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베이터 - 창의적인 삶으로 나아간 천재들의 비밀
월터 아이작슨 지음, 정영목.신지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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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와 인터넷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발명으로 꼽히지만 그것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다락방이나 차고에서 발명가 한 명이 홀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인물을 잡지 표지에 싣거나 에디슨, 벨, 모르스와 함께 만신전萬神殿에 모시기도 어렵다. 사실 디지털 시대의 혁신은 대부분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 '머리말' 중에서

 

 

인터넷과 컴퓨터의 역사

 

책의 저자 월터 아이작슨2012년 미국 <타임>지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바 있고 현재 애스펀 연구소의 CEO로 재직 중이다. 지난 23년간 <타임> 편집장으로 활동했고 CNN의 CEO를 역임했다. 또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와 '라디오 프리 유럽' 등 미국의 국영 국제 방송을 관장하는 미 방송위원회의 회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특히, 스티브 잡스의 전기傳記 작가로 유명세를 얻었다.

 

그는 디지털 혁명의 개화기에 동참한 수많은 혁신가, 해커, 천재, 그리고 괴짜 등의 스토리들을 소개하면서 혁명은 한 사람의 힘이 아닌 여러 사람들의 협업에 힘입었음을 강조한다. 물론 이중엔 창의력이 뛰어나고 천재성이 돋보이는 인물도 분명있다. 그럼에도 그는 팀워크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계사는 위인들의 전기에 지나지 않는다"

- 토머스 칼라일

 

흔히 역사는 승자들을 위한 기록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TV 방송의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 개그맨이 외치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말이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사실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쓰여지는 역사의 주인공이 바뀔 수도 있는 법이다.

 

컴퓨터는 누가 발명했을까?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실화를 소개한다. 2차 세계대전 때 그는 영국의 암호해독팀을 운영하며 당시엔 해독 불가능했던 독일의 '에니그마' 해독에 몰두하면서 자동 해독기계를 개발한다. 그의 공로는 종전이 최소 3년은 앞당겨졌다고 평가받는다. 이 영화의 홍보 멘트에는 현대식 컴퓨터의 최초 발명가로 앨런 튜링을 소개하고 있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한 장면

 

책은 디지털 혁명의 역사를 수십 명의 혁신가들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여기엔 빌 게이츠와 폴 앨런,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등 널리 알려진 인물들도 있지만 생소한 이름들도 많이 나타난다. 저자는 디지털 혁명이 전개된 모든 과정을 컴퓨터, 프로그래밍, 트랜지스터, 마이크로칩, 인터넷, 개인용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 혁신 기술 중심으로 구분해 해당 기술이 탄생한 순간에 혁신가들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떻게 일했는지를 함께 소개한다.

 

배비지의 차분差分기관에서 트랜지스터, 최초의 컴퓨터 ENIAC, 실리콘 밸리에서 월드와이드웹으로 이어져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혁명은 가히 놀랍기만 하다. 이런 디지털 혁명을 이끈 창의적인 천재들은 과연 누구일까? 전기 작가의 특징이기도 한 세밀한 화법이 돋보이는 이 책을 통해 디지털 혁명을 선도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에이다 러브레이스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1840년대에 컴퓨터 프로그래밍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녀는 위대한 시인 바이런 경의 딸인데, 1833년 5월 열일곱 살에 영국 왕실에 첫선을 보였다. 아버지의 낭만적인 정신을 진정시키려 어머니는 그녀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이런 결합 덕분에 에이다는 스스로 '시적 과학'이라 부르는 것을 사랑하게 됐다.

 

그녀는 궁정 사교파티에서 마흔한 살의 홀아비 찰스 배비지를 만났다. 그는 이미 런던 사교계에서 과학과 수학으로 유명인사였다. 그의 활기찬 살롱에 모이는 손님들은 귀족과 귀부인들을 비롯해 작가, 시인, 기업가, 배우, 탐험가, 식물학자, 과학자 등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혁신적인 기계를 선보였다. 거대한 기계 계산 장치로 다항多項 방정식을 풀 수 있는 차분差分기관이었다.

차분기관은 돌려서 어떤 숫자에도 맞출 수 있는 원반이 달린 수직 축을 사용했다. 이는 개념상 경이로운 장치였다. 배비지는 차분기관으로 1,000만까지의 소수素數를 계산하는 방법을 알아낸 뒤, 이후 '해석기관'을 만들었다. 자카르 방직기와 천공 카드를 사용해 명령을 무제한으로 입력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냈지만 영국 정부는 그 가치를 몰랐다. 이 기계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사람은 에이다가 유일했다.

 

1842년 에이다는 해석기관을 설명해낸 이탈리아 공병 장교 루이지 메나브레아의 프랑스어 논문을 번역했다. '번역자 주석'이라 불린 이 글은 원문의 2배가 넘었고 원문보다 너무 유명해져 그녀를 컴퓨팅 역사의 우상 같은 존재로 만들었다. 그녀는 주석에서 100년 뒤 마침내 탄생할 컴퓨터의 네 가지 개념을 분석했다.

 

첫째, 무한하고 변화 가능한 일련의 작업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

 

둘째, 해석기관의 연산이 수학과 수로만 제한할 필요가 없다

셋째, 오늘날의 컴퓨터 알고리즘 작동 방식을 단계별로 파악했다

넷째, 기계는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할 수 없다

 

 

 

 

책은 디지털 혁신을 이끈 천재 수백 명에 대한 '전기'다. 첫머리는 이렇게 에이다 러브레이스로 시작해 구글 이야기로 끝난다. 배비지의 차분기관이 트랜지스터, 최초 컴퓨터 에니악, 월드와이드웹으로 전개되어 마침내 구글과 페이스북을 만들어내기까지 혁신을 선도한 천재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앨런 튜링

 

1638년 그의 가문은 준남작 작위를 받았다. 그러나 서열상 후손인 사람들은 땅도 재산도 없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성직자로, 아버지는 인도에서 하급 행정관으로 일했다. 그는 인도에서 잉태되어 부모가 휴가로 고국에 돌아와 있을 때 런던에서 출생했다. 그와 그의 형은 퇴역 육군 대령 부부에게 맡겨졌다. 이후 귀국한 어머니와 몇 년 함께 살다가 열세 살에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 장학생이 되어 1931년에 입학해서 수학을 공부했다. 존 폰 노이만<양자 역학의 수학적 기초>는 그의 인생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존 폰 노이만은 헝거리 태생의 수학자로 컴퓨터 설계의 선구자였다. 1936년 9월, 스물네 살인 튜링은 바다를 건너 미국 프린스턴의 수학자 알론초 처치 밑에서 공부했다. 

 

전쟁은 과학을 동원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투석기를 제작했듯이 20세기에 들어 테크놀로지의 최고 공적의 대부분은 군부에 의해 탄생했다. 컴퓨터, 원자력, 레이더, 인터넷 등이 그것이다. 영국은 런던에서 87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도시에 독일의 암호를 풀기위한 테스크포스 팀을 가동하고 있었다.

 

튜링은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쓴 후 프린스턴에서 암호와 암호학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독일과의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암호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존 폰 노이만은 프린스턴에서 튜링의 멘토였다. 1938년 봄 튜링이 박사 논문을 마무리할 무렵 폰 노이만은 튜링에게 조교 자리를 제안했지만, 비애국적인 일로 느껴져서 케임브리지 연구원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 독일 군사 암호를 해독하는 영국의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튜링 팀은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후 정보장교들이 노획한 독일 암호기를 기초로 애니그마 암호를 몇 가지 해독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고, '봄브'라는 별명의 더 진화된 해독 기계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1940년 8월, 투링 팀은 작동 가능한 봄브를 두 개 갖추게 되었고, 암호 메세지 178개를 풀 수 있었다. 종전 무렵엔 거의 200개로 늘었다. 당시 이들은 이진법을 사용했다.

 

튜링은 동성애자였다. 그는 기숙학교 시절 이를 스스로 느꼈던 것이다. 암호 해독팀에서 함께 일했던 연구원 여성과 교제를 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이 사실을 고백함으로써 결별하기도 했다. 그는 맨체스터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 열아홉 살의 부랑자를 만나 사귀었는데, '지독한 음란 행위'라는 죄목으로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그의 생은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1954년 6월 7일,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깨물고 자살했던 것이다. 애플사의 로고가 바로 먹다 남은 사과이다.

 

 

 

 

 

벨 연구소, 그리고 트랜지스터

 

맨해튼 본사에 공간이 부족해지자 벨 연구소의 대부분이 뉴저지 주 머리힐의 80만 제곱미터 규모의 신사옥으로 이전했다. 머빈 켈리를 비롯한 운영진은 신사옥을 연구 분야에 따른 개별 건물로 구분하지 않으면서 대학 캠퍼스의 분위기를 내려고 했다. 이들은 우연한 만남을 통해 창의성이 배가된다고 믿었다.

 

"건물과 건물은 부서 간의 지리적 단절 없이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 긴밀한 접촉이 가능하도록 연결되었다" - 당시 어느 중역의 기록에서

 

여러 개의 복도는 축구장 두 개보다도 긴 길이로 설계되어 다양한 재능과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섞여 우연한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 전략은 그로부터 70년 후 스티브 잡스애플의 새로운 본사를 설계할 때 그대로 적용하게 된다. 연구원들은 연구소의 이곳저곳을 거닐다 맞닥뜨리게 되는 임의의 아이디어를 태양전지처럼 흡수했다. 외바퀴 자전거를 타고 공 세 개를 저글링하면서 기다란 테라초 복도를 오가는 연구원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하는 괴짜 정보이론가 클로드 섀넌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에 대한 익살스러운 메타포였다.

