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개인적 능력이다."


"울컥" 포인트가 엉뚱하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 문장에도 울컥하다니! "울컥"이 올라와서 [돌봄 선언: 상호의존의 정치학]을 읽다가 잠시 쉬었다. 인간 본연의  성향으로서 돌봄. 단위시간당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어 팔리는 상품으로서가 아닌, 생명 있는 존재들끼리 서로 보듬고 살리는 본능. [선언 manifesto]되니, 무게감의 더해진다. 



코로나19 덕분(때문)에 공론의 장 중심으로 치고들어온 이슈가 바로 돌봄 아니던가?  2020, 2021년  '돌봄 경제' '돌봄 위기'를 주제로 한 웨비나와 컨퍼런스 찾기가 쉬워졌다. 언론과 학계가 '돌봄' 이슈를 띄워 주니, 일상에서도 이 용어가 새로운 뉘앙스를 담는다. "돌밥 돌봄해야 해서....(시간 약속 못 지킵니다), 제가 돌봄 담당이라 코로나 특히 조심해야 해요." 요새 카톡방 일상 대화에서 이런 표현을 자주 접하면서, 얼떨떨해진다. '애 봐야 해요. 애 보는 사람'이 반세기 전 표현인양 아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물론 '돌봄'은 '아이 돌보기'만을 의미하지 않고 훨씬 포괄적인 의미로 쓰인다). 



[돌봄 선언: 상호의존의 정치학]의 저자들(더 케어 컬렉티브 the care collective)은 "보편적 돌봄 Universal Care"가 상식, 즉 삶의 중심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 이들이 정의하는 보편적 돌봄은 "모든 돌봄이 우리의 가정에서뿐 아니라 친족에서부터 공동체, 국가, 지구 전체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우선시 되는 것(41)"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돌봄의 상호의존성과 호혜성을 살려 전지구적 차원의 돌봄 공동체를 상상하고 실천할 필요를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 코로나 19는 인간이 바이러스 및 비인간 존재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생존해왔다는 걸 각인시켜줬다. 돌봄 대상의 범주를 확장시켜 '내 새끼, 내 핏줄 관계'뿐 아니라 (그동안 약탈해온) 지구를 보듬어 안아야할 필요가 분명해졌다. 그러나 전개되는 현실은 다르다. 그걸 사람들은 '돌봄의 위기'라고 말한다. 백신은 개발되었지만, 국적을 선별하고 건강권을 모두에게 고루 나눠주지 않는다. 국경은 물리적으로뿐 아니라 관념적으로도 더 강화되었고 '회색지대'에는 돌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비통함이 커진다. 당장 4단계 방역지침이 내려지면서 대한민국의 많은 어머니들은 "돌밥" 상비군으로서의 책무 다하기를 요구받는다. '여성화된 돌봄'에 대한 비판의목소리가 꾸준히 출력을 높여왔어도 여전히 위기상황에서 돌봄 상비군은 '여성, 그 중에서도 어머니'라고 빈곤하게 상상되고 실천된다. 저자들은 [돌봄 선언]을 통해서 "어머니와 여성뿐 아니라 모두가 돌봄 역량을 가지고 있고, 서로 함께 돌봄을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 (85)"고 말한다. 


저자들은 인간의 돌봄 성향을 시장논리로 길들이고 왜곡시켜서 '우리 같은 사람, 내 것과 내 편 돌보기'가 마치 건강한 생존전략인양 응원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저항한다. 저자들은 타인의 고통, 타인의 돌봄 필요에 대한 무관심에서 깨어나라고 우리에게 촉구한다. 신자주의 자본주의 기업의 위장술인 "무늬뿐인 돌봄carewashing"을 가려내고, 전통적으로 비시장 영역이었던 돌봄조차 아웃소싱하려는 흐름에 저항하라고 촉구한다. 


