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버스 타고 한 시간 넘게 학교 다는 게 귀찮아서 학교 앞 독서실에서 두 달인가 생활한 적이 있었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꼬질꼬질하니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지만 울릉도에서 와서 하숙하는 놈이 있어서 거기서 씻기도 하고, 가끔 학교 근처 사우나를 가기도 했다. 거기 사우나는 학교 선생님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꺼려했는데 거기 사우나는 요구르트도 주고 스킨로션이 일반 목욕탕보다 냄새도 좋고 느낌도 좋아서 친구와 가곤 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다녔는데 나는 독서실 생활을 해서 도시락을 싸다닐 수가 없어서 애들 도시락 돌아가면서 얻어먹었는데 싫어하는 녀석들은 없었다.


독서실은 공부하는 곳인데 공부는 참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막상 자려고 하면 잠이 안 오고 앉아서 책을 펼치면 꾸벅꾸벅 졸리는 신기한 곳이 독서실이었다. 잠자리가 몹시 불편한데 어떻게든 즉응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책상 밑의 침낭 속으로 기어 들어가 잘도 쿨쿨 잠들기도 했다. 요즘의 나를 생각할 때 – 이렇게 예민하고 낯선 곳에서 잘 못 자고 냄새에 민감한데 그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러다가도 생각해 보면 아버지 병실생활을 할 때에 그 불편한 간이침대에서도 적응을 하니 쿨쿨 잤다. 낮 동안 그렇게 시끄럽고 죽음과 사투하는 환자들도 밤이 되면 고요하게 잠들었다. 병실과 병원 복도가 적요한 것도 기묘했다. 간이침대에 누우면 병실의 바닥 부분이 보이는데 처음에는 잠을 잘 수 없어서 그대로 눈을 뜨고 새벽을 맞이하거나 잠깐 졸다가 아침이 되곤 했는데 적응이 되며 어디서든 쿨쿨 자게 된다. 복도의 벤치에서도, 대기실의 의자에서도, 가족들을 위한 커다란 방에서도, 어디서든 자려고 하면 쿨쿨 자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정말 알 수 없는 기묘한 존재다.


학교 바로 앞에 독서실이 있어서 3분 거리다. 도로를 하나 건너면 바로 학교 정문인데 지각을 자주 했다. 새벽에 겨우 잠 들어서 눈뜨면 등교시간이 다 된 시간이었다. 번개날치기로 일어나서 곧바로 튀어 나가도 지각이었다. 그러면 교문 앞에 무시무시한 학주가 몽둥이를 들고 딱 버티고 있다. 저 정문만 통과하면 되는데 그게 참 힘들었다. 담벼락도 높아서 넘을 수도 없었다.


일단 학주에게 걸리고 나면 일주일이 괴롭다. 마치 좀비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바지 끄트머리에 붙어서 따라오는 것처럼 공포가 엄습함을 느끼는 것이다. 수학여행 때 포항에서 온 여고생들과 사진을 찍고 있으니 학주가 와서 조용히 그랬다. 못 꼬시면 학교에서 죽는다고. 거기가 설악산이었고 묵었던 숙소가 포항에서 온 여고생들이 묵었던 숙소와 가까워서 그 애들 숙소에 들어가서 만나서 밤에 놀았던 기억이 있다. 이 이야기는 아주 길어서 나중에 할 수 있으면.


아무튼 학교에 가면 좋았던 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으면 아무도 건들지 않았다. 일진은 반마다 있었지만 내 기억에 아이들을 계속 괴롭히는 일은 없었다. 또 아이들을 따돌리는 일도 없었다. 모르지? 다른 반에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일단 우리 반에는 그런 분위기가 없었다.