 

트랜지스터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이다.기다란 복도를 오가며 전문가들과 마주치고 양자 역학을 이해하는 연구원들과의 연구 모임을 갖고 카페에 앉아 전화 신호의 장거리 전송 방법에 정통한 엔지나어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그런 환경이 바로 중요한 요인이었다. 벨 연구소는 혁신의 중심지였다. 트랜지스터 외에도 컴퓨터 회로, 레이저 기술, 이동 전화 분야를 개척했다. 하지만 이런 발명품을 활용하는 데 비교적 서툴렀다.

 

 

벨 연구소의 존 바딘, 윌리엄 쇼클리, 월터 브래튼(좌로부터) 

 

 

인텔의 방식

 

실리콘 밸리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된 인텔의 문화는 혁신의 문화이기도 했다. 이는 세 명에서 비롯됐다. 로버트 노이스는 외향적인 사람, 고든 무어는 내향적인 사람, 앤디 그로브는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필코 사의 딱딱한 위계질서를 경험한 노이스는 보다 개방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은 직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보다 빨리 도출되고 전파되고 개량되고 적용될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직원들이 명령 계통을 거칠 필요가 없어여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관리자와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에는 거리낄 것 없이 직접 가서 이야기하면 되었다" - 테드 호프, 인텔의 엔지니어

 

"노이스는 무수히 많은 계층과 등급으로 이루어진 데다 최고 경영자와 부사장들이 마치 기업 내 왕족 또는 귀족이나 되는 양 행동하는 동부의 기업 체계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톰 울프

 

노이스는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인텔에서 명령 계통 자체를 의식적으로 멀리함으로써 직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모두 다 기업가 정신을 가지도록 강제할 수 있었다. 회의 중 분쟁이 일어나 해결되지 않는 경우에도 그로브는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노이스는 고위급 간부들이 평직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대신 직원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게 두는 것을 좋아했다.

 

책임이 지워진 젊은 직원들은 혁신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톰 울프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간혹 난관에 부딪힌 직원이 "노이스를 찾아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타개책을 의논하려고 하면, 노이스는 고개를 숙이고 눈빛을 반짝이며 경청한 다음, '다음과 같은 지침을 줄 수 있네. A를 고려하고, B를 고려하고, C를 고려하게'라고 말하고는 영화배우 개리 쿠퍼를 닮은 특유의 미소를 띠고 이렇게 결론지었다. '하지만 내가 대신 결정을 내려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네. 이건 내 문제가 아니니까'"

 

이처럼 다른 성격을 가진 노이스, 무어, 그리고 그로브엿지만, 이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바로 인탤을 혁신실험 정신, 기업가 정신이 번영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성공은 안주를 낳고, 안주는 실패를 낳는다. 결국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노이스와 무어가 편집광까진 아니었을지라고 결코 안주한 적은 없었다.

 

 

 

 

현대는 협업의 시대

 

책은 디지털 혁신을 이끈 각각의 이노베이터들을 조망하면서 이들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무엇이 이들을 창의적인 인재로 만들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마치 군웅할거 시대의 무수한 영웅들의 무용담을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저자가 우리들에게 전하려는 메세지는 단 하나 '협업의 중요성'이다. 

각기 다른 개성을 자랑하는 책속의 인물들은 '협업'을 통해 현재의 성공을 거뒀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지금의 디지털 혁명은 특정 개개인이 일군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협업 하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임을 강조한다. 이미 우리들은 창조와 혁신은 이미 있어 왔던 것들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새로 보완한 편집임을 알고있다. 이는 고 스티브 잡스가 여실히 보여주었다.

 

 

실제로 천재성을 갖춘 개인의 능력은 아이디어를 실현해낸 기술자들과 이를 시장에서 유통시키는 탁월한 사업가를 만날 때 더욱 빛난다. 스티브 잡스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면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엔지니어가 구체적인 장치로 구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빌 게이츠는 폴 앨런이 있었기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고, 현재의 구글도 세르게이 브린과 레리 페이지의 협업 위에 세워진 거대한 성城일 것이다. IT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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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자영업 트렌드 2016
허건 지음 / 미래의창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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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시장은 생계형 창업 시장이며 부가가치가 낮은 시장이라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자영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실핏줄이다. 자영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인구만 1,000만 명이 넘는다. 시중 은행의 개인 사업자 대출은 2015년 10월 현재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자영업자의 가계 대출도 상당 부분 아파트 담보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자영업자가 부실화되면 금융기관의 건전성 문제와 아파트 가격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 '프롤로그' 중에서

 

 

자영업, 이젠 남보다 반 발 앞서가는 능력이 요구된다

 

책은 한 자수성가 기업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시골 빈농貧農의 9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뒤늦게 대학에 입학, 서른 살 때 회사에 취직했지만 IMF 외환위기로 몸담은 회사가 부도 나자 자본금 5천만 원으로 1998년 창업을 했다. 현재 그의 회사는 자산 총액 약 7,700억 원이 넘는 부동산 개발회사로 성장했다.

 

책의 저자 허건 컨설턴트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자수성가의 주인공 문주현 회장의 독특한 사고 방식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그는 1세대 국내 부동산 개발 사업자로, 상가 투자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정평이 난 인물이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는 단순하게 대답했다. "남들보다 반 발만 앞서면 된다"

 

유명 건설사가 아파트, 오피스텔, 상가 등의 부동산을 짓기만 해도 팔리던 시대는 끝났다. 부동산도 일종의 상품이므로 이젠 차별성과 독특함을 갖춰야 한다. 문 회장의 말에 의하면, 부동산 개발 사업자는 토지를 매입해 적정 설계를 바탕으로 인허가를 받고 금융을 일으켜 건물을 짓고 판매를 위한 마케팅을 수행하는 모든 과정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 즉 남보다 반 발 앞서가는 혜안이 필수적인 것이다.

 

그는 장기간 팔리지 않아 골머리를 앓던 고양시 삼송지구 내의 땅을 LH공사로부터 매입해 총 5,000여 실의 오피스텔과 업무시설을 분양하는 M 프로젝트를 최근에 시작했다. 땅 값만 무려 2,850억 원인 거대한 프로젝트의 인근에선 유명 유통업체 신세계가 초대형 복합쇼핑몰을 건축하고 있는 중이다. 문 회장은 바로 이를 내다보고 과감한 투자를 실행했던 것이다. 최근의 부동산 시장 분위기는 전보다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의 행보에 무척 관심이 간다.

 

"다른 모든 선수들은 퍽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지만, 나는 그다음에 퍽이 튀어갈 곳으로 미리 달려갔다" - 웨인 그레츠키, 전설적인 북미아이스하키 선수

 

 

 

 

성실성만으로 성공하던 자영업 시대는 끝났다

 

어느 음식점의 사장을 소개하려 한다. 물론 그는 성공한 자영업자이다. 사십대 중반으로 서울 주택가 상권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연간 순이익이 2억 원이 넘지만, 그는 하루 종일 매장에만 매달려 있지 않고 오전 11시쯤 출근해서 저녁 8시 정도면 퇴근하는데 이마저도 본인이 조절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매장 운영을 항상 확인하며 운영 시스템 개선에 몰두한다.

 

한국 자영업자의 월 평균 수입은 약 200만 원 안팎이다. 반면 그는 최소 400, 최대 1,000만 원의 순이익을 내는 4 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남들은 한 개 매장에 집중해도 순이익을 500만 원 넘기기가 힘든데, 어떻게 그는 이런 결과물을 창출할 수 있었을까? 그의 비결을 파악해서 자영업 창업에 활용하면 되겠다.

 

그는 학교 공부에 소질이 없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우연한 기회에 식당에서 주방 일을 하게 됐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이후 여러 식당을 전전하며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됨에 따라 창업을 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10년 정도 주방에서 일하며 주방장까지 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돈이 없어 사촌 누나에게 동업을 제안해 2천만 원으로 작은 분식집을 창업했다. 입지가 좋지 않아 처음엔 고전했지만 점차 그의 음식 실력과 누나의 서비스 능력이 발휘되면서 점점 장사가 번창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식당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본격적인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평소 배달을 다녀 잘 알던 지역을 살펴본 끝에, 괜찮은 자리를 발견한 그는 이곳에 전문 음식점을 출점하기로 맘 먹고 고민 끝에 웰빙 음식인 추어탕 전문점을 시작했다. 점점 단골 손님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시련이 찾아왔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무려 3배나 인상 요청해 온 것이다. 확보한 단골을 잃을 수 없어서 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는 매장에 두 가지 변화를 주었다. 하나는 영업시간을 24시간으로 변경했다. 다음으로는 메뉴를 보완했다. 주력 메뉴인 추어탕은 점심 손님이 대부분이었기에 저녁 시간과 겨울철 매출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사 외에 주류 매출이 가능한 감자탕을 개발해 새로 추가했다. 단골손님들도 반응이 무척 좋았다. 이렇게 1년이 지나자 충분히 인상된 월세를 커버할 수 있었다.

