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한국사 2 :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 삼국 시대 저학년 첫 역사책
백명식 글.그림, 김동운 감수 / 풀빛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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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한국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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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출판계의 키워드를 나름 뽑아보라면, 힐링을 유도한다는 컬러링 북과 어린이를 위한 한국사 책으로 꼽고싶다. 숱한 출판사, 많은 역사 전문가와 동화작가들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역사책을 많이 펴내주고 있으니 독자로서 반가운 동시에 부담스럽다. '어떤 책으로 역사 입문하지? 믿을 수 있는 내용일까?'하는 의구심이 드니까. 풀빛 출판사가 총 6권의 시리즈로 내놓은 <안녕? 한국사>는 한국사에 입문하려는 독자의 고민을 반영해서 만들었다. 우선 주 독자 타겟을 초등 저학년으로 설정하여, 책의 판형은 아이들에게 친숙한 교과서 판형으로, 글의 분량도 짧게 조절하였다. 초등 저학년이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과감이 압축하여 꼭 알아야만 할 이야기로 소개하는데다가, 페이지마다 일러스트레이션을 더했다. 전공인 서양화의 특기를 살려 어린이 책 백여권을 직접 쓰고 그린 백명식 작가 덕분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이 열정적이고 에너제틱한 다작작가는 총 6권에 한반도의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담아내고 있다. 백명식 작가는 지식전달 동화책에서 특유의 스타일을 구사하는데, <안녕? 한국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정 캐릭터를 설정하여 시간여행이나 탐험을 유도하고 독자에게 말을 걸듯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독자를 캐릭터에 자연스레 동화시키는 전략을 여기서도 구사한다. 이 경우, 기존 백명식 작가 책에서 등장하던 어린이 화자나 돼지가 아니라 도깨비들이 등장하여, 독자를 대신해 역사여행을 체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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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들은 시간과 공간에 묶여 있는 독자와는 달리, 시공간을 맘껏 넘나들며 역사의 궁금증을 풀 수 있다. <안녕? 한국사> 시리즈의 제2권에서 도깨비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삼국을 통일한 최후의 승자, 최후의 승전국을 찾는 것'이다. 도깨비들은 그 답을 차기 위해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발해로 시간여행을 하며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을 겪고, 다양한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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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격인 할아버지 도깨비는 미션을 위해 가장 먼저 절구 도깨비를 고구려로 내보낸다. 절구 도깨비는 주몽이 알에서 나오는 광경도 보고, 광개토 대왕을 만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미 광개토 대왕은 돌아가시고 그 업적을 기리는 커다란 비석만 찾는다. 다시 절구 도깨비는 안시성 싸움의 현장도 방문하여 고구려인들의 기개에 감복한다.
이어 삼태기 도깨비는 문화 유산이 가득한 백제 땅으로 시간여행을 한다. 백제 땅이라 해도 참으로 풍경이 낯익다. 바로 한강 유역 서울 땅이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서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근초고왕뿐 아니라 백제의 문화유산까지 두루 살펴본다. 
달걀 도깨비가 신라로 날아가, 가장 늦게 일어났지만 차근차근 힘을 키워 통일을 이룬 신라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양반 도깨비는 달걀 도깨비의 미션에 이어, 삼국 저냉의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 곳에서는 신라가 옛 백제, 옛 고구려 사람들과 함께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고 있었다, 이렇게 여러 도깨비들의 활약으로 역사 속 궁금증을 풀어주는 미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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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명식 작가는 한국사를 처음 접하는 초등 저학년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도깨비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미션에 도전한다는 설정을 두었다. 또한 특유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더해, 독자의 상상력이 나래를 펴는 것을 도와준다. 때론 귀엽고, 때론 웅장한 느낌의 일러스트레이션을 교차해 배치함으로써 독자의 상상력도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안녕? 한국사>에서 스토리텔링 도깨비 동화만으로는 설명력이 부족했던 부분은  "자세히 보기" 코너에서 집중 파고든다. 예를 들어, 백제의 농기구들의 모양과 이름 등을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소개하는데, 덕분에 '종가래'니 '자귀'니 하는 옛 농기구를 새로 알게 되었다.  이런 고고학 자료는  실사 사진자료도 아울러 소개하는 것이 초등학생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정확한 지식을 습득하는데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직접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일테지만 말이다.    <안녕? 한국사> 덕분에 웬일인지 우리 역사에 급 호기심을 표하는 아이와 함께 주말에는 백제 몽촌토성이라도 들려보고 싶다. "여기는 서울 같은데?" 하면서 백제의 유적지를 지나면서도 옛 백제땅인지 알아보지 못했던 삼태기 도깨비의 모습에서, 역사에 무관심한 우리들의모습도 부끄럽지만 겹쳐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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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 - 그림 속으로 들어간 마술사들
오은영 지음 / 북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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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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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매지쿠스, 마술적 인간의 역사>의 책장을 넘기다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가장 먼저 저자의 매혹적인 미모에 놀랐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사회생활을 하다가 취미로 배운 마술에 매료된 오은영은 직업 마술사의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두 번째 놀라움은 저자의 대범함. 저자는  "마술은 인간의 삶 그 자체였고 인간은 마술적인 삶을 줄곧 살아왔다(9쪽)"라며 '호모 매지쿠스(Homo Magicus)' 라는 신조어를 제안한다.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나  호이징아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등의 용어는 들어보았지만, '호모 매지쿠스(Homo Magicus)'라니! 직업 마술사로서 "마술이 인류의 역사에서 주변이 아닌 존재양식 그 자체(8쪽)"이라고 주장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과연 어떻게 인간의 '호모 매지쿠스'성을 입증해낼 것인가? 궁금해졌다.

