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언젠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친구는 서구의 사고가 동양을 지배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어디 동양 뿐 이던가. 전 세계를 지배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의 요지는 서구 사상의 강력한 위대성을 말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한창 서구의 철학에 깊이 침잠해 있었고, 한마디로 노닐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 친구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타자를 지배할 수 있는 철학적 사고와 그 논리, 한마디로 서구의 ‘이성’이야 말로 얼마나 위대한 것이던가. 과학을 일으키고 각종 분야의 학문을 일으켜 전 세계의 사고와 관념을, 즉 우리의 세상을 완전히 딴 세상으로 바꾸어 놓은 사상이 아니던가.

 

하여 나는 과거 칭기즈칸과 그의 후예들이 80여 개국을 점령했고, 해가 지지 않던 나라였던 영국이 과거 지배한 땅의 2배, 그토록 위대하다는 알렉산더가 지배했던 땅의 7배가 넘는 땅을 강점하면서 무자비하게 휩쓸어버렸던 그 위대함을 말해 준 적이 있다.

 

 

때마침 몽골의 칸이 죽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프랑스, 독일 등도 北方之强(북방지강)의 그 강력하고도 거친 위대함 앞에 결코 무사치 못했을 것이며 현재의 유럽은 존재치 않았을 것이다. 유럽을 한창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었던 몽골군은 차기 칸을 선출하는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철군했던 것이다.

 

알고보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인도를 통해 몽골로 가고자 함이었다.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아 나선 것이지만 최종 목표는 몽골과의 무역 이권이었던 것이다. 몽골의 위대함을 실감할만한 대목이다.

 

 

 

 

목차를 비롯,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자 기대감으로 가슴을 부풀게 하는 책을 만나곤 하는데 신영복의 『강의』가 그 중 하나이다. 구입해놓은 지는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저 머리를 식히는 용도로 간간히 읽어볼 요량으로 미루고 미루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러나 나의 편견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저자의 글 전개방식이 눈에 띈다. 강의라는 제목이 말해주는가. 글은 논리정연하고 질서가 있다. 진도를 나가며 새롭게 되짚어 올라갈 필요가 없다. 명료하다. 교과서를 연상시키는 내용의 전개가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의 장점이다.

 

한마디로 글의 전개 방식이 명료하고 글은 유려하며 질서 정연한 문체가 돋보이는 책이다. 더구나 내재하고 있는 온고지신의 창의적 사고는 나의 편견이 그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자각하게 한다.

 

고전 관련하여 출판되는 많은 도서들은 강의라는 형식을 빌어 짜깁기의 냄새를 지독하게 풍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목차만으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는 책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밀도 있고 심원한 그 무엇인가를 결여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 말이다. 알고 보면 나의 편견은 이유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편견을 보기 좋게 깨트려주는 책을 만난 것이다.

 

이 책의 의도를 한마디로 약한다면 ‘동양 고전 독법’이다. 시대를 거슬러도 한참 거슬러 올라가는 동양 고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즉,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다. 고전이라는 매우 친숙한 이름들이 등장하는 것는 당연하다. 역(易)을 비롯 유․도․묵․법가와 그들의 생각을 텍스트를 통해 조명하며 큰 줄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 경우라면 일반적인 것 이겠지만 이 책의 특징은 한 발 더 나아가는데 있다. 독자로 하여금 사유하도록 유도하는데 있다.

 

누군가로 하여금 사유토록 하기위해서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을 뛰어 넘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글쓴이의 창의적인 생각과 그 생각이 주는 여백, 그것이다. 나머지 여백은 독자 스스로 채워가야 한다. 물론 사유를 통해서다.

 

또 다른 장점은 서구의 역사를 지배해온 '생각'을 함께 사유토록 하는 점으로 그 의미가 크다. 저자가 대표적으로 던져주는 테제는 서구의 존재론, 동양의 관계론이다. 서구의 진리가 형이상학적 차원의 신학적 문제라면, 동양의 ‘道’는 ‘길’이다. 서구의 '도'는 사유 속에 있고, 동양의 '도'는 삶 속에 있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동서양 철학의 테제가 마무리되면 동양 고전의 주인공들을 목차에 따라 등장시킨다. 동양의 사유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이 가지는 사상의 특성을 명료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동안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사유를 유도하면서 말이다. 역(易)도 하나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易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易에 대한 독자와의 간극을 상당히 좁혀주는 역할은 한다. 역을 상대적으로 친근하게 해준다. 더불어 남송대의 유자들이 유학을 연구 발전시킨 동기와 결과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뒤이어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말할 것도 없이, 공맹순노장, 그리고 묵․법가이다. 이들의 철학이 서로 다른 것이라고는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相(상)이다. 반면 서양의 그 것은 絶(절)이다. 부연하자면 동양의 相對(상대)와 서양의 絶對(절대)인 것이다. 하여 동양의 고전은 관계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반면, 서구의 그것은 존재론으로 환원한다.

 

우리의 국민 정서는 종교의 다양성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반면, 서구의 명문법은 그 다양성을 인정을 하되 실질적으로는 이단을 용서치 않는 정서를 가지는 것은 이러한 사유의 차이다. 이러한 사유는 독선이 될 수가 있다. 존재론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절대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 되버린다. 철학이 정치의 시녀, 혹은 부속품이 되기도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동양의 그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선은 좋은 예이니 말이다.

 

하여 동양의 관계론은 실천이 뒤따른다. 반면 서구의 그것은 사유 속에서 맴돈다. 사유의 틀을 벗어날 수가 없다. 틀을 깨는 순간 모든 것은 죄다 흩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서양은 그것을 한 곳으로 모아서 가두어두려 한다. 서구의 과학이 ‘중력자’를 그토록 애타게 찾는 이유도 그것이다.

 

 

 

독선이 불러오는 비극

 

동양이라고 해서 사유의 독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학을 국시로 삼았던 조선이 그러했다. 주희의 그것과 한 글자라도 다른 사유는 사문난적이며 처단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서인들은 주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독선에 빠져 전체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당시 대 학자이자 실천을 중시했던 윤휴는 주자의 중용장구 주석을 다르게 고쳐 읽었다. 숙종실록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자사의 뜻을 주자 혼자만 알고 어찌 나는 모른단 말인가’라고 했으니 이는 진실로 사문(斯文)의 반적(叛賊)이다. 「숙종실록」 3년 10월 17일

 

결과는 뻔했다. 윤휴는 전체주의 집단의 집요한 모략과 음모를 견디지 못하고 난적도 아닌 반적으로 몰려 결국 사사되었다. 같은 유학자끼리도 이러한 독선을 적용시킨 것이 조선이었으니 사상이 다를 경우에는 어떠했겠는가. 조선 후기에 유일하게 노자주(老子註)를 집필한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박세당이 바로 그 냥반이다. 유자(儒者)로서 박세당은 도가(道家)인 노자주를 집필한 그 죄가 크다하여 또한 사사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박세당은 유자였지만 주희를 중심으로 교조화된 유학의 획일화를 염려했다. 실천, 즉 후대들이 실학이라고 칭하는 백성을 위한 실사구시를 외치던 윤휴와 박세당은 그렇게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목숨을 강제당할 수 밖에 없었다. 