 

매출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때 직장에 다니던 둘째 형이 회사를 그만두고 이것저것 하다가 잘 되지 않자 매장을 하나 더 출점해서 동업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는 형과 함께 두 번째 매장을 확보해 이미 검증된 추어탕과 감자탕을 주메뉴로 승부를 걸었다.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하루는 알고 지내던 부동산 중개 사무소에서 첫 번째 추어탕 매장 앞에 좋은 조건으로 가게가 나왔다고 연락이 와 바로 계약했다. 그는 주변 상권과 고객층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기에 다른 메뉴의 출점을 계획했던 것이다. 많은 조사 끝에 보리밥집을 개업했다. 초기엔 개업 효과로 매출이 잘 올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매출이 꺾이더니 30% 이상 감소해 겨우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었다. 이때 한 직원의 아이디어로 생선조림이 보리밥과 잘 어울릴 수 있다고 판단해 이를 신메뉴로 출시했다. 반응이 좋았다. 현재는 신메뉴가 총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어느 날 또 부동산 중개 사무실에서 권리금이 싼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매물로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추어탕, 보리밥 매장과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바로 계약해 낡은 시설을 개보수하고, 음식 원재로의 질과 양을 모두 개선했더니 예전보다 매출이 30~40% 향상되었다. 비록 대박은 아니지만 월 400~500만 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인근 지역에 자신의 매장이 몰려 있기 때문에 관리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창고와 주방 일부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공간 활용도도 매우 높다. 특히, 인력 활용이 압권이다. 한 매장에서 한두 명의 갑작스런 결원이 생기더라도 다른 매장 직원의 지원 근무로 이를 커버할 수 있었다. 직원은 총 25명으로 좀 많은 편이기에 이게 가능했다. 아울러 각 매장에 점장을 두고 해야 할 일을 매뉴얼로 준비해 두었기에 자영업 사장은 매장에 반드시 상주할 필요가 없었다.

 

성공한 자영업 사장의 연 소득은 직장인 연봉의 4~5배인 2억 원이 넘는다. 15년 전 사촌 누나와 각자 1,000만 원씩 투자해 소박한 분식점으로 시작한 그는 10년간의 주방직원 생활로 단련한 후 10년간의 창업과 안착 과정을 거쳐 5년간의 사업 확장과 성장을 통해 모두가 부러워 할 성공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25년간 식당이라는 한 우물만 팠다. 이젠 법무사인 큰 형도 은퇴 후 그와 함께 식당 동업을 꿈꾼다고 한다. 어릴 적 공부를 못해 부모의 속을 썩혔던 '미운 오리 새끼'과 화려한 '백조'로 거듭 태어난 셈이다.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새로 시작하는 사람은 확실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독한 창업이 요구된다

 

1년도 되지 못해 폐업이 속출하는 열악한 자영업 환경에서도 지역 상권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매장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자영업의 창업과 폐업이 빠르게 돌아가는 악순환 구조 속에서도 상권을 장악한 이런 매장들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선 단기간의 준비로 대박을 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앞서 살펴본 성공한 자영업자의 사례처럼 제대로 된 준비와 창업이 필요함을 깨달을 수 있다.

 

3단계 준비 과정

 

적성~ 적성에 맞아야 즐겁게 일한다

교육~ 시계 수리점 사장도 아들이 학원에서 기초교육을 받은 후 물려준다

수련~ 현장에서 몸으로 체득해야 한다

 

'세부 업종', '상권 및 입지', 그리고 '사업의 콘셉트'는 함께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는 법이다. 즉 사장의 신념과 아이템을 살릴 수 있는 업종, 인구통계와 고객 동선이 적절히 고려된 상권, 가시성과 접근성이 조화를 이룬 입지, '고객이 이 매장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사업의 콘셉트 등은 자영업의 전략적 마케팅 핵심 요인이다.

 

 

 

이 책의 저자 허건은 부모님이 평생 시장에서 일해온 자영업자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시장의 가게들이 그의 놀이터였다. 전통시장의 작은 옷 가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영업의 꿈을 키웠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경영컨설턴트로 일하며 삼성그룹 계열사, 외국계 금융기관 등을 대상으로 경영컨설팅을 수행했다. 이후 자기 사업에 대한 꿈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트렌드라는 게 있다. 자영업에는 이것이 더 빨리 진행된다. 이미 형성된 시장의 판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레드오션이라는 자영업 시장에 금이 가는 부분이 생기면 상대적으로 좀 더 수월하게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발생하지 않을까? 따라서 시장의 판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것이 바로 트렌드다.

 

자영업 시장에서는 변화가 빠르게 일어난다. 경쟁자들의 구도가 빡빡하게 꽉 짜인 속에서 미세한 변화로 인해 균열이 발생하는 상황. 그 틈새에 기회가 있는 것이다. 자영업 사장님이 주목해야 할 외부 요인은 바로 그 변화의 모습, 트렌드다. 주야장천晝夜長川 정신력과 성실성만으로 자영업을 하던 시대는 이제 종말을 맞았다.

 

우리 모두 인지하다시피 자영업의 가장 큰 특징은 창업과 폐업의 발생 빈도이다. 즉 1년에 90만 명이 넘는 개인 사업자의 창업과 80만 명 이상의 폐업 발생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루에 2,500명이 시장으로 신규 진입하고 반대로 2,200명 넘게 가게를 부수는 현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상권에선 가게를 부수고 새로 인테리어를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자영업자는 트렌드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크게 두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는 시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단계다. 두 번째는 그 일이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인해서 실행에 옮기는 단계다. 첫 번째 단계가 트렌드의 감지와 발견에 해당한다면, 두 번째 단계는 트렌드를 검증하고 실행하는, 즉 실행의 개시(진입)와 종료(출구)를 결정하는 단계다. 

 



일단 트렌드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면, 이미 진입 시점에 언제 빠져나올지에 대한 출구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일단 해보고 상황을 봐가면서 출구 전략을 세워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트렌드 아이템은 늘 금방 사그라질 가능성이 크다. 미리 준비하고 있는 자가 한발 빠르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최근의 트렌드 아이템은 '성장기'가 매우 짧아 수백개의 매장이 금방 생겨나므로 상투를 잡을 수도 있다. 진입하려면 '도입기'에 창업을 하는 게 현명하다.

 

출구 전략

 

1. 매도를 통해 신규 임차인에게 사업을 양도한다~ 권리금 회수가 핵심

2. 동일한 자리에서 업종만 갈아탄다~ 시설투자에 대한 회수 검토

 

 

현재의 자영업, 구조조정이 진행될까?

 

이에 대해 자신있게 '예'라고 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자영업의 규모는 꾸준히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지금의 규모가 유지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자영업에 해당되는 소매와 유통 부분에서 큰 변화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즉 모바일 채널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또 인구 감소는 매출에 있어서 분명한 악재이다.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분석해보면 매출 증대를 통한 수익의 증가가 힘든 판에 비용은 점점 늘어가는 추세이다. 임대료, 재료비, 인건비 등 3대 주요 비용 모두 상승 추세이다.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오를 게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대형 할인업체처럼 고객을 유입하기 위한 '덤핑 세일'을 할 수도 없다. 소비자는 이미 싼 가격에 길들여져 있고, 같은 가격이면 어디에서 구매해야 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현명한 스마트폰 때문이다.

 

점심 식사 후 직장 동료들과 어디에서 커피를 마시는가? 지금도 스타벅스나 엔젤리너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사실 이 책에 관심도 없을 것이다. 나는 이미 1,000원 커피에 익숙해 있다. 동료들도 대부분 이 가격대의 커피를 선호한다. 이 마저도 아까운 사람은 사무실에서 인스턴트 '스틱 커피'를 즐긴다. 이것이 트렌드다.

 

결과적으로 자영업자들은 수익성 때문에 스스로 이를 포기해야 되는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향후 5년 동안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성실함만이 생존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역량을 배양하는 것은 기본이고, 외부에 대한 시야를 계속 넓혀가야 한다.

 

시장에 대한 촉을 더욱 가다듬어야 한다. 고객의 니즈 변화나 경쟁 동향을 감지할 수 있는 촉을 통해서 경영을 개선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시류에 맞게 트렌드를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소비자가 줄어드는 시대에는 소비자가 일부러 찾아오도록 만드는 궁극의 경쟁력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소비자를 직접 찾아 나서는 전략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이제는 카페나 샌드위치 매장 사장도 신규 고객 개척을 위해 제안서를 써야 하는 시대가 됐다.

 

 

청년 장사꾼들

 

창업이란 궁극적으로 스스로 고객을 창출하는 활동이다. 고객을 창출하려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특정 기술을 기반으로 가치를 만들려면 젊은이들에게는 매우 벅찬 일이다. 스티브 잡스, 마크 저그버그, 빌 게이츠 같은 스타트업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집에서 몇 번 요리했더니 먹을 만하다고 음식점 창업에 나설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IT 창업에 비해 생계형 창업이 좀 쉽다고 여기는 게 일반적이라 요즈음은 청년 장사꾼들의 등장이 많은 편이다.

