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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연 선생은 그날 밤 사건의 현장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부지런히, 얇은 스웨터를 걸친 뒤 주방에 있는 아내한테 갔다.

여보. 오늘 내가 차를 쓸 일이 있어.”

당신도 참, 오늘 수요일은 내가 성당 교우 분들을 차로 모시고 봉사활동 가는 날이잖아요.”

차가 있는 다른 신자 분을 찾든지 아니면 택시 타고 다니든지 그래.”

김 선생이 교직을 퇴직한 지 3년여, ‘웬만하면 걸어 다니며 노년의 건강을 지키기로 하면서 그동안 차는 성당 다니는 아내의 독차지였다. 다시 반격에 나선 아내.

당신이야말로 택시를 타면 되잖아요.”

몇 백 리, 장거리를 가야 하는데?”

그럼, 버스 타고 가면 되잖아요?”

아니야. 이번에는 반드시 자가용차를 몰고 가야 해. 자세한 것은 저녁 때 돌아와서 말해줄게.”

대체, 어디를 가는 거에요?”

갔다 와서 말한다니까!”

김 선생은 부리나케 현관문을 여닫고 밖으로 나섰다. 솔직히, 중요하거나 시급한 일로 자가용차를 몰고 가는 게 아니라서 계속 대화를 이었다가는 책잡힐 우려가 컸다.

충청북도 음성군 운포면 희망리.”

차를 몰고 아파트 구내를 벗어나면서 김 선생은 잊지 못할 그 주소를 뇌까려 보았다. 그날 밤 사건이 벌어진 외갓집 동네의 주소다.

교통 정체가 심한 춘천 시가지를 벗어나자 바로 널찍한 중앙고속도로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만 하다.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지금과 달리, 40여 년 전 외갓집 가는 길은 힘겨운 고생길이었다. 시외버스니, 완행버스니 하는 대중교통수단을 세 번씩이나 갈아타고 가야 하는 데다가 하루 종일 걸렸다. 시가지 같은 경우에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었지만 시가지를 벗어나면 흙먼지가 뿌옇게 날리는 비포장 신작로일 뿐이었다. 신작로 길은 왕복 2차선으로 좁을 뿐만 아니라 굽이마저 잦아서 어린 학생이던 그는 차멀미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버스 안 바닥에 토할 위기를 모면한 것은, 그나마 버스가 자주 정차한 덕분이었다. ‘공용 터미널이나 종합교통 영업소란 데에 정차할 때마다 급히 구내 화장실을 찾아 와아악!’ 토해 버리던 추억, 아니 기억이 그에게 있다.

지금은 얼마나 좋은 찻길인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로 가다가 제천쯤에서부터 국도로 가는 건데 이제는 왕복 2차선 국도조차 굽이도 거의 없을뿐더러 아스팔트로 다 포장돼 있을 게다. 혹 멀미라도 나면 도로 변 휴게소를 찾으면 되고, 걸리는 시간도 하루 종일이 아니라 두어 시간이면 충분할 듯싶다. 자가용차가 아니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렇다. 이런 맛을 보려고 오늘 자가용을 고집한 것이다. 아무렴, 40여 년 간 발길을 끊었던 그날 밤 사건 현장을 찾아가는데 최소한 자가용차는 몰고 가야 되지 않겠나.

40여 년, 정확히는 45년이다. 오래도 발길을 끊었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궁금한 숙제 하나를 남겨놓고 눈 감게 될지도 모른다.

내비게이션 화면에 충청북도 음성군 운포면 희망리지도가 선하게 떠올랐다. 45 년 전의 공간이 확인된 셈인데 그렇다면 그 날 밤 사건의 공간은 그대로 남고 시간만 엄청 흐른 거라 말할 수 있을까?

 

그 해 1968년은, 나중에 알았지만, 거국적인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2년 전이었다.

그 해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혼자충청북도 외갓집으로 떠난 것이다. 당시 부모님은 여름방학만 되면 오남매의 장남인 그와 장녀인 누나 중 한 사람을 반드시 충청북도 외갓집에 보냈다. 방학 중 시골 외갓집에서 자연과 어우러지며 무언가 배우고 오라는, 고상한 교육 차원의 배려가 아니었다. 두 달 터울인 그와 누나가 툭하면 비좁은 방구석에서 말다툼을 벌이니 그게 지겨워 하나라도 딴 데로 보내자는 격리 차원이었다.

그 시절 춘천 지방은 겨울에는 춥기로, 여름에는 무덥기로 전국에서 악명이 높았다. 그러잖아도 비좁은 집에서 일곱 식구가 그 무더운 여름을 조금이라도 덜 짜증나게 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을 게다. 방이 둘 뿐인 그 집조차 독채 전세로 얻은 남의 집이었으니 돌이켜보면 기가 막힌다.

비만 오면 진창바닥인 춘천 교통 여객 영업소에서 우선, 원주로 가는 시외버스표를 끊으며 그의 외갓집 여행은 시작되었다. 짐이라고 해야 책가방에 챙긴 ‘AW메들리 영어 참고서’ , 영어사전, 그리고 양치도구 정도였다. 갈아입을 속옷 같은 것은 외삼촌 것을 입으면 되니 별 걱정이 없었다.

방학 한 달을 외갓집에서 보낸다 해도 달라질 게 없는 그의 생활이었다. 집에서 하던 영어 공부를 외갓집에서도 변함없이 잇는 것이다. 특히 당수 수련도 계속했다. 태권도를 그 시절에는 당수라 했다. 그가 당수를 독학하게 되면서 결국 그날 밤 사건의 원인(遠因)이 되었다. 그는 당수를 독학 하던 45 년 전 추억에 잠기며 운전한다.

 

그 시절 그가 사는 집은 춘천 봉의산 바로 아래 달동네였다.

어느 날 달동네에 당수 도장이 문을 열었다. 방치된 폐건물을 활용한 도장에서 30대 중반 나이로 보이는 사범이 저녁마다 당수를 가르쳤다. 수련생은 열 명이 채 안 됐는데 홍보 효과를 노렸는지 도장 창문을 모두 열어놓아, 외부 사람들이 당수 수련 모습을 밖에서도 볼 수 있게 했다.

그런 외부 사람들 틈에 그가 있었다. 사범이 하늘을 날 것처럼 공중으로 겅중 뜀과 동시에 몸을 옆으로 돌려 발차기하는’ 2단 옆차기라든가, 정권 치기라 하여 주먹을 단단히 쥐고서 온 힘을 다하여 두꺼운 송판을 격파하는 동작은 언제나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정말 그는 당수를 배우고 싶었다. 그러려면 입회비를 마련해야 했다.

간판도 달지 못한 데다가, 벽의 흙이 드러나도 회칠 하나 못한 당수 도장이니 입회비가 비쌀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그는 입회비 얘기를 부모님한테 꺼낼 수가 없었다. 실직자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가 시내의 식당 두 군데를 다니면서 가족들 생계를 해결하는 우울한 집안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그는 당수를 독학하기로 했다. 도장 창 밖에서 눈여겨본 당수 동작들을 집에 와 복습하는 형태다. 늦은 밤 시간에 집 뒤란으로 혼자 나와 30여 분씩 당수 동작들을 재연하는 것이다. 어두운 데에서 남몰래 하는 짓이었지만 식구들 눈에 안 뜨일 리가 없었다. 시내 다방에 죽치고 앉아 하루 종일 사업을 구상하다가 귀가한 아버지 눈에 뜨인 게 그 첫 번째였다.

너 지금 뭐하냐?”

어둠 속에서 겅중겅중 뛰는 웬 사람에 기겁했다가, 조심스레 살피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의 아들이라는 게 확인되자 안심하면서 던지는 첫 질문이다.

사실, 아버지보다 더 놀란 그였다. 2단 옆차기를 하려다가 아버지의 등장에 놀라 발목을 접질리고 만 것이다. 그는 몹시 아픈 발목을 참고서,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답했다.

학교 오갈 때, 깡패새끼들이 많아서, 그래서 혼자, 당수 연습하고 있어요.”

그러자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헛 참, 녀석도!’ 하는 표정으로 돌아서는 아버지. 돌이켜보면 참 가난한 부자지간이었다.

그는 지금 운전 중인데도 가슴이 먹먹해져서 액셀러레이터 밟는 것을 잠시 잊었다. 차가 제 속도를 잃고 느려지자 뒤따르던 차들이 빠바방! 경적을 요란하게 내며 추월해 간다.

, 내가 운전하고 있었지

그는 기겁해 액셀러레이터를 다시 밟으며 제 속도를 찾았다.

 

얼결에 한 대답이지만 그 무렵의 춘천에는 정말 깡패새끼들이 많았다. 시내 지역을 반 가까이 점한 거대한 넓이의 미군부대를 위시해 공병부대니 군단사령부니, 한국군의 여러 부대들까지 포진한 군사도시라서 그럴까? 미군들을 상대하는 양공주 촌에다가 일반인들 상대의 사창가까지 시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가운데 그에 빌붙어 먹고 사는 기둥서방이라 할, 눈매 사나운 깡패들이 많았다.

그런 시내 분위기에 편승해, 학교를 다니다 중퇴한 애들이 잭나이프 같은 흉기를 갖고 다니며 골목 같은 후미진 장소에서 또래 학생들을 대상으로 금품 갈취하는 일도 잦았다.

그는 그런 범죄의 피해를 본 적은 없었다. 등하교를 할 때 항상 주의해서 큰 길로 다녔기 때문이다. 막 되먹은 깡패들이라 해도 큰 길에서까지 못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 정도의 치안은 최소한 유지되던 춘천이라 할까.

여하튼 그 날 밤 얼결에 아버지한테 그런 대답을 한 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정말, 깡패새끼들을 만나면 멋지게 해치우고 말겠다는 의지까지 난데없이 생겨나 더욱 열심히 매일 밤 당수를 독학했다. 그러던 중에 1968년 여름방학을 맞아,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사는 충청도 외갓집으로 혼자 가게 된 것이다.

 

그의 차는 홍천 외곽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쌀쌀한 바깥 날씨임에도 차 안은 덥다. 늦가을, 따가운 햇살 때문이다. 그는 버튼을 눌러 조수석 쪽 창을 반쯤 내렸다. 싸늘한 바깥바람이 차 안으로 밀려들면서 덥던 실내가 얼마 안 가 완화되었다.

 

춘천 집의 좁은 뒤란에서 당수를 수련하기는 편치 않았다. 특히 2단 옆차기처럼 일정 거리를 날아야 할 때는 담벼락과 집채 사이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동작해야 했다.

외갓집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뒷동산에, 큰 나무들 사이로 제법 널찍한 풀밭이 있어서 그곳을 도장 삼아 마음 놓고 활개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듯하게 자란 굵은 소나무를 하나 택해 새끼줄로 둘둘 감아놓으니 정권 치기나 손바닥을 날 세운 수도 치기를 연습하기도 제격이었다. 물론 싸움 상대의 머리 부분쯤이라 여기고서 발차기 하기도 좋았다.

시간을 늘려, 하루에 한 시간씩 뒷동산에서 당수 수련도 하고, ‘이번 방학 동안에 나머지 반을 다 떼자는 결심으로 챙겨온 두꺼운 ‘AW메들리영어 참고서도 다섯 페이지씩 진도를 나가고, 정말, 오랜만에 알차게 보내는 여름방학 같았다.

만일 춘천 집에 있었더라면 5남매가 함께 쓰던 그 좁은 방에서 누나나 동생들에 부대껴 영어 공부는커녕 뒤란에서 하는 당수 수련도 여의치 않았을 게다. 바로 밑에 동생 녀석이 형을 따라 자기도 당수 하겠다며 한참 성가시게 굴던 참이었으니까. 춘천 집의 형편을 생각한다면 방학 한 달간이라도 외가로 놀러오기는 아주 잘한 일이었다.

 

작은 동산이지만 제법 많은 나무들에다가, 수풀도 우거져 그의 당수 독학 광경은 웬만해서는 사람들 눈에 뜨일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일주일쯤 지났을 때 동네 아이 눈에 뜨이고 말았는데 결국 그날 밤 사건의 태동(胎動)이라 할 만하다.

그 아이는 소 먹일 꼴 베러 산에 올랐다가 난데없는 당수 수련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같은 또래라 동네 길에서 마주치면 눈짓인사는 나누던 사이였다.

야아, 대단하구나야!”

그 아이는 감탄하며 서 있었다. 앞발차기 동작을 하던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계속했는데, 언젠가는 동네 사람들 눈에 띌 거라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서너 번 더, 소나무에 새끼줄을 감아놓은 눈높이 위치를 겨냥해 앞발차기를 연습한 뒤 그는 비로소 그 아이를 제대로 보며 말했다.

왔어?”

그런 뒤 다시 몸을 움직여 2단 옆차기를 실시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당수 동작 중 가장 멋진 동작에, 그 아이는 입을 떡하니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같은 동작을 네 번이나 하자 금세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가 소맷자락으로 목덜미의 땀부터 닦을 때 그 아이가 감탄의 표정이 여전한 채 물었다.

니가 지금 한 게, 그 뭐야, 당수? 그런 기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그는 자기도 모르게 허구까지 술술 지어내고 말았다.

내가 도장에서 당수 배운 지 1년이 넘었어. 1단이지. , 여기 시골에서는 잘 모를 테지만 춘천 바닥에는 깡패새끼들이 득실거리거든. 그래서 그 새끼들이 돈을 달라고 까불면, 까짓 거, 내가 당수로 콱 조지는 거지. 몇 놈 잘 조졌지, 지금까지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방학 때도 늘 당수를 연마해 두어야 해.”

 

돌이켜보면 그는 당시에 이미 소설가 기질을 보였던 게 아닐까? 환갑 가까운 나이에 모 문학지에 소설 두 편을 발표하는 둥, 뒤늦게 소설가의 면모를 갖춰 가고 있다.

아내가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구한다는 전도차원에서 성당에 데려가려고 할 때마다 그는 당신, 내가 그리도 한가해 보여? , 요즈음 작품을 구상하느라 머릿속이 여간 바쁜 게 아냐!’하는 말로써 사절한다. 그런 뒤 속으로 정말, 내가 소설가로 등단하지 않았더라면 애먹을 뻔했다.’고 안심한다. 성당이 싫은 게 아니라 특정 공간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 게, 생각만 해도 못 견디겠는 거다. 교직에 재직할 때에도 그는 강습이라든지 교장의 특별 훈화같이 꼼짝달싹 못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을 아주 못 견뎌했다. 그 때문일까, 승진과는 거리가 먼 평교사로 퇴직하고 말았다. 그의 잠재의식 속에, 한창 자랄 때 그 좁은 방 한 칸에서 누나나 형제들과 함께 지내느라 몹시 힘들었던 경험이 역력하게 남아서 빚어진 일들이 아닐까?

지금 차는 홍천과 횡성 사이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삼마치재 터널이다.

 

산에서 당수를 연습하다가 동네 아이한테 목격된 다음 날 밤이다.

달빛 한 점 없이 어두운 그 밤에 동네의 또래 애들 대여섯이 그를 찾아 왔다. 늘 열려 있는 사립문이니 그냥 마당 한복판으로 들어와, 방안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는 그를 부른 것이다.

보옹길아! 보옹길아!”

봉길(鳳吉)이란 다소 촌스런 이름은 그의 아명인데 춘천 집과 여기 충청도 외가에서 쓰이고 있다. 물론 친척 어른들도 그리 부른다. 족보의 항렬을 따라 점잖게 지은 준연(俊淵)’이란 호적상의 이름은 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식적인 공간에서 쓰인다.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보던 만화책을 놓고 일어나려는데 외할머니가 먼저 방문 열고 내다보며 말했다.

우리 봉길이는 왜 찾냐?”

집단으로 위해하려는가 싶어 카랑카랑하게 묻는 말이다. 그러자 동네 애들 중 어제 낮의 그 아이가 방에서 새나오는 백열등 불빛에 제 모습을 드러내며 공손한 어조로 답했다.

물고기 잡으러 같이 가려구야.”

우리 봉길이는…… 공부해야 되는데?”

그런 할머니가 민망스럽게도 그가 실마루로 나서며 말했다.

할머니. 공부는 낮에 다 했어. 쟤네들을 따라가서 물고기 잡는 것 좀 구경하다가 올게.”

그러잖아도 그는 외삼촌의 헌 만화책이나 들척이며 밤 시간을 보내느라 따분했다.

개구리들이 사방에서 와글와글 시끄런 논두렁길.

한 아이가 막대 끝에 낡은 천을 감아 만든 횃불을 쳐들어 앞길을 밝히는 가운데 동네 애들과 그는 행렬을 이루어 강으로 향했다. 어제 낮의 그 아이가 이제 강가에 가면 봉길이가 당수를 보여줄 테니까 잘들 보라구야!’ 연실 떠들었다.

몇 년째 여름방학 때마다 보는 얼굴들이지만 함께 어울리기는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이 날 밤은 신고식이 치러지는 순간이었다. ‘당수 한 번 제대로 보여주자는 생각에 그의 손아귀에 땀이 배었다.

강물이 강바닥의 자갈들에 부딪히며 흐르는 절절절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강가에 도착했다.

횃불이 짙은 어둠을 간신히 밀어내며 만들어낸 일정 부분의 모래밭 공간. 한복판에 그가 대련 자세로 서고, 동네 애들은 넉넉한 거리로 삥 둘러앉았다. 그는 마침내 야압!’ 기합소리를 내며 2단 옆차기를 시연했다. 발이 빠지는 모래밭이라 동작하기가 불편했지만 혼신을 다 해 멋지게 해냈다.

와하!”

동네 애들이 탄성을 질렀다. 우쭐해진 그는 한 번 더 2단 옆차기를 해 보이곤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다른 동작들도 있지만, 이쯤 할게. 다음에 기회가, 다시 있을 때, 그 때 보여줄게.”

한 아이가 말했다.

우리한테 당수 좀 가르쳐 주면 안 되겠냐?”

생각지도 못한 부담스런 요청이다. 그의 당수라는 게 너덧 가지 동작에 불과할 뿐더러 그조차도 창 너머로 익힌 독학이다. 그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도 다른 아이가 그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이런 새끼 같으니라고. 당수 같은 무술은 훤한 낮에 배워야 할 텐데 우리가 낮에 언제 그럴 시간이 있냐? 밭의 김도 매고 논의 피도 뽑고 소 먹일 꼴도 베고 돼지거름도 치고…… 종일 일하다 보면 금방 어두운데 언제 당수를 배워?”

또 다른 아이가 상황을 정리했다.

아니 강에 와서 뭐하는 기야? 빨리 물고기나 잡자고야.”

