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감염내과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때문에 어머니랑 같이 제주도에 다녀왔다.
아내와 나는 혹시 비행기가 추락하면 남은 개들을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같은 비행기를 안타는 게 원칙,
그렇다면 나 혼자 그냥 당일치기로 다녀오려고 했지만
강의 시각이 일요일 오전 8시 경이라 전날 가서 숙박을 할 수박에 없었다.
숙소야 주최측에서 제공해 준다지만,
비싼 호텔에서 나 혼자 자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기에 어머니를 모신 것.
3시 비행기였고, 또 바람이 심해서 연착을 엄청 한 탓에 호텔에 간 시각은 오후 6시 반,
칠돈가라는 엄청난 곳에서 저녁을 먹고난 뒤 엄마가 <장미빛 연인들>을 본다고 해 일찍 들어와 쉬었다.
문제는 다음날.
엄마는 투숙객에게 공짜로 제공되는 호텔 수영장을 이용하러 가셨다.
그때 시각이 7시 40분이었고, 난 어머니를 모셔다 드린 후 강의장으로 갔다.
원래 어머니와 난 9시 반경 호텔에서 만날 예정이었다.
수영을 두시간 정도 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러고 나선 제주도에 있다는 에펠탑을 보러 갔다가
바다를 좀 보고 공항에 가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강의는 8시 20분부터 시작됐고,
강의실에 시계가 없는 바람에 난 2G 휴대폰을 스톱워치삼아
강의하는 곳 앞 테이블에 올려놓고 강의를 시작했다.
준비를 워낙 열심히 한 탓에 강의는 물 흐르듯 진행됐는데,
8시 50분을 넘겼을 무렵,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진동이었지만 내겐 그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주말엔 전화하는 이가 거의 없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엄마였다.
강의 중인 걸 뻔히 알면서도 전화를 하다니, 이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난 그만 넋이 나가버린 채 강의를 하다말고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특징은 전화벨이 다 울려 안내멘트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벨은 수십초 가까이 울린 끝에 꺼졌다.
안도하기엔 일렀다.
엄마가 다시 전화를 해온 것.
그 전화 역시 수십초 가량 내 넋을 빼놓았다.
흐름을 잃어버린 뒤여서인지 전화가 온 뒤 내 강의는 엉망이었다.
게다가 전화 때문에 스톱워치 기능이 정지돼 강의 시간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강의장을 나간 뒤 엄마가 그 후 보낸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수영장이 너무 좋아. 너도 수영장으로 와라."
수영장에서 엄마를 만나자마자 따졌다.
도대체 강의 중인 걸 아시는 분이, 그리고 제주도에 온 목적이 바로 그 강의인데,
왜 강의할 시간에 전화를 하냐고.
"수영장 물이 너무 좋아서 그랬지."
다시금 따졌다.
"엄마, 전화를 안받으면 못받을 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 안해요? 그 다음 전화는 도대체 왜 했어요?"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게 말이다. 난 친구들한테도 항상 그러는데."
엄마가 강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전화건 게 아니라는 건 잘 알지만,
이틀이 지난 지금도 강의를 망친 어머니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다 없어지진 않는다.
덧붙이는 말: 난 기생충이 별 게 아니라고, 회 먹으라는 말을 평소에 하고 다니지만, 이번에 고래회충에 걸렸다는 만우절 거짓말을 하고 난 뒤 횟집으로부터 항의를 많이 받았다. 그 중 단대 학부모라는 분은 이런 글을 남겼다.
"너같은 놈이 교수로 있는 줄 알았으면 내 애를 단국대에 보내지 말 것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