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놀기에는 여름보다 겨울이 좋았다. 아이들이 모이면 뛰어다니며 놀았는데 여름에는 더운 데다 뛰어다니면 땀이 나서 집에 들어가면 몇몇 아이들은 등짝 스메싱을 맞기 일쑤다. 도대체 빨래를 몇 번 해야 하느냐고. 그러나 겨울에는 추워서 뛰어다니면 추위가 물러갔기 때문에 놀기에 그만이었다.


그날은 옆 동네 아이들과 군인놀이를 하는 날이다. 아이들이 다 모이면 거의 15명? 16명 정도가 된다. 옆 동네 아이들과는 사이가 좋지는 않다.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 부딪힐 일이 없으니까 서로 동네에서 논다. 그러나 놀이터 같은 공터가 우리 동네에 있어서 이쪽으로 옆 동네 아이들이 와서 놀 때가 있다. 아이들 세계에서는 정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군대놀이는 계급이 적힌 종이를 한 장씩 가진다. 물론 상대편도 그렇게 한다. 서로 누가 어떤 계급인지 모른다. 그래서 게임이 시작되면 전부 샤샤샤삭 흩어지는데 성큼성큼 거리낌 없이 상대방을 잡으러 다가오는 녀석이 대체로 계급이 가장 높다. 비교적 낮은 계급을 물려받은 녀석들은 어떻든 도망을 다녀야 한다. 여하튼 게임이 시작되면 쫓고 쫓기는, 격렬하게 달려야 한다. 겨울에 안성맞춤이다.


옆 동네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전부 벽에 붙어서 해를 쬔다. 따뜻한 햇빛이 얼굴과 몸으로 떨어진다. 바람이 없어서 햇볕은 한없이 따뜻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벽에 등을 대고 일렬로 붙어서 옆 동네 아이들이 오면 어떻게 어떤 식으로 몰아붙일지 계획을 짠다. 그러나 계획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잡으러 오면 어디로 달려가고 어디에 숨어야 한다는 이야기뿐이다. 따뜻한 햇빛에 잠식되어 갈 때 옆 동네 아이들이 왔다.


[이런저런 협상이 오고 간 후]


게임이 시작되었다. 나는 병장이다. 상대방 대부분이 나보다 계급이 위다. 잡히면 나는 죽는다. 그러나 만약 상대방과 둘이 붙어서 서로 낮은 계급이라 패를 까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 그대로 지나칠 수 있다. 그래서 서로 계급이 높은 사람이 기를 쓰고 상대방을 잡으러 다닌다.


도망을 다니되 마을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마을 하나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옆 동네와 합치면 숨을 곳도 많고 그 안에 교회도 있어서 제대로 도망 다니면 게임이 끝날 때까지 붙잡히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방송국으로 올라가는 골목의 도사견이 있는 집의 옆에 몸을 웅크리고 숨었다. 누군가 오면 저 도사견이 크게 짖을 것이다. 그러면 옆의 구멍으로 나가면 된다. 가끔 여자애들도 낄 때가 있다. 드물지만 여자애들이 군인 게임에 끼게 되면 거의 계급이 중간 계급인 경우가 많다.


옆 동네의 여자애들은 그러지 않는데 꼭 우리 동네 여자애들은 같이 놀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실 어떤 놀이를 하던 다 같이 놀면 재미있었다. 밖에서 하는 놀이는 대부분 남자애들이 잘했다. 공기 받기도 남자애들이 잘했다. 심지어는 고무줄 띄기도 남자애가 더 잘했다. 여자애들이 군대놀이에 끼면 군대놀이에만 집중을 하지 않는다. 숨어 있다가도 재잘재잘 거리고, 남자애들만큼 놀이에 몸과 마음을 던지지는 않는다.


[너 뭐야! 너 나보다 낮은 계급이지!] 같은 소리가 들리며, 두 사람이 후다다닥 달려가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멀어졌다. 해가 들지 않으니 웅크리고 숨어 있는 곳이 추웠다.