강이라고는 하나 깊어야 무릎까지 물이 닿는 정도다. 춘천의 소양강에 비하면 강이 아니라 하천이라 불러야 했다. 어쨌든 그는 동네 아이들을 따라 무릎 위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강물로 들어갔다. 물고기 잡기가 시작된 거다. 횃불을 든 아이가 천천히 나아가는 뒤로 따라들 가면서, 눈에 뜨이는 물고기를 손으로 잡는 방식이다. 미꾸라지 꺽지 퉁가리가 느닷없이 어둠 속에 등장한 환한 불빛에 놀라, 마치 강바닥에 얼어붙은 듯 그대로 있었다. 흐르는 물살 아래 그러고 있는 물고기를 손으로 조용히 접근해 움켜쥐면 되었다. 잡는 대로, 한 아이가 든 주전자에 담으며 강바닥을 누볐다.

횃불이 사그라질 즈음에 물고기 잡기를 마치고 강가로 나왔다. 모닥불에 삥 둘러앉아 먹고 마시며 노는 일이 이어졌다. 주전자에 든 물고기들을 한 마리씩 꺼내 밸을 따 날로 먹고는 소주를 마시는 거다. 그는, 불에 구운 것도 아니고 날로 먹는 물고기라 망설였지만 결국은 입안에 넣어 억지로 으직으직씹어 먹고 말았다. 혼자 예외가 되기 어려운, 전체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고소한 물고기 맛이라니! 그 다음, 옆의 아이가 건네는 술병을 받아 병나발을 한 모금 정도 불었더니 이내 취기가 올랐다. 애들이 준비해 온 소주가 댓병으로 다섯 개나 되었다. 취해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부르는 유행가.

사아나이 가아슴에도 눈무울은 있다아. 이이렇게 정을 주우우고 떠어나……’ ‘다앙신과 나아 사이에에 즈어 바다가 읎었다아면 쓰으라린 이벼얼은……’ ‘삼각찌이 로오타리에 궂은비는 오오느은데……

나중에는 합창으로 바뀌었다. 누군가가 내놓은 담뱃갑에서 한 개비씩 꺼내 피워 물자 밤하늘로 어지럽게 흩어지는 허연 담배연기들.

사실, 그는 지난 봄 학교 소풍 때 반 친구가 가방에 숨겨 갖고 온 미제 캔 맥주를 하나 마셔 본 게 음주 경험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렇게 드러내놓고 독한 소주를 연실 마시고 취하기까지 하다니. 어디 그뿐인가, 담배를 피워 보기도 처음이었다. 들이켜 본 담배연기가 매캐해서 눈물 콧물이 다 났지만 그렇다고 모두들 담배 한 대씩 피워 물고 노는 질펀한 자리에서 혼자만 예외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자신을 스스로 깡패들 많은 춘천에서, 당수 1단을 딴 무술 유단자로 포장해 놓았으니, 시골 아이들이 다 하는 술 담배 따위에 쩔쩔 매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터.

술자리가 파할 즈음에 그는 몸을 가누기 힘들게 만취했다. 전 날 산에서 만난 아이의 부축을 받으며 외갓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간신히 떼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변명하기를 잊지 않았다.

아 씨발, 몇 달 만에 술 좀 마셨더니 감당이 안 되네. 씨발.”

춘천이라면 통금 사이렌이 늑대처럼 으허어헝 하고 울었을 늦은 밤인데 충청도 시골에서는 그저 논 개구리들 울음소리만 성할 뿐이었다.

아이고, 이 놈이 꼭 용석이가 방학 때마다 하던 짓을 고대로 하네!”

집 마당까지 부축해 준 아이는 슬그머니 달아났고 그가 혼자 비틀비틀 토단에 올라설 때, 방문 열고 지켜보던 외할머니가 속상해 내뱉은 말씀이다.

용석이란 그의 하나뿐인 외삼촌이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닌다는데, 학창 시절에 방학만 되면 집에 내려와서 외할머니 속깨나 썩혔다던가 했다. 100여 리 떨어진 충주 시내에서 자취하며 고등학교를 다녔다니, 용석이 외삼촌도 고향 마을의 또래들 중에서는 유일한 고등학생이 아니었을까? 춘천에서 온 봉길이 조카처럼 말이다. 그가 희망리 마을 애들의 두목처럼 행세하게 된 것은 춘천에서 당수 1단을 땄다는 위세도 한몫했겠지만 당시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고등학생 신분이었다는 게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시골 애들은 집에서 일꾼처럼 지내는 자신과 다르게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 신분의 또래를 선망했다. 드러내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이래저래 그는 그 날 밤 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도될 수밖에 없었다.

 

새삼 놀라운 사실은 시골 동네 애들이 술 담배에 아주 능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하는 경험수준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는 사실상 어른 세계에 진입한 애들이었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옆 동네의 여자애와 가끔씩 그 짓을 한다고도 했다. 동네의 담뱃잎건조장이 그런 장소로 쓰인다나. 손으로 하는 수음이 고작인 그로서는, 그 얘기를 듣던 순간 열패감에 기가 죽었다. 그러나 춘천에 있는 양공주 촌에 가면 말이야하며,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사실은 자기도 주워들었던 음담을 질펀하게 늘어놓으며 괜한 허풍을 떨었다. 그러면서 가슴 한 편으로는 영 편치 않은 양심이었다.

시골 애들이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나오는 인물처럼 이중성을 가졌던 게 아닐까도 싶지만, 그건 아니었다.

술 담배 문제만 해도 그렇다. 종일 고된 농사일을 하다가 밤이 되어야 가까스로 쉬는 그 애들한테 딱히 무슨 낙이 있었을까. 동네에서 외진 데로 나가 술 담배로 낙을 삼을 수밖에. 텔레비전도 없고 기껏해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따라 배우는 게 유행의 첨단을 따라가는 거라 여기며 살았을 그 시절 충청북도 음성군 운포면에서야. 하긴, 춘천 같은 도시에서도 텔레비전은 잘 사는 집에나 있는 고가품이었다.

옆 동네의 여자애와 가끔씩 몰래 그 짓을 한다는 애의 경우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어른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질서에 용인되지 않을 뿐이지, 딱히 나쁜 짓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강간이나 간통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혹 여자 애가 임신하는 일이 발생하면 얼마 후에는 마을회관에서 결혼식이 치러지고 한 쌍의 농사꾼 부부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담뱃잎건조장 같은 은밀한 곳에서 그 아이가 남몰래그러면서 지내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야 했다.

 

당시의 시골 애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해 보지만, 솔직히, 평온한 시골 풍경 속의 애들은 뜻밖에도 까부라진 애들이었고 반대로 깡패들도 널려 있는 대단한 도시 춘천에서 내려온 그 자신은 실상은 순박한 고등학생이었을 거라는 기묘한 의구심을 어쩔 수 없다. 수음하는 게 고작인 성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소주니 담배니 모두 그 시골동네에서 처음 경험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춘천 시내의 서쪽 끝에 위치한 고등학교와 봉의산 바로 아래 달동네에 있는 그의 집 사이의 거리가 십 리 가까이 되었다. 십 리 되는 거리를 매일같이 걸어서 등하교를 하느라 경황이 없는데 언제 술 담배를 배우고 유행가까지 배울 텐가.

아무튼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이상한 조합이었다. ‘충청도 시골의 까부라진 애들과 춘천에서 온 순박한 봉길이가 함께 어울리는 1968년 한여름의 조합 말이다.

 

남원주 휴게소간판이 보인다. 그는 차의 속도를 바짝 낮추어 휴게소 내 광장으로 진입했다. 주차돼 있는 차들이 많지 않다. 평일이기도 하지만 재작년, 원주에 사는 처남 집에 가다가 잠깐 들렀을 때에도 주차된 차들이 별로 없었다. 편히 쉬고 갈 만하다.

화장실에 들른 뒤 휴게실 앞 빈 벤치에 앉았다. 춘천에서 여기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 시간 남짓해 음성군 운포면에 닿지 않을까?

한창 젊었을 때에 여행길에 나섰다면, 보통 서너 시간은 운전대를 잡고 달리다가 휴게소에서 쉬었다. 이제는 그러기 힘들다. 오줌을 참기도 어렵거니와 몸도 힘들어서 한 시간 정도 운전하면 피로하다. 여기서 10여 분 쉬고 가자. 인근 산의 빛깔도 이미 단풍 빛은 보이지 않는다. 벌써 초겨울로 들어서려는 늦가을이다. 용석이 삼촌도 세상을 떴다. 3년 전이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뜬 지는 20년 가까이 된다.

 

동네 애들과 밤에 강가에서 어울린 날을 계기로 순식간에 친해졌다. 이제는 이틀에 하루 꼴로 밤에 만나 늦도록 어울리는 것이다.

어울리기에는 일정한 룰이 있었다. 우선은, 반드시 저녁밥을 먹고 난 밤 시간에 한했다. ‘AW메들리 참고서를 다섯 페이지 떼고, 당수 수련을 한 시간쯤 하고나면 닭장 청소 같은 소소한 일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는 그와 달리, 동네 애들은 해만 뜨면 잠시도 쉴 새 없이 집안농사일을 돕다가 해가 진 뒤에야 비로소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자식을 낳으면 초등학교까지만 가르치고 그 후로는 집안농사일을 거들게 하다가 장가나 보내면 된다는 게 당시 농촌 부모들의 생각 같았다.

두 번째 룰은, 모여서 놀 때는 반드시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동네 어르신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달동네도 있고 깡패들도 널려 있는 도시 춘천과 달리 충청북도 음성군 운포면 희망리는 전형적인, 조용한 농촌이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이라 그런지 서너 채의 기와집 외에는 초가집들이 대부분인 고즈넉한 풍경으로서 전통적인 유교적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젊은 놈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떠들썩하게 노는 모습을 동네 어르신들에게 절대 보여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그는 단순히 춘천에서 내려온 봉길이가 아니라 남다른 당수 실력까지 갖추고서 춘천에서 내려온 고등학생 봉길이로서, 이틀에 하루 꼴로 밤마다 동네 애들과 무리지어 강가로, 먼 동네로 여기저기 놀러 다니게 된 것이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동네 애들이 시오 리 떨어진 먼 동네까지 원정 다녀오는 일은, 그와 어울리면서부터였다. 전에는 동네에 있는 강가에서 놀다 오는 게 고작이었는데 대단한 봉길이와 어울리게 되자 그 후로는 원정도 다니며 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원정지는 운포면의 면소재지 동네였다. 희망리에서 신작로를 따라 서남 방향으로 시오 리 걸어가면 나타나는 면 소재지 동네. 작은 규모이지만 우체국도 있고 약방이니 철물점이니 줄지어 있어서, 나름대로 시가지였다. 그래서일까, 희망리 애들보다 확실히 눈매 사나운 또래 애들이 어슬렁거리며 텃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희망리 애들은 어쩌다, 닷새에 한 번 면소재지 장거리에서 열리는 장날에 가도 눈을 아래로 깔고 조심스레 다녔단다.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깡패들이 널린 춘천에서, 당수 1단을 따고 온 고등학생 봉길이가 자기들과 함께 있으니!

밤이 되면 봉길이를 앞세워 흙먼지 날리고 자갈들도 많은 신작로를 시오 리나 걸어가 면소재지 동네를 괜히 한 바퀴 돈 뒤, 구멍가게에서 소주와 담배도 사고는 다시 희망리로 귀가하는 것이다. 귀가할 때도 조용하지 않았다. 신작로를 독차지한 듯 무리지어 걸어오면서 소주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유행가도 고래고래 불렀다.

그러다가 한 작은 사건이 있었다. 이 작은 사건이 그날 밤 사건의 도화선이다. 취해서들 희망리로 돌아오다가 나지막한 고개에 다다랐을 때, 한 아이가 그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것이다.

봉길아. 우리는 길가 숲에 숨어 있을 테니까, 니가 당수로 한 번, 고개를 넘어오는 놈을 아무나 한 놈 잡아 솜씨 좀 보여주라야.”

그런 부탁이 나올 만했다. 그 날 밤까지 몇 번이나 면소재지 동네를 휘젓다가 왔으나 특별한 사건도 없었던 데다가, 오랜만에 봉길이의 당수 실력을 다시 보고도 싶었다. 모처럼의 부탁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작로 변에 폼 잡고 서서 고개 너머에서 나타날 누군가를 기다렸다. 물론 동네 애들은 근처 숲속에 숨었다. 달빛이 제법 훤하게 살아난 밤이다.

처음 강가에서 신고식을 치르던 날 밤은 달빛 하나 없던 그믐밤이었지만 이 날 밤은 열흘 정도 지나 달빛이 어지간히 살아난 상현달 밤이었다. 팔자걸음으로 고개 너머에서 나타난 사내가, 그가 난데없이 앞길을 가로막으며 멱살을 쥐자 !’ 하며 기겁한 표정이 달빛에 역력하게 드러난 건 그 때문이다.

, 이 새끼야! , 춘천에서 온 봉길이 알아?”

, 아뇨!.”

이런 씨발 놈이!”

사실 말도 안 되는 시비 걸기다. 그는 놀라 와들와들 떠는 사내의 멱살을 풀어주는가 싶다가 순간 오른발로 후려차기를 강행했다. 세찬 발길에 상체를 맞고는 그대로 나갔다떨어지는 사내.

아이구야, 사람 살려라!”

엉금엉금 기다 일어나 소리 지르며 달아났다. 얼마나 다급한지, 신었던 흰 고무신들까지 벗겨져 사방으로 날아갔다.

 

10분 넘게 벤치에 앉아 있었다. 햇빛은 화창하지만 그늘진 곳은 한기가 역력하다.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차로 갔다.

그 새 뜨겁게 달궈진 차 안의 공기. 다시 조수석 옆 창을 열려고 버튼을 눌렀는데, 이런, 창이 내려오다가 멈췄다.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다시 버튼을 눌러도 별 변화가 없다.

젠장!’

천생, 나중에 춘천 가서 아는 카센터에 맡겨야 할 듯싶다. 이런 잔 고장이 처음은 아니다. 이 차를 구입한 지 10년이 넘었으니. 그는 하는 수 없이 조수석 쪽 창이 반쯤 내려진 채로 주차장을 떠났다. 여기 남원주 휴게소에서 제천까지는 30분 정도 걸릴 듯싶다.

 

고개 너머에서 한 사내를 보기 좋게 후려차기로 해 치운 사건 후로 그는 마치, 몇 십 년 뒤 TV 인기 드라마 야인시대의 주인공 김두한처럼 되고 말았다. 괜히 사나운 눈매로, 무리의 한가운데에서 무리와 함께 천천히 걸어가는 우두머리 모습이랄까.

희망리 애들과 그는 무리지어 신작로 시오 리를 걸어 면소재지 동네에 일단, 도착한다. 어깨에 힘들 주고서 짧은 시가지를 두어 번 돌고,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구멍가게에 들러 소주와 담배를 산 뒤 다시 희망리를 향해 신작로 길을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다. 물론 모두 소주에 취해 유행가도 부르고 담배도 피우면서 나름대로 향락을 즐긴다.

춘천이었다면 통금에 걸려서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을 밤늦은 시간대였다. 하지만 다행히 충청북도에는 통금이 없었다. 정부에서 제주도와 함께 통금이 없는 지역으로 공포한 덕분이었다. 섬나라인 제주도처럼 충청북도도 치안유지가 잘 되는 순박한 사람들의 지역이라고 정부에서 판단한 걸까.

그가 춘천에 있었더라면 늑대처럼 으허허어엉!’ 음산하게 우는 통금 사이렌 소리에 쫓겼을 텐데 그럴 일 없는 충청북도라니, 얼마나 여유로운 밤 시간인가. 그를 우두머리로 한 희망리 애들의 밤 시간 즐기기가 날로 성해진 건 그 때문일 게다.

그러면서 춘천에서 당수 배운 봉길이란 학생이 왔다는 소문이 일대에 확 퍼진 듯싶다. 워낙 좁고 평온한 시골바닥이기에 소문이 도는 건 순식간이다. 그 결과 그에게 업보처럼 위기가 다가왔다.

그가 어언 45년 간 충청북도 외가 쪽 동네와 인연이라도 끊듯이 발길을 끊게 된 직접적 원인으로서 그날 밤 사건이 다가왔다. 면소재지 동네에서 청주의 모 고등학교로 유학 간 녀석이 있는데 방학이라 집에 왔다가 춘천에서 온, 당수 배운 봉길이소문을 듣게 된 게 그날 밤 사건의 시발점이다. 공교롭게도 녀석은 청주 시내에 있는 당수 도장에서 2단을 딴, 제대로 된 당수 유단자였다.

, 춘천에서 당수를 배운 봉길이란 놈이 툭하면 밤에 여기까지 와 설치다가 간다고? 어디 그럼, 내가 한 번 손봐줄까?”

그런 말을 녀석이 면소재지 친구들한테 내뱉더니 다음 날에는 조금 말이 달라졌단다.

이런 기회에 춘천 당수와 청주 당수가 어느 쪽인 더 센지, 대련 한 번 정식으로 붙어보는 게 좋지 않겠어?”

청주 녀석의 두 번째 발언을 그는 분석해 봤다. 녀석도 마음 한 편으로는 불안한 구석이 있다는 게 아닐까? 뒤늦게, ‘춘천이 깡패들 많은 군사도시라는데 거기서 온 봉길이라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만했다. 더구나 부근 신작로 고개에서 춘천에서 온 봉길이한테 봉변을 당했다는 사람의 소문까지 들었을 테니. 녀석이 고심 끝에, 부담스런 막싸움 형태보다 무술인들의 반듯한 대결 형태로 승부 짓는 게 낫겠다며 신중한 도전장을 보낸 셈이다.

 

 

녀석의 대련 제안도전장이 하루 만에 그에게 전해졌다. 문서가 아니라 지인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 구두 도전장이다.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희망리 애들의 우두머리로 으스대며 지내느라 재미있는 날들이 순간 허풍 짓으로 들통 날 위기다.

어떡하나?’

달리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동네 애들한테 이제는 그 먼 면소재지 동네에 가지 말고 예전처럼 가까운 강에 가서 놀다 오자고 제안하고 싶었지만 이미 동네 애들은 과연 청주 당수와 춘천 당수가 맞붙으면 어느 쪽이 이길까?’하는 호기심 내지 설렘마저 생겨나, 돌이킬 수 없는 사태였다.

 

동네 애들이 소 먹일 꼴을 마련하고 돼지 똥을 치우고, 논의 피도 뽑고, 담배 밭의 김도 매고 그러는 땡볕의 낮 시간에 그는 외갓집의 윗방에 누워 이런저런 궁리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루에 다섯 페이지씩 잘 나가던 ‘AW메들리영어 공부도 중단됐다.

당수 2단 녀석과 며칠 안 돼 맞닥뜨릴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묘안이 나질 않는 것이다. 물론 녀석의 빠른 시일 내 날을 잡아 대련하자는 제안은 일단 얼버무렸다.

그 새끼, 내가 뭐 한가한 줄 알고 빠른 시일 내에? 웃기고 자빠졌네. 언제고 나중에 한 번은 만나겠지. 그 때 한판 붙으면 되는 거지, 안 그래?”

