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근처 야산에 올라가보면 풍경이 그토록 삭막하고 조용할 수가 없다. 나무들은 잎들을 따 떨어뜨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서 있고…… 야생동물들은 추워서건, 먹이가 없어서건 어딘가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봄이 되면 야산의 풍경은 확 달라진다. 나무들은 가지마다 푸른 잎을 달기 시작하고 야생동물들은 여기저기서 움직이는 것이다. 청설모나 다람쥐는 물론이고 새들도 짝을 찾거나 먹이를 구하느라 분주하다. 흉측한 뱀까지 여기저기 풀숲을 다니기 시작한다.

  

 

우리 동네에 5일장이 있다. 닷새에 하루, 떠들썩하게 장이 열린다. 나흘 동안은 쥐 죽은 듯 인적이 그쳐 있다가 닷새째 되는 날 온통 떠들썩한 인파로 활기가 넘치는 것이다.

그런 광경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쩜, 겨울 산이 봄을 맞아 떠들썩하게 바뀌는 풍경하고 닮았나!’

겨울 동안 산의 생물들이 숨죽이며 있다가, 봄이 되자 제 각기 나타나 떠들썩하게 한 판 장을 벌이는 광경 같은 것이다.

그렇다. 5일장 같은 봄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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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모()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급을 담임할 때다.

2학기말 시험이 끝나며 사실상 졸업식만 남은 12월의 어느 날, 실장 녀석을 찾을 일이 생겼다. 청소시간이라 녀석을 교무실로 호출해도 되지만 왠지 내가 교실로 가 녀석을 만나보고 싶었다.

교실 쪽으로 가다가 마침 복도에 있는 녀석을 보았다. 내가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 기막힌 일이 생겼다. 녀석이!’하고 답하는 순간 그 입에서 담배연기까지 허옇게 나던 것이다. 짐작이 갔다. 마지막 시험도 끝나 들뜬 분위기의 복도 한쪽에 서서 막 담배를 피우는 순간 내가 나타나 이름을 부른 거다.

 

스모킹 건(smoking gun)’이란 표현을 볼 때마다 나는 그 때 일을 떠올린다.

스모킹 건(smoking gun)’을 직역하면 연기 나는 총이란 뜻으로 범죄 또는 특정 행위나 현상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탄환이 발사된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포착하는 순간,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살해범으로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그 시절 학생의 교내 흡연은 유기정학이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나는 이런 판단을 했다. ‘졸업을 코앞에 뒀는데 이제 와서 어떡하랴. 모른 척하자.’

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녀석의 눈길을 피해 다른 데를 보며 뭐라고 용건을 말하고 교무실로 돌아왔다.

어언 50대 나이가 됐을 그 녀석. 지금도 담배를 피울까? 건강에 절대 안 좋다며 수시로 TV에서 금연 광고를 내보내는 시대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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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우 2017-03-0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이.친구^^
오랫만이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잘 지내리라 믿네^^
나도 친구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네..근데, 이녀석, 스모킹건을 들고 있으면서도 자기 담배가 아니라고 끝까지 우기는 거라. 웬만하면 졸업반이라 봐주려했는데 말이지...그녀석이 평소메 말썽을 많이부려서 골치를 썩이던 차라, ‘맞을래? 학생부로 갈래? 했더니 그 놈은 망서리지 않고 학생부로 가겠다고...ㅎㅎㅎ
그래 원하는 대로 기소?를 했는데, 워낙 전과가 많은 놈이라 가중처벌에 걸려 졸업을 얼마 안남기고 자퇴를 했더만..그 녀석이 순간 잘못 판단한 결과였지만, 마음이 편치않더구만..홍천시내에서 오토바이배달을 하는 일을 하다가 일년 후에 다시 복학했는데, 워낙 유명인사라 복학과정에서 설왕설래했더라지..지금은 졸업해서 뭐하는지 모르지만...언뜻 위 글을 보니 생각이 나서...
가내 무탈하시지? 글은 잘 써지고? 인제 농사철이 돌아오는데, 몸과 마음이 바쁘겠구만.
좋은 작품을 기대하며 이만,,
무심을 사랑하는 친구가~~~

ilovehills 2017-03-02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러잖아도 자네 소식이 궁금했네그려. 나는 지금도 자네가 ‘공부는 물론 태권도도 열심히 하던 고등학교 적 모습‘이 눈앞에 아주 선하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열심히 사는 자네 . 불원간 한 번 만나 얼굴 보기로 하세.
 

