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벅 카스텔라를 누가 사줬다. 스벅 카스텔라는 맛있다. 이 카스텔라는 십 년 전에 스벅에서 먹었을 때의 맛과 모양에서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맛이라는 건 시간과 장소, 먹는 이의 상태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저 카스텔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맛이겠지만 지금 먹는 나의 입맛에는 그때의 맛보다 훨씬 맛있다고 느끼고 있다. 단맛을 더욱 많이 느껴버리는 신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학창 시절에 나를 괴롭히던 녀석이 시간이 훌쩍 지나 나를 찾아와서 그때 내가 너무 했어, 미안하다. 정말 사죄한다. 라며 사과를 받아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 잊고 지내고 있었지만 그 녀석을 보면 그때의 일이 또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흘러 가물가물해져서 늦게라도 일부러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한다면 사과를 받아야 할까.


그러나 지금의 나는 사과를 받는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게, 사과를 하려면 그때의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녀석이 하는 사과를 제대로 받을 수 있다. 이미 시간이 지나 상처가 되고 흉터가 된 나에게 사과를 한다고 해도 그 흉터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기에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래, 이렇게라도 찾아와서 사과를 하니 받아줄게,라고 말을 할지는 몰라도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을 수 있다.


그 당시, 그때 괴롭힘을 당해 죽고 싶었던 나를 찾아가서 사과를 해야 한다. 사과도 시기가 있고 방법이 있겠지. 비록 진심이지만 사과를 하는 시기가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사과는 진정한 사과가 될까.


우리는 별반 다를 게 없는 비슷하게 생긴 인간이지만 똑같은 인간은 없다. 복잡하게 변한 만큼 그만큼 인간은 단순해졌다. 나와 다르면 항상 경계하고 공격심을 가지게 되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설령 그 사람이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일지라도 나와 다르면 공격을 한다. 그 사람의 약점을 부풀려서, 그 점을 파고들어 공격을 하면 같이 공격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 명일 때 하는 공격보다 여러 명이 공격을 하면 분명 사실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의심하게 된다. 진실을 알고 싶어요.라고 사람들은 말을 하나. 하지만 진실이라는 게 반드시 사실이지도 않다. 아니 진실은 사실에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진지하고 진지해서 너무 진지해도 괜찮아, 심각하지만 않으면 돼. 진지한 건 환영이지만 심각해지면 답이 없어.


여름에 조깅을 하다 보면 하늘에 금을 긋고 사라져 버린 저 선을 보면 김중식의 [이탈한 자가 문득]이 떠오른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삶과 생활의 사이에서 비어 가는 주머니로 하늘을 보았을 때,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곳만 알지라도 안전한 궤도 속에서 수많은 별 들 중에 하나로 살아가도 좋으련만 저 별은 궤도를 이탈해 다시는 궤도 속으로 진입을 하지 못할지라도 자유롭게 하늘에 한 번의 금을 긋는다.


안전한 삶을 거부한,

완전하기보다 불완전한 자유를 선택한,

굳건한 진실보다 흔들림이 많은 가능성을 믿는,

금방 사라질지라도,

짧지만,

저기 저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하찮지만 소중한.


김중식은 말했다.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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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적 현상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은 알겠지만 놀라거나 경이로움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초자연적인 현상은 주로 자연에서 일어난다. 거대한 낙뢰라든가, 그 낙회 중 번개를 맞는 장면을 본다든가. 주로 해외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많이 일어난다. 태풍의 질이나 규모도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니까.