호쾌한 답변을 기대한 동네 아이가 조금은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 놓고는 혼자 윗방에 누워 고민하고 있다. 외할머니는 안방을 쓰고 그는 외삼촌이 쓰던 윗방을 쓰고 있다. 윗방에는 외삼촌이 보던 만화책이니 연애소설책이니, 누렇게 빛바랜 책들이 널려 있다.

액션영화의 한 장면처럼 녀석을 찾아가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드리면서 제가 당수 1단이니까 어디 형님한테 대적이 되겠습니까? 하며 위기를 모면할까?’ ‘아니 그건 너무도 비참한 꼴이다. 만일 그랬다가는 나를 믿고 따르던 희망리 애들한테도 업신여김을 당해, 다시는 방학 때 외가로 놀러오지 못하는 딱한 꼴이 될 거다.’ ‘무슨 소리야? 살고 봐야지. 까짓 거, 매 맞아 죽고 나면 누가 알아나 주나? 괜한 외할머니만 고생바가지를 쓰는 거지. 외손주 장례를 치르느라고 말이다.’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 까짓 새끼, 칼 하나 품고 갔다가 싸움이 붙으면 그 칼을 휘두르면서 맞서는 거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래, 고작 당수 대련 한 번 하고 나면 그만인 것을 칼까지 갖고 가 난리친다고? 호적에 빨간 줄 갈 일이 있어?’

비좁은 춘천 집의 뒤란과 여기 뒷동산 숲에서 익힌 독학 당수갖고는 청주에서 정식으로 당수 도장을 다니며 2단을 땄다는 녀석한테 도저히, 대적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개학날이나 가까웠다면 어서 춘천 집으로 가서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짐을 싸서 새벽같이 버스 타고 달아났을 텐데, 개학날이 열흘이나 남았으니 그것도 마땅치 않고.

에라 모르겠다. 죽이 되나 밥이 되나 부딪쳐 볼 수밖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긴소매남방을 걸치고는 방에서 나왔다. 외할머니가 돼지 울에 붙어 서서, 팔자 좋게 바닥에 누운 돼지들의 몸을 작대기로 벅벅 긁어주고 있었다. 그래야 돼지 몸에 붙은 벌거지도 떨어지고, 잘 자란다는 얘기를 그는 들은 듯싶다.

돼지 울 앞을 지나 사립문밖으로 나가는 그를 외할머니가 불러 세웠다.

봉길아…… 차려 놓은 점심도 안 먹고 어딜 가는 기야?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더니만.”

밥 먹는 게 뭐 그리 중요해? , 당수 연습하러 가는 것, 옷을 보면 몰라?”

 

차는 조수석 창이 반쯤 열린 채 제천의 외곽도로를 지나고 있다.

그나마 창이 반 내린 정도에서 고장 나길 다행이다. 쌀쌀한 바깥 기운과 화창한 햇빛이 만들어낸 실내의 뜨거운 기운이 뒤섞이면서 적절한 실내 기온을 만드는 것 같다.

남제천 인터체인지에 다다랐다. 톨게이트를 통과한 뒤 그는 내비게이션을 간간이 보며 국도로 들어섰다. 30분 이내로 음성군 운포면에 도착할 것 같다. 내비게이션 지도에는 운포면 면소재지를 경유해 희망리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루 종일 청주 녀석에 대한 대책에 골몰하다가 맞이한 그 날 밤이다.

45년이나 흘렀는데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사건을 저지른 그날 밤이다. 보름달이 훤하게 떠 있었다. 동네 애들이 어김없이 외갓집 마당에 들어와 그를 불렀다.

, , !”

몸이 안 좋아서 오늘은 집에 있어야겠다고 둘러댈까궁리하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어이!’ 응답하며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이틀에 하루 꼴로 애들이 찾아와 , , 부르고, 그러면 어이대답하고 나가는 변함없는 반복이 조건반사 같은 결과를 빚은 게 아닐까? 아니면 될 대로 되겠지하는 체념이었을까?

어쨌든 그는 별나게 보름달까지 환하게 뜬 그날 밤, 동네 애들과 유행가들을 부르며 신작로를 걸어갔다. 그저께 밤에 마시다 남긴 소주 댓병을 찾아, 두어 모금씩 돌아가며 마셨으므로 유행가가 안 나올 수 없다.

사아나이 가슴에도오 눈물으은 이있다아 이이렇게 정을 두우고 떠어나아 가알 바에……

면소재지 동네로 가는 신작로의 중간쯤 왔을 때다. 멀리, 거뭇한 움직임이 있더니 서서히 사람들 무리로 드러났고, 거리가 좁혀지자 무리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면소재지 애들로 보이는 대여섯 명 가운데에 학생모를 쓴, 키가 다른 애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아이가 있었다.

청주에서 온 녀석이구나.’

이런 순간을 예상하며 지낸 때문일까? 뜻밖에 그는 마음이 가라앉듯, 차분해져 스스로 놀랐다.

약속이라도 한 듯 양 쪽이 약 3미터 거리를 두고 멈추어 섰다. 무심한 풀벌레 울음소리만이 존재하는 침묵을, 그 쪽 무리에서 키 작은 아이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깨뜨렸다.

그래, 춘천에서 왔다는 그 대단한 봉길이가, 여기 있냐?”

그 아이는 청주에서 온 녀석 옆에 서 있다가 앞으로 나선 것이다. 빈정거리는 어조인 게 춘천 당수와 청주 당수의 대련을 이 자리에서 이끌어내려고 시비 거는 역이다.

그래, 난데?”

하면서 그도 아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아이가 헤헤웃음을 흘리며 한층 빈정거리는 어조로 그래, 당수 실력이하는 순간 그는 얼굴 정면을 주먹으로 냅다 갈겼다. 있는 힘을 다한 단 한 번의 가격에 아이는 어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 떨어졌다. 정확히는, 뒤로 서너 걸음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신작로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잠시 후 엉거주춤 간신히 일어난 아이. 한 손으로 코 부분을 막고 섰지만 신작로 바닥으로 무슨 액체가 툭, , 툭 떨어지는 게 아무래도 코피가 터진 듯싶었다. 급히 지혈을 돕느라 면소재지 동네 애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그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그는 기세 높여 씨부렁거렸다.

이런 씨팔 놈의 새끼가 얻따 대고 까불어! 에이 썅, 죽여 버릴까 보다.”

그러면서 아이 쪽으로 나아가려 하자, 희망리 애들이 다행히도그의 양 팔을 붙잡았다.

그만 참아, 봉길아.”

순식간에 벌어진 눈앞의 참사에 놀란 청주 당수 녀석. 못 이기는 체 양팔이 붙잡혀 있는 그를 향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공손하게, 그러나 애써 품위를 잃지 않으려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씨. 반갑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왔거든요.”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도 양팔을 애들한테서 뗀 뒤 손을 내밀어 악수했는데 정말, 남은 힘 모두를 모아 내민 손이며 악수였다. 방금 전 아이를 가격한 순간 그의 주먹도 심하게 다쳤기 때문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귀가해서 그 손을 살펴봤더니 온통 시커멓게 멍 든 데다가 새끼손가락은 뼈까지 휘어있었다. 만일 청주에서 온 녀석이 맞은 아이의 복수를 하겠다며 그 자리에서 당수 대련을 청했더라면 그는 꼼짝 못하고 자기 제삿날을 만들 뻔했다.

악수한 채로 청주 녀석이 말을 이었다.

저도 당수를 배웠거든요. 2단입니다.”

나도 당수를 배우긴 했는데, , 그깟 당수 백 날 배워 봤자, 구찌로 찌르면 말짱 꽝 아닌가? 아니, 역도산이 당수를 못해서 죽었나? 안 그래, 형씨?”

구찌란 깡패들이 쓰는 은어로 칼을 뜻한다. 몇 년 전, ‘역도산이라는 재일교포 출신의 유명한 프로레슬러가 일본 조무래기 깡패의 칼에 찔려 허무하게 죽은 사건이 있었다. 레슬링 경기 때마다 당수 기술을 사용해 승리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의 허망한 피살은 아니, 역도산이 당수를 못해 죽었나?’하는 음산한 유행어를 낳고 말았다. 내게 칼이 있으니 함부로 덤비지 말라는 위협에 다름 아니다.

청주 당수 녀석은 기겁해서 침묵했다가, 손수건으로 코피를 막느라 경황없는 키 작은 아이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탁 치며 말했다.

야이, 새끼야. 니가 잘못한 거야. 저 분한테 사과해.”

키 작은 아이가 왼손은 코피를 막으며 오른손을 내밀어 그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말없이 고개를 한 번 꾸벅였다. 그는 몹시 아픈 손으로 다시 악수하면서, 그 아이가 코피만 터진 게 아니라 앞니도 몇 대 나갔음을 눈치 챘다. 코뿐만 아니라 입 부분도 온통 피투성이가 돼버렸기 때문에 아이는 입으로 사과의 말도 못하고 고개만 꾸벅인 것이다. 그는 이거, 내가 간단치 않은 사고를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으나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일인 것처럼 넘어갈 수도 없었다. 짧은 시간에 정이라도 든 듯 그는 어울리지 않게, 측은히 여기는 따듯한 음성으로 물었다.

많이 아파?”

그러자 아이는 손수건을 잠깐 떼고는 입을 다쳐 제대로 되지 않는 발음으로 겨우 답했다.

……찮아.”

주먹 한 방에 망신창이가 되었으나 애써 사나이의 담대한 기개를 잃지 않는, 딱한 아이였다.

그는 이번에는 청주 녀석한테 아픈 자기 손의 고통을 숨기며 다시 악수를 청한 뒤 말했다.

다음에 봅시다. 그 때, 따로 둘이서 소주 한 병 까자고.”

그런 뒤, ‘춘천에서 온 봉길이의 대단한 당수 실력과 그에 따른 호걸스런 마무리에 존경의 염까지 생긴 희망리 시골 애들을 뒤돌아보며 말했다.

씨발 피 봤으니, 오늘 밤 기분도 좆같고. , 그냥 우리 동네로 되돌아가자고.”

 

돌이켜보면 사건을 저지른 그날 밤자기가 얼마나 기민하게 대처했는지, 스스로도 놀랍다.

요즈음 애들이 잘 쓰는 말로 자뻑이라 해도 좋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예순세 살 평생에서 1968년 여름날 달밤에 충북 음성군 운포면 희망리 신작로에서 벌인 그 사건만큼 온몸의 피를 끓게 만든 사건도 없었다. 차를 몰고 운포면에 다가가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말이다.

이제 그는 다소 어법에 맞지 않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 그 날 밤 내가 그 위기를 기민하게 잘 대처했을까?’

……당시 그의 나이 18세였다. 그 나이는 인생에서 가장 신체기능이 좋은 나이다. 많은 학자들이 인간은 사춘기 때 몸의 기능이 가장 왕성하다고 진술한다. 1968년 여름 밤, 그는 왕성한 자신의 갖가지 기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마치 한 마리의 팔팔한 수컷늑대처럼.

키 작은 아이가 시비를 걸어왔을 때 채 말도 끝나기 전에 주먹으로 가격한 사실 하나만 봐도 그런 기능의 유감없는 발휘였다. 왜냐면, 그는 본능적으로 이 순간 이 아이를 공격하지 못하면 내가 당한다. 허를 찔러야 내가 이길 수 있다.’ 판단했고 그 판단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만일 키 작은 아이가 시비를 거는 대로 그들의 작전에 휘말렸다면 그는 청주 녀석한테 엄청 맞고 터지는 결과를 낳으면서 1968년 여름은 그에게 인생 최악의 여름으로 남았을 게다.

그가 2단 옆차기 동작을 활용하지 않고 극히 단순한 동작인 정권 치기’, 즉 주먹으로 그 아이의 얼굴을 가격한 것 또한 아주 적절했다. 왜냐면 2단 옆차기는 화려하고 멋진 동작이긴 하지만 반드시 일정 거리가 확보되어야 하고 준비자세도 갖춰야 했다. 따라서 키 작은 아이가 바짝 다가서며 시비를 걸던 순간에는 결코 적합한 대응동작이 못 되었다. 평범하고 단순한 정권 치기야말로 그 순간 절묘한 선택이었다. 아이가 가격을 당하자마자 무참하게 쓰러지던 모습이 그를 입증한다.

싸움이 끝난 자리를 더 잇지 않고 씨발 피 봤으니, 오늘 밤 기분도 좆같고. , 그냥 우리 동네로 되돌아가자고.’ 며 마무리한 것도 잘한 일이었다. 괜히 머뭇대고 시간을 끌어봤자, 하나도 좋을 게 없었다. 청주 당수 녀석이 뒤늦게 친선경기 한다 치고 당수 대련을 한 번 합시다고 제안한다면 간신히 가라앉힌 재앙이 되살아나 지옥이 될 게 뻔했다. 게다가 키 작은 아이가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연실 닦고 있었으니, 잠시라도 그 자리에 더 머물러서는 안 되었다.

 

그의 차는 마침내 운포면 희망리 마을로 가는 도로로 들어섰다. 방금 전 운포면 면소재지 동네 가까이 다다랐지만 외곽도로로 그냥 지나쳐 온 거다.

자갈 많고 먼지 나던 신작로가 아닌 깨끗한 아스팔트길이다. 그런데 다른 차들도 없이 한적한 길이라 그는 차의 속도를 시속 40키로 정도로 낮추었다.

웬 사내의 멱살을 쥐고 , 이 새끼야! , 춘천에서 온 봉길이 알아?’하고는 냅다 발로 후려차기를 했던 고개가…… 없어진 듯싶다. 고백하건대 달빛에 드러난, 놀란 사내의 얼굴은 최소한 30대는 돼 보였다. 나이도 열 살 이상 될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다.

운이 좋았다. 만일 사내가 면소재지 파출소로 달려가 춘천에서 온 봉길이란 깡패한테 봉변을 당했다고 신고했더라면 어찌 될 뻔했나? 하마터면, 다음 날 저녁쯤 외갓집에 나타난 경찰관에 체포되어 충주나 청주 같은 대도시의 경찰서로 이송되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는데, 그건 사내가 하마터먼 맞아죽을 뻔했는데 운 좋게 살았다!’며 안도의 숨이나 쉬고 만 덕분이 아닐까?

그리고, 코피가 터진 것은 둘째 치고 앞니가 몇 대 나갔을 키 작은 아이.

다행히 그 아이도 사나이끼리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끝까지 애써 담대한 자세를 유지한 게 아니었을까?

운포면 내에는 마땅한 치과도 없었을 테니 하는 수 없이 충주나 청주의 치과를 다니면서 의치를 해 넣느라 고생이 많았을 게다. 요즈음같이 인정 삭막한 시대에는 결코 있을 수 없는 키 작은 아이의 담대함이었다. 그 아이한테 지금이라도 고마워해야 한다.

그의 차가 어느 새 희망리 앞에 다다랐다. ‘희망리란 글자가 새겨진 큰 바위가 동네 어귀에 서 있다. 그 바위가 아니더라도 버스 정류장 역할 하던 도로 변 구멍가게집이 허름하나마 남아 있어서 희망리 어귀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시에 동네 통 털어서 하나뿐이던 그 가게가 이제는 널빤지 여러 장으로 전면을 폐쇄해 버린 폐가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바위 옆에 차를 세웠다.

, 그 날 밤 사건의 현장은 언제 지나쳤을까? 험한 신작로 대신 말끔한 아스팔트길로, 차로 5분여 만에 도착하는 바람에 그날 밤 사건의 현장을 휙 지나치고 만 것 같다. 우선은 외갓집부터 가 보고, 다시 돌아갈 때 사건 현장을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 예전의 굽이 많던 신작로를 바로 펴면서 아스팔트길로 만들어 놓아, 과연 그 현장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동네 안 길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놀랍게도 예전의 즐비했던 집들이 대부분 사라진 풍경이다. 새마을운동으로 철거됐을 그 많던 초가집들은 그렇다 치고 몇 안 되던 기와집마저 빈 터로 남았거나 농촌주택이라는 표준형 단층 건물로 변해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사람이 사는 주택보다 조립식 창고나 비닐하우스가 더 많아 보이는 동네다.

농촌 사람들 대부분 도시로 나가면서 농촌이 황폐화된다는 뉴스 보도를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듯한데, 45년 전 사건 다음 날새벽에 마지막으로 본 정겹던 풍경이 이렇게 황폐화되었을 줄이야.

45년 전 새벽이다. 그는 책가방 짐을 싼 뒤 외할머니를 찾았다. 외할머니는 새벽부터 부엌 바닥에 앉아 옥수수 껍질들을 벗기고 있었다. 젊어서 남편을 여의고 하나 남은 외동아들 용석 아재를 충주의 모 고등학교에 유학까지 보낸 정성은 그렇듯 항시 변함이 없었다.

할머니, 나 춘천 가야 해, 차비 좀 줘.”

갑작스레 나타난 외손주에 놀란 외할머니. 주름살 가득한 얼굴로 옥수수 껍질 벗기기도 멈추고, 그냥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개학하자마자 학교에서 시험을 본다는데 그걸 깜빡 잊었어. 어서 집에 가서 공부해야 돼.”

외할머니는 허리를 천천히 펴며 일어나더니 당신의 허리춤에서 비닐로 돌돌 싼 작은 돈뭉치를 꺼냈다.

차비 하고…… 남은 거는 니 에미한테 줘라. 아니 그런데 손이 왜 퉁퉁 부었냐?”

어제 벌에 쏘였어.”

그럼 된장이라도 발라야제.”

괜찮아. 가다 약방 들를게.”

그는 그 길로 외갓집을 나왔다. 먼동이 트는 새벽에 동네 안 길이 아닌, 뒷동산 오솔길로 해서 동네를 떠났다. 외할머니 말고는 아무도 그의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전 날 밤 저지른 일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전개될 듯싶은 불길한 예감에 밤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그렇듯 춘천으로 새벽같이 달아나는 방법을 택했다. 개학은 아직도 열흘이나 남았다. 뒷동산을 넘을 때 그는 왠지 외갓집에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잠깐 멈춰 서서 외갓집을 비롯한 희망리 온 동네를 돌아보았다.

‘“꼬끼요오!”

닭울음소리들이 여기저기 나며, 굴뚝들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밥 짓는 연기들. 초가집들 사이로 드문드문 기와집이 있는 그 평온한 풍경.

그의 황급한 처지와 비교되던 평온한 풍경이라니…….

그 후 그는 왠지 외갓집에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장장 45년간이나 발길을 끊었다.

이듬해는 고 3이 되면서 대입예비고사 공부를 하느라 바빴고, 그 이듬해에는 학비가 저렴한 사범대학에 들어가 미팅하고 데이트하고 실연도 하고 그러느라 경황이 없었다. 그러면서 외갓집은 추억 혹은 기억 속의 무엇이 되었다.

