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 - 설득과 통합의 리더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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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유성룡은 나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 중 한 분이다. 책의 뒷 표지에 써있는: 위기 돌파 능력, 비전의 제시 능력, 탁월한 국정 수행 능력, 뛰어난 외교력, 유연한 사고, 날카로운 인재 발탁 능력등 저자가 쓴대로 통합의 리더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는 그 보다 더 매력적인 인간적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능력으로 치자면 삼성의 이건희나, 히딩크는 물론 이에 못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측면만이 인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유성룡은 전쟁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북인 이이첨의 탄핵 상소로 실각하기까지 파란 만장한 국정과 전쟁의 한 가운데에 서있었던 인물이었고, 전란 극복의 첨단에 서 있었지만 후대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인물은 유구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찾아보기 어렵지 않지만 서애 유성룡 선생이야말로 널리 알려져야할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유성룡의 정치인으로서 인물됨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은  어느 당파에 가담하고 있기보다는 당파가 나뉘는 것을 염려하였던 몇 안되는 인물 중 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또다른 대표적인 분이 율곡 이이선생님이셨다. 

 유성룡과 친분이 있었던 이순신장군 역시 어느 당파에 휩쓸리지 않았지만 유성룡과의 친분 때문에 모진 고초를 여라차례 당하기도 했었다. 당파란 적정 수위를 넘지 않는다면 발전적인 정치 모델로 그 역할을 원활하게 해 나가겠지만, 조선의 당쟁과 같은 상황에서라면 국가의 발전은 뒷전에 두고 정권 장악에 혈안이 되어버리기 일쑤여서 조선의 백성들은 편할 날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유성룡은 국가의 안위를 먼저 염려했고 당파의 화해를 위해 융곡 이이와 함께 노력했다. 그런 유성룡이 깊이 깨우침이 있었던 것은 성리학이기 보다는 오히려 앙명학이었다고 한다. 양명학은 성리학의 가르침과는 달리  

"성인의 마음은 천지만물로 일체를 삼으니 세상의 사람에 대해 내외원근의 구별을 두지않고, 무릇 혈기 있는 것은 모두 형제나 친 자식으로 여기어 그들을 안전하게 하고.... 대인은 천지 만물을 한 몸으로 삼는 자다. 그는 천하를 一家 같이 여긴다. 이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仁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다..." 라는 놀라운 주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유성룡은 이 가르침에서 귀천의 차별이 없음을 알고, 전란 중에 속오군을 설치하기에 이르른다. 속오군은 양인 뿐만 아니라 천민과 양반까지도 포함하는 군대였다. 양반과 천민이 한 무리에 섞여 재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유성룡의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라를 지키는데 양반 빼고, 천민 빼고나면 지킬자가 몇이나 남겠는가...물론 이는 전시의 특수한 상화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연스러운 일 같지만 실상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결과 전란이 끝나고 다수의 천민들이 그 신분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성룡의 발상은 골이 깊었던 조선 성리학 주도 하의 사회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유성룔은 율곡 이이가 건의가 불발로 끝났던 대미수공법의 실천을 강력히 주장했다. 전주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대미수공법을 추진하게된 배경에는 백성들의 생활 안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의 발로였다.  

 유성룡은 이런 생각에 미치자 선조에게 강력한 상소를 올린다. 가히 혁명적인 세제개혁안이라 할 수 있는 대미수공법의 엔진에 시동을 건 것이다. 공납의 폐단은 조선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혀결하려고 나선 인물은 몇 안되었다. 조광조의 개혁드라이브도 실패로 끝난 상황에서 당쟁이 불꽃이 튀는 마당에 백성의 고달픈 인생을 돌볼 마음의 여유를 정치인들은 가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거유 송시열 마저도 대미수공법에 반대를 하고 나섰을까...정말 실망 대실망의 송시열이다.  

유성룡의 강력한 드라이브로 결국 대미수공법은 간신히 실행되게 되었다. 그러나 사대부들의  반발은  거셌다. 장치 일선의 관료들은 물론 각도의 감사들과 고을의 수령들까지 들고일어서 반대를 하였다고하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러나 유성룡을 실각시킨 서인들은 유성룡이 힘들여 만들 시스템을 역시 도루묵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었을까... 백성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을 나눌 수 있은 그럴 듯한 관료들이 별로 없었으니 말이다.. 

