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공이 굴러가서 부딪히는 소리는 경쾌했고 짜릿했다. 초크를 문지를 때의 그 기막힌 찰나의 느낌이 좋았고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이 아주 멋져 보였다. 한창 당구에 심취해 있을 때, 그래봐야 50에서 80으로 넘어갈 때였다. 자려고 누우면 네모난 천장은 어김없이 꿈틀거리며 당구대로 보였고 그 안으로 당구공이 굴러가는 모습이 아른아른거렸다. 당구는 그런 마력으로 사람을 끌어당겼다.


당구장에 여자는 거의 없었다. 가끔 커피 배달을 오는 나 양이 보였고, 당구를 잘 치는 아저씨가 큐대를 잡으면 그걸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당구장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언제나 내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당구에서 패하면 게임비를 계산해야 한다. 거기에 짜장면을 먹기라도 하면 돈이 왕창 걸려 있기 때문에 정신을 놓을 수만은 없다. 짜장면은 왜 당구장에서 서서 먹을 때가 가장 맛있는지 미스터리다.


당구만큼 재미있는 게임이 있을까. 당구는 가만 서서 그저 큐대를 밀어칠, 뿐인 것 같지만 두 시간 정도치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당구는 그랬다. 아주 묘한 게임이었다. 자주 가는 당구장에는 자주 오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주 보니 자주 인사를 하게 된다. 그러면 자주 오는 아저씨들과 친해져서 당구의 가르침을 한 수 받기도 했다. 그런 날은 우쭐해진다.


당구공에 힘을 얼마나 주는 가에 따라, 당구공의 포인트 어느 지점을 맞히는가에 따라, 공은 180도 다르게 움직였다. 당구는 그야말로 또 다른 세계였다.


친구는 우리가 자주 가는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거기서 먹고 자고 했어. 작은 방에서 잠을 자면서 당구장에서 일을 했는데 친구는 사장님에게 허락을 받았다며 당구장 영업이 끝나면 놀러 와서 밤새도록 당구를 쳐도 된다고 했다.


당구장은 가장 사람들이 북적이는 다운타운의 중심가에 있었다. 그래서 당구장은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들어와서 문을 닫을 때까지 북적북적거렸다. 당구장에는 매니저가 있었다. 마치 북한 공작원 같은 표정으로 일별 하듯 우리를 보는 사람이었다. 살도 찌지 않고 웃는 모습이 없고 당구장에 일 대 일 게임을 하러 오는 사람들을 다 이겼다.


[저 매니저는 당구 몇 치는데?]

[400]


친구가 말해줬다. 개인 큐대가 있고 절대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 골초라서 하루에 담배 한 갑은 넘어 피웠다. 당구장 사장님도 매니저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매니저가 사장님의 친척이나 아내의 동생이나, 뭐 그런 사이인 줄 알았지만 친구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고 그저 직원이라고 했다. 어떤 계약으로 묶여 있는지 모르겠지만 매니저는 매일 당구장으로 출근을 했고 손님들이 오면 당구 상대를 해주고 저녁 8시가 되면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갔다. 창문으로 보면 그 뒷모습이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느릿느릿한 걸음걸이었다. 키도 커서 마른 사람이 느리게 걷는다는 게 기묘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사장님은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할아버지였다.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니까 친구들이 많이 당구장에 갔다. 친구는 사장님이 없으면 대충 시간을 멋대로 계산해서 우리 게임비를 줄여서 받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장님은 그런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매니저 역시 무서운 북한공작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우리를 모른 척해주었다. 인간미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는데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여름이라 밤에 문을 닫고 당구를 칠 때에는 에어컨을 틀 수 없어서 팬티만 입고 큐대를 들었다. 그저 신났다. 뭐 50, 80 하던 때이니까 신날 수밖에 없었다. 오시, 히끼, 우라마시, 오마시 같은 용어가 입에 짝짝 달라붙었다. 큐대를 들고 날리기 전 까지는 머릿속에서 이렇게 공이 굴러가서 딱 맞을 것 같은데 막상 휘두르고 나면 생각과는 다르게 공이 굴러갔다. 그 몇 번의 휘두름으로 생각과 같게 공이 굴러가서 맞는 그 타격감은 엄청났다.


그렇게 공을 치다가 새벽 2시 정도가 되면 당구장 바로 밑 포장마차에 내려가서 소주를 한 잔씩 했다. 여름인데 포장마차 안은 그렇게 덥지 않았다. 에어컨을 틀어 놓은 것도 아니지만 모두가 앉아서 오징어나 문어, 곰장어 구이에 소주를 한 잔씩 하고, 선풍기가 덜덜 돌아갔지만 시원했다.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로 낮에는 사람들로 항상 가득 차고 밤이 되면 포장마차가 일렬로 죽 늘어선다. 그래서 깨끗할 날이 없다. 새벽 4시가 되면 청소부 아저씨들이 열심히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그리고 곧바로 거리는 쓰레기로 쌓이고 또 새벽에 싹 깨끗해지기를 반복한다. 누구 하나 그런 반복에 신경을 쓴다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일상은 그렇게 되풀이되고 있었다.


