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현희와 전청조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가 나오고 있다. 사람들에게 피로감과 더불어 재미를 주고 있다. 가장 활발한 댓글이 이 두 사람의 기사에 모여있는 것 같다. 사실 전청조에 관해서는 대중의 대부분이 다 안다. 이제 더 이상 나올 것도 없고, 전청조는 입벌구지만 일단 모든 것들을 자신의 입으로 떠벌떠벌 말을 했고 구속이 되어서는 변호사를 통해서 전달이 되었지만 새로울 것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알게 되었다. 초반에 전청조에게 쏠렸던 관심은 이제 남현희로 쏠렸다. 아직 피고인은 아니지만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어서 10시간 조사까지 받았다.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나는 당했다’라는 눈빛을 기자들에게 보이며 조사를 받으러 들어갔다.


지금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사기전문 검사출신 변호사들의 반응은 남현희가 당했을 것이다,라는 반응이고 그에 따른 대중의 댓글이 재미있고, 기자나 사기전문 변호사가 아닌 변호사들의 반응은 가담까지는 아니지만 공모는 했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아니지, 공모는 아니지만 가담 했을 것이다, 인가?. 여하튼 사기전문 변호사들은 자신도 전청조에게 깜빡 속아 넘어갔을 거라며 남현희가 당했다는 반응인데 이에 사람들의 댓글은 그 정도로 전문가라 할 수 있나,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에 전문가까지 속는다면 전문가라는 말을 빼야지 같은 반응이 재미있다.


그러나 지금 하려고 하는 말은 이런 말이 아니라 한 사람, 즉 남현희가 단제 즉 펜싱협회를 완전히 망가트릴 뻔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거대한 단체,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단체나 협회가 그동안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었어도 한 사람 때문에, 아차 하는 순간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


남현희의 기사에는 전청조와 만남을 가지고 있을 때 펜싱협회에 출처를 밝히지 말고 30억을 투자한다고 했다. 그런데 투명하지 않은 돈을 받으면 펜싱협회가 곤란해질 수 있으며 협회 통장이 못 쓰게 될 수 있다며 거절했다. 생각해 보면 이 30억이라는 돈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마어마한 돈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돈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절대 투자받을 수도 없는 돈이지만. 아무튼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액수의 돈이다. 30억이면 펜싱 협회에서 이런이런 곳에 얼마를 사용할 수 있고, 또 이만큼의 돈은 여기에, 하면서 협회가 발전하는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투명하게 출처를 밝혀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 돈이 30억이라는 큰돈이라도 받을 수 없다는 관계자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펜싱협회는 남현희 한 사람 때문에 나락으로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중에 한 번 미움을 받으면 이런 협회는 또 힘들다. 안 그래도 클래식계와 체육계 쪽은 비리가 심하다는 인식이 강한데 남현희와 전청조 사기꾼의 돈을, 그것도 출처를 모르는, 피해자들에게 나왔을 돈을 투자받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면 협회는 망가질 수 있다.


그렇게 투명하게 운영하는 게 당연한 방식이지만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그 관계자가 정말 대단하게 보인다. 이상하지만 그런 대한민국이라서 씁쓸하다. 잠들 때 잠옷으로 갈아입고 잠이 드는 것처럼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인데 그 당연한 것이 대단하게 보이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라니. 적어도 펜싱협회는 투명하고 정의롭게 운영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 협회 관계자는 남현희는 전청조를 데리고 펜싱협회 관계자가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자신의 투자자라며 전청조를 데리고 들어가려고 한 것도 막았다고 하던데, 남현희 하나 때문에 펜싱협회가 추락하는 것을 잘 막아냈다고 본다.


더불어 전청조는 남현희의 제자를 폭행한 것을 자백했다. 훈육 차원에서 폭행을 했다고 했고, 그 학생은 기절까지 했다. 남현희는 지도교육자 자격까지 있으면서도 성폭행을 당한 학생을 분리조치 하는 것도 없이 학생 어머니에게 대학의 누군가를 알고 있어서 들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뉘앙스로 문자를 보낸 것까지. 남현희가 사기 공모를 했니 마니 보다 이제 이런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지적을 하고 조사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남현희는 현재 마치 기분이 태도가 된 것 같은 모습이다. 자신을 비판하는 대중을 향해 나는 결백하다고!라는 것에만 꽂혀서 가는, 오로지 하나의 의지만 가지고 있는 좀비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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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스터 빅의 노래를 듣다가 건스 앤 로지스, 메탈리카, 본 조비까지 거의 두 시간을 멍하게 음악만 들었다. 오늘 이전에는 어떤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냐면, 도대체 학창 시절에 음악을 몇 시간이나 듣고 있었다니, 어떻게 반나절을 음악만 듣고 있을 수 있었을까, 같은 생각을 했다. 학창 시절에 용돈이 생기면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는 인간이 나였다. 음반구경하는 게 재미있었고 음악을 듣는 것이 좋아서 일요일에는 레코드 판을 몇 시간이나 들었다.


물론 판테라, 바쏘리 같은 음악이라 출력을 크게 하고 들으려면 헤드셋을 끼고 들어야 했다. 그때 친구들에게 비친 나는 몇 시간이나 음악만 듣는 그런 녀석이었다. 시간이 생기면 어김없이 음악감상실로 달려가서 음악을 신청해서 봤다. 봤다는 말은 학창 시절에 한창 미국의 엠티비가 유행이었고 모든 가수들이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기에 그걸 보는 재미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능가했다. 하지만 유튜브가 나오고, 뭐 인터넷이 잘 되어 있는 어느 순간부터는 음악만 듣기에는 시간을 너무 낭비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멍하게 음악만 듣기에는 아까웠다.


