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막스는 노래를 아주 쉽게 부르는 것 같은데 따라 부르려면 참 어려운 것 같다. 마치 변진섭이나 시나위 4집 때 김바다처럼 말이다. 리차드 막스를 잘 모르는 이들도 얼마 전에 비행기에서의 일화나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나와서 알게 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리차드 막스는 사랑에 대한 노래를 많이 불렀다. 리차드 막스의 메가 히트송들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작곡을 한 곡들이다. 그러고 보면 백석도 자야를 사랑했을 때 찬란한 시가 탄생했고, 릴케 역시 루 살로메에 빠져 있을 때, 보들레르 역시 흑백 혼혈 잔 뒤발을 사랑하고 있을 때, 단테 역시 베아트리체를 찬양했다.

 

리차드 막스의 ‘right here waiting’ 이 노래는 아내를 위해 만들었다. 아내는 영화배우였다. 아내가 영화 촬영차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몇 달을 지내야 했다. 아내를 너무 사랑한 리차드 막스는 그 몇 달을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지옥 같은 날들이라고 생각이 들어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떤 무엇인가가 자신과 아내를 갈라놓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리차드 막스는 아내가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갈 결심을 하고 비자를 신청하지만 왜 그런지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리차드 막스는 몇 날 며칠을 비자국에 신청을 했지만 비자가 발급되지 않았다. 마지막 한 번더 비자를 신청하러 갔지만 결국 되지 않아서 포기하고 돌아온 날 그는 이 노래를 짧은 시간에 만들었다.

 

 

 

바다만큼이나 멀어져 가요

매일매일 그리고 난 서서히 미쳐가고 있죠

전화로 당신의 목소리를 듣지만 이 고통을 멈추진 못하는군요

내가 당신을 거의 볼 수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영원하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리차드 막스는 이 노래가 너무 오글거리고 개인적인 노래라 음반에 싣기도 민망해서 테이프에 녹음해서 아내에게 보내주려고 했다. 그때 녹음을 도와준 친구가 노래가 너무 좋으니 싱글 앨범에 내자는 제의를 했고 리차드 막스는 받아들이는 바람에 현재에도 이 노래는 어딘가에서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리차드 막스와 아내와의 사랑은 꽤 유명했다. 아내를 정말 사랑했다.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기가 그렇게 싫었을까, 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더 유명한 노래 ‘now and forever’이란 곡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이라는 것은 그렇게 잘 없다. 리차드 막스의 아내에 대한 애절한 사랑은 2014년에 종지부를 찍고 만다. 우리는 때때로 언어에서 실수를 하곤 하는데 ‘절대’ 라든가 ‘영원’을 함부로 뱉어내면 안 될 것 같다.

 

꽃으로 비유를 하자면 조화를 구입해서 욕실에 두면 영원하다고 하는데 그런 죽어있는 ‘영원’은 외면받는다. 조화를 구입한 첫 날 정도 바라보지만 이후로는 거의 조화를 보지 않는다. 프리지아를 구입하면 며칠 만에 시들고 말지만 한 해가 지나서 또 봄에 오면 프리지아를 구입한다. 그 며칠 동안 프리지아는 향기를 뿜어내고 프리지아가 꽂혀 있는 꽃병을 며칠 동안은 늘 바라본다. 그렇게 시들고 피어나고를 반복하는 영원성. 노래 역시 그런 영원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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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디로 구입한 라디오 헤드의 더 밴드즈 앨범은 세 번째로 구입한 것이다. 앞에 두 번은 카세트테이프로 구입을 했는데 늘어져 망가졌다. 이 앨범은 13년에 구입한 것으로 아주 최근에 구입한 축에 속한다. 앨범에 대해서 재미있는 건 오래전에는 EMI 코리아 같은 음반회사가 살아 있어서 그런 곳에서 한국판으로 시디를 만들거나 했는데 이제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메이딘 아메리카에서 3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집으로 날아온다. 속지의 삽화도 좋다. 나이스 드림의 뮤직비디오를 종이 위에 그대로 끄집어 낸 것 같다.

 

대학 시절 좌뇌는 아메리칸 메탈을, 우뇌는 히데의 저팬 록에 매료되어 있었는데 그 사이를 강력하게 파고든 밴드가 라디오 헤드였다. 더 밴드즈 앨범에 있는 모든 노래가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쳤다.

 

톰 요크는 한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 더 밴드즈 앨범의 꽃미남 시절에는 그 모습이 확연하게 보였지만 요즘의 톰 요크는 온 얼굴이 찌그러져서 그런지 한쪽 눈이 그렇다는 것을 쉬이 느끼지 못한다.