 

한 치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지금도 인터넷 신문기사를 보면, 올해의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를 거라는 견해와 그렇지 않고 내리막길로 들어설 거라는 견해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문제는 이런 견해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밝히는 견해라는 데 있다. 우리 생활에서 가장 큰 관건인 부동산 가격조차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는 얘기이다. 주식이니 펀드니 하는 것들이 다 그렇다. 항상 오를 것이라는 견해와 내리막길로 갈 것이라는 견해가 맞선다. 매년 그렇다. 솔직히 그 분야의 전문가들조차 그러듯 항상 예측이 갈린다면 차라리,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펀드나 모두 예측할 수 없다"고 토로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심지어는 날씨조차, 온난화가 계속된다더니 느닷없는 한파와 폭설에 '작은 빙하기의 시초'라는 전문가의 견해까지 나온다. 우리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현실 속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게 역력하다. 하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얼마나 따분하고 재미없는 삶이 될까? 유럽의 복지제도가 잘 된, 살기 좋은 나라의 자살률이 높다는 게 그런 반증이다. 너무 근심걱정이 없다 보니 ------- 따분하고 지루한 삶이라 여겨져 어느 순간 권총의 방아쇠를 당김으로써 그 따분하고 지루한 시간을 매듭짓는다는 것이다. 

역시 적당한 근심걱정을 갖고 사는 게 나쁘지 않겠지. 아니, 적당한 근심걱정을 갖고 살아야 되겠지. 결국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얘기를 하고 말았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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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을 알게 됐다.

그 중 한 젊은이인 J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생각이 너무 많은 젊은이다. 멀쩡히 다니던 대학을 굳이 다녀야 할 의미가 없다며 자퇴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문제는 J가 대학 자퇴 후에 의미 있게 사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데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좋으나 싫으나 우리 사회는 아직은 학력사회라 고졸 학력으로는 번듯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탓이다. 그래서 J는 전단지 돌리기 같은, 몸으로 하는 힘든 일을 하며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 결과 현실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던 것 같다.

 

J한테 친한 친구 K가 있다. K는 한 때의 방황을 극복하고 이제는 회사를 다니며 열심히 살고 있는 젊은이다. 둘이 만나 술이라도 한 잔 하다보면 그 때마다 J나는 외국으로 갈 거다!’고 외쳤단다. 현실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한 게 아닐까? 그런 외침도 한두 번이지 매번 만날 때마다 그러니 어느 순간 K가 짜증이 났단다.

그래, 외국으로 나가! 말만 하지 말고.”

몇 번 그랬더니 놀랍게도 J가 정말 외국으로 나갔단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도 아니다. 비행기로 열 시간 넘게 타고 가야 하는 먼 외국으로 갔단다. 더 놀랄 일이 벌어졌다. J가 이런 전화를 K한테 했다니.

외국에 오기는 왔는데 이제 어떡해야 하니?”

어이가 없어 K가 되물었다.

그럼, 거기 왜 간 거야?”

그냥 온 거야.”

통화가 끝나고 K가 나한테 와 전후사정을 말하고는 좋은 의견을 구했다. 멘토라 할 나도 사실 무심한 데가 많아 지인이 호를 무심이라 붙여줄 정도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번 J의 경우는 무심을 넘어 한심한 게 아닐까. 나는 K한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

그 녀석한테 말해. 좋은 경험 했다 치고 그냥 귀국하라고. 귀국한 다음에 다시 한 번 제대로 살아보라고 해.”

글쎄, 이번 일이 어떻게 귀결될지 모르겠다.

 

사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순진한 경우가 아닐까?