음악은 서브에 가까웠다. 조깅할 때 들을 수 있는 음악, 책을 읽을 때 모르는 음악을 틀어놓거나, 일할 때 라디오를 듣거나, 소설을 쓸 때 음악을 틀어 놓는다. 그래서 음악은 서브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무 생각 없이 미스터 빅을 멍하게 듣다 보니 오래전 학창 시절에 음악에 완전히 몰두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두 시간을 온전히 음악만 듣는다는 거, 이건 정말 행복이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이런 기분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에어로 스미스의 크레이지의 뮤직비디오에서 일탈을 하여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알라시아 실버스톤과 리브 타일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잠드는 시간을 제외하고 늘 음악이 틀어져 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도, 운전해서 이동을 할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다행인지 늘 음악을 듣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음악에 대해서 잘 안다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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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화면은 아이패드나 휴대폰과는 다르게 네이버 뉴스란을 먼저 보게 된다. 아이패드나 휴대폰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먼저 보는 반면에 컴퓨터 화면은 네이버를 제일 먼저 본다.


오늘 한 화면에 눈에 들어오는 두 기사가 있었다. 김하성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최초로 골드글러브 수상했다는 소식과 아양이 심장을 달고 생명을 얻은 기사다. 한 하면에 이 두 기사가 눈에 딱 들어왔다. 둘 다 기쁜 소식이다. 아영이는 신생아에서 갓 벗어났을 뿐인데 나쁜 간호사에게 학대를 받아서 생명을 잃게 되었고 그 심장이 새로운 아이를 살렸다. 기쁜데 슬프다. 기쁜 소식이지만 슬픈 소식이다.


한쪽에서는 기쁜 소식이, 한쪽에는 슬픈 소식이 동시존재하는 곳이 우리의 일상이다. 이런 사실이 특별하거나 새롭지는 않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소변을 보고 물을 한 잔 마시듯 아주 자연스럽지만 오늘은 새삼스럽다. 이미 알고 있지만 이런 사실을 대하는 오늘은 어쩐지 어제와 다르다. 오늘 유별나게 서번트 물질이 뇌에서 많이 흘러나와서 그럴까. 그럴지도 모른다. 뇌를 쩍 갈라서 볼 수 없지만 이런 기시감 같은 기묘한 기분이 강하게 드는 건 뇌의 여러 구간 중 6구간(이라고 하자)에서 서번트가 평소보다 더 흘러나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시기에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늘 종합병원 응급실 쪽으로 왔는데 응급실로 실려가는 모습을 일주일에 서너 번은 보았다. 심지어 앰뷸런스에서 응급실로 환자를 옮기는데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지경의 모습까지 보았다. 종합병원 바로 옆으로는 식당가가 죽 있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앉아서 식사를 하며 술을 곁들이고 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게,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라가 복잡했을 때 기록한 글을 읽어보니 가관이었다. 죽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속출했고, 마스크대란에, 약국의 약사들의 고통과 음압실의 간호사들의 처절한 노력 같은 것들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었다. 그때에도 행복과 슬픔이 공존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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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아침에 쏟아졌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왔는데 차도 많고, 비는 엄청 내렸다. 분명 내가 출근하고 나면 비가 그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어김없이 그렇다. 비라는 것은 왜, 늘, 항상 내가 도로에 나왔을 때 이토록 하염없이 내리는 걸까. 가뜩이나 차도 오래되어서 비가 내리면 몹시 안절부절인데 차가 밀려도 너무 밀리는 것이다. 한 차선을 경찰들이 통제하고 있다. 저 앞에서 사고가 난 모양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오는데 멀쩡하면 그게 이상하지. 밝아오지 않는 밤이 없고 끝나지 않는 교통체증이 없다지만 그 몇 분은 정말 길고 길다. 특히 나는 수동기어라 섰다 가다 섰다 가다 하는 건, 에이 말을 말자. 저 앞으로 가니 트럭의 앞부분이 오나전 박살이 났고 그 옆을 보니 자동차의 앞부분도 박살이 났다. 빗길에 미끄러지면 이렇게 큰일이 난다. 항상 조심히 운전하자, 같은 말이 있는데 사실 운전을 하게 되면 죽어야지 하면서, 어디 올 테면 와 봐라,라는 식으로 운전을 하는 사람은 없다. 사고가 나면 그 후 처리가 지랄맞고 시간이 걸린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대체로 운전을 조심해서 한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지만 죽어봐라는 식으로 운전을 하지는 않는다.


몇 해전까지는 전국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거제도 구석구석으로, 순천의 골목으로, 내가 사랑하는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면서 마음에 드는 곳이 나오면 그곳에서 일박을 하고 동네를 어슬렁 돌아다녔다. 운전하는 것도 지치지 않았다. 수동기어라서 더 재미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비가 조금이라도 많이 내리면 겁부터 나고, 도로에서 80킬로 이상 밟으면 무섭기까지 하다. 정신을 놓은 사람들도 많아져서 비가 겁나게 오면 불안 불안하다. 불안이 일상을 잠식한 것 같다.


딱히 사고가 난 적도 없고 딱지를 떼본적도 없어서 늘 방어운전을 하지만 한 해 지날수록 빗물이 고일정도로 비가 오거나(언젠가부터 비가 오면 물을 확 붓듯이 내린다) 하면 겁이 난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지는 것 같다. 아니 ‘인간은’ 이라기보다 ‘나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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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건물에 12살짜리 녀석이 있는데 나에게 가끔 놀러 온다. 오는 이유는 내가 만화를 좋아해서 나에게 오면 만화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의 공통점은 둘 다 ‘귀멸의 칼날’과 ‘원펀맨’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특히 내가 일하는 곳에는 내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귀멸의 칼날 디오라마가 있어서 구경을 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원펀맨 피규어도 있다. 사이타마 녀석이 응가하는 큭큭큭. 그리고 컴퓨터로 그림을 그려 놓은 게 있어서 그 녀석도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해서 놀러 와서는 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논다. 그러다가 그 녀석의 할머니가 왔을 때 그 녀석이 만화를 그리고 있으면 나무라면서 만화 같은 거 그리지 말라고 한다. 커서 뭐가 되냐면서 혼을 낸다. 그리고 끌려간다. 할머니들은 도대체 왜 그래 흥!

