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나는 '호'붙이는 것을 싫어했다.
부모가 붙여준 이름 갖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호까지 덧붙여 산단 말인가 하는 저항감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지인이 내게 '무심'이란 호를 붙여주었을 때 마음에 썩 들어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말했다.
"정말 내게 맞는 호일세. 그런데 내가 무심한 것은 사실, 워낙 유심하다 보니 그리된 거지."
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런 게 선문답이 아닐까?
주택단지인 이 동네에 우리 가족이 집 짓고 이사온 지 20년 됐다. 이삿짐을 풀 즈음 동네 골목에서 뛰놀던 십대 초반의 사내아이들이 어느 순간 중·고등학생이 되더니 얼마 후에는 대학생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러더니 한동안 모습들을 보이지 않아 궁금했는데 잠깐씩 군인이 된 모습으로 동네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군에 입대들 하여 휴가들을 다녀가던 것이다. 다시 얼마 후에는 민간인 모습들로 분주하더니 요즘은 동네에서 안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짐작하기에 구직 길에 나선 끝에 마침내 취직하여 객지로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20년 세월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사내아이들의 변모는 저속촬영기법으로 찍은 영화 장면 같았다. 하긴 이삿짐 풀 때 한창 나이 40대이던 내가 어느 새 60대가 됐으니 나 또한 그런 영화 속에서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