하면서 구성원 사이에서 생겨난 독특한 언어다. 주지하듯 일터 은어는 노동 일상의 축적된 경험을 함축하고 업무관행과 감각 그리고 태도나 관계의 상태를 반영한다. 은어를 통해 우리는 노동자의 마음과 몸에 각인된inscribed 집합적 특성을 읽을 수 있다. - P43
일터 은어들
게임 노동자를 포함한 IT 개발 노동자의 크런치 모드(uremode(게임 출시 전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에 이르는 야근+밤샘근무 기간을 뜻함)‘ ‘구로의 등대‘ ‘갈아넣다‘ ‘반프리 (A업체와는4대보험 적용되는 정규직 근로계약을 맺어 최저임금을 받고, B업체와는 프리랜서 계약을 통해 나머지 급여를 받는 형태의 이중계약을 일컬음)‘ ‘
보도방(통상 유흥업소에서 인력을 공급하는 곳을 말하는데, 이에빗대 IT업계에서 IT 노동자를 수급하는 파견업체를 일컫는 말, 이런 고용 관행은 하청의 하청의 하청구조를 양산하는 문제로 지적되고 있음)을 비롯해 간호 노동자의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을 지칭)‘,
콜센터 노동자의 콜수‘ ‘화출·화착(화장실로 출발하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메신저로 보고하는 상황을 일컬음)‘ ‘욕받이‘, 방송 노동자의 ‘디졸브disolve(영상 편집 기법으로 화면이 흐려지면서 다른 화면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데, 오늘과 내일의 경계가 없을 정도로 장시간 밤샘 촬영하는 것을 말함)‘,.... - P44
고용불안이 높을수록 번아웃 정도가 높은데, 소득 불평등이심한 사회일수록 고용불안이 번아웃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프로젝트를 따라 이동하는 거대한 철새집단의 무리처럼 이직률이 기이할 정도로 높고, 프로젝트별로 업무에 결합됐다 해체되는 과정을 자주 반복하고, 치열한 경쟁 상황에 내몰리고, 업종 내소득 격차의 정도가 높아 노동자들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번아웃에 노출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 P46
지타하라는 시간 단축時短과 괴롭힘을 뜻하는 하라스먼트를합성한 신조어로 업무량은 줄이지 않으면서 업무시간을 줄여라는 회사의 지시가 괴롭힘을 자아내는 상황(업무 강도 강화, 실적 압박 스트레스)을 일컫는 말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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