대학(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한 오은영은 인간을 호모 매지쿠스로 그려내는 데에  전공인 역사에 기대기로 했다. 그 중에서도 서양 미술사. 안타깝게도 올 2월 타계한 미술 해설가 (고)윤운중의 도움과 조언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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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은영

여타 미술사 책에서 자주 접하지 못 했던 명화와 역사적 자료들 덕분에 <호모 매지쿠스>는 비단 마술 전문가뿐 아니라 문외한에게도 예술적 호기심을 일깨우고 지적인 즐거움을 충족시켜준다. 서양미술사를 전공하지도 않았을텐데, 그 방대한 자료를 '마술'을 키워드로 재구성 편집해낸 저자의 노고가 놀라웠다. 다만 루브르 박물관만도 천여번을 들락일만큼 미술사에 흠뻑 빠졌던 윤운중의 해석을 1차자료 삼아 오은영이 2차 해석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저자만의 독자적인 미술사 다시 읽기 작업인지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생각이 책 읽는 내내 들었다. 


 또한 저자가 야심 차게도 인간을 '마술'이라는 키워드로 재조명하겠다며 '호모 매지쿠스'라는 신조어를 제안했지만 지나치게 서양미술사의 자료와 유럽과 북미에서 활동한 마술가들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반쪽짜리 호모 매지쿠스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도 남는다. 물론 동양 / 서양이 이분되는 세계가 아니며, 저자도 빅토리아 시대 인도의 마술이나 저자 학창 시절의 분신사바나 야바위 게임을 사례로 들기도 했다. 하지만, 동양에서의 마술의 개념이나 실천을 독자적으로 다뤘다기보다는 흔한 설명 구도인 '오리엔탈리즘'의 틀에서 소개하는 선에 그쳤다.  