 

톰 요크는 한쪽 눈이 찌그러진 것 때문에 학창시절 아이들에게 늘 따돌림을 당했다. 톰의 어머니는 그런 톰을 보며 안타까워 수술을 한 번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한 간에 학창시절 톰 요크를 따돌리는데 앞장선 아이가 한국인이라 톰 요크가 한국에는 공연을 하러 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라디오 헤드의 한국 단독 공연은 아직 없다. 몇 해 전에 지산록페에 와서 한 시간가량 소름 끼치는 공연을 하고 간 것이 전부다.

 

이 앨범의 노래를 들으면 대학시절 에어컨도 없는 자취방에 헤드셋을 끼고 좁은 방에서 땀을 미친 듯이 흘리며 저스트에 맞춰 몸을 마구 흔들었던 기억이 있다. 흐느적거리는 음악인데 강력하고 그 강력한 음악에 점점 손과 몸이 빨려 들어간다.

 

블랙스타를 들으면 스산하고 차갑고 맞으면 눈물이 나는 바람이 부는 듯하고, 하이 앤 드라이는 마치 테킬라를 여러 잔 마신 것 같은 느낌으로 나를 이끈다. 그리고 나이스 드림에 다다르면 이런 이야기가 떠오른다.

 

 

 

 

 

 

푸른빛이 거대한 천장에 감돌기 시작했고 곧 그 푸른빛은 세계에서 모여든 이들에게 골고루 뿌려졌다.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고개를 들고 톰욕을 쳐다보았다.

모호한 눈빛의 톰욕은 노래를 불렀다.

탐욕에 가득 찬 저항도 없었고 노출에 의한 굶주림도 없었다.

톰욕은 오직 노래를 불렀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안개처럼 톰욕의 목소리는 푸른빛을 받고 모여든 그들의 마음에 울려 퍼졌다.

탐욕에 가득한 대중의 눈도 점점 따뜻한 자신들의 마음에 동화되어 간다.

기타의 리프 소리가 모여든 그들 내부의 잠재된 앙금을 풀어 주었다.

그들은 양손을 앞으로 뻗고 톰욕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이스 드림. 나이스 드림.

톰욕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생생함과 격렬함은 모여든 사람들의 에테르를 하나로 모았다.

목소리와 기타 소리가 현실을 파괴했고 사람들은 톰욕의 노래에 맞춰서 양팔을 좌에서 우로 흔들었다.

노래는 공간을 제어했고 사람들의 가슴속 깊은 부분의 한곳을 건드렸다.

나이스 드림. 나이스 드림.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톰욕의 목소리에서 어떠한 가능성을 읽었다.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듯이 노래에도 거역할 수 없는 감각과 물 같은 부드러움이 있었다.

톰욕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눈을 감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

옆의 사람을 안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

눈물을 흘리며 입을 막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

제각각의 모습이지만 그들은 톰욕의 노래를 듣고 있다.

나이스 드림. 나이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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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 앨범은 로저 워터스가 나가고 데이빗 길무어의 체재로 변환된(대충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다음 7년 만에 나온 앨범이다. 로저 워터스나 데이빗 길무어나 핑크 플로이드의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듣는다는 건 무척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에는 음악으로 이런 메시지 같은 걸 던지는 그룹이 있다니 참 신비한(신기한 일이 아닌) 일이다.

 

찌질하고 찬란하고 극단에 무모하고 두려움과 보이지 않는 희망을 갈구하고 질서의 파괴와 절망하고 결핍된 대학생활을 견디게 해 준 몇 가지 중에 핑크플로이드의 음악이 있었다.

 

소니 휴대용 시디플레이어는 휴대는 가능하지만 조금만 충격이 가해지면 시디판이 튀어 처음부터 나온다. 그래서 휴대용이지만 어딘가에 놓고 음악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대학교의 볕이 좋은 곳에 앉아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한없이 들을 수 있었던 대학시절은 암울했지만 꽤 행운이었다.

 

공강 시간에 아이들이 공을 찰 때 볕이 드는 곳에 앉아서 디비전 벨을 듣고 있으면 마치 양수 속에 옹크리고 들어가 있는 착각이 들었다. 눈앞의 태양의 미광은 수많은 꽃가루를 보이게 만들었고 꽃가루들은 불투명하고 아주 부드러운, 그래서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이질적인 세계에 들어와 있게 만들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은 그런 세계로 이끌었다.