반에는 운동부도 있었는데 양궁부가 있었고, 펜싱하는 놈도 있었다. 또 학교 내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악대부도 있었는데 얘네들은 다른 학교의 일진들과 파벌싸움을 다니곤 했다. 그래서 얼굴에 멍이 늘 따라다녔는데 계급처럼 여기곤 했다. 나는 사진부라서 암실에서 주로 머물면서 놀고, 선배들에게 맞고, 사진 이야기하고 뭐 그랬다. 선배들에게 욕 나올 정도로 많이 맞았다. 그때 많이 맞아서 그런지 군대에서 구타는 뭔가 잘 견딜만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학생 때에도, 군대에서도 많이 맞았는데 사람을 한 번도 때려 본 적이 없다. 언젠가부터 한 번이라도 때리고 싶은 인간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재홍(이라고 하자)이는 기타를 신급으로 연주했다. 재홍이는 점심시간에 등나무 아래에서 기타를 연주하곤 했는데 아이들이 빙 둘러서 구경을 하곤 했다. 학교 축제 때에는 대학교 밴드와 협연을 하기도 했고 여상 클래식 콰르텟과도 합동 연주를 하는 등 인기가 좋아서 여기저기 많이 불려 다녔다.


게다가 재홍이는 주말에 학생들이 많이 가는 호산나에서 디제이를 했다. 우리는 모이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주로 록음악, 헤비메탈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앎은 얕고 가늘었지만 재홍이는 기타를 연주해서인지 각 밴드들의 차이나 특징 같은 것들을 잘 알려 주었다. 재홍이는 연습을 얼마나 했던지 당시 우리가 좋아하는 스티브 바이처럼 기타를 연주했다.


학교 점심시간에는 도시락이 없어서 친구와 친구의 도시락을 1교시 후에 해치우고 점심시간에는 매점으로 갔다. 하지만 매점은 늘 인산인해다. 도시락이 있음에도 매점은 항상 북적북적했다. 그러면 우리는 내가 다니는 독서실에 와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이 언제가 제일 맛있냐? 독서실에서 끓여 먹는 라면이다. 이상하지만 독서실에서 꼬질꼬질한 버너에서 끓여 먹는 라면은 기가 막혔다. 계란까지 야무지게 사 와서 넣어서 보글보글 끓여 먹었다. 김치는 독서실 지킴이 형이 줬다. 라면을 끓여서 호로록 먹고 있으면 젓가락을 들고 나타나는 애가 있었다.

나 이때 인기 많았다 ㅋㅋ


그 애는 여고에 다니고 있었는데 김태희가 나온 여고로 유명한 여고였다. 그 애의 이름은 연주였다. 연주는 미팅을 해서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미팅을 세 번 정도 했는데 전부 땜방으로 나갔다. 너 미팅할래?라고 다이렉트로 먼저 들어온 경우는 없었다. 땜방내지는 폭탄 제거반으로 나갔다. 아이들이 나를 미팅에 데려가지 않으려는 이유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서다. 요컨대 헤비메탈 음악에 관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여자 아이들이 전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미팅에 땜방으로 나갔다가 연주가 파트너가 되었고 연주는 딩클럽이라는 학생 밴드들이 공연하는 곳에서 객원으로 키보드를 연주하는 록 마니아였다.


본조비도 반 헤일런도 좋아하는 왈가닥 여고생이었다. 연주도 독서실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여고는 명문여고로 공부로는 우리나라에서도 공부로 짱 먹는 학교라 키보드와 학업을 병행하려면 잠을 줄여 가며 공부를 해야 했다. 여자는 라면을 먹어도 그렇게 많이 먹지 않기는 개뿔, 여자인 연주는 말랐는데 참 많이도 먹었다. 야금야금 먹고 치우다 보면 테이블이 깨끗해졌다. 우리는 가끔 투다리에서 닭꼬치를 실컷 먹기도 했다. 물론 맥주와 함께.


투다리 이모와 아주 잘 알아서 교복을 입고도 잘 들여보내주었다. 중학교 고등학교가 밀집한 지역이라 투다리 이런 선술집에 단속이 왕왕 떴는데 단속이 뜨면 투다리 이모에게 연락이 오고 이모는 우리를 꽁꽁 싸메서 주방의 한편에 숨겨 주었다.


너도 도시락 안 싸왔냐?


