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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미국 나사에서 쏘아올린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잘 사는 이웃집의 안방에는 그 장면을 지켜보려고 모여든 동네 사람들로 가득했다. 흑백 tv로 중계되는,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 발을 디디는 장면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다음 날 저녁 신문은인간 달에 서다라고 대문짝만한 활자로 발간되었다. 아폴로 우주선은 이런저런 것들을 실험하고 채집하느라 며칠 간 달 표면에 남아 있는다 했다. 학교는 여름방학 중이었다.

 

대학입학을 위한 예비고사가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라 시험공부에 매진해야 하는데 무심은 전혀 공부가 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달에 우리 인간이 쏘아올린 우주선이 착륙해 있다는데, 편안히 시험문제집을 펴 놓고 방안에 앉아 있다니 스스로 납득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갔다. 학교는 멀었다. 삼십 분은 걸려, 걸어서 도착한 학교.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여름방학에 들어갔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그 또한 무심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천여 명의 학생들이 북적거리던 공간이 마술이라도 부려진 듯, 단 한 명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니 말이다.

 

혼자 텅 빈 교내를 방황하다가 가까이에 있는 공설운동장으로 갔다. 다행히도 그곳에 몇 명의 동기애들이 모여 있었다. 걔네들마저 없었더라면 무심은 그 날 어떡할 뻔했을까?

 

걔네들은 어떤 애가 떠드는 얘기를 아주 재미있어 하며 둥글게 모여 있었다. 무심이 다가갔는데도 특별히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 애의 얘기에 푹 빠져 있었다.

 

그 애는 우리와 동기이긴 하지만 학교를 안 다녔다. 깡패 비슷하게 거리에서 지내는 아이인데 웬 일로 공설운동장 한 구석에 나타나, 동기애들한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음담이었다. 우리 또래 여학생을 하룻밤에 어쨌다는 음담을 아주 실감나게 늘어놓고 있었다. (사실, 이 묘한 아이에 대해 무심은 얼마 전 작품 하나를 썼다. 때가 되면 발표할 것이다.)

 

공설운동장의 서쪽으로는 미군부대가 있었다. 미군부대에서 성조기 하강식을 하느라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선연했다.

 

달에 아폴로 우주선이 착륙해 있다는데 학교 다니지 않는 애가 열심히 음담을 늘어놓고, 진위 여부가 분명치 않은 그 음담을 학교 다니는 동기애들이 킬킬거리며 재미나게 듣고 있고, 미군부대에서는 늘 그랬듯 성조기 하강식이 치러지고, 천여 명의 학생이 북적거렸던 학교는 갑자기 텅 빈 건물로 있고, 하는 뭐라 간단히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무심을 못 견디게 했다.

 

무심은 다시 먼 집으로, 삼십여 분 걸어서 돌아왔다. 집이라고는 하나, 사실 독채 전세로 얻은 집이었다. 무심은 부엌 위, 지붕 아래 다락방에 올라갔다. 미리 갖다놓은 작은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 등을 켠 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예비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그 하루 이틀 사이에 벌어지는 상황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소설을 완성한 뒤황사라 제목을 붙이고 모 대학교에서 공모하는 전국고등학생 대상 현상문예에 응모했다. 두 달 뒤 당선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무심의 문학수련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무심은 그 여름날을 잊지 못했다. 그냥 두어서는 안 되는 여름날이란 생각에 미쳤다. 다 늙어서, 이제는 서재에 앉아 그 여름날을 눈앞에 떠올리며 며칠 걸려 작품을 썼다. ‘달나라라는 소설은 그렇게 창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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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원래 대학교 4학년 때인 1973년 5월에 쓴 것이다. 당시 이 작품을 '그리고'문학회지(3집)에 실을 때 출판비를 대는 학예부장 녀석이 벌벌 떨며 내게 말했다.

이 작품 때문에 나까지 어디 끌려가 고생하는 거 아니니? 내용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거든.”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치하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철저히 짓밟혔다고 기록되는 시대다. 학예부장 녀석이 벌벌 떨던 게, 이제야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자유수호를 위한다고 참전한 월남전이 막바지에 달한 그 즈음에 반전사상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소설을 떡하니 문학회지에 발표하겠다니 말이다. 잘못되면 모처에 끌려가 고생바가지를 쓸 것 같은 공포감에 그 녀석은 내가 이 작품의 원고를 알아서 스스로 철회하기를 바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원체 무심한 성격의 나는 이렇게 답했다.