하지만 저자가 <호모 매지쿠스>를 집필하게 된 진정한 의도를 곱씹어 생각한다면, 이런 비판은 슬그머니 내려두고 싶다. 저자 오은영은 마술을 단순한  쇼로써, 마술사 역시 엔터테이너로서만 좁게 보는 데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의 삶에서 마술은 어느 하나의 독립된 영역으로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삶의 양식과 얽혀있고, 인간이 상상하고 초월을 꿈꾸는 존재인한 마술은 앞으로도 인간과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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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매지쿠스>에는 마술과 관련한 명화, 포스터, 사진이나 책의 삽화 등 다양한 자료를 배치하고 있어 문화사나 미술사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훌륭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유럽과 북미에 치우친 자료이기는 해서 정작 한국이나 동양에서의 유명한 마술가나 마술적 실천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서양에서 활약한 마술사나  흥미로운 이벤트에 대해 새로 알게 될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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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부양이니, 카드마술, 탈출 마술 등에 관련한 다양한 에피소드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모자 마술'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토끼 출산 소동"이었다. 영국의 메리 토프트(Mary Toft)이 토끼를 출산했다는 소문에 궁정의사까지 파견되어 진위를 확인했을 정도로 1700년대 영국을 떠들석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물론 후에 사기로 판명되었지만 1800년대에 모자에서 흰 토끼를 꺼내는 마술에 영감을 주었음을 틀림 없다.  '토끼 출산 소동' 에피소드가 "마술과 섹슈얼리티, 매혹적인 여자들"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부제 아래 소개되는 점이 독자로서 의아스럽지만(마술이 남성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이야기와 함께 마녀사냥 사례를 소개하긴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 '마술과 섹슈얼리티'라는 부제를 달았는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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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연주해요! 국민서관 그림동화 169
가브리엘 알보로조 글.그림, 김혜진 옮김 / 국민서관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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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연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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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영유아용 국민비디오와 같았던 Baby Einstein의 "Meet the Ochestra"를 많이도 듣고 보았지요. 아이들 좋아하는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과 함께 좀 더 경쾌해진 해석의 클래식을 들을 수 있었거든요. 이 후로도 사단법인 꾸러기 예술단의 "봄의 소리 왈츠"라든지, 꾸러기 음악회는 해마다 찾았어요.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 공연장이나 클래식 음악의 문턱이 그리 높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 고마운 공연이었지요. 그 연장선에서 <즐겁게 연주해요!>란 그림책도 참 고마운 책이랍니다.  꼬마들에게 오케스트라 악기들과 그 다채로운 소리, 구분법과 연주법들을 자연스레 가르쳐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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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가브리엘 알보로조는 마음씨 넉넉해보이는 노년의 신사, 지휘자를 등장시켜 오케스트라 소개를 해줍니다. 지휘봉을 들고 꼬마들에게 부드럽게 제안하네요. "우리 함꼐 오케스트라에 대해 알아볼까요?" 노란 병아리만큼이나 귀여운 꼬마들은 지휘자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 다니며 오케스트라 악기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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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타악기! 힘차게 북을 치니 활기가 하늘로 치고 올라갑니다. 아이들의 표정도 더 밝아졌어요. 특히 심벌즈 소리는 하늘을 둥둥 울릴 지경이네요. 실로폰 소리는 맑고도 아름답지요. 작은 소리의 파편들이 하늘로 올라가 색종이처럼 나부끼는 일러스트레이션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제 금관 악기를 소개합니다. 지휘자 할아버지는 먼저 금관악기의 정의를 내려주고 종류와 음색의 특징 연주법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주시네요. 직접 소리를 들어가며 배우니 아이들의 귀에 쏙쏙 잘 들어오나봐요. 모두 지휘자 할아버지의 설명에 귀를 쫑긋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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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악기의 세계도 오묘하지요. 첼로, 비올라,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까지.....갑자기 Two Cellos가 연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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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알보로조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왠지 듀산 패트릭 그림의 <아무도 듣지 않는 바이올린 (원제: The Man with the Violin>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어요. 소리, 특히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악기가 내는 음의 세계를 개성적으로 시각화해주었지요. <즐겁게 연주해요>에서 각 악기마다의 소리를 어떤 색감과 질감으로 그려냈는지를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답니다.