 

 

중국의 왕필은 새파란 20대에 노자주를 완성했고 현재 그의 역작은 명저라 불리고 있지 않던가. 조선이 동양 사상에 물들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전체주의적 독선에 빠지면서 사유의 다양성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우리가 도․묵․병가에 실로 어두울 뿐만 아니라 사유를 강제당함으로서 폭 넓고 자유로운 사고를 발전시키지 못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유가에 목을 매던 조선은 결국 제 자신을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는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타자의 생각을 수용하지 못하는 존재의 종말은 대개 이러하다.

 

서구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언뜻 사유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서양인 듯 보이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다양하다 한들 그 방향성에 문제가 있었다. 서구 사상의 특징은 지고한 사유의 최고점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과학에서도 명징하게 드러난다. 아인시타인을 비롯 서구의 과학자들은 『궁극의 이론』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을 죄다 포함하여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론, 그것이 바로 궁극의 이론인 것이다.

 

애초에는 불변이라고 믿었던 아인시타인이 특수상대론과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의심을 받았고 새로운 이론을 필요로 한다. 이론들은 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발전인지는 판단할 수 없으나 한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결국 서구의 과학은 『초끈 이론』에 다다른다.

 

만약 이 궁극의 이론을 입증했다고 치자, 그 이론이 모든 이론의 종말이라는 것, 즉 진정한 궁극의 이론이라고 과연 누가 절대 확신 할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그들의 사상은 어떻게 정치에 영향을 끼쳐왔던가. 물리적인 강제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들이 필요한 것들을 빼앗아 왔다. 선의의 경쟁이란 그들만의 것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고,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미국 독립선언문) 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자신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고 타자들은 완벽하게 제외된 평등과 권리이며 자유와 행복의 추구였던 것이다.

 

이정도면 애교에 가깝다. 전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면서 타자를 학살했던 독일을 보면 더더욱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핵심이 고전 독.법.인 이유

 

제 아무리 양서를 많이 읽고 사유한다 한들, 그 방향성이 바르지 않다면 오히려 독선이 되고 비극을 불러올 수 있음은 분명하다. 저자가 이 책을 易(역)의 이해로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동양 사상의 출발점인 易은 애초부터 변화로 시작하여 변화로 끝을 맺는다. 세상은 무한한 변화의 연속이고 상호 관계한다. 절대(絶對)란 존재하지 않는다. 태초에 절대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스스로 변화를 해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 동양의 생각이다. 변화는 바로 창조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존재가 우주를 가득 채울 만큼 확장한다하더라도 그 존재는 의미를 찾을 길이 없다. 다른 그 어떤 존재가 있어주어야만 자신의 존재가 '존재'하는 것이 바로 동양의 생각인 것이다. 상대가 없는 ‘나’는 의미가 없다. 혼자서 하는 운동이 재미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지속하기가 힘들다. 몇 일 혼자 하다가도 영 흥이 나지 않는다. 혼자서 할 수 밖에 없는 수영도 그 어느 상대와 어울릴 때 만이 흥미를 더하는 것이 아니던가. 여럿이 하는 축구도 마찬가지다. 한 팀만 있어가지고는 흥이 나지 않는다. 여러 팀이 우승을 놓고 대(對)를 할 때만이 신이 나는 것이다.

 

 

여기서 對(대)라는 말은 敵(적)이라기보다는 짝(對)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옳다. 우리는 그렇게 누군가가 우리의 짝이 되어줄 필요가 있다. ‘그대’가 있음으로 ‘나’가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세상의 모든 생물은 그리하여 짝짖기를 한다. 짝짖기는 어찌보면 창조의 본능이다. 짝을 이루지 못하면 창조를 이루어 낼수가 없다. 상호 짝을 이룰 때 만이 창조는 가능한 것이다.

 

하여 相交(상교)라는 것은 동양 사상의 기본 개념이 되고 바탕이 된다.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서로 비긴 바둑을 화국(和局)이라고 할까. 서로는 同(동)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화(和)는 이루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이 독법인 이유이다.

 

하여 『강의』는 우리에게 고전을 관계라는 소통을 염두에 두고 읽도록 권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이다. 저자가 주인공들을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소개하다보니 읽고 싶어지는 책이 한둘이 아이다. 흔히 말하는 四書는 물론이요 도가, 묵가, 법가등이 그러하다. 책에서 책으로의 전이를 불러일으키는 책이 바로 『강의』인 것이다. 책이란 자고로 이래야 하는 법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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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장에 즉, 머리말부터 임팩트가 강력한 책이 있으니, 바로 헤세의 문장론이다. 지성에 호소라도 하듯 거침없이, 자신감 있고, 도도하게 흐르는 문장, 이 책의 머리말이 그러하다.

 

초장에 대차게 나오는 넘치고 별볼 일 없는 넘들이 많은데, 헤세의 문장론은 예외이다. 알고보니 이유가 있었다. 초장부터 강력했던 것은 바로 헤세의 글에 있는 내용을 역자가 자신의 글과 버무려 버렸기 때문이다. 하여 독자의 가슴을 이토록 설레게 하는 머리말은 처음 만나보았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역서의 냄새를 지워내려 무던히도 노력했다는 점이다. 불가피한 몇몇 표현은 논외로 해야 할 것이다. 역서는 어쩔 수 없는 역서이니 말이다. 그 점을 감안한다면 외국어의 한글화가 단연 돋보이는 역서이다.

 

 

문장론이라고는 하지만 부제가 이를 말해주고 있듯이 작가에게 뿐 아니라, 독자로서 알아두면 매우 유익한 조언들을 가득 담고 있다. 도서의 선택 방법, 책을 대하는 태도, 독서법 혹은 태도등 독서를 하되 흔히 우리 대부분이 간과할 수 있는 부분들을 헤세는 자신의 인문학적 견해를 통해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아쉬움이 있다면 헤세가 독일인 이라는 점이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도 그러하지만, 그가 한국인 이었다면..하는 아쉬움 말이다. (이것은 지극히 미련한 생각이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또 다른 아쉬움은 같은 내용의 다른 글을 중복시켰다는 점인데, 9장(1910)과 29장(1930년)에 쓴 두 글이 바로 그러하다. 어떤 부분은 거의 토씨 한자도 틀리지 않으며, 전체적인 내용 또한 차이는 없다. 다른 글로 대체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필경 그만한 사정 또한 있지 않았겠는가. 다른 한 편으로는 20년이 흐른 뒤에도 헤세가 자산의 기본 개념을 변함없이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 일종의 수확이라면 수확이겠다. 기본 개념에 무쌍한 변화를 가지는 것도 일변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과거 그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데미안’을 읽는 순간, 헤세가 나의 머리와 가슴 속을 속속들이 읽어내면서 헤집어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에 오싹하는 전율을 느낀 적이 있다. 하여 당시 나는 헤세를 두려워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냥반, 헤세의 생각과 마음 속에 내가 들어가 그의 것들을 하나씩 들추어내고는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는 희열이고 기쁨이며 행복이다. 수십 년 전 나처럼 당했던 일을 멋들어지게 헤세에게 되돌려주는 기쁨을 누리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읽으셔도 좋다.