당구를 치다가 내려와서 자주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 보면 재미있는 모습도 많이 본다. 가장 재미있는 건 스님 둘이 앉아서 소주를 마시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아무 거리낌이 없었는데 스님들이 술에 취해서 곰장어를 더 주문해서 먹으니까 친구가 어? 스님들이 고기를 먹네? 했다. 그러자 스님들 중 한 명이 합장을 하고 우리를 봤고 친구도 합장을 하고 인사를 했다. 친구 녀석 대학교를 여기서 먼 군산으로 가서 학교를 다니다가 느닷없이 배를 타더니, 그러더니 해외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아오는 배를 타고 나가버렸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나는 친구가 일하는 당구장이 문을 닫고 어두워지면 놀러 가서 밤새도록 당구를 쳤다. 청소도 같이 해 주었다. 무엇보다 당구를 치면서 꼭 담배를 피우고 담배를 당구대에 올려놓는 사람이 있다. 담배가 타 들어가면서 당구대에 표시를 남기기도 하는데 그걸 닦아서 없애야 했다.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당구대였다. 녹색천을 물에 적셔 박박 닦았다. 물론 화장실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화장실에서 해야 하는 것 이외의 것들을 하는 사람들이 꼭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를 그걸 치워야 한다. 누군가는.


그날도 사장님이 집으로 들어가고 당구장 불은 꺼지고 친구는 나를 불렀고 나는 당구장으로 출동을 했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아직 더운 날 때문에 웃통은 벗고 맥주를 홀짝이며 친구는 당구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멋지게 맛세이를 찍었다. 80으로 올린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놈이. 그날따라 친구 한 명이 더 왔다. 맥주캔은 쌓였고 대환장파티가 이어지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으로 치달아 갔다. 하루 중 최고의 시간이지. 새벽이라는 시간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누리는 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 그 몇 명 안 되는 사람들 속에 우리가 속했다. 매일 이렇게 멋진 날들이 이어지다니.


새벽 시간은 3시로 향해가고 있었다. 모두가 알딸딸 취했고 바닥에는 맥주캔과 담배꽁초가 널브러져 있었고 엉망진창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사장님이 들어왔다. 우리는 몸에 얼음을 뒤집어쓴 것처럼 그대로 얼어붙었다. 사장님은 이렇게 쓱 한 번 훑어보더니 카운터에서 뭔가를 꺼내서 이런저런 말도 없이 그냥 나가 버렸다. 마치 나왔던 곳으로 시간을 되돌려 그대로 돌아가는 토끼처럼 말이다.


친구와 나는 큰일이 났다고 감지했다. 친구는 분명 당구장을 잘릴 것이고 우리는 그동안 벌여 놓은 것들에 대해서 변명을 해야 할 것이다. 하필 새벽 3시에 올 것이 뭐람. 4시에 왔다면, 아니 5시에 왔다면 바로 청소라도 하고 사장님을 맞을 텐데. 우리는 일단 누가 보지도 않는데 청소부터 했다. 순진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순진한 녀석들인가. 그냥 계속 당구나 치고 놀아도 되었을 것을. 우리는 새벽 3시부터 열심히 청소를 하고 또 청소를 하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며 청소를 했다. 근데 이놈의 청소하다 보니 잠이 왔다.


나는 밀대 자루를 들고 소파에 앉아서 잠이 들었고 친구는 바닥에 대자로 뻗었고 또 다른 녀석도 어딘가에서 자미 들었다. 하필 그 어딘가가 화장실이었다. 그 녀석은 술이 취하면 온갖 화장실에서 잠이 들었다. 그건 유전일까, 아니면 스타일일까. 스타일은 필시 아닐 것이다. 습관, 무의식의 습관. 어린 시절에 어떤 무엇에 의해 화장실에 대해서 깊은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녀석 군대에서 휴가 때 나와서 같이 술을 마시고 보니 사라졌는데 술집의 화장실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쏘우에서 학대당하다가 죽음으로 간 그런 모습처럼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가 아아악 군인이 죽었어요, 해서 달려가니 그 녀석이었다. 몸에서 찌든 소변냄새가 계속 났다. 젠장 부축해서 왔다. 다른 녀석들도 있었는데 집이 가깝다는 이유였다. 그 녀석과 나는 집이 버스로 40분은 가야 하는 곳인데.