그다음에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다. 곰이 물에 빠진 새를 구해준다거나, 개가 고양이를 구한다거나. 육식동물이 작은 동물을 구해주고 가버린다거나. 그런 모습은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상식을 거둬내고 마음의 눈으로 보면 받아들이게 된다. 이 역시 초자연적인 현상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초자연적 현상이 인간에게서 나타난다.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은 초자연적 능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가끔 접하는 장면은 몽유병에 걸린 사람들의 모습은 꼭 초자연적인 모습처럼 보인다.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은 공포에 가깝다. 무서운 모습이다. 인간에게서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나면 그건 그것대로 낭패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옳은 일에 그 능력을 사용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처럼 여겨지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인간이란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고 해도 분노하거나 화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논리적으로 판단을 할 수는 없다. 만약 초자연적인 능력을 내는 사람이 화가 나 있을 때 그 옆에 있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두려운 존재로 여길지도 모른다.


이런 두려움은 반드시 사람이 아니더라도, 꼭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종종 느낄 수 있다. 늘 곁에 있는 것들, 방안의 불을 밝혀주는 전등이나 변기, 샤워기 같은 물품들. 어제와 별 다를 바 없는 물건이 오늘 갑자기 안 된다거나 전기 스파크가 튄다거나 가열로 인해 녹아내린다거나 하면 겁이 나고 무섭다. 늘 다니던 골목길의 계단이 내 앞에서 갑자기 무너지거나 도로가 내 앞에서 싱크홀이 생겨 앞에서 가던 사람이 빠진다거나 하면 충격을 받는다. 인간이란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며 비행기나 거대한 배도 만들지만 개개인은 지극히 연약하고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눈에 뾰족한 무엇인가가 들어갈까 봐 불안해서 길거리를 마음껏 다니지 못하지는 않는다. 모험심이 강해서 깊은 바다 밑으로 목숨을 걸고 들어가며 절벽을 기어오르기도 한다. 그만큼 무모하고 강력한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다.


인간이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날 때는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식을 가지고 그런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요컨대 물에 빠진 자신의 어린 자식을 구하러 물에 뛰어들어 구해 오는 엄마의 경우다. 엄마는 전혀 헤엄이라고는 칠 줄 모르지만 아이가 물에 빠지는 순간 무의식의 발현으로 이루어진다. 아이가 자동차에 치이려고 할 때 번개만큼 빠른 속도로 아이를 낚아채서 자동차에 부딪히는 걸 막는다. 이런 엄마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영상으로 많이 봤다.


무의식에서는 그럴 리 없는 것들이 가능하다.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가 우리 뇌에 동시에 존재하며 무의식은 아직 뇌과학자들도 몇십 년 동안 연구를 해도 뇌의 몇 퍼센트밖에 파헤치지 못했다.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능력이 자연발생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을 한 번 경험했다. 초자연적인 현상. 무의식에 가까워졌을 때 초자연적인 능력을 경험을 했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집에서 보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 샤워 후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시간은 저녁 10시경이었다. 부모님은 외출을 하시고 나 혼자 집에 있었다.


시원하게 티브이를 보는데 정전이 되었다. 티브이도 꺼지고 돌아가던 냉장고도 멈추고 에어컨도 그대로 스톱되었다. 아파트 방송이 나왔다. 정전인데 방송은 어떻게 나올까. 전력수요가 과다해져서 이 일대가 몽땅 정전이 되었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자체 발전기가 있으니 곧 전기가 들어올 것이다. 어떻든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각자 알아서 있어야 했다. 정전이라는 것도 오랜만이다. 어린 시절에는 정전이 종종 되었던 것 같은데. 어린이들은 정전이 되어도 재미있었다. 모든 곳이 똑같아져 버리니까 아이들은 그 속에서도 재미를 찾았다.


나도 어두운 거실에서 벗어나고파서 분주하게 움직여 초를 찾아서 불을 밝혔다. 촛불은 촛불 그 밑으로는 어둡다. 촛불은 바람도 없는데 공기의 흐름 때문인지 하늘하늘 움직이며 타올랐다. 그런 촛불에 그만 매료가 되었다. 촛불을 자세하게 보기는 처음이었다. 매력적이었다. 촛불의 중간을 그대로 꼼작 않고 보고 있었다. 나는 촛불의 세계로 들어갔다.


