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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평점 :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미국 남부에서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경멸과 멸시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늪지에서 숨은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로 법을 피해 숨어 사는 도망자 거나 범죄자 혹은 각종 중독자들이 대부분이라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일컬어 늪지 쓰레기라 칭하고 상종하길 꺼린다.
그런 늪지에서 마을 유지의 아들이자 자신 역시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체이스 앤드루스가 망루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늪지에 사는 한 여자가 관심 대상으로 떠오른다.
처음엔 단순히 실족사나 사고사로 생각했던 마을 보안관은 그가 올라갔던 망루의 울타리 문이 열려있었고 망루로 들어가는 문에서조차 어떤 지문도 안 나왔을 뿐 아니라 죽은 이의 발자국을 비롯해 어떤 흔적도 습지에 남아있지 않은 점을 들어 누군가에 의한 살인일 수도 있다 생각하면서 사건은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에 의해 단박에 용의자로 떠오른 인물은 일명 마시 걸이라 불리는 늪에서 홀로 사는 여자 카야
그녀는 어느 날 아침 가방을 들고 떠난 엄마를 시작으로 몇 년 새 어린 그녀만 남겨두고 모두가 떠난 후 빈 집에서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뎌내고 살아남았지만 그런 그녀를 마을 사람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에게 카야는 굶주리고 어느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 없는 가여운 어린 소녀가 아니라 그냥 보고 싶지 않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습지에 사는 쓰레기일 뿐... 그런 카야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낸 사람은 백인들이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던 흑인 점핑의 가족뿐이었다.
그들이 카야를 꺼리고 멀리하는 만큼 카야 역시 마을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해를 끼치거나 놀리는 걸 피해 사람들과 어떤 교류도 원치않았으나 그런 카야의 방어막을 뚫고 그녀에게 다가온 사람은 한때 오빠의 친구였던 테이트였다.
글도 모르는 그녀에게 다가온 유일한 소년 테이트에게 글을 배우고 점점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습지에 대해 배우는 즐거움도 잠시... 사랑한다 고백하던 테이트 역시 자신의 길을 걷기 위해 그녀 곁을 떠나고 또다시 홀로 남게 된 카야는 다시는 자신의 마음 한편을 누구에게도 내어주지 않겠다 결심한다.
테이트가 사라진 이후 유일하게 그녀와 가까이 지냈던 체이스의 죽음은 당연하게도 마시 걸이라 칭하던 카야에게 의혹이 쏠리게 하고 연이어 그녀에게 불리한 증언들이 나오면서 그녀는 법정에 살인죄로 서게 되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사형에 처할 일측 즉발의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카야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변호조차 거부한다.
카야가 진짜 범인인 걸까? 아니면 사람들의 선입견이 그녀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걸까?
사건의 단서를 쫓는 것과 더불어 그녀가 늪에서 가족 모두가 떠난 후 홀로 살아남아 마침내 자신이 쓴 책으로 습지생태전문가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한 소녀의 성장기이자 자연 문학이기도 하고 범죄를 추적하는 미스터리 소설이기도 하다.
우리는 잘 몰랐던 습지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체의 생생한 생동감 그리고 누구도 볼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생활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 비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몸속 깊이 느끼는 카야가 점점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주 흥미로웠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곳인 습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똑똑한 카야지만 너무 어렸을 때부터 혼자여서 당연히 알아야 하는 사람들 간의 기본적인 정서와 교류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게 그녀에겐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당연하게도 그녀의 이런 어리숙하고 순진한 면을 노리며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혼자인 시간이 너무 길어 외로움에 지쳐 덫일 줄 알면서도 스스로를 속이고 그 덫으로 걸어들어가는 카야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앞으로 벌어질 일이 예상되면서 언제 사건이 터질지 몰라 긴장감을 놓을수가 없다.
이렇게 카야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그녀가 살아남는 방법을 깨우치고 첫사랑의 안타까움을 배우며 자라는 과정이 잔잔하면서도 역동적으로 그려지는 것과 동시에 현재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시점이 교차되게 편집해서 어느 한순간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하고 있다.
또한 재판이 벌어지면서 드러나는 증거와 상관없이 그녀의 겉모습과 사는 환경만으로 그녀의 유죄를 자신하며 단죄하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치열하게 법정 싸움을 하는 장면도 상당히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어 이 책을 어떤 장르에 넣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스토리 자체도 굉장히 흥미로웠고 카야라는 캐릭터 역시 상당히 매력적이며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어 더욱 이 책이 빛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왜 이 책이 입소문을 타고 계속 계속 순위가 뛰어올랐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테이트를 사랑하면서도 다시 버려질 것이 두려워 그를 외면하는 마음도... 아닌 줄 알면서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넘어가 주는 그 마음속 내면의 갈등도 너무나 세심하게 표현해내고 있어 러브스토리로도 매력적이지만 사건 당일의 증언들을 바탕으로 한 그날 밤 사건을 재구성하는 장면 역시 마치 사건 현장을 보는 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미스터리 소설로의 재미도 만족시켜주고 있다.
오랫만에 만난 아주 흥미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