연주는 꼭 라면 끓여 먹으려고 하면 어떻게 냄새를 맡고 오는지. 그래도 라면 먹으며 셋이 시답잖은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주 즐거웠다. 존 본조비가 어떻니 리치 샘보라의 스타일이 어떻다느니, 니키 식스가 개 똘아이라던가 귀네문트가 더 예쁜지 같은 이야기들을 하며 하하 호호 행복했다. 연주는 이번 주말에 딩클럽에서 자신의 밴드가 공연을 하니 보러 오라고 했다.


딩클럽은 그 일대에서 유일하게 학생밴드들이 공연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생각해 보면 요즘은 그런 클럽이 전혀 없는데 그때는 구마다 그런 클럽이 있었다. 딩클럽은 11층짜리 건물 지하에 있는데 꽉 차면 백오십 명 정도? 되는 작은 공간이었다. 그래도 조명이 밴드가 연주하고 노래를 할 수 있는 것에 맞춰있어서 아주 좋았다. 음향 시설도 좋고 관객으로 온 아이들의 호응도 끝내줬다.


그때는 각 학교마다 밴드 한다고 하는 녀석들이 다 있었다. 전부 부모님에게 혼나고 한 번 쫓겨나고 손들도 울고 성적은 안 떨어지기 하겠다며 그렇게 해서 허락을 받아내서 시간을 내서 밴드 연습을 해서 노래를 불렀다. 멋진 나날들이었다.



호산나가 언급된 기사를 찾았다.https://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18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


가만히 귀를 대고 소리를 듣다가 나는 손으로 우물을 덮은 쇠뚜껑을 탁탁 쳤다. 그러자 히히히히 하는 소리가 뚝 끊어졌다. 나는 다시 탁탁탁 손으로 두드렸다. 5초 정도 지났을까. 톡톡톡 하며 소리가 들렸다. 나는 쇠로 만들어진 뚜껑이 덮인 틈으로 말을 했다.


[너 왜 거기 밑에 있니? 어른들 불러와서 뚜껑을 열라고 할게]라고 말했다.


[아니야, 나는 빛을 보면 사라지고 말아. 여기 우물 밑이 꽤 아늑하고 좋아]라고 아이가 말했다.


[너는 죽은 거니?]


[글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여기에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애]


[너 혼자 있니? 외롭지는 않니?]


그 부분에서 아이는 잠시 틈이 있었다.


[응, 괜찮아. 여기 친구들도 있어. 지금 같이 놀고 있었어]


[친구들? 정말?]


[응, 너도 친구가 되어 줄래?]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귀신과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만나?]


[이렇게 만나도 되고, 내가 너를 찾아갈게. 괜찮지?]


[응, 언제든지 찾아와. 우물 밑에서 춥지는 않아?]


[여긴 달의 뒤편 같은 곳이야. 춥지도 덥지도 않아. 내내 따뜻하거나 시원해. 그래서 밖에서 폭풍이 쳐도, 비가 여러 날 내리지 않아도 여기는 아무 문제가 없어]


[잠은 언제 자?]


[잠은 안 자]


[정말? 와 좋겠다. 나도 잠 안 자도 되면 그 시간에 태권도 배울 텐데]


[태권도? 왜?]


[그냥, 사실 나는 아이들에게 맞기 때문에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 엄마는 도장에 보내주지 않거든]


[그렇구나. 나중에 내가 태권도 가르쳐줄게]


[너 태권도도 할 줄 알아?]


[응, 나 이래 봬도 태권도 1단이야]


[와 너 대단한데. 빨리 만나고 싶구나]


[너는 내가 무섭지 않니?]


[왜? 귀신이라서?]


[그래]


[응 무섭지 않아.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너는 무섭지 않아. 무서운 건 선생님이고, 술 취한 아저씨고, 이유 없이 때리는 학교에서 짱 먹는 아이들이야]


군인 게임을 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다시 가깝게 들려왔다.


[나는 가야 할 것 같애. 또 이야기하고 싶으면 여기로 오면 돼?]