솔직히 마음만 먹었다면 외갓집에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한테 주먹을 맞고서 앞니들이 다 나간, 망신창이가 된 키 작은 아이가 마음에 걸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뒤늦게 그 날 밤 사건을 문제 삼을 것 같은 두려움이랄까.

그는 낡은 기억을 뒤지듯, 동네 골목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골목이라면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길을 뜻하는데 동네가 황폐화된 지금 골목이란 표현이 합당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 휴대폰이 부으응!’ 울었다. 아내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차에쥐색빛깔지갑있나확인바람

쥐색빛깔지갑이라면 아내가 성당 갈 때마다 지참하는 돈지갑이다. 그걸 차 안 어디에 둔 모양이다.

이런 칠칠치 못한 여편네 같으니라고. 백 날 콩나물 값 몇 푼을 깎으면 뭐해? 돈지갑도 잊고 다니면서……!’ 속으로 발칵 욕하던 그는 돌연 발걸음을 돌렸다. 조금만 골목을 더 걸으면 외갓집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할 수 있지만 그건 지금 중요치 않다. ‘희망리바위 있는 데로 황급히 걷는데, 조수석 창이 고장 나서 반쯤 열어둔 차 생각이 퍼뜩 났기 때문이다. 인적도 그친 동네처럼 보이지만,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 조수석 창 안으로 손을 넣어 차 문을 연 뒤, 돈지갑을 갖고 갈 수 있다.

황급히 뛰어갔더니, 늦가을 햇살 아래 차는 그대로 있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움직임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불편한 차 실내에서 몸을 사방으로 움직여가며 쥐색빛깔 지갑을 찾았다. 없었다. 글러브 박스는 물론이고, 의자 뒤의 주머니 닮은 부분의 속과 의자 밑까지 샅샅이 살폈으나 그 지갑을 찾을 수 없었다.

모자란 여편네 같으니라고. 대체 어디다 흘린 거야.’

마지막으로 트렁크를 뒤져볼 생각에 차 밖으로 나왔는데 그 때 조수석 쪽의 창유리가 푸르륵소리를 내며 아래로 내려졌다. 반 정도 열려 있던 게 이제는 활짝 열린 꼴이다. 장만한 지 10년 넘었음을 어김없이 증명하는 고물차다.

이제 어떻게 한다? 이대로 400리 길을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만일 그랬다가는 꼴불견도 그렇지만, 차 안으로 들이치는 쌀쌀한 바람을 세 시간이나 감당해야 한다. 그건 못할 짓이다. 천생, 카센터라도 찾아, 어서 해결하자. 그러려면 면소재지로 가 볼 수밖에.’

그는 아까 오던 아스팔트길로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45년 전 그날 밤 사건의 현장이고 뭐고 차창 고장을 수리하는 일이 급하다.

면소재지 동네에 도착했다. 희망리와는 다르게 제법 번듯한 건물들이 들어선 장거리. 약국, 다방, 당구장, 철물점, 농협 하나로마트, 우체국…… 인적은 뜸하지만 있어야 할 건물들이 작은 규모로 존재하고 있다. 마침내 우정 카센터란 간판의 조립식 건물을 만났다.

차를 건물 앞에 세우자 키 작은, 때에 전 가죽점퍼 차림의 사내가 안쪽의 작은 사무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나 참! 조수석 창유리가 내려가서는 안 올라오거든요.”

고치는 데 시간 좀 걸릴 것 같은데

오늘 중으로야 수리되겠죠?”

그 말에 사내가 입을 벌리고 헤헤 웃는데 앞니 모두가 누런 금니였다. 작은 키에 앞니를 다 간 사내……. 그는 억지로 따라 웃으며 등허리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 때 성가시게도 휴대폰이 또 부응울었다. 아내가 다시 보낸 문자메시지.

찬미예수님지갑주방에서찾았어미안해당신지금어딨어?’

이럴 때 답신이 가능할까?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것 같다는 이상한 답신이 아내에게 가능할까? 그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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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 동안 별 일 없었니? 으응 별 일 없었다고? 나는 별 일이…… 있었는데. 그 별 일을 얘기해 줄까?

이 얘기는 너한테만 하는 거다. 그러니까 다른 애들한테 절대 말하지 마. 절대 비밀이라고 말하는 것치고 세상에 널리 퍼지지 않는 게 없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믿어. 너는 내 유일한 절친이잖아. 그러니까…… 어제 새벽, 아니 오늘 새벽의 일이네. 이렇게 새벽까지 장사하다가 귀가하는 생맥주집 마담 생활이 칠 년이나 됐으면서도 그 날 새벽이 전 날 새벽처럼 여겨지는 착각은 뭔지, 나도 참.

그래그래, 오늘 새벽에 있었던 별 일을 얘기해 줄께. 그럼 어제 밤부터 소급해서 얘기해야겠네. 어제 밤 열한 시는 넘어서 그 자식이 어디서 일차로 술 한 잔을 걸치고 우리 가게에 왔거든. 건축업을 한다는 자식인데 아직 이름은 몰라. 열흘에 한 번 꼴로 우리 가게에 와서 혼자 소주 한 병 노가리 한 접시를 시켜놓고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손님들이 없으면 내게 수작을 걸지. “저 여기, 술 한 잔 받지 않겠수?”하고 합석을 청하고는 쓴 소주 한 잔 건네며 쓸데없는 얘기들을 늘어놓는 거지. , 자기 젊었을 적에 특수부대에서 명사수로 활약했다는 얘기인데…… 내 보기에는 몸도 작고 약해 보이는 게 아무래도 동사무소 방위로 때운 자식 같아.

나야 손님들 접대하는 장사니까 어떤 손님이 내 마음에 든다 안 든다 할 처지가 아니잖아? 그래서, 그 자식이 뭐라 하든 고개를 끄덕이면서 얘기를 들어주다가 다른 손님이 들어오거나, 씨디 판이 다 돌아가서 음악이 끊기면 그것을 핑계로 자리를 뜨는 거지.

그런 핑계 말고도 갑자기 어디서 전화 온 듯 주머니 속의 휴대폰을 꺼내어 여보세요, 아 네네…….”하면서 급하게 통화할 모양으로 그 자리를 뜨기도 하지. 그냥 더 앉아서 안주라도 추가 주문하도록 부추길 수 있지만 그 자식한테는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니까. 얼굴도 못생긴데다가 매너도 꽝인 거야. 솔직히 바쁜 사람을 불러다 앉혔으면 마시고 싶은 술이나 안주라도 있어요? 내가 낼 테니까 말입니다.”하는 정도의 매너를 보여야 하는 게 아니겠니? 그런 매너 한 번 보이는 일 없이, 자기가 마시는 쓴 소주나 한 잔 건네며 말동무 하자는 그런 작자한테 내가 호감을 가질 일은 없잖아.

그런데 어제 밤은 이 자식이 이상하더라고. 거나하게 취해서 다 늦은 시간에 우리 가게로 들어온 것도 그렇지만 나를 불러서는 웬 일로 나는 소주면 되지만 댁은 무슨 술을 좋아하슈?”하고 묻더라니까? 전에 없는 매너라 미심쩍긴 했지만 모처럼의 매너를 물리칠 필요는 없잖니? 그래서 저는 복분자주를 좋아하는데요.” 해 버렸지. 그 술이 우리 가게에서 제일 비싼 술이잖니. 내가 좋아하는 술이지. 그랬더니 그 자식이 그럼, 댁도 그거 한 병 드슈.”하는 거야. 그래서 그 자식의 애호 메뉴인 소주, 노가리와 복분자주를 준비해 갖고서 그 자식의 맞은편 자리에 합석해 마시기 시작했거든.

2차로 들른 게 분명한데다가 내게 비싼 술도 내는 것으로 봐서, 나는 속으로 이 양반이 오늘 낮에 무슨 좋은 일이 있었구나.’ 생각했지. 달리 그 늑대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니까. 다른 날보다 손님도 별로 들지 않고 해서 그 자식의 특등사수 얘기를 다시 들어주면서 복분자주를 한 병 다 마시고는, 눈치를 보았잖니? 그랬더니 그 자식이 한 병 더 마시지 그래? 소주도 한 병 더 갖고 오고 말이야.” 하더라고. 매상도 적은 날이니 이렇게 해서라도 보충해야겠다는 욕심이 들대. 그래서 고맙습니다, 사장님.” 하면서 추가로 복분자주와 소주를 갖다 놓고 앉아 마시기 시작했다니까.

그러다가 새벽 한 시가 훌쩍 넘었어. 다른 테이블에서 생맥주잔들을 부비며 뭐라 열심히 속삭이던 남녀도 가 버리고, 나와 그 자식만 가게에 남게 됐지. 다른 날이면 손님이 한 팀 정도는 들어오기도 하는 시간대인데 전혀 그런 기미도 없는 거야. 그래서 슬슬 겁이 나더라니까. 그 자식이 소주를 세 병째 주문하면서 복분자주 한 병 더 하겠수?”하고 내 의사를 물었을 때 사양하고 일어날 수밖에. 아무래도 그 자식 하는 수작이, 내가 더 합석하고 있으면 안 되겠더라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어. 내 자리, 주방 자리야 항상 일거리가 있지 않니? 안주거리를 점검해야지, 가스기기 주변을 소제해 놓아야지, 술잔들을 물통에 담가서 하나하나 씻어 놓아야지…… 장사 준비할 게 늘 있잖니?

그러면서 그 자식의 눈치를 보는데 그 자식이 빈 술병들을 늘어놓은 채로 뭘 궁리하는 표정 같더라니까. 마음 같아서는 문 닫을 시간이니까 계산 부탁 합니다.’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세 시간 가까이 합석했는데 매정하게 그러기는 좀 뭣했지. 그래서 저 자식이 저러다가 졸리면 알아서 일어서겠지 하는 기대심으로 설거지를 하면서 기다렸지. 그러다가 두 시를 넘어서 세 시가 돼가는 거야. 내가 보통 가게 문을 닫고 귀가하는 시간인 거지.

그런데 그 자식이 게슴츠레해진 눈길을 내 쪽으로 던지며 죽치고 앉아 있는 게, 아무래도 내가 문 닫고 갈 때 따라붙으려는 속셈 같더라고. 내가 이런 일을 한두 번 당해 본 줄 아니? 안 되겠더라고, 마침내 내가 한 마디 했지. “사장님, 지금 문 닫고 갈 건데요.”

그랬더니 그 자식이 뭐라고 한 줄 아니? 이러더라고. “여기 복분자주 한 병 하고…… 제일 비싼 안주 하나 더!”라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아니에요, 저는 술 됐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하세요.” 했지. 그랬더니 이러더라니까. “내가 복분자주를 마시려는데 무슨 소리야?”

그래서 내가 아예 음악까지 끄고 나서 말했어. “복분자주 다 떨어졌어요. 이제 문 닫고 나갈 겁니다.” 했지. 음악도 끄니까 숨소리까지 들리는 판이 되었는데 그 자식이 부스럭거리며 지갑을 품에서 꺼내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여봐, 목욕 값 넉넉히 줄 테니까 나하고 같이 나가면 안 되나?”하는 거지. 그렇게 그 놈의 새끼가 늑대본성을 드러내더라니까. 대꾸도 않고 가게 안의 전등들을 안쪽에서부터 끄기 시작했는데 그 자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오더라고. 기겁해서 그 자식을 피해서 후다닥 문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지. 112로 전화해서 경찰차를 부를 수도 있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냐? 조용한 새벽시간에 요란 벅적한 경찰차가 오는 것도 그렇고…… 경찰차가 들락거리기 시작하면 그 가게는 오래가지 못하거든.

밖으로 피하긴 했지만 가게 문을 닫지 못했으니 멀리 갈 수도 없고…… 그러니 우리 가게가 보이는 골목구석에 숨었는데 그 자식이 비틀거리며 나를 잡겠다고 가까운 골목언저리부터 뒤지는 거야. 그 자식이 우리 가게 오기 전부터 단단히 무슨 결심을 하고 온 게 분명했어. 모르긴 해도 우리 남편에 대한 조사까지 마치고는 남편이 산재병원에 십 년째 있는 여자라니, 까짓 거 생과부나 다름없구먼.’ 하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야. 내가 서러울 때가 이런 때지.

그 자식이 긴 골목의 구석구석, 전봇대 뒤라든가 슈퍼마켓 집 바깥의 하드상자 뒤편 같은 데를 하나하나 뒤지면서 오더라고. 하는 수 없이 숨었던 남의 집 대문 앞 후미진 데를 떠나서 골목을 한 바퀴 돌았는데…… 어쩜 좋니? 그 자식이 골목을 떠나지 않고 계속 내 뒤를 쫓는 거야. 가게 문도 못 채웠으니 골목을 벗어날 수도 없고 시간은 새벽 네 시로 되어가고…… 늦어도 그 시간에는 들어가야 우리 집 애들 아침상이라도 차려놓고 늦은 잠을 한잠 잘 수 있잖니? 애들이 다 컸어도 아직도 내가 아침상을 차려놓아야 밥 먹고 학교들 간다니까.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한데…… 웬일이야, 그분이 큰길가에 서 있더라고! 그분이 누구냐고? 내가 나중에 자세히 얘기해 줄게. 아주 점잖은 분이란 것만 우선 말할게.

그분한테 체면 불구하고 다가갔지. 컴컴한 골목에서 내가 나타나니까 그분이 펄쩍 놀라더라고. 슬리퍼를 신고 있다가 그만 한 쪽을 발에서 놓치더라니까. 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어. “선생님, 저 아시죠?” 그랬더니 그분은 큰길의 가로등 빛을 이용해서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그래서 부탁했지. “지금 나쁜 자식이 저를 어떻게 하려고 쫓아오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남편인 것처럼 제 옆에만 서 주세요.”

그러니까 그분이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자식이 그 때 다가왔어. 느닷없이 내 옆에 어떤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그 자식도 놀라, 대여섯 걸음 거리를 두고 멈춰 서더라고. 내가 말했어. “내가 늦으니까 우리 남편이 걱정돼 여기까지 왔어요. 그러니까 사장님이 나를 바래다주지 않아도 됩니다. 계산이나 하고 가세요. 오만 육천 원입니다.”

그 자식이 지갑을 꺼내더니 기가 꺾인 소리로 묻더라고. “여기서 돈 드리나?”

나는 가까이도 가기 싫어서 그냥 문 안에 놓고 가세요.” 했지. 키도 작은 자식이 기가 꺾이니까 더 작아 보이더구나. 그런 꼴로 그 자식이 사라진 뒤 나는 그분을 모시고 가게로 다시 들어갔지. 그 자식이 문 안 바닥에 놓고 간 돈을 세어 보니까 오만원이더라고. 육천 원을 덜 낸 거야. 정말 나쁜 자식이지.

그분한테 앉으시라고 해 놓고 생맥주 한 잔을 만들어 드리려 했더니 이러시는 거야. “아니 마담, 새벽부터 무슨 술은?” 웃으면서 하는 말씀에 나는 당황해서 그럼 뭘 드릴까요?”했더니 그냥 냉수나 한 컵 주쇼.”하는 거였지. 그래서 냉수 한 컵을 갖다 드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왜 그리 쏟아지던지, 나도 모르게 잠시 흐느꼈단다. 얼마나 서러운 내 팔자냐 말이다.

그분이 내가 눈물을 훔치고 나니까 말씀하더라고. “늙어서 새벽잠이 짧아지는지라 오늘도 꼭두새벽에 깨어나는 바람에 다시 잘 수도 없고 해서 옷을 입고 집을 나와 마냥 걷다보니까 이 동네까지 온 거라고. 그러면서 어찌 됐건 자기가 곤경에 처한 마담한테 도움을 주었다면 기쁜 일이라 덧붙였지.

나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말씀을 길게 드릴 수도 없고 해서 선생님, 오늘 저녁에 한 번 들러주세요. 제가 아까 신세진 것을 갚고 싶거든요.”했지. 그랬더니 그분은 , 나는 그냥 마담 옆에 서 있었을 뿐인데 무슨 신세는…….”하면서 나가시더라고.

정말 좋은 분이지?

아무래도 어디 대학교 교수가 아닌가 싶어. 나이는 우리보다 서너 살쯤 위가 아닐까? 가끔씩 우리 가게에 들러서 말없이 생맥주 한 잔을 들으면서 음악을 듣다가 가곤 하시지. 생김새는 그냥 순하게 생겼어. 글쎄, 교수로써 좀 늙은 분 얼굴을 생각하면 될 거야. 그런데 말이야, 내가 그 자식 이야기 하느라고 정작 그분 이야기를 조금밖에 못했는데…… 이상하게 내 가슴이 뛴다니까? 그분 이야기를 처음 하는 것인데도 말이야. 새벽에 내 옆에 남편인 척 서 계실 때에는 내 옆구리가 따듯하고…… 든든하게 느껴지는 것 있지?

나도 미쳤나 봐, 멀쩡한 남편을 두고 이런 말을 하니 말이다. 뭐라고? 내가 연애한다 해도 뭐라 나무랄 사람 하나 없을 거란 말이지? 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나는 그냥 솔직한 심정을 너한테만 말하고 싶었던 거야.

얘도 참…… 내가 다시 전화할 게. 오늘 저녁 때 그분이 오면 어떤 분인지 여쭈어 보고 다시 너한테 전화할게. 그럼 이만 끊어. 그래그래, 지금 오후 네 시이니까 부지런히 화장하고 가게 나갈 채비를 해야지. 그럼…….

 

별 일 없었니? 내가 날마다 전화하는 셈이네? 그럼, 그분 얘기를 하고 싶어서 전화 걸었어. , 궁금하지 않았다고? 시끄러워, 년아! 하하하하.

자 그럼, 얘기 들어. 너는 힘들 것 없어. 어제처럼 그냥 듣기만 하면 돼.

내가 …… 다른 날들보다 한 시간은 이르게 가게 문을 열고서 기다리는데 그분이 오지를 않더라고. 그런데 앞마당 비로 쓸자 문둥이가 온다고…… 그 망할 자식이 일찍이도 들어와서 소주 한 잔을 시켜놓고 앉아 있으니 얼마나 내 마음이 편치 않던지! 눈치를 보니까 그 자식이 뒤늦게 정말 그 여자, 남편이었나?’ 수상하단 생각에 확인 차 온 모양이야. 자기가 알기에는 분명 남편이 산재병원에 십 년째 누워 있다는데 그렇게 꼭두새벽에 남편이란 사람이 멀쩡하게 와 있다니, 아무래도 미심쩍다는 생각이 든 게지.

덜 낸 돈 육천 원부터 달라고 싶어도 일단 참고서, 그 자식이 주문한 소주와 노가리를 준비해 갖다 주고 주방에 있었지. 그러다가 시간이 웬만큼 지나서 손님들이 들어올 때부터는 주방을 나가 주문도 받고 합석도 해 주고 하면서…… 그 자식 있는 구석 쪽으로 가는 일은 피했지. 벌레 같은 자식이라 내쫓고 싶지만 여기가 서비스업이니까 어떡하니? 그냥 냅둬야지.