김춘수 시인의 [어둠]이 있다. [촛불을 켜면 면경의 유리알, 의롱의 나전, 어린 거들의 눈망울과 입 언저리, 이런 것들이 하나씩 살아난다 차차 촉심이 서고 불에 제자리를 정하게 되면, 불빛은 방 안에 그득히 원을 그리며 윤곽을 선명히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윤곽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있다 들여다보면 한바다의 수심과 같다. 고요하다. 너무 고요할 따름이다]


정전이 30분이 넘어가니 덥기 시작했다. 그러나 촛불의 세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세계 안에는 한바다의 깊은 심연이 들어 있다. 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땀으로 등이 다 젖었다. 관자를 타고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그러나 나는 미동 없이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았다.


얼마동안 들리던 아파트 밑의 소음도 이젠 들리지 않았다. 아파트는 그야말로 적요한 상태였다. 아무리 고요해도 집 안에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는 늘 도사리고 있었다. 냉장고의 모터는 인간의 심장과 비슷하다. 한 번 태어나서 숨을 쉬기 시작하면 절대 멈추지 않는다. 냉장고가 멈추는 순간 냉장고 안의 음식들이 상하기 때문이다. 쉰 음식은 먹을 수 있지만 상한 음식은 먹으면 안 된다. 냉장고는 마치 인간의 심장 같은 역할을 한다. 냉장고가 멈추는 일은 없다. 그러나 정전은 그런 냉장고를 숨죽였다. 이토록 적요함 속에서 촛불의 세계는 더욱 확장했다. 발을 바닥에서 전혀 떼지 않았다. 쥐가 났지만 나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옷은 땀으로 전부 젖었다.


촛불의 세계는 매혹적이며 위험하다. 그 세계에서 나는 날 수 있고 심지어는 파괴력을 지닌 능력자가 될 수도 있다. 촛불의 뒤 거실 벽에 파리가 한 마리 붙었다. 파리는 더위를 타지 않을 것이다. 파리는 더워 보이지 않았다. 파리는 이렇게 높은 아파트 안으로 어떻게 들어왔을까. 파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왔던지, 날개가 있으니 날아서 왔던지 어떻게든 사람이 살고 있는 높은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다. 벽에 붙은 파리는 집파리 치고는 컸다.


파리는 정전에 반응을 하는지, 촛불에 반응을 하는지 아니면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벽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파리와 나는 마치 누가 누가 더 꼼짝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를 내기하는 것 같은 형국이 되었다. 파리와 나는 그대로 돌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정적이 공간을 파고들었다. 공간의 모든 곳에 적막이 채워졌다. 소리가 멈추었다는 건 마치 시산이 정지한 것 같은 느낌이다. 시간이란 언제나 흐르고 있다. 멈추거나 잠시 정지하는 일도 없다. 그러나 소리가 소거된 공간에서는 시간마저 멈춰 버리는 착각이 든다. 파리의 모습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파리는 벽에 붙어서 다리를 비비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발바닥이 마치 거실바닥에 붙어 버리는 것 같았지만 꼼지락 거리지 않았다. 파리와 나의 다른 점이라면 나는 땀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땀이 흘러서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흐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촛불의 세계에서는 빛의 굴절이 없었다. 빛은 초를 타올라 형태를 유지했다. 아주 미약한 바람에도 촛불은 흔들린다. 촛불은 나에게 변하지 않는 굳건한 진실보다 불안하지만 흔들림이 많은 가능성을 믿어보라고 말했다. 나는 촛불을 통해 반대편 벽에 붙어 있는 파리를 보고 있었다. 파리와 나와의 거리는 고작 1미터 정도였다.


촛불을 통해 파리를 보는 동안 나는 땀을 많이 흘렸다. 정전으로 인해 그야말로 집 안은 찜통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파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나의 존재가 몸에서 분리되어 우주로 떠내려가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미동 없이.