나아가 [돌봄 선언]은 "보편적 돌봄"을 실현할 행동 강령도 제시한다. 한 마디로 "일상화된 무관심"이라는 마취에서 깨어나 돌봄 성향을 일깨우라는 것이다. 이는 돌봄이 개인 차원의 문제라는 의미가 아니다. "무관심한 친족, 무관심한 정치, 무관심한 국가, 무관심한 경제"라는 큰 틀 자체를 뒤흔들라는 제안이다. 예를 들어, 저자들은 "내 새끼, 내 가족과 친족' 챙기기의 편집증에서 벗어나 친족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옮긴이 정소영 박사도 지적하듯 "난잡함 promiscuity'이라는 개념이 의미 전복을 일으키며 저항의 의미로 쓰였다. 저자들은 핵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난잡한 친족promiscuous kinship'을 돌봄 대상으로 확장시키라고 제안한다.  '돌보는 공동체 만들기' 위해 지역도서관을 적극 활용하라는 제안도 귀를 솔깃하게 한다. 새로 정책이나 공공공간을 만들 것이 아니라, 이미 확보된 지역도서관을 거점으로 활용하라는 실용적 제안이니까. 도서관을 거점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물리적인 책뿐 아니라 다양한 자원, 기술과 지식 등이 있다. 


혹자는 이런 제안을 들으며, 자본주의 논리와 돌봄 윤리의 타협점을 찾느라 머릿 속이 뜨거워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들은 선을 긋는다. 결코 타협할 수 없다고! "낸시 폴브레가 말했듯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닌 '보이지 않는 심장'을 생각하라고! 


선언문을 읽기만 해도 심장이 뜨거워진다. 뜨거운 심장의 연결. 책에서는 이를 "돌보는 관계의 글로벌 동맹" 확장이라고 표현했다. 부족하나마 지금 [돌봄 선언] 리뷰를 공유하는 것도, "확장"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뜨거움을 또 누구와 나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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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째 서가에 모셔만 둔 책들 뽀개는 날. 6월 22일. 각 잡고 읽기.




 "나는 통증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면 이러한 시도와 접근 방식이 전제하는 사유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 나는 통증의 개념보다는 통증을 왜 연구해야 하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문제인데도 왜 금기시되어 왔으며, 왜 덜 다루어지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 (정희진 32)"



정희진 선생님이 "통증 연구, 연구"라는 단어를 썼기에 여기서 생각을 이어가 본다. 경험 나눔의 차원이 아닐 때, 즉 논문의 형식미를 갖춘 "연구"일 때도 정의를 포기해야 하는가? 조작적 정의 시도라도 해야 다음의 절차가 풀리지 않는가? 일단, "연구"의 장에서는 용어에 대한 정교한 구분을 하지 않고서는 논의의 신뢰성과 권위를 확보하기 어렵지 않던가?  고백하자면, 나는 "고통, 통증, 아픔," "질병, 질환, 병" 이 용어들을 구분해서 적재적소에 쓰고 있는지 자기검열하다가 잘 몰라서, 그냥 '아몰랑' 하기도 한다. 


▶정희진 선생님 말씀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선생님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문제인데도 왜 금기시되어 왔"는지 궁금하다 하셨는데, 통증이 화제어로 금시시 되어 온 것이 시대나 사회를 떠나 보편적 경향인가? 통증이 너무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굳이 '언어화' '문제시화' 하지 않는 사회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통증을 수반한 통과의례를 일종의 문화적 '주민등록증' 삼는 사회에 대해, 외부자적 시선들은 호들갑을 떨고 새디스트니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느니 하는 주석을 남기지만, 정작 그런 통증을 살고 있는 이들은, 그 통증을 대상으로 '논문'을 생산해내지 않는다. 



"고통과 몸은 내 인생과 공부의 평생 동지인데 '동지'들은.... (정희진33)"

- 올리버 색스

- 엘라지베스 퀴블러 로스

- 오오누키 에미코 

 


정희진 선생님도, '동지' 리스트에 올리버 색스 선생님을 맨 앞에 올리셨습니다. 2021년 1분기를 올리버 색스 글들 탐닉하며 보냈던 저에게도 이 분은 경이로운 마인드 그 자체. [중독 인생] 읽고 난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이 분이 마약에서 벗어난 것도 기적이네요. 깊은 탐닉에서 어떻게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경이로움. 