<즐겁게 연주해요!>를 아이와 읽고, baby Einstein의 교육용 DVD 중 바흐나 모차르트, "meet the orchesta"앨범을 보여준 다음, 매년 하는 꾸러기 음악단의 공연을 아이에게 보여주세요. 어린이들을 위한 클래식 공연인지라 설명도 친절하고 공연장 분위기도 편안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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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짓 - 일상 여행자의 소심한 반란
앙덕리 강 작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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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딴, 짓>을 탐독하는데 카톡 알림음이 울린다. ‘딴 짓 하다 네 생각이 난다는 지인’의 메시지에 <딴, 짓>이란 제목이 선명한 표지 사진을 찍어 보내며 혼자 킥킥 거린다. 저자 ‘강수정’이 말마따나 “딴짓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의 경우, 딴짓은 세속적인 기준에서 생산적인 일들을 앞두고, 계량화하기도 어려운 비생산적인 일들에 유받아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딴, 짓>의 주관적 해독 결과, ‘강수정’에게는 ‘딴짓’은 직업의 연장으로서, 창작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려는 스트레스 해소(혹은 방지) 기제로 보인다. 수십 개의 조각이 비어있는 채로 180조각 퍼즐을 완성하려는 기분으로, 저자를 상상해본다. <딴, 짓>으로 염탐한 강수정의 첫 번째 정체성은 ‘일탈을 꿈꾸는, 불혹이지만 소녀 감성을 지닌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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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우선 225mm 사이즈 하이힐을 소화하는 작은 발을 가졌기에 키가 꽤 작을 것이다. 61페이지에 실린 사진 속 늘씬한 여인이 저자일까 하는 고양이의 호기심은 225라는 숫자에서 잦아들었다. 또한 그녀는 불혹을 넘겨서도 여전히 ‘아가씨’란 호칭을 자연스러워하니 ‘아이가 딸린 엄마’가 아닌 독신여성일 것이다. 실제로 <딴, 짓>의 행간에는 이미 이십여 년 전에 만났던 옛 애인에 대한 애정이 아직도 묻어난다. ‘기독교 회관에서 그 남자를 보고 심장이 멈춘 듯 호흡이 잦아들었(딴짓 #26, 82-3쪽)’ 다든지, ‘그 남자와 함께 먹던 김치 수제비를 혼자 먹으려니 목 넘김이 힘들다(92-3쪽‘든지의 미련을 내비친다. 나아가 “내가 저버리는 것보다는 내가 버림을 당하는 편이 낫다(137쪽)”는 고백으로 아픈 연애사를 추측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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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짓>의 행간 읽기로 추정하건대, 작가 강수정은 열 살 난 여자아이와의 연상게임에서 자신을 “unexpected"란 단어로 규정 받고 공감의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자유롭고 싶어 한다. 현실적으로도 여러 의무관계에서 자유롭다. 대한민국의 그 많은 여성들을 진공흡입기처럼 빨아들인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로부터도 자유로워서 아이도 남편도, 자주 드나들어야 할 시댁도 없다. 관계에서 오는 의무에서 자유롭기에 그녀는 제주도를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고, 지리산 종주를 하고, 자전거 타고 훌훌 떠나고, 인도와 일본 등 외국 여행을 자주 하며, 딴짓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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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칫 ‘오지랖’의 경계로 넘어가버릴 수 있는 작가 특유의 감수성과 섬세함을 지녔다. 재료가 입안에서 따로 도는 7000원짜리 칼국수의 맛과 엉망인 서비스에 기사 정신을 느껴 칼국수 집 주인에게 장문의 충고문서를 써서 날리기도 하고(딴, 짓 #32 99쪽), 방음이 전혀 안 들리는 홑벽 집을 부동산 중개인에게 안내받는 와중에 “눈 내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설레하겠다(딴, 짓 #25 80-1쪽)”며 소녀 감성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런데 오지랖으로 보이기보다는 엉뚱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40 나이인데도, 세상의 때로부터 스스로를 자정시켜온 명상자 같아 보인다고나 할까.

작가 강수정의 귀엽고도 성찰적인 딴짓 메들리로 이뤄진 <딴, 짓>에 소개된 316개의 딴 짓 중에 유독 “즉흥여행(딴, 짓 #12)"과 ”생명줄(딴, 짓 # 88)“이 훈훈한 사람냄새로 기억된다. 전자의 에피소드에서 저자는 부산행 새마을호 하행선에서 손수건에 싸온 김치 도시락을 나눠먹는 노부부의 도시락 까먹는 소리에서 ”세월의 소리“를 듣는다. ”생명줄“ 에피소드에서는 한라산 등산길에 걸려 있는 빛바랜 촌스러운 빨랫줄이 알고 보니 폭설로 길 잃을 뻔한 등산객들을 안내하는 생명줄이자 등대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경험을 담고 있다.

전직 기자이자 인생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사업가의 딸로 살면서 ‘육지 것’스러움이 배여있는 저자는 <딴, 짓>을 집필하던 와중에 경기도 양평으로 이사해버렸다. 스스로에게 “촌스러운 육감”이 있다거나 ”전생에 소복한 눈송이였을지 모른다.“라는 다분히 무속적인 믿음을 내보이는 그녀가 한 눈에 반한 집이다. 독자로서의 육감으로 말하건데, 왠지 그녀의 양평 작업실 ‘벼리’에서 앞으로도 더 좋은 글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다. 벼리의 ‘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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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인문학 : 진격의 서막 - 800만 권의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
에레즈 에이든 외 지음, 김재중 옮김 / 사계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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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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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퀼리브리엄>(2002)에서 '반역자'로 사냥당하던 사람들, 정부에서 일괄 지급하는 약물 '프로지움'을 거부하고 아날로그의 삶을 고수하던 그들만큼이나 나는 디지털 까막눈이다. 그래도

 

