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주로 출근합니다 - 놀랍도록 유쾌한 우주비행사의 하루
마리옹 몽테뉴 지음, 하정희 옮김 / BH(balance harmony)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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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우주국(ESA) 선발 우주비행사의 24시, 365일만 그려낸 것이 아니라 이면에 작용하는 국제사회 힘의 정치, 복잡한 셈법까지 포착해낸 멋진 작품. 알고보니 <부자 사회학>의 바로 그 저자구나! Marion Montaigne, 이름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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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7-06 1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두 접수. 찜!!!^^
 


한 달 째 서가에 모셔만 둔 책들 뽀개는 날. 6월 22일. 각 잡고 읽기.




 "나는 통증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면 이러한 시도와 접근 방식이 전제하는 사유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 나는 통증의 개념보다는 통증을 왜 연구해야 하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문제인데도 왜 금기시되어 왔으며, 왜 덜 다루어지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 (정희진 32)"



정희진 선생님이 "통증 연구, 연구"라는 단어를 썼기에 여기서 생각을 이어가 본다. 경험 나눔의 차원이 아닐 때, 즉 논문의 형식미를 갖춘 "연구"일 때도 정의를 포기해야 하는가? 조작적 정의 시도라도 해야 다음의 절차가 풀리지 않는가? 일단, "연구"의 장에서는 용어에 대한 정교한 구분을 하지 않고서는 논의의 신뢰성과 권위를 확보하기 어렵지 않던가?  고백하자면, 나는 "고통, 통증, 아픔," "질병, 질환, 병" 이 용어들을 구분해서 적재적소에 쓰고 있는지 자기검열하다가 잘 몰라서, 그냥 '아몰랑' 하기도 한다. 


▶정희진 선생님 말씀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선생님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문제인데도 왜 금기시되어 왔"는지 궁금하다 하셨는데, 통증이 화제어로 금시시 되어 온 것이 시대나 사회를 떠나 보편적 경향인가? 통증이 너무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굳이 '언어화' '문제시화' 하지 않는 사회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통증을 수반한 통과의례를 일종의 문화적 '주민등록증' 삼는 사회에 대해, 외부자적 시선들은 호들갑을 떨고 새디스트니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느니 하는 주석을 남기지만, 정작 그런 통증을 살고 있는 이들은, 그 통증을 대상으로 '논문'을 생산해내지 않는다. 



"고통과 몸은 내 인생과 공부의 평생 동지인데 '동지'들은.... (정희진33)"

- 올리버 색스

- 엘라지베스 퀴블러 로스

- 오오누키 에미코 

 


정희진 선생님도, '동지' 리스트에 올리버 색스 선생님을 맨 앞에 올리셨습니다. 2021년 1분기를 올리버 색스 글들 탐닉하며 보냈던 저에게도 이 분은 경이로운 마인드 그 자체. [중독 인생] 읽고 난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이 분이 마약에서 벗어난 것도 기적이네요. 깊은 탐닉에서 어떻게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경이로움. 


▶ 오누키 에미코, 정희진 선생님 덕분에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봅니다. "쌀"의 상징적 의미 연구한 짧은 책만으로 끝낼 뻔했는데,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서 활동하시는군요. 게다가 연구 영역이 굉장히 폭 넓으시네요. 제목만 봐도 당장 읽고 싶어집니다.


        





 "지금 이 글도 작은따옴표와 괄호투성이인데 일종의 협상적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몸에 대한 소유격이나 대상화가 전제된 나'의' 몸, 몸에 '대한'.... 같은 표현을 최대한 피하려고자 노력하지만 가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43)'


▶"문화" "신'  "종교".....소유격을 씀으로써, have동사 be동사를 씀으로써 산으로 바다로 가는 추상어들이 많죠. 그럴 때마다 작은따옴표를 친다면, 바다 너머 안드로메이다로.....저도 마찬가지의 고민 종종 해보았기에 격 공감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탈코르셋' 운동과 거리가 있다. '탈코르셋'은 기본적으로 젊은 (중산층) 여성의 몸을 전제로 한 것이다. 물론 대단히 중요한 여성주의 실천이지만 통념과 달리 모든 여성이 규범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44)"


오호! "탈코 탈코"하는 친구들 이야기에, 제가 심드렁한 태도를 감추기 어려웠던 이유를 이제 알겠네요?^^




"용서의 또 다른 어려움은 사건은 구조적이되(정치학), 용서는 개인의 몫(심리학)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56)."