 

지난 시간을 잊게 만들고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시간 속에 몸과 마음이 융해되는 아주 묘한 느낌. 마치 영화 큰텍트에서 조디 포스터가 미지의 우주의 모습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현상을 나도 느낀 것이다.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고 풍부한 상상력에 의존해 있던 대학생인 나에게 7년의 공백을 깨트리고 나온 디비전 벨은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 또는 내가 사랑하는 이의 속삭임 같은 것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어느 지점을 보고 있노라면 거기서 전설 속의 돌이 자연스럽게 발광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눈물이 죽 나온다. 세상에는 그런 음악이 존재한다. 그런 것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에 병합되는 말이다. 돈의 필요성은 알아도 돈의 중요성을 딱히 몰랐던, 약간의 진지함과 약간의 침묵을 사랑하고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일에 흥미를 가졌던 대학생 나에게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이 함께 했었다는 건 꽤 흡족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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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추억2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서 들고 내렸다. 애완동물 공동묘지는 의자 위에 올려놓았고 카메라를 꺼낸 가방 속에는 가져갈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책 위에 같이 올려놓고 버스에서 내렸다. 내 카메라는 30년이 넘은 올림푸스 팬 시리즈 중에 하나다. 지금은 단종이 되어서 더 이상 새로운 팬 시리즈를 구입할 수 없는 카메라로 필름을 밀어 넣으면 하프 타입인 카메라다. 필름의 고유한 색감을 잘 표현해 주었으며 비교적 작동 방법이 간단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겨울의 냉기가 얼굴을 훑었다. 아주 차가운 기운이 얼굴에 와닿았고 발밑으로 눈이 밟혔다. 버스에서 내려서 보는 세상도 온통 새하얀 눈밭으로 덮인 휴게소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 가서 내가 낸 발자국을 카메라에 담았다. 찰칵 찰칵.

휴게소에는 차들이 밀려 들어와서 그런지 평일치고 사람들이 많았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일에도 끊임없이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여행을 가고 밑 지방에서 위 지방으로 올라가는지 알 수 없었다. 평일에는 대부분 일을 해야,까지 생각하고 더 이상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휴게소에도 일하는 사람들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휴게소는 일터이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는 일탈 같은 곳인 것이다.

국도에 있는 작은 휴게소의 화장실과는 달랐다. 깔끔하고 깨끗하고 음악도 솔솔 흘러나왔다. 오줌을 시원하게 놨다. 소변이 몸에서 빠져나가면서 체온이 조금 빠져나갔다. 손을 씻고 말린 다음에 화장실 입구에 서서 팬으로 또 몇 컷의 사진을 담았다. 그러는 동안 추위가 몰려와서 휴게소 안으로 들어왔다.

휴게소 안에 풍기는 음식냄새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어딘지 서로 어울리지 못했다. 그건 대부분이 급격하게 내리는 폭설 때문에 억지로 휴게소에 들어온 기운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휴게소 안에 들어왔으니 사람들은 돈가스를 먹고, 핫도그를 먹고, 감자를 먹고, 김밥과 어묵과 콜라를 먹었다. 어쩐지 다른 날 보다 더 왁작 지껄하는 소리가 실내에 가득했다.

커피부스로 가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종이컵에 담긴 에스프레소는 뱀파이어에서 짜낸 피처럼 보였다. 이만큼 큰 종이컵에 요만큼 되는 에스프레소를 담아서 창밖이 보이는 긴 바가 있는 곳으로 옮겼다. 에스프레소는 쓰다. 쓴 맛으로 먹는 것이 에스프레소인 것이다. 등을 구부리고 카메라의 아서를 건드리고 있었다.

그때 옆에도 사람들이 앉았다. 그중 한 여자도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 카메라는 디지털카메라인데 오래전 모델인 니콘 D70이었다. 카메라를 만지고 있으니 혹시 D70의 브라케팅에 대해서 물었다. 그래서 브라케팅으로 사진을 담으려면 이래이래 해서 담으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D70은 아무래도 지난 카메라지만 꽤 잘 나온다, 어지간한 건 다 담아낼 수 있다, 잘 어울리는 렌즈가 탐론의 90미리 마이크로 렌즈, 일명 ‘90마’로 담아내면 노란색에 관해서는 기가 막힌다, 등등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옆에 앉은 사람들은 사진동호회인데 신입들이라 중급 이상 모이는 곳으로 마음먹고 가는 길에 이렇게 고립이 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D70으로 몇 년 동안 사진을 담은 적이 있어서 그 카메라에 대해서는 꽤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다.