역사는 이토록 훌륭한 선비 유성룡을 조명하려하지 않는다. 최근에서야 징비록과 서애집, 유성룡이라는 이름으로 몇종의 서적이 출간되었다. 그나마 뜻있는 사학자들의 노력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대다수의 주류 사학자들은 자신들의 계통이 아닌 훌륭한 선조들을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렇게 뭍혀져가는 인물들은 이제는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고, 그분들께 감사하며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이 크다... 서애 유성룡께 깊이 감사드린다...

  이 책은 그러한 유성룔선생의 자취를 낫낫이 조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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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두려워하며 - 조선을 움직인 23인, 그 진실의 기록
윤용철 엮음 / 말글빛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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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인물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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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두려워하며 - 조선을 움직인 23인, 그 진실의 기록
윤용철 엮음 / 말글빛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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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들어봤음직한 인물들로 책을 구성하였는데, 주로 인물의 졸기와 그에 대한 상소를 근거로 구성하였고 저자의 식견을 첨가한 방식이다. 

조선 세종때 정승으로 이름을 드 높였던 인물 황희에 대한, 어쩌면 역사에 관심이 적었던 분들에게는 새로운 내용이 들어있어 청백리요 기상 드높았던 정승 황희에 대한 환상을 깨트릴 수도 있겠다.  

고불 맹사성은 개인적으로도 지극히 존경하는 인물로, 그 청렴함과 재상으로서의 인품및 능력은 가히 조선의 그어떤 정치인에게 견주어도 단연코 으뜸인 분이다. 진정 선비란 고불 맹사성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뜻밖의 인물은 김상헌이였다. 이 책에는 "정묘호란 때 명나라에 가 구원병을 요청하고 돌아와서는 후금과의 화의를 끊을 것과 강홍립의 관직을 복구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대표적인 척화론자로 추앙받았고 저서에 야인담록등이 있다."고 써있다. 물론 이는 적절한 표현이다. 

 성공해서는 안될 쿠데타라고 생각하는 인조반정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이 안동김씨 김상헌이다. 인조의 쿠데타가 성공을 거두자 김상헌은 이조참의에 발탁되어 청서파의 영수가 된다. 당시 조선은 후금(청)의 침입으로 인조가 남한 산성에 갇힌 상황에서 화친론과 척화론으로 분열한 상황이었다. 화친론의 대표는 최명길이었고, 척화론의 대표는 김상헌이었다.  

당시 상황의 조선은 고려가 거란의 3차 침입 시기와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1019년 거란은 10만 병력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였다. 물론 당시의 거란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였고 전투 요원들도 최고 정예였다. 이에 항복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장으로 의견이 분열된 상태였다. 항복하자는 주장에 강력히 반발하며 감감찬 장군은 거란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즘 고구려의 군병력은 21만-30만에 가까운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거란군이 특수 정예 요원들이라고는 하지만 고려로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강감찬은 거란의 10만 대군 중 2-3천여명 만이 거란으로 돌아가도록하는 완승벽한 승리를 거둔다.  더구나 2차 침입 때의 거란군 40만 병력도 잘 막아내지 않았던가... 

그러나 당시 조선의 상황은 그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왕실은 남한산성으로 도피하여 추운 겨울 날을  힘겹게 지내고 있는 상황이었고, 백성들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김훈의 '남한 산성'은 당시의 참상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 즉, 척화하여 전쟁으로 겨룬다면 조선은 그야말로 전국토가 쑥대밭이 될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조선은 임진왜란의 처참한 폐허속에서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이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빌게 아닌가. 7년간의 임란은 조선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 전쟁이었으므로 하루 먹고 살기도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조선의 정치는 당쟁으로 분열의 분열을 거듭하고 있었고, 실리적인 외교와 정치력으로 조선을 회복시킬 수 있었던 광해를 끌어내리고 올라선 입장인지라 백성들의 지지도 받고 있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국방의 체제는 그야말로 형편없는 상황이었는데다가, 후금이 힘을 쓰면 그대로 쓰러져 버릴 그런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김상헌은 척화를 주장한다. 과연 백성을 살리자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그래 너희는 화친을 주장 하거라. 나는 척화를 주장하여 조선의 자존심은 물론 나의 개인적인 명예를 지키련다." 뭐 이런 생각이 김상헌의 머리를 지배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김상헌은 어차피 화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세라는 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중에 척화를 주장하는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기회를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는 기회로 활용하고 싶어한 것은 아니었을까... 김상헌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당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리도 없잖은가... 