다리에 난 쥐는 발바닥까지 내려갔지만 나는 더 이상 감각을 느끼지 않았다. 몸을 30분 이상 미동 없이 가만히 꼼짝하지 않고 있으면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착각이 든다. 마치 내가 돌이 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심장만 미약하게 뛰었다. 그러나 나의 모든 세포는 멈추었다. 나는 눈에 힘도 주지 않고 그렇다고 눈에 힘을 빼지도 않고 무념무상의 상태로 파리를 보았다.


그때 파리에 불이 붙으면서 밑으로 툭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냄장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순간 너무 커서 나도 모르게 두 귀를 손으로 막았다. 파리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나의 무의식이 발현되어서 나는 직접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켰다. 파리는 냄새까지 내며 깨끗하게 탔다. 나는 경이롭다는 기분보다 무서웠다. 하지만 그 뒤로 그런 능력이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지만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제는 마음이 편해져서 나는 그때 경험한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비밀댓글로 누군가가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듣고 싶다며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지금 그 자리에 나와 있다. 그 사람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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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라면이라고 들어봤나. 굴라면이 아니다. 굴라면은 라면에 굴을 넣어서 끓인 라면이 굴라면이다. 그렇다면 귤라면은? 그렇다 귤을 라면에 넣고 끓인 라면이 귤라면이다.


도대체 왜 귤을 라면에 넣고 그러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도 한 번 먹어보면 오 하게 된다. 라면에 아이스크림을 넣어서 먹어도 맛있는 것처럼, 닭갈비에 아이스크림을 넣어서 먹으면 정말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제주도에서 귤이 한 박스가 왔는데 집에 있는 귤과 함께 흘러넘치는 것이다. 이렇게 묶음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줬는데도 불구하고 많이 남았다. 한 두 개씩 까먹어도 남은 귤이 점점 물컹해지면서 상해가려고 해서 라면을 끓일 때 두세 개씩 넣었다.


뜨거워진 귤이 이렇게 맛있다니. 매콤한 라면의 국물을 잔뜩 빨아들인 귤이 이렇게 맛있다니. 나 같은 맵찔이가 조금씩 매콤함에 매료되어 가는 과정이다. 매운 라면에 땡초를 넣었어도 귤 덕분에 너무 맵지 않게 먹을 수 있다.

그래, 라면에 넣어서 먹는 귤이 맛있다면 볶음에도 귤을 넣어보자. 그래서 정체불명의 요리지만 뭔가 잔뜩 넣고 달달달 볶을 때 역시 귤을 넣어서 볶았다. 역시 뜨거워진 귤은 맛있었다.


예전 파인애플 볶음밥을 먹으러 갔을 때 뭐야? 파인애플을 볶음밥으로 먹는다고? 했지만 파인애플은 뜨거워야 맛있다는 일행의 말이 떠올랐다. 아마 그때가 10년 전이다. 파인애플 볶음밥을 먹으러 가면 파인애플을 잘라서 그 안에 볶음밥이 있다. 맛있었다.

요 며칠 아주 추워졌다. 이렇게 추울 때 끓여 먹는 라면만큼 맛있는 음식도 없다. 2016년까지만 해도 라면 끓여 먹으면 세 개를 끓여서 먹어도 거뜬했다. 그런데 두 개는 물론이고 이제는 한 개를 끓여서 밥을 말아먹으면 엄청난 포만감이 든다. 그래서 밥은 포기해야 한다. 위가 상당히 작아졌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살이 찌니 먹는 걸 줄이는 습관으로 생활을 하다 보니 위가 작아진 모양이다.


이제는 배가 너무 불러 포만감이 빵빵 들면 기분이 아주 안 좋다. 살이 찌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이 드는데, 아쿠아 맨 2편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 메리도, 아쿠아맨도 동생인 옴도 1편에 비해 전부 살이 붙었다. 할리우드에서는 입금되면 확 바뀐다는 룰이 있는데도 생각만큼 날씬하지 않았다. 나이가 드련 살이 붙는다. 철저하다는 외국 배우들도 예외는 아니다.