나는 어떤 쪽이냐면 돌아다니며 옆 마을 아이가 나타나면 계급이 뭔지 떠보고 거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저 조용하게 웅크리고 모든 게 지나가길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다 끝나면 나와서 나는 남았다!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좋았다. 같이 어울리고는 싶지만 깊게 관여하기는 싫다.


이렇게 조용하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 웅크리고 있다가 지지고 볶는 시끄러운 게임이 끝나면 나가야지. 그러나 그늘 속에서는 추위가 굉장했다. 바람이 없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게임을 하기 전 햇볕을 받았던 그 따뜻함이 금방 빠지더니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그러더니 이내 추위가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그곳에서 나왔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허리를 굽히고 살금살금 골목의 모퉁이를 돌았다. 이 정도 왔으면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야 할 텐데 조용했다. 나는 최대한 기도비닉으로 살금살금 놀이터가 있는 공터로 나갔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 잡힌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동네 곳곳, 구석구석에서 추격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갔다. 내가 웅크리고 있던 곳은 그늘이 이미 추위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나는 다른 숨을 곳을 찾아서 골목의 끝으로 갔다.


골목의 끝으로 가면 모퉁이의 집을 돌면 옆 마을로 이어진다. 나는 옆 마을에는 자주 가지 않았다. 옆 마을에는 입구를 막아 놓은 우물이 마을의 한 편에 있다. 그 우물을 막은 이유가 아이가 빠졌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소문은 바람을 타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소문을 전달하면 이야기는 부풀 대로 부풀어서 아주 무서워졌다.


그 소문이 그저 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옆 동네에도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우물은 그저 우물로서, 우물이라는 이름만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한가한 시간인지 옆 마을은 조용했다.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때 군인 놀이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서, 달려라 같은 소리가 들렸다. 점점 크게 들렸다. 내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몸을 굽히고 빨리 우물 뒤에 몸을 숨겼다.


동진이 녀석이 옆 마을, 즉 이 동네 아이를 뒤쫓고 있었다. 동진이 녀석은 싸움꾼이다. 지치는 법이 없고 언제나 우리 동네 아이들을 지켜주려고 하는 녀석이다. 단지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말 한마디 못하는 그런 녀석이다. 두 녀석이 후다다닥 하며 우물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여기에 웅크리고 있으니 등이 따뜻했다. 해가 나의 등에 떨어졌다.


추운데 있다가 내 몽에 떨어지는 햇볕은 그야말로 나를 치즈처럼 녹아내리게 만들었다. 나는 우물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햇빛을 얼굴로 받았다. 추운 겨울의 틈을 벌리고 햇빛은 악착같이 따뜻했다. 노래가 생각나는데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이런 기시감 같은 기분을 말하는 노래가 있는데. 노래를 생각하는데 우물 안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무슨 소리가 들렸다. 이히히히 하며 아이의 노는 소리였다. 나는 귀를 우물의 벽에 바짝 대고 소리를 들었다. 분명 어린아이의 소리다. 우물의 입구는 무겁고 딱딱한 쇠로 만든 뚜껑으로 덮여 있고 쇠사슬로 우물을 둘러놨다. 우물 속에서는 히히히하며 웃는 소리와 물장구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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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헤비한 메탈이 좋아 –사두