 

 

그런데,

이 느낌은 책의 전반부를 읽어나가는 나의 생각이었을 뿐, 나는 페이지를 넘겨 갈수록 반전을 맞이한다. 읽어나가며 생각해보면 문득 깨닫게되는 한 가지가 있다. 그의 글을 통해, 다시 나는 나의 생각을 그에게 되려 스캔당하는 느낌이 불현듯 드는 것이다. 내가 그의 생각을 헤집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나의 등을 타고 앉아있다. 이는 마치 독자와 글쓴이가 쫒고 쫒기는 묘한 관계를 성립시키는 독특함을 준다.

 

내가 헤세의 등에 올라타 있구나 싶으면, 어느새 그가 내 등에 다시 올라타 있는 이 읽힘의 연속. 그의 정신을 관통하며 헤집고 있구나 싶으면 어느새 그의 칼날 같은 관조가 나의 정신을 뚫고 지난다.

서로는 그렇게 낭자히 흐르는, 서로의 상처에서 흐르는 그 무엇인가를, 끈끈한 것을 뚝뚝 떨어뜨리고 만다. 다만 붉은 색의 액체가 아니라는 점, 그것은 붉을 수도 있고 초록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일깨움이며 정신의 소통이 남겨주는 아름다운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그가 독일인인 것이 아쉬울 뿐이다.(미련하기는~)

 

때로는 나를 좌절시키는 대목을 만나기도 한다.

창작과 사고가 거의 같은 것이라는 견해, 세계관을 묘사하는 것이 문학의 임무라고 견해는 오류이다. 작가에게 추상적 사고는 위험 요소이며, 심지어 가장 커다란 위험 요소이다. ....중략.... 다만 추상적인 인식이 주된 핵심이 되는 순간 작가는 예술가이기를 멈추게 될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문학은 사유가의 체념이 창작자를 정화된 냄정한 삶의 관조로 이끌어서, 작가가 가치판단이나 철학적 근본문제를 포기하고 순수 관조로 들어갔을 때 생겨난 것이다. 101쪽

 

물론 내가 작가가 되려는 생각으로 이런 좌절을 언급 하는 것은 아니다. 나로서는, 독자로서 문학을 바라보는 태도의 오류를 날카롭게 지적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좌절스러운 내용이었던 것이다. 개인의 고뇌가 너무 클 때, 순수 관조에 이르지 못함을 헤세가 작가에게 고하는 말이지만 독자로서도 뜨끔하지 않은 수 없는 냉철함과 그의 관조를 느낄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헤세가 그토록 섬뜩하리만치 나를 관통하는 ‘데미안’을 쓸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감동적인 대목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 중 인상적인 몇 가지를 적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책을 읽을 때 스스로 주의 깊게 함께 하고 함께 체험하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나쁜 독자이다.

119쪽

 

형편없는 시를 짖는 것이 심지어 최고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보다 훨씬 행복함을 알게 될 것이다.

158쪽

 

책의 주제와 멀어보이는 듯 보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아무 것도 신성한 것은 없다. 131쪽

 

칸트는? 나는 망설였다.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칸트는 그냥 놓아두기로 했다. 니체는? 서간과 함께 꼭 필요하다. 160쪽

 

괴테와 휠덜린, 도스토엡스키의 모든 책들은 남겨둔다. 162 쪽

 

 

눈에 띄는 대목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아래와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노자의 책에 적혀 있다. 그 지혜를 유럽어로 번역하는 일은 현재 우리의 유일한 정신적 과제이다. -170쪽

 

이 대목은 내게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그저 서양의 어느 통찰력을 가진 이가 동양의 인문학적 정신에 매료되었구나 싶은 정도를 넘어, 그의 표현을 빌자면 ‘유럽의 언어’,‘우리의(유럽의) 유일한 정신적 과제’라는 두 표현이 주는 함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헤세는 유럽이라는 공통체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으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철학적 빈곤함을 함축적으로 반증하고 있다고 이해하도록 만드는 장면인 것이다. 이런 해석은 오해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아직까지 내게는 그렇게 들리며, 헤세의 아름다운 고백이라고 생각 때문이다 ㅠ.ㅠ

 

헤세는 1931년 글에서 자신이 많은 은혜를 입은 동양서적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들 중 가령 여불위, 공자, 장자의 책은 언제든지 손에 잡을 수 있게 가까이 두고 있으며, 특히 역경 같은 경우는 마치 신탁을 묻듯 종종 펼쳐보곤 한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 순간 나는 잠시 숨을 멈추어야 했다. 공자, 장자는 그렇다치더라도 여불위라니...그의 독서가 어디에 까지 닿아있는지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단어가 여불위인 것이다. 더구나 역경을 신탁이라고 표현한 헤세, 나는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신탁'이라는 말이 주는 언어의 함의와 무게감을 적절히 대신할 수 있는 대체물이 과연 있을 것인가...그것도 서양인의 글로 말이다.

 

 

역경을 언급한 부분이 나에게 그토록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서양의 관점에서 역경의 심오함과 그 과학적 위대함은 헤세보다 200여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는 라이프니쯔가(1646-1716)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그는 계산기를 발명하고 미분법을 창안하여 세상을 놀라게하기도 했지만, 0과 1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진법을 창안, 현대의 전산시스템의 근간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역을 연구했고, 그 역 안에 담긴 수리적 원리가 자신이 찾고 있던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대를 전자의 시대로 변화시킨, 마법과도 같은 이진법을 창안해내는 결정적 계기는 바로 역경에 있었던 것이다. 역경을 바라보는 라이프니쯔의 시선은 그 얼마나 경이로움과 놀라움에 가득 차 있었을까.

(읽은 책이 아니고 읽고 싶은 책임) 

 

마찬가지로 헤세도 역경을 언급하며 마치 ‘신탁을 묻듯’이라는 표현을 감히 쓰고있다. 그 함의가 가지는 그 육중한 무게감에서 서구의 철학적 사고를 벗어 던진 헤세의 사유를 들여다 볼 수 있고, 나아가 그가 보여주는 동양의 철학적 가치에 대한 무한한 신뢰의 이유는 무엇일지 동양인인 우리들도 되새길 필요가 있는 의미심장한 대목이겠다. 동서양의 경계를 넘어 통찰을 보여주는 헤세, 그는 진정 아름답다.