록스타들도 마찬가지다. 절대 살이 찌지 않을 것 같았던 머틀리 크루의 닐 형도, 건즈 앤 로지즈의 엑슬 로즈도 나이가 들면 살이 붙는 것에서 피해 갈 수 없다. 빅슨 누님들도 그렇게 서로 고소하니 마니 하면서 해체하고 난 후 바로 살이 찌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 살이 찐다고 해서 젊었을 때처럼 매일 극한의 다이어트를 할 수도 없다. 르세라핌의 사쿠라는 그 호리호리한 몸에도 식단조절이 잘 안 되어서 조금이라도 살이 붙었다고 느끼면 울고불고다. 살이 찌는 건 일반인에게도, 유명인에게도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숙제 같은 것이 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병헌이나 이정재, 정우성, 전도연, 이영애 같은 우리나라 배우들은 도대체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든다. 입금전후가 그렇게 완전 다른 디카프리오도 이번 영화에서는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영화에 임했다.


라면 하나 끓일 때 귤도 넣고, 방울토마토도 넣고, 양파도 넣고, 대파도 넣고 이것저것 넣으면 양이 꽤 많다. 먹다가 포만감이 들 때 그때 딱 젓가락을 놓으면 되는데 라면은 그게 참 어렵다. 귤은 간식 개념이었다. 예전 같으면 라면을 끓여서 먹고 난 후 귤을 까먹었다. 배부르지만 귤은 또 술술 들어갔다. 그렇게 먹다 보면 살이 붙는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매일 한 시간 반정도 조깅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거의 매일 조깅을 해야 비슷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다. 나의 체질은 조깅하는 거 하루 빼먹고 맛있게 하루 많이 먹으면 일 년을, 이년을 매일 같이 달린 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몸뚱이다.


하고 싶은 말은 귤라면은 맛있다는 말이다. 맛도 좋고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렇다고 굉장한 포만감은 들지 않아서 괜찮은 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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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 무릎을 접고 푹 파묻혀 앉아서 아이패드를 무릎에 대고 글을 쓰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열약한 환경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하는 것처럼 불편하거나 글이 잘 안 써진다거나 하는 건 없다. 이렇게 글을 쓴 지 오래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하는 곳에서는 책상이 있지만 집에서는 책상이 없어서 불편한 자세로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말로 하면 열약한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책상과 불빛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었다. 불빛만 있어도 곤란하고 책상만 있어도 불가능했다. 책상과 불빛 모두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었다. 오래된 영화를 보면 촛불에 의지하며 글을 쓰는 장면을 봤을 것이다. 그 당시의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기를 쓰고 쓸 수 있을 때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글을 적었다.


그 이후 노트북이 나왔을 때는 불빛은 이제 필요하지 않았지만 책상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런 시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요즘은 책상도 필요 없고 불빛이 없어도 글을 쓸 수 있다. 그런 시대가 되었다. 반드시 책상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누워서, 걸으면서, 엎드려서(이건 좀 아닌가, 엎드려서 글을 써 본 적은 없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대가 지금 시대다.


요즘은 AI도 소설이나 에세이에 뛰어든 시대다. 챗봇에게 [노인과 바다]를 닮은 짤막한 소설을 써달라고 했더니 30초 만에 뚝딱 쓰는 시대다.

나 같은 경우는 각 잡고 글을 쓸 수 있는 곳도 없고, 시간도 없기 때문에 어떻든 시간을 벌리고, 시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열약한 환경이라도 글을 쓸 수 있다면 [감사합니다]하며 되는대로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술 약속은 전부 하지 않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너는 무슨 대단한 글을 쓴다고 그러냐] 같은 말을 듣기도 했다. 대단한 글을 쓰려고 하기보다 매일 글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술 마시고 놀 때는 좋은데 지나고 나서 보면 너무나 그 시간이 아쉽고 쓸모없다. 그 기간이 오래되어서 지금은 술 마시자고 하는 약속은 없다.