"나는 용서 지향적 사회보다 '평등한 복수'가 가능한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 이것이 먼저다. (57)"










 "모두가 작가인 이 시대에 고통이라는 주제는 '사연팔이'라는 최근 출판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60). 이 책의 문체에는 당사자, 연구자, 운동가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무너져 있다. 여성주의 글쓰기의 모델이 아닐 수 없다... '연구'가 아니더라도 취약한 처지에 있는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63)." 


"돌봄 윤리를 제안하는 여성주의 연구와 여성주의자의 일상 사이에 생기는 불가피한 괴리 (61). 보살핌 노동의 가치와 보살핌 노동자의 처지는 다른 우주이다. 논문을 쓰고 있는데, 공부를 해야하는데, 생계 활동을 해야 하는데, 어머니, 아버지, 자녀를 간병해야 하는 여성들이 있다 (66)." 




▶ 언어의 맛이라는 것이 참 신묘합니다! 최근 "질병서사 illness narrative"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많이 쓰이더라고요.  정희진 선생님 글에서 갑자기 "사연팔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니  흥미롭습니다. 텍스트의 홍수라는 현상은 동일한데, 한 편에서는 "서사narrative"로 장르화해주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사연팔이"라고 편히 불러주기도 하네요.


 "고통의 문제는 페미니스트들이 그토록 강조해 온 상황적 지식 situated knowledge여야만 한다. 맥락 없는 언어는 폭력이다 (84)." 

"글쓴이의 위치성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면 남의 고통을 팔거나 나의 고통만 중요한 글이 된다. 고통의 공감 불가능성 때문이다. (86)"


"나는 당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는 다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90퍼센트의 사람들은 자신감이 없고 우울하다. 10퍼센트의 사람들은 근자감과 조증 기운이 넘친다. 자신감이 물리력, 폭력, 권력인 시대다 (93)"






"주체는 개별성으로 인식되지만 타자는 집단으로 지칭된다... 페미니즘을 '하나'로 사고하는 자체가 성차별이다." (150)

















"학문과 사회 공동체의 관계는 늘 논란거리지만, 논문의 내용과 주장을 사회적 의미, 역할, 기여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논문과 '잡문'의 차이는 글의 형식이 아니라 '품질'로 구별되어야 하지 않을까? (191)"




"각자의 '봉쇄 일기'를 기다리며: 팬데믹의 원인은 돌봄노동(살림)을 비하하고 자연파괴(죽임)을 추구해온 인간의 경제 활동이다 (209)."





"남성 중심의 근대 국가는 여성의 몸을 자기 실현의 그릇으로 삼았꼬, 이처럼 남성의 시선에 갇힌 여성의 재생산 능력은 '능력'이 아니라 여성을 기아와 죽음에 이르게 한 '저주' 였다 (230)."


"근대 국민 국가의 성립이 여성의 성과 재생산 통제를 가져온 것은 필연이었지만, 여성주의 연구자가 탐구해야 할 것은 젠더가 근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여성 억압 현실이 어떻게 근대와 자본주의를 만들었는가?"로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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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6-22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각잡고 읽으셨습니까?ㅎㅎ

얄라알라 2021-06-23 07:30   좋아요 0 | URL
네^^ 어제 책 3권 읽었거든요. 눈동자가 잘 안 돌아가더라고요. 눈에 각을 잡았나봐요^^;;;;; 쉬엄쉬엄해야하는디, 20대때로 착각했어요 ㅋ툐툐님 굿 모닝 하시어요^^

미미 2021-06-2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장 깨기아닌 모셔둔 책 깨기 입니까? 멋져요!!!😆

얄라알라 2021-06-23 07:29   좋아요 1 | URL
50일 정도 책을 안 읽었더니, 모든 책들이 ˝모셔둔 책˝이 되버렸네요. 미미님 좋은 아침 시작하시길^^

단발머리 2021-06-22 2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딱 각잡고 준비하셨는데요!! 통증연대기는 반갑고요ㅋㅋㅋㅋㅋ 저도 다른 책 찾아봐야겠어요!