나도 어릴 때 만화 그리는 걸 무척 좋아했는데 엎드려서 만화를 그리고 있으면 엄마에게 혼이 나곤 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꼭 엄마는 커서 뭐가 될래,라고 혼을 냈다. 아마 일본에서도 아이들이 만화를 그리고 있으면 어른들이 그랬겠지. 그러나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인구도 많고 혼나면서도 살아남아서 끝까지 만화를 손 놓지 않고 그린 사람들이 현재 원피스와 플루토 같은 애니메이션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혼나면서도 게임을 놓지 않았던 아이들이 현재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오는 세상이 되었다.

열심히 데생을 하더라고

중학생 치고 이 정도면


나의 조카도 삼촌을 닮아서(나는 그렇게 믿는다) 초등학생 때부터 만화를 그리고 그림을 내내 같이 그리며 놓았다. 그러다가 6학년 때 데생을 열심히 하더니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그림의 세계를 알아 버렸다. 무엇보다 조카 녀석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반에서 그림으로 1등을 먹는 모양이다.


공부로 1등 먹는 것보다 그림으로, 미술로 1등 먹는 게 뭔가 있어 보인다. 만고 나만의 생각이지만. 나도 군대에서 뭔가를 잘 만들어서 겨울 내내 카드 병으로 차출이 되어서 카드만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똑같은 카트를 백장 이상씩 만들어야 했다. 전부 손으로 일일이 똑같이 큭. 그러나 나는 해냈다. 왜냐하면 카드병은 무시무시한 점오에서 열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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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에 찬 초시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좋다. 마치 심장이 팔딱팔딱 뛰는 것 같은 느낌이다. 덥고 맑았던 가을 하늘이 갑자기 심술 난 시어머니처럼 흐려졌다. 그러다가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우산을 펼쳐지는 않았지만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곧 비가 올 모양이다. 비가 내리고 나면 길고 긴 혹독하게 추운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코끝을 발갛게 만드는 아주 시리고 차가운 날. 몹시 추운 겨울날이 되면 시간의 틈을 벌리고 추억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집 안에서도 따뜻하게 입고 있어야 할 정도였는데 집을 떠올리면 늘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구질구질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그런 기억은 없다.


[밤이 되었다]

밖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비가 온다. 가을비다.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날은 쌀쌀해질 것이다. 바람이 오랜만에 베란다의 창문을 들썩이게 한다. 조금 열어 놓은 창틈으로 바람이 비집고 들어와 찬 기운이 다리에 닿는다. 가을은 늘 이렇다. 여름을 밀어내는 바람의 기운이 있다. 얘들아 이제 내가 들어갈 자리야 비켜줄래 라며 가을은 바람을 대동하고 이정재처럼 서서히 다가온다.   


생각하자 누군가의 뒷모습을 생각하고 누군가의 쓸쓸함을 생각하자. 생각하자 누군가의, 누군가의, 누군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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챈들러의 매튜 패리가 세상을 떠났다. 할리우드에서 슈퍼스타는 아니지만 온 세계가 그를 추모하고 있다. 챈들러는 아마 지구 역사상 가장 멋지고 예쁘고 귀여운 코믹 캐릭터라서 사람들이 그를 놓을 수 없어서 메튜 패리가 떠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힘겨워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로, 2013년 미드로 ‘더 브릿지: 조각 살인마’가 있다. 다이엔 크루거의 예쁜 모습을 볼 수 있는 시리즈다. 딱 두 시리즈로 마무리를 해서 깔끔하고 재미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 다리에서 미국의 한 여성 판사의 시체가 발견되는데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다. 그런데 하체는 멕시코 20대 여성의 것이었다.


가장 안전한 도시와 가장 범죄가 난무하는 도시의 경계에서 조각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미국 쪽 형사 다이엔 크루거와 멕시코 형사로 데미안 비쉬어가 함께 연쇄 살인마를 잡는 이야기다. 고어적이고 잔인한 장면이 꽤 나오는 시리즈로 다이앤 크루거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다이앤 크루거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소냐 크로스를 맡았다.


굿 닥터처럼 서번트 증후군이 심한 건 아니지만 감정에 대해서 공감을 하지 못하는 형사인 소냐는 일하는 시간에 개인적인 전화를 하는 것도, 살인을 목격한 미성년자를 심문할 때에도 감정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모르는 남자와 야스를 할 때에도 중간단계가 없이 그냥 동물처럼 다가가서 나와 야스를 하고 싶니? 야스가 끝나면 침대 위에서 바로 노트북을 꺼내 사지가 잘려버린 피해자의 사진을 보며 일을 한다. 남자가 놀라서 그냥 나가버리기도 한다. 다이앤 크루거는 감정의 공감을 하지 못하는, 그래서 형사라는 직업이 맞지만 그렇기에 타인에게 아픔을 줄 수 있다는 자신의 모습에 갈등하는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한다. ‘바스터즈 거친 녀서들’에 나올 때보다 훨씬 예쁘게 나온다. 화장도 거의 하지 않고 표정도 별로 없지만 자신과 싸우는 연기를 하는 모습이 예쁘게 보인다.

https://youtu.be/_v9H-Rk0s4o?si=EbHE6-xy16uL_Hq9


회가 거듭할수록 사건과 관련된 신문기자 그리고 멕시코 경찰들이 있어서 점점 더 꼬이면서 재미있어진다. 범죄의 온상은 멕시코 후아레스로 나온다. 그곳에서는 멕시코 마피아와 경찰들이 단합을 해서 여자들을 잡아가서 무슨 짓을 한다. 그동안 군, 정부가 개입을 했지만 바뀌는 것이 없다. 그저 무법천지다. 그곳에서는 마약이 판을 치며 미국 쪽에서는 약물중독으로 사람들이 점점 인간의 모습에서 벗어난다.


