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 차림으로 직장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있다. 우선은 모 우체국에서 일하는 청년이다. 언뜻 보면 경찰복 비슷한 차림으로 일하는데 둥글둥글한 얼굴형이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준다.

두 번째 청년은 모 식품매장에서 일한다. 주로 주부들을 상대하는 식품매장의 분위기 상 대부분 여 직원들인데 그만 혼자 남자 직원이다. 말하자면 청일점이라 할 만하다. 그는 회사의 제복 차림인 것은 물론이고 동료 여 종업원들처럼 앞치마까지 두른 모습으로 항상 상냥하고 성실하게 손님을 맞는다.

세 번째 청년은 세탁소 사장이다. 물론 혼자 하는 자영업이다. 아무 옷이나 걸치고서 근무해도 될 듯싶은데 그는 그렇지 않다. 항상 단정하고 깨끗한 옷차림이다. 특별한 제복차림은 아니지만 나는 그의 항상 단정하고 깨끗한 옷차림에서 제복 느낌을 받는다.

 

내가 사는 도시가 아직은 좁은 것일까? 그 제복 차림의 청년들을 잇달아 밖에서 목격할 줄이야.

우체국 청년은 경찰복 비슷한 차림 대신 청바지 패션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어딘가로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식품매장의 청년은 앞치마를 두르는 회사 제복 대신 멋진 선그라스까지 쓴, 산뜻한 야외복 차림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세탁소 청년은 식당에서 보았는데 친구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세탁소에서 입는 옷이 아닌, 간편복 차림이었다.

 

세 청년들을 밖에서 잇달아 목격하게 되면서제복 차림이 아닌 평상복 차림의 그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시대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제복 차림으로, 밖에서는 편안한 차림으로 열심히 사는 젊은 그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침체의 늪에서 결국은 일어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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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사진 찍히면 그  순간 영혼이  달아나기  때문이다."

요즈음  원주민들의  주장이  왠지  설득력을 갖는 것 같다.  현 세상을 어지럽히는 "외모지상주의"가  바로 그 증거가 아닌가.  오직  외모 다듬기에  전념해 사진 찍히기를  즐기는 순간  맑던 영혼이 흐려지며  결국은 머리 빈 사람의 꼴이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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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가 주는 것 하나 없이 얄미운 사내를 만난 곳은 차 타이어를 파는 가게 사무실이다. 추운 겨울이 시작됐는데 어째 눈이 많이 내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스노우 타이어를 장착하려고 들른 것이다.

 K만 그런 염려를 하는 게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스노우타이어를 장착하려고 온 손님들로 좁은 가게 사무실이 꽉 찼다. 온 순서대로 기다려야 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만일 그 때 손님들이 많지 않아 사무실이 붐비지 않았더라면, K는 주는 것 하나 없이 얄미운 사내를 못 만났을 게다. 원래 사람들이 붐비는 답답한 공간을 몹시 싫어하는 K는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나면서 그 사내가 '설정'됐던 거다.

따라서 그 사내는 죄가 없었다. 하지만 K는 사내가 얄미워 보여서 주먹으로 한 대 줘 박고 싶은 것을 참느라 몹시 힘들었다. 그럴 만도 했다. 사내는 K가 싫어하는 면모를 다 갖추고 있었다. 보통 사람보다 작은 머리에, 불그레한 빛이 도는 색안경에, 간간이 짓는 뜻 모를 미소에 ……그러면서 그 좁은 사무실에서 괜히 달랑거리며 오가고 있었다.

  K는 머리가 큰 편이다. 그래서일까 대체로 머리 큰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색안경을 써도 검거나 푸른빛이 도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좁은 공간에 있게 되면 점잖게,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를 지키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그 사내를 K가 아주 싫어할 만했다. K의 마음 같아서는 나중에 어떻게 되든 그 사내의 면상을 주먹으로 한 대 갈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폭행죄로 경찰서에 끌려가면서 대() 망신살이가 시작되지 않을까? 잠시만 참기로 했다. 그런데 대기 손님들이 별나게 많아서 잠시참기가 어려울 듯싶다. 더욱, 주는 것 하나 없이 얄미운 그 사내에 대해 K는 분노가 쌓여갔다.

점점,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사내한테 날아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아주 힘들었다. 그 때다. 사내가 K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함께, 좁은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기다리면서 유대감 내지 친근감을 느낀 것일까?