 

청년들의 자영업 형태

 

1. 독립점

2. 프랜차이즈 가맹점

3. 청년 상인 조직

 

청년들이 자영업 창업에 나서면 성공 사례들이 좀 더 늘어날 것이다. 제2의 장진우, 청년장사꾼은 물론이고 조용하게 매장을 확장해나가는 청년 상인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들로 인해 어두컴컴하던 골목이 환해지고 개성과 문화가 살아 있는 지역으로 되살아날 수도 있다. 전통시장의 활력이 살아나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면서 고객층이 넓어질 수도 있다.

 

창업은 청년들에게 취업 이외의 진로를 제시한다. 궁극적으로는 현재의 생계는 물론이고 노후의 삶까지도 책임지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회사 생활에서는 얻기 힘든 자신만의 자아를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비록 처음에는 생계형 자영업으로 시작했으나 그 속에서 제2의 창업 아이템을 찾을 수도 있다.

 

 

자영업 사장, 이젠 O2O도 알아야

 

최근 1~2년 사이에 O2O라는 말이 많이 퍼지고 있다. 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서비스다. 이는 쌍방향이다. 즉 스마트폰으로 고객을 모아서 매장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만이 아니라, 매장에서 스마트폰의 온라인 공간으로 고객을 연결해주는 활동이다.

 

배달앱과 배달 대행앱을 통한 음식점의 온라인화는 고객의 편의성 제고라는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이젠 배달하지 않는다면 어느 고객이 당해 음식점에 주문을 하겠는가? 이렇게 트렌드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소위 '배달의 민족'으로 표현되는 한국식 배달 문화는 이미 동남아 시장에까지 진출했다. 따라서 이를 이용하지 않는 음식점이라면 적극적인 배달 대행앱의 사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소매업의 경우는 이제 O2O 물류 서비스를 필두로 본격적인 물류와 배송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어찌 보면 유통업에서 업체 간의 갈등은 업의 본질적 성격일 수도 있다. 유통은 말 그대로 상품이 흘러서流 통하는通 업인데, 소비자가 구매하는 상품의 양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많이 통하게 되면 다른 한쪽으로는 적게 통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오프라인 매장의 온라인화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다. 첫째, 앞에서도 언급한 배달앱이나 배달 대행앱처럼 자영업 매장에 대한 '주문의 중개 및 물류 대행'이다. 오프라인 매장이 자체적으로 수행했거나 수행하지 못했던 부분을 푸드테크 같은 기업들이 수행하는 영역이다. 둘째, 모바일을 통한 '실시간 개인화 커뮤니케이션' 방향이다. 즉, 모바일을 통해 자영업자와 고객 간에 예전보다 훨씬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다. 이는 오프라인 자영업 매장들이 다양한 모바일 마케팅 도구를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의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중식 시장으로 사람이 몰린다

 

이는 일본에서 파생된 용어라고 말할 수 있다. 집밥과 외식의 중간 형태인데, 슈퍼마켓 등에서 식재료를 구입해 가정에서 조리해 먹는 것을 집밥, 레스토랑이나 식당에서 사먹는 것을 외식으로 나눈다면 슈퍼마켓에서 반찬과 도시락을 구입해 집, 직장, 학교에서 간단한 조리나 가열을 거쳐 먹는 식사 스타일을 가리킨다.

 

편의점 도시락은 매년 몇십 퍼센트씩 성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전국의 도시락 전문 매장은 정체 수준이다. 대형마트와 대기업 계열 식품 제조회사가 중식 시장에 들어오면서 중식 시장뿐만 아니라 집밥과 외식 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소상공인들도 직간접적인 영향권 내에 들어오게 됐다. 중식 시장이 커지면서 집밥, 외식, 중식 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식생활을 두고 경쟁하는 업체들은 더 이상 소상공인들에 머물지 않고 기업화, 산업화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중식 시장 동향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기본기를 재조명하다

 

2014년 기준,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 중 가맹점 수가 50개 이상이면서 창업 비용이 1억 5천만 원 이하인 곳의 매출액을 살펴보면, 김밥 매장 '바르다 김선생'이 1위이고 삼겹살 매장인 '하남돼지집'이 4위이다. 김밥과 삽겹살은 단기 유행성 아이템이 아니다. 그럼에도 높은 매출을 보인다. 이 두 브랜드는 잔기술이 아닌 알찬 기본기로 두각을 나타냈다.

 

'바르다 김선생'은 '죠스떡볶이'의 두 번째 브랜드이다. 종편방송 채널A에서 방영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은 고발 형식 프로그램이었다. 먹는 것으로 장난치는 가게나 업체들을 보면서 우리들은 공분을 금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착한 식당'이 대두되었고, '죠스떡볶이'의 나상균 대표는 이를 새로운 프랜차이즈 사업 기회로 판단했던 것이다.

 

이미 김밥집은 정말 많다. 그는 김밥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 즉 싸구려 식품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프리미엄 김밥이었고, 모든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착한' 식재료를 표방하는 '바른 재료'라는 홍보 문구를 사용, 김밥집이 아닌 김밥 식당으로 재탄생했던 것이다.

 

지금 창업 시장에서는 3,000개가 넘는 외식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이 있다. 이 말의 또 다른 의미는 '3,000가지의 차별화'를 주장하는 브랜드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히려 기본을 강조한 업체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창업 시장에서 크게 부각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자영업의 환경과 여건이 나쁠지라도 자신만의 개성과 강점을 살린다면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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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교과서 퇴계 - 사람 된 도리를 밝히는 삶을 살라 플라톤아카데미 인생교과서 시리즈 5
김기현.이치억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은 김기현(전북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이치억(성신여자대학교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의 글로 구성되었다. 퇴계에게 묻고 싶은 29개의 질문 중 한 질문에 두 저자가 답한 경우도 있고, 한 저자가 답한 경우도 있다. 이 책을 읽고 마지막 30번째의 질문은 여러분 스스로 만들어보고, 이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 ' 이 책을 읽기 전에' 중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퇴계의 정신이 무엇일까?

 

2010년에 설립된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는 인문학 연구 역량을 심화시키고, 탁월함의 추구라는 인문 정신의 사회적 확산을 위해 설립된 공익재단이다. 지난 삼 년 동안 부처, 공자, 예수 등 인류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현자 19명을 오늘의 시점으로 소환하여 그들과 상상의 대화를 나누었다.

 

위대한 현자賢者들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등 인생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물어보고, 그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살펴보는 그런 시리즈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그런 삶의 고민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사유思惟하는 그런 장場인 셈이다.

 

이 책은 이런 플랜 하에 출간된 우리들의 스승 퇴계 이황을 이 시대로 호출한다. 과연 조선시대를 살았던 퇴계 선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삶의 도리를 말하는지 성찰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깊은 사색과 함께 스무 번째 현자가 될 수 있는 행운을 누려보자. 

 

저자 김기현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방문교수(1995~1996), 전북대학교 대학원장(2010~2012)을 역임했으며, 현재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 이치억은 퇴계의 17세손으로, 후손이라는 무게 탓에 어릴 적에는 오히려 유교에 반감을 갖고 '유교문화 퇴출방안 모색'이라는 불순한(?) 의도하에 유교철학에 입문했으나, 현재 '유교에서 없애야 할 것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본 메지로대학교 지역문화학과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유학과에서 공부했고,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학교와 (사)동인문화원에서 교학상장을 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의 됨됨이는 수양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온갖 욕망으로 흐려진 마음이 수많은 번민과 괴로움, 그리고 고통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따라서 일상에서 마음가짐을 마치 샘물처럼 '망ㄱ고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겠다. 깊은 샘의 맑고 청량한 물처럼 내 삶의 기쁨을 가져다 줄테니 말이다.

 

"생각을 조금도 불순하게 갖지 말고 마음을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라"

- 퇴계 이황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김기현 교수가 먼저 답한다. 소위 '퇴계학'의 국내 권위자인 그는 전북대학교 고전독서모임인 '여택회麗澤會'에서 27년 이상 강의하고 있다. 안도현 작가의 말에 의하면 전주천변이나 건지산 기슭을 깡마른 노신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걷는다면 틀림없이 김 교수란다.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족히 두 시간을 걷는다고 한다.

 

김기현 교수

 

 

인간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즉 자신을 존엄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고상하게 살려고 할 것이고, 반대로 덧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은 평생 공허한 삶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를 철학자 미카엘 란트만"모든 인생은 그 자체가 해석학적이다"라고 요약한다.

 

우리 국민들이 제일 자주 사용하는 지폐 천원권의 모델이 바로 퇴계 이황(1502~1571년)이다. 그렇지만 이름 정도만 알 뿐이지 좀 더 구체적인 지식은 그리 많지 않다. 이는 조선시대의 유학을 다소 경시하는 신학문의 교육 탓이 아닌가 싶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나도 퇴계 선생에 대해 깊은 지식이 부족하다. 그저 안동, 도산서원 정도를 떠올릴 뿐이다.

 

공경하고 공경하라

하늘은 밝으신지라

그 명명을 지키기 쉽지 않나니

하늘이 높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강림하여 나의 삶을 

날마다 살피며 여기에 계시니라.

 

이는 <시경詩經>에 실린 시다. 퇴계는 임금에게 "하늘을 외경畏敬"할 것을 강조하며 이 시를 인용했다. 저자는 이를 퇴계의 '경敬'사상이라 부르며 퇴계의 사유와 삶의 중심엔 이 사상이 놓여 있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존재 내부에, 더 나아가 만물 안에 '하늘의 소명'이 있음을 자각하고 삶에 있어서 경건함을 견지했던 것이다. 그가 임금에게 올린 <성학십도聖學十圖>'경재잠敬齋箴'에도 이런 삶의 정신이 나타난다.