 

이 두 인물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한결 같다.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찰력, 바로 그것이다. 주역의 계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고 한다.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역을 설명한 말일 것이다. 易이란 生하고 生하는 것이다. 生한다는 말은 창조력을 뜻하는 것이다.

 

크게는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창조해나가는 우주의 능력, 작게는 개인의 끊임없는 창조력 말이다. 단순한 지식의 축적에서 멈추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지식을 자신의 권력으로 인식한 결과,  타자에게 휘둘러 승리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자신과 인류를 위하는 올바른 창조력 말이다.

 

(역시 읽어볼 책)

 

아직 읽어보지도 않은 두권의 책을 페이퍼에 넣으려니 뻘줌하다. 헤세가 '헤세의 문장론'에서 언급한 책들은 수없이 많다. 그 중 인상적인 역경을 언젠가는 읽어보겠지 싶다. 라이프니쯔는 몰라도 말이다.

 

사적으로는 문장론에 관한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독서를 하되, 관조의 의미를 살려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 관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자각하고 책을 대하는 여러가지 태도들은 이전과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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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철학 연구
이현수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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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본체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태극도(太極圖)라는 것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태극도(太極圖)는 중국 송나라의 주돈희라는 인물이 우주의 근본과 만물이 발전하는 이치를 도해(圖解)로 밝힌 것으로, 태극에서 시작한 우주의 음(陰)과 양(陽),  그리고 오행(五行)을 만물의 원리로 삼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성리학의 우주관은 바로 그 태극도에서 출발하게 되었고 이기론(理氣論)을 바탕으로 인간성 및 수신의 이치를 다룬 인문학으로 발전 전개된다. 성리학자들은 이론(理論)을 기론(氣論)의 상위 개념으로 인식∙확립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성리학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혹은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의 논쟁을 거듭해왔지만(전자의 대표 주자는 퇴계 이황이고 후자의 대표 주자는 율곡 이이이다) 이론(理論)이 중심론(中心論)으로 자리를 잡아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거의 기론(氣論)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일련의 이기론을 둘러싼 논쟁의 과정은 조선의 붕당체제와도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동인(東人)들은 퇴계 이황의 문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서인(西人)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율곡 이이의 문하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만물의 본질을 氣로 파악했던 화담 서경덕과 같은 인물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는 성리학의 이기론이라는 쟁점이 정치, 즉 집권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학문과 사상(철학)은 권력과 분리될 수 없음을 명백하게 증명해주는 정치적 사안이었던 것이다.


하여 흥미로운 것은 이기론이 흔히 말하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매우 원초적인 싸움과 다를 바가 없는 형태를 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론(理論)은 승자가 되었고 기론(氣論)은 패자가 된 셈이다. 결국 이론(理論)은 밝은 양지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반면, 기론(氣論)은 어두운 음지에서 여전히 서성이고 있는 실정이다. 만물의 시작을 理로 파악하고 개념을 정립한 성리학의 승리는 상대적으로 못지않게 중요한 氣論을 연구의 대상으로서의 학문에서 멀어지게 한 셈이다.


이 책의 제목이 ‘기철학 연구’라는 표제를 가지고는 있지만 이기론이 그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지 매우 명료하게 정리해둔 출간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 기철학 연구의 개념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 중국의 학자들의 이기론에 대한 주장과 상대론, 조선의 학자들의 주장과 그 상대론을 매우 일목요연하게 정리했고 그러므로 이론과 기론이 어떤 과정을 거쳐 갈라지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학문 혹은 사상과 정치 혹은 권력과의 역학관계


 이 책은 결국 성리학의 본질에서 기론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성리학을 이기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理論 중심의 학문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때, 태극도 라고 하는 같은 뿌리를 둔 학문이 서로 분리되고 상∙하위(上∙下位) 개념을 가지게 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같은 뿌리를 둔 원류의 사유가 시대가 흐르고 변화하면서 주체와 객체로 분류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나마 氣論을 아예 성리학에서 도려내지 못한 것은 氣가 理를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理를 상위 개념으로 사유하기를 바라는 성리학자들의 주장에서 실제로 氣 없는 理는 존재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론을 철저히 따돌리는데 성공한다.


자신들이 가진 사상의 우위 선점은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적인 토대가 되어준다. 따라서 자신들의 학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유자는 제거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언론의 통제와도 그 맥을 함께한다. 그렇다면 과연 조선의 언론은 어떠했을까...



조선의 백성 전용 언론 창구, 신문고와 격쟁


 조선은 왕이 통치하던 국가였다는 점을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전제 군주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반정이라는 쿠데타의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던 것이 조선이기도 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참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회였다. 어쨌든 불구하고 혹자의 역사가들은 조선이 백성들과 매우 원활한 소통을 한 것으로 가르친다. 심지어 오늘 날의 언론 제도와 비교 손색이 없을 정도 였다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실제로 있다. 과연 그랬을까...

 백성과 소통하는 창구로서 신문고와 격쟁을 대표적인 예로 든다. 신문고는 중국 송나라의 ‘등문고’를 모방한 것으로 백성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기 위한 제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상 일반 백성들이 사용한 사례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비록 대궐 밖 문루에 달아 놓았다고는 하나 주관 부서는 다름아닌 의금부였던 것이다. 의금부는 바로 왕의 직속 기관이다. 과연 그 어떤 백성이 의금부의 힘을 넘어 북을 울릴 수 있었겠는가...

 

 신문고를 울리기까지는 매우 복잡한 절차를 필요로 했다. 예를 들어 서울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지역 담당 관청을 거쳐 사헌부에 먼저 호소해야 했다. 한마디로 사헌부의 허가를 받고 나서도 다시 의금부 담당 관리의 조사를 받은 후 신문고를 울려야 하는 것이다. 

 

 지방의 백성들은 더 어려웠다. 지방 거주지의 원에 가서 억울함의 절차를 밟았다는 확인서를 먼저 받아야한다. 다시 도의 관찰사에게 같은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리고 한양의 사헌부를 거쳐 다시 의금부로...과연 그 어떤 백성이 이와 같은 절차를 밟아 신문고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 글을 못 배운 백성들이 과연 서류하나 제대로 작성 할 수 있었겠는가...

  

 또한 북을 울린 대부분은 서울의 관리들로 토지나 노비의 소유권 다툼이 대부분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알고 보면 지방 관리들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신문고였다. 하물며 힘없는 백성들임에랴.... 사실상 조선의 신문고는 백성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위한 전시행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신문고는 폼이나 다름이 없었던 장신구였던 것이다.