끝나지 않는 교통체증은 없듯이 밤이 지나 아침은 오고 사장님도 출근을 하고 매니저도 출근을 했다. 아침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 10시를 지났고 점심으로 달려가는데도 사장님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나는 슬그머니 당구장을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거기 서!]라고 사장님이 분명하고도 똑 부러지는(아마도 노인네 치고는 그렇게 카랑카랑하게 말을 하다니) 말로 나에게 멈춰라고 했다. 사장님은 화장실에서 잠든 녀석은 집으로 가라고 했다. 왜 하필 나야? 나는 너무나 겁이 났다. 집에 알리려고 그러나. 친구와 나는 세상의 슬픔을 전부 짊어진 것처럼 오전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사장님은 우리를 불러 밥집에서 정식을 시켜 주었다. 그리고 먹으라고 했다. 이게 마지막 만찬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배고프니까 열심히 야무지게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사장님의 면담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는 60초. 사장님은 나에게도 일을 하기를 권했다. 밤새도록 몇 날며칠이나 당구장에서 논 것도 다 알고 있으니 도망칠 생각 마라. 라며 낮에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낮에도 당구장에 와서 친구의 아르바이트를 도왔다. 친구가 잠이 온다며 방으로 들어가 잠들면 내가 대신 당구장 일을 했는데 사장님이 눈여겨본 모양이다. 나의 능력 중 하나라면 나도 당구가 80인데 나보다 잘 치는 상대방을 만나면 나는 강했다. 그리고 대부분 나보다 강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당구를 쳤다. 나의 어떤 면모가 사장님의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 나는 당당하게 낮부터 당구장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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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걸 봤어요. 누구나 여기를 지나가죠. 그러나 자신이 이곳을 지나간다는 의식을 하지 않죠. 그건 아마도 너무 당연해서 일 겁니다. 그것이 너무 당연하면 의식은 그 당연함을 의식에서 배제하죠. 매일 다니는 길을 오늘도 지나쳤죠? 근데 기억이 납니까? 아마 기억이 나지 않을 겁니다. 기억이 안 나는 이유는 너무 당연한 곳을 다녔기 때문에 눈여겨 살펴보지도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늘 다니는 길에 어떠한 이벤트가 일어났다면 그 기억은 꽤 오래갈 겁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곳에서 당연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너무 깊게 생각지 마세요. 깊게 생각해야 하는 일들이 분명 있거든요. 집중과 선택. 우리는 집중과 선택에 있어서 깊게 생각합시다. 신발을 신을 때 오른쪽 발을 먼저 신을까 깊게 생각하면 몸과 마음은 과부하가 올 겁니다. 아시겠지요.



오늘도 비가 오는데요. 일주일 넘게, 체감상으로는 2주 내내 차가운 비가 오고 날이 흐리고 잿빛 하늘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술가들은 이런 날을 선호한다는데 저는 맑고 밝은 날이 좋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일단 조깅이 어렵습니다. 비가 와도 일단 강변 조깅 코스로 나가는데 비가 오면 러닝화를 바꿔서 신는데 달리기를 포기하고 비막이가 설치된 곳에서 스쾃이나 팔 굽혀 펴기를 합니다. 실컷 저 먼 곳까지 달리고 싶지만 비가 오면 일단 그게 안 된다. 우산을 쓰는 것도 귀찮고, 비는 차가워서 주위의 기온을 앗아간다. 그래서 2월에 내리는 비는 차갑고 날은 춥다. 그런 날이 2주 동안 계속되고 있어요. 결락감이 깊게 드는 날이 이어집니다. 등에 아이가 올라탄 것 같아요. 어떻게 겨울 장마가 이 시기에 올 수 있죠?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드네요.



어느 영화를 보니 죽음이 임박했을 때 노래를 부르더라구요. 나이 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니었어요. 데이트 상대를 잘못 만나 구타를 당하고 드럼통에 들어가서 땅에 묻혀 죽음을 맞이하며 벌벌 떨다가 노래를 읊조리듯 불렀어요. 근데요, 그게 가능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죠? 그것을 아는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일 테니까요. 죽음을 생각하면 일단 겁이 납니다. 죽음이란 태생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 있어서 겁보다는 뭐랄까 받아들이는 쪽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꿈을 꾸면 꼭 죽기 직전까지 가는 꿈을 꿉니다. 칼이 배에 푹 찔리기 직전이나 배에 들어오는 그 순간 잠에서 깹니다. 어떤 날은 불구덩이에 빠지는 찰나에 깨어납니다. 정말 겁이 납니다. 왜 이런 꿈을 꾸는 것일까요.