그런데 그분은 오시지 않는 거야. 그 자식은 소주 한 병 갖고 두 시간 넘게 미적거리면서 나를 살펴보는데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친정의 오라비라도 불러서 그 자식을 해결하고 싶은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이냐? 친정에 근심거리 하나 덧붙이는 일밖에 더 되겠니? 문둥이 같은 자식은 오늘도 자정 넘어서까지 남아서 무언가 짓거리를 할 눈치이고…… 그래서 고민하면서 장사를 하는데 그분이 나타났단다!

얼마나 반가운지 냉동 오징어들을 가스 불에 녹이다가 그만 태울 뻔했단다, . 그러니까 밤 아홉 시가 될 즈음에 그분이 물방울무늬 티셔츠 차림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는 거, 있지. 나는 얼른 주방을 나가서, 창가 테이블의 의자를 잡아 조금 뒤로 빼주어 그분이 편히 앉도록 한 뒤에 말을 건넸지. “선생님, 뭐 좋아하세요?” 물었더니 늘 하던 대로 생맥주 오백하고 마른안주 줘요.”하는 거야. 내가 더 비싼 것을 시키셔도 됩니다. 제가 내는 거니까요.” 했더니 허허 웃으면서 그럼, 마담이 좋아하는 복분자주 한 병을 추가합니다.” 하더라니까. 그분이 내가 좋아하는 술도 알고 계신 거야.

나는 가슴이 콩닥거리면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더라니까. 아마 실내 불빛이 밝았다면 그런 내 얼굴빛이 보였을 텐데 어둡기 다행이었지. 뭐라고? 문학적인 표현이라고? 얘는…… 내가 팔자가 꼬여서 이리 됐지만 이래봬도 여고 시절에는 문예반을 했었잖니?

맞다, 맞아. 그분은 국문학과 교수일 거야. 점잖은데다가 희끗희끗한 머리, 생각 깊어 보이는 얼굴…… 틀림없어, 내가 이 장사 칠 년 동안 통달한 것 중 하나가 손님들 직업 맞추기라니까.

나는 주방에서 마른안주와 술을 준비해서 그분 자리에 가서 합석했단다. 구석에 앉은 그 개자식이 연실 가자미 눈깔이 되어서 그분과 나를 째려보더구먼.

얘도, 고만 웃어라 얘.

그분이 복분자주 병마개를 따더니 내게 한 잔 따라주어서 나는 그분의 맥주잔과 보조를 맞추면서 마셨지. 다른 손님들의 추가 주문을 받거나 나가는 손님들의 계산을 받을 때 이외에는 그분 자리에 합석해서 술잔을 나누었단다. 어쩜 그분은 음악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은지! ‘호텔 캘리포니아가 나오니까 이건 몽롱한 대마초를 피우는 그런 세기말적 분위기의 노래인데하면서 그에 얽힌 뒷얘기라든가, ‘디 엔 오브 더 월드가 나오니까 마담, 이 노래 부르는 스키드 데이비스가 지금 할머니가 되었다는 것 아시나?”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다녀간 적이 있다는 등…… 웬만한 라디오의 음악전문 디제이 못지않으시더라고.

처음으로 합석해 본 셈인데 얼마나 구수하고 박식하게 말씀을 잘 하시는지!

사실, 내가 특정 손님과 오래 합석하는 것은 그리 좋은 게 아니거든. 다른 손님들한테 소홀히 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고…… 다른 생맥주집에 갈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내가 보고 싶어서 들른다는 손님들이 삐쳐서 다른 데로 갈 수도 있거든.

얘는, 뭔 소리니? 난 아직도 예쁘다는 말을 듣잖니? 우리 가게가 외진 데 있어도 손님들이 찾아오시는 이유를 너는 모르니? 내가 오십 나이인데도 다들 사십대 초 중반으로 보고 있다니까. 물론 화장발 덕을 단단히 보긴 하지만 말이다. 하하하하.

그런데 말이야, 그분이 말씀도 잘하시지만 얼굴도 동안이더라고. 나는 그분이 그 새벽에 늙어서 새벽잠이 짧아진다.’는 얘기를 할 때에는 이분이 무슨 소리를 하나 이상했는데 알고 보니 정년퇴직한 분이더라고. 공직생활을 하다가 막 퇴직하셨다는 거야. 그러니까 환갑이 다 된 분이지. 그런데도 어쩜 오십대 중반이나, 우리 또래처럼 보이냐? 가까이서 뵈니까 얼굴에 티 한 점 없이 깨끗한 게 전혀 환갑 나이가 아닌 거야. 이런 분이 우리 가게를 전부터 간간이 들렀는데도 내가 어떻게 제대로 알아 뵙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까 싶더라니까.

그분이 나는 생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게 취미인데 이렇게 예쁜 마담도 알게 되었으니 이 집의 단골이 되겠다.”고 하시는 것 있지? 그러니 앞으로는 자주 들를 거야. 그래그래, 그분이 들를 때 곧바로 너한테 전화할 게. 그 때 와 봐. 그분이 어떻게 생긴 분인지 너한테 보여주고 싶구나.

내가 그분한테 혹시 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있다가 퇴직하지 않으셨어요?”하고 물었더니 허허 웃으면서 그건 아닙니다. 거기는 환갑이 넘어 예순다섯이 정년이거든요. 나는…… 가만 있자, 이 문제는 퀴즈로 두겠소. 마담이 내가 뭐하다 나온 사람인지 맞추면 상으로 점심 한 번 내리라.”하는 거였지. 어쩜 목소리도 그윽하고 잔잔한지.

그러고 있으니까 그 개자식이 영 수상하다는 눈길로 우리 쪽을 째려보며 앉아 있더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무래도 부부로 보이지 않았겠지. 어디 부부가 그렇게 매너를 갖추고 마주앉아서 술잔을 나누니? 그러니까 그 자식이 저건 아무래도 수상하다. 부부는 아니다. 그럼 무슨 관계일까?’ 생각했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든든한 백 하나가 생긴 셈이므로 그 자식을 눈앞에서 내쫓아야겠다는 마음까지 들더라니까. 그깟 자식 하나 안 온다고 매상이 줄면 얼마나 줄겠냐? 그래서 그분께 생맥주 한 잔을 추가로 갖다드리려고 일어난 김에 그 자식한테 가서 말했지. “어제 육천 원을, 마저 주셔야죠.”

그랬더니 그 자식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는 거, 있지? 내가 그깟 자식이 겁날 게 뭐가 있니, 든든한 그분도 가까이 앉아 있는데…… 그분이 덩치도 좋아서 작은 그 자식 덩치의 두 배는 돼 보이거든.

그 자식이 이러더라고. “이따 나갈 때 주면 안 되나?” 그래서 지금 주세요.” 했더니 그 자식이 나 참!” 하며 일어나면서 어제 남긴 돈 육천 원과 오늘 계산 만 이천 원을 합쳐서 만 팔천 원을 테이블 위에 팽개치듯 탁 놓고서 문 밖으로 나가 버렸어. 꼬리를 밑으로 감은 똥개 모양, 꺼지던 꼴이라니! 하하하하.

그분과 나는 자정 가까이 술잔을 나누었단다. 나는 복분자주를 두 병이나 마셔서 좀 취했는데 그분은 기껏 생맥주 오백을 세 잔 마셨는데도 취하신 것 같더라고. 내가 더 드시겠어요?” 물었더니 아니, 됐어요. 나는 많이 못합니다. 이만 가야죠.” 하시는 거야. 그러면서 어쩐 줄 아니? 글쎄, 지갑을 꺼내 계산하시려는 거야. 내가 아니에요. 오늘은 제가 내는 겁니다.” 해도 다음에 마담이 내세요.” 하면서 굳이 만 원 짜리 네 장을 주시는 거 있지. 나는 하는 수없이 오천 원을 거슬러서 그분한테 드렸어. 복분자주까지 삼만 오천 원이 나왔거든. 그런데 그분은 됐습니다.” 하면서 잔돈도 받지 않으시니…… 얼마나 넉넉하고 좋은 분이니!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아마 내가 취해서 힘든 내 팔자 사연을 털어놓았나 봐. 그분이 그런 나한테 술값 부담은커녕 몇 푼이라도 남겨주고 싶었던 게 아니겠어? 얼마나 마음씨 좋은 분이니!

나는 그분이 문 밖으로 나갈 때 뒤따라 나가서 배웅까지 했단다. 그분은 내가 따라 나왔는지도 모르고 그냥 걸어가다가 선생님 또 오세요.”하는 내 인사말을 뒤로 듣고는 놀라서 뒤돌아보더라고. 그럴 때는 어쩜 청소년 같던지.

잠깐, 밖에 누가 왔나 보네. 뭐요? …… 아파트 노인회? 아예, 폐휴지 받으러 오셨구나. 잠깐만요. 얘야. 오늘 전화는 여기까지 할게. 그럼 끊어.

 

별 일 없었니?

먼저 통화하고 열흘만이지? 바쁜 일들이 있어서 너한테 전화 한 번 못하고 지냈네. 남편 있는 산재병원도 다녀오고 서류도 떼어다 주고 그러느라 좀 바빴어.

그분 얘기부터 시작할 게. 그분이 자기가 뭐하다가 퇴직했는지 퀴즈로 낸다 했잖아? 알아냈어. 그분은 바로 일 년 전에 여기서 가까운 시골의 군청에서 과장으로 있다가 퇴직한 분이시더라고. 문화관광과라고 갖가지 문화행사를 주관하는 부서의 장이셨다는구나. 그분이 내게 말해 준 것은 아니고 우연히 다른 손님한테서 얘기 들었지.

그러니까 지난 주 일요일이었어. 그날 초저녁부터, 등산 다녀온 분들이 한꺼번에 여남은 명 들어찼는데 그분이 공교롭게 그 직후에 나타난 게 아니겠니? 일주일 만이었지. 그분은 잠깐 들어왔다가는 실내가 떠들썩하니까 그냥 휭 나가시더라고. 나는 얼마나 속상하던지 쫓아나가서 선생님, 이따가 다시 들르세요.”하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고개를 그냥 끄덕끄덕 하며 가시는 게 다시 들를 것 같지 않더라니까. 얼마나 속상하니, 하필 기다리던 그분이 오기 직전에 무더기로 손님들이 닥칠 게 뭐니? 매상도 좋지만 이럴 때는 속상하단다.

맞아 맞아, 그 날이야. 내가 일손 좀 도와 달라고 너한테 전화 건 그 날이야. 네가 남편이랑 속초에서 광어회를 먹고 오는 중이라 했지. 그래서 하는 수없이 이웃 식당 집 아주머니 일손을 빌려서 손님들 접대를 치렀다니까. 아주머니한테 돈 만원을 나중에 드렸지 뭐. 그런데 그 손님들 중 한 분이 내게 이러시는 거야. “아까 들어왔다 그냥 나가신 분, 여기 잘 오세요?” 그래서 내가 네에, 우리 집 단골입니다.”했더니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야. “그분이 ○○군청에서 문화관광과 과장님으로 퇴직한 분이지요. 내가 십여 년 전에 상사로 모시기도 했는데 오늘 얼결에 인사도 못 드렸네. 그분이 글 쓰는 게 취미라 수필집도 한 번 냈어요.”

나는 그 말씀에 얼마나 가슴이 벅찬 줄 몰라. 내가 그분 정체에 대해 반은 맞춘 게 아니겠니? 국문과 교수는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수필집을 낸 분이라니…… 대학 교수와 뭐가 다르겠니? 내가 누구니? 여고 시절에 글짓기 백일장만 나가면 상을 타던 애가 내가 아니었니? 여류작가가 되는 게 그 때 내 꿈이었다고.

어쩜, 글 잘 쓰는 분을 이렇게 만날 줄이야!

역시 뭔가 다른 분이었어. 내가 왜 진작부터 그런 괜찮은 분이 우리 가게를 들르는데도 모르고 있었지?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까 그럴 이유가 있었어. 다른 손님들과는 합석하면서 신상을 알게 되는데 그분과는 합석이 그 날 처음이었거든. 합석이란 게, 내가 청하는 게 아니라 손님들이 청해야 가능한 일이잖아. 그러니 항상 혼자 말없이 맥주를 마시다가 가는 그분이…… 어려워서 어디 내가 말이나 붙일 수 있었겠니?

그런데 그 날 새벽 이후로 그분과 합석하게 되면서…… 알면 알수록 아주 괜찮은 분인 거야. 무뚝뚝해 보이지만 마음속도 따듯하고, 역시 글 쓰는 분이니까 뭐가 달라도 달랐어. 우리 여자들이 사내들은 다 똑같이 도둑놈들이라고 말하지만……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분은 달라. 정말 점잖고 좋고 괜찮은 분이야. ? 잠깐 기다리라고? 알았어, 년아.

그래…… 무슨 일이야? 강아지가 거실바닥에 오줌을? 니미, 개 팔자도 좋네. 삼십 평 넘는 아파트에 사람과 같이 살면서 아무 데다 오줌 싸고 먹고 자고…… 나보다 낫네. 정말 개 팔자 상팔자네.

, 그분 이야기를 마저 할게. 시끄러워! 너는 그냥 듣기만 해. 내가 수다 떠는 일 외에 무슨 낙이 있니, 년아. 하하하하.

그분 이야기나 조금 더 하고 오늘 전화 끊을 게.

그분이 그렇게 단체 손님들로 떠들썩하니까 휭 하니 가시고 난 그 이튿날 초저녁에 다시 우리 가게에 오셨다는 게 아니니? 내가 안의 전등들을 켠 뒤 바깥의 간판 불을 켜는데 그분이 들어오셨다니까. 항상 당신이 즐겨 앉는 창가 테이블 자리에 앉더니 마담, 음악 틀어줘요. 그리고 생맥주 오백하고 마른안주…… 그리고 복분자주도 한 병.” 하시는 게 아니겠니?

그래서 그분이랑 호젓하게 마주앉아 술잔을 나누었다는 게 아니니?

우리 가게가 외진 데 있어서 초저녁에는 손님들이 거의 없거든. 대개 시내에서 일차로 술 한 잔 마시고 귀갓길에 들르는 늦은 손님들이 많지. 그러니까, 잔잔한 팝송 씨디를 골라서 틀어놓고 나는 그분과 호젓하게 마주앉아 술잔을 나누었단다. 네가 알지만 나는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시집갔잖아? 이 장사를 한 뒤로 남자들이 단골손님이랍시고 접근들 많이 했지만 다 그게 그거야. 빤한 늑대속셈이 아니겠니? 자기 마누라 아닌 다른 여자 맛 좀 보자는 게 아니겠니? 내가 손님 자리에 합석을 잘하긴 해도 항상 조심한다니까. 이 좁은 바닥에 외간남자와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어떡하니? 손님들 떨어져 나가는 게 문제 아니지, 머지않아 시집 장가보낼 내 새끼들 앞날까지 먹칠할 일이지.

가만 있자, 그분 얘기를 한다는 게 심각한 얘기로 들어섰네. 그 날 그분 얘기로 다시 돌아갈게.

내가 그분한테 말씀 드렸지. “이렇게 초저녁에 들르시면 대개 손님들도 없고 조용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시간대에 자주 와 주세요.” 그러니까 그분이 이러시더라고. “내가 겉보기보다는 몸이 안 좋아요. 환갑 다 된 노인네니까 당뇨니 고혈압이니 해서 몸이 시원치 않아서…… 그래서 이 집을 자주 오고 싶어도 그러지를 못 하는 거요. 의사가 술은 절대 금하라지만 노후에 술도 못하면 무슨 낙으로 사나? 그래서 도수가 약한 생맥주를 마시는 거지.”

자주 오실 것 같았는데도 그러지 않은 이유를 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어. 나는 그분께 그 퀴즈 얘기를 꺼냈단다. “선생님, 먼젓번에 내신 퀴즈의 정답을 제가 알 것 같거든요? 맞추면 점심 한 번 사신다 했지요?”하니까 그분이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선생님은 ○○군청 문화관광과 과장님을 하시다가 나온 분이잖아요? 수필가이시고. 맞죠?” 하니까 그분이 껄껄 웃으면서 하여튼 이 도시가 좁아. 금세 알아냈네! ……그래, 마담한테 점심 한 번 내야지. 그럼 말이야, 마담 휴대폰 번호 좀 가르쳐 줘요. 내가 적당한 날 낮에 연락할 테니까.” 하시더라고. 그래서 내 번호를 가르쳐 드리고 제가 오전 중에는 잠을 자고 낮 열두 시경에 일어나니까 그걸 참조해서 연락 주세요. 그리고 오실 때, 선생님의 수필집도 남은 게 있으면 한 권 부탁합니다.” 말씀드렸지. 그분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셨어.

이렇게 내가 손님과 점심식사 약속하는 것은 드문 일이란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그쯤 될 거야. 아무 손님하고나 그런 약속 하면 안 되거든. 인구 이십만은 넘는 도시라지만 얼마나 좁은 바닥이게? 그래서 나는…… 쉽게 점심약속을 잡지 않고 몇 달을 끌면서 그 손님이 어떠한 인간인지 잘 살펴보고서 약속에 응한다니까. 솔직히 여자 손님이 나한테 식사를 사겠니? 남자손님이니까 나한테 식사를 사는 거지. 그러니까 조심해서 응해야 하거든. 대개는 별 일 없이 식사나 하고 말지만 안 좋은 작자들도 있지.

예를 들어 작년의 어떤 사장님은 아주 점잖게 우리 가게를 다니면서 나를 잘 대해주다가, 내가 믿고 점심약속을 했더니 어떻게 나온 줄 아니? 중형차 큰 것을 몰고 나와 드라이브부터 하자며 외곽으로 나가더니 글쎄, 모텔 주차장으로 불쑥 들어가더라니까? 내가 어이가 없어서 아니 점심식사라더니 왜 이러시는 거에요?”했더니 뭐라 그러는 줄 알아? “방에 들어가서 식사를 부탁해도 다 갖다 줍니다. 걱정 마세요.”하는 것 있지? 미친놈의 새끼지! 내가 그냥 차에서 내려 도로로 뛰쳐나왔지 뭐니. 그 새끼가 아무리 힘센 놈이면 뭣하니? 벌건 대낮에 길바닥에서 나를 붙잡아 갈 수는 없잖아? 거기서 택시를 휴대폰으로 불러서 타고 왔지 뭐야. 괜히 점심도 굶고 비싼 택시비만 쓰고 말았지. 그 실없는 사장 새끼가 나를 매춘부로 보고 있었던 모양이야. 나 참!

아냐, 수필가인 그분은 그런 분이 아니야.

내가 그분과 술잔을 나눈 지는 채 한 달도 안 되지만 나는 알아. 다른 남자였으면, 내가 각별히 대해준다는 느낌 하나만으로도 벌써 뻔질나게 우리 가게를 들르면서 수작을 건넸을 텐데 그분은 전혀 그런 기미도 없었잖아? 그 뒤로 기껏 세 번 들렀던가? 정말 보기 드문 점잖은 양반이야.