케이트 윈슬렛이 풍만한 중년의 형사로 나오는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에서도 약물중독이 끊임없이 나온다. 이 작품의 멋진 요점은 인간에게 비극을 가져다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가장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 최악의 비극을 가져다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온통 비극에, 비극의 끝에 있는 메어(케이트 윈슬렛)가 다른 사람들의 비극을 해결하면서 그 사람들의 비극까지 엎어 쓰는 작품이다.


조엘 킨나만과 미레유 에노스 주연의 시리즈 ‘킬링’에도 약물중독이 어마어마하게 나온다. 약물이 얼마나 인간의 삶을 망가트리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5년까지는 청정국


마약청정국 한국이라는 이름이 거짓말이 되어버린 현재, 여기저기 마약에 대한 기사나 뉴스가 많이 나오고 있다. 사실 이런 뉴스는 예나 지금이나 꾸준하게 나오고 있다. 70년대에도 가수들이 마약 스캔들에 관련되어서 신문에 났고, 80년대에도 그랬다. 부활의 이승철도 그랬고 지금까지 늘 그랬다. 그때나 지금이나 뉴스에서 기사로 나오는 사건은 비슷한 것 같은데 어느 날 마약청정구역이 아닌 한국이 되었다.


그 이유는 마약사범들만 있었는데 일반인들이 약물중독이 되면서 확고하던 이미지가 깨져 버린 것이다. 내가 구치소에서 근무를 할 때에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들어오는 수감자들은 대단했다. 영화에서 흔히 보는 코로 하얀 가루를 흡입하는 식의 마약중독보다 향정신성의약품, 즉 의사에게 처방받는 진통제로 시작하는 약물에 중독이 되는 것이다. 많이 들어봤을 프로포폴, 케타민, 암페타민 같은 약물이름. 마약성 진통제로 처방을 받으면 중독의 길로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원래 근육이 굳어버리는 루게릭이나 파킨슨 환자들에게 아주 소량으로 처방을 해주는데 그 양이 조금이라도 넘어서면 중독의 길로 빠지게 된다. 헤어 나올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이 약품을 거래하는 곳과 의사들에게 나오기 때문에 청정구역이 되기는 힘든 수준이 되었다.


매튜 패리는 1997년에 제트스키 사고로 치료를 받던 중 의사에게 진통제 바이코딘을 처방받으면서 약물 중독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프렌즈’ 촬영 당시에도 약물중독과 사투를 벌이며 괴로워하며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지금 현재 그와 가장 친분이 두터웠던 제니퍼 애니스톤은 이불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 있다고 하는데 그녀는 20년 전(2천 년 초반)에 한 토크 쇼에 나와서 사회자가 매튜는 좀 어때?라고 물었는데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 우리는 매튜가 그렇게 힘겨워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매튜는 지금까지 옥시코딘, 암페타민과 알코올 중독으로 몸과 머리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최진실의 죽음에는 졸피뎀이라는 수면제가 깊게 관여되었다는 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이 수면제를 과다 복용을 하면 살아있되 영혼과 육체를 분리할 정도로 사람을 구렁텅이로 몰아간다. 졸피뎀은 자꾸 자살을 강요하고 아무렇지 않다고 타이른다. 졸피뎀은 의사가 처방을 잘해주었다. 최진실의 졸피뎀을 타서 가져다준 매니저가 있었다. 매니저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는 졸피뎀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약을 먹으면 바로 잠이 드는 게 아니라 점점 이상한 망상과 고통으로 시달린다. 그런데 후에 그 인터뷰를 했던 매니저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 매니저도 졸피뎀을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진영 역시 졸피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최진영이 죽고 나서 최진영 친구가 최진영이 괴로워하며 졸피뎀을 복용한 것에 대해서 인터뷰를 했다. 최진영은 하루에 열 알 이상 먹었다고 했다. 최진영이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는데 전혀 기억을 하지 못했다. 졸피뎀은, 그 약은 죽어도 괜찮다고 부추기는 부작용이 심했다. 그런데 이 인터뷰를 한 최진영 친구 역시 졸피뎀의 복용으로 4중 추돌사고를 일으켰는데 전혀 기억을 하지 못했다. 졸피뎀이란 고통에서 벗어나 복용하는 사람도, 그래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또 다른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는 옆의 사람도 결국 졸피뎀에 손을 대게 만든다. 그리고는 zilch 상태가 된다.


남태현의 경우를 보면 좀 더 잘 알 수 있다. 남태현은 살이 찌는 문제 때문에 식욕억제제를 7년이나 복용했다. 연예인들은 힘들다. 시간이 조그만 지나면 새로운 아티스트들이 나타나니까 늘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걸 이기기 위한 자신만의 리추얼을 가져야 하는데 힘이 드니까 약물을 복용한다. 원래는 술을 마시면 되었다. 술을 잔뜩 마셔도 약을 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술을 마시면 살이 찐다. 이 살이라는 게 일반인들에게도 스트레스인데 연예인들에게는 정신적인 고통 수준이 대단하다.