[응, 하지만 내가 없을 수도 있어. 내가 너를 만나러 갈게 곧]


눈을 뜨니 나는 우물에 등을 기댄 채 잠이 들었고 아이들이 나를 찾으러 여기까지 우르르 왔다. 게임은 벌써 끝났는데 너는 도대체 여기서 잠들어 있으면 어떡하냐고 아이들이 웃었다. 군인 게임을 통해서 옆 동네 아이들과는 친숙하게 되었다. 여자애들도 다 같이 친하게 지냈다. 나는 그 뒤로 자주 우물에 갔다. 갈 때마다 뚜껑에 대고 탁탁탁 두드리곤 했다. 하지만 우물 밑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방학을 일주일 남겨두고 나는 매일 우물이 있는 곳에 갔다. 그곳에서 그 아이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우물에 대고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곤 했다. 방학 동안에도 마치 일기처럼 그날그날 있었던 일들을 우물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겨울 방학이 끝났다.


겨울 방학은 끝났지만 2월은 아직 추웠다. 하지만 곧 봄방학이 기다리고 있다. 이상하지만 나는 우물과 대화하는 게 좋아졌다. 마치 우물은 그 아이 같았다.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기이하게도 지난번 그 아이와 이야기를 한 사실이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편안했다. 꼭 영화 ‘사랑과 영혼’의 몰리의 마음 같았다. 비록 샘은 사라졌지만 샘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어서 기쁨으로 매일매일 지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봄 방학을 이틀 앞두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걸레를 들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와 다르게 걸레를 든 녀석을 변기 안으로 밀어 버렸다. 녀석은 변기에 그대로 엉덩이가 빠져서 울고 말았다. 아이들은 당황했는지 내가 노려보니까 그렇게 무서웠던 괴물 같았던 녀석들이 조무래기들처럼 느껴졌다. 왁! 하니까 아이들이 도망쳐 나갔다. 나 같지 않았지만 나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이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야,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내일만 학교에 오면 곧 봄방학이다. 그럼 우물에 일주일 동안 매일 갈 수 있다. 이상하지만 별거 아닌 거에 기분이 좋았다.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나왔다. 교문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나의 앞으로 걸어왔다. 못 보던 여자 아이였다. 여자 아이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보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곧 전학 올 거야. 너 만나러 왔어]


반가운 그 목소리였다. 우리는 첫 만남에 손을 잡고 교문 밖을 나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놀기에는 여름보다 겨울이 좋았다. 아이들이 모이면 뛰어다니며 놀았는데 여름에는 더운 데다 뛰어다니면 땀이 나서 집에 들어가면 몇몇 아이들은 등짝 스메싱을 맞기 일쑤다. 도대체 빨래를 몇 번 해야 하느냐고. 그러나 겨울에는 추워서 뛰어다니면 추위가 물러갔기 때문에 놀기에 그만이었다.


그날은 옆 동네 아이들과 군인놀이를 하는 날이다. 아이들이 다 모이면 거의 15명? 16명 정도가 된다. 옆 동네 아이들과는 사이가 좋지는 않다.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 부딪힐 일이 없으니까 서로 동네에서 논다. 그러나 놀이터 같은 공터가 우리 동네에 있어서 이쪽으로 옆 동네 아이들이 와서 놀 때가 있다. 아이들 세계에서는 정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군대놀이는 계급이 적힌 종이를 한 장씩 가진다. 물론 상대편도 그렇게 한다. 서로 누가 어떤 계급인지 모른다. 그래서 게임이 시작되면 전부 샤샤샤삭 흩어지는데 성큼성큼 거리낌 없이 상대방을 잡으러 다가오는 녀석이 대체로 계급이 가장 높다. 비교적 낮은 계급을 물려받은 녀석들은 어떻든 도망을 다녀야 한다. 여하튼 게임이 시작되면 쫓고 쫓기는, 격렬하게 달려야 한다. 겨울에 안성맞춤이다.


옆 동네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전부 벽에 붙어서 해를 쬔다. 따뜻한 햇빛이 얼굴과 몸으로 떨어진다. 바람이 없어서 햇볕은 한없이 따뜻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벽에 등을 대고 일렬로 붙어서 옆 동네 아이들이 오면 어떻게 어떤 식으로 몰아붙일지 계획을 짠다. 그러나 계획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잡으러 오면 어디로 달려가고 어디에 숨어야 한다는 이야기뿐이다. 따뜻한 햇빛에 잠식되어 갈 때 옆 동네 아이들이 왔다.


