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 석필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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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으로인해 왕은 죽어주기도하고 살아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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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 석필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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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사를 지배하고 있는 당쟁의 점철된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 고려 말에 깊이 패였던 권문세족들의 수탈.  

. 불가피한 듯 보이는 변화와 그에 상응하는 신흥사대부의 등장.  

. 그 신흥 사대부들간의 갈등과 권력을 중심으로 한 당파의 갈림, 조선이 제국주의의 힘 앞에서 무너질 때까지 계속되어온 일련의 과정.   

당쟁을 빠트린 조선사는 의미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 핵심이 당쟁과 연결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점에서 당쟁의 이해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분열은 당쟁의 출발점 

당쟁의 출발점을 이해하면 조선 초기의 권력을 이해할 수 있다. 초기의 분열은 태종 이방원이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공신들에게 공신전을 나누어 주면서 부터이다. 그 공신들도 고려의 권문 세족들처럼 부패하기 시작한다. 부패와 수탈의 절정에 달했던 권문세족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역성혁명을 통하여 자신들이 권력과 부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이에 사림이 반발하고 나선다. 마치 권문 세족에 대항하여 신흥 사대부들이 일어서듯...  사람의 조광조는 이러한 훈구세력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기득권층인 훈구세력의 반발이 거세다. 결국 조광조는 개혁에 실패하고 사약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어쩌면 당쟁의 출발이랄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사소한 듯 보이는 이조 전랑의 자리는 조선의 권력의 구조를 의미하고 있기에 그 중요성은 대단히 크다. 이는 실질적인 당쟁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소장파 김효원과 노장파 심의겸의 갈등에서 시작하는, 학통을 중심으로 한 분열이 그 실질적인 단추역할을 했던 것이다. 또한 당파의 갈등은 학통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저자는 그 학통의 계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그려 넣었다. 당쟁을 읽으며 내내 회의적인 부분은 아래와 같다.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남명 조식등은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들이요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던 훌륭한 분들이었다.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대학자들이다. 오죽하면 화폐의 도안에서도 퇴계 선생님이나 율곡선생님을 만나 볼수 있겠는가. 그만큼 조선을 대표하는 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퇴계와 율곡의 제자들은 스승님들의 뜻을 제대로 이어받지 않았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된다. 대스승님들께서 그리 분열하여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서로 싸우라고 가르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율곡께서 동서인으로 분열하여 다투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그 화합을 위해 동분서주 하는 보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자신의 뜻과 달리 동인에의하여 서인으로 지목되는 율곡과 동인으로 지목된 유성룡에게서 남다른 애민과 위민, 보국의 정신을 본 받을 수 있었건만 당대의 파벌은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을 향한 집념 뿐이었다. 대스승님의 가르침은 안중에도 없었던 당파의 갈등이 골이 깊어질 수록 백성들은 굶주리고 질병에 쓰러져갔다.   

정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남명 조식 선생님의 제자들은 오히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분연히 의병을 일으켜 조선을 구하고자 자신들의 재산을 내어쓰고,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이는 그 스승님께서 실천을 강조한 덕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못지 않은 대스승님의 계보를 잊는 두 학파의 제자들은 어떠했던가...서로를 죽여 권력을 유지했고, 또 상대방을 죽여 피의 복수를 했다. 오죽했으면 현종께서는 송시열을 불러들여 울음으로 독대하시며 제발 화합해달라고 부탁을 했겠는가...임금이 신하 앞에서 울면서 부탁 했다하니....도대체 정치의 목적은 무엇이고 그 속성은 무엇인가...송시열은 현종께서 눈물을 흘리며 하는 그 부탁을 결국 거절했다고 한다... 송시열은 서인의 거두이며 율곡 이이의 계보이다... 저승에서  선생님을 어찌 뵈었을꼬....    

끊임없이 이어지는 당쟁은 300여년을 지속했고 그런 과정에서 경제 발전의 기회들은 하나 둘 씩 사라져 갔다. 정치는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다. 세종 이후 조선의 국력 또한 그렇게 서서히 쇠약해져 간다. 당쟁이 역사를 피로 얼룩지게 하던 기축옥사 이후 임진 왜란이 일어나 나라는 사단이 난다. 임진 왜란으로 경제와 국방에 신경을 써도 벌써 써야 했을 상황에서 또 한 번 당파의 싸움은 성공해서는 안될 쿠데타인 인조 반정을 일으킨다. 두차례의 호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로 인해 조선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른다. 

당쟁는 점점 접임가경이 되어간다.  

서인, 동인, 북인, 남인, 산당, 한당, 대북, 소북, 골북, 육북, 중북, 청소북, 탁소북, 청남, 탁남, 소론, 노론, 시파, 벽파, 청서, 공서, 노서, 원당, 낙당 ...이름도 다 외기 어려운 분열의 분열을 계속한다. 무슨 세포 분열도 아니고...생물 시간으로 착각할 지경이다. (이러한 분열을 저자는 책 안에 표로 잘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신은 조선에 마지막 기회를 한 번 더 준다..  