우울이란 어째서 때때로 저를 괴롭히는 걸까요. 우울이란 원래 없었는데 제약회사가 세계 곳곳에 생김으로 해서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우울을 겪게 하는 묘한 물질을 넣어 둔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제약회사에서 이런 모종의 계획을 현실화한 거지요. 그래서 우울증에 좋은 약을 처방받도록 유도했습니다. 우울함은 사람을 괴롭힙니다. 이거다 싶은데 느닷없이 저거다 싶게 만들어요. 멍하게 있으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머릿속에 들어와 나 대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무섭습니다. 내가 생각을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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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먹던 컵라면 맛이 있다.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만약 그 맛을 본다면 대번에 알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 맛이 나는 컵라면을 이때까지 못 봤다. 어릴 때 우리 집은 마당이 있고 마루에 앉아서 엄마와 같이 컵라면을 호로록 먹었다. 후레이크와 함께 국물의 맛, 면발의 맛 역시 아는데 막상 적으려고 하거나 말하려고 하면 이상해진다. 전혀 설명을 할 수 없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가버린다. 사실 맛을 설명하는 건 나에게는 무리다. 바다 같은 맛, 봄날의 햇살 같은 맛이라고 표현을 가능하나 진정한 맛에 대한 설명은 못한다.

5학년 때 점심 도시락을 컵라면과 함께 먹었는데 담임선생님이 꼭 라면을 뺐어 먹었다. 깐깐하고 마른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컵라면에 물을 붓고 다 익어갈 무렵이면 와서 한 젓가락만 먹자고 하고선 반이나 먹는, 미워죽겠는 담임이었다. 학생의 컵라면을 그렇게도 먹고 싶을까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담임은 아랑곳하지 않고 컵라면을 먹을 때면 뺏어 먹었다. 그 담임 선생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도 자기 아이 준다며 몇 개나 들고 갔다. 또 교실의 커튼교체도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일요일에 학교에서 그 작업을 해주었다. 아니 자기 남편을 시키면 되는데 왜 우리 아빠야? 담임 이름도 생상하게 기억이 나서 구글링을 해봤는데 나오지 않았다.

담임이 내 장난감을 달라고 하면 엄마는 또 그냥 줘 버렸다. 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말이다. 그때는 엄마도 담임도 미워 죽을 것만 같았다. 5학년 담임을 생각하면 으 하게 된다. 또 공부를 못하는 나를 방과 후 나머지 공부까지 시켰다. 다른 아이들은 전부 집으로 가는데 나만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했다. 몹시 창피했다. 공부 못하는 아이가 당시에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담임은 교실에 남아서 일 대 일로 공부를 시켰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 6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학급위원이 되었다. 학급위원은 성적순으로 되는 계급 같은 건데, 와 내가 학급위원이 되다니. 그렇게 공부 못하던 내가 공부 잘하는 아이들 틈에 끼어 뭔가를 하고 있다니. 이름표 밑에 학급위원 이름표가 하나 더 붙음으로 해서 아이들의 선망이 대상이 되었다.

준우에게 장난감 주는 거 싫지? 근데 네가 이해해라. 준우가 아빠가 없어. 6학년이 되었어도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도 잘하고, 인사도 잘하고.

인간의 삶이라는 게 겉으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알기 쉽게 설명하거나 1 이거나 2라고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감정을 숨기거나 에둘러 말하거나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을 하는 게 나쁜 거라고 배웠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람들이 전부 올바르고 진실만을 말하면 지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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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다니던 교회 앞에 작은 분식집이 있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라면을 주로 사 먹었다. 라면이 아주 맛있었다. 맵지 않고 반찬이 단무지라 마음에 들었다. 그릇은 요즘 다시 유행하는 레트로 녹색 멜라딘 그릇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 또래들과 앉아서 라면을 먹는 맛이 좋았다. 초등학생 저학년이라 같이 어울려 식당에 가는 것이 어려웠다. 라면도 고들고들하니 좋았고 하하 호호 이야기를 하면서 먹었다. 그러나 분식집에는 오후가 되면 늘 아저씨들이 앉아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래서 잘 갈 수 없었다.

교회 지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서관처럼 만들어 놨다. 책도 읽고 그럴 수 있다. 나는 책 읽은 기억은 없는데 지하 도서관에는 늘 있었던 기억은 있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선생님은 대학생이었다. 나는 막 중학생이 되었고 학교에서 먼지처럼 지내는데 교회에서는 어릴 때부터 다녀서 그런지 조금은 편했다. 완전히 편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기도할 차례가 오면 그날은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아이들과 비교되는 게 싫었다. 이 기도라는 게 나는 왜 자연스럽게 술술 안 되는 것일까. 이유는 나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게 사실 없었다. 그게 이유다. 그냥 어릴 때부터 다니다 보니 때가 되면 교회에 나갔지 밑음이라든가 기도라든가 이건 나와 먼 이야기였다. 중학생이 되어서 보니 누나형들은 전부 교회에서 연애하느라 바빴다. 도서관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공부를 핑계로 연애를 했다. 집에는 교회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방학에도 의심 없이 부모님은 보내주었다.