얄라알라 2021-06-23 07:29   좋아요 1 | URL
저는 이 책에서 소개해주신 책 중 2권만 이전에 읽어보았더라고요 통증 연대기는 단발머리님께서도 추천하시는 거니, 오늘 목차라도 꼭 더 자세히 살펴봐야겠어요^^
 
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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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이면 읽을 책을 한 달이나 방치한 이 심보는 무엇이었나? 알라디너분들께 추천 많이 받다 보니, 읽은 듯 친숙했던 탓일까? 자전적 소설에 감정이입함으로써 에너지가 소모된 후의 폭풍을 미리 걱정했던 것일까? 




 [누런 벽지]를 읽고, 두 가지 점에서 안도했다. 


1. 먼저, 아름다운 한글에 "누렇다"라는 형용사가 있어 다행이다. 샬롯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이 "아픈 역할 sick role"을 수행하며 미쳐가는 여성을 그려낼 때, 그 배경이 되는 방의 벽지색상은 "누런 색"이어야 했다. 상큼한 레몬색이나, 때 안 탄 병아리깃털 색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변색된, 들끓는 불결을 담은, 전반적으로 칙칙한, 군데군데 폭력적일만큼 선명한 오렌지 색이 섞여 있고 나머지 부분은 매케한 유황을 떠올리게 하는 (37)" 누런 색이어야 한다. 



"The color is repellant, almost revolting; a smouldering, unclean yellow, strangely faded by the slow-turning sunlight. It is dull yet lurid orange in some places, a sickly sulphur tint in others (36)"



2. "월간내노라"라는 작은 출판사의 기획이 성공예감이라 안도했다. '내노라" 팀(?)은 한달에 한 편, 영문 단편 소설을 번역해서 시리즈로 출간하고 있다.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를 선정해내고, 유려한 문체로 번역해내는 이들은 페미니즘, 영문학, 문화비평을 넘나드는 지적 모험가들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누런 벽지]를 읽고 분노했다. 


[누런벽지]가 자전적 소설임을 모르고 읽었다면 가스라이팅 실시간 중계 스릴러라고 착각했을까? 


아내는 "방 안에 갇힌 다 큰 아이"로 길러진다. 배려심 많은 남편이 돌보고 길러준다. 그 남편은 아내를 "꼬마 아가씨 little girl"이라 부르고, 아내에게 "바라는 만큼 한껏 아프라"고 축복을 내려주기도 한다. 심지어 의사이기까지 하다. 아내에게 신선한 공기와 양질의 먹을 것, 휴식을 선사해주며 아내의 건강 회복을 돕는 좋은 남편이라는 역할에 푹 빠져 있다. 이 연극이 잘 수행되려면, 아내는 아파야 한다. 남편의 돌봄을 더 격하게 필요하기 위해서는,  더 취약하기 위해서는 지적인 노동(?)은 금물이다. 쉬어야 한다. 글을 써서도 안 된다. 아내는 남편의 시선과 기대, 자신에게 기대된 "환자역할"을 잘 안다. 역겹다. 누런 벽지만큼이나 닳아빠진 고정관념이 역겹다. 놀랍게도 이런 "방구석에 가두고 쉬게하기"가  19세기 특히 여성에게 많이 제안되었던 "휴식치료법 The Rest Cure"라 한다.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주체인데, 그 아내는 돌봄받아야만 온건해지는 환자, 객체로 좁혀진다. 존재는 확장이 아니라 오그라든다.



"사회적 단절", 2~3마디의 문장만으로 충분히 삶이 가능한 하루하루를 진공 속에 반복하던 때, 일하고 싶었다. 긴 문장을 뿜어내며 진공 밖 세계의 요철과 압박감을 느껴보고 싶었다.허나, 나를 방 안으로 끌여들였던 목소리는 노기를 띠었다. "네 그 욕심이, 애정결핍증후군 낳는다. 노란 바나나를 탐닉하는 걸 보니, 엄마됨의 부족함을 바나나의 달달함으로 채우려는 걸 보니, 너는 더더욱 집 안의 천사가 되어야 한다." 


나는 바나나를 최근까지도 먹지 않았다. 못 먹겠다. 누런 벽지를 다 뜯어낸 들, 세포 자체에 수분이 빠져나가는 이제 "집안의 천사"는 감지덕지의 역할인가? 바나나를 탐닉해야하는 건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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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인생 - 한국에서 마약하는 사람들
강철원 외 지음 / 북콤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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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생활 경험, 몸의 이력, 언어 면에서 교집합이 작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드러낸 책은 호기심 때문에 읽는다. 그 호기심을 천박하다고 비난할 수 있으랴? 문학의 언어이건, 학술적 직조기로 거쳐나온 언어이건, 사람을 소재 삼은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자력이 커진다. 