▶ 오누키 에미코, 정희진 선생님 덕분에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봅니다. "쌀"의 상징적 의미 연구한 짧은 책만으로 끝낼 뻔했는데,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서 활동하시는군요. 게다가 연구 영역이 굉장히 폭 넓으시네요. 제목만 봐도 당장 읽고 싶어집니다.


        





 "지금 이 글도 작은따옴표와 괄호투성이인데 일종의 협상적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몸에 대한 소유격이나 대상화가 전제된 나'의' 몸, 몸에 '대한'.... 같은 표현을 최대한 피하려고자 노력하지만 가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43)'


▶"문화" "신'  "종교".....소유격을 씀으로써, have동사 be동사를 씀으로써 산으로 바다로 가는 추상어들이 많죠. 그럴 때마다 작은따옴표를 친다면, 바다 너머 안드로메이다로.....저도 마찬가지의 고민 종종 해보았기에 격 공감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탈코르셋' 운동과 거리가 있다. '탈코르셋'은 기본적으로 젊은 (중산층) 여성의 몸을 전제로 한 것이다. 물론 대단히 중요한 여성주의 실천이지만 통념과 달리 모든 여성이 규범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44)"


오호! "탈코 탈코"하는 친구들 이야기에, 제가 심드렁한 태도를 감추기 어려웠던 이유를 이제 알겠네요?^^




"용서의 또 다른 어려움은 사건은 구조적이되(정치학), 용서는 개인의 몫(심리학)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56)."

"나는 용서 지향적 사회보다 '평등한 복수'가 가능한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 이것이 먼저다. (57)"










 "모두가 작가인 이 시대에 고통이라는 주제는 '사연팔이'라는 최근 출판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60). 이 책의 문체에는 당사자, 연구자, 운동가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무너져 있다. 여성주의 글쓰기의 모델이 아닐 수 없다... '연구'가 아니더라도 취약한 처지에 있는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63)." 


"돌봄 윤리를 제안하는 여성주의 연구와 여성주의자의 일상 사이에 생기는 불가피한 괴리 (61). 보살핌 노동의 가치와 보살핌 노동자의 처지는 다른 우주이다. 논문을 쓰고 있는데, 공부를 해야하는데, 생계 활동을 해야 하는데, 어머니, 아버지, 자녀를 간병해야 하는 여성들이 있다 (66)." 




▶ 언어의 맛이라는 것이 참 신묘합니다! 최근 "질병서사 illness narrative"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많이 쓰이더라고요.  정희진 선생님 글에서 갑자기 "사연팔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니  흥미롭습니다. 텍스트의 홍수라는 현상은 동일한데, 한 편에서는 "서사narrative"로 장르화해주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사연팔이"라고 편히 불러주기도 하네요.


 "고통의 문제는 페미니스트들이 그토록 강조해 온 상황적 지식 situated knowledge여야만 한다. 맥락 없는 언어는 폭력이다 (84)." 

"글쓴이의 위치성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면 남의 고통을 팔거나 나의 고통만 중요한 글이 된다. 고통의 공감 불가능성 때문이다. (86)"


"나는 당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는 다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90퍼센트의 사람들은 자신감이 없고 우울하다. 10퍼센트의 사람들은 근자감과 조증 기운이 넘친다. 자신감이 물리력, 폭력, 권력인 시대다 (93)"






"주체는 개별성으로 인식되지만 타자는 집단으로 지칭된다... 페미니즘을 '하나'로 사고하는 자체가 성차별이다." (150)

















"학문과 사회 공동체의 관계는 늘 논란거리지만, 논문의 내용과 주장을 사회적 의미, 역할, 기여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논문과 '잡문'의 차이는 글의 형식이 아니라 '품질'로 구별되어야 하지 않을까? (191)"




"각자의 '봉쇄 일기'를 기다리며: 팬데믹의 원인은 돌봄노동(살림)을 비하하고 자연파괴(죽임)을 추구해온 인간의 경제 활동이다 (209)."





"남성 중심의 근대 국가는 여성의 몸을 자기 실현의 그릇으로 삼았꼬, 이처럼 남성의 시선에 갇힌 여성의 재생산 능력은 '능력'이 아니라 여성을 기아와 죽음에 이르게 한 '저주' 였다 (230)."