[선생님 하느님이 옆에 온 걸 어떻게 아나요?]

나의 질문에 선생님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아니 답을 해주었는데 내가 듣기에는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선생님 저 장 보러 갔다 와야 해요.]

그래서 선생님은 나와 같이 시장에 갔다. 나는 시장에서 부식물을 몇 가지 샀다. 그리고 정육점에 들러 돼지고기를 이런이런 부위를 달라고 해서 구입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돼지고기 부위를 어떻게 그렇게 설명을 잘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질문을 처음 들어봐서 나는 적절한 대답을 속으로 찾았다. 돼지고기는 구이용, 찌개용, 조림용 뭐 다르니까 식육점 주인에게 달라고 하면 알아서 주는데 내가 부위를 아는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시장에서 장 보는 게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나에게 여기저기 구경을 하자고 했다. 그래봐야 그저 전통시장이다. 요즘처럼 먹거리가 다양한 것도 아니었지만 시장은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중학생에게는 빨리 장 봐서 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날 교회에 돌아와서 선생님하고 컵라면을 먹었다. 육개장사발면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그날이 생각나는 게 오후의 어스름 햇살이 교회의 두꺼운 유리에 부딪혀 아스라이 들어오는 장면. 그 빛을 보면서 컵라면을 들고 앉아서 먹었던 기억. 선생님이 교회에 자주 나오는 것도 나는 안다. 좋아하는 오빠가 청년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오빠는 선생님보다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간직한 채 오빠를 보기 위해서 교회에 자주 나오는 것이다. 누구도 교회에 오는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교회는 그런 곳이니까.

선생님 하느님도 컵라면 맛을 알까요?라고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 위대한 하느님이니까 컵라면 따위는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니까 컵라면에 행복해하며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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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둘이서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었다. 특히 토요일에는 늘 컵라면을 먹고 집으로 갔다. 토요일에 수업이 일찍 끝나면 매점에 달려가서 컵라면과 도넛을 먹었다. 매점표 도넛인데, 그냥 도넛만 먹으면 맛이 별론데 컵라면과 같이 먹으면 이상하게 꿀맛이었다. 매점 옆에 레슬링부가 있었다. 아이들이 별로 없을 때 매점에 가다가 레슬링부에게 걸리면 돈을 빼앗기기도 했다. 우리도 몇 번 걸렸는데 같은 1학년이라 그런지 라면을 먹고 있을 때에는 기다리다가 레슬링부 선배들이 부르면 돈을 결국 빼앗지 못하고 가버렸다. 그때야 레슬링부가 무시무시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생인 것이다.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이 생각난다. 무슨 여자 기숙사 사감 같은 모습으로 늘 검은 원피스 같은 옷만 입었다. 한 반의 담임을 맡고 있었는데 치맛바람이 심한 때여서 물욕에 먹혀 버린 음악 선생님이었다. 뭔가를 받아먹은 아이에게는 아주 잘 대해주고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는 가차 없었다. 차별이 심해서 오히려 상대하기 쉬운 음악 선생님. 음악 선생님이 아주 싫어하는 아이 중에 내가 껴있었다. 음악시간에 노래 부르는 시간이 있는데 나는 노래도 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앉아있다가 음악시간이 지나가 버린 경우가 꽤 있었다.

미술 선생님은 갓 부임해 온 신입이라 그런지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차별 없이 아이들을 대했다. 미술 선생님은 나를 좋아해 주었다. 나는 어쩌다가 미술은 성적이 늘 좋았다. 그림도 곧잘 그렸다. 다른 아이들이 집의 방을 네모로 그렸을 때 나는 타원형으로 그렸다. 그것도 약간 투시도 형식으로 그렸다. 나는 상상력이 그렇게 없는데 미술 선생님은 나의 상상력을 칭찬했다. 신나는 일이었지. 학교 가는 게 좋았다. 그럴 수 없는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미술숙제로 한 번은 도형을 그리는 걸 내주었는데 친구 누나가 와서 내가 그려줄게 하더니, 설마 했는데 친구 누나의 도형은 수준이 달랐다. 나는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친구 누나는 미대생이었다. 나는 너무 고민을 했다. 친구 누나가 그려준 도형을 내고 싶지만 너무 수준차이가 날 것이다. 미술선생님이 눈치챌 것이다. 내가 새로 그리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결국 유혹에 넘어가서 누나가 그려준 그림을 숙제로 냈는데 그 뒤로 미묘하지만 미술선생님은 나를 대하는 게 달라진 것 같았다.