덕분에 최명길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다. 화친을 하자는 신하들은 죄다 역적이요, 척화론자들만이 죄다 충신이던가...이를 김상헌은 교묘히 이용했다는 심증만을 가질 뿐이다. 

  어쨋든 눈물로 항복를 써내려간 최명길의 문서를 찢어버린다. 찢어진 항복문서를 최명길은 다시주워 조각 맞추기를 했다고 김훈은 쓰고있다... 

물론 척화론을 주장한 죄목으로 김상헌은 후금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와 그야말로 국민적인 영웅이된다. 김상헌은 조선의 기개를 끝까지 지켜낸 선비의 반열에 올라서 있었던 것이다. 시나리오 치고는 좀 멋지지 않은가? 덕분에 김상헌의 이름은 조선에 드높아졌고, 그의 손자 김수항은 할아버지의 명망을 덕분에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정승에까지 오른다. 

김상헌의 기개는 가상하나, 전국토의 안위와 국민의 목숨을 놓고 척화론을 주장한 것은 상황 파악을 못한 관료이거나 아니면 만용부린 것이라 본다. 어차피 화친하게될 상황이니 나라도 한 번 성질부려보자는 그런 의구심이 들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차라리 거란군이 쳐들어왔을 때 우습게보다가 사로잡힌 강조 장군은 비록 실수로 일을 그르치는 불충을 저질렀지만 끈질긴 회유에도 불구하고 항복하지 않아 결국 참수당하고 만다. 뭐 꼭 죽으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김상헌은 강조 장군과는 전혀 다른 경우 였다. 그래서 강조는 절개를 지킨 것이요, 김상헌은 백성을 위태롭게 했던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김상헌의 작전이 잘 맞아 떨어진건 아닐까... 

물론 화친론자였던 최명길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도 역시 쿠데타의 주역이긴 마찬가지 였으니 말이다. 쿠데타로 이미 일을 그르친 것은 그르친 것이고, 그나마 상황을 파악하고 슬프고 참담하지만 항복문서를 작성하여 삼전도의 굴욕으로 남아있는 우리 역사를 보존케 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김상헌의 등장은 뜻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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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바흐 : 골드베르그 변주곡 BWV 988
DG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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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베르크 입문반으로 단연 최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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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바흐 : 골드베르그 변주곡 BWV 988
DG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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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베르크 역시 우리의 애호가들의 귀를 홀리는 작품 중 하나이다. 바로크의 음악이 이처럼 널리 애청되는 이유는 곡이 주는 빼어남때문 일 것이다.  이 곡은 본디 클라비코드를 위한곡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면을 돕기위한 곡이라는 널리 회자되는 스토리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본다. 쳄발로의 카랑카랑한 연주 소리는 솔직히 수면을 방해하는 요인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불면인데 클라비코드소리라니...ㅠㅠ

(물론 졸리면 괭과리리가 압도하는 사물놀이 터에서도 코를 골기도 한다지만... 이는 극도의 피로를 전제로한 것이니 예외적이라 하겠다.. 내게 처음 쳄발로는 신경질적인 소리로 들려 애착이 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경험이 있다. 물론 익숙해지고 나면 아침 햇살과도 같은 빛을 발하는 금빛 음색으로 변하는 것이 쳄발로이기도 하다. 아침 햇살은 잠깰 때의 느낌인데?? 혹자는 골드베르크가 저토록 감동적인데..잠이 확 깨죠~ ) 

 차치하고.... 

골드베르크를 듣는 경험은 좀 특별한 듯 하다...청자마다 평가가 너무나 달라 결정반을 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결정반이라는 말이 어불성설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최악의 골드베르크 입문은 글렌 굴드로 시작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잠이 확 깨는 소리라고 깜짝놀라며 반문 하는 애호가분들이 계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굴드 연주를 사랑하고 그의 특징을 애호하는 분들이라면 이 말을 이해해줄지도 모른다. 굴드의 연주에 중독되면 다른 음반들을 아예 쳐다보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되었기 때문이다. 왜냐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굴드에 중독이 되어, 이거 아닌데.. 싶어 덜컥 겁이 나기 때문이다.  

