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래꽃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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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의 일이다.
어두운 서재를 밝게 하려고 유리창의 브라인드를 올렸다가 소스라쳤다. 유리창 바깥쪽으로 잠자리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잠자리가 유리창에 매달려 있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소스라친 건 까닭이 있다. 나는 현재 30층 되는 아파트의 20층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잠자리라니.
창밖에는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자리의 처지가 이해가 됐다. 차가운 가을비를 피해 천신만고 끝에 찾은 정처(定處)가 내 서재 유리창 바깥임을.
불현듯 그 광경을 시로 표현하고 싶어졌다. 책상의 컴퓨터를 켜고 시상을 가다듬었다. 한참 만에 시가 나왔다.
‘잠자리 한 마리가
차가운 가을비를 피해
20층 높이
아파트 유리창 밖에
매달려 있었다’
그 이상 시는 나오지 않았다. 그냥 비도 아니고 차가운 가을비를 피해 20층 높이 유리창에 매달린 존재의 처절함이, 시 한 편으로는 절대 부족한 걸까?
명색이 작가라고, 작품집을 세 권이나 낸 내가 어휘 부족에 다다른 걸까?
밤이 되었다.
잠자리는 내 서재 유리창 바깥에 매달린 채로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늘 새벽이다. 그 잠자리가 안 보였다. 내 서재 유리창에서 어딘가로 떠난 것이다. 아니면, 부는 세찬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버렸는지도 모른다.
잠자리는 미완의 시 한 편
을 남기고 사라졌다.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나도 이 아파트에서 다음 달에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간다. 잠시 이 아파트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잠자리와 나는 진화(進化)의 가지 끝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리곤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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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한 마리가

차가운 가을비를 피해

20층 높이

아파트 유리창 밖에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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