중학교 때는 먼지 같아서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그래서 친구 한 명과 주로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거나 혼자서 컵라면을 먹었다. 이름도 기억나는 그 녀석은 나와는 다르게 공부를 아주 잘했다. 학교에서 같이 놀기는 했지만 나에게 미미하게 낙오와 실패가 붙어 있어서 그 녀석과 깊게 같이 놀지는 못했다. 중학생의 나는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늘 라디오나 듣고 컵라면이나 먹는 먼지 같은 애였다. 어서 빨리 중학교를 벗어나자 그런 생각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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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시립도서관에 가끔 갔는데 시립도서관의 매점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시립도서관까지 가서 공부하기 싫었는데 중학교 3학년에 두 명과 친해지게 되었는데 얘네들은 꼭 시립도서관에 가기를 바랐다. 공부를 하다가 매점에 가서 컵라면을 먹었다. 학교 매점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많았다. 다른 학교 학생들, 여고생들, 대학생, 직장인들이 있었다. 다들 컵라면을 먹었다. 컵라면은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의 소울푸드였다. 국수도 팔고, 우동도 말아서 팔았는데 컵라면을 압도적으로 많이 사 먹었다.

시립도서관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주말에 가곤 했다. 걸어서 가면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가는 길이 재미있었다. 가는 길목에 초등학교가 세 군데나 있어서 문방구가 많았다. 문방구는 앞에 이것저것 유혹하는 것들이 많아서 구경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불량식품도 많았지만 닭발도 팔았다. 애들이 전부 닭발을 입에 물고 다녔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먹기에는 매웠다. 그러나 아이들이 전부 입에 닭발을 물고 문방구에서 놀았다.

가는 도중에 문방구에 가는 기억을 하다 보면 그날 잠에 잠이 들면 꿈에 그런 꿈을 꿨다. 꿈속에서도 그 거리와 문방구들이 나오는 게 신기했다. 고등학교 때 어느 주말에 시립도서관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이름은 상희. 살이 쪄서 나는 그 애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상희가 나를 아는 체했다. 초등학교 때와는 너무나 달리진 모습이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성격이나 말투가 그 어릴 때보다 뭔가 조급하고 전투적으로 바뀌었다. 누군가 시비를 걸면 바로 달려 나갈 그런 모습이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상희는 꽃처럼 조용하고 예쁜 옷을 입는 그런 아이로 기억이 났는데. 사람에 대한 기억이 깨진다는 건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상희는 중학교를 거치면서 공부보다는 그 외의 것에 관심을 더 많이 가졌다고 했다. 요컨대 일진이라든가 노는 언니라든가. 그렇게 보였다. 도서관에는 올 것 같지 않았는데 친구를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냥 들어왔다고 했다. 도서관 매점 앞 야외 벤치가 운치가 있고 쉬기에 괜찮았다. 나는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도서관에 왔으니 상희나 나나 거기서 거기였다. 우리는 앉아서 추억에 젖어 초등학교 때 이야기를 했다. 추억을 나누는 건 왜 그런지 재미있다.

너 예전에 그랬잖아, 하하 호호.

추억은 웃음을 짓게 한다. 우리는 두 시간이나 이야기를 하다가 허기가 져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하하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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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후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밤새도록 했는데 크게 바쁘지는 않았다. 잠이 오면 작은 방에서 잠도 잘 수 있고 새벽에 문 열 때 목욕탕에 제일 처음으로 깨끗한 탕에 몸도 담글 수 있었다. 대학교 앞이라 대학생들이 많이 왔는데 디자인과 학생들이 어쩌다가 꽤 왔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녀석이 늘 술을 마시고 밤에 정액권으로 게임을 했는데 새벽 한 시 정도 넘으면 주로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 녀석은 술이 취해서 오면 컵라면을 먹는데 두 번이나 찬 물을 부어서 앉아서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녀석이었다. 다시 뜨거운 물을 받아서 주고 찬물을 부은 컵라면은 들고 와서 버리려다 아까워서 젓가락으로만 들고 한 입 깨물어 먹었다. 근데 이게 맛이 없어야 할 텐데 또 아작아작 먹다 보니 나름 맛있는 거다. 그래서 찬물에 불은 컵라면을 두 번이나 먹었다. 그 뒤로는 아직 찬물에 컵라면을 부어서 먹을 일은 없지만 컵라면이라는 게 아무튼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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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데 방향제 냄새가 골목에서 확 났다. 봄의 향이다. 목련에서 나는 향인가? 방향제 냄새가 난다는 건 봄이 온다는 말이다. 보통은 3월에 골목에 방향제 냄새가 났는데 올해는 거의 한 달 일찍 봄의 향을 맡았다. 이런 방향제 냄새는 꽃에서 나는 향인데 자연적인 냄새다. 대부분 인공적인 냄새가 좋은데 이렇게 자연에서 나는 냄새 중에 좋은 건 꽃에서 나는 냄새 정도다. 그리고 이런 골목의 방향제 냄새는 봄이 오는 골목에서만 난다. 아파트 단지나 도로, 거리에서는 거의 나지 않는다. 맡아보지 못했다.