괜찮아. 실어.”

    

솔직히, 지방 대학의 문학회지에 이 작품이 실렸기 망정이지, 만일 서울 한복판에 있는 대학교의 문학회지나 교지에 실렸더라면 분명 문제를 일으켰고 죄없는 학예부장 녀석과 나는 함께 경쳤을 테다.

 

오랜 세월이 지났다.

내가 퇴직 후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한 친구가 자네가 대학 시절에 글을 잘 썼다는데 좀 보여줄 수 없냐?’고 부탁했다. 그런 연유로 세상의 빛을 제대로 받게 된 소설이숨죽이는 갈대밭이다. 그 친구가 다 읽어보고는브라보!’라고 벅찬 감동을 한 줄 메일로 적어 보냈다. 현재 쓰는 소설들보다 몇 십 년 전 대학 시절의 이 소설이 훨씬 낫다는 전화통화를 나중에 했다. 놀란 나는 이번에는 모 시인께 보였다. 그분 역시 다 읽고 나서 친구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제목을 바꾸게. 다 좋은데 지금 제목은 어째 마음에 안 드네.”

초원의 빛이란 원제 대신 숨죽이는 갈대밭이란 제목으로 바뀐 연유다. 가깝게 지내는 봉명산인이란 분도 이 작품을 읽고 극찬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아들 또한 이 작품을 보고 아빠가 대학시절에 이렇게 소설을 잘 썼다니!’하고 감격했다.

 

그래서 올해 여름에 생애 처음으로 작품집을 낼 때 수록한 12편에 이 작품을 포함시킴은 물론이고 작품집의 표지 제목으로까지 삼았는데…… 생각만큼 독자들의 반응이 나오지 않아 왜 그럴까?’하고 나 혼자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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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은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업하던 남편이 암에 걸려 병석에 눕자 아내 되는 여자가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결국 남편은 세상을 떴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들 형제와 작은 아파트 한 채. 그나마 아파트는 많은 빚에 저당 잡혀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고민 끝에 상식을 넘는 선택을 하였다. 아들 형제를 내팽개치고 다른 남자랑 따로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문제는 그 남자와 옆 동네에서 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이다. 모자간에 길에서 맞닥뜨릴 상황이 되면 그녀는 먼저 다른 길로 피해 감으로써 자신이 원치 않는 만남을 용케 면하며 산다고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모성애만은 천고불변의 진리인 듯 영원할 거라 믿어온 무심으로는 정말 믿기지 않는 실화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형제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애들이 아니라 하나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고, 다른 하나는 군대에 갔다가 막 제대한 청년이라는 사실이다. 하긴, 형제가 열 살 미만의 어린이들인데 그녀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법의 심판을 받았을 테다.

그렇다 해도 무심으로서는 가난 앞에 무너진 모성애라는 차원에서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생각 끝에 지인들에게 과연 그런 비극이 가능할 수 있는지그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경제난이 심화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의견들이 다수였다. 뜻밖이었다.

결국 무심은 그 이야기를 작품화하여 허구로나마 못된 어미를 응징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를 응징했다고 해도 비극은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허구이긴 하지만 개연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비극의 재생산에 무심의 가슴은 다시 아팠다.

박쥐가 된 아이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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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에는 이상한 일들이 많았다. 난데없는 새마음 운동이 그 중 하나다. 내가 근무하는 시골 학교 교무실에서 아니 새마음 운동은 또 뭐야? 새마을 하나면 됐지 나 참.” 탄식하는 소리가 절로 났다. 얼마 후에는 그 새마음 운동 관련 일로, 윤리과장 선생이 12일로 출장 가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큰영애가 전국의 도청소재지를 돌며 새마음 ----’관련 행사를 여는데 그 장소인 실내체육관에 참석하는 것이라 했다. 이틀간이나 윤리 및 사회 수업을 비운다니, 펑크난 시간들을 다른 과목들의 시간으로 메우느라 교시 담당 선생이 고생 많을 수밖에.

 

12일 출장을 마치고 윤리과장 선생이 출근했다. 교시 담당 선생이 볼멘소리로 물었다.

아니, 무슨 행사를 이틀씩이나 한단 말이요?”

윤리과장 선생이 더 볼멘소리로 답했다.