카드 값 30만 원도 못 내... 주방 알바 계획 중이라는 전 위너 멤버, 가수 남태현의 마약 중독 심경 최초 고백 | 추적 60분 KBS 230714 방송 https://youtu.be/ABiNEQ1PDdI?si=La5Dj-TQG4oATDm3


살이 찌면 회사도 타격을 받기 때문에 회사에서 간섭을 한다. 이는 ‘오즈의 마법사’로 스타덤에 오른 주디 갈란드가 그랬다. 미성년자인데 하루에 담배도 스무 개비 이상 피우게 해서 식욕을 떨어트리고, 식당에서 회사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을 때에도 직원들은 스테이크를 먹었지만 주디 갈란드 앞에는 샐러드만 놓았다. 그저 돈 버는 기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주디 갈란드의 엄마가 적극 회사를 도왔다. 그러다 40대의 이른 나이에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19살 때부터 매일 강제로 복용한 약물이 문제가 되었다. 바르비투르산의 과다복용이었다.


현재 지드래곤이나 유아인 등 연예인들의 약물문제가 터졌다. 그러나 아마 곧 잠잠해지거나 재판이 있어도 몇 년 동안 아주 지리멸렬하게 이어져 대중의 관심에서는 벗어날 것이다.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라면 이런 사건을 죽 전담하던 검사들이 변호사가 되어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이선균이나 연예인들의 마약 사건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연예인들이야 그들만의 리그가 있고 자본이 있어서 해결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약물이 일반인들의 세계로 흘러들어와 버렸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남태현이 말한 것처럼 한 번이라도 하게 되면 중독의 길로 접어든다. 몇 해 전부터 유튜브에 떠도는 필라델피아의 캔싱턴 거리를 보면 사람들이 좀비화가 되어 있다. 약물로 뇌의 한 부분이 망가져서 그렇다. 좀비랜드가 따로 없다. 의학, 정보, 과학 분야의 최고를 달라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손을 놓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아주 저렴한 합성 약물들이 의사들의 처방으로 이루어져 이렇게 커졌다는 것이다.


"한 시간이면 배달되는데" 20대 싱글맘 중독자가 말하는 SNS 마약 거래 실태 | 시사직격 KBS 221118 방송 https://youtu.be/cEkLl6DvFAs?si=BxCC1ue7w3KuUSQm


일반들의 세계로 흘러들어온 약물의 실태를 잘 보여주는 시사직격 방송이 지금으로부터 1년 전에 했었다. 지금은 약물중독에 노출이 많이 되었다. 이 검은손이 인터넷을 통해 학생들까지 뻗치기 때문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누구도 알지 못하게 구입할 수 있다. 어딘가, 골목 어딘가 벽돌 사이에 끼워 두면 가서 빼가면 된다. 간단하다. 시시티브이도 없다. 아무도 모른다. 간단하게 약물로 천국으로 갈 수 있다. 모든 스트레스와 고통을 잊을 수 있다. 비록 잠깐아지만 쾌감을 가질 수 있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까짓 거 또 구해서 하면 된다.


오래전에도 학생들이 본드를 비닐봉지에 발라서 흡입하고 부탄가스를 마시고 취했다. 지금 그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편리하고 무엇보다 큰 쾌감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영원한 챈들러 안녕! 약물 없는 곳에서 괴로워하지 말고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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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데 맛이 안 난다. 집에서 밥이 남고 반찬이 남아 있으면 김치볶음밥을 해 먹는 게 좋은데, 김치 들어가고 고기 들어가고, 먹다 남은 반찬 들어가고 버터를 두르고 볶으면 맛있다. 거기에 계란 프라이를 올려 노른자를 톡 터트려 비벼 먹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맛이 안 난다. 맛이 안 난다는 말은 분식집의 김치볶음밥 맛이 안 난다는 말이다. 김치볶음밥은 분식집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 거기에는 밥과 김치 밖에 없는, 말 그대로 김치볶음밥인데 집에서 많은 내용물을 넣어서 볶은 것보다 훨씬 맛이 난다.


누군가는 김치 넣고 볶으면 되는 걸 왜 분식집 같은 곳에서 사 먹고 그래?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에게 분식집 김치볶음밥을 한 번 먹여주고 싶다. 매콤함에도 분식집 특유의 그 맛이 있다.


7월에도 김치볶음밥 이야기를 하면서 분식집 김치볶음밥에 대해서 찬양을 했었다. 김치볶음밥의 특징은 너무 하찮다는 것이다. 하찮아서 사람들이 외면할지도 모르지만 그 하찮음 때문에 지금까지 버티고 버텨 살아남아서 김치볶음밥을 찾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준다. 거창한 것보다 하찮은 것들이 나를 기쁘게 한다. 내가 하찮은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김치볶음밥이라는 게 김치 따로, 계란프라이 따로, 고기 따로, 들어가는 다른 반찬 따로 해서 먹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잡채나 돼지갈비 찜 같은 음식은 그대로 하나의 완성형 요리고 맛있다. 들어가는 재료를 따로 먹지 않는다. 뭔가 집안에 좋은 일이 있으면 해 먹는 음식들이라 맛도 좋다. 김치볶음밥은 그렇지 않다. 따로 떼어 넣고 먹어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음식인데 김치볶음밥으로 해 먹고 나면 이상하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에는 분명 ‘하찮은’이라는 것들이 한데 모여서 으쌰으쌰 하며 힘을 내는 것에 맹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찮은 것들만 모였는데 하찮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요컨대 칫솔하고 비슷할지도 모른다.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칫솔. 칫솔이 닳고 못 쓰게 되면 다시 새 칫솔로 바꾸면 그만이다. 그라나 없어서는 안 된다. 칫솔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정말 끔찍한 세상이 될 것이다. 전국의 칫솔을 만드는 공장에서 경기도 너무 안 좋고, 단가도 너무 올라가서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먹고살기가 힘듭니다, 하며 칫솔 공장 전부가 칫솔 만들기를 포기하면서 지금부터는 알아서들 이를 닦으세요,라고 한다면 세상은 암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괜찮아, 칫솔이 없으면 뭐 어때, 아무거나 가지고 닦으면 돼, 치실도 있고 수건도 있고 소금도 있으니 괜찮아. 아무런 문제가 없어.라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어쩐지 이는 칫솔로 이리저리 쓱싹쓱싹 닦아야 상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집을 떠나 여행을 가서 일박을 하게 되었을 때 씻지 못하고 잠이 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얼굴이나 발은 못 씻어도 이는 닦아야 편하게 잠들 수 있다. 칫솔이 아닌 다른 어떠한 것으로 이를 닦는다고 해봐야 답답할 뿐이다.