신문고가 폐지되고 격쟁이라는 것이 신설되었다. 격쟁은 왕이 궐 밖으로 외출을 하는 찬스를 이용해 징이나 꽹과리로 큰 소리가 나도록 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제도였다. 왕이 매일 궐 밖로 나가는 것도 아닌 다음에야 정말 이것을 진정한 소통의 창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억울하다고 모두 격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격쟁의 내용에도 제약이 따랐다. 그 효과가 미미했다는 점에서 신문고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백성들의 억울함을 위해 시행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형식에 불과했던 제도로서 그 실용적인 가치를 찾아보기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오죽했으면 고등부의 교과서에서 조차도 신문고와 격쟁을 일컬어 ‘일반적으로 시행되지 않았다’라고 고백하고 있을까...




식자들과의 소통 창구, 상소


다른 소통의 창구로 조선은 상소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일반 백성이 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관직에 있는 관료나 혹은 과거에 합격한 선비들 전용으로서 그 형식이 구별되는 제도이다. 상소는 그 내용이 왕에게 바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하여 그 절차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각 고을의 수령이 상소를 받고, 해당 도(道)의 감사에 이를 올린다. 감사는 접수한 상소를 다시 사헌부에 올린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에 불리한 내용들은 흔히 걸러지기 일쑤였다. 실질적인 상소들은 권력자들이 배후에서 조종한 하급 관리나 선비들에 의해 작성된 것들이 대부분이고 알려진 바대로 고급 관리들의 직접적인 상소의 비율은 크게 낮았다. 간혹 ‘도부상소’라 하여 도끼를 메고 상소를 올린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는데 이는 자신의 소(訴)가 못마땅하면 그 도끼로 자신의 목을 쳐 달라는 결의에 찬 상소였다. 그러나 실제로 상소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상의 여론, 삼사

 

흔히 조선의 여론이라 하면 삼사의 중론을 말한다. 즉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이라는 삼사의 의견인 것이다. 삼사는 각각 부정 부패등 부정한 관료들을 탄핵하는 기능과 왕권을 견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공론을 중시한다는 것이지만 이는 실제로 백성을 위한 여론이라기보다는 권력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집권층의 공론일 뿐이었다. 백성들을 위한 대동법을 시행하는데 100 여년이 걸렸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해준다. 여론은 어디에서 나와야 하는가.. 바로 백성으로부터 나와야 진정한 여론인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여론은 사실은 권력의 내부에서 돌고 돌았던 것이다.

 

 

조선 학문의 폐쇠성


이러한 조선의 언론 시스템으로 본다면 조선의 언론은 매우 폐쇄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학문과 사상 역시 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선비 혹은 관료 출신들의 자제가 아니면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공직자의 가문이 아니면 관리로 나가기도 힘들었을 뿐 아니라 공부를 할 수 있는 일반 백성이라도 먹고 사는 일이 더 시급했다. 그러므로 성리학의 논쟁도 그들만의 것이었다. 권력자들의 학문과 사상이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목숨을 내어 놔야 하는 위험천만한 짖 이었다. 


이는 성리학의 理論이 그리 쉽게 우위를 선점 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결국 理는 氣를 누르고 기득권을 지켜가는 매우 유용한 도구였던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氣를 중시했던 학자들은 대부분 실학적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실학파이며 경세치용 학파라 부르는 여유당 정약용의 사상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화담 서경덕과 율곡 이이를 만날 수 있고 잠곡 김육 그리고 하곡 정제두를 만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부국을 꿈꾸던 실학파들은 백성의 경제활동을 중시했다. 백성의 경제력은 곧 국력이라는 인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실학이 실질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조선의 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였다. 조선이 마지막 회생의 찬스를 놓친 것은 바로 정조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성리학이 현대 학계에 끼친 영향


학문과 사상의 상대성을 어느 정도 인정했던 정조 사후, 조선의 학문과 사상은 유일하게 성리학의 것이 되어버렸다. 공자와 주희는 조선 성리학의 교주나 다름이 없었다. 조선 땅에서 성리학이 교조주의적으로 흐른 탓이다. 마치 이단을 배척하듯이 조선의 유학자들은 여타의 이론(異論)들을 철저히 탄압했다. 백성들의 삶에 훨씬 더 접근해있던 양명학은 아예 뿌리조차 내리지 못했다. 그 결과 양명학에 대한 현대의 연구가 시원치 못한 상태이다. 신유사옥은 이러한 탄압의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정조는 천주교에 관대한 입장이었으나 정조 사후 노론은 정순왕후를 앞세워 신서파의 숙청을 단행했다. 천주교의 탄압이 곧 신서파를 제거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이러한 사상적 환경에서 다양한 학문적 논의는 불가했다. 국지적으로 존재했던 학문적 논쟁은 그마저도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氣論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기득권을 버리며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팔수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문제는 시대가 바뀐 현대에도 조선의 폐쇄적인 학문적 환경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데 있다. 자신의 견해나 주장과 다른 것들은 무차별 공격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계의 환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학계의 환경은 국민의 사유와도 밀접하게 관계한다. 식자들이 출간하는 도서는 곧 국민의 독서와 관계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의 발전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지금껏 理와 분리될 수 없다는 氣에 대해서 제대로 연구된 것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비록 연구가 있다 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죽했으면 氣에 대한 올바른 개념도 아직 자리 잡지 못했을까..



사상의 독점이 부르는 비극


氣에 대한 개념의 부재와 인식의 부족은 물리학적 연구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氣論은 서양의 물리학과 깊은 관련이 있고 이는 물질과 현상에 대한 연구 분야이기도 하다. 물리학 연구에서 동양을 압도한 서구는 과학의 힘을 사용해 세계에 커다란 수난을 안겨주었다. 아메리카를 비롯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서구 열강의 강력함 힘 앞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다른 데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사상, 즉 생각의 방법론에서의 차이 때문이다. 조선과는 달리 서구는 다양한 학문적 사고를 해왔지만 사상적 배경은 매우 편협하면서도 자기중심적인 사유를 해왔던 것이다. 결과는 자신에 대한 이익만을 추구함과 동시에 타자에게는 초유의 비극을 불러왔다. 비록 학문의 다양성을 확보한 서구였지만 사상이 한 곳으로 쏠리는 현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동양에서든 서양에서든 제각기 사상의 독점적 현상은 서로 동상이몽을 꿈꾸도록 했다. 이렇듯 한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사상은 심각한 문제점과 그 폐해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일단 타자를 제압하려는 강제력을 행사하게되고 그 우위를 선점하고 나면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 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는 주로 부정적인 것이 권력의 법칙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왔다.