첫 날은, 큰영애가 무대에 등장해서 시선을 줄 때마다 그에 맞춰 박수치는 연습으로 하루 종일 보냈고 둘째 날은 큰영애를 실제로 맞아 박수만 치다가 끝났다니까! 내가 다 늙어서, 실내체육관에서 박수 치는 것으로 이틀씩 보낼 줄이야 어찌 알았겠소?”

 

그 즈음, 1979년경은 이상한 일들이 많았다. ‘노려보기 시작했다는 그 즈음의 어느 시골 학교 교무실이 배경이다. 길이가 짧은 단편소설이기 때문에 10261212 직후에만 초점을 맞췄고 새마음 운동건은 다루지 못했다.

1979년이라면 39년 전이다. 관에서 깨어난 드라큘라처럼 오랜 과거의 그 이상한 일들이 근래에 부활했던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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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나린 2016-11-03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의 이상한 일들은 애교로 보일만큼 기상천외한 사기극을 벌였죠!에혀~~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한테서 무심이 한결같이 받는 질문이 있다. “언제 티베트에 가서 조장(천장)을 봤습니까?”

이 자리를 빌려 무심이 답한다. “한 번도 티베트에 가 본 적이 없고 상상으로 썼습니다.”

 

무심이 이 작품을 쓴 계기는 우연히 인터넷으로 티베트의 조장 현장 동영상을 목격한 일이다. 물론 시신이긴 하지만 독수리들의 먹이로 제공되는 그 끔찍한 장면에 무심은 경악했다. 그 동영상을 본 시간이 하필 자정 지나, 주위가 적막한 때였다. 얼마나 괴기스럽고 소름끼치는지 얼른 동영상 보기를 그만 두었는데 문제는 하룻밤을 자고 난 뒤에도 그 끔찍한 장면들이 무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결국 무심은 그렇다면 조장 동영상의 기억을 잊으려 할 게 아니라 소설의 소재로 삼아 보자고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보름 만에 완성된 작품이 라싸로 가는 길이다.

200자 원고지로 70매를 조금 넘는 소설을 완성하려면 보통 열흘 정도 걸리는데(체력이 떨어진 요즈음은 더 걸릴 것이다.) 보름이나 걸린 것은 무심이조장을 포함한 티베트 문화 전반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공부하느라 며칠을 고생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시신을 독수리들의 먹이로 주는 것은 티베트 사람들이 비인간적이어서가 아니라 목재 관 하나 짜기 힘든 척박한 자연환경 탓임을 알게 된 것부터 시작해서, 현재 조장은 티베트의 일부 지방에서나 행해지고 있으며 대부분 화장을 택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았다.

무심은 사실 이 작품을 창작했다기보다 제작한 것 같은 것이다. 티베트 땅에 발 한 번 디디지도 않고 그저 티베트 자료들을 토대로 조장 현장을 상상해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소설 숨죽이는 갈대밭100% 상상력으로 하룻밤 새에 미친 듯이 써서 완성한 것과 매우 대조적인 경우다. 그래서, 솔직히 라싸로 가는 길을 보름 걸려 완성해 놓은 뒤 무심 자신은 별로 감흥도 없었다. 그저 작품 쓰느라 고생깨나 했으니 이제부터는 생맥주라도 한 잔 마시며 푹 쉬자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활자화된 후에 생각지도 못한 반응들이 있어서 무심은 놀랐다. 티베트에 언제 가 봤느냐는 물음들은 차치하고, ‘이 작품은 아주 잘 쓴 작품이라는 과찬들이 그것이다. 특히 춘천의 여류작가 박계순씨가 이 작품을 숨죽이는 갈대밭작품집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손꼽는 데 무심은 정말 놀랐다.

무심이 이렇게 실토했다.

박 선배. 솔직히 이 작품은 창작이라기보다는 제작한 경우 같아서 작가로서는 그다지 감흥도 없거든요. 그런데 박 선배가 가장 마음에 드는, 잘 쓴 작품이라니 저로서는 어리둥절합니다.”

박 작가가 말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읽어본 사람들이 하는 거지, 만들어진 과정과는 상관없지 않나요? ”

그 말에 무심은 뒤늦게 활자화된 자신의라싸로 가는 길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랬더니 마음에 드는 괜찮게 쓴 작품이었다. 무심하기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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