헤비메탈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유일한 음악이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그래서 기타 연주, 전기기타 연주가 초반에 등장하면 알 수 없는 마력에 한 없이 빨려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어쩐지 록 음악, 특히 헤비메탈은 변두리 음악으로 되어 버린 것 같지만 내가 학창 시절에는 이런 강력한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중학생의 아장아장한 모습일지라도 공연장으로 뛰어가서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신나게 흔들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헤비헤비한 메탈음악을 틀어 놓고 듣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속 시끄럽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집에서는 도저히 크게 틀어 놓고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헤드셋을 끼고 들어야 했다. 메탈 음악을 조용하게 들을 수는 없다. 될 수 있으면 크게 틀어 놓고 들어야 제맛이다. 요컨대 윤도현 밴드의 노래를 라디오로 자주 듣는데, 라디오로 듣는 음악은 뭐랄까 라디오의 볼륨에 맞춰진 상태에서 메탈이던, 발라드던, 댄스곡이던, 트롯이 나오니까 엇 비슷하게 들린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볼륨을 높이겠지. 그러나 윤도현의 목소리를 실제로 공연장이나 옆에서 듣는다면 “나 돌 아 갈 래~~~!!”라고 노래를 부르면 그야말로 악마의 블랙홀이다. 클럽에서 윤도현이 나 돌아갈래라고 노래를 불렀다 치면 이 목소리에 모든 것이 전부 빨려 들어간다. 주방에서 채소를 썰던 조리사도, 관객도, 지나가는 행인도 전부 그 목소리에 빨려 들어갈 정도로 흡입력이 강하게 들린다. 하지만 라디오로 듣는다면 그저 라디오의 볼륨에 맞게 들릴 뿐이다.


학창 시절에는 이런 충족감을 느끼려면 어떻던 음악감상실로 가야 했다. 거기서는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음악을 있는 대로 크게 들을 수 있었다. 가끔 주말에는 학교 밴드들이 와서 공연도 했다. 거기 가면 메탈리카, 너바나, 머틀리크루의 강력한 음악을 강렬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이 몸으로 들어와서 공중부유를 시켰다. 그래서 음악 감상실을 집처럼 자주 갔었다. 공부는 거의 포기였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도 바쏘리와 오비츄어리에도 약간은 심취해 있었다. 강력하고 강력한 메탈 음악, 데스메탈, 블랙메탈, 돔메탈이라고 불리는, 씹어먹어 버릴 듯한 사운드의 음악을 신청을 하곤 했다. 그러던 중 한 디제이가 우리나라의 데스메탈 그룹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데스메탈밴드가 있다니. 두둥. 가히 독보적이었다. 데스메탈에서 가사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사는 잘 들리지도 않는다.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저 광기에 사로잡힐 듯한 연주에 몸을 맡기면 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메탈이 데스메탈, 블랙메탈이지 않을까. 그런 데스메탈그룹이 90년대에 한국에도 있었다.


데스메탈밴드는 대체로 바이킹의 나라들에서 많이 나왔다. 노르웨이 밴드나 스웨덴 밴드가 강력한 데스메탈이나 블랙메탈을 했다. 그들 중에서는 정말 데스메탈을 하다가 접신하여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무대 퍼포머를 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한 밴드도 있다. 이런 가십이 그때에는 전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영화 에이스밴츄라를 보면 짐 캐리가 한 클럽에 들어가는데 거기서 연주하는 곡이 데스메탈이다. 짐 캐리의 표정이 압권이었던. 그 영화에 블레이드 러너의 히로인 숀 영도 나오고 시트콤 프렌즈의 커트니 콕스도 나온다. 여하튼 음악감상실의 한 디제이가 소개해준 한국의 데스메탈 밴드는 ‘사두’였다.


https://youtu.be/tBDaDKJZHNw?si=0xRe06y6gQorR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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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여기 앉아서 보는 골목의 하찮은 뷰가 좋다. 이렇게 앉아서 보면 영화를 보는 것보다 재미있다. 재미가 없는데 재미있다. 건물이 뒤를 막고 있어서 골목에 해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하루 중 잠시 동안 해가 비치는 시간이 있다. 그때 보는 골목 안의 풍경이 좋다. 해가 잠시 동안 비치는 부분은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반짝인다. 더럽고 추한 곳으로 비쳐드는 햇빛은 운명처럼 만난 사람 같다.