나는 거의 매일 하는 것이 있다. 밥 먹고 자고 대소변 보는 것 이외에 일정 양의 글을 쓰는 것이 그렇고, 조깅을 하는 것이 그렇다. 하루이틀 정도는 쓰지 않고 달리지 않을 수 있지만 거의 매일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어떠한 하루를 맞이해도 글을 조금은 적는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열약한 환경에서도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챗봇은 환경 운운하지 않고 따지지 않는다. 나 정도의 글을 적는데 노트북이나 책상이 있는 곳이 아니어도 된다. 그저 글을 쓸 수 있다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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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날이 흐리고 그렇게 춥지 않으며 따뜻한 난로 앞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있으면 기시감이 확 든다. 기시감보다 어쩌면 기억이 가까울 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이런 겨울날에 지금처럼 컴퓨터로 영화를 보는 것과는 다르게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다. 극장에 가는 건 정말 일탈이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영화를 보러 한 시간 일찍 극장에 들어갔다. 중앙극장은 2층에 있었는데 들어가면 로비가 좋았다. 로비도 극장의 의자가 일렬로 몇 줄이나 있었고 앞에 대형 브라운관이 있었다. 거기에는 철 지난 영화가 나오고 있었는데 그 영화가 본 상영관의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경우가 있었다.


로비의 한편에는 매점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같은 사이다 지만 극장 로비에서 마시는 사이다는 더 맛있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극장은 시내에 몰려 있었다. 다섯 군데의 극장이 전부 몰려 있어서 극장마다 고객유치에 나름대로의 방안을 모색해서 영화를 보로 들어가기 전까지도 재미가 좋았다. 이 다섯 군데의 극장에서 흥행하는 영화를 상영하려고 엄청난 경쟁을 해야 했다. 다섯 군데의 극장에서 오분 거리에는 동시상영을 하는 작은 극장이 세 군데나 있었다.


동시상영 극장에는 액션영화와 성인영화가 했다. 동시상영 극장은 사람이 늘 없고 매점이 없는 극장도 있었다. 그래도 동시상영 극장을 찾는 사람은 늘 있었고 꾸준하게 상영작을 번갈아가며 영화를 상영했다.


중앙극장은 이층 로비에서 창문으로 시내중심가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저녁 황금시간대에는 떠 밀려서 가야 할 정도였다. 영화가 시작하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고 우리는 매점에서 사이다와 과자를 먹으며 창문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보면 꼭 아는 놈들이 지나갔다. 야호 이놈들아,라고 부르면 본인이 아님에도 꼭 고개를 꺾어서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니네 어디 가는데?]라고 물으면 [우리 그냥 돌아다니지]라고 하며 저쪽으로 멀어져 갔다.


요즘 조깅을 하는 강변의 조깅코스에 내가 학창 시절에는 밤이면 포장마차가 죽 들어섰다. 그리고 강변의 구석진 곳으로 가면 노는 아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강변에는 밤이 되면 아이들이 모여서 빙 둘러앉아서 생일빵을 한다고 술을 마시고 강에 빠트리기도 했다. 강변을 계속 돌아다니면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한 번은 친구(이 녀석이 우리 학교에서 킹카였다)와 수업을 째고 강변을 거닐었다. 여자를 꼬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네 저 앞에 여자애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그렇게 모여 있으면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말이다. 친구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그쪽으로 갔다. 거기에 가니 좀 무서운 여자애들 10명 정도가 중간에 다른 여고생 두 명을 두고 작업을 벌이려고 했다.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데 친구는 그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대충 돈을 빼앗으려고 하고 여고생 두 명은 버티고, 그러다가 폭행을 당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살벌한 분위기였다. 기억에 분명 노는 아이들 10명 중에 대장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커터 칼까지 꺼냈다. 두 명이 다른 학교 여고생이라는 건 10명도 전부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두 명의 여고생과 다른 교복이었다. 겁나는 이 분위기를 친구는 어떻게 해결했냐면, 잘생긴 자신의 얼굴로 주말에 5대 5로 미팅을 하자는 분위기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두 명의 다른 학교 여고생들은 보내주기로 했다. 가장 대장을 보이는(커터 칼을 빼 든) 여고생이 친구 녀석의 얼굴에 반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주말에 우리는 5대 5로 미팅을 했다.