[이런저런 협상이 오고 간 후]


게임이 시작되었다. 나는 병장이다. 상대방 대부분이 나보다 계급이 위다. 잡히면 나는 죽는다. 그러나 만약 상대방과 둘이 붙어서 서로 낮은 계급이라 패를 까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 그대로 지나칠 수 있다. 그래서 서로 계급이 높은 사람이 기를 쓰고 상대방을 잡으러 다닌다.


도망을 다니되 마을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마을 하나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옆 동네와 합치면 숨을 곳도 많고 그 안에 교회도 있어서 제대로 도망 다니면 게임이 끝날 때까지 붙잡히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방송국으로 올라가는 골목의 도사견이 있는 집의 옆에 몸을 웅크리고 숨었다. 누군가 오면 저 도사견이 크게 짖을 것이다. 그러면 옆의 구멍으로 나가면 된다. 가끔 여자애들도 낄 때가 있다. 드물지만 여자애들이 군인 게임에 끼게 되면 거의 계급이 중간 계급인 경우가 많다.


옆 동네의 여자애들은 그러지 않는데 꼭 우리 동네 여자애들은 같이 놀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실 어떤 놀이를 하던 다 같이 놀면 재미있었다. 밖에서 하는 놀이는 대부분 남자애들이 잘했다. 공기 받기도 남자애들이 잘했다. 심지어는 고무줄 띄기도 남자애가 더 잘했다. 여자애들이 군대놀이에 끼면 군대놀이에만 집중을 하지 않는다. 숨어 있다가도 재잘재잘 거리고, 남자애들만큼 놀이에 몸과 마음을 던지지는 않는다.


[너 뭐야! 너 나보다 낮은 계급이지!] 같은 소리가 들리며, 두 사람이 후다다닥 달려가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멀어졌다. 해가 들지 않으니 웅크리고 숨어 있는 곳이 추웠다.


나는 어떤 쪽이냐면 돌아다니며 옆 마을 아이가 나타나면 계급이 뭔지 떠보고 거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저 조용하게 웅크리고 모든 게 지나가길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다 끝나면 나와서 나는 남았다!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좋았다. 같이 어울리고는 싶지만 깊게 관여하기는 싫다.


이렇게 조용하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 웅크리고 있다가 지지고 볶는 시끄러운 게임이 끝나면 나가야지. 그러나 그늘 속에서는 추위가 굉장했다. 바람이 없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게임을 하기 전 햇볕을 받았던 그 따뜻함이 금방 빠지더니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그러더니 이내 추위가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그곳에서 나왔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허리를 굽히고 살금살금 골목의 모퉁이를 돌았다. 이 정도 왔으면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야 할 텐데 조용했다. 나는 최대한 기도비닉으로 살금살금 놀이터가 있는 공터로 나갔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 잡힌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동네 곳곳, 구석구석에서 추격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갔다. 내가 웅크리고 있던 곳은 그늘이 이미 추위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나는 다른 숨을 곳을 찾아서 골목의 끝으로 갔다.


골목의 끝으로 가면 모퉁이의 집을 돌면 옆 마을로 이어진다. 나는 옆 마을에는 자주 가지 않았다. 옆 마을에는 입구를 막아 놓은 우물이 마을의 한 편에 있다. 그 우물을 막은 이유가 아이가 빠졌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소문은 바람을 타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소문을 전달하면 이야기는 부풀 대로 부풀어서 아주 무서워졌다.


그 소문이 그저 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옆 동네에도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우물은 그저 우물로서, 우물이라는 이름만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한가한 시간인지 옆 마을은 조용했다.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때 군인 놀이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서, 달려라 같은 소리가 들렸다. 점점 크게 들렸다. 내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몸을 굽히고 빨리 우물 뒤에 몸을 숨겼다.