아무리 얄미워도 코앞에서 웃는데 어쩌랴. K는 자기도 모르게 따라서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사내는 착한 사람 같았다. K는 혼자 머쓱해져내 성격이, 확실히 이상한 데가 있구나반성했다. 어쩌면 자신이 다른 사람들한테 주는 것 하나 없이 얄미운 사람으로 보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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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주차한

고양이

스며들다

엔진 음()으로 그렁거리다

골목 어둠에 보태지다

미등록 생명으로

숨죽이다

단내나는 차바퀴

따스하나 불안한 휴식

찬비가 내렸다

나는 비 맞으며 밤거리를 쏘다닐

나이가 지났다

우산을 썼다

골목을 지나

오래도록 못 본 후배를 찾고 있었다

고양이가 지켜봤다

지명수배된

후배가

어둠 속에서

살펴볼지 몰랐다

우산을 써도

비에 젖는 느낌에

골목을 벗어나려 했다

어둠은 분명했으나

고양이가 끝까지 남을지

불확실했다

후배가 지명수배 되었으므로

나는 편하게 우산을 쓰고 돌아다닌다는

이상한 생각이 뒤따랐다

돌아보았다

어두운 골목이 웅크리고 있었다

우산 손잡이를 힘껏 쥐었다

세상 끝에 매달린 것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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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는 예술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에게 공감을 주고 나아가 감명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맹인임에도 아무 불편 없이 성큼성큼 잘 걸어 다닌다면 관객들의 실망이 클 것이다. 비록 극 속의 맹인이라도 배우는 그 역을 맡는 순간부터 모든 관객들이 맹인으로 착각하도록 연기할 의무를 지니며, 이것이 예술작품에서 리얼리티가 소중하게 대접받는 까닭이다.

 

 

 

 

 

 

그런데 우디 앨런은 로마 위드 러브라는 영화에서 이 리얼리티를 아무렇지도 않게 위반한다. 목욕할 때만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장의사를 오페라 무대에 등장시켜, 똑같은 목욕 환경 속에서 노래 부르도록 함으로써 청중들의 환호를 받게 만든다는 설정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생겨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샤워기에서 요란하게 쏟아지는 물소리와 함께 부르는 노래가그 소란스러울 잡음이 어찌 청중들에게 감명을 주는 노래로 환호 받을 수 있을까?

 

  평범한 직장인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하룻밤 새에 유명인이 되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난데없이 등장한 창녀를 자기 친척들에게 결혼할 예비 신부라고 소개하고 다니는 기막힌 상황이 어디 있을까?

 

사랑에 빠진 순간 당신이 캐스팅 되었다는 감독의 전화가 오자 그 자리에서 일초도 망설임 없이 남자를 떠나는 여배우가 어디 있을까?

 

 

 

 

 

대화할 때 통역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 사돈 간(우드 앨런과 장의사)인데 어느 순간부터 통역자 없이 얘기를 주고받으며 사건을 전개하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관객 누구도 우디 앨런의 이런 리얼리티의 결례를 문제 삼지 않는다. 왜냐고? 애당초 이 영화가 시작될 때 등장한 교통경찰이 이제부터 로마에서 갖가지 사랑 얘기가 벌어진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날 때 역시 누군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나서서 이제 얘기들이 마감되었다고 친절하게 밝혔으니 --------애당초 우디 앨런은 리얼리티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한바탕 사랑 얘기 좀 하겠다고 관객들에게 양해부터 구한 것이다.

 

  하긴 우리가 극장을 찾는 까닭은 잠시라도 현실(리얼리티)을 벗어나기 위함이 아닐까. 굳이 극장에서까지 리얼리티를 만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우디 앨런은 마음 놓고 장난했다. 리얼리티를 무시한 얘기들을 보여줌으로써 ------또 다른 의미의 리얼리티를 깨닫게 했다.

 

 

 

 

 

 

청춘 남녀의 사랑은 사실, 수시로 무너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누구나 하루아침에 유명 가수가 되는 것과 같은, 황당한 명예욕을 감추고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몸으로 활개치고 싶은 욕망이 내게 숨어 있지 않을까? 우리가 겉으로는 고상한 대화를 나누지만 그 순간 더럽고 음험한 속셈이 숨어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런 장면에서 분명히 등장인물이지만 수시로 유령처럼 나타나 그 속셈을 일러주는 알렉 볼드윈. 이 또한 철저한 리얼리티의 파괴 장면이자, 우리 모두의 가슴 속을 뜨끔하게 만든다.)

 

  우디 앨런이라는 괴짜 영화감독에 관한 신문 기사(대개 여자 문제)는 몇 번 보았으나 실제 그의 영화를 감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리얼리티가 무시되는 순간 또 다른 의미의 리얼리티를 대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번 영화로 깨달았다.

 

우디 앨런은 영화로 장난을 치지만 그 장난은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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