 

의관을 바르게 차리고, 시선을 존엄하게 가지며, 마음을 고요히 상제를 우러르듯 하라. 발걸음은 장중하게, 손놀림은 조신하게, 땅도 가려서 밟아 개미두둑까지도 돌아서가라. 문을 나서 사람들을 만날 때는 손님을 대하듯 하고, 일에 임해서는 제사를 받들듯이 하여, 경건하고 조심히 처신하여, 감히 조금도 안일하게 나서지 말라. 입 지키기를 병마개 막듯하고, 삿된 생각 막기를 성문 지키듯 하여, 공경하고 엄숙하게 거동하여, 감히 조금도 경솔하게 나서지 말라.

 

퇴계의 외경 정신은 바깥생활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내면 깊숙히 맑고 순수한 영혼의 원천을 가져야 함을 깨달았기에 평소 영혼을 맑게 하려고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를 위해 그는 마음을 쓸데없는 상념이나 욕망에 흔들리지 않도록 명경지수明鏡止水같은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

 

퇴계가 견지했던 외경 정신은 산만하고 방종한 우리들의 삶을 반성하게 만든다. 오늘날의 인간관계는 이해타산에 치우쳐 가볍기 짝이 없고 또 수박 겉 핥기와도 같아 깊이가 부족하다. 이는 스스로 고결하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책이나 처방으로 우리들은 퇴계의 외경 정신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퇴계 선생의 후손이기도 한 저자 이치억은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즐거운 자족의 삶이어야"한다고 말한다. 그는 삶이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바로 '꿈'이라면서 꿈을 성취하는 것은 삶에서 큰 의미를 지닌 것이라는 설명이다. 즉 꿈을 이루는 삶은 지극히 행복할 것이며, 비록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꿈이 있는 삶은 아름답고 풍요로와 이는 가슴 설레게 하는 마법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꿈''장래의 희망직업'을 동의어로 사용한다. 이에 생동감이 넘치는 진정한 의미의 '꿈'은 사라지고 단지 명함 위에서나 의미를 가질 그런 허상을 쫓게 된다.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가르치는 교육도 그러하다. 오직 '직업'에 근접하는 방법인 것이다. 대학 진학이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취업'을 향해 거쳐가는 통과의례일 뿐인 것이다.

 

'되기'가 아닌 '되지 않기'를 추구하다

 

사회적으로 퇴계는 무언가가 '되기'가 아니라 '되지 않기'를 추구한 인물이다. 그는 24세까지 과거에 연달아 세 번이나 낙방했지만 전혀 낙담하지 않았다. 28세 때, 한양에서 진사 회시에 응시하고 합격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한양을 떠났다. 한강을 건너기 전 2등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그대로 남으로 향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비로소 대과大科에 합격했지만 이때에도 전혀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일년 전, 이미 성균관 유생들의 부박浮薄한 풍토를 목격하고는 과거를 아예 그만두고 낙향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형의 간곡한 만류로 이를 실행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관직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는 승진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었다. 고관 욕심은커녕 기회가 닿기만하면 외직을 요청했다. 당상관이 되어도 전혀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나중엔 아예 관직 자체를 거부했다.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은거하고 있음에도 동지중추부사의 이름이 여전히 남아 있자 그는 이 직함을 거둬 달라고 상소를 올렸다. 65세 때의 일이다. 벼슬과 명예에 대한 욕심을 멀리한 그가 15세에 지은 아래의 시 '가재'를 살펴보라.

 

돌을 지고 모래를 파니 저절로 집이 되고,

앞으로 가고 뒤로 달리니 발도 많구나.

일평생 한 줌 샘물 속에서 족하니,

강호江湖의 물이 얼마인지는 묻지 않겠노라.

 

그런 그가 '되어야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신선神仙'이다. 그가 말하는 신선은 은유적 표현이다. 술수와 조작, 협박과 거래, 큰소리치기와 타협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은 정치판의 생리이다. 이는 그의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 그래서 그는 억지로 꾸미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본업은 학문이다. 학문을 통해서 성인聖人이 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 그의 첫 번째 목표였다. 신선과 성인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런지 모르나 전혀 그렇지 않다. 성인이 되는 학문과 같은 긴요한 일도 있지만, 신선처럼 자연을 즐기는 느슨한 일도 있기 때문이다. 퇴계에게 있어서 자연속에서의 소요유逍遙遊는 학문의 청량제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것이 스스로의 분수에 맞는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퇴계가 추구한 삶은 자족의 삶이다.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의미 있고 즐거운 그런 삶을 누리고자 했던 것이다. 퇴계의 신선은 첫째 자연 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그것과 더불어 하나 되어 사는 사람, 둘째 세속의 칭찬과 비방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인 것이다. 누군가는 정치판을 바꾸겠다는 그럴 듯한 포장을 했지만 속마음은 명예와 권력을 누려보려는 심산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퇴계를 도덕적으로 완벽한 위인으로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도덕성보다는 오히려 절대자유의 경지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분수를 지킨, 그의 일관된 삶에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삶의 진정한 의미를 더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도산서원의 가을풍경 

 

 

사람답게 삶을 살자

 

이밖에도 '행복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자녀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바른 직업윤리는 무엇인가?',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겸손은 왜 중요한가?', '왜 자기성찰이 필요한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소유를 택할 것인가, 존재를 택할 것인가?' 등 스물아홉 꼭지의 질문에 대하여 두 저자들이 답한다.

 

사랑공경의 정신으로 인생을 살았던 위대한 스승 퇴계 선생의 인생관과 철학은 우리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그만큼 우리들이 가볍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남이 보지 않아도 스스로 삼가하라는 '신독愼獨'의 자세가 그대로 나타난다.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단 급하지 않게 천천히 그 깊은 속내를 음미히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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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리치의 재테크 시크릿 - 결혼한 여자를 위한 탄탄한 재테크 코칭
동명희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저는 사십 대 초반의 평범한 주부이고 주위의 흔한 동네 아줌마이며, 매일 일과 전투를 치르는 직장여성이기도 합니다. 집에서는 가족과 지지고 볶으며, 상사에게 깨지고 똑똑한 후배 앞에서는 기죽는 일이 다반사인 여러분과 똑같은 여자입니다. 단 하나 남다른 것이 있다면, '똑똑한 여성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왜 부자엄마는 없을까?'라는 의문을 품었다는 것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준비되지 않은 미래는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

 

프롤로그에서 시작하는 말은 그저 모든 여성들에게 재테크를 시작하는 용기를 주려고 하는 말이다. 그녀는 결코 평범한 주부가 아니라 금융이라는 특수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신한은행이라는 한 직장에서 수없이 많은 여성고객을 만나고 그들과 같이 호흡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혼 이후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현업에서 체득한 금융지식으로 저축과 투자를 몸소 실천했고, 생활 속의 작은 지혜를 쌓아가고 있다. 현재 '가정에 꼭 필요한 재무관리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열정을 다해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이 책은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 현재 현금자산 13억을 모은 '리치 마담' 동명희 저자의 재테크 성공기를 담고 있다. 맨땅에 헤딩을 수십 번 했고, 몇 번의 고비를 거쳐 지금의 그녀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누구나 고민하는 다양한 문제들의 해답을 시원하게 풀어내면서 아울러 자신만의 재테크 비법을 전격 대방출하고 있다.

 

비교적 어린 나이인 스물넷에 결혼할 당시만 해도 그녀는 '결혼은 곧 행복'이라는 등식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실직이라는 고통을 겪고, 고생해서 마련한 첫 집을 남편의 그릇된 주식투자로 날려 거리에 내몰릴 위기에 처하면서 결혼이란 한 사람의 일방적인 권한이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과 돈이란 가정의 행복을 좌지우지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 가장 낮은 호봉부터 차례대로 올라왔습니다. 다만 제가 일하는 곳이 금융업이라는 조금 특별한 장소였기 때문에 스스로 그 안에서 부를 만들고 투자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 동명희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준비가 없어서 불행한 것이다

 

책은 모두 여덟 가지 이야기로 구성됐는데, '마담 리치의 조건', '어떻게 13억을 모았나요?', '부동산에 대한 새로운 시각', '부자엄마의 자녀 교육법', '일상 속 부자의 습관', '기다려지는 노후 만들기', '행복한 가정을 위한 조언' 순으로 이어진다. 특히, 책 후미에는 '결혼 연차별 머니 플랜'을 부록에 담아 재테크에 대한 시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여성들이여, 이젠 소비보다 경제로 관심을 바꾸자 

 

현재 한국의 가정 중 87%는 여자가 가정의 경제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결국 여성이 얼마나 경제를 잘 알고 집안의 재무계획을 잘 세우는지가 한 가정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 여성들의 경제지식은 어느 정도의 수준일까? 놀랍게도 아시아 태평양 16개국 중에서 베트남, 미얀마, 방글라데시보다 못한 15위로 최하위권다.