"근대 국민 국가의 성립이 여성의 성과 재생산 통제를 가져온 것은 필연이었지만, 여성주의 연구자가 탐구해야 할 것은 젠더가 근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여성 억압 현실이 어떻게 근대와 자본주의를 만들었는가?"로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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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6-22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각잡고 읽으셨습니까?ㅎㅎ

얄라알라 2021-06-23 07:30   좋아요 0 | URL
네^^ 어제 책 3권 읽었거든요. 눈동자가 잘 안 돌아가더라고요. 눈에 각을 잡았나봐요^^;;;;; 쉬엄쉬엄해야하는디, 20대때로 착각했어요 ㅋ툐툐님 굿 모닝 하시어요^^

미미 2021-06-2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장 깨기아닌 모셔둔 책 깨기 입니까? 멋져요!!!😆

얄라알라 2021-06-23 07:29   좋아요 1 | URL
50일 정도 책을 안 읽었더니, 모든 책들이 ˝모셔둔 책˝이 되버렸네요. 미미님 좋은 아침 시작하시길^^

단발머리 2021-06-22 2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딱 각잡고 준비하셨는데요!! 통증연대기는 반갑고요ㅋㅋㅋㅋㅋ 저도 다른 책 찾아봐야겠어요!

얄라알라 2021-06-23 07:29   좋아요 1 | URL
저는 이 책에서 소개해주신 책 중 2권만 이전에 읽어보았더라고요 통증 연대기는 단발머리님께서도 추천하시는 거니, 오늘 목차라도 꼭 더 자세히 살펴봐야겠어요^^
 















21년 1, 2월에 천천히 [재생산에 관하여: 낳는 문제와 페미니즘]을 읽었다. 재생산신기술과 페미니즘의 교점에서 "낳는 문제, reproduction"를 이야기한 책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포럼에서 발표된 글들을 엮은 책이다. 일상에서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눠 본 적도, 난임 혹은 불임(이라고 명명된 몸의 현상)을 의학적 도움 받아서 해결하려는 분들을 만나본 적도 없다. 게다가 책에서 소개한 사례들은, 저자들의 학문적&생활 공간이 주로 서구사회인 만큼(간혹, 인도나 아시아 사례가 몇 줄씩 지나가듯 나오지만), 치우칠 수 밖에 없다. 활자 밖에서 이 주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갈증이 난다. 아니, 실로 경험하고 이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다는 공감 욕구가 올라온다.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Eva Rinaldi,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페리스 힐튼이 가쉽성 기사에 등장한다. 이번에는 동영상 유출 등 스캔들의 주인공으로서가 아니다. 그녀가 IVF로 쌍둥이 임신을 시도 중이라 한다. (상상 속의 쌍둥이) 두 명 중, 한 명에는 벌써 이름도 지어주었다고 하며, 앞으로도 서너 명 더 시험관시술로 갖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한다. 모두, 최근 그녀가 출연했던 팟캐스트 기사를 인용해  2월 11일자 중앙일보 기사에 밝힌 내용이다. 페리스 힐튼에게 비난이 쇄도했다고 한다. 아기를 갖고 낳고 싶어하는 욕구는 (많은 사람에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왜 그녀는 비난받을까? 최근 읽은 [재생산에 관하여]와 연계점을 고민해 본다. 


  • 향후 패리스 힐튼이 공개할 수 있겠지만, 그녀가 시험관시술을 시도한 이유가 의료적 필요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힐튼을 옹호하는 글을 쓴 에이미 클라인 기고문(아래 링크)으로 유추하건대 그렇다. "I get why people are upset about Hilton’s easy-breezy statement about using IVF for nonmedical reasons to have twins of specific genders." 즉, 차별적 용어라는 이유로 요즘에는 잘 안 쓰지만, 특정 성별의 특정한 명수의 아이를 갖겠다는 힐튼의 포부는 "디자이너 베이비 Designer baby"를 떠올리게 한다. 
  • 대놓고 말하지 않았어도 힐튼은, "원하는 대로 재생산 계획을 하고, 계획대로 얻을 수 있는" 소수자의 누림을 연상케 한다. 쌍둥이 이후에도 서너 명이라니? 그렇다면 최소 5명의 아이를 계획 중이다? "낳고 난 이후"의 돌봄은 누가 하는가? 질문이 저절로 꼬리를 물며 올라온다.  즉,  황금빛 예비엄마 미소를 띤 힐튼은 임신, 출산, 양육에서의 재생산 격차를 보여준다. 