영정조가 왕위에 오른 것이 그것이다. 영조 또한 당파의 철저한 수혜자이면서도 피해자였다. 수혜는 영조가 임금이 된 것이고, 피해는 권좌에 올려놓고 한없이 흔들어 대서 좋은 위민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왕은 당파의 이익과 권력에따라 죽어주기도하고 살아주기도 했다. 그런 폐단을 없애려 끊임없이 노력했던 임금이 영조였다. 그 일을 다못하고 영조는 정조에게 그 힘을 넘긴다. 정조 또한 당파의 수혜자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대신 왕에 올랐으니 말이다. 또한 당파의 피해자였다. 당파로 아버지를 잃었고 어린 시절 부터 끊임없는 살수(자객)들이 밤이면 밤마다 찾아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조선은 그 기회를 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의문의 정조 사후, 정순왕후는 정조가 일생을 노력해 개혁해 놓았던 모든 것들을 '도루묵'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또한 당파의 손익에 따른 처사였다. 권력과 이익이 도대체 무엇이길래...조선은 그토록 마지막 기회마저 영영 상실하게 만들었던다... 

권력의 힘겨루기는 조선이 멸망하는 그 날까지 계속된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사학계와 정계도 그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 조선의 정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처 서서히....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은 좋은 기회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좋은 기회들을 잘 살려내지 못한 것의 결과가 통한의 강제 병합을 만들어 냈다고 본다... 혹자는 중국도, 일본도 서양의 무력 앞에서 어쩔 수 없었던 세계의 흐름이 그러했고, 조선도 마찬가지 였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선사를 잘 살펴보면 얼마든지 그런식으로 개방당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좋은 기회들이 있었던 것을 알수가 있을 것이다. 집안싸움 하느라고 국제 정세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역사는 후대에게 좋은 교훈을 남긴다. 그래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우리 역사를 통하여 배워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는데 활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조선의 당쟁을 일목요연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매우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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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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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편보다는 나은 편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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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조선의 지존으로 서다 - 타고난 절대군주가 뿜어낸 애민의 카리스마 숙종의 진면목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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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사관이 독자를 혼란스럽게하여 역사서라기보다는 참고 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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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조선의 지존으로 서다 - 타고난 절대군주가 뿜어낸 애민의 카리스마 숙종의 진면목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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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637년 인조 15년에 있었던 삼전도의 굴욕에서부터 숙종치세 말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한 책이다. 인조의 쿠데타 후, 두 번의 호란을 거쳐 혼란스러웠던 국가 정세속에서 숙종은 세자에 책봉이된다. 세자로서 보양청에서의 양육과 세자 교육과정 을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하였다.  

때는 당쟁의 소용돌가 치던 시기였고, 예송 논쟁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 시기였다. 숙종은 당파의 갈등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정치적 역량을 보인 군주로 저자는 쓰고 있다. 어떻게 보면 숙종의 정치력이 빛나는 듯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의 거두 송시열과 김석주등의 정치력에 휘둘린 군주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신권에 의해 왕권을 침해당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인 신강군약의 관성이 이어진 탓일까... 숙종을 절대 군주라는 칭하는 저자의 견해와는 달리, 숙종시기의 국정은 잦은 환국으로 혼란스러웠고 신하들들에게 휘둘리지 않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상평통보를 보급하여 경제의 질서를 개선하고자 한 점과 암행어사제를 활성화시킨 점은 높이 평가 받을 만 하다. 그러나 당파의 갈등은 심화되고 권력 앞에서 사림들은 마치 진정한 선비인양 그 기개를 드높였다하나, 그 선비의 기개라는 것이 사실는 당파의 권력 다툼의 일환으로 행해진 일들인지라 정녕 선비 정신이라 보아주기도 마땅하지 않다. 숙종 당시 당파는 서인과 남인, 청남, 탁남, 노론과 소론등으로의 더욱 분열하여 국정은 어지러웠다. 이 점은 저자가 제 아무리 숙종을 절대군주니 하는 소리를 한다 한들, 역사적 사실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볼때 적절한 사관이라 보기 어렵게 한다. 오히려 군주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후대의 영정조가 탕평을 기치로 삼아 정국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다는 점과 비교한다면 숙종은 분열하고 있는 당파의 갈등을 적절히 이용하기에 급급했던 군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요즘도 역사드라마 중 최고의 모티브가 되고 있을까...인현왕후와 장희빈 그리고 숙빈 최씨등과의 관계는 당파의 힘에 그 얼마나 휘둘린 왕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실록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숙종 띄워주기에 동의하기가 쉽지않다. 숙종 때 사화가 없었다고 해서 정치가 안정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견해라 보기 어렵다. 숙종 재위기간인 60여년 동안 많은 환국으로 국정이 늘 불안했고 피의 복수는 또다른 피를 부르곤 했는데 환국은 이름만 다를 뿐 사화나 다름이 없는 처절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국정이 불안하면 백성의 불안은 더욱 심화되고 만다. 그래서 속종시기의 정승자리는 파리 목숨보다 못한 자리였다. 당쟁의 한 복판에 서있던 숙종의 변덕이 그 원인이라면 원인인 셈이었다. 국정은 늘 어지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종을 너무 띄워주기하는 저자는 여기에서도 불안한 사관으로 일관하여 읽는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사관의 부재는 이 책을 참고도서라고 하면 차라리 적절한 표현이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좋은 참고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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