가을이 짙어지면 도로에서 밤꽃냄새가 나지만 봄을 알리는 방향제 냄새는 골목에 심어 놓은 목련이 계절을 감지하고 꽃을 피워 향을 뿜어낸다. 봄의 향에는 파스텔컬러가 보인다.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곧 녹아 없어질 것 같은. 그래서 봄은 사실 죽음의 계절이다. 만개와 동시에 무화되어 사라지는 모든 봄꽃은 찬란하지만 슬프다. 벚꽃은 팝콘처럼 부풀어 올라 가장 아름다울 때 전부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골목의 오래된 주택에 심어 놓은 목련이 골목으로 고개를 내밀고 가지를 뻗어 꽃을 피워 봄을 알린다. 방향제 냄새가 난다. 봄의 향을 맡는다.

기시감이 든다. 언제나 이럴 때는 기시감이, 강한 기시감이 든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기시감이 드는 그곳에서 눈을 뜰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짙은 기시감에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이 든다. 정신을 차리고 달려서 돌아오자.

집으로 와서 냉장고에 남은 돼지고기로 짜글이를 끓였다. 붉은색 중 음식의 붉은색은 매혹적이다. 저 붉은색을 먹으면 몸의 변화가 있을 것만 같다. 짜글이의 붉은색은 마법의 색이다. 끓어오를수록 맛있는 향이 난다. 붉은 향이 매혹적일수록 짜글이는 더욱 맛이 좋다. 고기는 그렇게 좋은 부위를 쓰지 않아도 된다. 지글지글 짜글이가 봄날에 익어간다. 곧 본격적인 봄이다. 방향제 냄새가 짜글이의 붉은 향으로 바뀌는 마법이 펼쳐진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목련 꽃의 향을 맡고 짜글이의 맛있는 냄새를 맡고, 봄을 기다리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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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탕을 먹은 지 십 년은 넘은 것 같다. 어제는 온도가 15도가 넘어서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오늘은 느닷없이 차가운 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비가 하루 종일 내리나 싶더니 며칠 동안 비가 그치지 않고 쏟아졌다. 두꺼운 패딩을 이미 넣어 버려서 봄옷을 입고 나왔다가 추위에 머리통이 얼어 버릴 것만 같았다.

봄을 알리는 계절에 덮치는 이런 추위가 한파 때 몰아치는 추위보다 더 혹독하고 생각한다. 한파 때는 온통 뉴스에서 춥다고 하니 각오를 하고 옷도 여러 겹 입으니까 한파가 지금의 추위보다 더 추울지라도 몸으로 느껴지는 추위는 지금이 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추위는 알탕 속에 들어있는 고기 같다. 그 고기는 돼지고기다. 어울리지 않는다. 왜 알탕 속에 돼지고기 같은 게 들어 있을까. 하지만 또 먹다 보면 괜찮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이 세상이니까 먹다 보면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알탕도 괜찮다.

예전에도 이런 추위가 있었지. 이런 기묘한 추위가 몸과 마음을 잠식하던 추위가 시기에 맞지 않게 왔던 때가 있었다. 스무 살 적에 친구들과 자주 가던 알탕 집에서 알탕을 먹곤 했다. 그때는 알탕을 자주 먹었다. 좀 춥다 싶으면 알탕이었다. 알탕이 특별히 맛있는 건 아니었다. 알탕 집이라고 하지만 전문점이 아니었고 그 알탕 집의 알탕은 가격이 저렴했다. 푸짐했다. 조미료가 잔뜩 들어갔고 미나리도 별로 들어가 있지 않은, 어딘가 못 미더운 모양이지만 우리의 소울 푸드 같은 음식이었다. 알이 많고 국물이 떨어지면 바로 채워 주었다. 소주 안주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무엇보다 기묘한 추위에 몸을 데울 수 있는 좋은 음식이었다. 친구들과 자주 찾았다. 작은 선술집으로 테이블이 네 테이블이 고작이었고 술집 이름도 그냥 [알탕]이었다. 알탕은 여러 안주 중에 그저 하나였다. 그래도 분위기만큼은 하라주쿠 저 뒷골목 이자카야 못지않았다. 술집은 작고 늘 오던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 그곳에 가면 단골들은 서로 인사를 했다. 알탕이 굉장히 맛있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 안에는 돼지고기가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묘했다. 기묘했지. 돼지고기는 좋은 부위는 아니지만 푸짐해서 이게 알탕인지 뭔지 애매했지만 먹다 보면 그게 어울렸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어울렸다. 그 알탕 집의 알탕이 그랬다. 조금 식으면 가득 들어간 조미료와 소금 때문에 짰지만 그때 육수를 더 붓고 돼지고기를 더 넣어주었다. 재탕해서 먹는 알탕의 맛은 2차전의 맛이다. 처음에 끓였을 때와 다른 맛이다. 밥까지 주문해서 같이 먹곤 했다. 2차전의 알탕 맛은 배를 채우기에 딱이었다. 우리의 입맛은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았다. 그다지 맛이 있지 않아도 먹을 만하면 맛있게 먹었다. 그럴 때였다.