 [The Trying Game]의 저자인 에이미 클라인은 힐튼이 성별과 아기의 명수를 특정했다 해서 비난받을 수 없다며 힐튼을 옹호한다. 자연스럽다는 이유에서이다. 다만, 힐튼이 아무리 훌륭한 의료진과 기술의 도움을 받을지언정, 시험관시술로 아기를 갖는 과정에서 정서적이고 신체적인 롤러코스터를 타며 힘들 터이기에, 미리 응원을 보낸다고 했다. 


이후, 힐튼 관련 기사를 따라가면서, 이 이야기가 미국 내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지켜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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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성평등 교과서 라임 주니어 스쿨 5
스테파니 뒤발 외 지음, 파스칼 르메트르 그림, 이세진 옮김 / 라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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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히 교과서와 애증관계인가 봅니다. "교과서=시험대비 수험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말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성평등 교과서]라는 제목에 긴장했거든요. 밑줄 긋고, 핵심정리노트 정리하는 교과서적 자세가 필요한 줄 착각하고요. 아니었습니다. "교과서"에 대한 제 고정관념을 질책하듯, [어린이를 위한 성평등 교과서]는 유쾌발랄했습니다. 어린이라면 '성평등'에 대해 궁금해할 내용들을 고루 다루면서, 전혀 딱딱하지도 훈계조도 아닙니다. '성평등'을 키워드인 책인 만큼, 글쓴이들과 독자의 관계도 "평등"해서 자유롭게 묻고 답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목차에는 총 28개의 생각 미끼가 던져져 있습니다. "자가 여자보다 정말 힘이 센가요아기를 갖는 일은 누가 결정하나요여자도 대머리가 될 수 있나요남자도 슬플 땐 울 권리가 있다고 질문만 읽어도 생각 발전소 엔진 가동되는 소리가 들리죠? 흥미롭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성평등 교과서] 독자는 28개 미끼 중 가장 탐나는 것부터 덥석 물어도 좋겠고, 목차 순서를 밟아가도 좋겠습니다. 어디서 시작하건 28개의 질문을 차근차근 곱씹다 보면 "성평등"을 왜 지향해야 하는지, 어떻게 가능할지 윤곽선이라도 그려질 테니까요.

 



[어린이를 위한 성평등 교과서] 는 프랑스 및 벨기에, 즉 유럽 출신 작가들이 협업한 책입니다. 그렇다고 "성평등" 이슈와 사례를 유럽 중심으로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공간적으로도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넓은 세상에서 이야기를 끌어오고, 시간적으로도 아주 먼 과거부터 미래까지 성평등에 관한 흥미로운 이슈라면 잘 버무려 넣었습니다. 게다가 이 책을 한국에 소개한 푸른숲 출판사 편집진이 독자를 배려해서, 한국 독자들에게 특히 친숙할 사례들이 중간중간 나옵니다. 예를 들어, 치마 입는 남성 사례로 90년대 가수 김원준의 패션을, 피부 가꾸는 남성 사례로 축구선수 안정환과 김재원의 남성용 화장품 광고를 끌어왔지요. 물론 MZ세대나 더 어린 세대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사례이겠지만, 적어도 성평등 이슈가 일상과 이렇게 밀접하다는 걸 체감하게 해주지 않겠어요?



"혼자서 천 명을 능히 상대한다"는 말이 돌 정도의 무예를 자랑했다는 여성 사무라이 도모에 고젠, 잔인하기로 은메달 받으면 서러워했을 여자 해적들, 1941년 세상에 나온 만화계의 헤로인 원더우먼, 시인 바이런의 딸로도 알려진 수학자 에이다 레브레이스, 테니스 대회에서 여자도 남자 선수들과 동일한 수준의 상금을 받는 데 기여한 윌리엄스 자매 등. 흥미를 끌면서도 영감을 주는 이들이 책 곳곳에서 등장한답니다.