뭐라고 년아? 노인네니까 그 생각이 감퇴한 거라고? 이 년도 참, 그렇지 않아! 그분은 동안이라니까. 연세는 환갑 근처이지만 몸은 우리 또래야. 나도 참,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좋아. 네년 말대로 노인네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점잖을 수도 있겠지. 그러면 어떠냐? 나는 그런 푸근한 분 품에 그냥 한 번 안겨보고 싶어. ‘그거없이도 그냥 안겨서 잠이라도 푸근하게 자고 싶어. 그래그래, 농담이 아니야.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십년이나 부부생활도 못하고 사니? 여자 나이 사십대 말 오십대 초가 한창 부부 맛을 아는 나이라는데 나는 뭐니?

나는 이제는 지쳤단다. 남편 복이야 날아갔다 치고 애들 바라며 사는데 애들이야 얼마 안 있으면 다 제짝 찾아서 떠날 것 아니니? 그럼 내 인생은 뭐니?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이 나이에 밤잠 한 번 제 때 자지 못하고 밤샘 장사니? 이 짓거리를 언제까지 해야 하니?

…… 미안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

다시 전화할 게.

 

오랜만이야.

이번 전화도 열흘만이지, 아마. 어쩜 그분은 무정하기 짝이 없니? 먼젓번에 내가 낮 열두 시경부터 시간이 난다는 말씀까지 드렸는데도…… 어떻게 전화 한 통화가 없니? 다른 손님 같았으면 점심약속이 이루어지자마자 당장 다음 날 낮에 전화를 걸거나, 길어 봤자 이삼 일 이내에 전화를 준다고. 그런데 그분은 네 말처럼 뭐가 감퇴한노인인지 영 연락이 없는 거야. 오늘까지 열흘째 그러네?

건강이 안 좋은 편이라더니 몸에 문제가 생긴 건가?’ 걱정도 들었다가, ‘혹시 내가 술장사 하는 년이라고 업신여기는 건가?’ 열 받아 봤다가,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집안에 무슨 힘든 일이 생겼나 봐.’하고 스스로 달래보기도 하면서 이렇게 열흘이 흘렀지 뭐니.

그래, 년아. 그분이 우리 가게에 왔었다면 내가 너한테 즉시 전화를 했겠지. 빨리 와서 그분 얼굴을 보라고 말이야. 그 약속을 내가 잊은 줄 알았니? 이제 오해가 풀렸니, 년아?

그나저나 고민이란다. 몇 번 되지도 않지만 내가 그분과 합석을 오래했더니 벌써 후유증이 생긴 것 같아. ‘다른 생맥주집에 갈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나를 보는 낙으로 우리 가게를 들른다는 손님들 중 삼십 퍼센트는 줄어든 느낌이야. 글쎄, 불경기가 심해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위로가 되겠지만…… 내가 잘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

단란주점도 아니고…… 이런 생맥주 집은 여주인의 역할이 결정적이란 말이야. 안주 만드는 솜씨는 기본이고 손님들을 아주 세심하게 대해 주어야 하거든. 손님들 섭섭하지 않게 적당히 합석해 주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단 얘기야. 내 나름대로 합석의 원칙도 정해 놓은 게 있단다. 들어볼래? 첫째 합석을 오래하지 않기. 어떤 손님과 오래 합석하면 다른 손님들이 삐칠 수 있거든. 사내들이 의외로 속이 좁다는 걸 너는 잘 모를 거다. 둘째 가급적 두루두루 여러 손님들과 합석하기. 그래야 보다 많은 단골을 확보할 수 있거든. 셋째, 합석을 원치 않는 손님은 그대로 두기. 손님에 따라서는 혼자 있기를 즐기거나, 아니면 애인이라도 기다리는 경우가 있거든. 그걸 헤아리지 못하고 합석했다가는 망신당한다니까.

부근의 생맥주집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거나 주인들이 바뀌지만 우리 가게는 유유장창 잘 나가는 비밀이 바로 나의 이런 합석 원칙 준수에 있었다는 것, 오늘 너한테만 알려준단다. 이거…… 절대 비밀로 해야 돼. 알았지?

나도 참.

그리운 임한테서 아무 소식 없으니까 영업비밀이나 밝히고…… 나도 이 장사 걷을 때가 되었나 보다. 폐경이 되면 우울증이 나타난다더니 내가 그 모양인가? 요즈음엔 다 집어치우곤 머리 깎고 산속으로 들어가 비구니로 살까 하는 생각도 불쑥불쑥 한다니까. 하하하하.

알았어, 년아. 그렇게 하려도 복분자주 생각나고 새끼들 생각나서 안 되겠지? 오늘은 얘기해 줄 소식도 없는데 괜히 전화했나 보다. 그래그래, 이만 끊을 게. 그럼…….

 

얘야, 어제 오늘 사이에 아주 대단한 드라마가 있었단다. 그분 얘기인데 이건 드라마나 다름없어. 잘 들어 봐. 그분이 어제 밤 자정 가까이 되어서 우리 가게를 들른 거야!

다른 때하고는 다르게 휘청거리는 걸음인 게 시내 어디서 일차를 하시고 들른 게지. 그 때 내가 다른 손님 맞은편자리에 합석해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거든. 그러다가, 그렇게 들어오는 그분을 보고는 후딱 자리를 일어나서 그분한테 갔다니까? 합석했던 손님한테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떡하니? 내 마음이 그런 걸.

그분은 많이 취해 있더라고. 내가 그분 주문대로 생맥주, 복분자주, 복숭아 통조림 안주까지 갖추어 가서 옆에 앉았지 뭐니. 그랬더니 그분이 무슨 큰 봉투 하나부터 내게 건네는 거야. 뭔가, 봉투를 열어봤더니 그분이 몇 해 전에 펴냈다는 수필집이더라고. ‘늦가을 강변에 서서라는 제목이지. 어떻게 술에 취해서 우리 가게로 오는 중에도 책을 흘리지 않고 왔는지, 너무나 고마워서 뭐라 말을 못하겠더라니까. 표지를 열고 안을 펼쳐 보니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더라. ‘열심히 사는 마담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김호준 드림.’

귀중한 책을 잃으면 안 되니까 우선 그 책을 주방 안에 갖다 놓고 다시 그분 자리에 와 앉았지. 그분이 복분자주 병마개를 따서 술을 내 잔에 따라준 뒤 우리는 잔들을 부딪치고 우선 한 잔 마셨단다.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라던 말씀이 기억나서 내가 이런 말씀을 드렸어. “선생님한테 오늘은 맥주를 한 잔 이상 팔지 않겠어요. 선생님 건강도 안 좋으시다는데…….”

그랬더니 그분이 나를 빤히 보더니 내 두 손을 자기 손으로 끌어 모아서 꽉 쥐더라. 다른 손님들이 남아 있으니까 그래서는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그러고 앉아 있었지 뭐니. 그 때 무슨 음악이 나온 줄 아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 웬투 유어 웨딩이 나오더라고. 그분은 영어 노랫말도 아는지 작은 소리로 흥얼흥얼 따라 부르더라니까. 그 노래가 끝날 즈음에 다른 손님들이 여기 계산이요.”하고 소리쳐서 나는 그 자리를 일어났지. 술값 계산을 마치고 다시 그분 맞은편자리에 앉았더니 이러시는 거야. “그 동안 내가 안 온다고, 전화 한 번 없다고 나를 원망했지? 나도 사실…… 마담이 좋아. 그래서 겁이 나는 거야. 마담과 사랑에 빠질까 봐 겁나는 거야. 이게 진심이야. 마담과 사랑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할 것 같거든. 다 늙은 놈이 그게 무슨 꼴이겠어? 그래서…… 그 동안 일부러 전화하지 않은 거야.”

알겠니?

얼마나 순진하고 문학적인 분이니! 그제야 나는 그분을 제대로 알 수 있겠더라고. 그분은 평생 살아오면서 외도 한 번 없이 살아온 분인 거야. 이런 분을 남편으로 둔 여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질투심도 나더라니까. 그분은 내가 부탁한 대로 생맥주 한 잔만 마시며 앉아 있고 나는 그분의 양해를 구한 뒤 복분자주 한 병을 마시며 육, 칠십 년대 팝송들을 말없이 들었단다.

다른 손님들도 다 나간 한 시경까지도 그렇게 나는 그분과 말없이 손을 잡고 앉아 팝송을 들었어. 그러다가 그분이 이만 가야겠다고 할 때 내가 솔직한 얘기를 했지. “선생님, 저도 선생님을 좋아해요. 저는요 선생님같이 좋은 분을 망가뜨릴 생각이 전혀 없어요. 선생님, 데이트는 데이트에요. 그 이상은 아니에요. 선생님이나 저나 같은 오십대 아닌가요? 이팔청춘은 아니니까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더 솔직한 말씀을 드릴까요? ……저는 선생님 품에 한 번 안기고 싶어요. 그뿐이에요. 한 번 안긴다 해서 문제가 생길 게 뭐가 있어요?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는 우리 둘의 비밀로 간직하면 되지 않겠어요? 이해하시겠어요?”

그분은 아무 말 없이 내 얘기를 다 듣고는 잡은 내 두 손을 다시 한 번 꼭 쥐었다가 풀면서 일어나서 갔어. 물론 계산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지. 그분은 어느 때부턴가 계산하실 때 잔돈은 그냥 두고 가신다니까. 나는 그분 뒤를 몇 발자국 따라가서 골목길에서 다시 말씀 드렸어. “‘늦가을 강변에 서서수필집, 너무 고맙고요…… 이삼 일 이내로 낮에 전화 주세요. 알았죠?” 하니까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갔지.

이게 어제 늦은 밤부터 오늘 새벽 한 시경에 걸쳐서 있었던 일이야. 정말 한 편의 드라마 같지 않니? 그래서 다른 때 같았으면 낮 열두 시는 되어야 잠에서 깨는데 오늘은 열한 시경에 일어났다니까. 세수와 기초화장까지는 해놓고 기다려야 되지 않겠니? 그래야 그분이 전화를 주는 대로 늦지 않게 나갈 수 있잖아.

그런데 지금이 오후 세시이니까…… 오늘은 전화 없이 그냥 지나간 거겠지?

내 짐작에는 그분이 어제, 오늘 새벽까지 술 마시며 다니느라 고단해서 늦게 일어나셨을 것 같아. 그러니 전화할 새가 있었겠니? 이런 정도의 추리는 기본이지. 그분이…… 내일 낮에 전화하실 거야. 틀림없어. 내가 그분과 만나고 난 뒤에, 나중에 너한테 얘기해 줄게.

, 나쁜 년 아니지? 나는 그분을 좋아하지만 우리 남편도 사랑해. 이제야 하는 얘기인데 먼젓번 산재병원에 갔을 때 우리 남편이 이러더라고. “나는 당신이 다른 좋은 남자가 있으면 연애도 하고 그랬으면…… 내 마음이 편하겠어.”

내가 남편한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더 말을 못하게 했지만…… 그래그래, 고마워. 역시 너는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친구야. 너도 우리 남편과 같은 마음이구나. 고마워. 이만 전화 끊을게.

내일이나 모레쯤 무슨 일 있고서, 그 때 다시 전화할게. 하하하하. 알았어. 그래그래, 하하하하.

 

 

☓ ☓

 

아무래도 말해줘야 할 것 같아 오늘은 내가 먼저 전화했단다. 네가 말하는 그분 내가 알아. 그분이 같은 아파트의 옆 동에 살거든. 그런데 그분이 괜찮은 분인 건 맞는데 딱한 사정이 있어.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을 못하거든. 하필 그분이 퇴직하자마자이니까 일 년쯤 되지. 그래서 그분이 아내 수발을 드느라 외출도 잘 못한다고 소문나 있어. 요양보호사를 쓸 만도 한데 평생 내 뒷바라지 하다가 쓰러진 아내인데 어떻게 남한테 맡기냐며 거절한다고 해. 그나마 밤에는, 직장 다니는 아들이 퇴근하는 대로 교대해 줄 때가 있어서 바람을 쐰다더라.

나는 네 절친이잖니. 웬만하면 네가 그분과 각별한 정도 쌓고 그러려는데 찬물은 끼얹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더 이상 침묵하지 못하겠구나. 그분이 그런 사정이 있는 분이니까 낮에 시간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그러려니 하고 말아라. , 낮 시간에 전화가 와서 그분과 밖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 그러면, 이건 내 생각인데, 그저 간단하게 식사나 하고 말아. 그게 그분의 어려운 가정을 생각한다면 맞을 둣 싶다.

? …… 우니? 미친년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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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금강산을 풍악산이라고도 부른다.

 

()이가 사내를 만난 곳은 풍악산 초입인 단발령 고갯마루다. 사기그릇들을 잔뜩 얹은 지게를 지겟작대기로 간신히 세워놓고 그 그늘에 앉아 쉬려할 때 산발한 사내가 불쑥 나타난 것이다. 어쩌면 사내가 용이보다 먼저 고갯마루에 와 있다가 다가온 건지도 모른다. 용이는 지게 위 그릇들이 무겁고 조심스러워 땅만 내려다보며 고개를 올라왔으니까.

사내는 상투도 못 틀고 산발한 데다가, 길바닥에서 지내는지 옷차림도 걸레처럼 더러웠다. 짚신도 못 신은 맨발이었다. 지게 그늘에서 쉬려다가, 느닷없이 기괴한 꼴로 나타난 사내에 기겁한 용이. 하마터면 지겟작대기를 건드려 그릇들을 다 깨트릴 뻔했다.

그렇게 놀라게 했다면아이고 죄송합니다같은 사과의 말이라도 건네야 옳지 않을까. 하지만 사내는 그런 말은커녕 괴이한 소리를 내었다.

어버버!”

이 사람, 뭐하자는 거야?”

용이는 본능적으로 지게 등태에 숨겨두었던 칼을 찾아 빼들었다. 세상이 흉흉한 탓에 먼 길을 다닐 때에는 이런 칼 하나는 비치해야 했다. 사내는 서슬 퍼런 칼에 놀라 무릎 꿇고 앉더니, 두 손을 비비며 다시어버버소리를 냈다. 그제야 용이는 상황을 알아챘다. 사내는 말 못하는 벙어리였다. 용이는 칼을 다시 지게 등태 속에 넣었다. 그러자 사내 표정이 밝아지더니 이번에는 웬 작은 보따리를 두 손으로 바친다. 용이가 그 보따리를 받아 풀어보았다. 머루 다래만 가득했다. ‘숲에 들어가면 지천인 게 머루 다래일 텐데, 이걸 바친다고?’하는 어이없다는 생각에 보따리를 되돌려주려 하자 사내는 머리를 가로 저으며 용이 지게가지 끝에 붙들어 매단 전대를 가리켰다. 전대에는, 용이가 오늘 새벽 방산에서 길을 나설 때 아내가 볶아준 콩 열두 홉이 들어 있다. 사내 행동이 짐작 갔다. 보따리의 머루 다래를 드릴 테니 그 전대에 들었을 식량 좀 받아먹고 싶다는 뜻이다. ‘바꿔먹자는 것 같지만 사실 구걸하는 거나 다름없다. 사내는 그 동안 산에서 머루 다래 같은 산열매나 따 먹으며 연명하느라 지친 것일까.

이 단발령 고개를 내려가면 내금강이다. 내금강에는 절이 많다. 더러, 전란 중에 불타버린 절도 있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절이 무사하며 특히 정도사(正道寺)가 예전처럼 불사를 정상적으로 유지한다기에 용이는 쌀을 얻어올 희망을 가졌다. 십 년 전, 어머님의 천도재를 정도사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마음 푸근한 주지 스님이 용이가 지게에 지고 가는 사기그릇 오십 점 정도는 흔쾌히 받으시며, 그 값으로 공양미로 쓰이는 쌀 한 가마니를 성큼 내주실 게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진 용이는 애절히 구걸하는 사내한테 인심 한 번 쓰기로 했다. 전대를 풀어 볶은 콩 두 홉쯤 꺼내 건넨 것이다. 사내는 얼른 땅바닥에서 일어나면서 두 손으로 볶은 콩들을 받더니 이내으직으직씹어 먹기 시작했다. 볶은 콩이 얼마나 고소하던지, 애절했던 사내의 표정이 순식간에 행복해졌다. 용이는 어이없어 하다가 보따리에서 머루 서너 알을 꺼냈다. 하지만 쉰내에 먹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자신도 전대에서 볶은 콩을 한 홉쯤 꺼내 입안에 털어 넣고 사내처럼 으직으직씹어 먹기 시작했다. 이제 전대에 볶은 콩이 아홉 홉쯤 남았다.

 

사기장은 나라에서 명하는 대로 도자기들만 잘 구워내 바치면 농사 지어먹을 만큼의 녹봉도 나오는 안정된 업이었다. 하지만 근년 들어 왜구들의 침략이 잇따르고 이성계 장군의 위화도 회군이라는 큰 사건까지 나자, 나라가 몹시 어지러워지면서 사기장의 생계마저 흔들려버렸다. 관청의 명대로 도자기들을 구워 바쳐도 녹봉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용이와 아들이 사기그릇 백 점을 반씩 나누어 지게들에 지고 아비는 풍악산 정도사로, 아들은 개경으로 각기 집을 떠난 건 그 때문이다.

처음에는 가는 길이 비교적 편한 개경은 용이가 가고, 높은 단발령 고개를 넘어야 하는 정도사에는 아들이 가는 것으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집 앞에서 출발하기 직전에 길을 바꿨다. 정도사 주지 스님을 만나 뵙고 사기그릇들을 사 달라는 부탁을 하려면 아무래도 나이도 있고, 안면도 있는 자신이 가는 게 더 좋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부처님께 공양드릴 때 쓰이는 그릇들이야 귀한 놋그릇이지만 스님들이 먹고 마시는 데 쓰이는 그릇들은 목기가 고작일 터. 이번에 갖고 가는 사기그릇들이야말로 그런 스님들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주는 물건이 될 게다. 용이는 무거운 사기그릇들을 지게에 지고 이 높은 단발령 고갯마루를 향해 겨우겨우 올라오면서 그런 희망적인 생각들로 몸의 고통을 참았던 것이다.

 

사내가 볶은 콩 두 홉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더니, 자세를 가다듬고서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 한다. 비렁뱅이치고는 인사성이 발랐다. 고갯마루에서 받는 늦가을 햇살이 따갑다. 용이는 지게가 드리운 그늘에 혼자만 앉아 쉬기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지게가지 위에 높이 얹은 그릇들 덕에 긴 그 그늘이 최소한 두 사람은 수용할 듯싶다. 용이는 땡볕을 받고 있는 사내한테 말했다.

이 그늘로 들어오시게.”