동진이 녀석이 옆 마을, 즉 이 동네 아이를 뒤쫓고 있었다. 동진이 녀석은 싸움꾼이다. 지치는 법이 없고 언제나 우리 동네 아이들을 지켜주려고 하는 녀석이다. 단지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말 한마디 못하는 그런 녀석이다. 두 녀석이 후다다닥 하며 우물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여기에 웅크리고 있으니 등이 따뜻했다. 해가 나의 등에 떨어졌다.


추운데 있다가 내 몽에 떨어지는 햇볕은 그야말로 나를 치즈처럼 녹아내리게 만들었다. 나는 우물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햇빛을 얼굴로 받았다. 추운 겨울의 틈을 벌리고 햇빛은 악착같이 따뜻했다. 노래가 생각나는데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이런 기시감 같은 기분을 말하는 노래가 있는데. 노래를 생각하는데 우물 안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무슨 소리가 들렸다. 이히히히 하며 아이의 노는 소리였다. 나는 귀를 우물의 벽에 바짝 대고 소리를 들었다. 분명 어린아이의 소리다. 우물의 입구는 무겁고 딱딱한 쇠로 만든 뚜껑으로 덮여 있고 쇠사슬로 우물을 둘러놨다. 우물 속에서는 히히히하며 웃는 소리와 물장구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헤비헤비한 메탈이 좋아 –사두


헤비메탈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유일한 음악이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그래서 기타 연주, 전기기타 연주가 초반에 등장하면 알 수 없는 마력에 한 없이 빨려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어쩐지 록 음악, 특히 헤비메탈은 변두리 음악으로 되어 버린 것 같지만 내가 학창 시절에는 이런 강력한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중학생의 아장아장한 모습일지라도 공연장으로 뛰어가서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신나게 흔들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헤비헤비한 메탈음악을 틀어 놓고 듣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속 시끄럽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집에서는 도저히 크게 틀어 놓고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헤드셋을 끼고 들어야 했다. 메탈 음악을 조용하게 들을 수는 없다. 될 수 있으면 크게 틀어 놓고 들어야 제맛이다. 요컨대 윤도현 밴드의 노래를 라디오로 자주 듣는데, 라디오로 듣는 음악은 뭐랄까 라디오의 볼륨에 맞춰진 상태에서 메탈이던, 발라드던, 댄스곡이던, 트롯이 나오니까 엇 비슷하게 들린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볼륨을 높이겠지. 그러나 윤도현의 목소리를 실제로 공연장이나 옆에서 듣는다면 “나 돌 아 갈 래~~~!!”라고 노래를 부르면 그야말로 악마의 블랙홀이다. 클럽에서 윤도현이 나 돌아갈래라고 노래를 불렀다 치면 이 목소리에 모든 것이 전부 빨려 들어간다. 주방에서 채소를 썰던 조리사도, 관객도, 지나가는 행인도 전부 그 목소리에 빨려 들어갈 정도로 흡입력이 강하게 들린다. 하지만 라디오로 듣는다면 그저 라디오의 볼륨에 맞게 들릴 뿐이다.


학창 시절에는 이런 충족감을 느끼려면 어떻던 음악감상실로 가야 했다. 거기서는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음악을 있는 대로 크게 들을 수 있었다. 가끔 주말에는 학교 밴드들이 와서 공연도 했다. 거기 가면 메탈리카, 너바나, 머틀리크루의 강력한 음악을 강렬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이 몸으로 들어와서 공중부유를 시켰다. 그래서 음악 감상실을 집처럼 자주 갔었다. 공부는 거의 포기였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도 바쏘리와 오비츄어리에도 약간은 심취해 있었다. 강력하고 강력한 메탈 음악, 데스메탈, 블랙메탈, 돔메탈이라고 불리는, 씹어먹어 버릴 듯한 사운드의 음악을 신청을 하곤 했다. 그러던 중 한 디제이가 우리나라의 데스메탈 그룹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데스메탈밴드가 있다니. 두둥. 가히 독보적이었다. 데스메탈에서 가사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사는 잘 들리지도 않는다.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저 광기에 사로잡힐 듯한 연주에 몸을 맡기면 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메탈이 데스메탈, 블랙메탈이지 않을까. 그런 데스메탈그룹이 90년대에 한국에도 있었다.