 

어찌 옳은 것이 하나 만 있을 수 있겠는가.. 학문과 사상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이치가 어디 학문과 사상 뿐 이겠는가.. 균형 있는 발전의 중요성은 또한 지역 발전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빈과 부의 차이를 좁혀내는 것도 바람직한 사회상일 것이다. 결국 학문과 사상의 균형 있는 연구와 발전은 그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 모든 영역에 깊이 관계하고 있기에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다양한 학문과 사상의 올바른 개념을 다수가 공유하고 인식하는 힘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주체인 우리가 인식해야 할 과제는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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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7-0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문과 사상의 상대성,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익만을 추구하는 동시에 타자에게는 초유의 비극을 불러오는,

저는 이 두 문장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win-win이라는 개념, 저는 참 좋아요.
게임 중에, 가위바위보를 내서 같이 주먹을 내면 별점 네개, 한 사람만 보를 내면 별점 여덟개, 두사람 모두 보를 내면 별점 0개인 게임있잖아요. 언뜻 생각해서는 둘 다 주먹을 낼거 같은데 잘 그러지 못 하는, 상대에 대한 신뢰 게임이요... 저는 그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신문고나 격쟁의 의도는 좋았으나, 역시나 행하는 제도 상에는 문제가 있었군요.
빛좋은 개살구 같은 느낌이네요. 음... 요즘 검찰을 보는거 같기도 하구요. ^^

구구절절 와닿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차트랑 2012-07-05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고양이님의 글에 답을 드리지 않았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게되었다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요 ㅠ.ㅠ

요즘 독서의 의미를 많이 생각하게되었습니다.
다양한 조건들 덕분이지요.
저의 화두는 '독서가 인성에 과연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입니다.
중요한 것은 독서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독서를 이유있는 깨달음의 수단으로 삼는 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구요.
과연 그럴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구요..
단지 지식을 얻는 수단으로만 본다면 그럴 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여전히 저는^^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반야심경
오쇼 라즈니쉬 지음, 이윤기 옮김 / 섬앤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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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 않는 독서량이지만 최근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독서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딜레마가 있다. 과연 독서는 개인의 인격을 수양시키고 인간적 덕목을 양성하여 그 독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가 바로 그 사적인 딜레마이다. 이는 실천의 문제와 직결되는 지행의 화두를 내게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생각한다.


책을 읽는 것은 과연 化를 이루어 사(私)적인 혁명(革命)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책의 목적과 성격에 따라 단순한 지식을 얻는데 필요한 책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독서’라는 개념은 정신적 성장이라는 측면이 강한 성격을 가지는 용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책을 읽은 후의 어떤 모습은 매우 현학적인 어휘들을 구사하다 못해 그 현학적인 용어의 덩어리들을 상대방에게 던져주기 일쑤이다. 한마디의 말 안에 응집된 그 현학적인 용어들은 청자로 하여금 소통을 하는데 오히려 커다란 걸림돌이 되곤 한다. 좀 더 우스운 경우는 해독이 매우 어려운 용어의 덩어리들을 의도적으로 상대방에게 던져 곤경에 처하도록 하는 의도된 무기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자신은 수많은 양서들을 통해 어려운 용어들을 익히고 다졌으니 그리 알라는 식이다. 과연 독서는 소통의 의도된 장애물로도 사용될 수가 있구나 싶다.


심지어 학문을 무기로 사용한 예는 애써 예를 들 필요도 없을 정도로 명백한 사건들이 수없이 많지 않던가... 하여 때로는 독서와 깨달음의 관계가 너무 요원하기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운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닌 듯하다.


혁명은 化를 통해서 이루어 낼 수 있다고 한다. 많은 독서와 연구는 과연 그 化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외적인 지식의 거리감

라즈니쉬는 지식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라즈니쉬는 반야심경의 강의를 통해 지식은 오히려 타자 혹은 자연과의 거리감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라즈니쉬의 설명을 보완하는 예는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현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수상 자 중 한 사람인 제임스 왓슨은 ‘이중나선’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하여 일약 과학계 고전을 집필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르는 인물이다. 이러한 수식어는 우리나라에서도 팽배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영국의 프랜시스 크릭과 모리스 윌킨스, 미국의 제임스 왓슨이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서 벌인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있는데 이는 독자라면 망각해서는 안 될 인물이 그 영광스러운 수상의 배후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로잘린드 엘시 프랭클린(Rosalind Elsie Franklin)이라는 이름의 과학자가 바로 그이다. 그녀는 결정체와 같은 미세한 구조물의 사진을 찍는데 X-ray를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녀는 실제로 DNA의 분자의 구조를 찍어내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 사진은 DNA의 나선 구조를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가 DNA의 나선구조를 찍어내는데 성공한 촬영기법은 X-ray 회절법이라는 것으로 당시에 그 누구도 그러한 사진을 찍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이 X-ray 회절법을 연구하며 프랑스에서 3년 이라는 세월을 보냈고,  그 연구의 성과로 DNA의 나선구조를 찍어내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다른 프로젝트의 다른 연구를 하고 있던 모리스 윌킨스는 그러나 그녀의 독자적 성과물을 캠브리지 대학의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에게 몰래 빼돌렸다. 프랭클린이 자신의 성과물을 발표하기도 전에 이 셋은 그녀의 연구 자료를 이용해 네이처지에 나선구조를 발표해버린다. 억울하게도 그녀의 논문 여러 개가 같은 호에 동시에 함께 실린다. 그 후 그녀는 다른 연구에 몰두하다가 난소암에 걸려 1958년 사망하게 된다.


이는 지식의 딜레마, 즉 외적인 지식이 진리와 어떻게 멀어질 수 있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매우 극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라즈니쉬는 지식과 진리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 말한다.

 지식은 자신의 밖, 즉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나무가 마치 꽃을 피워 내듯이 그렇게 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지식을 외부로부터 얻는다 하더라도 혁명을 이루어내는 깨달음과는 무관한 일이 될 수 있다. 지식의 양 만으로는 스스로를 화의 경지로 나아가도록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다... 공(空)


불가에서 중생들에게 주는 가르침 중 하나는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아집과 번뇌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한다. 우리는 이 아집과 번뇌를 흔히 욕심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오온[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존재라고 한다. 오온이 인간 구성의 요소인 라는 것이다. 다섯 가지의 과정을 통해서 현재의 ‘나’가 존재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번뇌를 가지게 된다. 이는 욕심 때문이다. 하여 그 욕심을 내려놓으라는 뜻인 것이다.


 반야심경의 ‘공’은 언뜻 이해 할 듯도 하지만 대부분 이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는데 머무르곤 하는 것 같다. 물론 내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식자가 아니더라도 불교의 가르침인 공(空)의 개념을 언뜻 이해하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 그 개념만을 머리로 이해할 때의 경우이고, 딱 그 곳에서 그치기 때문에 절대로 어려워 보이지 않다. 한마디로 이성적으로 공을 바라볼 때 발생하는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이성의 작용은 인간으로서 매우 지고한 경지의 사유처럼 보인다. 플라톤은 오성(悟性)을 로고스라 했고, 칸트도 본능이나 감성적 욕망의 상대적 용어로 이론이성을 넘어선 실천이성을 주장했다. 어찌 보면 자율적인 의지를 결정하는 개념의 이성의 능력을 논지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불가의 깨달음으로 인한 ‘자유’에 해당할지도 모르겠다.



