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에게 이상주의란 스스로 실체를 드러내는 덕인 동시에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주의는 우리 이웃 속에 보이는 고통을 우리 자신의 고통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로만 한다면 전혀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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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위한 교회‘는 무분별한 연대성과 막연한 동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소원대로 세계를 위해 봉사하는 것과 세계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소원은 그리스도의 파송과 사도직 속에 드러난다. 온 인류에 대한 교회의 개입(介入)은 선교 속에서 실현된다. 이러한 파송은 사회가 교회에게 허락하는 사회적 역할의 기대 지평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 오고 있는 공의와 오고 있는 평화, 오고 있는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의 종말론적인 기대 지평 안에서 일어난다. 교회가 인류를 섬기는 목적은 이 세계가 지금의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거나 보존되기 위함이 아니라, 이 세계가 변하여 자신에게 약속된 바로 그것이 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세계를 위한 교회‘란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교회‘와 세계의 갱신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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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언제나 우리가 불안을 극복하고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요구한다. 바로 불안과 염려가 넘치는 그때 말이다. 그 고난이 개인적인 것인지 아니면 그 사회 전체에 주어진 것인지는 상관없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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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보니, 기회란 흐름 속에 앉아 있다 보면 언젠가 오는 것이었다. 내 인생에는 그런 기회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아니, 기회라기보다는 마치 순리처럼 내게 찾아온 일들이었다. 그러니 매일의 순간순간을 허투로 보내서는 안 되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내일이 있다는 것을 핑곗거리로 삼지 않았다. 내일이 있으니 오늘은 어떻게 되든 괜찮다는 마음가짐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내일이 와 있는 삶을 살고자 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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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신자라면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이 마음을 갖고서도 세상 권력에 굴복한다는 거다. 큰 고민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신앙과 권력은 양립할 수 없는데오 버젓이 두 주인을 섬긴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서 정치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도무지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는다.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생각하지 않는 죄‘를 범한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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