앉은 소파가 푹신하지 않다. 앉아서 골목의 풍경을 보면서 소파의 솜을 자꾸 뜯었기 때문이다. 골목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은 멈춘 것 같다. 아무도 이런 좁고 춥고 더러운 골목 안으로 오지 않는다. 고양이조차 오지 않는다. 골목에 오는 건 하루 한 번 비치는 '해'뿐이다. 그 잠시 동안 골목 안은 마치 다른 세상이 된 것만 같다. 먼지가 햇빛에 따라 춤을 추는 모습도 보인다. 벽돌과 벽돌 사이 벌어진 틈으로 해가 내려앉으면 그곳에서만 봄에 꽃이 올라온다. 아주 서글프고 안타깝게 올라온다. 곧 죽을 것 같은 그 꽃의 모습이 매혹적이다.


하루 중 잠시 해가 비치는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서 여기 앉아서 골목의 뷰를 본다. 이처럼 적요하고 평화로운 뷰가 또 있을까. 경치가 좋고 아름다운 곳은 골목 안의 이 뷰를 따라오지 못한다. 하루 종일 축축하고 그림자로 가득한 곳이지만 잠깐 드는 햇빛 때문일까. 해가 비치지 않는 곳에도 이끼들은 짙 녹색을 띠며 자라고 있었다. 어둡고 축축한 녹색은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이토록 아름다운 지옥이 있을까. 이런 지옥이라면 재미없는 천국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지옥이란 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다. 시끄럽고 물어뜯고 증오하고 환멸에 가득한 눈으로 멸시하고 괴롭히는 세상. 그곳이 지옥이다.


이 골목을 빠져나가는 순간 정말 지옥이 펼쳐진다. 지옥을 왜 지옥이라고 하느냐면 사람들은 점점 지옥에 물들어서 자신이 지옥에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 좀 다르지만 오후 3시가 되면 해가 골목을 지나간다. 긴긴 겨울 내내 흐린 날도 가득하여 이 골목에 해가 들어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 그 순간이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골목에 해가 비칠 때 나는 소파의 솜을 조금 뜯어낸다. 이제 소파는 소파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소파를 사랑한다. 소파는 나에게 있어 하나의 상징이다. 이 소파에 앉아야만 골목의 뷰를 편안하게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오히려 서늘하고 겨울에는 온화한 곳이다. 겨울의 나른하고 포근한 날의 골목의 뷰는 다른 날보다 감격스럽다. 해가 들어오지 않아서 차갑지만 겨울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뷰가 펼쳐지는 모습을 오늘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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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가까이 왔을 때 건물 로비에 설치한 트리 가까이 어린 남매가 다가왔다. 어린 여동생이 오빠에게 뭔가를 부탁하니 오빠는 동생을 위해 기꺼이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짠하면서 애틋하던지, 그리고 오빠는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저 빛이 가득한 문으로 걸어 나갔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니 유진 스미스의 ‘천국으로 가는 길’이 떠올랐다. 유진 스미스의 유명한 사진 시리즈가 많지만 그래도 유진 스미스 하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사진이 가장 따뜻하고 유명하지 싶다. 유진 스미스의 대부분의 사진은 처절하고 어둡고 짙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자신의 아이들의 뒷모습을 순간포착으로 담아냈다.


유진 스미스는 정신질환으로 힘들었다. 보도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취재 중에 일본군의 탄환이 머리에 박혀 죽을 뻔하기도 했다. 유진 스미스는 완벽한 사진을 출력하기 위해 히스테리가 갈수록 심해졌다. 전쟁 중에 담은 사진이 마음이 들지 않아서 군인들에게 포탄을 터트려 연출해서 사진을 촬영했다는 설도 있다.


유진 스미스는 위대한 사진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대신 점점 정신질환이 심각해졌고 사진은 확고한 사실을 전달했다. 전쟁의 참상, 기근과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적나라하게 담았다. 유진 스미스의 조수들은 날로 심해지는 정신질환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한다. 히스테릭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자신의 아이들이 손을 잡고 저 빛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셔터를 누른다. 순간 포착으로 담아낸 그 사진은 너무나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과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마치 벅찬 희망을 나타나는 것 같다.