 

이는 2015년 1월 29일자 매일경제신문 '미얀마보다 못한 한국주부 금융 마인드'라는 기사에 실린 내용이다. 우리 주부들이 나름 남편 내조나 자식교육은 신경 쓰면서도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나 자산 배분 계획, 위험 분산 등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하지 못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설명이다. 이에 저자는 "이제 여성의 금융 지식수준이 곧 가정의 경제력"임을 강조하며 열의를 가지고 이 책을 읽는 게 바로 부자의 길목에 들어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금리,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다

 

저자는 자산 만들기에도 순서가 있다고 말한다. 먼저 자신의 생애 전반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우리들이 살아갈 날들이 앞으로는 더 길어지기 때문에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꾸준하고 끈기있게 추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3년 뒤에 마이카를 굴리겠다 또는 10년 후 마이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좋지만 '1년에 500만 원 모으기', '2년 후 만기지급액 1,000만 원 적금통장 3개 모으기', '자녀 앞으로 교육비 매달 20만 원 저축' 등 숫자를 기반으로 하는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목표를 세우라고 조언한다.

 

"적금통장 '풍차 돌리기' 아시나요?"

 

비록 금리가 낮더라도 재테크의 초보는 저축에서 출발한다. 그녀는 초보는 딱 300만 원 만들기에 도전하는 게 적당하다고 조언한다. 요즈음은 금리가 너무 낮아 저축에 대한 필요성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퇴색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떠올리면 된다.

 

금리는 출렁이는 파도와 같다. 사람들이 원한다고 파도가 늘 잔잔하지 않은 것처럼 금리는 경기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며, 정부의 정책이나 금융시장 완화 및 규제, 환율의 움직임 등에 의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다. 그러니 금리가 움직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금리가 낮을 때는 그에 대응하는 주식이나 채권 등 대안투자를 고려해야 한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때에는 고공행진을 하던 차이나펀드나 브릭스펀드가 70% 이상의 하락률을 기록했지만 채권형 펀드의 등락이 적었고, 최근 은행 예금 금리는 최저지만 고배당펀드의 경우는 연 15% 이상의 수익률을 달성하기도 했다. 투자자가 배라면 금리는 파도이다. 어부가 파도를 잘 읽으며 바다로 나가야 만선의 꿈을 달성하는 것처럼, 우리도 금리를 타면서 수익을 얻어야 한다.

 

 

현금자산이 제일 든든하다

 

저자도 집을 장만할 때 당연히 대출에 의존했다. 이에 따라 대출금이자와 원금을 상환하느라 젊은 시절을 다 보냈을 정도였다. 그녀는 은행원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고객들의 사례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집이라는 재산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한평생 고생해 마련한 집을 저당잡아 자녀들 뒷바라지한 부모들이 늙어서 대접받지 못하는 경우들을 자주 보게 되었던 것이다.

 

"집보다는 나를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녀는 대출과는 별개로 저축과 투자를 늘려갔다. 대출원금과 이자는 꾸준하게 나갈 고정비로 생각하고, 변동비를 줄여 저축을 늘렸다. 일주일에 한 번 하던 외식은 한 달에 한 번으로 바꾸었고, 유행에 맞춰 사던 옷들도 과감하게 줄였다. 아들의 학원도 학교의 방과 후 수업으로 전환했다.

 

무엇보다도 대출 때문에 저축을 못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적금과 펀드, 보험을 대출이자보다 먼저 자동이체시켰다. 지금도 통장에서 적금과 펀드 등이 최우선으로 나가게 두고, 마이너스가 되면 씀씀이를 줄여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하고 있다. 저축은 습관이기 때문에, '먼저 쓰고 저축하겠다'는 마음으로는 돈을 결코 모을 수가 없다.

 

마담 리치의 한 마다

 

등기부등본 독해력이 있으면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잘못된 부동산 계약 한 번으로 온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을 수 있습니다.

 

근저당을 감내하고 전세계약을 할 때에는 감액등기를 할 수 있도록 계약서에 명시하시고, 확정일자와 전입신고를 받는 일도 잊지 마세요.

 

 

에듀푸어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라

 

요즘 자녀가 태어나면서부터 은행에 와서 통장을 개설하는 엄마들이 많아졌다. 이럴 경우 반은 성공한 셈이다. 다만 보통예금이나 저축예금보다는 정해진 기간에는 손댈 수 없는 상품이 좋다. 아이 대학 등록금으로 쓰려고 조금씩 모으다 집안에 급한 일이 생기면 '그때 가서 또 모으지 뭐' 하면서 써버리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필요한 3억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마련하겠는가? 게다가 당장 생활도 해야 하고, 내 집 마련에 노후자금까지도 챙겨야 한다. 자녀가 어릴 때 준비하라고 말하는 이유는 교육비가 자녀의 나이에 비례해 증가하기 때문이다. 영유아기 때부터 초등학교까지 집중적으로 교육비를 모아야 하고, 중고등학교 때는 대학등록금 또한 따로 모으는 것이 현명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금융 상품이든지 자동이체를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교육비가 가계지출에서 18.1%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자녀가 어릴 적엔 소득의 20%는 따로 준비한다는 각오를 가져야 정작 돈이 많이 드는 시기에 편할 수 있는 법이다. 

 

 

소신이 있어야 부자가 된다

 

저자는 지금 집에서 도보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다. 변함없이 정장에 운동화, 백팩을 메고 열심히 부지런히 걸어서 퇴근한다. 경제적이면서 건강에도 유익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계절의 흐름을 볼 수 있어서 참 좋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굳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얽매여 살 필요는 없다. 남들이 자신을 보는 시간은 순간이고, 지나면 그냥 스쳐 간 사람에 불과하다. 멋진 차, 좋은 옷도 다른 사람에겐 잠깐 부러움의 대상이 될 뿐이다. 자신이 그것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힘들다면 과감하게 포기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소신이자 지혜이다.

 

현재의 생활이 인생 후반부에 어떤 영향을 줄지 미리 생각해야 한다. 늙어서 제대로 걷기가 힘들 때,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메뉴가 떠오를 때, 자신을 태워 그곳으로 데려갈 운전기사 딸린 승용차가 자신을 기다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신이는 일인가 말이다. 만약에 그 반대라면?

 

젊을 때는 선택의 폭이 훨씬 다양하다. 한두 개쯤 포기해도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선택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 

 

요즈음 어딜 가나 '백세 인생'이라는 노래가 들린다. 100세 시대, 재테크의 기본은 은퇴와 노후 준비일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미래를 지켜주거나 보장해 주기 않기 때문이다. 특히, 가계 소득이 적다고 생각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준비해야 한다. 남들보다 많이 준비할 수 없다면 길게 준비하면 되는 거니까. 은퇴와 노후 준비는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주먹구구식으로 퉁칠 것이 아니라 언제부터 얼마가 필요할 것인지 구체적인 기간과 금액을 설정해야 한다. 그 후 매달 그것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체계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높은 수익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아둬야 한다.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이다. 직장인이라면 은퇴를 최대한 늦추는 게 가장 현명한 일이다.

 

은퇴설계는 평균수명이 긴 여성 위주로 해야 합니다. 남편의 퇴직금은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시고 준비하시고, 건강이 곧 재산이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관리하세요.

 

 

남편의 비상금, 눈 감아 주라

 

곳간은 여자가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분명 있다. 바로 남편들이다. 내가 벌어 내가 쓰겠다는데 모두 내놓으라면 당연히 억울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에 부부 싸움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수입이 있는 주부들은 째째하게 간섭하기 싫어서 그냥 내버려두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곳간을 합쳐야 한다.

 

여기서, 여자들은 남편을 위해 조금은 길을 열어 두면 좋다. 고양이에게 몰리던 쥐도 막다른 곳에 이르면 대든다고 한다. 남편의 비상금은 모르는 척 눈감아 줘야 한다. 그래야 남편들도 숨 쉴 구멍이 생기고 여유가 생기게 된다. 이처럼 결혼생활에는 가끔 모른 척 넘어가야 할 일도 있다. 모든 것을 알고, 아내의 뜻대로 하기보다 각자 행동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이 좋다.

 

저자는 결혼생활 20년 동안 남편의 급여명세표를 결혼 후 처음 보고 너무 적은 금액에 놀란 이후 이를 가져오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고 한다. 남편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게 오히려 더 큰 수입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리들에게 평생 같이 갈 남편과 취미 하나 정도는 공유하라고 당부한다. 주말 등산이든, 댄스 학원이든, 테니스 교실이든, 탁구 교실이든 큰 돈 들이지 않고 부부가 함께 땀 흘리며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그런 취미 말이다.

 

 

 저자의 95년 5월 급여 명세표

 

 

첫 걸음을 지금 바로 내딛자

 

40대 초반의 주부인 저자는 대출 없는 32평 아파트, 할부금 없는 마이카, 현금자산 13억을 장만한 알짜 인생이다. 사실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다. 먼저 깨달았고 이를 철저하게 실천했기 때문이다. 부록에 실린 '결혼 연차별 머니 플랜'의 골자는 첫째 뭐든 꾸준히 하라는 것, 둘째 적당한 수익을 추구하하는 것, 셋째 싱품만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라는 것이다.

 

그녀는 주택청약종합저축 같은 1인 1계좌 상품은 절대 놓치지 말고 재형저축 같은 비과세상품에도 무조건 가입하라고 권한다. 부스러기라고 생각한 돈이 나중에 눈덩이처럼 커져 든든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주식형펀드와 ELS(주가연계증권)도 비교적 수익률이 좋은 투자처다.