칫솔은 손으로 꽉 움켜 잡게 생겼다. 그것이 칫솔이 사람에게 부여한 의미가 있는데, 세상에는 아주 많은 물품들이 존재하고 사람들의 생활을 영위하게 해 주지만 손으로 움켜잡고 무엇을 할 수 있는 물품은 드넓은 물품 중에 몇 없다. 그렇게 손으로 꽉 쥐고 무엇인가 할 수 있는 물품은 인간사에 반드시 밀접하게 필요한 물품들이고 그 종류는 생각만큼 넉넉하지 않은 것 같다.


칫솔이 어느 순간에 인간 세계에 짠하며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물품들이 많다. 컴퓨터가 없어도 안 되며 냉장고가 없어도, 자동차가 없어도 안 된다. 칫솔은 여기에 비하면 아주 하찮은 물품이다. 있으면 다행이고 없어도 다른 것으로 대처하면 그만인 물품이다.


하지만 없어지면 서서히 불편해진다. 그리고 불편함은 점점 불안으로 번진다. 사소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중요하다고 느끼는 물품일지 모른다. 사람들 중에서도 칫솔 같은 사람이 많다. 어쩌면 칫솔 같은 사람이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자동차나 냉장고 같은 사람도 분명히 있다. 회사나 학교 그 단체, 조직에서 컴퓨터나 자동차 같은 사람은 한두 명씩 있다. 하지만 단체를 이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칫솔 같은 사람들이다.


언젠가 필요 없어지만 갈아치워 질지, 닳고 못쓰게 되면 버려질지 모르면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비록 칫솔은 하찮고 어디를 가나 널려있고 일회용으로 한 번 쓰이고 나면 버려지는 물품일지 모르지만 분명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물품 중 하나다.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 하나하나처럼 말이다.


김치볶음밥도 하찮고 가끔 해 먹지만 그래서 맛있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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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여기저기서 해리 포터가 한다. 요즘도 벌써 겨울의 반열에 들어와서 그런지 케이블에서는 해리 포터의 전 시리즈를 내보내고 있다. 겨울인데 날씨가 사람을 데쳐진 시금치처럼 만들어 버린다. 겨울은 그저 마녀의 젖꼭지처럼 추워야 제 맛이다. 내가 한 말은 아니고 홀든 녀석이 한 말이다. 호밀밭의 그 녀석 말이다. 아무튼 해리 포터는 매년 겨울에 시리즈를 전부 방송한다.


나, 요즘 일하면서 매일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고 있다. 고전. 빙 크로스비, 앤디 윌리암스 등. 뭐야? 벌써 캐럴이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캐럴은 기묘해서 듣다 보면 흥에 젖어든다. 여하튼 해리 포터를 마음잡고 야심 차게 1편 ‘마법사의 돌’부터 보지만 어쩐지 2편 ‘비밀의 방’으로 겨우 넘어가서 3편부터는 봐지지 않는다. 그래서 해리 포터는 1편과 2편만 보게 된다. 나머지 시리즈는 채널을 돌리다가 방송하면 건성으로 보게 된다. 딴짓하면서 - 유튜브 같은 것을 보면서, 소설 잭리처를 읽으면서 흘깃흘깃 볼뿐이다. 그래서 잘 모른다.


꼭 학창 시절의 수학의 정석 같다. 수학이라고는 40점을 넘어 본 적이 없다. 중학교 때에는 빵점을 맞은 적도 있다. 선생님이 나를 불러 이 놈아, 대충 찍어도 10점은 나올 텐데 도대체 어떤 식으로 하면 빵점이 나오냐, 나는 속으로 10점이 더 쪽팔리는데, 그냥 빵점이 10점 보다 더 있어 보이는데 같은, 바보 같은 생각이나 했다. 학창 시절에 수학의 정석을 야심 차게 펼쳐 수학공부를 하지만 첫 장 함수 부분을 넘어간 적이 없다. 첫 장이 함수인가? 인수분해? 아무튼 첫 장을 넘어간 적이 없다. 그래서 수학의 정석을 들고 보면 앞부분만 새까맣고 나머지 부분은 신생아의 엉덩이처럼 새 하얗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식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니 아찔하다.


해리 포터 마니아들이 들으면 놀랄 일이겠지만 해리 포터에 열광하는 반열에 들지 않았던 나는 썩 흥미가 없었다. 오히려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집중해서 봤다. [누가 생각해 낸 제목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지하 제왕으로 자꾸 표기를 하려고 한다. 순데렐라 같은 글짓기 장인들이 포진해 있는, 숨은 고수들의 세상이 바로 여기, 우리나라다. 국뽕이 차오르네] 호빗 시리즈도 재미있게 봤지만 해리 포터 마지막 편은 인중이 지우개로 문질러 놓은 듯한 볼드모트를 뭐 어떻게 죽이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해리 포터 1편, 반지의 제왕 1편이 나온 그 시기가 영화사에서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계기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아닌가 싶다. 그 순간의 중심에 내가 서 있었다니 그것만으로도,, 뭐 그렇다. 그건 몇십 년 동안 영화는 인간의 상상력 그 위의 일을 해왔지만 어떤 지점을 넘을 수 없었다. 또 영화 속 과학은 현실의 과학이 따라잡을 수 없었다.