이야기를 할 땐 몰랐는데 D70을 들고, D70에 대해서 물어본 여자만 정장 차림이었다. 일행들은 모두가 등산복 차림이었는데 그 여자만 검은색 정장 차림에 색조화장과 눈 화장에 머리도 방금 숍에서 하고 온 것처럼 웨이브가 파도처럼 져 있었다. 얼굴을 보니 30대 초반?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일행은 등산복 차림의 남자들로 대체로 50대 전후로 보였다. 다른 여자 일행도 있었는데 나이가 꽤 많이 보였다. 모두가 손에 대포 같은 카메라를 한 대씩 들고 있었다.

이후로 카메라에 이것저것 이야기를 이야기를 하다가 휴게소가 금강휴게소처럼 2층이 있어서 거기로 올라가서 망원렌즈로 사진을 담는 것에 대해서 논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카메라를 들고 뷰에 눈을 대고 자세를 잡으니 영락없는 스나이퍼처럼 보였다. 길쭉한 손가락으로 카메라의 렌즈를 받치고 카메라 바디를 잡고 셔터를 누르면서 연신 이렇게요? 이렇게요?라며 물었다. 목소리가 농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내가 들고 있는 필름 카메라에 대해서도 흥미를 보였다. 디지털카메라처럼 찍고 바로 볼 수 없으니 빠른 디지털에 비해 시간이 느린 게 필름 카메라다. 아서를 돌려 환경의 밝기에 맞춰 조리개 따위를 조절하고 필름을 다 채울 동안 셔터를 누르고 나면 다 돌아간 필름을 수동으로 다시 처음으로 돌려야 한다. 다 돌아갔다는 끄그그극 하는 소리가 나면 필름을 탈착하고 현상을 한 다음 인화를 해서 손에 들어야 비로소 사진이 되는 것이다. 같은 말을 했다.

그녀는 자신도 필름으로 한 번 사진을 담아보고 싶다며 내 손을 어쩌다가 잡았는데 내 손이 너무 차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내 손을 그녀는 두 손으로 꼭 쥐었다. 그리고 우리는, 까지는 전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휴게소에 들어간 것도 눈이 심하게 내린 것도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2월에 서울에 간 것도 물론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겨울에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가 눈이 내린다면, 하는 상상을 왕왕 하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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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에 서울에 갈 일이(라고 주위에는 말했지만 백남준 아트 센터에 가려고) 있어서 고속버스를 탔다. 운전을 하면 버스를 탈 때만큼 멍하게 있을 수는 없기에 가끔 고속버스를 탄다. 그곳에 도착하면 나를 배웅하러 누군가 나와 있을 테고 멍한 생각에 지치면 고속버스에서 잠이 들어도 개운하다.


그때가 2월 중순이었는데 그 전날 엄청난 눈이 전국에 내렸다. 한반도가 마치 새하얀 무스케이크 같은 모습이 되었다. 눈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순간, 온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버리겠어,라는 좀 못된 마음을 먹고 내려서인지 굉장했다. 만약 원더우먼이 봤다면 매직이군요,라고 했을 것이다. 실제로 원더우먼 1편에서 런던에서 처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갤 가돗이 크리스 파인의 품에서 그런 대사를 했다.

 

그렇지만 내가 있는 이곳 바닷가에서는 그렇게 뉴스에서 떠들썩한 것과는 다르게 눈이 내리자마자 녹아버려서 크게 와닿지 않았다. 고속버스 정류장에서 보는 풍경은 군데군데 모아놓은 눈이 천덕꾸러기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땅바닥은 젖어 있을 뿐이었다.


 

고속버스는 자주 타지 않기에 고속버스를 탄다는 건 내가 손을 뻗을 수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는 일탈이다. 꼬마였을 때는 멀미 때문에 어딘가로 훌쩍 떠난다는 설렘보다 고속버스가 그저 거대한 바퀴 달린 네모난 악어처럼 보였다. 그렇게 심하던 멀미도 어느 기점부터 산타 할아버지처럼 나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고속버스의 의자는 마치 ‘당신을 여지껏 기다리고 있었어요’라며 다소곳 하게 보인다. 우등고속이라 홀로 좌석에 건방진 자세로 퍼져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으며 이어폰으로 쇼팽을 듣는 건 거짓말이지만 음악을 들으며 가면 된다.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를 읽으며 나는 스티븐 킹의 소설 속으로 기어 들어가려고 했다. 버스는 서서히 움직였다. 거대한 벌레 같은 버스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남들 몰래 마음이 두근거린다. 책을 펼친 채 잠시 시선을 차창 밖으로 둔다. 군데군데 빛을 받아서 반짝이는 눈 뭉치들이 보였고 사람들이 추운지 등을 구부리고 지나치는 모습도 보였다.