교복을 벗은 여자아이들은 한 눈에도 우리 노는 아이들, 내놓은 아이들이니까 건들지 마. 가 역력한 복장이었다. 화장에 머리에는 1인당 스프레이 한 통을 다 썼을 법했다. 우리는 교복을 벗으니 순둥순둥한 복장이었다. 겁을 잔뜩 먹고 미팅을 했는데, 여자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순진하고 순수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뭔가 잘 몰라서 수줍어하는 모습이 묘하지만 매력적이었다. 여자아이들은 아지트는 없고 우리가 자주 가는 아지트 같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했다. 여자애들 중에 조안 제트 같은 얼굴과 화장을 한 여자애가 있었는데 당연하지만 그 애는 조안 제트를 알지는 못했다.

 

조안 제트는 런어웨이즈 멤버고 남자들에게 밀려 집안 청소나 하던 70년 대 중반에 기타 들고 세상을 놀라게 한 로커라고 알려 주었다. 2010년 영화로도 있는 런어웨이즈에서 조안 제트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맡았다. 런어웨이즈 밴드는 세상에 전부를 던져 버릴 열정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조안 제트를 닮은 그 애는 런어웨이즈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 여자애는 나의 파트너가 되어 음악감상실에 데리고 갔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든 영화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그때는 영화가 나오기 전이니까 음악감상실에서 런어웨이즈의 음악을 들어가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순종적이고 조용한 여자이어야만 했던 70년대, 이 억압과 답답함이 가득한 세상에 돌멩이를 던지듯 뛰쳐나온 체리 커리와 조안 제트. 이 미친 누님들이 만든 밴드 ‘더 런어웨이즈’의 이야기다.


로큰롤을 하고 싶은 조안 제트. 기타를 배우러 가지만 여자는 전기기타는 치면 안 된다는 말만 듣는다. 찌발 딥퍼플의 연주를 하고 싶었던 조안 제트. 모든 것을 쏟아내고 싶다!


데이빗 보위를 좋아하는 체리 커리는 학교 무대에서 데이빗 보위처럼 노래를 부르다 학생들의 야유를 받는다. 여자는 그런 거 하면 안 된다고. 찌발 이 답답함을 전부 던져 버리고 싶다!


그러다가 약과 술과 자유가 가득한 클럽에서 둘은 역사적 만남을 가진다. 이 만남이 이루어진 건 미친 프로듀서 - 조드 장군 역의 마이클 섀넌의 킴 파울리 때문이었다. 킴 파울리가 체리 커리의 거친 면을 보게 된다.


너, 조안 제트와 밴드 한 번 해볼래? 런어웨이즈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인 것이다. 그 당시 체리 커리의 나이 15살. 킴 포리는 섹시한 미성년자! 대박을 칠 거야!


이렇게 해서 여성으로 이루어진 미친 록 밴드가 최초로 탄생이 된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정말 조안 제트 같고, 다코다 패닝은 얼굴까지 체러 커리와 흡사하다.


런어웨이즈의 명곡 [체리 밤]이 탄생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주 흥미롭다. 세상에 드러내고 싶은 건 우리 음악이지 허벅지가 아니잖아!


런어웨이즈는 음반사와 계약 후 엄청난 밴드가 되고 인기를 얻는다. 보이 밴드를 능가하는 여성 최초 밴드. 신문과 잡지의 1면을 장식하고 그녀들은 최고였다.