유진 스미스의 ‘천국으로 가는 길’은 많은 예술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줬다. 이번 영화 ‘괴물’로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게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영화[환상의 빛]에서도 주인공 유미코의 아이들이 동굴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유진 스미스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오마주 했다. 그 장면은 정말 너무나 아름다워서 몇 번이나 돌려서 봤다.

이 장면은 유미코의 일상을 말하며, 이쿠오의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는 시간을 매일 가지는 유미코는 알 수 없는 결락을 치유하는 것이 보잘것없는 일상이라는 걸, 아이들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또 한 영화에서도 ‘천국으로 가는 길’을 오마주 했다. 피가 터지고 낭자했던 영화. 이 만큼 처참하고 격렬하게 피가 터지는 영화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킬러 본능의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도 오마주 했다.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인데 빛을 아주 잘 다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초반 황정민의 노을이 지는 장면이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이 되었다. 그 장면은 그래픽 없이 노을이 질 때 촬영을 해야 해서 만약 그날 원하는 장면을 담아내지 못하면 다음 날에 다시 촬영을 해야 하는 장면이었다. 마치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장면들이 빛의 아름다움으로 잘 표현이 되었다.


 빛을 향해 인남(황정민)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유민의 뒷모습을 보며 희망을 품게 되는 것만 같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빛의 한가운데 있는 유민의 모습을 먼 앵글로 보여주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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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미움이 가득한 것처럼 심술궂었다. 금방이라도 하늘은 뭔가를 토해낼 듯 우울한 회백색을 띤 구름들이 기묘한 형태를 이루는가 싶더니 이내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펑펑 내리기를 바랐지만 하늘은 그런 마음이 싫었던지 그저 흩날리는 눈이 나릴뿐이었다. 이런 눈은 기분을 적실뿐이다.


그러나 날은 차가웠다. 아마 온도가 조금 더 내려갔다면 눈은 흩날리지 않고 직선으로 내려와 사람들의 머리에 앉아서 잠시 살아서 또 다른 풍경을 보였을 것이다. 흩날리는 눈은 애초에 내려앉지도 않고 이리저리 춤을 추다가 그림처럼 사라졌다.


전통시장의 내복 집 가판대 위에서 흩날리는 눈을 휘저으며 골라골라 박수를 치며 손님을 기가 막히게 끌어 모으는 사람이 있었다. 내복집주인아저씨였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이다. 내복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눈이 흩날리고 있어서 아저씨의 골라 골라는 더 드라마틱했다. 그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가판대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들이었다. 아주머니들. 엄마들이었다. 아주머니들은 가판대 위에 쌓여 있는 겨울 내복을 들춰 아이들과 아이 아빠의 내복을 고르는데 전투력이 올라간다. 매의 눈으로 내복을 집어서 아이 아빠의 몸에 맞을지, 허리둘레와 길이를 자로 재는 듯이 쟀다. 아빠의 내복을 고르는데 컬러나 디자인 같은 건 무시다. 그저 노동을 하는데 따뜻하고 몸에 맞기만 하면 그만이다. 겨울에는 따뜻하면 된다.


수많은 내복 중에 하나를 고르는 일은 어려웠지만 어려움 없이 아주머니들은 내복을 골랐다. 골라 골라 소리는 저 시장의 골목 끝까지 뻗어 나갔다. 그렇게 고른 내복은 바구니에 집어넣기 바빴다. 가판대 주위로 내복쟁탈전을 하는 용병 같은 아주머니들을 따라 나온 아이들은 엄마 뒤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내복 집골목은 먹자골목으로 엄마가 무사히 내복을 다 고르면 옆에서 순대를 사주었다.