설탕 중독, 운동 중독, 일기 중독, 별 모으기 중독... 나라고 중독 경험이 없지는 않다. 중독 유도하는 소비주의 사회에 안정적 시민권을 확보하며 살기에, 중독적 소비에 거침이 없다. 마약은 다른 차원의 중독이다. 그 신체화된 증후를 감추기 어려우나 감춰야 한다. '마약중독'임을 드러냈다가는, "말종 인간"이나 "범죄자"로 검은 덧칠이 되니까.  



[중독 인생]을 처음엔 호기심에서 읽었다. 내 삶의 반경 안에서는 마주칠 일 없을 이들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한국 사회엔 이런 "사각지대"도 있더라'하며 심각성을 품평하고 젠 체 할 뻔했다. 하지만, [중독 인생]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아예 "중독"이라는 말조차 함부로 쓰지 못하겠다. "국뽕," "물뽕," "첫뽕" "도리도리" "야마(돌아)"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지리다" "꽂히다"  별 생각 없이, '세상살이 각박해진 시대의 거친 생활어인가?' 하며 귀에 스쳐 내보냈던 표현들이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마약 관련 용어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생활성을 드러내기 위해 언어유희라 생각했던 표현들이, '마약중독자'들에게는 듣기만 해도 몸을 반응시키는 두려운 촉발제이기도 했다. 



2020년대 한국 사회에 언어만 마약화 되었을까? [중독 인생] 역시 도입부에서 UNODC(유엔 마약범죄사무소)의 '세계마약보고서 World Drug Report'의 통계수치를 인용하며 한국 사회 마약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가가 아니다. 경유지도 아니다. 어엿한 마약 소비국이며 (암수시장에서) 소비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독인생]이 기관에서 발행된 공식적 보고서처럼, 데이터에만 의존해 마약의 사회적 침투를 고발하는 것만은 아니다. 마약중독자를 보는 시선과 자료수집 방법 면에서 차별된다. 이 책은 서초동에서 주로 활동하는 기자 네 분(강철원, 안아람, 손현성, 김현빈)이 "한국의 마약하는 사람들," 투약자 100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재소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하고, 중독자 재활센터에서 보름간 합숙한 데이터를 가공해 쓴 책이다. 마약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들, 마약류 중독 전문의, 마약중독자 재활센터의 운영자 및 관계자 등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이 현장에서 내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 


[중독인생]의 1, 2부는 "마약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국 사회에 마약이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 보여주는 데 할애한다. SNS시대 "비대면" 마약거래가 활성화되어, 얼굴없는 이들끼리 카톡으로 주문받고 "Drop"기법으로 공공의 장소(커피숍, 버스 터미널, 공공화장실 등)에서 마약을 거래한다. 평균적 마약중독자의 일생은 20대에 마약에 손 댔다가, (계속 자기가 통제 가능하다는 착각 하에 끌어오다가) 50대에 중독에서 벗어나려 몸부림 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런 궤적을 "말기 암" 단계에 와서 문제 심각성을 깨닫는 암담함에 비유한다. 3부에서 6부는 "마약하는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마약에 물들어가는지, 치료를 받고 싶어도 사회에서 거부당하고 결국 감옥으로 보내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한국의 경우 '마약사범'은 파란색 수감번호표를 받고 변별된다. 역설적으로 마약사범들이 집합된 구치소가 "마약중독자 양성학교(마약사관학교)"로 기능한다고 한다. 특히, 여성 투약자들의 경우 출소 후, 마약 공급책 등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4명의 저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마약하는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실질적으로 마약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제도가 운영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사회에서는 "중독자"를 "정상적 생활인"과 아예 차원 다른 세계에 사는 별종이나 범죄자로 보는 시선을 취하기 때문에 애초에 치료 대상 삼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다. 범죄자로 처벌대상 삼거나, 사회 암적인 존재로서 애써 수면 밑에 묻어두려하거나. 설상가상, 마약재활치료에서 가장 마이너스 요인은 마약 중독자가 공동체에서 이탈해 고립되는 것이다. [중독 인생]에 등장하는 이들이 증언하듯, 일단 "마약사범" 라벨이 붙으면 출소 뒤에도 직업을 구하거나,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이 치료가 아닌 처벌이나 외면을 받고, 더한 중독이나 범죄의 늪으로 빠지는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UNODC가 2020년 발행한 보고서를 보니, 재활치료가 필요한 8명 중 1명만 치료 받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중적 오명화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이민자, 소수자 등이다. 