몇 달 전부터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박근혜 사건을 보자. 두 사람의 국정 농단의 내용들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대통령 당선 뒤 청와대에 들어간 뒤 웬만하면 사람들을 대면하는 일 없이 관저에서 지내기를 즐겼다는 사실도 그렇고…… 공황장애란 단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공항장애라고 쓰는 최순실이란 여자가 대통령 연설문을 다듬고 심지어는 국정 인사까지 개입했다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아는 젊은이의 어처구니없음은, 최순실박근혜의 어처구니없는 국정농단에 비해 얼마나 순진한가. 나는 J가 지난해의 목적 없는 외국여행을 좋은 경험 삼아, 새해에는 아주 열심히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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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무협영화를 보면 무술의 고수는 한결같이 허연 수염의 노인들이다. 백발노인들이 펄펄 날며 젊은 협객들을 상대한다.

결코 현실에서는 가당치 않다. 현실에서의 노인들은 무릎이나 손목의 관절이 안 좋아 모든 동작을 조심스레, 느릿느릿 해야 한다. 무협영화에서처럼 땅 위를 펄펄 뛰었다가는 그 날로 정형외과에 입원해 장기 치료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물론 노인들이 펄펄 뛸 수 있는 분야가 있긴 하다. 몸으로 뛰는 분야가 아닌 머리를 쓰는 학문의 분야다. 여기에 전제가 있다. 기억력의 쇠퇴나 감퇴가 없어야 한다.

 

중국 무협영화 속에서 펄펄 나는 백발노인들의 모습은…… 경로사상의 구현일까, 노화라는 숙명을 부정하고 싶은 욕심일까, 과장을 즐기는 중국 사람들의 습관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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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7-01-1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조금 긴 글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짧을 수가... 너무 하세요 ㅠ ㅠ ‘바람의 파이터‘(방학기)에 보면 최배달이 중국 무예 고수와 겨루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고수는 노인입니다. 그런데 결코 최배달에 밀리지 않아요. ‘바람의 파이터‘ 내용이 최배달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이기에 결투 내용은 사실이라고 보여요. 저의 결론: 중국 무협의 백발 노인 고수는 실제다! ^ ^

무심이병욱 2017-01-1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최배달이 노후에, 온몸의 관절이란 관절이 다 병들어서 극심한 고통 속에 삶을 마쳤습니다. 그분의 아들이 정형외과 의사인데 그런 사실을 어느 잡지에 기고했지요. 절대, 중국 무협영화 속의 ‘백발노인 고수‘는 있을 수 없습니다. ‘바람의 파이터‘라는 건 실화에 픽션이 가미된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링을 주름잡던 레슬러들이 이제는 노후를 맞아, 동네를 조심조심 걸어다니십니다. 일반 노인네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습니다. 저 유명한 박치기 왕 ‘김일‘이란 분이 말년에 병든 몸으로 고생 많았던 사실 또한, ‘중국 무협 영화에 나오는 백발노인 고수‘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게 아니겠습니까? 복싱 챔피언 ‘모하마드 알리‘ 역시 복싱경기 때 머리에 받은 충격 탓에 노후를 폐인으로 보낸 거지요. 이 정도만 예를 들겠습니다.

찔레꽃 2017-01-18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걸 가지고 논쟁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래도 굳이 한마디 더 보태면 무심님이 든 분들은 무림의 고수가 아니라 모두 격투기 선수들입니다. 이분들과 무림의 고수를 동격으로 놓아 말하기는 좀 그렇지 않을까요? 아이고, 이건 그냥 떠오른 생각을 적은 거니, 답변 하지 마셔요. ^ ^ 그나저나 왜 무림의 고수 얘기를 하셨는지, 사실은 이게 더 궁금해요. ^^

무심 이병욱 2017-01-19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실 ‘무림‘이란 이야기꾼 사이에서 나돌던 언어입니다. 허구적 단어란 말이지요. 인터넷으로 ˝ namu.wiki/w/무림 ˝이라 치면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김 용이란 소설가가 무협소설을 쓰면서 ‘무림‘이란 단어를 많이 등장시키는 바람에 마치 그런 세계의 사람들이 중국 땅에 실재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논쟁은 사양합니다. ^^^^^
이런 기회에 ‘찔레꽃‘님을 알게 되었고, 짧은 글에도 관심을 보여주는 데에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