요컨대 미래소년 코난의 배경은 2008년이다. 2008년이면 노무현 대통령에서 이명박으로 넘어가는 시기로,,, 또 백 투 더 퓨처 2편의 미래는 2015년이다. 영화 속 2015년에는 날아다니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물에 젖으면 신발이 알아서 드라이를 하고 뭐 그런 시기다. 마티 맥플라이의 엄마로 나온 리 톰슨의 딸 조이 도이치도 배우인데 조이 도이치는 엄마의 그 시절의 모습과 판박이다. 뭐야? 아무리 엄마와 딸 사이지만 이렇게나 닮았다고? 할 정도다. [제가 위에서 분명 하찮은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의 다크 한 미래의 배경은 2019년이다. 코로나직전이다. 블레이드 러너 속 래플리컨트, 요즘말로 에이아이, 안드로이드는 ‘죽음’보다는 ‘제거’, ‘고친다’보다는 ‘수리’로 표명되는데 총에 맞은 래플리컨트는 고통스러워하고 같은 래플리컨트를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인간들은 서로를 미워하며 총구를 겨누고 먹을 것을 빼앗고 사기를 친다. 사기를 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네.


래플리컨트를 때려잡는 데커드는 인간이지만 냉정하고 차갑다. 그런데 정말 데커드는 인간일까. 이는 좀 더 긴 감독판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는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인간은 인간에게 칼과 총을 겨누나, 그것이 설령 생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왜 복제된 인조인간이 어떤 면에서 인간을 넘어서는 인간다움을 지니고 있을까. 이 명제는 요즘 넷플에서 하는 ‘플루토’에서도 너무나 잘 나타난다. 절찬리 방영 중이니.

이 투샷은 내가 손꼽는 장면


내가 손꼽는다 해서 뭐가 달라지는 건 없지만


아무튼 해리 포터가 나올 시기 이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을 영화 속에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 80년대에 나온 ‘듄’이 그렇고. 그러다가 2천 년도로 접어들며 그래픽의 수준이 정말 고도로 발전을 함으로 영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자본과 물량으로 충당이 안 되는 부분은 그래픽으로 대체가 되었는데 자연스러웠다. 바로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이 그랬다. 스타트를 끊었다. 스파이더맨, 매트릭스 같은 영화들이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고 왔다. 매트릭스의 어떤 장면은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몹으로 재현하는 현상이 일어났고, 스파이더맨 2는 세계에서 한국이 첫 상영을 해버렸는데, 그때 자정에 시작하는 영화를 예매했는데 극장이 빈자리가 없었고 보는 동안 박수가 터져 나오고 모르는 사람들이 전부 한마음이 되어서 토비 맥과이어를 응원했다. 그 열차씬에서. 모든 스파이더맨의 전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멋진 장면이 아닐까.


그때 그 자리에 우리도 같이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영화가 끝나니 새벽 3시였는데 모두가 즐겁게 극장을 나오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전부 스파이더맨의 이야기 삼매경이었다. 그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재미다. 지금은, 음 지금은 코로나 이후 극장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극장에 가더라도 분위기가 썰렁하다. 극장은 극장의 재미가 있는데 극장의 재미가 빠진 극장은 그냥 단어로써의 극장일 뿐이더라고.


해리 포터 1, 2편은 론 위즐리의 귀여움을 보는 재미가 있다. 정말 너무, 말도 안 되게 귀엽다. 루퍼트 그린트보다 론 위즐리가 더 어울리는 론이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귀여움이 과즙처럼 마구 터져 나온다. 유튜브 누군가도 나와 생각이 비슷한지 론의 귀염 터지는 영상을 올려놨다. https://youtu.be/1-JKP2gp80k?si=FRrob4k5ecWEu5Kl


하지만 아이들은 한 해 한 해 기가 막히게 커 간다. 그만큼 어른들은 기막히게 늙어간다는,, 해리 포터가 중반부를 넘어서고부터는 그래픽 같은 것이 없다면 론 위즐리는 그냥 아저씨다. 루퍼트는 벌써 결혼도 하고 해리 포터 이후 나오는 영화가 드라마에서는 늘 살이 쪄 있는 모습이다. 친근한 게. 근래에 루퍼트가 나온 시리즈가 미드 ‘서번트’ 시리즈였다.


나의 취향에 정말 딱 맞는 시리즈다. 샤말한 감독이 제작 연출을 맡았다.

https://youtu.be/rBTEUPAkGGE?si=ZWioa3FQCwtcbgdF


이 기괴함, 이 어두움, 이 음험함, 이 찝찝함, 이 답답함, 이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공기의 압박감이 드는 시리즈 ‘서번트’는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연출과 제작에 참여를 해서 샤말란 표 공포를 시리즈 내내 느낄 수 있다.


등장인물이 몇 되지 않는데 미스터리 공포를 너무나 잘 끌어낸다. 매회 장면 장면마다 무서운 메타포와 공포의 은유가 가득해서 뭘까 뭘까 하면서 조마조마하며 보게 된다.


잘 나가는 기자와 일류 요리사로 터너 부부의 집에 보모, 즉 서번트로 리앤 그레이슨이라는 18살의 소녀가 들어오면서 알 수 없는 음험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이야기다.


이 리엔 그레이스라는 소녀는 그 또래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소녀다. 모든 것이 미스터리와 수수께끼로 둘러싸인 소녀다. 이 시리즈는 매 화면마다 메타포를 장치해 놨다. 리엔이 처음 집으로 오는 날 소녀는 현관 밖에서 집주인 터너 부부- 도로시가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서 있는다. 그리고 들어오라고 했을 때 집으로 들어온다. 마치 뱀파이어처럼.