[중독 인생]을 통해, 마약중독자들의 처절한 고통을 활자로만 접했지만, 안타까움 이상으로 공포감이 크다. 그것이 가족으로부터이건, 사회로부터이건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 이겨내고 일어날 수 있는 성질의 중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의 '마약 논의'가 "하지 마쇼." "위험하오" 였다면, 21세기엔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NO NO NO"도 극히 중요하지만, 그 만큼이나 "이미 위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치료하고 도울지"를 모색해야하나 보다.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가, [중독인생] 네 분의 기자들과 협업으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유의미한 제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도 곁들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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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6-22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요즘 장애인과 관련된 생각없이 쓰는 말들을 경계해야겠다고 다짐 중인데, 중독에 관련된 단어들도 그래야겠네요...

얄라알라 2021-06-23 07:32   좋아요 0 | URL
언어의 힘에 놀랐어요. 책에 소개된 사례들을 읽어보면 재소자들은 물질로서의 마약을 구하기 어려운 감옥에서 ˝말로 뽕˝을 한다더라고요. 관련된 말을 듣기만 해도 뇌에 반응이 오는가봐요. 그래서 더욱 더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심할 말들이 정말 많네요^^;;; 툐툐님은 지금도 배려의 말이 몸에 배이신 것 같은데 늘 노력하시나봐요^^
 
중독 인생 - 한국에서 마약하는 사람들
강철원 외 지음 / 북콤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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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내내 매의 눈으로 지켜보던 이슈의 연장에서 이 책을 읽었다. ˝한국 = 마약 청정국가˝?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난 데이터로도 NO인데, 수면 밑 진탕은 얼마나 걸죽한가? 공저자들은 직접 중독자들을 인터뷰하여 개개인의 중독 행위 그 자체를 교정하려는 시도, 그 이상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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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6-03 19: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난 달인가요... 창원의 청소년들이 마약패치를 약국에서 구입, 근 1년간 투약해온게 걸렸다는 뉴스듣고 경악을 했는데요..
이 책 도서관에서 찾아봐야겠습니다. 한국도 심각할거 같습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겠죠...ㅠ

얄라알라 2021-06-03 19: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따로 글을 하나 더 쓸 생각인데 ˝도리도리,˝ ˝뽕˝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해본 사람은 없다˝ 뭐 이런 일상에서 간혹 듣는 말들이 왕창 이 세계 은어와 관련된다는 걸 이번에 알았어요^^;;;;

붕붕툐툐 2021-06-03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이상이 뭘까요?🤔 저도 중독으로 고생하는 1인이라~ㅎㅎ

얄라알라 2021-06-04 00:10   좋아요 0 | URL
마약 문제로 투옥된 이들만 따로 모아놓는데, 초범으로 들어갔더라도 나올 때는 마약계 인맥과 (저렴한) 공급책까지 빠삭하게 파악하고 나오게 된다는 증언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24시간 붙어있다(?)보니, 그 안에서 훈훈한(?) 커뮤니티가 형성되며 되레 더 헤어나올 수 없는 중독으로 간다고 하네요

얄라알라 2021-06-04 00:11   좋아요 0 | URL
경험한 분들의 증언이 많이 나오는데, ˝중독˝이란 말 21세기엔 그냥 일상어처럼 아무데나 쓰지만, 이 말 함부로 쓰면 안되겟구나 싶을 만큼, 중독이 무섭게 다가옵니다. 이 책 읽고 나니...

han22598 2021-06-04 0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독. 그것이 무엇이든. 지나친 의존성을 가지게 되면 참 무서운 파괴력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ㅠ

얄라알라 2021-06-04 18:30   좋아요 0 | URL
중독을 더 깊이 들어가다보면 뇌과학을 건드리게 될 것 같아요. 마약 경험해본 분들은 기억을 환기시키는 작은 조작의 정보만으로도 몸으로 (자주 쓰시는 표현이 ˝똥이 마려워진다.˝ 시던데) 반응이 오는가보더라고요.. 노력을 해도 벗어나기 힘든 그 무서움, 벗어나고 싶은 분들의 고통을 막연하나마 느껴보았어요

페크pek0501 2021-06-05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면 밑의 문제를 자꾸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일을 우리 모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은 반길 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