 

지금 우리 집 경제에 무엇이 문제인지 먼저 꼼꼼하게 고민한 다음, 거래하는 은행에 들러 상담을 받는다면 도움이 될 금융상품들을 추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저축만이 '기다려지는 노후'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동이체라는 구속을 받으며 꾸준하게 실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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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인문학 - 미술과 문학으로 만나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에세이 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시리즈
정수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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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다루고 있는 관계, 소통, 불안, 소비, 저항, 생태 이야기는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열쇳말이다. 무론 이 열쇳말은 나를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크기의 세상을 살아간다. 지구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어울려 살고 있지만 사람들이 가진 세상의 크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세상은 자신이 경험하고 아는 만큼만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이 책은 나의 경험과 나의 앎을 바탕으로 하는 나의 이야기다. - '글쓴이의 말' 중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

 

저자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첫 그림은 마네<풀밭 위의 점심식사>라고 말한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그녀가 그림만 실력 있는 도록에서 발견한 그림은 발가벗은 여인과 옷을 입은 남자의 모습이었으니 야릇하게 보였을 터이다. 이후 어른이 없을 때만 몰래 이 도록 속의 그림들을 펼쳐보곤 했다고 한다. 벌거벗은 여자의 모습이 많았으니 함부로 보면 안 된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던 모양이다. 부끄러운 생각과 함께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서른이 넘은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자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그림들을 보았다. 앞서 초등학생 시절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하루 종일 엄마를 찾는 아이에게서 피로를 느끼던 그런 때에 왠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밀려오면서 '나는 잘 살고 있는가'라는 뒤늦은 사춘기와 방황이 시작되었고, 이때 할 수 있는 반항이 새벽에 일어나 독서하고 글 쓰는 게 전부였다고 밝힌다.

 

새벽에 일어나 만난 그림들은 의외로 행복한 모습이 아니었다. 도미에의 <삼등열차>속 사람들, 뭉크의 <절규> 속 사람들 모두 그녀처럼 불안하고 힘겨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힘겹게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녀에게 힐링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왜, 무엇 때문에, 이들은 그려졌을까?', '지금 나는 왜 불안하고 힘들어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불러왔다. 이 책은 바로 이런 고민을 찾아간 사유사유의 결과물인 셈이다.

 

저자 정수임은 현재 고등학교 국어교사이다. 그녀는 '관계', '소통', '불안', '소비', '저항', '생태'라는 6가지 주제 아래 문학, 미술 작품, 철학, 인문, 사회과학 등을 넘나들며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들추어낸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에게 '자아 찾기'를 강조한다. 자신을 알고 인정할 줄 알아야 타인과 사랑하고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關係

 

"언제 나를 낳아 달라고 했어?"

 

아마도 우리 모두 성장하면서 부모에게 대들 때 이런 말을 한번쯤 했을 거다.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는 끔찍한 말이다. 부모가 내 자식은 꼭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선택할 수 없듯이 우리 모두 부모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 즐기다 보니 자식이 생겼고, 태어나 보니 부모가 있었다. 그런데, 이 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가족이라는 관계는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따라서 저자는 원망 대신에 '나'를 알아 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열정적인 삶을 살다가 세상을 하직한 화가이다. 그의 아이콘은 '가난', '외로움', '우울', '발작', '자살'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낙천적, 따뜻한, 열정적을 상징하는 '노란색의 화가'로 불린다. 때때로 이것이 너무 지나쳐 다른 사람의 눈에는 미치광이로 보일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남긴 수벡 통의 편지, 수십 점의 자화상들은 그런 평가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충분히 설명해준다.

 

 

그는 '노란 집'을 마련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길 소망햇다. 이런 그의 바람에 화답한 이는 큰 빚에 시달리던 폴 고갱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흠모했던 고갱을 기다리며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태양빛 아래에서 해바라기를 그렸다. 그는 열네 송이 해바라기뿐 아니라 많은 해바라기 연작 시리즈를 노란색으로 그려냈다.

 

자신을 표현하는 색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학교나 사회가 제시하는 비슷한 삶을 살아가려면 자신을 '응시'하고 돌아볼 기회가 적었을 수도, 조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남들과 달라지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몽테뉴가 말했듯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경험은 자신이 저 자신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이 저 자신임을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은 수많은 것 사이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마치 박성우가 풋풋한 연두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처럼, 고흐가 노란빛에서 자신의 열정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물론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능성과 열정뿐 아니라 한계와 단점을 응시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소통疎通

 

국가, 민족, 사회, 개인들 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바로 '소통'이다. 물론 아무리 소통하려 해도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으면 소통은 성립할 수 없다. 사회에서 소통을 강조한다면 이는 그만큼 서로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런 것 같다. 오직 '나'만 있고, '너'와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엔 담을 맞댄 이웃집의 숟가락 개수도 알고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숟가락은커녕 누가 사는지조차 모른다.

 

나는 다시 '속물' 틈에 끼었다. 무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은 모두 속물들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무위무위와 똑같은 무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장난이라고. - 김승옥, < 무진기행> 중에서 

 

이 소설의 특징은 안개 속에서 시작했다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버스와 함께 끝난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시작과 끝이 도무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점이다. 무진의 명산물은 바로 '안개'다. 무진을 빙 둘러싸고 있는 산조차 감춰버릴 정도다.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 매일 찾아오는 여귀廬鬼가 뿜어 놓은 입김과 같다고 표현한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라는 그림이 있다. 이는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라는 화가가 그린 작품이다. 화가는 10남매 중 여섯 째로 태어나 유년 시절 내내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했다. 일곱 살엔 엄마가, 1년 뒤엔 누이가, 열세 살엔 얼음에 빠진 그를 구하려다 동생이, 둘째 누이는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해 그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까지 시도했었다. 그럼에도 결국 19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로 우뚝 섰다.

 

"화가는 자기 앞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본 것도 그려야 한다. 내면에서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면 앞에 있는 것도 그리지 말아야 한다" - 프리드리히

 

그림 속의 남자는 안개를 벗어난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서 있다. 하지만 그가 그곳에 서기까지 안개에 휩싸여 보이지 않는 바위를 무수히 더듬었을 것이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함께 동시에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성도 느꼈을 것이다. 앞서 <무진기행>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현재를 부정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려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상대를 믿지 않고 자신의 진심을 보여 주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안개 속에 깊이 감추고 싶은 자신의 부끄러움도 인정하고 보여줄 용기가 필요하다.

 

솔직한 것이 미덕이 아닌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지만 솔직한 것만큼 무섭고 강한 것 또한 없다. 자연의 일부인 안개는 인간의 힘으로 걷어 낼 수 없지만 마음속 안개를 걷어 내고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한다면 프리드리히의 그림 속 안개산쯤이야 거뜬히 오를 수 있다. 그런 날이 온다면 프리드리히의 그림도 수정되어야 한다. '안개 바다 위에 홀로 선 방랑자'가 아니라 '안개 바다 위에 함께 서 있는 방랑자들'로 말이다.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

 

요즈음은 낯선 곳을 찾아가는 게 그리 두렵지 않다. 길찾기 앱이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길을 가다 막히면 곁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몇 번씩이나 물어야 겨우 찾아가지만 지금은 손 안의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 초행길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내딛는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공사 현장이었다. 도시에서 공사장 인부로 살던 정 씨는 십년 만에 고향인 '삼포'로 가는 길이다. 그의 기억 속 삼포는 비옥한 땅과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물고기로 둘러싸인 섬이었다. 하지만 삼포행 기차를 기다리는 대합실에서 만난 노인은 삼포에 다리가 놓여 이젠 관광 호텔을 짓는다고 트럭이 신작로를 질주하는 그런 곳으로 변했다고 알려준다.

 

공사장의 밥값을 떼어먹고 도망치다 정 씨와 동행하는 영달, 군부대와 선술집을 전전하며 삶을 살던 백화, 이들 세 명은 우연한 동행을 시작한다. 하얀 눈을 밟으며 황량한 벌판을 걸어간다. 힘들어하는 백화를 업어주고, 팥 시루떡을 나누고, 비상금을 쪼개 기차표를 마련하는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은 이렇게 소통을 얘기한다.

 

마치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그림이 있다. 로이 릭턴스타인<행복한 눈물>이 그것이다. 화기 릭턴스타인은 앤디 워홀과 함께 팝아트를 대표하는 화가로 만화를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 그림 속의 그녀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 감상하는 이가 판단할 몫이지만 어쩐지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것 같다. 살다 보면 슬프지 않아도 눈물을 훌려야 할 때가 있다. 분위기 상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척'하는 것이다. 이렇게 맞추는 일이 소통의 첫걸음이다.

 

릭턴스타인의 <행복한 눈물> 속 여인이나 <삼포 가는 길>에서 만난 세 사람을 지나 체 게바라가 떠오른 이유는 그만큼 타인의 삶을 연민하고 공감하며 생각을 실천한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체 게바라처럼 열정적 삶을 살아 낼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만난 사람들을 위해 거짓 눈물이 아닌 진심의 눈물을 흘리며 상처를 보듬고 살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고 했던 체 게바라의 말을 기억하면서.