조증이 심한 도로시에게 과한 환영을 받은 리엔이 온 이유는 터너 부부의 아기를 돌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아기를 보여주는데 안고 있을 때에도, 눕혀 놓았을 때에도 아기는 울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리엔의 표정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마치 울지 않는 아기처럼 무표정과 좀 더 무표정일 뿐이다.


도로시가 조증이 심한 이유는 아기가 태어난 지 13개월 만에 죽고 만다. 그 때문에 도로시는 거의 미쳐가고 있을 때 인형 요법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실은 아기는 인형인 것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리엔은 마치 인형을 진짜 아기처럼 대한다.


이 시리즈를 보면 이 집도 이상하지만 터너 부부도 리엔도 그리고 도로시의 오빠인 줄리안(론 위즐리다)도 도대체 누가 정상이고 누가 정신 이상자인지 보다 보면 헷갈리게 해 놨다. 나이트 샤말란이 연출과 제작에 관여했다 하니 정말 기가 막히게 만들어놨다.


사이코 심리 스릴러 같은데 오컬트 호러 같으면서 무서운 공포 영화인가 하면서 보게 된다. 리엔이 와서 인형을 아기처럼 대한 후 인형이 사라지고 진짜 아기가 방에 들어와 있다. 터너는 그때부터 미쳐버린다. 리엔이 도로시를 위해 아기를 훔쳐 온 것인가 의심을 하며 리엔 대해서 알아보는데.


이런 긴장감과 기이한 음악이 한몫을 한, 피부 밖으로 실밥 하나가 나왔는데 뽑으면 계속 딸려 나오는 것 같은 기기괴괴한 취향이 맞으면 저격당하는 ‘서번트’ 시리즈다. 이 시리즈 내내 론 위즐리가 나온다. 와인에 절어 있는 배불뚝이로 나온다. 초반에는 별 비중이 없는 것 같은데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비중이 올라가고 기기괴괴해져 간다. 시리즈 3인가? 론 위즐리의 야스장면도 나온다. 그렇게 귀여웠던 론 위즐리가 어느새 자라서 야스를 하다니. 론이 야스를 하다니! [내가 고자라니 버전으로 한 번 질러봄]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귀여움 하면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의 막내 써니다. 볼 때마다 마음이 발롱 발롱 했다. 전 시리즈 내내 미쳐버리는 줄. 시즌 1에서 써니는 아가아가했는데 시리즈가 거듭날수록 조금씩 커 간다. 시리즈와 함께 써니도 커 가는 모습이 귀여움 그 위의 말이 있다면 당장 말하고 싶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이라는 우울하고 불행한 모험이 지속되는 가운데 서도 그 불행을 잊게 만드는 행복 덩어리 써니는 일종의 전사, 우리 쪽의 비밀병기로 시즌 1의 갓난아기에서 벗어난 써니는 시즌 2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시즌 3에서는 3남매 중 가장 활약을 많이 한다는 느낌을 준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언니와 오빠를 위해 대형 트럭을 운전해서 올라프의 소굴에서 탈출한다. 저 작은 손으로 기어를 넣고(게다가 수동기어다) 클러치도 밟고 붕 5단으로 밟을 때 써니의 표정을 보라. 불행의 연속이지만 잊게 만든다.

다음 장면은 써니가 꼬마 늑대 인간 차보로 변신했을 때다. 악의 무리들이 언니 오빠를 괴롭히려 할 때 써니가 차보로 변해 캬악 하며 덤벼드는데,,, 정말 너무 귀엽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에 나오는 남자들은 알라딘에 나오는 남자들처럼 대체로 바보 거나 덜 떨어지거나 멍청하다. 올라프를 비롯해서 그의 졸병들도, 은행가인 포, 에피소드에 나오는 남자들은 전부 멍청하게 나온다. 대신에 여자들과 아이들은 현명하고 용감하다. 우리나라 규방문화와도 흡사하다.


이 영화에 나오는 바보 같은 악당들은 파시스트의 모습을 많이 보인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다오.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괴벨스의 이 파시스트적인 논리를 올라프가 보들레오 아이들의 재산을 뺏기 위해 매 회 에피소드마다 펼친다. 올라프의 파시즘에 착하고 정의롭지만 멍청한 어른들이 거기에 휩쓸린다. 그래서 아이들을 화형에 처하려고 하거나 사자 우리에 던지려고도 한다. 거짓 뉴스에 속아서 마녀사냥에 동참한다.


파시즘에 젖은 인간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신나게 사람을 죽인다. 늘 웃고 있어서 몰랐던 속은 썩어 문드러져 결국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들고,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을 앞에 두고 한숨짓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갑갑하고 답답한 마음은 불면을 불러들이고 조그만 화면 속에서는 아직도 죽은 사람을 씹어대고 있다. 이 모든 게 한 문장에서 시작을 한다  그들은 변질된 공공성으로 그것이 마치 최고의 선이자 앎의 최선이라 여기고 한 문장으로 시작된 사람 죽이기는 무서울 정도로 꽃을 피운다.


위험한 대결에서 저쪽 편이 힘을 가질 때는 우리 편은 속수무책으로 억울하게 당하거나 비참하게 죽음을 당한다. 반면에 우리가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는 저쪽 편은 정의를 부르짖으며 당당하게 그릇됨을 주장하고, 힘을 가진 우리 편은 저쪽 편의 부당함을 처리할 만큼 힘을 내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방법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편은 힘을 가지던, 힘을 가지지 못하던 늘 당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파시즘에 순수함으로 방어를 하는 사람이 바로 막내인 써니다. 시즌 3에서 써니는 본격적으로 적의 소굴에 남아서 스파이로 활동한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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