사내는 멍청한 표정으로 용이를 볼 뿐이다. ‘, 이 사내가 말소리를 듣지 못하는 탓에 벙어리가 된 거겠지.’뒤늦은 생각에 용이는 사내의 한 손을 잡아 지게 그늘 안으로 끌어들였다. 비로소 알았는데 사내는 왼쪽다리마저 절고 있었다. 까치집 같은 산발에 넝마 같은 차림에 다리마저 절다니, 어쩌다가 이런 딱한 꼴이 됐을까.

한동안, 왜구들에다가 홍건적들까지 쉴 새 없이 쳐들어와 약탈과 살상을 일삼다가 격퇴됐었다. 사내가 그 때 식구들을 모두 잃고 몸마저 상한 채 유랑민이 된 걸까? 용이는 자신보다 더 딱해 보이는 사내를 보며 왠지 서글퍼져 저잣거리에서 떠도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얄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다에 살어리랏다.

나문재 굴 조개랑 먹고 바다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얄라.”

 

본래 용이네 집안은 남해 바닷가 사기장이 마을에서 살았다. 사기장이 마을은, 도자기를 구워 나라에 바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기장들의 공동체다. 용이의 아버님은 마을에서 가장 지체 높은 지유(指諭)’자리를 맡았다. 도자기도 굽지만 다른 사기장들도 통솔하는 자리다. 물론 나라로부터 받는 녹봉도 마을에서 가장 많았다. 용이 아버님은 도자기 만드는 일을 마치면 언제나 물 빠진 갯벌에 나가 굴도 따고 낙지도 잡았다. 미천한 집 가장이 바랄 게 뭐가 있던가. 그저 식솔들 입에 거미줄 칠 일 없이 사는 것 하나 바랄 뿐이다. 행복한 용이네 집에 불행이 닥친 것은 어느 여름 날 배 타고 와 습격한 왜구들 때문이었다. 왜구들은 웃옷만 걸친 기괴한 차림으로 긴 칼을 휘두르며 사기장 마을을 도륙 냈다. 식량은 말할 것도 없고 도자기들까지 모조리 빼앗아 가 버렸다. 반항하는 양민은 그 자리에서 칼로 베 죽였는데 그 때 용이의 아버님도 참변을 당했다. 그 후로 마을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마음 편히 도자기를 구울 수 있고 토질도 적합한, 다른 좋은 땅을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데가 바로 방산이다. 방산 땅에는 도자기 재료로 쓰는 흙 중 가장 좋은 백토가 곳곳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너무 어렸던 탓에 도자기 일도 제대로 배우진 못한 용이었지만 아버님의 유업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이십여 년이 흘렀다. 그 동안 용이는 마음씨 고운 옆집 처녀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고 아버님처럼 지유도 되었다. 하지만 지유가 된들 뭐하나. 녹봉도 끊기다시피 돼, 먹고 살 길이 아득한데…….

 

용이는 사내와 그쯤에서 헤어질 생각이었다. 헤어지고 말고도 없었다. 그냥 용이가 먼저 지게를 다시 지고 내금강 쪽으로 단발령 고개를 내려가면 되었다. 그러면 사내는 반대방향인 두타연 쪽으로 내려가든지, 아니면 고갯마루에 남아 있다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한테 음식동냥을 하든지 할 게다.

막상, 지게 지고 일어나 고개 아래쪽으로 발길을 내디디려던 용이가 생각을 바꿨다.

어이, 나 좀 보시게.”

사내는 소리를 못 듣는 탓인지 어리둥절한 낯이다. 하는 수 없이 용이는 등에 진 지게를 다시 땅에 내려놓은 뒤 강아지한테 하듯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사내가 다리를 절면서 다가왔다. 용이는 손짓발짓으로뒤에서 이 지게가지를 붙잡으며 고개 아래까지 따라와 달라. 그러면 전대에 든 볶은 콩을 다 주겠다는 뜻을 전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이가 다시 지게를 지고 비탈진 고갯길을 내려가는데 과연 사내가 뒤에서 지게가지를 붙잡아주지 않는다면 사달이 났을 것 같다. 작은 지게에 사기그릇 오십 점이라니 욕심이 과했던 걸까. 비탈길 아래쪽으로 쏠리려는 그릇들 무게 중심 탓에 용이의 지겟작대기가 연실 후들거렸다. 고개는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용이는 고개의 사분지 일쯤 내려오다가 결국 다시 지게를 세웠다. 물건들이 높이 얹힌 지게를 비탈길에 세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어디 또 있을까. 뒤의 사내가 두 팔 벌려 지게가지에 얹힌 그릇들을 안아주었기에 가능했다.

목덜미고 겨드랑이고 용이의 몸은 땀범벅이 되었다. 용이는 소매자루로 땀을 닦으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내도 따라 앉으며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하긴, 애당초 벙어리인 사내와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적막하게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눈앞으로 그림같이,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가을 햇빛을 받아 하얀 백옥들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아래로 솟아 있는 검푸른 소나무 잣나무 숲은, 마치 백옥 보석들을 떠받쳐주는 검푸른 색 비단 같다. 저 일만 이천 봉에 허연 운무라도 피어나면 신선들이 바둑 두며 천 년을 보낸다는 선경이 따로 없을 것이다.

이 고개의 전설이 용이한테 떠올랐다.

신라왕조 말기 때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천 년 사직을 왕건에게 고스란히 바치고자 했다. 이를 반대했던 마의태자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측근들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떠났다. 이 고개에 이르러 일만 이천 봉의 황홀한 풍경을 보게 되자, 마의태자는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 했던 마음이 덧없어졌다.‘신선세계에 들어왔으니 다시는 속세에 나가지 않겠다며 당신의 머리칼들을 다 잘라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 이 고개를 단발령(斷髮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저 봉우리들 중 가장 높은 비로봉에서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오 리쯤 내려가면 마의태자 묘도 있다니, 정말일까? 용이가 이런저런 생각도 하며 눈앞의 선경을 즐기는데 문득 무슨 소리가 고개 아래쪽에서부터 들려왔다. 일정하게 반복되는따그닥따그닥소리. 분명, 말들이 달려오는 소리였다. 용이는 가슴이 섬뜩해져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은 채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전란이 그쳤나 했는데 다시 시작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선, 길 복판의 지게를 다른 데로 옮겨놓고 피신하려는데 도와 줄 사내가 보이지 않았다. 놀랍게도 용이보다 먼저 말발굽 소리를 듣고 피신한 것 같다.

귀 먹은 자가 어떻게 나보다 먼저 말발굽 소리를 들었지?’

용이는 지게를 질 새도 없이 그대로 질질 끌어다가 길가 숲속으로 옮겼다. 목발이 땅바닥의 튀어나온 돌에 걸려 하마터면 지게가 넘어갈 뻔했다. 말발굽 소리들이 점점 더 커지더니 살벌한 창끝이 보이고 뒤이어 그 창대를 든 병사의 투구가 보였다. 누런 말 타고 나타난 그 병사 뒤로 검은색 복두를 쓴 사람이 잿빛 말을 탄 모습으로 따르고 있었다. 앞에서 창을 들고 가는 병사는 뒤의 복두를 쓴 사람을 호위하는 역할인 것 같았다. 이윽고 히이잉!’하는 말울음 소리들에 이어 두 사람의 모습이 온전하게 가까워졌다. 병사는 눈매가 사나웠고 복두 쓴 사람은 긴 수염을 날렸다. 길가 숲속에 숨은 용이는 제발 별 일 없기를 부처님께 빌었다. 말들의 거친 숨소리와 옷자락들의 펄럭소리가 한껏 커지더니 다시 작아져갔다.

그들이 일으킨 뿌연 흙먼지가 가라앉은 뒤에야 용이는 숲에서 조심스레 나왔다.‘따그닥 따그닥말 타고 고개를 올라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멀어져간다. 아무래도 개경으로 달려들 가는 것 같다.

나라에 무슨 일이 생겼나?’

나중에 알았지만 그들은 이성계 장군의 명을 받고 이듬해 봄, 비로봉에 봉헌할 불사리갖춤 일로 장안사(長安寺)에 다녀가던 중이었다. 이성계 장군이 누구이던가. 왜구와 홍건적을 잇달아 물리치며 온 백성의 구세주처럼 떠오른 대단한 장군이 아니던가. 대국 명나라를 치라는 무리한 명을 거부하며 벌어진 위화도 회군 성사 후, 나라의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른 지 2년째 되는 해 늦가을이었다. 이성계 장군은 자신의 주도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음을 불사리 봉헌이라는 최고의 제의를 통해 온 백성에게 선언하고 싶었다. 정도전 같은 성리학 선비들을 만나며 역성혁명을 준비한 장군의 마음 한 편에, 이천 년 전 석가모니께서 남긴 불경말씀이 여전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 아닐까.

말발굽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지게를 지고 출발하려는데 사내가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궁리하던 용이는 우선 눈에 뜨이는 땅바닥의 돌멩이들을 여러 개 주운 뒤, 바위 뒤고 숲이고 사방으로 마구 던졌다. 깃털 화려한 장끼 한 마리가 진달래 숲에서푸드득!’나타나 멀리 날아가고 뒤이어어버버!’소리치면서 싸리나무 숲에서 사내가 기어 나왔다. 무서움이 여전한 표정으로 말이다.

뭘 그리 무서워해?”

사내는 용이가 하는 말을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렇다면 아까 그들이 멀리서 말 타고 달려오던 소리는 어떻게 용이보다 먼저 들었는지, 영 앞뒤가 맞지 않는 벙어리 사내였다. 다시, 용이가 지게작대기를 짚으며 지게지고 일어서자 사내가 뒤에서 지게가지들을 붙잡아주었다. 조심조심 비탈진 고갯길을 내려가는데 땀은 다시 나지만 주위는 서늘해졌다. 하늘 한복판의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탓이다. 미시(未時)에서 신시(辛時) 사이쯤 되지 않을까. 늦가을 해는 짧아지는 해다. 정도사가 머지않았지만, 도착한 뒤 그릇 파는 일뿐만 아니라 스님이 힘들어 미뤘던 일들도 도와 드리려면 잠시도 지체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고개를 다 내려와서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폭이 마흔 자는 될 냇물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렇기도 하고 밀삐에 어깨 살갗이 다 벗겨졌는지 몹시 쓰라렸다. 갈증 나는 목도 축여야 했다. 지게를 일단 냇가에 세워놓고 용이는 엎드린 자세로 흐르는 냇물을 훌쩍훌쩍 들이켰다. 오장육부가 시원해졌다. 그런 뒤 웃옷을 벗어, 벗겨진 어깨의 살갗 부분을 찬 냇물로 여러 번 씻었다. 이래놓아야 덧나는 걸 방지한다.

냇물이 얼마나 맑은지 바닥의 조약돌들이 남김없이 다 보였다. 그런데 흐르는 물살에 모난 데가 다 다듬어져 동글동글한 모양들뿐이다. 용이는 짚신들을 벗고 맨발로 물속의 조약돌들을 한 번 밟아보았다. 짐작대로 여간 매끄러운 게 아니었다. 그냥 짚신을 신고서 간다면 조약돌에 미끄러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냇물을 건넌 뒤 물에 젖은 축축한 짚신으로 길을 걸을 걸 생각하니, 짚신은 짚신대로 쉬 망가져버리고 발이 짓물러질 게 뻔해서 영 내키지 않았다. ‘집을 나설 때 짚신 한 켤레쯤 여분으로 챙겼더라면 좋았을 것을!’용이는 한탄했다.

게다가, 냇물이 어떤 데는 검푸르게 깊고 어떤 데는 연한 빛으로 얕아서 고른바닥도 못 됐다. 일정한 간격으로 큰 돌들을 놓아 만든 징검다리가 눈에 뜨이긴 하지만 사기그릇 가득 얹은 지게 지고 가기에는 위험천만이다. 천생, 고개를 내려올 때처럼 사내가 뒤에서 지게가지를 붙잡아주며 내를 건너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사내가 또 보이지 않았다.

이 비렁뱅이자식이 그 새 어디 갔어?”

다리를 저니 멀리 달아나지는 못 했을 것 같다. 용이는 근처 떡갈나무의 굵은 가지 하나를 꺾어들었다. 그것을 휘두르며 부근 숲을 뒤졌다. ‘후다닥!’소리가 난 곳을 봤더니 노루였다. 송아지만 한 노루가 기겁해서 겅중겅중 숲속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웃옷도 채 걸치지 못한 꼴로 숲을 뒤지느라 용이의 상반신은 나뭇가지나 풀잎에 여기저기 긁혔다. ‘이 자식을 놓쳤구나!’체념하며 숲을 나오려는데 가까운 바위 뒤에서 사내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겁먹은 얼굴로 나타났다.

상반신의 긁힌 상처들을 냇물에 여러 번 씻고 난 용이는, 지게를 지고 일어서는 대신 등태 속의 그 칼을 다시 빼들었다. 길이가 한 자밖에 안 되지만 날이 잘 서 있다. 백자를 열 점이나 대장장이한테 주고 장만한 거다. 사내가 듣거나 말거나 용이는 사나운 낯으로 말했다.

자네 말이야, 내가 그만 따라와도 된다고 할 때까지는 나를 따라와야 해. 만일 또 제멋대로 달아났다가는 그 때는 이 칼로 죽여 버릴 거다.”

고개를 다 내려가면 전대의 볶은 콩들을 다 주겠다고 한 약속은 얼버무려졌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세상은 강자가 하자는 대로 약자가 순종하며 돌아가기 마련 아닌가.

이 냇물을 건너고 나면, 정도사까지 오 리쯤 된다. 십 년 전 천도재를 지내려고, 단발령 고개 너머에서 가장 가까운 절을 찾다가 정도사를 만난 것이다. 사실상 오늘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그렇다면…… 이 냇물만 건너면 사내를 풀어주자. 남은 볶은 콩들도 그 때 주자. 벙어리가 다리를 절면서 여기까지 도와준 것만 해도 꽤 고맙지 않나?

사실 말이 오 리지, 산길 오 리를 혼자 무거운 지게를 지고 갈 걸 생각하면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용이는 다시 좋게 마음먹었다. 하긴 냇물이 거울처럼 맑고, 붉거나 노랗거나 한 단풍들이 지천으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가을 풍경 속에서 마음을 모질게 먹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용이는 벗은 짚신 켤레를 새고자리에 매단 뒤 바지 대님을 풀었다.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는 지게를 지었다. 사내의 도움을 뒤로 받으며 냇물로 조심조심 들어섰다. 얼음장같이 찬 냇물에 발가락들이 다 얼어 떨어져버릴 것만 같다. 참아가며, 매끄러운 조약돌들을 조심조심 밟으며 나아간다. 연한 물빛으로 얕은 데는 걷기가 괜찮지만 검푸른 물빛으로 깊은 데는 허리춤 가까이 냇물에 젖어, 사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고생깨나 했을 게다.

내를 거의 다 건너는가 싶었는데 긴장이 풀어진 탓일까,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지게 뒤의 사내가 바닥의 매끄러운 큰 돌에 휘청미끄러지면서 지게가지에 얹힌 사기그릇 스무 점 가까이가 물에 떨어져 버렸다. 물 깊은 곳이었다면 충격이 덜해 덜 상했을 텐데 얕은 데라 바닥의 조약돌들에 세게 부딪치며 대부분 금이 가거나 깨져버렸다. 용이가 몸을 재빨리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큰 일 날 뻔했다. 용이는 본능적인 동작으로 지게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몸을 돌려 지게가지에 남은 그릇들을 두 팔로 안았다.

냇물에 자빠지며 입은 저고리가 반 가까이가 벗겨진 사내가 처연한 낯으로 용이를 올려다보았다. 그 때 사내 가슴에 검게 문신된 한 글자이 용이의 눈에 뜨였다. 섬광처럼 사내의 정체를 깨달았다. 사내는 왜구였다. 용이는 두 팔로 안은 그릇들을 냇가에 내려놓고는 지게 등태에서 칼을 빼들었다.

이 개새끼!”

다스케테! 다스케테!”

두 손을 비비며 연실 외치는, 애걸하는 표정으로 봐살려 달라는 왜놈 말인 듯싶다.

이 개새끼야. 우리 아버님이 니네 칼에 돌아가셨어. 이 원수 놈의 개새끼!”

도우조 다스케테! 도우조 다스케테!”

어떻게 왜구 새끼가 풍악산 일대를 떠돌고 있었을까. 약탈하러 동해안에 왔다가 다리를 다치면서 낙오된 놈이 아닐까. 용이가 쳐든 칼 앞에서 이제는 삶을 체념한 듯 두 눈을 감고서 합장 자세로 물속에 앉아 있는 사내였다. 그 때 잠자리 한 마리가 부근 하늘을 맴돌다가 용이의 높이 쳐든 칼끝에 무심히 내려앉았다 

​*   *   *  

   

입춘을 보름 지났지만 겨울 한기가 남아 있다. 어쩌다 핀 들꽃들도 큰 것은 없고 자잘한 것들뿐인데, 낮의 햇빛은 화사하지만 밤만 되면 싸늘한 추위에 꽃잎들을 쉬 오므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이는 가마 일을 서둘렀다. 백자사발들을 하루라도 빨리 만들어놓아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다.

백자사발은 백토가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백토 캐내는 일을 아들이 맡았다. 겨우내 언 땅에서 캐내는 일이라 여간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용이는 아들이 안 돼 보이지만 조금도 돕지 않았다. 녀석 스스로 받는 벌이기 때문이다. 녀석은 지난 해 가을, 개경으로 지고 가 팔고 오라 했던 사기그릇 오십 점을 길가 주막의 여자에게 홀려 닷새 간 잠자리 값으로 다 넘겨버리고는 추레해진 꼴로 집에 돌아왔었다. 그 때, 용이 마음 같아서는 당장 집에서 내쫓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녀석의 나이 벌써 스물. 아비처럼 열여섯 나이에 장가갔더라면 자식을 둘쯤은 낳았을 게다. 빈한한 집안 형편 탓에 장가를 못 보낸 아비에게도 죄가 있지 않겠는가, 하여 침묵으로 아들의 허물을 반쯤은 용서했다.

백토는 캐어낸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녀석은 캐낸 백토를, 미리 파 놓은 물웅덩이에서 수십 번 체로 걸러 불순물 하나 없는 고운 백토로 바꾸는 일까지 이어나갔다. 차디찬 웅덩이물이라 녀석의 손과 발은 벌겋게 터 버렸다. 그 험한 고생 보름여 만에 다섯 수레 분이나 곱디고운 백토를 작업장 한 편에 마련해 놓았다. 반쪽얼굴이 돼버린 아들 녀석의 등을 그제야 용이는 쓰다듬어주었다. 아들은 고개 숙인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부자가 그러고 있는 작업장은 네 기둥 위에 초가지붕만 얹혀있는, 사방이 트인 공간이다. 가까운 데서 부자의 정겨운 모습을 훔쳐본 어미는 돌아서서 흐느꼈다.