"빅데이터" 가 대세라는데 조바심은 나서 이 책 저 책 뒤적거려는 보기는 했다. 막상 머릿속에 남는 것이라고는 빅 데이터가 데이터량 (Volume), 다양성 (Variety), 속도 (Velocity)의 3V로 요약되는 특성을 가졌다는 정도. 왠지 나의 삶과 세계관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을 듯한 암호문 같아 굳이 정신을 집중해서 읽지도 않았는데, <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은 달랐다. 메모해가며 읽고, 자료 찾아가며 읽었는데도 또다시 읽어보려 서가 가장 전면에 꽂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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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빅데이터는 부록 형식의 특별좌담에서 송길영(다음소프트) 부사장이 언급했듯 "다루기에 너무 큰 (too big to handle)" 데이터이자, 앞으로 계속 커져나갈 것이며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에 자료로서는 고약한 녀석이다. 연구자 역시 '신호'와 '소음'을 구별해서 활용가능한 데이터로 재가공할만한 안목도 쉽게 갖추기 어려울테고. 특히 질적 연구방법을 강조하는 전통에 있는 학문은 인간세계를 수량화시켜주는 빅데이터와의 조우를 미뤄왔다. 하지만, <빅데이터 인문학>의 공저자인 에레즈 에이든과 장바스티스 미셸이 지적하듯, "빅데이터는 인문학을 바꾸고, 사회과학을 변형시키고, 상업 세계와 상아탑 사이의 관계를 재조정(p.17)"해줄 축복일 수 있다.  지적 열정이 넘치는 하버드대학의 두 과학자는 빅데이터는 '재앙보다는 축복'이라는, 아니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신세계를 창조해낼 것이라고 본다. 에레즈 에이든과 장바스티스 미셸은 역사적 도구를 관찰해주는 도구로서 "구글 엔그램 뷰어(Ngram viewer) "를 개발했고, 컬처로믹스(Culturomics)라는 새로운 접근법을 창조해냈다. 이는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의 문화 개념과, 빅데이터를 지칭하는접미사로서의 '-오믹스- oimcs'를 겹합해낸 신조어이이다. 실제 그들이 제시한  엔그램 뷰어는 '듣도 보도 못한' 신개념 관찰도구이다. 검색창에 단어 하나를 입력하고(웹사이트 books.google.com/ngrams), 엔터만 치면 구글이 디지털화해온 800만 권의 책을 검색하는 효과를 낸다. 예를 들어, 암(cancer)과 열(fever)라는 단어를 앤그램 뷰어를 통해 검새해보면 디지털화된 대량의 텍스트를 정량적으로 분석해낸 매끄러운 곡선이 도표화되어 나온다. 아래의 표를 보면 19세기 초반만 하여도 cancer라는 단어는 거의 텍스트에 등장하지 않다가 20세기 후반을 기점으로 급증하며 사용된 반면 fever는 반대의 사용빈도경향성을 보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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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0만 권이라 하면, 구글이 지난 2004년부터 디지털화해온 책 중 일부이자, 2010년 기준 추정치로서 전 세계에 존재한다는 1억 3000만여권의 책 중에는 더욱 작은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구글은 2020년까지 남은 1억여 권의 책을 모두 디지털화하리라 전망하고 있기에 앞으로도 문화의 렌즈로서의 '엔그램 뷰어'의 활약상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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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저작권법이라든지 물리적인 책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현실, 디지털 아카이브에 포괄시킬 수 없는 물건들(3D 프린터가 대안이될 수 있을까?), 미출간 원고, 검색어로서의 성명과 오명 등의 장애물에 더해 여러 인식론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그중에서 일반 대중도 관심 가질만한 주제로는 업압과 검열이 빅데이터에 미친 영향이다. 저자들은 대표적인 억압의 사례로 나치의 독일문화통제 정책을 들고 있다. 실제 나치 괴헬스의 제국문화부에게 '퇴폐 미술가'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마르크 샤갈의 이름은 1936년과 1943년 독일어로 쓰인 텍스트에서 증발해버렸다. 하지만 헬렌 켈러가 독일 학생조직에게 쓴 편지에서 "책들을 불태울 수 있지만, 그 책들에 담기 사살은 오랜 시간 백만 가지 통로로 스며들었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리라(p.154)"고 말했듯이 샤갈을 비롯, 퇴폐미술가로 낙인 찍혔던 미술가들은 여전히 인구에 회자된다. 게다가 엔그램 뷰어를 활용하면 검열과 억압의 역사를 자동 추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 현대사에서 천안문 광장 학살에 대한 정보가 어떻게 억압당했는지는 엔그렘 엔터 한 번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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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은 단지 '문화 연구의 새로운 렌즈'로서의 엔그램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불어넣고 21세기형 방법론을 모색하려는 학자뿐 아니라, 통섭의 학문의 재미를 알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 모두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부록 형태로 실린 특별좌담에서 청전환(성균관대) 교수가 부러움을 솔직히 표현했듯이 에레즈 에이든과 장 바티스트 미셸은 학제간 상호작용에 야박한 한국 사회에서의 건조한 학문적 분위기와는 달리, 놀듯이 "좋아서, 좋아 미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재미를 보여준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읽을 가치와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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