겨울의 차가운 대기는 아름다운 태양빛을 눈부시게 산란시켰다. 사람들은 여름처럼 눈을 찌푸리고 미간을 좁히고 길거리를 걸어 다닌다. 그런 모습을 보면 모두 비슷한 움직임이지만 다른 철학이 개개인에게 있는 것 같아 신기하다. 길고 긴 우등고속버스가 좁은 도로를 구불구불하게 빠져나갈 때는 마치 어린 시절 극장에서 화면으로 본 로봇의 운전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택시의 뚜껑이 보이고 오토바이 운전자의 헬멧도 보인다. 인도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정수리도 가끔 보이고 혀를 내밀고 걸어가는 강아지의 등도 보인다. 버스에 건방진 자세로 앉아 창밖으로 보는 세상은 전부 눈 밑에 있었다. 오랜만에 버스를 탄다는 건 그런 분위기에 흠뻑 젖게 만든다. 멍해져도 좋을 시간, 좋을 장소인 것이다.


버스는 롯데 백화점을 경유해서 현대호텔을 지나 제니스성형외과를 지나쳐 메인 도로로 빠져 나온다. 도로 위로 올라온 대형버스는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차갑고 경쾌한 겨울 햇살을 받으며 거대한 버스는 서울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방학이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보이지 않고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지나 톨게이트를 향해 버스는 빠르게 돌진한다.


가까운 창밖의 풍경이 시놉시스처럼 빠르게 흘렀다. 경주를 지났다. 경주를 지나니 날이 스산하고 흐렸다. 하늘은 잿빛을 잔뜩 짊어지고 우울한 시어머니의 얼굴처럼 보였다. 창 하나로 가로막혀 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날씨는 무척이나 차가워서 십 분만 서 있으면 다리가 덜덜 떨릴 것만 같았다.


그것과는 별개로 버스 안은 따뜻했고 의자는 편안했다. 버스 안을 둘러보니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서울까지 3시간은 넘어가야 한다. 실컷 자고 일어나도 2시간이 남을 것이다. 버스는 100킬로미터가 넘는 속력으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버스는 속도가 줄어들더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올라탄 고속버스는 대구를 지나칠 무렵에 더 이상 도로 위를 달릴 수 없다며 가장 가까운 휴게소에 거북이 운행으로 들어갔다.


눈 때문이었다.


경주를 기점으로 해서 위 지방으로 갈수록 며칠 동안 내린 눈 때문에 도로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대구에서부터 잿빛 하늘은 눈을 계속 뿜어대고 있었다. ‘마이 페이보릿 띵’이 어울릴법한 광경이 창밖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세상은 전부 눈으로 덮여있었고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휴게소에 들어가기 전에 버스는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움직였고 버스에 탄 사람들은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서는 눈 때문에 고속도로가 막힌다는 예보가 없었다. 하지만 예고 없이 날씨는 버스를 그만 휴게소에 묶어두게 만들었다. 얼마 동안 휴게소에 머물러 있어야 할지 몰랐다. 비처럼 쏟아지는 눈은 휴게소에 들어온 차들을 잠깐 사이에 전부 하얀색으로 만들었다.


눈의 세계라는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웅성거리며 계획에 차질이 있는 것처럼 불안해하지 않았다. 예고 없이 휴게소에 들어간 버스 때문에 잠을 자던 사람들이 일어났고 옆 좌석에 앉은 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사람들은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처지를 걱정했다.


평일이라 사람들은 정말 큰일이 난 것처럼(큰일인 것이다) 자신의 휴대전화를 통해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나를 제외한 버스 안의 대부분 사람들이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계획에 차질이 생겨 버려서 안절부절못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거의 반 백수로 4일 동안 아무런 할 일도, 바쁜 일도 없었다. 멈춰버린 이 시간을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말 될 대로 되라,라는 식이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 속처럼 그런 일이 일어나도 좋을 법한 어두침침한 날 가운데의 폭설이었다. 눈이 더 펑펑 쏟아져 집채 더미처럼 쌓이든, 그 쌓인 눈이 얼음으로 변해서 그곳에서 펑, 하며 미스터 프리즈가 나타나서 다이아몬드로 저온상태를 유지하며 극 냉동복을 입고 극저온 블래스트를 웃으며 사람들에게 마구 쏘아댄다고 해도 어쨌든 3일이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세계가 아무리 일그러질 정도로 삐뚤어져 가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영차 영차 하면 대체로 3일이면 일상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그런 생각에 잠겨 창밖을 보고 있으니 눈이 앞을 내다보지도 못할 만큼 내리고 있었다. 고속도로의 휴게소에서 만난 엄청난 양의 눈을 반기는 사람들은 아이들뿐이었다. 방방 뛰는 아이들을 보니 방뇨의 기운이 올라와 화장실로 향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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