본격적으로 백자사발과 향로를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다. 용이가 하는 작업을 아들이 곁에서 거들며 부자가 함께 나선 것이다.

백토에 점성이 있는 다른 지역의 흙을 일정 비율로 보탠 뒤, 물을 줘가며 주물러서 차지게 반죽했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다. 차진 반죽덩이를 물레에 올려놓고 돌려가며 사발과 향로가 될 수 있는 기본형태들을 만들었으니, 두 번째 단계다. 세 번째 단계는 이 기본형태들을 부자가 손으로 섬세하게 매만져, 사발과 그 뚜껑 및 향로 모양으로 빚어낸 것이다. 이것들을 그늘에서 잘 말리는 일이 네 번째 단계인데 아직은 추운 날씨 탓에 본래 열흘 정도면 충분할 게 보름이나 걸렸다. 작업장이 사방이 트인 곳이라, 마르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통풍은 걱정할 게 없었다.

충분히 잘 마른 것들을 수레에 조심조심 실었다. 사이사이마다 볏짚을 풀어, 혹시 부딪치는 일이 생겨도 그 충격이 흡수되도록 했다. 아들이 수레 앞에 서서 손잡이를, 아비는 수레 뒷부분을 두 손으로 잡았다. 작업장에서 가마가 있는 데까지는 마흔 보쯤 된다.

출발하거라.”

네에.”

짧은 거리임에도 수레가 가는 길 가에는 냉이들이 파릇하고 고들빼기가 연보라색 꽃을, 씀바귀가 노란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가마 앞에 도착했다. 이제는 초벌구이 차례다. 모름지기 자기는 흙이 불을 만남으로써 이뤄지는 예술이다. 용이는 가마 안에 들어가, 밖에서 아들이 건네는 것들을 하나하나 받아 불과 잘 어우러지도록 정연하게 쌓았다. 그런 뒤, 소나무장작들로 빈 공간을 빼곡하게 채우면서 가마 밖으로 나왔다. 마침내 가마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뒤로 물러선 용이를 대신해 아들 녀석이 아궁이와 도수리구멍들을 통해 가마 안의 불길을 살펴가며 장작들을 보탰다.

불기운이 강해져 가마 밖까지 열기가 뜨겁게 전해졌다. 용이는 이 때부터 아들을 쉬게 하고 혼자 가마를 지켰다. 자신의 오래된 가마 불 감각이 절대로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달라져가는, 가마의 독특한 흙냄새만으로도 불의 세기를 느끼는 용이. 불이 너무 강했다가는 가마 안의 작품들이 찌그러지거나 깨지거나 옆의 것과 붙어버리거나 한다. 물론 약해서도 안 된다. 아주 적당하게 뜨거운 불을 유지해야 한다. 마치 양 극단을 피하라는 부처님의 중도 (中道) 말씀처럼.

 

지난가을, 용이는 사기그릇을 오십 점이나 지게에 지고 내금강 정도사로 가다가 냇물에서의 사고로 반 가까이 깨뜨려버렸다. 그래도 주지 스님이 남은 여남은 그릇들을 쌀 한 가마니 값으로 그냥 쳐주었다. 게다가, 스님은 용이한테 장안사 신관(信寬) 스님을 찾아뵙도록 주선하여 쌀을 두 가마니나 별도로 더 얻게 해 주었다. 잇달아 흰 쌀을 세 가마니나 얻게 된 일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일이 있다. 용이가 장안사로 생면부지인 신관 스님을 뵈러 갔을 때 일이다.

어둑할 때에 장안사에 도착해 사천왕문으로 들어서던 용이는 기절초풍할 뻔했다. 사천왕 못지않게 무섭게 생긴, 눈썹이 시커먼 스님 한 분이 염주를 손으로 매만지며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방산에서 오시는 보살님. 어서 오십시요.”

당황한 용이는 정도사 주지 스님이 적어주신 소개문도 꺼내 보이지 못한 채 합장하며 고개 숙였다.

소승은신관이라 하옵니다. 아무 말씀하시지 말고 조용히 소승을 따라오십시요.”

신관 스님은, 불경 외는 소리가 나는 대웅전 뒤편의 한 요사(寮舍)로 용이를 안내했다. 다른 사람은 없는 방에서, 스님은 생김새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름이 아니고…… 송헌시중께서 사람을 보내 전하시기를, ‘명년 4월에 금강산 비로봉에 불사리를 봉헌하려는데 그에 필요한 백자사발과 향로를 장안사에서 해결해 주십시요.’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소승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잖아도 며칠 전 미륵불께서 제 꿈에 나타나셔서여기서 멀지 않은 땅 방산이라는 데에서 한 사기장이 불원간 장안사로 찾아올 것이니 사리갖춤 백자 일을 부탁하면서 그 값으로 공양미 두 가마니를 주거라.’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송헌시중이란 이성계 장군을 가리키는 말이다. 용이는 놀랍고도 감사한 마음에 뜨겁게 눈물 흘리며, 하신 말씀대로 사리갖춤을 위한 백자 생산을 약속드렸다. 부담스런 마음고생이 만만치 않겠지만 비천한 사기장에게 얼마나 영광된 책무이던가. 하물며 식솔들을 편히 배부르게 할 백미를 두 가마니나 더 얻게 됐으니.

신관 스님은 말씀을 이어나갔다.

이번에 백자들을 만드시게 될 때에 마을 사람들한테 송헌시중 얘기를 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저 금강산 장안사에서 귀하게 쓸 백자를 주문한 거라고만 말씀하면 될 듯싶습니다. 잘못 소문이 났다가는, 그분이 악한 무리들로부터 위해를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도탄에 빠진 만백성을 구하실 분입니다. 허허허……. 모쪼록 힘이 많이 드시겠지만 보살님 식솔의 도움만으로 백자를 만들어주시기 당부 드립니다. 그래야 쓸데없는 낭설이 항간에 퍼질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씀이라고 감히 제가 거스르겠습니까, 스님.”

인연에 따라 심용 보살님과 소승은 한 배를 탔습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가마의 초벌구이나 재벌구이는 아낙네가 겪어야 하는 산고나 다름없다. 그럴 때 지아비는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 용이는 가마 불을 지키며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다.

아들 녀석은 오랜만의 여유에, 가마 부근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에서 마냥 퍼질러 자고 있다. 추운 밤 날씨임에도 이불을 냅다 걷어차기까지 하며 잔다. 용이가 그런 아들의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며 다시 가마 불을 살피려할 때 하늘에서 백토가루를 닮은, 때늦은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금강산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까? 그 비렁뱅이 왜구 놈이…… 추운 지난겨울을 잘 지냈을까?’

냇물에서 놈을 단 칼에 죽일 수 있었건만 용이는 칼을 거두고 말았다. 살아생전에 사람의 피를 칼에 묻히는 일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었다. 그 날, 남은 사기그릇들을 다시 지게가지에 얹고 떠나는 용이 뒤에서 사내는 연실 아리가또우 고자이마스!’라 외쳤다. 그 후, 잇달아 용이한테 흰쌀이란 귀한 양식이 세 가마니나 생기고 비로봉에 봉헌하는 사리갖춤 일에 미천한 사기장이로서 한 역할 하는 영광까지 얻게 된 것은 그 냇물에서 하찮은 왜구일지언정 따듯한 자비심을 베풀었기 때문이 아닐는지.

 

먼동이 트기 전에 싸락눈이 그쳤다. 무겁게 뜬 해가 중천에 자리 잡을 때쯤에서야 초벌구이가 끝났다. 용이는 아들한테 피해 있으라.’ 당부한 뒤, 꽉 막아두었던 아궁이의 흙부터 긴 작대기로 부숴버렸다. 순간 뜨거운 열기가 가마 안에서 밖으로화악!’ 뻗쳐 나왔다. 다른, 막아뒀던 도수리구멍들의 흙도 다 부숴버리면서 가마 주위는 한동안 뜨거운 열기가 맴돌았다. 용이가 작대기를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싸리비를 들고 선 아들한테 말했다.

뒷일은 네게 맡기마.”

네에 아버님. 그런데 제가 길의 눈을 비로 쓸기는 했는데…… 조심하셔야 합니다.”

뒷짐 지고 돌아선 용이를, 아내가 달려와 부축했다. 비로 눈길을 쓸어놓긴 했지만 아무래도 미끄러운 데다가, 잠까지 쏟아지는 지아비가 혼자 걸어오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내외는 조심조심, 칠십 보쯤 떨어진 집까지 눈길을 함께 걸어갔다. 사립문 따위는 달 필요가 없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의 방산 마을이다. 용이는 편히 집 마당으로 들어선 뒤 아내한테 말했다.

고생 많구려.”

무슨 말씀을…….”

용이는 아내가 방문을 열어주자마자 그대로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코를 드렁드렁 곯으며 밀린 잠에 빠졌다. 아내는 지아비의 저고리와 바지를 조심스레 벗기고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식량걱정 하나 없이 지난겨울을 났다. 흰 쌀이 세 가마니나 집에 들어오다니, 이게 꿈이 아닌가 싶어 자신의 손끝을 한 번 깨물어보기까지 했었다. 흰 쌀뿐인가. 소나무장작들까지 다섯 수레 분이나 집에 들어왔다.

이런 것이 다, 지난가을 장안사에서 보내준 것이다. 지아비가 장안사에서 하룻밤 묵은 뒤 빈 지게만 지고 편히 귀가한 다음 날, 장안사 젊은 스님들이 쌀 세 가마니와 많은 소나무장작들을 수레 둘에 나눠싣고 여기 집 앞까지 찾아와 내려놓고 돌아갔다. 첫눈이 내리기 전까지 스님들은 세 번이나 더, 소나무장작들을 수레로 실어다 주었다. 그녀는 아직도 지난가을의 일만 떠올리면 자기도 모르게 합장한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뻐꾹 뻐꾹 뻐꾹……

방산 마을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용이는 백저포로 갈아입고 조건을 쓴 뒤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 한복판에 깔아놓은 돗자리에 앉아, 품안의 사발을 꺼내놓았다. 이 사발은 명문을 새길 대상으로 선정된 두 점 중 하나다. 어제까지 용이는 이틀 간, 선정된 사발 두 점의 명문 새기기에 매달렸다. 한 점은 완료했으나 다른 한 점은지금 품에서 꺼내놓은 이 사발은 반쯤 하고 말았다. 왜냐면 이 사발의 굽에 새겨야하는 마지막 명문이 용이로서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서, 지친 몸과 정신으로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관 스님이 한지에 붓글씨로 적어 인편에 보내주신 명문이다.

사실, 명문을 새길 사발 두 점을 선정하는 데만도 사흘이 걸렸다. 초벌구이를 마친, 가마에서 나온 백여 점의 사발들을 하나하나 살핀 끝에 스무 점을 일단 추렸고 그 중 명문을 새길 두 점을 다시 추린 것이다. 명문을 새기는 대상에서 제외된 열여덟 점의 사발도 나중에 함께 유약을 칠해 가마에 넣어 재벌구이를 거치면, 빛나는 백자사발이 스무 점이나 탄생한다.

지금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아들은 재벌구이를 준비하느라 가마에 가 있고 아내는 마을에서 혼자 사는 가난한 노인네 집에 가 있다. 쌀도 퍼다 드리고 부엌일도 돕고 그러는 것 같다.

화사하게 떨어지는 봄 햇살들을 한 번 담아보려는 것같이 용이는 눈앞의 사발을 두 손으로 조용히 쳐들어보았다. 무늬 하나 없기에 오히려 수많은 무늬가 담겨 있는 듯 여겨지는 깊은 담백함과…… 세속의 모든 욕심들이 다 씻겨나가고 따듯한 마음 하나 남은 듯한 순백함의 결정체였다.

사발의 둥근 굽이 보이게 뒤집어서 내려놓았다. 방산 사기장의 명성을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남기는 작업에 들어갈 참이다. 용이는 떨리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가라앉혔다. 이윽고 조각칼로 천천히 그 굽에 한 자 한 자 명문을 새겨나갔다.

辛未四月日防山砂器匠 沈竜 同發願比丘 信寬

열아홉 자를 다 새기고 나자 눈부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갑자기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용이는 그 까닭을 좀체 헤아리기 힘들었다 

   

<참조> ‘이성계 발원 사리갖춤’ /서성호

고려시대 장인의 지위와 사기장 심룡/ 홍영의

양구 백자와 심룡 콘텐츠 전략 /최선일,한봉석

<사진자료(구글)> 금강산 /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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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꾹 뻐꾹 뻐꾹……

방산 마을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용이는 백저포로 갈아입고 조건을 쓴 뒤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 한복판에 깔아놓은 돗자리에 앉아, 품안의 사발을 꺼내놓았다. 이 사발은 명문을 새길 대상으로 선정된 두 점 중 하나다. 어제까지 용이는 이틀 간, 선정된 사발 두 점의 명문 새기기에 매달렸다. 한 점은 완료했으나 다른 한 점은지금 품에서 꺼내놓은 이 사발은 반쯤 하고 말았다. 왜냐면 이 사발의 굽에 새겨야하는 마지막 명문이 용이로서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서, 지친 몸과 정신으로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관 스님이 한지에 붓글씨로 적어 인편에 보내주신 명문이다.

사실, 명문을 새길 사발 두 점을 선정하는 데만도 사흘이 걸렸다. 초벌구이를 마친, 가마에서 나온 백여 점의 사발들을 하나하나 살핀 끝에 스무 점을 일단 추렸고 그 중 명문을 새길 두 점을 다시 추린 것이다. 명문을 새기는 대상에서 제외된 열여덟 점의 사발도 나중에 함께 유약을 칠해 가마에 넣어 재벌구이를 거치면, 빛나는 백자사발이 스무 점이나 탄생한다.

지금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아들은 재벌구이를 준비하느라 가마에 가 있고 아내는 마을에서 혼자 사는 가난한 노인네 집에 가 있다. 쌀도 퍼다 드리고 부엌일도 돕고 그러는 것 같다.

화사하게 떨어지는 봄 햇살들을 한 번 담아보려는 것같이 용이는 눈앞의 사발을 두 손으로 조용히 쳐들어보았다. 무늬 하나 없기에 오히려 수많은 무늬가 담겨 있는 듯 여겨지는 깊은 담백함과…… 세속의 모든 욕심들이 다 씻겨나가고 따듯한 마음 하나 남은 듯한 순백함의 결정체였다.

사발의 둥근 굽이 보이게 뒤집어서 내려놓았다. 방산 사기장의 명성을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남기는 작업에 들어갈 참이다. 용이는 떨리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가라앉혔다. 이윽고 조각칼로 천천히 그 굽에 한 자 한 자 명문을 새겨나갔다.

辛未四月日防山砂器匠 沈竜 同發願比丘 信寬

열아홉 자를 다 새기고 나자 눈부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갑자기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용이는 그 까닭을 좀체 헤아리기 힘들었다.

 

 

<참조> ‘이성계 발원 사리갖춤’ /서성호

고려시대 장인의 지위와 사기장 심룡/ 홍영의

양구 백자와 심룡 콘텐츠 전략 /최선일,한봉석

  <사진출처(구글)> 금강산의 가을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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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의 초벌구이나 재벌구이는 아낙네가 겪어야 하는 산고나 다름없다. 그럴 때 지아비는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 용이는 가마 불을 지키며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다.

아들 녀석은 오랜만의 여유에, 가마 부근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에서 마냥 퍼질러 자고 있다. 추운 밤 날씨임에도 이불을 냅다 걷어차기까지 하며 잔다. 용이가 그런 아들의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며 다시 가마 불을 살피려할 때 하늘에서 백토가루를 닮은, 때늦은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금강산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까? 그 비렁뱅이 왜구 놈이…… 추운 지난겨울을 잘 지냈을까?’

냇물에서 놈을 단 칼에 죽일 수 있었건만 용이는 칼을 거두고 말았다. 살아생전에 사람의 피를 칼에 묻히는 일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었다. 그 날, 남은 사기그릇들을 다시 지게가지에 얹고 떠나는 용이 뒤에서 사내는 연실 아리가또우 고자이마스!’라 외쳤다. 그 후, 잇달아 용이한테 흰쌀이란 귀한 양식이 세 가마니나 생기고 비로봉에 봉헌하는 사리갖춤 일에 미천한 사기장이로서 한 역할 하는 영광까지 얻게 된 것은 그 냇물에서 하찮은 왜구일지언정 따듯한 자비심을 베풀었기 때문이 아닐는지.

 

먼동이 트기 전에 싸락눈이 그쳤다. 무겁게 뜬 해가 중천에 자리 잡을 때쯤에서야 초벌구이가 끝났다. 용이는 아들한테 피해 있으라.’ 당부한 뒤, 꽉 막아두었던 아궁이의 흙부터 긴 작대기로 부숴버렸다. 순간 뜨거운 열기가 가마 안에서 밖으로화악!’ 뻗쳐 나왔다. 다른, 막아뒀던 도수리구멍들의 흙도 다 부숴버리면서 가마 주위는 한동안 뜨거운 열기가 맴돌았다. 용이가 작대기를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싸리비를 들고 선 아들한테 말했다.

뒷일은 네게 맡기마.”

네에 아버님. 그런데 제가 길의 눈을 비로 쓸기는 했는데…… 조심하셔야 합니다.”

뒷짐 지고 돌아선 용이를, 아내가 달려와 부축했다. 비로 눈길을 쓸어놓긴 했지만 아무래도 미끄러운 데다가, 잠까지 쏟아지는 지아비가 혼자 걸어오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내외는 조심조심, 칠십 보쯤 떨어진 집까지 눈길을 함께 걸어갔다. 사립문 따위는 달 필요가 없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의 방산 마을이다. 용이는 편히 집 마당으로 들어선 뒤 아내한테 말했다.

고생 많구려.”

무슨 말씀을…….”

용이는 아내가 방문을 열어주자마자 그대로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코를 드렁드렁 곯으며 밀린 잠에 빠졌다. 아내는 지아비의 저고리와 바지를 조심스레 벗기고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식량걱정 하나 없이 지난겨울을 났다. 흰 쌀이 세 가마니나 집에 들어오다니, 이게 꿈이 아닌가 싶어 자신의 손끝을 한 번 깨물어보기까지 했었다. 흰 쌀뿐인가. 소나무장작들까지 다섯 수레 분이나 집에 들어왔다.

이런 것이 다, 지난가을 장안사에서 보내준 것이다. 지아비가 장안사에서 하룻밤 묵은 뒤 빈 지게만 지고 편히 귀가한 다음 날, 장안사 젊은 스님들이 쌀 세 가마니와 많은 소나무장작들을 수레 둘에 나눠싣고 여기 집 앞까지 찾아와 내려놓고 돌아갔다. 첫눈이 내리기 전까지 스님들은 세 번이나 더, 소나무장작들을 수레로 실어다 주었다. 그녀는 아직도 지난가을의 일만 떠올리면 자기도 모르게 합장한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사진 출처 : ​2017.01.28 | 오마이뉴스 | 다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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