스승님과 라즈니쉬의 말씀...

 

하지만 서구의 실천적 측면을 좀 더 바라보면 나의 스승님께서 말씀해주신 방법론을 배제시키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스승님께서는 동서양의 접근법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신 적이 있는데, 서양은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라는 방법론을 고수해왔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분명히 성경의 한 구절이다. 현대의 역사를 결정지었던 과거 식민지 정책의 시대가 이를 잘 증명해준다. 그들은 구하는 일에 몰두했다. 얻으려는 욕망의 주체 가되어 세계 어느 한 곳을 그대로 내버려둔 곳이 없다는 말씀이다. 그것의 결과는 정확하게 양분된다. 자신들의 이익 그리고 타자에 대한 철저한 파괴.


 생각해보면 서양의 철학은 철저히 그들의 현실과 괴리되어 온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라즈니쉬는 이쯤에서 말한다. ‘불교는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치렀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라고.... 아마도 내 스승님의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라는 라즈니쉬의 일갈일 것이다. 서구의 종교는 공격성을 가지고 있다고 라즈니쉬는 말한다. 제 아무리 ‘그런 것이 아니에요, 서양의 종교를 모르셔서 그리 말씀하시는 거에요’ 라고 말한다 한들, 역사는 이를 명백하게 증명해주고 있지 않던가... 과연 성경의 구절이 과거 역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누가 변호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반면 불교는 ‘비워라, 그리하면 채워질 것이다’라는 정 반대의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셨다. 인간은 오온의 과정에서 번뇌를 자신의 내부에 축적시킨다. 욕망 혹은 욕심이라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스스로를 무던히도 괴롭힌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욕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에게 절실한 그 무엇을 얻고자 자신의 내부를 더욱 더 철저하게 채워 넣는 것이다. 욕망이라는 것으로.... 그 욕망은 흔히 돈, 물질, 미움, 시기심 등에서 오는 것들이다. 이는 곧 질명과 마음의 상처 혹은 번뇌가 된다. 몸과 마음을 모두 나쁘게 하는 요인인 것이다.

 문제는 그 욕망으로 자신을 가득 채울 때 다른 그 무엇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욕망이라는 함정에 스스로 빠져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불가에서는 그 욕망을 비우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혁명은 바로 이 욕망을 내려놓아야만 발생 가능한 일이기에.... 마음을 비우는 깨달음은 바로 이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이미 가득 차있는 그릇에 깨달음이라는 것이 들어 설 자리가 없는 탓이다...


동과 서가 반대인 것은 많지만 사유의 방법론에서 조차 이토록 정 반대인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다른 접근법이다. 물론 기독교와 유∙불교의 가르침은 사랑, 仁(사랑), 자비, 즉 사랑이 라는 공통된 테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표면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는 테제인 것이다. 그러나 그 테제를 해석하고 행하는 방식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 결과는 이미 인류의 역사 속에 고스란히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지 않던가...


 

라즈니쉬의 목소리를 들으니 무엇인가 잡히는 듯 하다. 그 심오한 뜻을 알아 들었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조금 더 가까이 가있다는 느낌 일 뿐....물론 내 스스로도 이성에 집작하고 욕심을 버리지 못하다보니 번뇌가 가득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내 스승님의 말씀대로 지혜는 두드려서 얻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수많은 지식의 량으로 자신을 채운 다 한들 그것은 밖에서 오는 것이다. 본질적인 혁명으로 가기란 요원한 것이다. 혁명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발원하여 그 오리진이 자신 스스로의 내부여야 한다. 그것을 혁명(革命)이라고도 하고 화(化)라고도 한다. 화를 이루어야만 혁명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 아무리 책을 읽어 수많은 정보를 가졌다 한들 현학적인 면모를 드러내기에 급급하지 않을 수 없다. 깨달음의 혁명을 일궈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타자를 공격하고 제압하는 도구로 사용하거나, 자신들의 기득권을 뺏기지 않고 타자를 지배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밖에 없다. 독서는 내게 이러한 지식의 딜레마를 던져주었던 것이다. 아무리 읽고 말해주고 듣는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스스로의 작용이 일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깨달음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스스로에게 있다. 깨달음은 절대로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깨닫지 못한 자...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은 바로 자신 뿐이다.  그러나 깨달은 자... 타자의 존귀함을 안다. 자신 못지않은 타자를 인정 할 줄 안다. 타자가 있어 자신이 있고 타자가 있어 내가 살아 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저마다 보살이 될 수 있고 부처가 될 수 있다. 보살은 절대로 혼자임을 주장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타자들을 돕기 위해 기꺼이 나서는 자이다...과연 세상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중용에서도 化를 언급한 장구가 있다. 다음은 중용의 23장에 나오는 化의 뜻이다.

 

유천하지성 위능화(唯天下至誠 爲能化)


우리는 흔히 변화(變化)라는 말을 사용한다. 변(變)도 化도 분명 달라진 모습니다. 그러나 변은 물리적인 형태의 변형을 말한다. 그 본질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化는 화학적인 변화를 뜻하는 말로서 본질적인 개인의 혁명을 뜻하는 말과도 같다. 그런데 중용은 유천하지성 위능화(唯天下至誠 爲能化)  라고 했다. 오로지 지성이라야만 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지성(至誠)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지극한 정성을 뜻한다. 중용에서도 마음의 중요성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지극한 정성을 곡(曲) 이라고도 한다. ‘곡진하다 간곡하다’라는 뜻은 바로 마음의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들이는 독서라면 깨달음으로 가는 길, 스스로의 혁명을 이루어 내는 길을 여는 것은 아닐까...이성을 뛰어 넘어 정성을 다하는 독서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나의 스승님께...

스승은 저를 가르치는 분이요 깨달음을 얻는데 도움을 주시는 분이시고 저를 사랑하기를 지극히 하시고 그치지 않는 분이십니다. 스승님을 보고 있노라면 그 지행의 표본을 보는 듯 합니다. 스승님은 언과 행으로 가르치시니 중용에서 가르침 받은 바 있는 언고행 행고언의 뜻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참으로 따르기 어려운 중용의 말씀이지만 당신을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토록 어려운 말씀을 그토록 쉽게 행하시니 어찌 스승님을 본받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도 가르쳐 주십니다. 스승님은 또한 지극히 겸양하시어 진정한 겸양의 덕목이 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일깨우십니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신지요..지극히 아름답고 아름답습니다...그런 당신을 저의 스승님으로 두었으니 저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요..