멤버에는 또 한 명의 엄청난 누님 리타 포드가 있는데 영화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는 체리 커리의 자서전에서 시작했고 조안 제트가 영화에 참여해서 만들어졌다. 3년간 짧은 활동의 이야기를 다룬 최초 여성밴드 런어웨이즈였다.      

https://youtu.be/VeAWwxDUHoo?si=SKviQbHoF0fdErJL <=예고편


영화 속 체리 커리와 실제 체리 커리


이 멋진 영상이 이렇게 깨끗하다. 마치 얼마 전에 촬영을 한 것 같다. 체리 커리가 이렇게 멋지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건 약 때문이었다. 영화에도 나오지면 체리 밤으로 온 세상의 소녀들, 그리고 사람들을 후려갈겼다. 런어웨이즈를 보고 한국에서도 당시에 여성밴드가 나타났다고 했다. 70년대인데 어떤 밴드일까.

https://youtu.be/_EBvXpjudf8?si=QVUax3eaeX0yT0jI <= 체리 밤 라이브


런어웨이즈의 미모와 보컬을 담당하던 체리 커리가 약물에 쩔어 힘들다며 나가고 난 후 조안 제트는 도망가는 멘탈을 부여잡는다. 체리 커리는 영영 무대를 떠나지만 조안 제트 이 누님은 좌절하지 않고 더 강력한 로큰롤을 한다.

https://youtu.be/t5ecqUhec-s?si=r-bLCFt34p-WONJt <= 조안 제트의 아이 러브 락 앤 롤


시커먼 이 누님의 색을 살려 블랙하츠를 만들어 하나의 음악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노래로 조안 제트는 평생 놀고먹어도 될 정도의 돈을 번다. 지구인이라면 다 들어봤을 그 쩌는 노래 아이 러브 락 엔 롤이 세상을 강타해 버린 것이다 와우.


https://youtu.be/kIt3OGra3Lo?si=qrMkWo9qr0vpVpiJ <= 리타 포드

리타 포드 이 누님을 수식하는 말이 메탈계의 여자 괴물 내지는 거물 뭐 이렇게 불린다. 런어웨이즈의 멤버로 영화를 보면 미모와 보컬을 맡은 체리 커리에게 날을 세워 덤벼들었던 누님이다.


영화에는 존재감이 너무 없이 나왔지만 리타 포드는 조안 제트보다 기타를 잘 쳤다. 이 누님이 오지 오스본과 사귄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는데 둘이 같이 부른 노래 역시 대박이었다.


홀로 떨어져 나와서는 미모가 빛을 발하게 되지만 런어웨이즈에서 있을 때에는 가장 덩치가 컸다고 해야 할까. 이 누님이 기타를 들고 공연을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코로나에 5개 공연이 전부 취소가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끝나고 작년에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나이에도 12줄짜리 기타를 들고 화려하게 퍼포머를 하며 공연을 했다. 붉은 가죽바지와 조끼를 입고 정말 멋졌다구.


https://youtu.be/aN2LehZ_KdQ?si=ZUTchiPmEYccYD7E <= 체리 커리가 빠진 런어웨이즈

이때가 체리 커리가 나가고 보컬이 붕 떠 있던 때 조안 제트와 리타 포드 두 명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리타 포드는 아직 살이 오른 소녀 같은 모습이지만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를 때는 와일드하다. 이 누님들이 애초에 와일드했다. 와일드한 로큰롤이 하고 싶었으니까. 체리 커리가 나가고 조안 제트가 노래를 부르는데 음색이 좋다. 이때가 아직 77년이다. 역시 우왕 굿이었다요.


그 애에게 대충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 애도 무척 재미있어 했다. 그 애의 얼굴은 저렇게 조안 제트 같은 모습이라 사진으로 많이 담았다. 그리고 어딘가에 출품을 하기도 했다. 물론 다 떨어졌지만. 여기에 그 사진을 올려도 될까. 지금은 학부형이 되어 있겠지. 그나저나 이야기가 왜 이리로 빠진 걸까. 이건 영화 이야기일까, 음악 이야기일까, 그저 일상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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