내복집이 있는 먹자골목에는 떡볶이와 순대를 파는 리어카가 일렬로 죽 서 있다. 그곳에 서서 먹는 순대는 일품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집 근처 시장이 아니라 좀 더 먼 곳, 시내 중심가와 가까이 있는 전통시장에 오는 것이 좋았다. 엄마를 따라오면 순대를 사준다. 아이들은 그렇게 엄마들이 겨울 준비로 내복을 고르는 동안 얌전하게 기다렸다가 옆에서 순대를 먹었다.


순대는 자주 사 먹을 수 있는데 자주 사 먹지 못했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순대는 시장에서 바로 사 먹는 게 맛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가끔 아버지가 보온이 유지될까 순대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집에서 먹었던 경우가 있었지만 시장에서 바로 먹었을 때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시장에서 먹는 순대는 맛있었다. 붉은 소금에 살짝 찍어 먹으면 겨울이 따뜻했다. 먹자골목에는 소규모의 진흥백화점이 붙어 있어서 시내에 나오면 엄마와 그 안을 구경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용품들이 가득했다. 특히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입제품과 장난감을 파는 코너가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다. 용품들은 계단에 죽 진열을 해놔서 구경하기가 수월했다. 그 옆에는 아이와, 파나소닉, 소니제품의 워크맨을 판매하는 곳이 제일 좋았다. 겨울 음악이 잔뜩 흘러나오고 소년시대에서 나온 워크맨들이 일렬로 조용하게 누워있는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백화점을 나오면 바로 먹자골목이다. 맛있는 냄새가 골목에 가득하다. 붉은 소금에 살짝 찍어 먹는 순대의 맛을 어릴 때부터 알게 되었다. 이상하지만 순대는 추운 겨울에 먹는 게 맛있었다. 순대 옆을 지켜주는 뜨거운 어묵 국물이 있기 때문이다. 날이 아무리 추워도 순대를 먹고 어묵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아무리 추운 겨울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날이 차갑기 때문에 먹다 보면 코가 발갛게 된다. 그때 뜨거운 어묵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속이 뜨거워졌다.


어묵 국물은 따뜻해서는 안 된다. 뜨거워야 한다. 아이들은 잘 먹지 못할 만큼 뜨거운 어묵 국물이어야 겨울의 순대와 어울렸다. 뜨거운 어묵 국물이 위로 뚝 떨어지고 나서야 세상이 맛있어지는 순간이었다. 겨울이 온 세상을 덮치고 내복이 얼굴을 내미는 시장은 활기로 가득했다. 전통시장은 그랬다. 그래서 시장에 가면 신이 났다.


겨울 방학이 다가오기 전 아이들과 수업이 끝나면 시장으로 우르르 가기도 했었다. 학교에서 먹자골목 시장까지는 좀 먼 거리였다. 걸어서 오면 30분은 넘게 걸렸다. 그 사이에 전통시장이 2곳이나 있다. 우리는 그 두 곳의 전통시장을 지나 먹자골목까지 왔다. 두툼한 스키장감 같은 장갑을 끼고 우리는 시장을 구경하며 다녔다. 아직 어린이였지만 4학년은 고학년에 속했다.


먹자골목의 시장까지 온 이유는 덕원이가 시장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우르르 온 것이다. 덕원이 엄마는 시장에서 신발장사를 한다. 덕원이 심부름을 따라가면 덕원이 엄마가 우리들에게 순대를 사주었다. 친구들과 서서 먹으면 너무 맛있는 것이다. 할머니가 순대를 파는 곳에서 먹고 있으면 덕원이 엄마 덕분에 우리에게 순대를 더 썰어 주었다. 우리는 신나서 손뼉을 쳤다.


고기도 아닌 것이 소시지도 아니지만 설명하기는 애매하지만 붉은 소금에 살짝 찍은 먹는 순대는 맛있었다. 날이 차가운 겨울이었지만 곧 겨울방학이 온다. 그리고 옆에는 겨울 방학 내내 같이 뛰어놀 친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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