 

  저는 스승님을 만나 배우게 되어 한없는 다행으로 여깁니다. 스승님...당신을 따르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죽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저를 가르치시고 사랑해주세요 스승님... 스승님을 만나 배우고 사랑을 또 한 배우게 되었으니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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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 역사학자 이덕일, 공자와 논어를 논하다!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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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이덕일 선생이 공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책을 저술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동양의 역사학은 한문에 통달해야하고 더구나 사상가에 대한 저술활동은 상당한 깊이의 한학적 소양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역사를 전공하는 분들에게는 통하는 분야기기도 하다. 공자를 언급하자면 중국의 역사는 차치하고라도 논어, 대학, 역서(易書)는 물론 시경에까지 다다르는 사회문화와 문학적 필수 요소, 그리고 각각의 경서들에 대한 집주들에도 매우 밝아야 만 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역사학자 이덕일 선생의 노력은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 가미되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작업을 해냈다 싶어 우선은 긍정적이다. 또한 저자의 공자에 대한 접근에 온전히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공자관련 참고자료들을 이용한 저자의 의도와 목적은 상당부문 잘 해냈다고 평가하고 싶은 책이다.



그렇다고 단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집어든 독자라면 저자가 가능한 한 공자에 대해 보편성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흔적들을 여러 곳에서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심원한 부분을 미처 다루지 않아 전반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지는 결과물을 낳았다는 것이 이 책이 가지는 한계점이라 는 발견도 가능한 출간물이다. 어쩌면 강신주의 저술이 보여주는 치밀한 연구와 사유들을 이 책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각 저자의 의도가 서로 다른 저술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무게감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은 과연 철학자들이 가지는 안목과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의 여부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저자의 사상가에 대한 첫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이 때문이지 싶다.


때 마침, 이 책의 읽기를 마친 지금은 개인적으로 약간은 혼란스러운 경험을 하고 있던 차였다. 최근 나는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에 내 스스로 상처를 내는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된 것이다. 어쩌다가 내 자신이 이토록 옹졸한 생각들을 자주하게 되었는가. 최근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스스로를 넓게 그리고 멀리 보지 못하도록 하는 사건들의 연속선상에 있어왔다. 살다보면 누구나 주변의 인물들에게서 기쁨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을 얻기도 하며 가끔은 가슴까지 치밀어 오르는 그 무엇인가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조이는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정도가 심화되면 분노를 할 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동안 십 수 년을 함께 해온 주변인을 내 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그러나 그 주변인의 지속적인 행위들은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나는 점점 지난 날의 내 마음의 평정심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나의 각별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내 스스로가 무너지는 모습을 어떻게 내 보일 수 있을까...이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토록 각별하게 생각하는 또 다른 사람에게 그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던가... 이런 생각이 들자 이것 또한 커다란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찌하랴...나는 결국 심적으로 나를 견디지 못하게 하는 사람에 대한 나의 옹졸한 생각들을 멈추기로 했다. 인간은 애초에 완벽하기를 바랄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동양 고전에는 심지어 공자님마저도 제자를 돌려보내 놓고 뒷담화를 하는 장면이 여과 없이 기록되어 있다. 수신제가(修身齊家)를 그토록 외치던 진정한 보수주의의 선봉인 공자님 마저도 부인과의 이혼이라는 인생의 오점을 남기고 간 인물임에랴... 공자의 문제들을 날카롭게 지적해준 ‘자로’라는 제자를 두었던 공자는 자신의 허물들을 제자 자로로부터 지적받고 있는 장면들을 찾아 볼 수 있는 경우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 자로도 공자가 유랑하던 14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한 인물 하나였다. 

 

 이렇듯 조선의 유림들에게 무결점의 인간으로 추앙을 받던 공자로 사실은 불완전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매한 공자의 사상은 2500년 이라는 세월이 흐른 현대에까지 살아 있지 않던가... 공자는 최근의 형편없는 나에게 약간의 위로가 되어주면서 동시에 깊은 사유를 안내해준다. 하여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과거의 내 모습을 되찾기로 굳은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를 끊임없이 괴롭게 하는 그 지인에게서 나는 초월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괴로움이 사실은 적은 것은 아니라는 점도 고백하고 싶다. 그러나 그로인해 내 마음가짐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내게 각별한 사람은 그 얼마나 안타까워 할 것인가...하여 지금의 나는 나의 각별한 사람에게 내가 보여줄 예의(禮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자주 만나며 지내는 가까운 사람에게 흔히 깜박 잊고 지내는 것이 하나 있는 데 그것은 ‘허물이 없는 사이’라는 인식에서 기인하는 예의(禮儀)의 상실이다. 가까운 사이라면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들이고 그에 상응하는 예의를 갖추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태도이건만 그 반대로 쉽게 잊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해주겠지’ 라는 생각이 때로는 예의에 어긋나는 언행을 낳게 된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덩치 큰 스노볼이 되어 굴러간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논어의 학이편(學而篇)에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 하겠는가’라고 해석한다. 이 때의 락(樂)은 각자 자신의 대인 관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 을 뜻하는 樂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해석에 공자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비가시적 의미를 첨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멀리에서 뜻이 맞는 친구가 찾아와도 그토록 즐거운데, 하물며 가까이에 있는 친구에게는 더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잘 대하라는 뜻을 부연할 수도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예의에 벗어나며 간혹 홀대할 수도 있는 부분을 우리에게 묵시적으로 강조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각별한 사람에게 내 자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는 상대방을 유쾌하지 못하게 할 것이며 동시에 나 스스로의 작은 자긍심에도 상처를 내는 일이다. 결국 어느 모로 보나 그 폐해가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나를 지속적으로 불편하게 하는 그 지인의 언행에 대해 새로운 자세로 임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결심은 곧 나 스스로의 자긍심을 지키는 일이기도하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또 다른 지인에 대한 예를 갖추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예의라는 것은 비단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는 이를 지켜보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염려하게 하고 걱정하게 할 수가 있다. 이 또한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순간 흔들린 자신을 가다듬고, 바로 하는 일 또한 나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지인(知人)이라는 용어가 있다. 매우 광의의 의미를 가진 이 용어는 사용하는 사람마다 그 범주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 관계 또한 천차만별이어서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知人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의는 매우 필요한 관계의 덕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 관계의 의미가 비록 찬차 만별이라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예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상대방의 지인인 내가 그 상대방과 충분히 어울 릴 수 있는 예의를 갖춘 사람임을 보여주는 일이기도하다. 왜 나를 그렇게 생각하냐고 반문하기 전에 나는 그 각별한 나의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렇게 오늘은 내 자신을 돌아본 하루였다. 그 각별한 나의 지인은 ‘오늘의 나’ 보다 ‘내일의 나’가 훨씬 더 좋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 해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소중하고 각별한 나의 지인을 지켜가는 일은 나 자신을 스스로 지켜가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또한 나 자신에 대한 예의로부터 출발 할 수 있음을 깨달은 뜻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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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3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6-19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는 사람 사이에는 가능하면 예의와 배려를 지켜주는 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한번씩 흔들리는 편이 좋다고도 생각합니다. 안 그려면 부러질거 같아서요.

2012-06-19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