 굴드에 중독되는 것의 폐해는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토록 멋진 할머니 니꼴라예바의 연주를 외면 할 것이요, 로잘린 투렉여사의 연주는 또 어떠하던가. 앙타이, 레온하르트, 안드라시 쉬프, 페라이어, 골드베르크 감성의 황녀 마리아 유디나등의 음반은 도대체 어찌 할 것인가..

 

그러면 골드베르크의 최고 입문반은 어떤 것이 좋을까... 

골드 베르크의 입문반-빌헬름 켐프

골드베르크 입문하는 애청자에게는 바로 빌헬름 켐프의 연주반이 단연 최고라도 생각한다.  켐프의 연주반은 굴드의 연주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시큰 둥 할지도 모르겠다. 뭐이라 싱겁냐는 반응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굴드로 골드베르크를 입문하는 일은 절대로 말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켐프의 연주를 몇번 들어보면 켐프의 연주를 느낄 수 있다. (물론 골드베르크 입문자라면 바로 켐프의 피아노를 사랑하게 될 것이지만...)  

여타의 수많은 애호반들을 언급하는 것은 '말하면 잔소리'일 것 같아 켐프의 연주만 적는 것이 좋겠다. 그의 연주는 우선 담백하다. 이 느낌을 때로는 담담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담담하다'는 말을 우리는 꾸밈이 없다는 표현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 켐프의 연주는 담담한 꾸밈이 없는 연주이다. 그러므로 담백한 맛이 난다.  

반면 굴드의 연주는 아름다움과 기교로 똘똘뭉친, 그러면서도 영양가만 가득 들어있는, 알맹이만 있는 좋은 음반과 같다. 어머니가 준 음식이 영양가 좋은지 몰라서 불량식품 찾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켐프반이 불량 식품이라는 오해는 절대로 하지 마시길...)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켐프의 음반은 시종 담백한 참 맛을 음미하게 해준다. 또한 그의 연주에서는 정직함이 묻어 난다. 내가 켐프의 음반을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이유는 바로 이 정직함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좋은 음반의 기준을 항상 태교 음반에 최적합성 여부를 생각하게 되었다. 정직한 켐프의 피아니즘...  

켐프의 음반은 바로 태교의 음반으로 최적합하다는 생각이다. 담백함과 정직함이 어우러진 켐프의 연주는 청소년을 연상시키며 경쾌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어느 분은 골드베르크를 들을 때면 마치 의식을 행하듯이 만반의 준비를하고 듣는 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와인도 한잔 준비하고, 불도 끄도, 밤이어야 하고, 꼭 혼자서 듣는다는....아마도 그 분만의 골드베르크 사랑법일 것이다. 이점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켐프의 연주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골드베르크, 기꺼이 즐겨 들을 수 있는 골드 베르크... 제 1 변주부터 제 30 변주에 아리아로 끝을 맺는 이 곡은 머리와 맞물려 있어 청자의 정서을 잘 정리해주고 있다. 3,6,9식의 카논은 1도씩 음정이 붙어 27번에 이르러 9도의 카논에 닿는다.  

 음악 속에 아름답게 배어있는 수학의 변화... "저 수학 못하는 대요!" 수학 못하는 사람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왜냐면 작곡가가 알아서 문제를 내고, 연주가가 알아서 그 문제를 아름다운 예술로 풀어가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구경만 하면 된다. 화가가 아니라도 다들 그림을 보고 느끼지 않는가...그러하기에 그 변주가 하나씩 변화해 나가는 모습을 상기하며 들으면 더더욱 좋은 골르베르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켐프의 연주로 시작하여 여러가지 좋은 음식들을 섭취하고나서 굴드에 이르는 것이 좋은 순서가 아닐까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빌헬름 켐프로 시작하여 굴드로 끝을 맺는다...상상만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일이 아닌던가... 

골드베르크 입문 구도를 이와 같이 잡을 때 켐프의 연주는 단연 별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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