 

 



[어린이를 위한 성평등 교과서]를 다 읽고 나면, 차별은 폭력이요, 성평등은 갈등조장의 운동이 아니라 편견 없이 서로 존중하고 좋은 세상 만들자는 가치임을 깨닫게 될 거예요. 물론, 깨달음과 함께 행동의 변화, 즉 실천도 따르게 될 거고요! [어린이를 위한 성평등 교과서]를 방학을 맞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2월의 추천도서로 밀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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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정상’ 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
이라영 지음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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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이라영의 최신간, 독서 에세이를 읽고 잠들었는데 알라딘 알람이 온다. "이라영의 매니아가 되었습니다"는 메시지. 그 정도로 읽었나? 달랑 4권 읽었을 뿐인데? 하긴 알라딘 TV 생중계로 이라영의 북토크도 강의 듣듯 보았으니 '중간' 매니아쯤은 될 것 같다. 이라영을 왜 읽을까? 독자를 시원하게 해준다. 갈등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 내가 '치우치지 않음'으로 포장하여 회피하는 이슈들에 이라영은 지적인 돌직구를 날린다. 특히 [정치적인 식탁]이 그랬다. 이라영을 왜 계속 읽는가? 이라영은 글을 너무~~ 잘~~ 쓴다. 문학 전공하는 분들 특유의 문체가 눈을 현란케 하고 편두통도 유발하지만..... 그 만큼, 혼자 있는 시간에 작가로서 학자로서 헌신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서문에서 이라영은 1930년대 미국 캔터키 주에서 책 배달 프로젝트에 동원되어 책을 유통했던 '북우먼(말 탄 사서)'를 인용한다. "(이라영은) 읽고 보고 쓴다. 몸을 움직여 이야기를 전하러 가는 그 북우먼들처럼(28)". 프랑스와 미국 등 타국에서 오랜 체류했던 이라영은 자신의 독서경험을 장소성과 묶어 배치했다. 백인, 남성, 지식인 서사 밖, 소위 목소리 낮게 들리거나 차단당했던 소수자의 목소리를 발굴한다. 



책 첫 페이지에 미국 지도를 실었는데, 서부 중부 동부 지역의 여성 작가들을 소개하며 페미니스트로서의 이라영의 분노를 버무린다. 그렇다고 해서, 독자의 피부를 할퀴어대는 분노는 아니다. 이라영 스스로 정제되지 않은 분노의 위험성을 알기에. "여성이 가장 적극적으로 억압 당하는 감정(58)"이 분노이지만, "자기 방어나 증오심에 바탕을 둔 분노의 언어는 이 감정으로 다시 세계를 갉아 먹(27)."는다고 말한다. 대신 그녀는 공감과 사랑의 언어를 펼치려 애쓴다. 행간에서 그 노력을 읽었다. 동시에 이상주의자이자 이상 세계(+땅 위)에서의 투사인 그녀의 매력도 느낀다. 이라영은 이미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삶은 견뎌내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수동적 태도라 발끈했던 바 있다. 그 미학화된 죽음으로 소비되어 왔다는 실비아 플러스의 시 세계와도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고 했다. 출판사 측에서 이라영의 그런 투사다움을 드러내는 문구를 참 잘 뽑아냈다.총 395쪽 중, 내가 전체 다 필사한 딱 그 문장을 출판사 측에서도 뽑았다는 것을 책 다 읽고 알았다. 


"100년 전이라면 나도 치료라는 이름으로 감금되거나 전기의자에 앉았을지도 모른다. 내 안에 있는 열 명, 혹은 백 명의 미친 여자들의 안부를 물으며 아직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죽지 마, 미쳐도 돼, 라고 속삭이면서 (146)."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를 읽으며 했던 메모는, 일단은 노트에만 남겨두기로 한다. 다만, 그녀가 "압제자"라고 통칭한 범주에 대해, 명료한 정의가 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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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1-27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랑 4권이라니요?
마니아 자격이 충분합니다. ^^

얄라알라 2021-01-27 23:23   좋아요 1 | URL
페크님께서 그리 말씀해주신다면 더욱 분발!!!^^

수이 2021-03-19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얄라님 4권이나!! 읽으셨네요. 저는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