나의 입맛이라는 건 지금까지 그렇게 이어졌다. 못 먹을 정도가 아니면 그냥저냥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어딘가 여행을 가더라도 크게 맛없어서 못 먹는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 못 먹는 음식 빼고는 그저 다 잘 먹었다. 못 먹는 음식이라면 매운 음식이다. 예전에 친구들과 자주 찾았던 알탕은 매콤하지 않았다. 붉은색을 띠고 있지만 맵지 않았다. 오히려 달큼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알탕을 먹으러 다닐 때 같이 다니던 친구들은 전부 맛을 많이 따지는 사람들이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점심 한 끼에 피로를 풀고 시간을 즐기며 대화를 하는 것이 하루의 낙처럼 되어서 음식이 맛없으면 투덜투덜거렸다. 그 투덜거림이 뭔가 부하직원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져서 이제는 같이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

환경은 그렇게 사람을 변하게 한다. 내가 일하는 곳의 환경과 회사 다니는 친구 주위의 환경은 너무 다르다. 회사 주위는 정말 맛있는 음식점들이 많다. 회사원들에게 음식이 맛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근처는 다운타운이라 주로 학생들이 많이 나오고 학생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점들이 많다. 내가 이 근처 음식이 마음에 드는 건 귀찮지 않은 음식들이 대부분이라서 그 점을 좋아한다.

회사원 친구들 근처의 식당은 찌개나 구이처럼 테이블 위에서 굽고, 끓이고, 찌고 뜯는 음식들이 많다. 내가 일하는 다운타운에 있는 식당은 테이블 위에 나오면 바로 먹으면 되는 음식들이다. 햄버거, 돈가스, 파스타, 쌀국수, 떡볶이 같은 음식들이다.

예전의 그 알탕 집의 알탕은 조리가 다 되어서 나오는데 테이블 위의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그래서 식으면 다시 재탕, 삼탕 해 먹었다. 알탕 집도 예전에 다운타운의 뒷골목에 있었다. 뒷골목에 술집들이 자리 잡고 옹기종기 있었다. 알탕 집, 빈대떡 주점, 선술집들이 꼬불꼬불 골목에 죽 붙어 있었다. 맛은 둘째치고 운치가 있었다. 봄이 다가왔지만 겨울의 끈을 놓지 못한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면 운치가 짙은 골목으로 들어가 알탕을 퍼먹으며 소주 한 잔이 그리워진다.

알탕의 붉은색은 매혹적이다. 그렇지만 맵지 않았다. 맵지 않은 음식의 붉은색은 붉은색이지만 붉은색처럼 보이지 않는다. 알탕에는 알 말고도 곤이도 들어가 있다. 곤이가 물고기 정액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알고도 맛있게 먹지만 몰랐을 때 곤이는 천상의 맛이었다. 정액과 곤이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어울렸다. 어울린다기보다 한 몸인 게지. 정액과 곤이라 한 몸이라니. 큭큭큭. 그런 게 바로 세상이지. 그런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곤이는 입안에서 그대로 녹아 없어지는 음식이 이렇게나 맛있다니. 봄이 되면 그제야 알탕 집에서 미나리를 많이 넣어 주었다.

알탕 집 이모님은 호호 아줌마 같았다.

작고 왜소하고 작은.

그래서 주방에서 알탕이 나오면 우리가 알탕을 테이블로 직접 들고 왔다. 웃으면 영락없는 호호 아줌마였다.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 좋은 장소, 좋은 알탕이었다.

얼마 전에 그는 그 알탕 집이 있는 장소에 가봤다. 그곳에는 무인모텔이 들어섰다. 호텔 같은 모텔. 그런 모텔들이 세상을 점령하고 있다. 골목과 모텔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모텔이 들어서고 나니 떠 어울렸다. 이제 알탕 정도는 집에서도 밀키트로 간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맛이 없다. 맛있는데 맛없다. 세상에는 그런 음식이 존재한다. 세상은 넓기 때문에. 밀키트로 그저 끓이기만 하면 되는 알탕 역시 귀찮은 음식이다. 귀찮은 음식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지만 어울린다. 알탕은 나에게 그런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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