데스메탈밴드는 대체로 바이킹의 나라들에서 많이 나왔다. 노르웨이 밴드나 스웨덴 밴드가 강력한 데스메탈이나 블랙메탈을 했다. 그들 중에서는 정말 데스메탈을 하다가 접신하여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무대 퍼포머를 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한 밴드도 있다. 이런 가십이 그때에는 전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영화 에이스밴츄라를 보면 짐 캐리가 한 클럽에 들어가는데 거기서 연주하는 곡이 데스메탈이다. 짐 캐리의 표정이 압권이었던. 그 영화에 블레이드 러너의 히로인 숀 영도 나오고 시트콤 프렌즈의 커트니 콕스도 나온다. 여하튼 음악감상실의 한 디제이가 소개해준 한국의 데스메탈 밴드는 ‘사두’였다.


https://youtu.be/tBDaDKJZHNw?si=0xRe06y6gQorRTR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매일 여기 앉아서 보는 골목의 하찮은 뷰가 좋다. 이렇게 앉아서 보면 영화를 보는 것보다 재미있다. 재미가 없는데 재미있다. 건물이 뒤를 막고 있어서 골목에 해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하루 중 잠시 동안 해가 비치는 시간이 있다. 그때 보는 골목 안의 풍경이 좋다. 해가 잠시 동안 비치는 부분은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반짝인다. 더럽고 추한 곳으로 비쳐드는 햇빛은 운명처럼 만난 사람 같다.


앉은 소파가 푹신하지 않다. 앉아서 골목의 풍경을 보면서 소파의 솜을 자꾸 뜯었기 때문이다. 골목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은 멈춘 것 같다. 아무도 이런 좁고 춥고 더러운 골목 안으로 오지 않는다. 고양이조차 오지 않는다. 골목에 오는 건 하루 한 번 비치는 '해'뿐이다. 그 잠시 동안 골목 안은 마치 다른 세상이 된 것만 같다. 먼지가 햇빛에 따라 춤을 추는 모습도 보인다. 벽돌과 벽돌 사이 벌어진 틈으로 해가 내려앉으면 그곳에서만 봄에 꽃이 올라온다. 아주 서글프고 안타깝게 올라온다. 곧 죽을 것 같은 그 꽃의 모습이 매혹적이다.


하루 중 잠시 해가 비치는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서 여기 앉아서 골목의 뷰를 본다. 이처럼 적요하고 평화로운 뷰가 또 있을까. 경치가 좋고 아름다운 곳은 골목 안의 이 뷰를 따라오지 못한다. 하루 종일 축축하고 그림자로 가득한 곳이지만 잠깐 드는 햇빛 때문일까. 해가 비치지 않는 곳에도 이끼들은 짙 녹색을 띠며 자라고 있었다. 어둡고 축축한 녹색은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이토록 아름다운 지옥이 있을까. 이런 지옥이라면 재미없는 천국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지옥이란 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다. 시끄럽고 물어뜯고 증오하고 환멸에 가득한 눈으로 멸시하고 괴롭히는 세상. 그곳이 지옥이다.


이 골목을 빠져나가는 순간 정말 지옥이 펼쳐진다. 지옥을 왜 지옥이라고 하느냐면 사람들은 점점 지옥에 물들어서 자신이 지옥에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 좀 다르지만 오후 3시가 되면 해가 골목을 지나간다. 긴긴 겨울 내내 흐린 날도 가득하여 이 골목에 해가 들어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 그 순간이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골목에 해가 비칠 때 나는 소파의 솜을 조금 뜯어낸다. 이제 소파는 소파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소파를 사랑한다. 소파는 나에게 있어 하나의 상징이다. 이 소파에 앉아야만 골목의 뷰를 편안하게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오히려 서늘하고 겨울에는 온화한 곳이다. 겨울의 나른하고 포근한 날의 골목의 뷰는 다른 날보다 감격스럽다. 해가 들어오지 않아서 차갑지만 겨울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뷰가 펼쳐지는 모습을 오늘도 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