 

 

불안不安

 

"나는 날마다 죽음과 함께 살았다. 나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두 가지 적을 안고 태어났는데, 그것은 병약함과 정신병이다. 질병, 광기, 그리고 죽음은 내가 태어난 요람을 둘러싸고 있던 검은 천사들이었다" - 에드바르 뭉크의 일기 중에서

 

화가 뭉크는 다섯 살에 엄마가 폐결핵으로 죽고, 몇 년 뒤 누나도 같은 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여동생 중 한 명은 어릴 적에 정신병 진단을 받았고, 다섯 형제 중 유일하게 결혼했던 남동생도 결혼식을 올린 지 몇 달만에 죽었다. 그도 병약해 류머티즘, 열병, 불면증 등으로 늘 고통받았다. 평생 죽음이라는 불안과 맞서야 했던 그는 여든한 살까지 생을 이어갔다.

 

 

어느 날, 뭉크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산책에 나섰다. 두 친구는 아름다운 광경에 취해 한가로이 걷고 있지만, 뭉크는 공포를 느꼈다. 마치 그림 속에서 "꺄아악!"이란 비명 소리가 흘러 나올 듯하다. 귀를 막고 눈을 크게 뜨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도 두려움 자체를 인정하고 극복해야 한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다"

- 에밀 졸라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망설임을 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망설임과 마주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뭉크의 <절규>와 같은 태도다. 자신의 이기심과 안일함을 마주할 때 생겨난 놀라움과 두려움이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놀라기만 하고 두려워만 한다면 변할 수 없다. 진실은 전진하고 있으며 아무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므로.

 

 

"열심히 해도 안되는 게 있다"

 

영화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의 혁명을 보여준다. 프랑스는 1789년, 1830년, 1848년 혁명을 거치면서 완성된 나라이다. 이 기기엔 귀족과 교회의 지지를 받는 왕의 군대와 프랑스 국민의 대립은 심각했다. 남녀노소 모두 손에 총을 들고 왕의 군대와 싸웠다. 자유와 평등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시기에 태어난 화가가 있다. 바로 오노레 도미에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에 태어낫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이 그랬듯이 그도 역시 가난해서 학교 교육을 받을 수가 없었다. 대신 그는 파리의 거리에서 세상을 배웠다. 그는 길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표현하고 그렸지만 미술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서점 직원으로 취직했다.

 

 

그의 걸작 <삼등열차>를 살펴보자. 희미한 빛이 스며든 열차 안에 한 여인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파곤한 기색의 할머니는 기도를 하고 있다. 한 아이는 잠에 빠져 있다. 이들 모두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하루하루를 연명키 위해 고달픈 삶을 살고 있음을 직감하게 한다.    

 

최저 시급이 6,030원인 대한민국은 어떨까.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받고 평등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대답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오히려 오래도록 이어진 팍팍한 현실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연대를 부수고 나만 잘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 서로 부딪치고 밟고 누르며 나만 우뚝 서길 바라는 마음까지 부추기며 말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아도 미래를 내다보기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은 불안하다. 그리고 그 불안을 떨쳐 내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경쟁하고 경쟁하기를 반복한다. 영화 <설국열차>가 서로 다른 칸을 만들어 내다 결국 탈선하고 전복된 것처럼 불안과 경쟁만이 계속된다면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기차도 안전하지 않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어느 칸에 타고 있을까. 

 

 

소비消費

 

서울의 한 백화점 명품관 옥상 정원에 가면 볼거리가 있다. 볼 수만 있고 만져서는 안 된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이 많다. 남자 어른의 키를 훌쩍 넘는 크기이다. 이는 보랏빛을 하고 있는 제프 쿤스<세이크리드 하트>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가격이 300억이다. 그러니 만질 수가 없다. 만약에 손으로 만지면 바로 경보음이 울릴 것이다. 옥상 정원에는 다른 작품들도 있다. 마치 '비싼 것은 아름답다'고 과시하는 듯하다. 명품 소비를 부추긴다.

 

 

경찰은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였다. 2009년 1월 20일 오전 5시 30분, 한강로 일대 5차선 도로의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 경찰병력 20개 중대 1600명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대 테러 담당 경찰특공대 49명, 그리고 살수차 4대가 배치되었다. 경찰은 처음부터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 이시영,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중에서   

 

부자든 빈자든, 우리들은 이런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얼마만큼의 자본을 소유하고 소비할 수 있는가에 따라 사람의 됨됨이와 안목까지 결정되는 시대이다. 전혀 다른 입장에 선 화가와 시인이지만 이들의 시선이 머문 곳이 '자본에 따라 결정되는 가치'라는 점에서 그들은 같은 곳에 서 있다.

 

두 작품의 표현 방식과 시각은 다르지만 끊임없이 자본의 소유소비를 권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제 두 작가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자. 혹시 비싼 물건을 사고 치장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은지, 소비하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소비하는 것만으로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봐야 할 때다.

 

 

저항抵抗

 

"시끄러워! 말하지 마!"

 

알고 싶고, 궁금한 게 많아서, 그리고 금지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들은 "왜요? 왜 말하면 안 되는 거죠?"라고 묻게 된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 친절한 사회는 없다. 돌어오눈 대답은 겨우 "말하지 말라니까!", "알 거 없어, 다쳐!" 정도다. 정말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몰라도 괜찮을까? 왜 이렇게 침묵을 강요할까?

 

  

위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마르시아스의 형벌>이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다. 반인반수인 마르시아스가 음악의 신 아폴론과 내기를 했다. 누가 연주를 잘하는지를 경쟁하는 것이다. 내기에 걸린 것은 뮤즈의 심판에 따라 진 쪽이 이긴 쪽의 처분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르시아스는 피리를, 아폴론은 리라를 연주햇다. 하지만 너무나도 연주가 훌륭해서 심판인 뮤즈도 판별할 수가 없었다. 이에 아폴론은 억지를 부린다. 음악의 신인 자신의 자존심이 걸렸기 때문이다. 악기를 거꾸로 들고 연주해서 승부를 내자는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들고 연주할 경우 리라는 소리가 나지만 피리는 소리가 날 수 없다. 당연히 마르시아스가 질 수밖에 없다.

 

신에게 감히 도전장을 내민 마르시아스는 괘씸죄에 걸려들어 살가죽이 벗겨지는 잔인한 형벌을 감수해야만 했다. 아폴론의 리라가 오른편 나무에 기대어 있음이 보인다. 아폴론은 마르시아스의 살가죽을 벗기는 중이다. 반인반수 사티로스 다섯과 요정 둘이 그림 속에 있는데, 요정 둘은 도통 이 일에 관심이 없고 사티로스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 그림은 17세기에 그려진 것이다. 당시는 절대왕권의 시대였다. 왕권에 도전하지 말라는 경고로 해석된다.           

 

이제 마르시아스의 고통을 담고 있는 그림 앞에 다시 선다. 그림을 보며 긴장하거나 인상을 찌푸리지 말고 그가 왜 무모하게 아폴론에게 도전했는지 궁금해하며 남은 사티로스들의 행동을 상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 이미지가 준 최초의 자극에 대항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생태生態

 

인간은 철근과 콘크리트로 요새 같은 건물을 만들고, 거미줄을 닮은 도로를 닦고, 새를 닮은 비행기를 만들고, 물고기를 닮은 배를 만들었다. 하지만 거센 바람과 땅의 진동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붕괴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고작 백 년을 살지도 못하는 인간들은 자연을 늘 이용할 생각만 한다. 왜 함께 사는 방법은 생각하지 않을까?

 

레이첼 카슨<침묵의 봄>을 읽은 적이 있는가? 이는 '생태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도서이다. 작가는 인간이 자연에 가한 위협이 마치 부메랑처럼 생태계를 돌아 인간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대규모로 살포한 DDT가 암을 유발하는 원인임을 밝히며, 생태계의 순환고리마저 위협한다고 강조했다.

 

 

이 그림은 장욱진<나무와 새>란 작품이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그림 속에 자연을 담아냈다. 1957년, 한국전쟁의 포화가 휩쓸고 간 뒤라 결코 아름다울 리 없는 그런 때다. 전쟁으로 집은 무너졌고 사랑하는 이들과도 생이별을 했다. 먹을 게 없어 굶주림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변하지 않는 게 있었다. 바로 이 땅의 자연이었다. 아름답고 소박한 자연을 그는 그려냈다. 

 

한 마리의 새와 한 그루의 나무, 그 안을 채우는 아이, 그리고 나무 위의 집들은 동화 속의 장면 같다. 전쟁의 포화가 사라진 지 얼마되지 않은 각박한 시절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그는 어던 위로를 보내고 싶었을까?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라, 그러면 그래도 변치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이 보일 것이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장욱진의 그림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말해 준다. 나무와 새가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었듯, 새의 똥이 나무에게 영양분이 되어 주고 나무가 새에게 열매를 내주듯 우리의 삶도 한쪽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 함께 살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섬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시가 발표된 당시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해졌다. 또 화가 오병욱은 인파로 붐비는 서울의 거리를 표현하고 있는데, 그림 속의 사람들은 주위에는 무관심한 채 오로지 제 갈 길만 가고 있다. 이젠 우리들이 다시 인간성을 회복해야 될 때가 아닐까 싶다. 주위를 둘러보며 도움이 필요한 곳엔 보시布施를 하자. 반드시 재물이 있어야 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도 보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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